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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비평 분야 혹은 미국사 분야에서 '이주의 발견'을 꼽자면 <허슬러> 발행인 래리 플린트가 데이비드 아이젠바흐와 공저한 <섹스, 거짓말, 그리고 대통령>(메디치, 2015)이다. '래리 플린트가 말하는 어둠의 미국사'가 부제. '어둠의 미국사'인 만큼 결코 '교실에서는 가르치지 않는 미국사'다(그런 점에서는 올리버 스톤의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들녘, 2015)와 같이 묶이는 책).

 

<허슬러> 발행인 래리 플린트와 정치사 교수 데이비드 아이젠바흐는 미국 건국 초기부터 1990년대 빌 클린턴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대통령과 영부인의 사생활이 정책 결정에 미친 영향을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저자들은 정치 스캔들이 중요한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쳤음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주지만, 정치 지도자들이 성적으로 방탕하게 행동하는 것을 저지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이 책에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미국 지도자들과 관련된 인물과 사건에 관한 새로운 내용이 담겨 있다. 저자들은 몇 세대에 걸쳐 전해온 지도자들에 관한 신화가 허구라고 밝힌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저자들은 지도자들의 사생활을 하나하나 들추어내고, 그에 대한 도덕적 논란을 만들어내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미국 지도자'들 가운데는 루스벨트나 케네디가 눈에 띈다. 더불어 주목해야 하는 이름은 FBI의 최장수 국장이었던 존 에드거 후버다.  

냉전 때 지구상에서 가장 막강한 사람은 미국 대통령이었을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 정치를 아는 사람들은 미국 연방수사국(FBI) 존 에드거 후버 국장을 꼽는다. 대통령은 교체되었지만 후버는 FBI 국장으로 48년간 재직했다. 국민이 뽑지 않은 이 국장은 의원, 대통령, 대법원 판사들의 사생활 관련 비밀 파일을 수지하여 입법, 사법, 행정부를 통제했다.(197쪽)

정보기관장이 무차별 사찰 정보를 통해서 대통령보다도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교실에서는 결코 가르칠 수 없는 이유가 있는 셈...

 

15. 08.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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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대안 내지 또 다른 자본주의를 모색하는 책 두 권을 '이주의 발견'으로 묶는다. 히라카와 가쓰미의 <골목길에서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다>(가나출판사, 2015)와 모타니 고스케(와 NHK히로시마 취재팀)의 <숲에서 자본주의를 껴안다>(동아시아, 2015)이다.

 

 

히라카와 가쓰미는 <소비를 그만두다>(더숲, 2015)로 먼저 소개됐던 저자. 이번에 나온 건 "초고속 경제성장과 25년 장기불황을 온몸으로 겪은 일본의 실천적 지식인인 히라카와 가쓰미가 자신이 경험한 일본의 현대경제사를 통해 한계에 부딪힌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대안적 삶의 자세에 대해 제시하는 책이다."

저자는 위기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생존 전략이라고 하며 그 대안적인 방향으로 ‘소상인’과 ‘탈소비’를 제시한다. 이 책에서는 그 중 ‘소상인의 철학’에 초점을 맞추어 풀어놓았다. 저자의 대표작인 이 책은 국내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된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에서 저자 와타나베 이타루가 공감하고 자주 차용하는 책으로 언급되면서 다시금 주목을 받았으며 실제 일본에서는 이 책에서 말하는 소상인 철학을 가장 잘 실현하고 있는 곳으로 시골빵집 ‘다루마리’로 꼽고 있다.

소개에도 나오지만 작년에 좋은 반응을 얻은 책,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더숲, 2014)가 <골목길에서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다> 출간의 산파 노릇을 한 셈이다(골목길 자본주의를 달리 시골빵집 자본주의로 불러도 좋겠다).

 

 

그런 면에서는 <숲에서 자본주의를 껴안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부제는 '산촌자본주의, 가능한 대안인가 유토피아인가?'. 지난해 일본 신서대상 1위를 차지한 책이라고 한다(저자의 <일본 디플레이션의 진실>도 소개될 예정이란다).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

'산촌자본주의’는 ‘예전부터 인간이 가지고 있었던 휴면자산을 재이용함으로써 경제재생과 공동체의 부활에 성공하는 현상’을 말하는 신조어이고, 여기서 ‘里山’는 ‘마을 숲, 마을 산’ 등을 의미한다. ‘산촌자본주의’는 돈의 순환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전제하에서 구축된 ‘머니자본주의’ 경제 시스템과 함께, 돈에 의존하지 않는 서브시스템도 재구축해두고자 하는 사고방식이다. 즉, 산촌자본주의는 한마디로 ‘돈에 의존하지 않는 서브시스템’, ‘잠자고 있던 자원을 활용하고 지역을 풍요롭게 만드는 시스템’인 셈이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고 있는 버려진 땅을 활용하고 에너지와 자원 문제의 해법을 제시하며, 한쪽으로만 치우친 현재의 ‘마초적’인 경제시스템을 보완할 서브시스템으로서 기능하는 산촌자본주의의 특징과 가능성에 대해 이 책은 이야기하고 있다.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은 용어라서 바로 머릿속에 떠오르진 않는다. 어떤 사례들이 있는지 직접 책을 보고 확인해야 이해가 빠르겠다. 아무려나 '또 다른 자본주의'의 모색은 일본 출판계의 한 트렌드인 듯싶다. 이에 견줄 만한 국내서가 얼른 떠오르지 않는데(협동조합이나 마을에 관한 책들?), 그것이 현 상황에 대한 낙관에 기인한 것은 아닐 거라고 믿는다... 

 

15. 08.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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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나 주제보다 저자 때문에 관심을 갖게 되는 책들이 있다. 애덤 아다토 샌델의 <편견이란 무엇인가>(와이즈베리, 2015)가 그런 경우다. 샌델? 그렇다. 저자가 마이클 샌델의 아들 애덤이다. 샌델 책의 헌사에 나오는 두 아들 가운데 하나(아마도 장남이지 싶다). 그의 아내 이름이 키쿠 아다토이다. 찾아보니 책은 작년에 나왔고 애덤은 하버드대학의 강사다. 아버지의 가업을 잇는 모양새다.

 

 

이왕이면 원서도 같이 구입해볼까 했더니 6만원대로 좀 비싸다. 이런 경우는 학술서라는 얘기인데, 짐작엔 박사학위논문을 펴낸 게 아닌가 싶다(프로필에 따르면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하버드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가르치고 있다"). 참고로 샌델의 학위논문은 <정의의 한계>(멜론, 2012)다. 원제는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 이 책의 원서도 샌델의 책 가운데서는 드물게도 비싸다(대중서와 학술서는 가격에서 일단 차이가 난다). 아버지가 정의를 화두로 삼았다면 아들의 관심사는 편견이다. 그는 철학사에서 편견이 어떻게 다루어져 왔는지 살핀다.

애덤 샌델은 놀라운 솜씨로 아리스토텔레스, 키케로, 베이컨, 데카르트, 칸트, 헤겔, 애덤 스미스, 에드먼드 버크, 하이데거, 존 롤스, 한나 아렌트와 가다머에 이르는 편견에 대한 치밀하고 흥미로운 재해석을 시도했다. 이 책의 감수자 김선욱 교수는 그동안 하이데거와 가다머의 사상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이루어져 온 한국의 철학계에 편견에 대한 정치철학적 함의를 담은 애덤 샌델의 책이 의미 있는 기여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편견(선입견)의 결정적인 복권은 가다머의 <진리와 방법>에서 이루어진다. 그러고 보니 1권만 좀 읽은 책인데, 언제 완독에 도전해봐야겠다...

 

15. 08.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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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권의 인터뷰집을 같이 묶는다. 신기주의 <생각의 모험>(인물과사상사, 2015)과 전병근의 <궁극의 인문학>(메디치, 2015)이다.

 

 

<생각의 모험>은 "지난 2년 동안 월간 <인물과사상>과 <에스콰이어>에서 진행했던 16인과의 인터뷰를 묶었다. 강신주와 김혜남, 주진우와 고종석, 강준만과 한상진, 장하성과 정태인, 정관용과 왕상한, 표창원과 김호기, 천명관과 원신연, 배병우와 황두진이다. 철학과 의학과 언론과 저술과 정치와 경제와 방송과 사회와 소설과 영화와 사진과 건축을 넘나든다." 주제별로 두 명씩 묶었다는 게 특징이다.

 

반면 <궁극의 인문학>은 "시대와 분야를 넘나드는 9인의 사유와 통찰"을 담았다. 국내외 학자들이 망라돼 있는 게 특징인데, "서양 고전학에 정통한 철학자 이태수. 뇌과학과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과학자 김대식. 인류를 빅히스토리의 관점에서 읽는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 서양 문명의 교류와 확산을 탐구하는 역사학자 주경철. 자본주의 역사를 빅데이터로 분석한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 인지심리학과 사회심리학에 정통한 조너선 하이트. 독일의 문화심리학을 독창적으로 해석한 김정운. 빅데이터 분석으로 집단의 마음을 읽어내는 송길영. 우리 고전 문학에 해박한 한문학자 정민까지"다.

 

 

아직까지는 <대항해 시대>(서울대출판부, 2008)가 주저라고 말하는 역사학자 주경철 교수의 인터뷰를 읽어봤는데, "역사에 관심 있는 일반 독자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 있습니까?"라는 마지막 질문에 대한 대답이 인상적이다.

"저는 역사책 추천 같은 건 잘 안 합니다. 편견을 키워줄 것 같아서. 서점에 직접 가서 두어 시간 투자하면 눈에 들어오는 책들이 꽤 많습니다. 토요일 오후는 그런 데 가서 시간 보내는 게 최고지요. 특히 학생들에게는 방학 동안 멋진 소설책, 시집들 읽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155쪽)

그렇다, 토요일 오후엔 그런 데 가서 시간을 보내는 게 최고다. 방학 동안 무얼 읽을까. 최근의 화제작 가운데 콜린 매컬로의 <로마의 일인자>(교유서가, 2015)와 하퍼 리의 <파수꾼들>(열린책들, 2015)을 읽어봐도 좋겠다. 할일이 잔뜩이지만, 나도 주말엔 (강의가 뜸하다는 의미에서) '방학' 독서계획을 세워봐야겠다... 

 

15. 0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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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으로 대니얼 헬러-로즌의 <에코랄리아스>(문학과지성사, 2015)를 고른다. '언어의 망각에 대하여'가 부제. 저자는 프린스턴대학의 비교문학과 교수인데, 조르조 아감벤의 주요 저작을 영어로 옮기기도 했다. 아감벤 번역자이면서 그 자신이 독특한 저작을 여럿 갖고 있는 저자다. 가령 이런 책들이 있다고.

 

<운명의 얼굴: 장미 이야기와 우연성의 시학>(2003)을 필두로 온갖 시대와 분야를 종횡무진하면서 독특하고 통찰력 있는 다양한 저서들을 격년 단위로 출간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내적 접촉: 감각의 고고학>(2007), <만인의 적: 국민국가들의 법과 해적>(2009), <다섯번째 망치: 세계의 불협화음과 피타고라스>(2011), <검은 혀들: 사기꾼과 수수께끼를 내는 자들>(2013) 등이 있다.  

 

저자가 번역한 아감벤 책과 함께 한두 권 정도는 이번 기회에 구해봐야겠다. 말 그대로 '발견'감이 될지도 모르겠다. <에코랄리아스>는 어떤 책인가.

이 책의 제목인 ‘에코랄리아스’란 ‘언어메아리’ ‘메아리어’ ‘반향어’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데, 그것은 저 자신은 망실되었으나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마치 메아리처럼 ‘다른’ 언어의 틈새에서 살아남아 그 존재의 ‘지층’이 되는 언어의 특성을 암시한다. 21편의 에세이로 구성된 이 책은 고대, 중세, 근대를 넘나들며 신화에서부터 현대 언어학 이론까지 다양하고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하면서 말과 글, 기억과 망각 사이의 관계를 탐색해나가는 동시에 ‘망각’이야말로 언어의 본질적 특성이라는 저자의 특별하고 독창적인 통찰을 전해준다.

모처럼 독서욕을 자극하는 철학적 에세이다.

 

 

역자는 아감벤의 <빌라도와 예수>(꾸리에, 2015), <유아기와 역사>(새물결, 2010) 등을 옮긴 조효원 평론가다. 철학적 에세이 <다음 책>(문학과지성사, 2014)을 펴내기도 했다. 벤야민이나 아감벤의 사유가 한국어로는 어떤 반향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로도 보인다...

 

15. 0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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