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주제를 다룬 책 두 권을 같이 묶는다. 마틴 데일리와 마고 윌슨의 <살인>(어마마마, 2015)과 콜린 윌슨의 <인류의 범죄사>(알마, 2015)다. <살인>의 공저자는 부부 사이이며 마고 윌슨은 2009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살인>이 이 부부의 대표작인데, 그밖에도 여러 권의 책을 같이 썼다. '다윈의 대답' 시리즈의 <신데렐라의 진실>(이음, 2011)이 그 가운데 하나다.

 

 

<살인>(1988)의 부제 겸 소개는 '살인에 한 최초의 진화심리학적 접근'인데, 사실 '인간은 왜 다른 인간을 죽이는가?'란 질문에서 진화심리학이 탄생했음을 고려하면 살인은 진화심리학의 '대표 주제'라 할 만하다. 고로 진화심리학의 기본서로도 읽어볼 수 있다.

진화심리학 분야의 명저. 부부이기도 한 공동저자 마틴 데일리와 마고 윌슨은 원시 부족의 문서에서부터 디트로이트 경찰국 살인사건 기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살인 사건 기록을 활용하여 언제 그리고 왜 개인의 이익이 충돌하는지를 과학적인 데이터로 면밀하게 분석하고,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과정의 산물로서 살인 안에 내재된 보편적이고도 사회적인 인간의 동기를 진화적 관점으로 명쾌하게 밝혀낸다.

진화심리학 전공자인 전중환 교수의 추천사도 참고할 수 있다.

이 책은 전통적인 사회학, 인류학, 심리학, 범죄학, 법학, 정책학, 경제학 등을 다윈의 이론틀로 매끄럽게 엮는다. 새로운 통합 과학의 고전이자 이정표다. 스티븐 핑커도 폭력이 계속 감소해 왔음을 이 책에서 알게 되어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저술했다. 호머의 서사시, 영웅 신화, 슈퍼히어로 물, 범죄 스릴러, 공포 영화, 액션 게임, 치정 멜로,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을 즐긴다면 이 책을 꼭 읽어야 한다.

 

같은 주제를 다룬 책으로는 저명한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의 <이웃집 살인마>(사이언스북스, 2006)가 있고, 국내 연구자들이 쓴 책으로는 <살인의 진화심리학>(서울대출판부, 2003)가 꽤 일찌감치 나왔었다(지금은 절판됐다).

 

 

콜린 윌슨의 <인류의 범죄사>는 예전에 <잔혹>(하서)이라는 제목으로 몇 번 나왔던 책이다. 1984년에 초판이 나온 책으로 새 번역본은 2005년판을 옮긴 것이다. 개정된 내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2002년판 서문이 새로 붙어 있긴 하다. 더불어 <잔혹>이란 제목이 원제대로 바뀐 것은 환영할 만하다. 인류의 범죄사를 통해서 저자는 무엇을 발견했을까.

인류의 시작부터 현대까지 방대한 범죄의 역사. 이 책에서 저자는 심리학, 인류학, 고고학, 사회학, 철학, 문학, 뇌과학을 넘나들며, 초기 인류부터 현대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범죄사의 현장을 샅샅이 훑으면서 범죄의 기원과 본질, 인간성의 근원을 탐구해나간다. 인류는 생존과 자기보호를 위해 진화 과정에서 언어와 이성을 관장하는 좌뇌를 발달시켰다. 이러한 좌뇌 의식은 인간을 목적 달성에 집착하게 만들고. 집착은 맹목과 편협함, 잔인함과 어리석음(범죄성)을 낳았다. 하지만 집착은 동시에 과학과 철학과 예술(창의성)도 낳는다. 그렇기에 문명의 역사는 창조의 이야기이자 범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도서관 독학자로서 콜린 윌슨의 가장 유명한 대표작은 <아웃사이더>이지만 살인에 관한 잡학적 책들의 저자로 기억하는 독자들도 있을 법하다(윌슨은 소설가이기도 한데, 그의 작품으론 <정신기생체>(현대문학, 2012)만 번역돼 있는 듯싶다). 일찍부터 그런 책들이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아웃사이더> 같은 책을 더 기대한 나 같은 독자로선 아쉬운 일이지만, 요즘 세대 독자라면 <인류의 범죄사> 같은 책을 더 반길 듯싶다. 여하튼 양장본으로 나온 이번 책이 그의 책 가운데서 가장 번듯하다... 

 

15. 11.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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