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 강의를 주업으로 하다 보니 고전 작가들이 가까운 친구처럼 여겨지고(그들의 생각과 사생활에 대해서만큼 알고 있는 사람이 현실에서 몇이나 될까) 그들에 관한 모든 책을 반길 수밖에 없다. 이번에 나온 몇 권의 책이 그에 해당한다. 먼저, 프랑스의 저명한 비평가 알베르 티보데의 <귀스타브 플로베르>(플로베르)가 예고 없이(?) 출간되었다. 책을 낸 출판사 이름이 '플로베르'여서 앞서 낸 책들만 보고 왜 플로베르인가 했는데, 비로소 이름값을 했다.   



플로베르 평전이나 연구서는 희소한 편으로 평전으로는 허버트 로트먼의 <플로베르>(책세상)가 있었지만 절판된 지 꽤 되었다. 게다가 이후에 더 나은 평전들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기에 '업뎃'이 필요한 책이다. 그리고 연구서로는 김화영 교수의 <발자크와 플로베르>(고려대출판부) 정도가 현재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닌가 한다. 두 작가에 대한 논문모음집으로 <마담 보바리>와 <감정교육>에 대해서는 좋은 참고가 되지만 플로베르의 작품 세계 전반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티보데의 책은 그런 가운데 나온 것이라고 20세기 전반기의 책임에도 불구하고 환영하게 된다. 바로 주문을 넣을 밖에.



플로베르와 동년생으로 강의에서 자주 비교하게 되는 도스토옙스키의 경우에도 유익한 참고문헌이 추가되었다. '케임브리지 컴패니언' 시리즈의 <도스토옙스키>(우물이있는집). 전공학자들의 논문모음집인데, '케임브리지 컴패니언' 번역이 난감해서인지 '케임브리지 대학 추천 도서'라고 표지에 박아놓았다. 그렇더라도 평균 인상의 관심과 배경지식을 갖고 있는 독자들이 흥미롭게 읽어볼 만한 수준의 책이다. 역자 조주관 교수의 <지하로부터의 수기>론으로 <도스토옙스키의 메타지식>(우물이있는집)과 연결되는 책인데, 도스토옙스키 총서로 계속 이어질지 기대해봐야겠다. 도스토옙스키 관련서로는 안내 안나 도스토옙스카야의 회고록 <도스토옙스키와 함께한 나날들>(엑스북스)이 최근에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 



그리고 영국 작가 데이비드 로렌스의 <미국 고전문학 연구>(아카넷)가 학술명저번역총서로 출간되었다. 지난봄에 <D. H. 로렌스의 미국 고전문학 강의>(자음과모음)라고 나왔던 책과 같은 번역본이다. 갑작스레 두 종의 번역본이 생긴 셈. 안 그래도 미국문학 강의를 하면서 일부 참고하기도 했는데, 두 종이 나온 김에 비교해가며 읽어봐도 되겠다. 아쉬운 것은 로렌스에 관한 마땅한 평전이 아직 없다는 것. 강의 때는 김정매 교수의 <로렌스와 여인들>(태학사)를 참고한 기억이 있다. 방대한 분량의 영어본 전기도 갖고 있지만 아무래도 편하게 참고하기는 어렵다. 적당한 분야의 권위 있는 전기가 번역돼 나오면 좋겠다. 그렇게 제대로 된 평전도 소개되지 않은 작가가 얼마나 많은지 생각하면 조금 암담한 느낌도 든다(심지어 한국 작가들의 경우에도 공백이 많다). 독서뿐 아니라 연구에 있어서도 '한국어'의 핸디캡은 정녕 극복하기 어려운 것인가...


18.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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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 때문인지 주말이면 잠을 보충하던 습관 때문인지 아침을 먹고는 다시 수면을 청하고 오후가 되어서야 정신을 차렸다(오늘 벌어진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3차전은 최장경기시간 기록을 세웠군). 내주부터는 다시 일상으로(강의가 일상이다) 돌아가야 하기에 강의자료도 만들어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한다. 가을학기의 후반전을 앞두고 있다고 할까.

자주 다니던 동네 카페에서 익숙한 맛의 커피를 마시며 정신을 가다듬다가 어제 적은 ‘김윤식과 그의 시대‘의 연장선상에서 선생의 문학기행과 예술기행을 떠올렸다. 이 분야의 책들로는 독특하지 않았던가 싶다. 주로 해외 한국학학술대회 참석차 떠났다가 미술관에 들러 만났던 그림들과 작가들의 발자취 이야기를 담았다. <문학과 미술 사이>가 내가 제일 먼저 읽은 책이고 가장 좋아한 책은 <낯선 신을 찾아서>였다. 지금은 모두 절판된 상태. 거기에 더하여 <환각을 찾아서>와 <샹그리라를 찾아서> 등의 책들이 이 계열에 속한다(<김윤식 문학기행>이라는 다소 멋없는 제목의 책도 있긴 하다).

공통적인 것은 ‘찾아서‘라는 말이 담고 있는 갈구와 방황의 정신이다. 훼손된 세계에서 진정한 가치를 찾아가는 문제적 주인공의 여정이 바로 소설의 형식이라고 루카치가 말했던가. 루카치의 세례를 받은 김윤식 비평 역시 근대와 함께 근대 극복을 동시에 지향한 운동의 궤적을 보여준다. 그것은 방황의 여정이지만 <파우스트>에서 괴테가 정식화한 대로 우리는 노력하는 한 방황하기 마련이고 따라서 방황하는 자는 구원에 이를 수 있다. 이것이 괴테(독일문학)의 계산법이다.

독일문학기행은 내게 그러한 독일문학의 유산을 현장에서 한번 더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내달에는 문학기행 뒤풀이도 계획하고 있는데 뒤풀이 강의까지는 이 문제도 더 정리해봐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안 그래도 괴테에 관한 책들을 아침에 빼놓았다. 여행을 정리하는 여행은 다시 책속의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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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10-27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모두 구해 놓고도 읽질 못했네요.
책속의 그 현장을 찾아가 볼수 없는 저에게
믿을만한 저자가 책을 남겨 주어서 감사할 따름~
빠져들게 만드는 필력까지 갖추고 있어서 더더욱.

로쟈 2018-10-27 21:15   좋아요 0 | URL
매우 드문 열정의 비평가였다고 생각해요.
 

엊저녁에 국문학자이자 문학평른가 김윤식 선생(1936-2018)의 부고를 접했다. 위중한 상태라는 소식은 들은 바 있어서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대학에 처음 입학하던 해 ‘한국근대문학의 이해‘라는 강의를 들은 이후 30년간 선생의 많은 책을 읽었고 많이 배웠다. 러시아문학뿐 아니라 세계문학에서 근대와 근대성이 무엇인가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지고 강의하고 있는 현재의 일상도 선생의 강의와 책에서 계발된 바 크다. 공저를 포함해 250권이 넘는 저작은 앞으로도 후학들에게 추월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질에 있어서도 <이광수와 그의 시대>를 필두로 한 선생의 한국근대문학사 탐구와 비평은 후학들이 뛰어넘어야 할 산맥이다.

올해 한국문학계는 황현산 선생(1946-2018), 허수경 시 인(1964-2018)에 이어서 소중한 경륜과 자산을 잃었다. 애석한 마음과 함께 감사를 표하고 싶다. 선생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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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2018-10-26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올려주시는 교수님께 감사드려요
문학의 깊이를 폭넓게 배우고 있고 자극도 됩니다
건강관리 잘하십시오~

로쟈 2018-10-26 23:3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평전이 출간돼 ‘묻지마 구입‘을 했다. 도가와 신스케의 <나쓰메 소세키 평전>(AK)으로 이와나미문고본이 원저이므로 가장 대중적인 소세키 평전이 아닐까 싶다. 욕심으로는 문고본보다 더 방대한 분량의 평전이면 좋았겠지만 가볍게 읽을 수 있는 평전도 나쁘지 않다. 게다가 희소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입문서로는 역자가 앞서 번역한 <강상중과 함께 읽는 나쓰메 소세키>(AK)도 참고할 수 있다. 역시 이와나미 시리즈로 나온 책이다. 그리고 아내인 교코의 <나쓰메 소세키, 추억>(현암사)도 당연히 추가할 수 있다.

저자 도가와 신스케는 근대일본문학전공 학자로 1936년생이니까 원로다. 대학의 명예교수이면서 현재 일본근대문학관의 고문으로 재직중이라고. 아득히 먼 기억처럼 여겨지지만 지난겨울 일본근대문학기행차 일본에 갔을 때 공사중이어서 일본근대문학관을 보지 못한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대신에 요코하마에 있는 근대문학관에 들렀었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다면 필히 확인하고 둘러봐야겠다. 소세키와 일본근대문학 기행의 한 필수코스로. 그때는 소세키 작품에 등장하는 가마쿠라 해변도 가볼 수 있겠다.

일본근대문학 강의를 몇 차례 진행했는데, 현대문학 쪽 강의를 겨울에 진행하고 내년에는 다시 근대문학 주요 작가나 유파에 대한 강의를 기획해봐야겠다. 언젠가는 소세키 전집 강의도 다시 진행하고. 아, 온통 강의와 여행으로 채워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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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스 워튼(1862-1937)의 뒤를 잇는 여성작가는 누구일까란 질문을 던졌는데, 그에 화답하는 듯한 책들이 나왔다.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1966)의 작가 진 리스(1890-1979)의 단편선 <진 리스>(현대문학)와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무명?) 주나 반스(1892-1982)의 대표작 <나이트우드>(1936)다.

생년은 진 리스가 앞서지만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는 물론이고 출세작 <한밤이여, 안녕>(1939)도 <나이트우드>보다 늦게 발표된 작품이어서 문학사의 자리는 주나 반스가 앞설 것 같다. 그럼에도 거의 동시대를 살았기에(둘다 90세의 수명을 누렸으니 장수한 편이다) 같이 묶어도 되겠다.

‘여성‘작가나 ‘여성‘문학이란 용어를 쓰는 것은 특히 진 리스의 경우 여성 문제에 대한 예민한 자각과 첨예한 인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반면에 <나이트우드>는 퀴어문학의 고전으로 지칭되는데 여성문학과 퀴어문학의 차이 혹은 페미니즘문학에서 퀴어문학의 자리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한다. 진 리스의 작품들을 강의에서 다루었고 강의한 내용을 정리해야 하는 시점에서 숙제를 더 떠안은 느낌이지만, 이런 부담은 언제나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한다. 그 비명이 앓는 소리와 분간은 잘 안 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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