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ola의 긴 머리는 섹시하고 에너지 넘치는 파도치는 웨이브.
언젠가 그런 웨이브를 하고 싶은 적이 있었는데
미장원에서는 어떤 파마를 해도 곱슬머리가 아니고서는
그런 자연스럽고도 강한 웨이브가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멋진 웨이브를 가진 Paola는 금요일 마다 미장원에 가서 드라이를 한다.
그 멋진 웨이브를 쭉쭉 편다. 매직 스트레이트!
날 볼 때 마다 머리가 넘 예쁘다고,
어쩌면 그렇게 찰랑거리냐고,
머리 감고 아무 것도 안 해도 그렇게 쫙쫙 펴져서 넘넘 좋겠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너처럼 멋진 웨이브를 갖고 싶어서
여자들이 거금을 들여 파마를 한다고 했더니
Paola는 운전하다 어깨를 들썩하며 말했다.
"하하, 여자들은 만족을 몰라."
사람들은 자신의 결핍,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갖기를 욕망한다.
또는....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을 사랑하기도 한다.
Milan에서 한 시간 넘게 걸리는 작은 마을 Biella.
5층 넘는 빌딩이 하나도 없는,
옛날 성을 개조해서 만든 고즈넉한 호텔이 3개 있는(그 중 하나는 얼마 전 문을 닫았다!),
엘리베이터를 탈 일도, 차가 막힐 일도 없는 작고 아름다운 마을이다.
난 Biella에 갈 때 마다 생각한다.
여기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공기 좋고 평화로운 마을에서
금요일 밤이면 친구들과 소박한 저녁을 먹고,
밤새 웃고 떠들며 와인을 마시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갈 때 마다 예쁜 집들을 가리키며 물어 본다.
"저긴 월세가 얼마나 해?"
Paola의 친구들은 금요일 밤마다 길가에 있는 작은 술집 "Cotton Club"에 모여 술을 마신다.
와인이나 맥주를 한잔씩 손에 들고 몇 시간씩 선 채로 웃고 떠든다.
금요일 밤 Cotton Club에 갔을 때,
Paola의 친구 중 한 명은 내게 말했다.
"왜 하필 주말을 Biella에서 보내? Milan으로 가지 않고?
여긴 너무 작고 따분하잖아."
난 붐벼 터지는 Milan 보다 여기가 훨씬 좋다고,
사람 많고 시끄러운 건 서울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하려다
그냥 씩~웃으며 잔을 들고 말했다. 칭칭!
Paola의 쫙쫙 편 스트레이트 머리를 보며,
왜 주말을 Biella에서 보내느냐는 Paola 친구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내가 미장원에 가지 않으면 펼 수도 없는 곱슬머리라면,
내가 이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줄곧 살았다면,
나도 그들처럼 자꾸만 가지지 못한 것에 눈길을 돌리겠지.
항상, 끊임 없이, 내가 가지지 못한 것, 내 결핍에 집착하며
손을 뻗어 그것들을 가지려 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힘을 내!
가지지 못하면 그 때마다 좌절했다.
울기도 했고, 취할 때 까지 술을 마시기도 했고,
술 취해서 엉엉 울기도 했다.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해서는 감사하지 않으면서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는 끊임 없이 집착했다.
내가 가진 것이 누군가의 욕망의 대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 채!
뜬금 없이, 또는 쌩뚱 맞게 이런 생각을 했다.
가진 것에 대해서는 감사하지 않으면서,
못 가진 것에 대해서 자꾸 집착하고 속상해 하면
슬~슬 웃고 떠들며 즐겁게 걸을 수 있는 길을
종아리에 모래 주머니를 달고 어금니를 꽉 물고 뛰는 것처럼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일수도 있겠구나!
아....이 무슨 섬광과 같은 깨달음? 하하하.
불후의 명곡 <꽃피는 봄이 오면>을 부른 BMK의 3집 앨범에는
제목이 기억 나진 않지만 이런 가사의 노래가 있다.
"내 것이 될 수 없다고 미워할 수는 없잖아~"
이 노래 들었을 때, 뜨.끔.했다.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해서는 당연하게 생각하고,
가지지 못한 건 어떻게든 가지려고 안간힘을 쓰고,
그래도 안 되는 게 있으면 미워했었다. 이솝 우화의 "신포도" 이야기처럼.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해서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만으로
매일매일 소풍 나온 어린애들처럼 즐겁게 지낼 수 있을 텐데....
Paola가 부러워하는 찰랑찰랑한 생머리도 가졌는데 말이다. 하하하
11박 12일 동안의 이번 출장은 나를 다독여주고 다잡아 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엇나갈 뻔 하거나,
잘못된 결정 또는 성급한 결정을 내릴 뻔 하거나,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별 거 아닌 일로 세상 다 산 것처럼 상심해 있을 때,
일상에서 물리적으로,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시간은
커피 필터처럼 머리 속에 헝클어져 있던 잡생각들을 걸러 준다.
11박 12일 동안의 소중한 시간에 감사를,
언제나 변함 없이 따뜻한 친구 Paola에게 감사를,
툭 하면 방황하고 힘들어 하면서도 결국은 씩씩하게 제 자리를 찾는 내 자신에게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