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에 대한 참을성이 많은 편인데 엊그제부터는 자주 에어컨을 켰다 껐다 반복하고 있다. 선풍기를 켜고 가만히 있으면 나은데 거실이나(거실에는 에어컨이 없다) 집 바깥에 한번씩 나갔다가 들어올 때마다 무더위를 실감한다. 침대 위에 책을 잔뜩 펼쳐놓기만 하고 읽지는 못하는 형편.

그맇게 널브러진 책들 가운데 하나가 <숙향전/숙영낭자전>(문학동네)다. 최근에 나온 <박씨전/금방울전>의 머리말을 읽다가 역자 이상구 교수의 현대어역판을 대본으로 작년에 <숙향전> 불어판이 나온 걸 알게 되었다. 한국문학번역원 지원사업의 일환인지는 모르겠으나 앞으로 유럽어 가운데서는 이탈리아어, 스폐인어판도 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짐작에 그렇게 되면 <숙향전>은 <춘향전><홍길동전>과 함께 서구에 소개된 가장 대표적인 한국 고전소설이 된다.

그런 대표성을 갖는다지만 나는 정색하고 읽어본 적이 없어서 부랴부랴 아침에 책을 주문해서 받았다. 조선 후기에 가장 많이 애독된 애정소설이라 하니(그렇지만 작자미상에다가 집필시기도 17세기말로 추정할 뿐 확실치 않다) 그런 이유만으로도 읽어봄직하다. 하지만 당장은 다른 책들을 읽어야 한다. 아침에 찾은 불어판 이미지를 옮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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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 미만 구독 불가이고 구매도 성인 인증을 해야 가능한 사드의 <소돔 120일>이 전집판의 둘째 권으로 출간되었다. 1권은 <사제와 죽어가는 자의 대화>(워크룸프레스)로 2014년에 나왔으니 2권이 좀 늦었다. 전집에 대해서 잊고 있던 참. 이런 페이스라면 완간은 어제쯤이 될는지(몇 권짜리 규모인지도 확인해봐야겠다).

그럼에도 ‘대작‘이 곧장 출간돼 놀랍다. 물론 초역은 아니고 내가 기억하는 것으로도 두세 종의 번역본이 앞서 있었고 동서문화사판은 아직 절판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전집판인 만큼 이번 번역본이 정본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사드의 작품에 대해 ‘정본‘이란 표현이 어울리는지는 또 생각해볼 문제다).

꽤 오래 전에 사드의 <소돔 120일>에 대해서 강의도 할 뻔한 기억이 있다. 관련서들도 많이 나와있던 때였다(파졸리니의 영화 <소돔 120일>도 경악하며 보았던가). 지금은 분위기가 좀 달리진 듯한데 그래도 <미덕의 불운> 같은 경우는 언젠가 강의에서 다루고 싶다. <미덕의 불운>도 현재는 열린책들판밖에 남아있지 않은데 전집판으로는 언제쯤 나오려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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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 매컬로의 최대작 ‘마스터스 오브 로마‘가 드디어 완간되었다. 전체 7부 총21권 분량으로 이번에 마지막 7부가 출간된 것.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이야기이니 ‘카이사르‘ 이야기와 함께 가장 친숙한 이야기다. 애초에 6부로 마무리하려던 매컬로가 독자들의 요청에 따라 마지막 사력을 다해 쓴 파트다.

˝카이사르라는 영웅이 사라진 로마에서, 나약하지만 인간적인 안토니우스와 교활하지만 선의와 의지를 갖춘 옥타비아누스 두 사람이 십여 년에 걸쳐 패권 대결을 펼친다. 늙어가는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와의 동맹과 애정에 힘입어 가망 없는 싸움에 나서지만, 결국 승리는 젊음과 끈기를 지닌 자에게 돌아간다. 카이사르의 두 ‘아들‘ 옥타비아누스와 카이사리온의 만남이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에 이어 또하나의 비극적 죽음으로 끝난 뒤, 옥타비아누스는 마침내 ‘아우구스투스‘로서 사실상의 왕좌에 오른다.˝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의 대미로서도 의미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셰익스피어의 로마사극에 관심을 갖게 돼 그 준비로서도 의미가 있다(이탈리아 문학기행을 기획중이기도 하고). 로마사 관련서는 그간에 풍족하게 나왔기에 매컬로의 대작을 읽기에도 여건은 충분하다. 역사소설의 독자라면 여름나기의 거리로 고려해 볼만하다. 나처럼 셰익스피어의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를 읽으려는 독자는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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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작가 이언 매큐언의 새 번역본은 <솔라>(문학동네)다. 제목과 표지에 바로 눈길을 주게 되는 건 물론 폭염 때문이다. 게다가 ˝지구온난화 문제에 응답하는 이언 매큐언의 블랙유머˝라니! 발상과 문제의식 모두 무릎을 치게 한다. 원저는 2010년작.

˝매큐언은 오랫동안 기후변화를 소설로 다루고 싶었지만 각종 수치와 그래프로 가득한 까다로운 주제인데다 가치 판단의 문제가 결부되어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 2005년 환경단체 케이프 페어웰의 초청을 받아 여러 예술가, 과학자와 함께 지구온난화의 실체를 확인하러 북극해의 스발바르로 떠난 여행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그는 얼어붙은 피오르의 장엄한 풍경에 감탄하는 한편 나날이 심해져가는 공용 탈의실의 카오스에 충격받았다. 참가자들의 드높은 이상과 탈의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조차 질서를 유지하지 못하는 이들의 한심함의 괴리는 나약한 인간 본성의 완벽한 메타포였다. 마침내 그는 자기 삶도 추스르지 못하면서 온난화라는 대재앙으로부터 지구를 구하겠다는 야심에 사로잡힌 전무후무한 안티히어로를 탄생시켰다.˝

기후변화 문제를 소설이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가 될 것 같다. 줄리언 반스와 함께 동시대 영국 대표 작가로서 매큐언에 대해서는 내년쯤에 강의에서 다뤄보려고 한다. 소개된 작품이 많기 때문에 베스트5 이내로 추려야 하는데 일단 스펙트럼은 데뷔작 <첫사랑 마지막 의식>(1975)에서부터 <넛셀>(2016)까지 40여 년에 걸쳐 있다. 1948년생이니 올해 칠순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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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봄출판사에서 나오는 중국문학전집의 셋째 권이 나왔다. 펑지차이의 <전족>이다. 예고된 목록에는 없던 작품인데, 순서가 바뀐 모양. <전족> 덕분에 두번째 작품으로 거페이의 <봄바람을 기다리며>가 지난봄에 나왔다는 걸 뒤늦게 알고 구입했다(쑤퉁의 <참새 이야기>가 첫째 권이었다). 거페이는 <강남> 삼부작으로 2015년 제9회 마오둔상을 수상했고 <봄바람을 기다리며>는 2016년작이다.

마오둔상 수상작들에 주목하는 것은 중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이면서 내가 읽은 몇 작품이 모두 수상작에 걸맞는 수준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중국문학강의에서 모옌과 위화, 쑤퉁, 옌롄커, 비페이위 등을 다룬 바 있는데 1964년생인 거페이는 동년생인 비페이위와 함께 젊은 작가군에 속한다(당대 중국문학의 대표작가들은 1955년~1964년생 사이다). 비페이위의 <마사지사>에 견줄 만한 성취를 거페이도 보여줄 수 있을지 기대된다.

중국당대문학에 대한 강의를 언젠가 다시 진행한다면 더봄 중국문학전집이 기준이 될 것 같다. 목록이 무탈하게 계속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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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랑 2018-07-28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반가운 책이 출간된 걸 알았습니다. 지금 평지차이의 <백 사람의 십년>을 읽고 있는데 너무 좋습니다. 소설가인 걸 알고 그의 작품을 읽고 싶었는데 바로 구매해서 봐야겠어요. 항상 포스팅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로쟈 2018-07-28 10:40   좋아요 0 | URL
네 중국문학의 힘을 느끼게 해주는 작가들이 있습니다.

2018-07-29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과 소개해주신 책을 보며 더운여름 보내고 있습니다.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이애요. 대전에서도 강의하실 날 기다려 봅니다

로쟈 2018-07-29 14:01   좋아요 0 | URL
대전에선 이번주부터 강의가 있습니다. 11월에는 대전예당에서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