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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히비스커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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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쪽

아마카는 십 대이고 말랐다는 점만 빼면 제 엄마의 판박이였다. 그 애는 이페오마 고모보다도 더 빠르고 결단력 있게 걷고 또 말했다. 눈만 달랐다. 아마카의 눈에는 이페오마 고모 같은 무조건적인 따스함이 없었다. 그것은호기심 어린 눈, 많은 질문을 하지만 많은 대답을 받아들이지는 않는 눈이었다.

124쪽

"오빠가 왜 이페디오라랑 사이가 안 좋았는 줄 알아요?"

"이페디오라가 오빠 면전에 대고 자기 생각을 말했기 때문이에요. 이페디오라는 진실을 말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죠. 하지만 오빠는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진실에 대해서는 꼭 싸우려 들잖아요. (………) 아버지가 조상님 방식을 따르기로 한 것에 대해 하느님이 벌할실 거라면 오빠가 아니라 하느님이 벌하시게 놔두란 말이에요."



165쪽

나는 한 번도 대학에 대해, 어느 학교에 가고 무엇을 전공할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때가 되면 아버지가 결정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171쪽

"은수카에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단다." 아마디 신부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는 가수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 목소리가 내 귀에 가져온 효과는, 어머니가 내 머리카락에 바른 페어스표 베이비오일이 두피에 가져오는 효과와 똑같았다. 저녁 식사 때 나는 그의 영어 섞인 이보어 문장들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내 귀가 말뜻이 아니라 말소리를 좇았기 때문이다. 그는 참마와 채소를 씹으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입에 든 음식을 삼키고 나서 물을 홀짝이기 전까지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페오마 고모의 집에 자기 집인 양 편안해했다. 어느 의자에 못이 튀어나왔는지 알았고 남의 옷에서 실밥을 떼어 줄 수 있었다. "그 못은 내가 저번에 박아 넣은 줄 알았는데." 그가 이렇게 말하더니 오비오라와는 축구얘기를, 아마카와는 정부가 얼마 전에 구속한 기자 얘기를, 이페오마 고모와는 가톨릭 여성 단체 얘기를, 치마와는 이웃집 비디오 게임 얘기를 했다. 사촌들은 어제만큼이나 재잘댔지만 아마디 신부가먼저 무슨 말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거기에 달려들듯 대답을 쏟아 냈다.



180쪽

"예쁘지 않니?" 이페오마 고모가 물었다.

"저것 좀 봐. 꼭 하느님이 붓으로 장난치신 것처럼 초록색, 분홍색, 노란색이 섞인 잎을."

"네." 내가 말했다. 이페오마 고모가 나를 계속 쳐다보길래 나는 고모가 정원 얘기를 할 때 내 목소리에 오빠 같은 열의가 없었다고 생각하는 걸까 궁금했다.





216쪽

아마디 신부의 자동차에서는 그의 냄새, 맑은 쪽빛 하늘을 연상시키는 산뜻한 냄새가 났다. 지난번에 그를 봤을 때는 반바지가 무릎 한참 아래까지 내려왔던 것 같은데 지금은 위로 당겨 올려져서 검은 털이 드문드문 난 근육질 넓적다리가 드러났다. 그와 나 사이의 공간이 너무 좁고 너무 밭았다. 이제껏 신부에게 그렇게 가까이 앉았던 건 고해 성사 하는 회개자였을 때뿐이었다. 하지만 아마디 신부의 향수가 폐부 깊숙이 들어와 있는 지금은 회개하는 마음을 갖기가 어려웠다. 오히려 죄책감을 느꼈다. 내 죄악에 집중할 수 없어서, 그가 얼마나 가까운 지 외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어서.


캄빌리가 아마디 신부에게 향한 마음을 느끼면서 떠오른 작품이 있었다.

다름 아닌 [가시나무 새]다. 정말 마음 절절한 울림을 주었던 원작과 영화까지 새록새록 떠올랐다.

 
자료 출처: 알라딘 문고

222쪽

"그보다는 훨씬 복잡해, 캄빌리. 어렸을 때 마음속에 의문이 많았는데 사제가 되는 게 해답에 가장 가까웠어." 그 의문이 무엇인지, 베네딕트 신부도 같은 의문을 가졌을지 궁금했다. 그러고 나서 아마디 신부의 매끈한 피부를 물려받는 자식이 없으리라는 것, 그의 각진 어깨가 천장 팬을 만지고 싶어하는 아들의 다리를 받치는 일이 없으리라는 것을 생각하자 터무니없지만 강렬한 슬픔이 느껴졌다.


260쪽

어머니가 시선을 피했다.

"은네, 너는 쉬어야 해."

"이페오마 고모를 불러 주세요. 제발요."

어머니가 팔을 뻗어 내 손을 잡았다. 어머니의 얼굴은 울어서 퉁퉁 부었고 입술은 갈라져서 허옇게 일어나 있었다. 한편으로는 일어앉아 어머니를 안아 주고 싶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밀어버리고 싶었다. 아주 세계 밀쳐서 의자에서 굴러떨어지게 만들고 싶었다.

268쪽

"기운 차린 걸 보니 좋구나." 아마디 신부가 마치 내가 온전히 다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처럼 훑어보며 말했다. 내가 미소 짓자 그가 포옹하게 일어나라는 손짓을 했다. 그의 몸이 내 몸에 닿는 것이 긴장되면서도 기분 좋았다. 다시 몸을 떼면서 치마와 오빠와 오비오라와 이페오마 고모와 아마카가 잠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마디 신부와 단둘이 있고 싶었다. 그가 여기 있어서 마음이 따뜻하다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깔이 그의 피부색과 똑같은 구운 점토 색으로 바뀌었다는 말을 그에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85쪽

오빠는 닭을 집어 들어 아마카가 가져온 대야게 담긴 뜨거운 물에 던져 넣었다. 오빠한테는 어떤 정확성, 차갑고 냉정한 외곬인 면이 있었다. 오빠는 빠르게 깃털을 뽑기 시작했고 닭이 백황색 껍질로 덮인 홀쭉한 형태로 줄어들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는 깃털이 다 뽑힌 닭을 보고서야 닭 목이 그렇게 길다는 걸 알게 되었다.

334쪽

"왜 거절한 거야?" 오비오라가 물었다.

"나도 몰라. 자기들 기분이 좋으면 주고, 안 그러면 거절하는거지. 네가 어떤 사람 눈에 쓸모없는 인간으로 보이면 일어나는 일이란다. 우리는 어느 방향이든 그들이 원하는 대로 걷어차도 되는 축구공 같은 거야."

337~338쪽

나는 아마디 신부의 독일 주소를 공책에 베끼고 또 베꼈다. 쓰는 방식을 계속 달리해 가며 또 베끼고 있을 때 그가 돌아왔다. 그는 내게서 공책을 빼앗아 덮어 버렸다. 나는 "보고 싶을 거예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대신 "편지할게요."라고 말했다.

"내가 먼저 보낼게." 그가 말했다.

눈물이 뺨을 흘러내린 줄 몰랐다가 아마디 신부가 팔을 뻗어 손바닥으로 내 얼굴을 문질러서 닦아 줬을 때에야 알았다. 그리고 그는 나르 두 팔로 감싸 꼭 끌어안았다.

360쪽

나는 아마디 신부가 말하는 것을 믿는다. 또박또박 쓴 그의 기울어진 필체를 믿는다. 왜냐하면 그가 그렇게 말했고 그의 말이 참이기 때문이다.

나는 새 편지가 오기 전까지 그가 가장 최근에 보낸 편지를 늘 가지고 다닌다.

그의 편지는 내 마음속에 있다. 그것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는 길고 자세하기 때문에, 내가 가치 있는 사람임을 상기시켜 주기 때문에, 내 감정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몇달 전 그는 내가 이유를 찾으려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는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일, 그냥 이유가 존재하지 않거나 필요치 않은 일이 있기 때문이다.

362쪽

오빠가 이곳에 들어온 뒤 한 달이 지날 때마다 조금씩 굳어 갔던 그 눈은 이제 야자수 껍질처럼 딱딱해 보인다. 우리에게 눈의 언어가 정말 있었던 적이 있는지, 아니면 전부 내 상상이었는지 헛갈린다.


나이지리아를 배경으로 하는 한 십대 소녀의 이야기가 오늘날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로부터 멀다고 느끼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캄빌리가 원하는 것이 국가와 인종, 시대와세대를 넘어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하고 누구나 누려야 마땅한 어떤 것이라면, 여전히 그것을 얻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며 분투하고 투쟁하는 이들이 존재한다면, 그리고 이것이 한국 사회에 속한 우리와도 전혀 무관한 일이 아님을 떠올린다면, 『보라색 히비스커스』가 던지는 메시지는 언제나 유효하고 의미 있는 질문일 수밖에 없다.

-- 딸에 대하여 저자, 김혜진 --


재미있게 읽혔다.

그리고 몇해전에 관람했던 사우디 아라비아 영화 [와즈다]가 떠올랐다. 

<이 영화를 통해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들은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왜 여자는 자전거를 탈 수 없죠?" 세상을 바꾼 10살 소녀의 유쾌한 반란!

제 이름은 와즈다. 요즘 최고의 관심사는 바로 자전거!

이웃집 압둘라가 타고 다니는 자전거가 항상 부러웠는데 마침 단골 가게에 내 맘에 쏙 든 초록색 자전거가

새로 들어왔죠! 엄마에게 졸라봤지만 여자는 자전거를 타면 아이를 못 낳는다며 절대로 안 사주신대요.

팔찌도 만들어 팔아보고, 몰래 연애편지도 전달하면서 돈을 모아봤지만 800리얄까지 언제 모으죠? OTL...

그런데 학교에서 무려 1000리얄이라는 어마어마한 상금이 걸린 코란 경전 퀴즈대회가 열린대요!

이건 분명 제가 대회에서 우승하고 자전거를 살 거라는 신의 계시임이 분명해요!

꿈 속에서 저는 이미 제 초록색 자전거를 타고 압둘라와 경주를 하고 있었는걸요?

대회는 앞으로 5주 후!

전교의 문제적 학생이었던 와즈다는 과연, 대회에서 우승하고 자전거를 탈 수 있을까?

자료 출처: 네이버 영화


"집에서도 매일 지켜야 하는 일과표가 있어?" 아마카가 물었다.

"재밌네. 그러니까 이제 부자들은 매일매일 뭘 해야 할지도 결정을 못해서 그걸 가르쳐 줄 일과표가 필요하구나."- P158

"저항은 때때로 좋은 것일 수도 있어." 고모가 말했다. "저항은 대마초 같은 거거든. 제대로만 쓰면 나쁜 게 아니야." 고모가 한 말의 신성 모독성보다 그 진지한 말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P182

가끔 아마카와 파파은누쿠가 대화를 할 때면 두 사람의 낮은 목소리가 서로 휘감겼다. 그들은 최소한의 단어만 사용하면서도 서로의 말을 이해했다. 두 사람을 보면서 내가 절대 가질 수 없을 뭔가를 향한 갈망을 느꼈다. 일어나서 나가고 싶었지만 내 다리가 내 것이 아닌 양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다.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세워서 부엌으로 갔다. 파파은누쿠도 아마카도 내가 나가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 P205

나는 정원의 시든 아가판투스꽃이 줄기에서 떨어지는 것을 쳐다봤다. 늦은 아침 바람에 파두가 바스락거렸다.

"소리 지를 필요 없어, 아마카." 마침내 내가 말했다. "난 오라 잎을 다듬을 줄 모르지만 네가 가르쳐 주면 되잖아." 그런 차분한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몰랐다. 나는 아마카를 쳐다보고 싶지 않았고, 그 뱁새눈을 보고 싶지 않았고, 그 애를 자극해서 또 한 소리 듣고 싶지 않았다. 내가 더 이상 버틸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때 킥킥대는 소리가 들리길래 내 귀를 의심했지만 아마카를 보니 역시나 그 애가 웃고 있었다.

"너도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할 수도 있구나, 캄빌리." 아마카가 말했다.

그러고는 오라 손질법을 가르쳐 줬다.

- P211

아마카가 말했다.

"게다가 이제는 성모님이 아프리카에 나타나실 때도 됐잖아. 왜 항상 유럽에만 나타나시는지 이상하다고 생각지 않아? 성모님은 원래 중동 출신이시라고."- P174

"저건 히비스커스죠, 고모?" 오빠가 철조망에서 가까운 나무를 쳐다보며 물었다.

"보라색 히비스커스가 있는지 몰랐어요."

이페오마 고모가 웃으면서, 아주 진해서 거의 파란색에 가까운 보라색을 띤 꽃을 만졌다.

"다들 처음엔 그렇게 반응해. 내 친구 필라파가 식물학 교수인데 여기 살 때 실험을 많이 했단다. 봐, 이건 하얀 익소라꽃인데 빨간색만큼 활짝 피지 않아."- P162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오빠랑 나는 차에서 현관까지 가는 사이에 홀딱 젖었다. 빗줄기가 너무 세서 히비스커스 덤불 옆에 작은 웅덩이가 파여 있었다. 젖은 가죽 샌들 속 발이 가려웠다. 아버지가 거실 소파에 웅크린 채 울고 있는데 너무 작아 보였다. 키가 커서 문을 지나갈 때 고개를 숙이기도 하고 바지를 맞출 때는 항상 남들보다 천을 더 써야 하는 아버지가 지금은 자그마해 보였다. 꼭 구겨진 천 두루마리 같았다.-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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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히비스커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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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지리아 소설 읽기는 첫 경험이다.

보라색 히비스커스라?... 히비스커스는 들어본 것 같은데... 보라색꽃은? 아직 본 적이 없다.


책 표지가 은은한 보라색으로 제목과 조화를 이룬다.

그 가운데 창가에 비치는 일몰 풍경이 주황과 은은한 노랑으로 자리잡고 있는 표지를 마주하고 며칠째...

일몰일까? 일출일까? 일몰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일몰 앞에서의 내 어린 시절이 동시에 떠올랐다.

첫 페이지를 연 순간부터 책 속으로 빠져 들게 하더군.

신들 부수기, 신들을 부순다? 첫 장부터 흥미있지 않은가?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 집이 풍비박산 나기 시자간 것은 오빠 자자가 영성체를 하지 않아서 아버지가 집어 던진 무거운 미사 경본이 식당을 가로질러 날아가 장식장의 도자기 인형들을 박살 냈을 때부터였다. 11쪽


이제 3분의 1을 읽은 상태, 8월에 읽어야 할 책이 책상 위에 펼쳐져 있다.

다시 읽어야 할 책은 민음사 출판 기다리다 기다리다 목이 빠진 채,

조금 먼저 발행된 문학동네 『닥터 지바고』를 구입 재독하기 시작했고,

현암사의 『소피의 세계 1, 2, 3』을 다시 펼쳐 들곤 하는 중이다.

외출 할 때는 비교적 가볍게 느껴지는『보라색 히비스커스』를 챙기게 되더라.

일주일 내에 다 읽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읽어야 할 책이 많다는 건 스트레스일 수도 있겠지만, 이 여름 행복한 비명 같은 것!

이제 다시 보라색 히비스커스 안으로 침잠해야 할 시간이다.

군중이 외치던 자유와는 종류가 다른,

앞으로 주인공 남매가 원하는 것이 될,

원하는 것을 할 자유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 『보라색 히비스커스』를 그대에게도 권하며^^




나이지리아 소설 읽기는 첫 경험이다.

보라색 히비스커스라?... 히비스커스는 들어본 것 같은데... 보라색꽃은? 아직 본 적이 없다.

사진 이미지 출처: 네이버 이미지

책 표지가 은은한 보라색으로 제목과 조화를 이룬다.

그 가운데 창가에 비치는 일몰 풍경이 주황과 은은한 노랑으로 자리잡고 있는 표지를 마주하고 며칠째...

일몰일까? 일출일까? 일몰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일몰 앞에서의 내 어린 시절이 동시에 떠올랐다.

첫 페이지를 연 순간부터 책 속으로 빠져 들게 하더군.

신들 부수기, 신들을 부순다? 첫 장부터 흥미있지 않은가?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 집이 풍비박산 나기 시자간 것은 오빠 자자가 영성체를 하지 않아서 아버지가 집어 던진 무거운 미사 경본이 식당을 가로질러 날아가 장식장의 도자기 인형들을 박살 냈을 때부터였다. 11쪽

출처 입력

이제 3분의 1을 읽은 상태, 8월에 읽어야 할 책이 책상 위에 펼쳐져 있다.

다시 읽어야 할 책은 민음사 출판 기다리다 기다리다 목이 빠진 채,

조금 먼저 발행된 문학동네 『닥터 지바고』를 구입 재독하기 시작했고,

현암사의 『소피의 세계 1, 2, 3』을 다시 펼쳐 들곤 하는 중이다.

외출 할 때는 가방에 『보라색 히비스커스』를 챙기게 되더라.

일주일 내에 다 읽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읽어야 할 책이 많다는 건 스트레스일 수도 있겠지만, 이 여름 행복한 비명 같은 것!

이제 다시 보라색 히비스커스 안으로 침잠해야 할 시간이다.

파주 명필름아트센터, 맛있는 학림커피와 보라색 히비스커스의 조화^^ 이 공간 책읽기 참 좋다, 테이블에 스탠드가 특히 마음에 듦! 

군중이 외치던 자유와는 종류가 다른,

앞으로 주인공 남매가 원하는 것이 될,

원하는 것을 할 자유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 『보라색 히비스커스』를 그대에게도 권하며^^



우리 집이 풍비박산 나기 시자간 것은 오빠 자자가 영성체를 하지 않아서 아버지가 집어 던진 무거운 미사 경본이 식당을 가로질러 날아가 장식장의 도자기 인형들을 박살 냈을 때부터였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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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침묵 - 소음의 시대와 조용한 행복
엘링 카게 지음, 김민수 옮김 / 민음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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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좋은 거실 창가에 앉아 자기만의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내면과 외면이 마찰을 일으키는 순간도 있었으나...

이런 책을 통해 내 안으로 온전히 들어가보는 시간을 가졌다.

침묵하기에 적절하게 책 편집도 좋았고 행간의 넓이와 여백,

그리고 표지 색감과 중간 중간 연보라외 블루의 조화도 쉬어가기 좋았다.

규격이 아담한 양장본이라 손에 잡고 읽기에도 불편하지 않았고,

내 마음의 밑줄을 옮길 때도 재독하는 시간으로 삼고 곱씹으며 한자한자 정성껏 옮겨 적었다.

잠시라도 침묵이 필요한 시간, 옮겨 놓은 글을 다시 읽으면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을 맛볼 수 있으리라.

2019년 나의 화두가 침묵과 열정인데...

우연히 <자기만의 침묵> 첫번째 독자로 이 글을 읽었다는 게 기뻤다.

소중한 책 한 권을 통해 내 삶과 관계(나와 나, 나와 너)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혹시 그런 시간이 필요한 당신에게도 엘링 카게의 <자기만의 침묵>을 추천한다.


일요일의 저녁식사는 우리가 얼굴을 맞대로 진득이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한 주의 유일한 한 끼이다. 나를 쳐다보는 딸들의 눈빛은 회의적이었다. 당연히 침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나는 침묵이 어떻게친구가 될 수 있는지 설명하고 싶었다.심지어 세 딸이 그토로 갖고 싶어하는 마크 제이콥스 가방보다 침묵이 훨씬 소중한 사치품이라는 사실을 설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입을 열기도 전부터 세 딸의 생각은 확고했다. 슬플 때는 침묵에 빠지는 것도 좋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침묵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P10

침묵이 뭐죠? 침묵은 어디 있죠? 다른 때도 아니고 왜 지금 더 침묵이 중요하죠?- P14

…… 시집(Jon Fosse: 노르웨이 작가)을 대충 넘겨 보다가 막 불을 끄고 자려는데 이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사랑이 있다. 시인은 무슨 의미로 그렇게 썼을가? 잠들어 있어서 보이지 않는 사랑을 말한 걸까? 혹시 침묵에 대해 쓴 것은 아닐까? 나느 시집을 옆에 내려놓고 누워서 생각에 잠겼다. 좋은 시를 읽으면 위대한 탐험가들이 생각난다. 시인들은 적절한 단어를 선택함으로써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을 작동시킨다. …… 나는 아침이 밝으면 포셍게 편지를 서서 그의 우물에서 물을 퍼 올려 보기로 마음먹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말을 하는 침묵입니다." 포세는 내가 이메일을 보낸 지 6분 만에 답장을 보내왔다. 마치 물어봐 주길 기다리고 있기나 했던 것처럼.- P19

…… 포세가 말하는 두려움이 뭔지 안다. 그것은 내가 뭐라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한 희미한 불안이다. 그것은 현재의 내 삶에 몰입하는 것을 쉽게 방해한다. 나는 현재의 내 삶에 몰입하는 대신 이런저런 일들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침묵을 회피하며 가까운 곳에서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내며 산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단 한 순간이라도 세상을 차단하기보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음악을 틀고 라디오를 듣고 이런저런 생각들이 제멋대로 날뛰게 내버려둔다.

포세가 말하는 두려움은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리라. 그러한 두려움을 회피하려 할 때마다 나한테서 비겁한 악취가 확 풍긴다.- P21

마침내 나는 완벽하게 고립이 되고 나서야 그 무엇도 결국은 완벽하게 평평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얼음과 눈은 작거나 그보다 약간 큰 추상적 형태를 형성했다.

하나같이 똑같아 보이던 백색은 미묘한 차이를 띠는 수많은 백색으로 변했다. 눈 위의 지표면은 희미하게 푸른빛이 감돌면서 약간 불그스름하기도 하고 녹색을 띠면서 살짝 분홍빛도 섞여 있었다. 나는 길이 바뀔 때마다 자연도 변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그렇지 않았다. 내 주변 환경은 변함없이 그대로였다. 변한 것은 나였다. "집에서 나는 ‘커다란 자극‘만 즐긴다. 여기 남극에 와서는 아주 작은 즐거움을 소중히 여기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눈의 미묘한 색깔. 바람의 누그러짐. 구름의 대형. 침묵." 22일째 되는 날 일기에 나는 그렇게 적었다.- P23

…… 나는 혼자였고, 내 곁엔 내 생각과 아이디어들뿐이었다. 미래는 더 이상 무의미했고, 과거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나는 지체 없이 나 자신의 삶 속으로 들어갔다. 당신이 세계 속으로 들어갈 때 세계는 사라진다고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주장했다. 그때 나한테 일어났던 일이 바로 그랬다.

마치 나를 둘러싼 주변 환경의 일부가 된 기분이었다. 대화상대가 없었기 때문에 자연과 대화를 주고받았다. 내 생각들이 벌판을 가로질러 산들을 향해 퍼져나가면 다른 생각들이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P25

나는 뜨개질을 하지 않지만 뜨개질을 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틀림없이 그들은 내가 탐험을 하면서 발견했던 것과 똑같은 내면의 평화를 찾은 사람들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설령 그들을 둘러싼 환경이 남극이나 북극처럼 고요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나는 책을 읽고 음악을 연주하고 명상을 하고 섹스를 하고 스키를 타고 요가를 할 때, 혹은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그냥 조용히 앉아 있을 때도 내면의 평화를 발견한다.- P40

사흘 뒤 우리가 항구에 도착했을 대, 어디선가 진공청소기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우리가 만났던 고래의 숨소리와 음성 주파수가 거의 똑같았다. 하지만 하나는 일상적이고 필수적인 의무, 즉 집에서 먼지와 보풀을 제거하기 위한 가사노동으로서 하는 어떤 일을 떠오르게 한 소리이고, 다른 하나는 심지어 지금까지도 큰 기쁨으로 기억되는 소리이다. 흔치 않고, 진짜 같은, 원시의 힘. 나는 아직도 가끔 그 깊고 장엄한 표현 방식을 떠올린다. 소리는 오늘날까지도 내게는 계속해서 내 풍요로운 삶의 근원이 되어 주고 있다.- P45

침묵은 친구가 될 수도 있다. 침묵은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강력한 원천이다. 시인 로프 야콥슨은 「뒤따르는 침묵」에서 이렇게 썼다.



"침묵은 잔디 속에서 산다

풀잎 하나하나의 밑바닥 쪽에

돌들 사이의 파란 틈에 끼어서."- P47

침묵은 본질적으로 풍요롭다. 침묵은 고급이다. 뭔가 특권적이고 호화롭다. 침묵은 새로운 사고방식의 비밀을 풀어 줄 열쇠이다. 나는 침묵을 금욕이나 뭔가 영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보다는 더 풍요로운 인생을 살기 위한 실제적인 원천이라고 여긴다. 좀 더 일상적인 용어로 표현한다면, 침묵은 뉴스를 다시 보기 위해 TV를 켜는 것보다 더 심오하게 인생을 경험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P49

…… 철학자이자 권태이론가 블레즈 파스칼은 1600년대에 이미 이런 생각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모든 문제는 방에 혼자 조용히 앉아 있지 못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처럼 혼자 있는 것에 대한 불안함,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는 것에 대한 불안함, 단순하게 사는 것에 대한 불안함은 1950년대의 텔레비전이나 1990년대의 인터넷 혹은 오늘날 스카트폰의 등장과 함께 시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파스칼이 살던 시대에도 이미 존재하던 문제였다.

……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개발에 힘을 보탠 과학기술이 가져다주는 편인뿐만 아니라 위험까지도 이해했다. 잡스는 첨단 기계의 중용성을 인정하며서도 자기 자녀들이 애플 제품들에 접근하는 데에는 제한을 두었다. 나는 시대를 앞서 가는 마케팅 천재 스티브 잡스보다 책임감 있는 아버지 스티브 잡스를 더 신뢰한다.- P53

…… 사람들은 가끔씩 살짝 지루함을 느껴야 좋을지도 모른다. 가끔은 전원을 연결하지 말고 자신을 꺼 놓아야 하지 않을가? 잠시 머뭐 서서 우리가 정말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P55

…… 나는 내가 따분한 곤경에 빠져 있다는 걸 확실하게 자각한다. 그럼에도 실제로 검색을 멈추는 것보다 계속하는 것이 더 쉬울 때가 많다. 이미 그 내용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방금 방문했던 웹사트를 확인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 인생을 통제하는 수단을 포기한다. 그렇게 하는 건 백퍼센트 무의미한 일이다.- P64

……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는 모두 죽음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내 경험상 삶을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훨씬 크다. 그런 두려움은 인생의 종착역에 가까워질수록 커진다. 그제야 당신은 머지않아 너무 늦어버린 순간이 오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일지,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고개를 저을지 결정을 내리게 될 사람은 바로 당신이다.

…… 스물한 번재 생일을 맞이한 날에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의 다음과 같은 조언에 귀 기울여야 한다. "사용법을 안다면 인생은 길다." 설령 천년을 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우리가 가진 시간을 내키는 대로 아무렇게나 써 버린다면 우리 인생은 짧다고 느껴질 것이다. 우리는 존재하지만, 정말로 살아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2000년 전에 세네카는 말했다.

…… 우리에겐 충분한 시간이 있다. 인생은 길다. 단, 우리가 아주 자주 우리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고 나아가는 경우에만.- P73

…… 나는 우리가 앉아 있는 주차장 바로 맞은편의 다 낡고 허름한 집을 바라보다가 그 집 정면에 외로이 서 있는 나무 한 그루가 하늘을 향해 자라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고전 『이곳은 뉴욕』에서는 E.B.White는 뉴욕에서의 생활을 이렇게 묘사한다. "곤경에 처한 인생, 역경에 맞선 성장, 콘크리트 한복판에서 샘솟는 수액, 태양을 잡으려고 끊임없이 뻗는 손." 그는 뉴욕 시민들에 대해 말하고 있었지만, 이 도시의 나무에 대해 글을 썼어도 괜찮을 뻔했다. 그 나무는 왜 딱 그자리에서 자라고 있었을가? 어떻게 그 잎과 꽃봉오리, 꽃과 나무껍질, 이끼와 가지, 자그마한 생물들을 매달고 그 세월을 버틸 수 있었을까? 유기체의 아름다움이 땅 위로 조용히 자라기 시작하는 방식은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불가사의한 일 중 하나이다. - P78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 사방 50센티미터가 안 되는 아스팔트 없는 그 땅에 서 있는 나무는 내게 훨씬 더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우리가 시동을 건 대부분의 것들을 위한 조용한 상징처럼 보였다. 나는 그리고 건너가서 두 팔로 그 나무를 감싸 안고 싶은 불가사의한 충동을 느꼈다.- P79

누구나 이따금 지루함을 느낀다.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지루함은 목적의 결핍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 어린 시절 나는 어떤 일이 일어나길 기다리고 있을 때 거의 고통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루함을 느꼈다. 어머니는 지루함을 느끼는 게 건강에 좋다고 내게 말씀하셨다. 이제야 어머니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이해한다. 이제는 나도 내 아이들이 지루해서 몸부림을 치고 자기 안에 갇혀 있는 것을 목격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거의 자포자기 상태가 된다. 나는 어머니에게 배운 게 있어서, 내 아이들이 더 자주 지루함을 경험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P83

……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은 경험의 빈곤이다. …… 활동의 풍부함 역시 경험의 빈곤이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바로 이 점이 흥미롭다. 활동은 정말이지 너무 많아지고 있다. …… 지루함을 피하려고 하면 할수록 당신은 더 지루해진다.

…… 하지만 지루함으로 이어지는 목표의 결핍과 행복으로 이어지는 목표, 이 둘 사이의 경계를 항상 것처럼 오늘은 시간낭비처럼 보일 수 있는 일들이 내일은 멋있고 즐거움으로 가득한 휴식을 제공할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무엇이 목적과 즐거움을 가져다주는지에 대해서는 곰곰이 생각해 볼만하다. 우리는 그 점을 기억하기 위해 작은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P86

…… 내 경험에 비추어 보건대 사치품에 몸을 담그고 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한 가지를 안다. 사치품이 제공할 수 있는 즐거움은 그 수명이 짧다는 사실을.

나는 침묵이 새로운 사치품이라고 생각한다. 침묵의 특징은 다른 사치품들보다 더 고급스럽고 수명이 길다는 점이다. 내 딸들 중 한 명은 여름방학 때 이걸 말로 표현해서 나를 기쁘게 했다. 즉 침묵은 끊임없이 최신 유행 사치품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결코 손에 넣을 수 없는 유일한 물건이라는 것이다.- P88

…… 사치 분야가 도아가는 방식은 무엇보다도 계속해서 보태고 보탬으로써 무언가를 획득하는 것이다. 더, 더, 그리고 더, 고객들의 머릿속에 있는 도파민은 그들이 더 많은 것을 갈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반면에 침묵은 줄이는 것, 뭔가를 빼는 것이다.

게다가 침묵은 공짜로 할 수 있는 경험이다. 그리고 침묵은 다음 시즌의 사치품으로 교체할 필요도 없다.

- P89

…… 부자들이 사는 집은 소음은 더 적고 공기는 더 쾌적하며, 그들이 타는 차는 더 조용하게 달린다. 세탁기도 더 조용하게 돌아간다. 부자들은 더 많은 여가를 누리고 더 개끗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는다. 침묵은 소수의 사람들에게 나머지 대다수 사람들보다 더 오래, 더 건강하게, 더 부유하게 살 기회를 주는 격차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 …… 침묵은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를 위한 사치품이다.- P91

침묵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당신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힐 수 있고, 요가도 하고 산책도 할 수 있는 장소로 가기 위해 차를 몰거나 조용한 곳에서 세상을 차단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가는 일은 살짝 짜증이 날 수도 있다.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것들은 때때로 공짜이다. 내가 생각하는 침묵은 주의를 기울인다면 당신이 어디에 있든 당신의 마음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것도 돈 한 푼 들이지 않고서. 따라서 구태여 스리랑카에 갈 필요도 없다. 당신 욕조에서 침묵을 경험할 수 있다.

나는 집에서 침대에 5분 더 머무를 때 침묵을 발견한다. 적어도 일단 아이들이 스스로 일어날 줄 아는 나이가 되면 말이다. …… 시간이 허락한다면 나는 걸어서 출근하는 쪽을 택한다. 지하철 터널이나 자동차 창문의 시점에서는 볼 수 없는 모든 것이 내 일상생활의 일부가 된다. - P95

…… 시간이 허락한다면 나는 걸어서 출근하는 쪽을 택한다. 지하철 터널이나 자동차 창문의 시점에서는 볼 수 없는 모든 것이 내 일상생활의 일부가 된다. …… 내가 가장 많이 있게 되는 두 주소지 사이를 걸어서 오가는 데는 채 30분도 걸리지 않고, 그 30분 동안에 나는 용케도 세상을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P97

침묵은 잠시 멈춤으로써 우리에게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것들을 재발견하는 일이다.- P99

…… 침묵은 언제 어디서든 찾을 수 있다. 침묵은 당신의 바로 코앞에도 있다. 나는 계단을 오르는 동안 스스로 침묵을 만들고, 음식을 준비하거나 한낱 내 호흡에 집중하는 동안에도 침묵을 만든다. 물론 우리는 모두 똑같은 대륙의 일부이지만, 당신은 스스로 하나의 섬이 될 수 있는 수많은 잠재력을 어디를 가든 항상 가지고 다닌다.- P104

…… 하느님은 그 이후에 작고 조용한 목소리 속에서, 혹은 몇몇 새로운 번역본의 표현을 빌리면 "깨지기 쉬운 침묵" 속에서 나타났다. 나는 그 표현이 마음에 든다. 하느님은 침묵 속에 계신다.

……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은 불멸의 지식, 그리고 그에 따른 진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플라톤은 이 같은 불멸의 지식을 "말할 수 없는"이라는 뜻의 arrheton이라고 불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대사가 없는" 혹은 말이 없다는 뜻의 aneulogou라고 불렀다. 두 철학자는 언어가 끝나는 곳에서 위대한 진리들을 한꺼번에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고 주장했다.- P109

…… 자기 자신을 알면 다른 사람들을 알게 된다. 색스의 글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그도 난센처럼 머리 위쪽을 향해 눈길을 돌림으로써 마음속으로, 내면의 침묵으로 눈길을 돌리게 되었고, 잊혔던 것들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 내면의 우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내게는 우리를 둘러싼 우주공간만큼이나 불가사의하다. 한 우주는 밖을 향해 펼쳐지고 다른 우주는 안을 향해 펼쳐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무한성에 관하여 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이런 결론을 내렸다. "뇌, 그것은 하늘보다 넓다."- P114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침묵을 지켜야 한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이 쓴 『논리철학논고』의 마지막 문장이다. 이것은 교묘한 표현이다. …… 자연과 침묵, 다른사람들로부터의 고립이 비트겐슈타인과 그의 철학을 형성한 셈이다.

"내가 여기서 한 일을 다른 곳에서도 할 수 있었을 거라고는 상상할 수조차 없다. 침묵, 그리고 아마도 아름다운 경치 때문일 것이다. 이곳의 조용한 중력 말이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침묵해야 한다는 그의 결론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표현할 만한 단어를 찾을 수 없는 모든 것에 대해선 소극적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 그러나 그것은 나의 오해였다. …… 비트겐슈타인은 표현할 만한 단어를 찾을 수 없을 때, 우리는 보여 줄 수 있다고 강조한다. "보여질 수 있는 것은 말로 표현될 수 없다."- P124

…… 말은 분위기를 깰 수 있다. 말은 불충분하다. 그렇다, 멋진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은 실로 굉장한 일이다.하지만 그 경험에 대해 말을 하는 것은 우리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서 멀리 떼어놓을 수 있다. 때때로 나는 말로 표현하기 가장 힘든 것이 다름 아닌 단순한 즐거움이라는 사실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놀란다.

…… 진주를 발견하는 순간 혹은 그런 경험, 다시 말해 영원은 "결코 시간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철학자 쇠렌 키에르 케고르는 쓰고 있다. …… 시간은 지나가는 경험에 더 가깝거나, 키에르케고르가 말했듯이 "소멸된 연속"에 더 가깝다. 시간은 정지되어 있다.- P130

…… 감정이 뛰어놀 공간이 더 많이 주어질 때 인생은 더 짜릿해진다는 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나는 느끼고, 그런 다음 생각하며, 고로 존재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습관, 말할 것도 없이 다양한 제약을 강요하는 이 습관에 더하여 우리를 이끌고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느낌이기 때문이다.- P135

작곡가 존 케이지는 지금까지도 내게 영감을 주는 「무(無)에 관한 강의(A Lecture on Nothing)」라는 강연에서 자신의 작곡 방식을 설명하면서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를 인용했다. "저는 존재하는 모든 음을 받아들인 다음, 내가 원하지 않는 음들을 제외하고 남는 모든 음을 사용합니다." 그 이후 케이지는 자신의 4분 33초짜리 곡에서 모든 음을 제거하고 4분 33초 동안 침묵을 창조했다. 청중은 오늘날까지도 이 침묵의 곡에 열광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침묵은 청중이 조용히 있으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내는 소음을 제외한 침묵이다.- P140

…… 묘한 것은 그런 생각이 마크 로스코의 훨씬 더 자기성찰적인 그림들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그의 선명하면서 종종 어두운 색조로 그린 커다란 직사각형의 색상 바탕들은 어떤 면에서 「절규(Scream)」의 반대이다. 로스코의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당신은 그의 그림이 거대한 일련의 에너지를 수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침묵이 정답이겠군요." 로스코는 말로 그의 그림을 설명해 달라는 요구를 거절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말로 쉽게 설명할 수 있었다면 아마도 그는 그림을 그리는 대신 글을 썼을 것이다.

왜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위대한 예술을 감상하면서 예술가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이해하려고 애쓸 때마다 침묵이 다가온다는 것이다. 위대한 예술은 어느 정도 나에게는 난센의 별이 빛나는 하늘을 떠올리게 한다.- P149

그 짧고 긴 침묵들은 마치 서로 강 맞은편에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을 이어주는 다리 같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이야기를 나눌 때 강을 건넌다. 침묵을 얻기 위해서 침묵을 지배한다.- P161

…… 스탕달이 『사랑론(On Love)』에서 주장했듯이 성공적인 관계에는 일말의 의심이 항상 남아 있다. 이 의심은 "매순간에 욕망을 부여하고, 이것이 인생에 성공적인 사랑을 가져다준다." 두려움이 항상 존재할 때 당신은 사랑하는 관계에서 즐거움에 싫증이 날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잔인하게 들리지만, 스탕달의 말은 옳다. 인생은 잔인다. 내가 인간관계를 당연한 일로 여길 때 나는 위험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 상호간의 사랑을 당연시 하는 것, 나라면 감히 그런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방식의 성공은 진지함이 특징이라고 스탕달은 말한다. 나에게 성공은 우리가 침묵 속에서 함께 앉아 있을 수 있을 때이다.

…… 신비주의자 루미(Rumi: 페르시아의 시인 1207~1273)는 이런 글을 썼다고 전해진다. "이제 나는 침묵할 것이다. 진실에서 거짓을 가려내는 일은 침묵에 맡겨두고서."- P164

"…… 4분 동안 아무 말없이 누군가의 눈을 바라보는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짜릿하면서 무서운 경험 중의 하나였다. 처음 1~2분은 그냥 호흡을 제대로 하려고 애쓰면서 보냈다. 우리는 초조한 미소를 여러 번 짓고 나서야 비로소 적응했다.

나는 눈이 영혼이나 뭐 그런 걸 들여다보는 창문이란 걸 안다. 하지만, 그 순간의 진짜 핵심은 내가 실제로 누군가를 보고 있었다는 게 아니라 실제로 나를 보고 있는 누군가를 보고 있었다는것이었다. 일단 내가 이 깨달음이 주는 두려움을 받아들이고 이 두려움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더니 나는 어딘가 예상치 못했던 곳에 다다랐다."- P167

여행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그 과정이 더 만족스럽다. 거의 매번 그렇다. 우리는 토끼를 포획했을 때보다 추격할 때를 더 좋아한다.- P171

…… 우리는 모두 발견해야 할 자기 자신의 길이 있다. 스바 마르가(Sva Marga). 당신의 길을 따르라. 침묵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 당신 스스로 생각해야 기분이 좋다. 다행스럽게도 마법의 주문 같은 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내 경우에는 침묵을 찾기 위해 멀리 가느라고 두 다리를 사용해야 했지만, 침묵은 어느 곳에서나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당신이 할 일은 그저 덜어내는 일 뿐이다.

당신은 당신만의 남극점을 발견해야 한다.-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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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작가와의만남님의 "<지식의 미술관> 이주헌 저자 강연회 초대 이벤트"

느낌 있는 그림이야기, 아름다운 풍경화에 뭐가 숨어 있을까, 프랑스미술기행, 50일간의 유럽미술관 체험 1, 2 등 최근에 출판된 지식의 미술관까지 이주헌 님의 저서는 대부분 다 가지고 있답니다. 초등학생 아이들과 느낌 있는 그림이야기와 아름다운 풍경화로 독서수업을 하는데 좋은 서적이란 생각을 자주 합니다. 10여년전 연대에서 문화텍스트 독해와 글쓰기란 강좌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참으로 차분하게 강의하는 모습보고 감동받았지요. 몇년전 르네 마그리트전시회 관련 시립미술관에서 이주헌 님의 강연을 들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요즘 지식의 미술관 책 구입해서 읽고 있는데 사인도 받고 명강의도 듣고 행복한 추억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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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작가와의만남님의 "<좋은 이별> 김형경 저자와의 만남에 알라디너 분들을 초대합니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사람풍경! 두 권의 책은 아직도 가끔 펼쳐서 읽곤 합니다. 문자로 김형경 님의 신간 좋은 이별 안내를 받고 반가운 마음 가득했습니다. 좋은 이별이라? 이별이나 슬픔 앞에서 쿨하다고 말하는 사람을 저는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쿨한 인간이 세상에 과연 몇이나 될까요? 쿨한 척 할 뿐 아닐까요? 좋은 이별이란, 슬픈 감정이 올라오면 눈물도 흘리고, 속상한 기억이 떠오르면 때때로 속 시원하게 욕도하고, 소리도 좀 질러보고... 그러다가 다시 자신을 다독여도 주고... 슬픔이 슬픔을 위로한다는 말~ 일부러 아닌 척 하지 않는 게 좋은 이별을 준비하는 과정 아닐까 싶습니다. 이별관련 슬픈 음악도 진창 듣고, 무작정 조용한 산책로를 거닐어도 보고, 이별을 주제로 한 영화나 드라마도 보고... 좋은 이별을 준비하는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나가는 게 순서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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