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구입한 책은 황석영의 <심청, 연꽃의 길>(문학동네)이다. 초판은 <심청>이란 제목으로 두 권짜리로 나왔는데 분량을 조금 줄이고 합본한 다음 원래의 제목을 붙였기에 개정판이 정본에 해당한다. 기억에는 일간지 연재시에 조금 읽었던 작품. <바리데기>를 강의에서 읽고 다소 실망해서 <심청>으로까지 독서가 이어지지는 않았다.

다시금 관심을 갖게 된 건 헨리 제임스를 ‘국제문학‘ 범주로 다루면서 한국문학에서 그 사례로 떠올라서다. 동아시아 삼국의 근대를 건드리고 있다는 점도 이 소설의 의의(그렇지만 작가의 말대로 정면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개정판 후기에서도 작가가 밝히고 있지만 원래는 ‘철도원 삼대‘를 다룬 작품 대신 끼워넣기 된 소설이다. 그런 점에서도 황석영 문학의 정점에 해당하는 소설이 나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검색하다 알게 된 사실인데 지난달에 <해질 무렵> 불어판으로 프랑스의 에밀 기메 아시아문학상 수상한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작가는 현재 두문불출 철도원 삼대에 관한 소설을 집필중이라고 했다. 다소 유예되긴 했지만 비로소 식민지 시대 염상섭의 <삼대>에 견줄 만한 소설이 나올지 기대된다. <강남몽>처럼 옆길로 빠지는 소설이 아닌 한국의 근대(화)와 정면대결하는 소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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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만에 나온 김중식의 두번째 시집 <울지도 못했다>를 5분만에 읽었다(그렇게 읽다가 걸리는 시를 꼼꼼히 읽는다). 그러고는 떠올린 게 ‘웃지도 못했다‘란 제목. 첫 시집 <황금빛 모서리>에서 분명 맘에 들어한 시들이 몇편 있었는데 그 ‘김중식‘을 알아보지 못하겠다. 내가 잘못 봤던 것인지. 차라리 처음 기억만을 남겨두는 게 나았을지도.

먼 곳에도 다른 세상 없는데
새 대가리 일념으로 태평양을 종단하는 도요새
산다는 건 마지막이므로
살자,
살아보자,
다시 태어나지 않으리니.
-‘도요새에 관한 명상‘에서

내가 아는 건
가을 숲 불꽃놀이가 끝나더라도
우리가 할 일은 봄에 꽃을 피우는 것
가장 깊은 상처의 도약
가장 뜨거웠던 입의 밎춤
할례당한 사막 고원에 핀 양귀비처럼

언제 파도가 왔다 갔는지
사막에서 바다냄새가 난다
이루지 못할 약속을 할 때
우리는 다가가면서 멀어질지라도
봄에 할 일은
꽃을 피우는 것
-‘물결무늬 사막‘에서

기억의 착오가 아니라면 김중식은 이런 류보다 더 매력적인 시를, 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젊은 시인이었다. 이제는 젊지 않은 나이에 두번째 시집을 들고서 나타났지만 아쉽게도 내가 기대한 모습은 아니다. 시인의 말로는 ˝첫 시집이 고난받는 삶의 형식이있다면, 이번 시집은 인간의 위엄을 기록하는 영혼의 형식이다.˝ 그의 언어는 위엄보다 고난을 기록할 때 더 빛나는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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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사람 시인선‘의 세번째 시집으로 나온 송진권의 <거긴 그런 사람이 살았다고>를 펼쳤다가 ‘송홧가루 묻은 풍경‘에서 눈길이 멎었다. ‘화투시‘의 한 장면이다.

청단 홍단을 깨고
비약 풍약을 깨며
파투 난 화투 파투 난 인생을
착착 다시 손에 접어 치며
패를 돌리는 십 원짜리 민화투
다음 판엔 초단이라도 하겠다며
늙은이들 웃음소리도 송홧가루 묻어
뻐꾸기 울음소리에 뭉쳐들지요

시인선의 다른 시인들과 마찬가지로 송진권 시인도 내게는 낯선 이름이다. 하기야 새로 시집을 낸 젊은 시인들 대다수가 내게는 그렇다(짐작에 우리는 최다 시인 보유국이다). 이 대목에 눈길이 멎은 건 오래 전에 가방에 넣고 다녔던 시가 생각나서다. ˝숙아, 인생은 그날이 꽃과 같아˝라는 구절은 포함한 시인데, 제목도 시인도 기억날 듯하면서 기억나지 않는다(문지시인선의 목록을 보면 떠올릴지도). 벌써 20년도 훨씬 전의 일이다.

그렇게 시들은 복사해서 가방에 넣고 다니고 때로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던 것 같다. 그게 나였던가, 적잖이 놀란다. 과거는 낯선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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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7-18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들을 복사해서 가방에 넣고 다니는
국문학과 다니는 오빠
아니고 노문학과 다니는 오빠야~셨구요.
미대 다니는 오빠와 문학과 다니는 오빠중에
누가 더 인기가 많을까요?ㅋ

로쟈 2018-07-18 23:45   좋아요 0 | URL
미대 다니는 오빠는 제가 모르는 사정이라..

모맘 2018-07-19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숙아, 는 찾으셨는지요?
궁금한 시네요

모맘 2018-07-19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한 선배의 시들을 타이핑했던 기억이 나네요 선배의 친구가 감수를 했다고 복사집 표지에 적어둔것도 아! 하고 떠오릅니다 한 부를 갖고있었는데 찾아봐야겠네요ㅋ

로쟈 2018-07-19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성호의 ‘고향집, 폐허‘라는 시예요.~

모맘 2018-07-19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모맘 2018-07-20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8 7월 함성호의 시집을 검색하다가
로자쌤이 서른여덟에 올린 1998스물들에게 쓴 서른의 글을
읽었어요(복잡하지만 아시죠?)ㅎㅎ 로자쌤의 글속에는 그보다 10년전인 1987년도도 있고요 대한민국 땅 이곳저곳에서
살아야할 이유를 찾고 있었던 스물들을 떠올려봤습니다 참 따뜻한(?) 글이었습니다 1987
1998 2018 뭔가 있어보이네요ㅋ

로쟈 2018-07-20 17:57   좋아요 0 | URL
네 조교할때 쓴게 벌써 20년전이네요.^^
 

서머싯 몸의 회상록 <서밍업>(위즈덤하우스)이 정말 오랜만에 나왔다. 아니 완역본으로는 최초라 한다. 그간에 정본 번역본이 없었으므로 현재로선 유일 완역본이자 정본 번역본이다.

˝<인간의 굴레>, <달과 6펜스>의 작가 윌리엄 서머싯 몸의 대표 에세이. 70~8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고급 영어를 공부하는 청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원서로 읽었을 정도로 <서밍업>은 가장 표준형의 영어와 명료한 문장을 구사하는 서머싯 몸의 스타일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서머싯 몸이 64세에 쓴 문학적 회상록으로 1890년~1938년까지의 생애와 자신의 철학을 이야기한다. 그의 어린 시절, 초기에 희곡으로 성공을 거둔 시절, 소설로의 전환기, 그리고 여행과 철학 같은 여러 가지 주제들을 망라하고 있다.˝

책소개에도 있지만 영어공부용으로 많이 읽힌 책으로 내가 본 것도 다이제스트 대역판이었다. 고등학생 때였나 보다. 당시에는 ‘서머싯 몸‘이 아니라 ‘서머셋 모옴‘으로 표기되었는데 ‘몸‘으로 변경된 것은 아무래도 마땅찮다. ‘몸‘이 갖는 중의성 때문에 고유명사 표기로는 불편하다. 게다가 원발음과도 상관없다(‘Maugham‘의 발음은 ‘머흠‘이라고 들린다). 고쳐서 더 나쁜 결과가 나오는 걸 개악이라고 하던가.

책제목에 굳이 영어의 띄어쓰기를 반영해서 ‘서밍업‘ 대신에 ‘서밍 업‘이라고 한 것도 특이하다. 그런 식이면 ‘굿모닝‘은 ‘굿 모닝‘이라고 적어야 한다. 한글과 영어의 표기방식상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듯싶다.

덧붙여 말하자면, 세계문학전집판으로 나온 <인간의 굴레> 제목이 <인간의 굴레에서>(민음사)인 것도 못마땅하다. 통용되는 제목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 이상 관례를 따르는 게 낫다고 본다. 여담이지만 제목이 불편해서 몸 작품 강의에서 <인간의 굴레에서>만 빼놓기도 했었다. <인간의 굴레>도 새 번역본이 나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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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사람 2018-07-17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밍업 번역은 70년대에도 있었읍니다. 또 영한 대역본도 있었읍니다. 모옴의 책중 단편 몇개만 빼고 전부 읽어 본 사람으로 이야기합니다.(일부는 영어로 일부는 한글로)
완역본으로는 최초라는 건 출판사의 자기 과시로 보입니다. 이미 70년대에 모옴 전집이 출간되어 있었읍니다. (배게만한 두께에 5권짜리 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물론 말은 전집이지만 빠진 작품도 있었을 겁니다.) 너무 오래된 이야기라 기억이 가물 가물 합니다만...
인간의 굴레는 1953년부터 1975년까지 고려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던 조용만의 번역이 있었읍니다. 60년대에 출판된 것으로 생각합니다.요즘 출판사들은 출판의 역사를 자기 입맛대로 다시 쓰는 곳이 많은 듯 합니다.

로쟈 2018-07-17 09:27   좋아요 0 | URL
네 번역본이 있었던 건 저도 기억하는데 완역본이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네요. 출판사도 요즘은 시중에 없으면 초역이라고들 하지요.
 

<김소월 평전>(새문사, 2013)이라는 제목 때문에 김학동 교수의 책을 지난달에 구입했다. 유감스럽게도 평전이라기보다는 연구서이고 평전을 대신하여 ‘소월의 전기와 서지적 국면의 문제‘라는 장이 들어 있을 뿐이다. 이에 따르면 소월의 단행본 전기는 60년대에 나온 두 종이 전부다. 연구자들의 짧은 글들이 더러 나왔지만 본격적인 전기에는 미치지 못한다.

한국 근대시사에서 이상과 함께 가장 많이 연구된 ‘국민시인‘이라지만 제대로 된 평전 하나 없는 게 미스터리한 현실이다(이상이나 윤동주의 경우와 비교된다). 한권의 시집 <진달래꽃>(1925)을 펴냈을 뿐이고 32년의 짧은 생애를 살았으니 연보가 복잡하진 않다. 하지만 전기라면 좀더 자세한 사실과 정보를 제공해주어야 한다. 가령 소월이 읽은 책들에 대한 정보 같은(구체적으로 투르게네프나 예이츠에 대한 소월의 독서 경험을 나는 알고 싶다). 그런 걸 기대하고 구입한 평전이지만 기대와는 달라 아쉽다. 소월 연구의 공백만 확인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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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enkranz 2018-07-15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소월의 전기는 잘못 알려진 게 많다고 해요. 당대 소월시의 평문을 썼던 박종화 시인의 두 번째에세이집을 보면 소월에 대한 회고가 나와있어요.

로쟈 2018-07-15 21:01   좋아요 1 | URL
네 그래서 제대로 된 평전이 필요한데 이처럼 책이 없는 건 허탈한 일입니다.

rosenkranz 2018-07-15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월의 숙모가 쓰신 책은 보셨나요?

로쟈 2018-07-15 21:36   좋아요 0 | URL
두 권의 전기 가운데 하나라는데, 60년대에 나온 거라 지금 시중에는 없지요.^^;

rosenkranz 2018-07-15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름을 바꿔 재간행된 것이 있었던 듯 해요.

2018-07-15 2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15 2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15 2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15 2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