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주에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강의가 있어서 <초판본 프랑켄슈타인>에 잠시 눈길이 갔다. ‘초판본‘이라는 건 1818년판을 말하는데 가장 많이 읽히는 번역본 가운데 문학동네판도 1818년판을 옮긴 것이므로 초판이라는 건 ‘초판본 표지‘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표지야 구경만 하면 될 일이고).

참고로 열린책들판 <프랑켄슈타인>은 1831년 개정판의 번역이다. 저자 메리 셸리(1797-1851)가 생전에 수정해서 펴냈기에 한동안 정본으로 간주되었지만 현재는 미숙하더라도 1818년판의 문학사적 의의를 더 높이 평가하는 추세. 메리 셸리가 개정판은 낸 건 초판의 남편 퍼시 셸리(1792-1822)의 이름으로 나왔던 것도 감안되지 않았나 싶다. 작품의 저작권을 회복한다는 의미. 현재도 번역본들에는 남편 퍼시가 쓴 서문이 실려 있다.

번역상의 차이가 없다면 현재로서는 ‘초판본‘이라는 말에 현혹될 이유는 없다. 다만 <프랑켄슈타인>이 두 가지 판본이 있고 한국어판도 그에 따라 두 종으로 나뉜다는 것 정도를 상식으로 알아두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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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문학자이자 번역자, 문학평론가, 그리고 덧붙이자면 산문가 황현산 선생이 타계했다는 부고기사가 뜬다. 암이 재발해 투병중이라는 건 알려졌는데 최근에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었다고 들었다. 1990년에 세상을 떠난 김현 이후 한국문학은 중요한 문학평론가를 잃었다. 특히 시비평과 번역에서 고인은 탁월한 안목과 언어에 대한 감각, 그리고 깊은 성찰적 사유를 보여주었고 말년에는 <밤이 선생이다> 등의 산문집을 통해 젊은 세대로부터도 존경받았다. 이례적이고 희귀한 사례였다.

모든 저자는 육신의 삶을 마친 이후에 책과 함께 사후의 삶을 살아간다. 결코 욕심에 다 차는 건 아니지만(선생은 결국 보들레르 전집의 출간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래도 고인이 남긴 평론집과 산문집, 그리고 번역서가 적지 않다. 이 책들이 모두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까지 황현산이라는 이름은 좀더 오래 우리 곁에 남아있을 것이다. 선생의 엄정한 시선 속 인자한 미소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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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oo 2018-08-08 1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물들래 2018-08-08 16: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밤이 선생이다>를 읽고, 필사하고 싶었는데 마음을 흔들어댔던 문장부터 적어나가야겠네요.

hope&joy 2018-08-08 2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 분씩 떠나가시는게 너무 안타까워요.
명복을 빕니다.

미국사람 2018-08-09 0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황선생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았던 적은 없지만 황선생 동생과 동창이라 한마디 적읍니다.
대학시절 김인환교수가 황선생의 글을 보고 문학에의 뜻을 꺽고 비평에만 전념하기로 했다고 할 정도의 문청이었다 합니다. 아깝게도 선생의 남은 글이 책으로 나온게 몇개 없고 번역도 대부분 초현실주의 계통의 시뿐이어서 아쉽네요. (어린왕자 번역이 있긴합니다만) 좀 더 살아 계셨으면 좋은 글이 많이 남았을텐데.

누군가 선생의 흩어진 글을 모아 전집을 내었으면 하는데 어렵겠지요.

황선생님 극락왕생하시길 빕니다.

미국사람 2018-08-09 2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 2018.5.7 황선생 트위터입니다.

보들레르의 <악의꽃> 초간본(1857)이다. 이 책은 원래 저의 스승 강성욱 교수의 장서 가운데 하나였으나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 사모님이 제게 물러주셨다. 나는 적절한 시기에 학교 도서관에 기증하기로 맘먹었는데 이제 그 적절한 시기가 온 것 같다.

흘려들었는데 진담이 되었네요..

로쟈 2018-08-09 23:49   좋아요 0 | URL
네, <악의 꽃> 초간본 얘기는 저도 전에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보들레르 전집은 순차적으로 나올 예정인 것으로 아는데, 생전에 보셨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하루키의 인터뷰책으로 출간 전부터 화제가 된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문학동네)를 책상을 올려놓기만 하고 펼치진 않는다. 다른 할일이 많기 때문에 하루키에게 시간을 뺐기면 곤란하다(경험자들은 알겠지만 그는 아주 노련한 시간도둑이다). 인터뷰어는 가와카미 미에코라는 1976년생 여성작가이고 작가 데뷔 이전에 가수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특이 경력에 해당할까? 2008년 <젖과 알>로 아쿠타가와상 수상. 얼핏 보니 무라카미 류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다고 한다.

하루키에 대해선 강의도 여러 차례 했기에 크게 더 궁금한 게 있지 않다. 소소한 발견은 있을지 모르겠지만 충격적인 내용이 인터뷰에 나올 성싶지 않다. 대신에 나로선 처음 접하는 가와카미 미에코에게 눈길을 주게 되는데, 안 그래도 무라카미 류 이후의 일본문학에 대해서 겨울에 강의할 계획이어서 조금씩 그쪽으로 전력을 배치하던 참이다. 지난주에는 강의에서 다룰 요시모토 바나나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들을 주문했다. 다섯 명의 작가를 읽으려고 하는데 작가 목록을 20명으로 늘렸다면 가와카미 미에코도 포함할 수 있었겠다 싶다. 내가 정확하게 가늠하고 있는 건가(설마 10대 작가?).

가와카미의 작품으론 에세이 한권을 제외하면 <젖과 알>과 <헤븐>, 두권이 번역돼 있다. 2013년의 다나자키 준이치로상 수상작이라는 <사랑이 꿈이라든지>까지는 번역되면 좋겠다. 1985년 다니자키 준이치로상 수상작이 하루키의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였다. 가와카미가 그만한 성취와 발전가능성을 보여주는지 궁금하다. 사진을 검색하다 보니 2010년 일본에서 열린 동아시아 문학포럼에서 김연수 작가와 대담을 갖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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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 시인의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나>(문학과지성사)가 복간본 시집 시리즈로 다시 나왔다. 제목이 생소해서 확인해보니 초간본 열림원판을 구입하지 않았던 듯하다. 기억 속의 최승호 시인은(그 사이에 동명의 PD 이름으로 더 알려지게 되었군. 현 MBC 사장 역시 최승호다) <대설주의보>(민음사)와 <세속도시의 즐거움>(세계사)의 최승호다.

이번에 신작시집 <방부제가 썩는 나라>(문학과지성사)가 같이 나왔는데 문지시인선으로는 예전에 <고슴도치의 마을> 한권밖에 나온 게 없어서 놀랐다. 주로 민음사와 세계사에서 시집을 냈던 모양이다.

˝최승호는 1977년 등단 이래 셀 수 없이 많은 시들을 쏟아내며, 마치 온몸을 시에 부딪치는 듯한 강렬한 시적 상상력을 보였다. 사물을 느껴지는 그대로 포착해내는 직관력을 바탕으로 시인은 현대 문명의 화려한 껍데기 아래 썩어가는 사회의 단면을 들추어내면서 죽음을 향하는 육체로서의 인간을 노래하는 시들을 써왔다. 시집 <방부제가 썩는 나라>에는 총 105편의 시편이 실렸으며, 사회의 폐부를 찌르는 강한 비판 의식을 비롯해 특유의 위트 있는 시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느낌에 시들이 예전보다 짧아졌고 좀더 직설적이다. ‘방부제가 썩는 나라‘라는 제목부터 그런 면을 보여준다. 생태주의적 상상력으로 현대 도시문명과 현대인의 삶을 냉소하고 꼬집었던 게 그의 시가 아니었던가 싶다. 오래 전 기억으로만 말할 수밖에 없는데 출세작 <대설주의보>라도 다시 읽어보고 싶다. 사실 요즘 날씨에 ‘대설주의보‘ 만큼 절실하게 들리는 말도 드물 것 같군(원래는 ‘백색 계엄령‘이란 은유를 통해서 군부독재를 겨냥한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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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8-04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눈밭과 그속의 한사람~만 보면
발저 생각만 나네요.

로쟈 2018-08-05 01:22   좋아요 0 | URL
^^
 

김남주의 번역시집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푸른숲)가 다시 나왔기에 다시 구입했다. 다시 읽기 위해서. 제목처럼 아침저녁으로 다시 읽으면 좋겠다. 브레히트와 아라공, 마야콥스키, 그리고 하이네까지 네 시인의 시들을 골라서 옮긴 시집(혁명시인이라는 게 공통점이다). 주로 감옥에서 옮겼기에 ‘옥중 번역시집‘이라고 해야겠다.

김남주의 시집을 몇권 갖고 있었지만(그는 80년대 시인이었고 나는 80년대 독자였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번역시에 더 매료되었다. 그의 번역시의 성취에 대한 연구가 있는지 찾아봐야겠지만 충분히 그런 검토와 조명의 대상이 됨직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브레히트 번역시. 브레히트 시의 번역본은 여러 종이 나와 있는 만큼 김남주의 번역과 비교해볼 수 있겠다. 독어를 아는 분이 검토해주면 좋겠지만, 그냥 한국시로 읽을 때(번역문학도 한국문학이라는 견지에서) 어떤 차이를 발견할 수 있는지 나라도 확인해봐야겠다.

판권면을 보니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는 1995년에 초판 1쇄가 나왔고 내가 오늘 구입한 건 개정판 3쇄다. <은박지에 새긴 사랑>도 짝으로 마저 나오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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