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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는 충분히 많은 작품을 썼기 때문에 언제든 번역본이 나올 수 있다. 이건 문학독자로서 각오해야 하는 일이고 체념해야 하는 일이다. 이번에는 <사촌 퐁스>(을유문화사)다. 이름만 들어본 소설로 국내 초역이다. 츠바이크가 발자크의 최고작으로 꼽았다고. 발자크에 대한 강의를 언제쯤 또 하게 될지 모르지만 그땐 일정에 포함해봐야겠다.

제목 때문에 같이 떠올리게 되는 건 <사촌 베트>다. 기억에는 <종매 베트>라는 제목으로 입력돼 있는 소설. 한데 현재는 절판된 상태. 책을 다 구했는지 절반만 구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차피 절판된 상황에서 <퐁스>도 나온 김에 <베트>도 출간되어야 짝이 맞겠다. 이런 것도 또 짝이 안 맞으면 내내 괴로워하는 게 좀 한심한 문학독자들이다. 내가 거기에 속하지 않는다고는 장담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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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바디우의 <메타정치론>(이학사)은 뜻밖에도 제때 배송되었다. 다른 책들과 함께 식탁에 놔둔 상황인데 그보다 먼저 펼쳐본 것은 최근 다시 나온 오에 겐자부로의 <말의 정의>(뮤진트리)다. 2014년에 나온 초판도 갖고 있지만 개정판(개정된 게 있는 건지?)도 기꺼이 구입했다. 부제가 ‘오에 겐자부로의 비평적 에세이‘라고는 하나 그냥 산문집이다.

주로 짧은 글들인데 그 가운데 ‘쓰는 생활 습관‘을 펼치니 소설을 써나가기 위해 필요한 조언을 해달라는 요청에 답하고 있다. 오에가 추천한 책은 플래너리 오코너의 서간집이다. 오에가 추천할 무렵 일본에서는 마침 번역본이 나왔다는데 아직 한국어판은 없다(좀전에 주문한 참이다). 제목이 <존재하는 것의 습관>이고 분량은 600쪽이 넘는다. 오에는 오코너의 편지를 인용하는데 오코너 자신은 또 프랑스 철학자 자크 마리탱의 영향을 받았다고(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매일 소설을 쓰는 습관도 시간을 들인 경험으로 길러짐으로써 쓰는 사람의 인격 그 자체가 되고 살아갈 마음의 준비를 해준다, 그것이 신앙을 지탱해준다고 그녀는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오코너는 한 작가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적었다. ˝소설처럼 긴 글을 쓸 때는, 자신에게 또 다른 누군가에도 가장 중대한 문제 이외의 것을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10살 연상의 오코너에게 오에가 배우듯이 나는 오에에게 또 배운다. 종류는 다르지만 매일 쓰는 습관은 나도 갖고 있어서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그것은 존재하는 것의 습관이기도 하니까.

플래너리 오코너는 단편들이 유명한데 선집이 나와 있다. 장편 가운데서는 <현명한 피>가 대표작이다. 20세기 후반 미국문학을 다룰 때 언젠가 강의에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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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초기 낭만주의의 대표 시인 노발리스의 ‘밤의 찬가‘가 ‘철학 파편집‘과 묶여서 새 번역으로 나왔다. <밤의 찬가/ 철학 파편집>(읻다) 대표작 <푸른 꽃>을 강의에서 한번 다룬 적이 있지만 여전히 낯선 세계의 시인. ‘밤의 찬가‘는 범우사판에도 수록돼 있으며 <푸른 꽃>은 범우사판과 민음사판으로 읽을 수 있다.

˝독일 초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노발리스의 미번역 작품들이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다. 하나의 완성된 형태로 출간된 작품으로는 유일한 ‘밤의 찬가‘를 비롯하여 슐레겔 형제의 문예지 <아테네움>을 통해 발표되었던 철학적 파편집 ‘꽃가루‘ 그리고 노발리스의 정치적 견해를 엿볼 수 있는 ‘신앙과 사랑‘까지, 그의 생전에 출간되었던 세 작품은 물론이고 스물아홉에 맞이한 때 이른 죽음으로 출간되지 못하고 유고로 남은 철학적 파편들도 엄선하여 담았다.

우리에게는 전설에 나오는 꽃을 찾아 꿈속을 헤매는 미완성작 <푸른 꽃>의 저자로서만 알려진 노발리스. 이 책은 노발리스의 문학적·철학적 작품들을 총체적으로 수록함으로써 시인-철학자로서의 노발리스의 진면목을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푸른 꽃>만으로 전모를 알수 없었던 노발리스와 독일 낭만주의를 이해하는 데 요긴한 참조가 되겠다. 언젠가 독일문학사를 다시 훑을 때에는 노발리스도 경유지로 삼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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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마지막 일정으로 강의차 지방에 내려가는 중이다. 강의책과 함께 가방에 넣은 책은 지젝의 신간(Reading Marx)과 정한아의 시집 <울프 노트>(문학과지성사)다. 소설가 정한아와 동명이인.

첫시집으로 <어른스런 입맞춤>(문학동네)가 있고 이번이 두번째 시집. 간간이 시작 메모가 달려 있는 게 특징이고 대체적인 안정감이 장점이다. 안정감은 논리에서 나오는데, 아무 시나 들춰도 되지만 가령 마지막 시 ‘하느님은 죽어서 어디로 가나‘는 이렇게 시작한다.

죽은 자는 편리하다
모든 책임은 그에게 떠맡기면 되니까
울부짖을 목구멍도, 송사를 제기할 손가락도 없으니까
마음속에 품고만 있던 죄와 사랑은 이제 영원히
무저갱 속으로 침묵하고
침묵의 관은 넓고도 넓어
여차하면 삼라만상을 품을 수도 있으니까

‘죽은 자는 편리하다‘는 단언 이후에 그에 대한 해명이 따르는 것, 이런 게 이 시인의 시다. -하니까가 붙는 것이다. 내지 그런 게 붙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해명이 불필요하다고 보는 시인들도 있다. 그들은 뒤도 안 보고 질주한다. 반면에 정한아는 뒤돌아본다. 그렇다고 독자에게 철저하게 봉사하겠다는 건 아니다. 적당히 놀라게 하고 낯설게 하고 협박할 준비도 갖추었다. 그럼에도 문형 자체의 논리성은 견고하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은 ‘샬롬2‘에서도 마찬가지다.

웃지 않는 여자 거지 김태희가 나는 좋아
김태희는 만두가게 청년들이 붙여준 이름
밤새 축구 보고 감자탕집에서 나오다 만난 김태희는
역전 벤치에 양반다리로 앉아 해돋이를 보고 있었네
집이 없는 김태희
신들린 김태희
(...)

여기서도 ˝웃지 않는 여자 거지 김태희가 나는 좋아˝라고 쓰고 김태희가 누군지 친절하게 설명한다. ˝김태희는 만두가게 청년들이 붙여준 이름˝이라고 덧붙이는 것이다. 당연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막상 요즘 시들이 이런 방식으로 쓰이지 않는다. 그래서 정한아의 시가 논리적이고 편안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걸 해설에서 조재룡 교수는 ˝정한아의 시는 가식이 없다˝고 평한다. 가식적인 시들이 많기에 눈에 띈다고 읽힌다.

아직도 눈이 피로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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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맘 2018-05-11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바구니에 담기는 것이 시집이어서 좋습니다^^

로쟈 2018-05-11 12:24   좋아요 0 | URL
읽기 편하기도 하고요.~

2018-05-11 1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1 1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후 독일의 천재작가‘로 보통 소개되는 볼프강 보르헤르트(1921-1947)의 작품 전집이 나왔다. <그리고 아무도 어디로 기는지 모른다>(현대문학) 문학과지성사판으로 다시 나와 있는 <이별 없는 세대>를 민음사판으로 구한 게 30년 전은 될 것 같다(초판은 1975년에 나왔군). 제목 말고는 기억에 남아있는 게 없지만 한권짜리 전집이 나왔다고 하니까 뭔가 숙연해진다.

˝<그리고 아무도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에는 보르헤르트 생전에 출간된 시집 <가로등, 밤 그리고 별들>, 희곡 ‘문밖에서‘, 산문집 <민들레>와 작가 사후에 출간된 산문집 <이번 화요일에>, 유고 시와 유고 단편 등 약 30여 편의 시와 40여 편의 산문이 수록되었다. 많은 작가들과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희곡 ‘문밖에서‘, 단편 ‘이별 없는 세대‘를 포함해 보르헤르트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걸작 전집이다.˝

절판되었지만 연구서도 몇권 나와있는 걸로 보아 학계에서도 꾸준히 연구되는 듯싶다. 47그룹의 대표 작가인 하인리히 뵐은 보르헤르트를 이렇게 기렸다. ˝보르헤르트의 외침은 죽은 자들을 위한 것. 그의 분노는 역사의 쾌적함으로 자신들을 덮어씌운, 살아남은 자들을 향한 것이었다.˝

안 그래도 이번 여름에 20세기 독일 작가들을 강의에서 다룰 예정인데 47그룹을 포함하여 전후 세대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하니까 일독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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