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문학자이자 번역자, 문학평론가, 그리고 덧붙이자면 산문가 황현산 선생이 타계했다는 부고기사가 뜬다. 암이 재발해 투병중이라는 건 알려졌는데 최근에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었다고 들었다. 1990년에 세상을 떠난 김현 이후 한국문학은 중요한 문학평론가를 잃었다. 특히 시비평과 번역에서 고인은 탁월한 안목과 언어에 대한 감각, 그리고 깊은 성찰적 사유를 보여주었고 말년에는 <밤이 선생이다> 등의 산문집을 통해 젊은 세대로부터도 존경받았다. 이례적이고 희귀한 사례였다.
모든 저자는 육신의 삶을 마친 이후에 책과 함께 사후의 삶을 살아간다. 결코 욕심에 다 차는 건 아니지만(선생은 결국 보들레르 전집의 출간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래도 고인이 남긴 평론집과 산문집, 그리고 번역서가 적지 않다. 이 책들이 모두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까지 황현산이라는 이름은 좀더 오래 우리 곁에 남아있을 것이다. 선생의 엄정한 시선 속 인자한 미소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