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가에게는 나이를 먹는 일에 대한 거리낌을 일소해주는 것 역시 책이다(다른 무엇보다도 2016년에는 2016년의 책이 나온다는 사실에 여전히 가슴이 뛴다면, 요즘말로 심쿵한다면 당신도 여전히 독서가다). 게다가 처음 소개되는 낯선 이름의 저자가 쓴 굉장한 책이라면, 시쳇말로 목을 빼게 된다. 노르웨이작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나의 투쟁>(한길사, 2016)이 바로 그런 경우다. 작가 소개는 이렇다.

 

1968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태어나, 베르겐 대학에서 문학과 예술을 전공했다. 1998년 첫 소설 <세상 밖에서>로 노르웨이 문예비평가상을 받았다. 2004년 두 번째 소설 <어떤 일이든 때가 있다>도 비평가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세 번째 소설 <나의 투쟁> 이후 그의 삶은 완전히 변했다. 그의 자화상 같은 소설은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총 6, 3,622쪽으로 출간되어 노르웨이에서 기이한 성공을 거두었다. 총인구 500만 명의 노르웨이에서 50만 부 이상이 팔렸다. 모든 것이 이례적이었다. ‘크나우스고르 현상이 일어났다그의 모든 것을 담은 이 소설을 전 세계가 읽고 이야기했다. 2009년 노르웨이 최고 문학상 브라게상을 받은 뒤 <나의 투쟁>은 독일, 영국, 프랑스, 그리스 등 유럽 전역과 미국, 캐나다, 브라질 등 아메리카 대륙은 물론 중국, 일본 등 아시아에서도 속속 번역되었다. 각종 문학상을 휩쓸었고 그의 새로운 글쓰기에 대한 찬사가 잇따랐다. 2015년 월 스트리트 저널 매거진은 크나우스고르를 문학 이노베이터로 선정했다.

무슨 이야기라도 나올 법한 인상의 작가인데(동갑내기다!) '자화상 같은 소설'이 3600쪽을 넘긴다니 기대에 어굿나지 않는다(덕분에 <나의 투쟁>이란 제목의 저작권은 히틀러에서 크나우스고르에게로 넘어가지 않을까란 예상도 해보게 된다).

 

 

여하튼 전6권 가운데 1권이 곧 출간된다. 궁금한 마음에 영역본도 몇권 주문해놓은 상태다. 영어본은 각권별로 제목이 붙어 있는데, 1권이 <가족의 죽음>이고, 2권이 <사랑에 빠진 남자>다. 한국어판도 그런 제목이 부제에라도 들어가면 식별하기 편하겠다.

자신의 삶을 고통스러울 정도로 상세히 기억해내며 '아버지의 죽음'과 만나는 과정을 경이로울 정도로 집요하게 풀어낸 화제작. 진력날 정도로 디테일한 묘사가 지독하게 중독적인 독서체험을 선사한다. 무려 총 6권, 3,622쪽에 달하는 이 작품은 운명에 저항한 아킬레우스나 부조리함에 맞선 뫼르소 같은 주인공을 내세우지 않는다. 다만 평범한 '일상'을 아주 치밀하게 묘사함으로써 일상의 비일상성, 즉 일상이 가진 가치를 발견한다. 서양 문학의 변방에서 서양 문학의 중심을 '침공'한 작품, 바로 노르웨이 작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나의 투쟁>이다.

우리에게도 크나우스고르와 만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15.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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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으로 프리드리히 키틀러의 <기록시스템 1800. 1900>(문학동네, 2015)을 고른다. 1943년생인 저자가 1982년 독일문학사 전공 교수자격취득 논문으로 제출한 것인데, 문학사를 정보시스템의 변천이라는 관점에서 재구성하여 제출 당시 파란을 일으켰다는 책이다. 이후에도 도발적인 발상과 새로운 시각으로 학계에 충격을 던졌지만 아쉽게도 2011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대체 어떤 책을 쓴 것인가.

 

정보시스템의 변천이라는 관점에서 재구성한 미디어로서의 (독일)문학사. 미디어학자이자 이단적 문학자 프리드리히 키틀러의 문학-미디어 연구의 새로운 창을 열어젖힌 혁명적 저작이다. 방대한 문헌을 가로지르는 눈부신 사유와 문장들 덕분에, 관련 미디어 연구가들과 번역가들이 숱하게 번역상의 난해함을 지적해왔던 고전 중의 고전이다. 저자는 문학의 역사를 정보시스템의 변천이라는 관점에서 재구성한다. 발표 당시 문학 연구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교체를 이뤄냈다는 찬사를 받은 한편, 동시대 문학자들에게 격렬한 반발을 사며 학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또 우리에게는 기술결정론적 테제로 두루뭉술하게 알려져 있던 유럽 최고의 미디어학자이자 이단적 문학자의 사상적 출발점을 원전 번역으로 만나볼 수 있는 첫 기회이기도 하다.

입소문으로만 돌던 키틀러의 책은 <광학적 미디어: 1999년 베를린 강의>(현실문화, 2011)가 먼저 소개되었고, 같은 역자에 의해 이제 <기록시스템>도 번역되었다. 2016년은 키틀러 독서의 원년으로 삼아도 좋겠다(나의 새해맞이 계획이 그렇다).

 

 

키틀러의 영향력은 영어로 번역된 책들과 그에 관한 연구서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주요 저작 몇 권은 더 번역되면 좋겠다...

 

15.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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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 읽는 책이 따로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분위기에 편승해서 들여다보는 책은 있겠다. 가령은 요즘은 '영화소설'로 분류되는 루 월리스의 <벤허>(시공사, 2015) 같은 작품. 워낙에  유명한 영화 <벤허>의 원작소설로 국내 최초 완역본이라고(게다가 김석희 선생의 번역이다). 찾아 보니 (아동용을 제외하고도) 한 차례 번역본이 나온 적은 있었다(분량이 절반밖에 되지 않는 걸로 보아 완역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요즘은 성탄특선 영화로 어떤 작품들이 방송되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벤허>나 <십계>, <쿠오바디스> 같은 영화가 단골이지 않았던가 기억된다. 윌리엄 와일러의 <벤허>도 영화관에서 본 기억은 없고(<쿠오바디스>는 영화관에서 봤다) 언젠가 TV에서만 봤다. 대형화면으로 다시 봐도 좋겠다 싶다. 원작 <벤허>는 이렇게 소개된다.

출간 후 50년간 베스트셀러 1위, 브로드웨이 무대 20년 장기공연, 교황의 축성을 받은 최초의 소설… 전례 없는 수식어를 보유한 작품의 주인공은 바로 영화 <벤허>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루 월리스의 장편소설 <벤허 : 그리스도 이야기>이다. 우리에겐 1959년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영화로 익숙하지만, 그보다 80여 년 전 출간된 소설 <벤허>(1880)는 영화의 명성을 능가하는, 미국 소설사에서 획기적인 작품이었다. 미국 최초의 밀리언셀러 소설인 <톰 아저씨의 오두막>(1852)을 뛰어넘어 50년간 부동의 1위를 차지한 초대형 베스트셀러라는 전무후무한 기록과 함께 19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교황인 레오 13세에게 축성을 받은 최초의 소설로 이름을 올린 <벤허>는 출간된 지 100년이 훌쩍 지난 오늘날까지도 <성경>과 함께 미국인들이 가장 가까이 두고 읽는 책으로 남아 있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도 그렇지만 문학사적 걸작이라기보다는 문화사적 걸작으로서 의미를 갖는 작품이겠다.

 

 

<벤허>와 함께 책상 가까이 놓은 책은 조르조 아감벤의 <빌라도와 예수>(꾸리에, 2015)다. 봄에 나온 책이지만, 바로 엊그제 다른 책을 찾다가 책장에서 '발견'했다. 영어판도 그 며칠 전에 찾아놓은 터여서 자연스레 성탄절 독서거리가 되었다.

 

당장 읽을 책은 아니어도 크리스마스를 맞아 구입한 책도 몇 권 있는데, <아시모프의 바이블>(들녘, 2002)이 그 중 하나다. 13년전에 나왔을 때는 엄두도 내지 못할 가격대의 책이었고, 지금도 만만찮지만 구약편이 절판된 상태이길래 신약편이라도 부랴부랴 구입해두었다. 짐작엔 새로 개정판이 나올 것도 같지만.

 

 

덧붙여 올해 나온 '예수책'으로는 가장 최근에 나온 바트 어만의 <예수는 어떻게 신이 되었나>(갈라파고스, 2015), 국내서로 김형석 교수의 <예수>(이와우, 2015), 그리고 '플라톤 아카네미 인생교과서 시리즈'의 첫 권으로 나왔던 차정식, 김기석의 <예수>(21세기북스, 2015) 등도 성탄절 독서감으로 꼽아볼 수 있겠다.

 

성탄절 아침에 서재에서 할 수 있는 말은 정해져 있다. 독서와 함께 메리 크리스마스!~

 

15.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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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철학자이자 젠더 이론가 주디스 버틀러의 신작이 출간되었다. 2004년작 <젠더 허물기>(문학과지성사, 2015). 제목에서부터 대표작 <젠더 트러블>(문학동네, 2008)을 떠올리게 하는데, 실상 그 후속작이다.

 

전작 <젠더 트러블>로 철학과 페미니즘 학계에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킨 저자 주디스 버틀러가 퀴어, 여성, 유대인, 철학자로 스스로를 전면화하고 개인의 역사를 드러내며 써 내려간 저작. 1999년에서 2004년 사이에 쓴 글을 모아 엮었다. 페미니즘 이론의 고전이 된 <젠더 트러블>에서 선보인 수행성 개념 등 초기 이론을 이어받아 윤리적 폭력 비판, 사회 소수자들의 공동체, 정체성과 보편성 문제 등 정치윤리적 사유로 나아가는 후기 이론의 출발점이 되었다.

 

버틀러는 이론도 문장도 난해하기 때문에 적절한 가이드북의 도움이 필요한데, 국내에서는 몇몇 여성학자들이 그런 역을 맡고 있다. 두 책의 역자 조현준의 <젠더는 패러디다>(현암사, 2014)와 임옥희의 <주디스 버틀러 읽기>(여이연, 2006)가 그런 가이드북에 해당한다. 루틀리지의 크리티컬 씽커즈 시리즈 가운데 사라 살리의 <주디스 버틀러의 철학과 우울>(앨피, 2007)도 같은 용도의 책이다. 버틀러를 읽는 '트러블'을 얼마간 줄여줄지 모른다...  

 

15.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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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 지오그래픽' 시리즈의 하나로 짐 더처와 제이미 더처 부부의 <늑대의 숨겨진 삶>(글항아리, 2015)이 출간됐다. <마지막 사자들>과 <호랑이여 영원하라>도 같이 나왔는데, 일단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건 늑대다. 생생한 사진이 강점인 일종의 화보집이다(관련 동영상은 https://www.youtube.com/watch?v=d36MK94POaI 참조).

 

깊고 매서운 눈, 무채색의 털빛을 가진 야생의 포식자. 늑대는 예부터 지금까지 우리에게 흉악스럽고 무서운 존재로만 인식되어왔다. 하지만 늑대를 왜 그렇게 정의해왔는지, 진정 그들의 모습이 그러한지 진지하게 생각해본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저자 짐과 제이미 더처는 19세기 이후 계속 박해만 받아왔던 늑대를 위해 20년 넘게 그들의 삶을 추적했다. 어떤 사실로도 확인된 적 없었던 늑대의 삶에 직접 뛰어들어, 끊임없는 학대와 잘못된 편견 속에 숨어 살았던 늑대들의 진정한 모습을 책에 담아냈다.

 

이채로운 건 영화배우 로버트 레드포드가 서문을 쓰고 있다는 점. 저자들과 오랜 교분을 갖고 있고, 더 나아가 '리빙 위드 울브즈'의 명예회원이라 한다.

 

 

늑대 관련서로 뭐가 있을까 찾아봤는데, 역시나 대표적인 건 마크 롤랜즈의 <철학자와 늑대>(추수밭, 2012)다. 그밖에 1963년에 나온 팔리 모왓의 <울지 않는 늑대>(돌베개, 2003)는 나온 책으로 늑대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은 책이라 한다. 국내서로는 과학 칼럼니스트 강석기의 <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MId, 2014)가 눈에 띈다...

 

15.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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