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복잡하고 이것 저것 심란할 때,
매사가 귀찮고 시들시들할 때,
일상을 탈출하고 싶은 강한 욕구를 느낄 때,
너무나 다행히도....
내겐 출장이라는 선물이 주어진다.
물론 출장 준비와 결과에 대한 스트레스....장난 아니다.
영업사원에게 실적은 곧 인격이며,
비행기 값도 못 건지는 결과를 들고 돌아온다면
"뭐 하러 갔냐?"는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10시간 넘게 비행하고,
이 도시 저 도시를 혼자 돌아 다니고,
낯선 도시의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혼자 뭔가를 생각하고 뭔가를 끄적거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
그건 축복이다.
어쩌면 이런 시간은 내가 회사 생활을 버틸 수 있는 힘이고,
이리 저리 비틀거리다가도 씩 웃으며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원동력이다.
어제 Milan으로 날라 왔다.
파리에서 Milan으로 transit했는데,
파리공항에서 4시간을 기다린데다가
비행기가 거의 두시간이나 연착을 하는 바람에
(무슨 항공기의 결함이나 기상 문제도 아니고
항공사에서 예약을 너무 많이 받았다.)
Malpensa 공항에 밤 10시에 도착,
다시 Biella에 있는 호텔로 가니 11시.
방에 들어가자 마자 푹 고꾸라져서 잤다.
오늘 아침....
피곤함을 물리치기 위해
밥그릇 만한 카푸치노에 설탕을 쏟아 마시며
멍하니 앉아 있는데 Paola가 데릴러 왔다.
우리는 꼭 껴안았다.
인사에는 두 종류가 있다.
형식적인 인사와 진심이 느껴지는 반가움.
Paola에게는 항상 따뜻함이 느껴진다.
Paola 언니는 67년생.
까무잡잡한 피부,
군살 하나 없는 늘씬함 몸매,
치약 모델처럼 하얗고 고른 치아,
굵은 웨이브의 자연산 까만 머리....
건강하고 섹시하다.
Paola는 쿨한 74년생 남친과 동거하고 있다.
지난번 출장 왔을 때,
Paola 남친과 그 남친의 친구와 저녁을 먹었다.
Paola 남친은 축구선수다.
신문에 날 때 마다 Paola는 scan해서 기사를 보내 준다.
이태리어를 읽을 수는 없지만,
사진 하나 만큼은 예술이다.
자~알 생겼다.
동거한지 벌써 몇 년 됐고,
집도 같이 샀지만
결혼할 생각은 없다.
지금 이대로가 좋고 행복한데
왜 결혼을 하냐고 한다.
내가 결혼 때문에 이리저리 스트레스 받는다고 하면,
이태리 와서 편하게 살라고 한다.
미팅을 하러 Paola네 회사로 가기 전에
새로 생긴 카푸치노 가게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girl's talk"를 나누었다.
Paola와 이런저런 일상의 고민거리들,
girl's talk에서 빠질 수 없는 사랑,연애....
이런 얘기들을 하니
이솝 우화(?) 그런데서 땅인지 나무를 파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친 농부처럼 속이 다 시원했다.
카타르시스? 뭐 그런 걸 느꼈다.
Paola 같은 친구가 있다는 것...
가슴 뻐근하게 고마운 일이다.
실컷 수다를 떤 후( "수다가 사람 살려"....정말 110% 진실이다.)
Paola네 회사에 가서 사장 아저씨와 미팅을 하고
셋이서 점심을 먹었다.
Paola의 미소를 바라보며 스파클링 와인을 마시다가
순간 "난 참 행복하다"고 느꼈다.
이렇게 진심이 느껴지게 나를 꼭 안아 주는 친구가 있음에,
그 환한 미소에 내 마음까지 환해지는 친구가 있음에,
멀리 있지만 이 세상 한 구석에서 나를 걱정해 주는 친구가 있음에....
Paola가 말했다.
"Life is one way trip. Do it in first class!!!"
Paola를 보며 느낀다.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말고,
S생명 광고처럼 인생은 기니까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일에 넘 열 받지 말고 까잇거...하며 넘기기도 하고,
순간 순간을 즐기자고.....
또 Paola 처럼 밝고 낙천적인 에너지를 주위에 마구 전염시키는 사람이 되자고....
고마워, Pao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