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쇼핑 카트를 탱크처럼 밀면서 여기저기를 쑤시고 다닌다.
여자애가 카트 위에 올라탄다. 여자애는 맥주 두 병을 집어들고 마시는 시늉을 한다.
포카칩스 한 봉지, 라면 두 봉지, 오징어채 한 봉지를 카트에 밀어넣는다.

그리곤 주방기구 코너로 가서 뒤집개 하나를 뽑아든다.

"야,씨발,오밤중에 부침개 해먹을 일 있냐?"
내가 핀잔을 주자 여자애가 뒤집개로 내 머리를 때린다.
"난 이걸 꼭 사야겠어."
"왜?"
"한번도 못 사봤고 앞으로도 못 살 것 같으니깐."

- 김영하의 <비상구> 中

어제 마트에서 "뒤집개"를 사면서
문득... 김영하의 <비상구>가 생각났다.
필요도 없으면서 고집 부려 뒤집개를 사는 가출소녀가.

마트에 간 적은 많지만...
주방기구 코너에 간 건 처음이었다.

식기건조대, 칫솔걸이, 섬유린스, 발닦이, 과도....등을 사다가
뒤집개도 하나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거의 해먹지 않겠지만
계란 후라이라도 하려면 뒤집개가 있어야 하니까!

다 비슷비슷하게 생겼는데
가격은 차이가 많이 나고
스테인레스도 있고 플라스틱도 있고...
뭘 사야 할지 망설이다 그냥 싼 걸로 샀다.

그 뒤집개로 오늘 닭가슴살을 구워 먹었다.
(다이어트 28일 째.
탄수화물을 제한하고 단백질 위주의 식사를 하고 있다.
4주만에 지방만 2.5kg 감량했다. 근육 손실 없이 지방만! 하하하)

독립 기념으로 선배에게 테팔 후라이팬을 선물 받았다.
새 후라이팬, 새 뒤집개, 오늘 마트에서 산
포도씨유를 몇방울 뿌려 닭가슴살을 굽는 걸로
새로운 공간에서의 "첫 식사"를 했다.

집 나온지 하루 밖에 안 됐는데...
그 동안 얼마나 "기생"을 해 왔는지...
매 순간 느낀다.

쓰레기 분리수거는 또 왜 이리 복잡한지!
뭐 하나 움직이지 않고 되는 일이 없다.

이번 독립은 내 자신을 위한 최대의 "투자"다.
망설이고 또 망설였지만...
힘든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건
내 인생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러 외롭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겠지만,
돈은 돈대로 쓰고 이게 무슨 고생이냐...후회할 때도 있겠지만,
내 자신의 결정을 지지하고 믿는다.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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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7-05-27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요한 물건은 그 때 상황에 맞춰서 사세요.
이러다간 나중에 집이 작아지는 마술에 걸린답니다.흐흐

kleinsusun 2007-05-27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 들뜬 마음에 마트에 가면 이것 저것 사게되요.
안 그래도 어제 자중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답니다.ㅋㅋ
앞으로 많은 지도편달을 부탁드립니다.^^

2007-05-27 2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INY 2007-05-27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요일 밤은 간단한 냉장고 청소를 하고, 또 주말 동안 해먹은 거 치우고, 더불어 쓰레기 내다버리고, 옷정리하고, 다림질하고....그러다 다용도실 청소에 쓰레기통도 세제풀어서 닦고...나링 더워지니 식중독 걱정이 되잖겠어요. 오늘은 두번이나 세탁기를 돌렸네요. 헥헥...

마늘빵 2007-05-27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이어트 잘 하고 계신가봅니다. 저는 어휴. 매일매일이 결심의 반복입니다. -_-

Mephistopheles 2007-05-27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메피스토입니다.
전 님처럼 생각을 행등으로 옮기고 유지하시는 분을 경외의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후광만 추가된다면...)

겨울 2007-05-28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립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지만 주변에서 망설이는 사람이 있으면 전 무조건 혼자 살아보라고 부추깁니다. 그 무한대의 자유로부터 오는 들뜸과 고요가 어느 순간부터 가족의 발소리 말소리가 그리워 잠 못 이루는 시간으로 바뀔지도 모르지만요. 독립은 심리적으로 혼자라는 걸 빼면 결혼과 동시에 집을 떠나는 과정과 아주 비슷한데, 아닌가요.^^

바람돌이 2007-05-28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요 수선님! 저도 수선님의 결정을 팍팍 지지해요. 귀찮은 일 투성이고 할 일 많지만 그럼으로써 얻는것도 많겠지요.
그나저나 저 김영하의 소설 중 "야,씨발,오밤중에 부침개 해먹을 일 있냐?" 는 딱 경상도식으로 바꾸면 더 맛이 날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야, 씨발, 오밤중에 찌짐 뒤빌일 있냐?" ^^

사마천 2007-05-28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사람의 무게는 빈자리에서 나타난다. 부모님의 무게가 말이죠 정말이지 엄청 크거든요. 다 때가 되면 헤어져야 할 수 밖에 없는 게 인간의 운명이라면 부모님의 무게를 느끼게 해주는 책 하나 추천 드립니다. 미키 앨봄의 <단 하루만 더>입니다. 죽기 직전에 처한 아들에게 나타난 유령 어머니이야기입니다.

조선인 2007-05-28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래도 재미나시죠? 하나 하나 by myself를 만드시는게요? 아직은 말이죠.ㅋㅋ

moonnight 2007-05-28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들어도 참 즐겁고 행복해 보입니다. 새집에서의 첫번째 식사 축하드려요. 성공적인 다이어트도 축하하구요. ^^

혜덕화 2007-05-28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에서 독립하셨나봐요. 이제야 알았네요. 축하합니다. 수선님만의 삶, 즐겁게 꾸려가시길.....
 

나는 나는....패러사이트 싱글(Parasite Single)!

오늘 마트에서 장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부모님에게 "기생"해 왔는지를 절실히 깨달았다.

막상 독립을 하려니
생각 보다 사야할 게 넘넘 많다.

세탁 세제, 주방 세제, 휴지, 키친 타월, 슬리퍼, 샴푸, 린스....

자질구레한 것들을 샀을 뿐인데 훌~쩍 10만원이 넘었다.
이런 거...그 동안 다... 안 사고 "기생"했다.
"기생"하면서도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다.
너무....자연스러워서!

도대체 뭐가 꼭 필요하고,
뭐가 없어도 되는 물건인지를 모르겠다.
당분간 불편한 생활을 각오할 수 밖에...

독립을 하려니 부모님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스스로 뻘쭘하기도 하다.

벌써 몇년 째 새해 아침마다 "올해는 꼭!" 이라고 말씀하시는
부모님의 간절한 바람을 뒤로 하고,
결혼은 커녕 이제서야 독립을 하겠다고 떠나는 딸.
아.......불효막심!

말하자면, 그래서 이 사회가 과연 성인(成人)들의 사회냐는 것이다.
어떤 동물이, 어떤 인종이, 도대체 어떤 민족이
이토록 오오래 부모의 경제력과, 치마폭과, 강령과, 손길에 연루되어 있는 걸까.
알 수 없지만 그토록 공부를 하고도,
존재적 독립을 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어떤 공부를 하기에!).


소설가 박민규는 <한겨레 21>에 연재했던 칼럼
<털, 났습니까?>에 이렇게 썼다.
이 사회가 과연 성인들의 사회냐?

나를 비롯한 패러사이트 싱글들이 드글드글하다.

40살 넘어서도 부모랑 같이 사는 싱글들이 넘쳐난다.
학교 다닐 때처럼 엄마가 차려주는 아침을 먹고
등교 대신 출근을 하는 40대 싱글들이 드물지 않은 세상이다.

이혼을 하고 다시 집으로 컴백한 패러사이트 싱글들도 많다.
당당하게 부모에게 A/S를 요청하기도 한다.
"엄마가 그 남자랑 결혼하라고 했잖아. 엄마 때문이야.
나 유학 보내줘!"

그런데 왜...
난 뒤늦게 독립을 한다고 난리일까?
부모님의 온갖 걱정과 반대를 뿌리치고...
지금 독립하면 도.대.체 결혼은 언제 하냐는
주변 사람들의 수많은 걱정 또는 빈정거림을 뒤로 하고...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나 혼자의, 나만의 온전한 힘으로 살아보고 싶다.

결혼 전에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
시집 가서는 남편의 뜻을 따르고,
남편이 죽은 후에는 자식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삼종지도(三從之道)" 개정판처럼

결혼 전에는 엄격한 아버지가,
결혼 후에는 아버지에게 바톤을 넘겨 받은 남편이
보호자가 되는 관행(?)에서 벗어나
온전히 혼자의 힘으로 살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다.

쉽지 않은....어려운....
부모님을 한숨 짓게 하는 결정이었다.

이사를 이틀 앞두고
설레이고 신난다기 보다는
이리저리 신경 쓰이고.... 이런저런 걱정이 되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어렵게 한 결정 후회하지 않도록,
한 순간 한 순간을 소중하게 보내야지.

굿바이, 패러사이트 싱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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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05-25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독립하시는군요. 아마도 어려운 결정이었겠죠?
하고싶다는 열망과 부모님의 걱정과.....
그래도 이건 축하할 일은 맞을 것 같아요. 힘내서 독립만세!!!

드팀전 2007-05-25 0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해요....^^
밤에는 가끔 외롭거나 무섭기도 하고.. 동사무소 가는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도 알고..^^ 독립이니까 전세나 전월세겠지요...집은 법적으로 깨끗한지 잘 알아보셨겠지요.행여 그것도 부모님이 해주신건 아닌지 ^^ 전입신고하고 확정일자 받고..(전월세면 조금 낫겠지만^^) 전화 연결하고 가스연결하고....그때마다 집에 있어야하니까 귀찮지요.부모님이 해주실수도 있지만 이왕 굳바이 패러사이트 싱글 선언하셨으면..전부 혼자해보세요...^^ 축하해요.^^ 새로운 세상이 보이길 바랍니다.

BRINY 2007-05-25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 축하드립니다~ 짝! 짝! 짝!
사실 많은 패러사이트 싱글들의 변명이 '혼자 살아도 돈 드는 건 다 같아' 아니겠어요. 그래도 그 돈 들여 얻을 수 있는 것도 많아요.

마늘빵 2007-05-25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도 독립하고픕니다. 20대초반부터 꿈꿔왔지만 후반인 지금도 여건이 안되는군요. -_- 내년엔 가능할까.

다락방 2007-05-25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리셨군요. 한번쯤 독립하는게 어떨까, 저도 생각은 해보지만 전 사실은 독립할 생각이 없답니다. 기생의 삶이 편함을 너무나 잘 아는 탓이지요. 씩씩하게 새로운 새상을 살아보세요. 응원해드릴게요, 수선님.

이리스 2007-05-25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 마음 단단히 먹고. 화이팅! *^^*

moonnight 2007-05-25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 자유로운만큼 여러가지 자질구레한 일들에 발목잡힐 때도 많지만..(드팀전님 말씀처럼. )그래도! 정말 잘 됐어요. 부모님, 안 내보내실려고 하셨을 텐데 어떻게 잘 설득하셨네요. 힘내시고, 앞으로도 홧팅입니다. ^^

stella.K 2007-05-25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패러사이트 싱글 여기도 있네요. 그저 부럽다는 생각이...물론 좋은 것도 있고, 걱정되는 것도 있겠죠? 그래도 사람이 나이가 차면 독립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잘 사십시오.^^

클리오 2007-05-25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독립한 번 하고 나면 집에 저~얼대 못 들어갑니다. ㅋㅋ 많은 것을 배우시고, 좋은 일만 생기시길... ^^

파란여우 2007-05-25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흔 넘어서도 엄마가 빨아주는 속 옷 입고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 받고,
엄마가 다려주는 블라우스 입고 출근하는 제 친구도 있습니다.
이젠 엄마라는 호칭보다는 '노모'가 되신 엄만데요...

저야 뭐, 이십대 초반부터 일찍감치 세상으로 튕겨 나온 사람이라
그 친구의 '아늑한' 부모님 그늘이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경우가 많더군요.
이런 이야기에 제가 할 말 많은건 아시죠?^^
하지만 이제부터 수선님의 제2장이 열린 일입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의 빛과 그림자는 이제 온전히 당신만의 것입니다.
잘 할 수 있을 겁니다.

세실 2007-05-25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흔 넘은 제 친구도 늘 주춤거리고 있는데 님의 글 보여주면 박차를 가할수도...
님의 용기와 새로운 도전에 박수를 보냅니다.
어쩌면 결혼한 친구들이 더 좋아할수도....(님의 집은 훌륭한 피난처가 되잖아요~)

비로그인 2007-05-25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온전히 `싱글'이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kleinsusun 2007-05-26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네...어려운 결정이었어요. 이제 몇 시간 후 이사가네요. 독립만세! 홧팅!^^

드팀전님, 네...전부 저 혼자 한답니다. 잘할 수 있겠죠?^^
참! 전화는 연결 안해요. 유선 전화가 필요 없을 것 같아서...

BRINY님, 네...."투자"라고 생각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잘할 수 있겠죠? 홧팅!^^

kleinsusun 2007-05-26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제가 먼저 체험해 보고 생생한 체험기를 말씀드릴께요.^^

다락방님, 네...저도 "기생"의 편안함과 편리함을 알기에... 독립을 망설여 왔어요.ㅋㅋ 이제... 몇시간 후 이사예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응원해 주세요. 홧팅!^^

낡은구두님, 오키...마음을 단단히 먹고....홧팅!^^

달밤님, 두루마리 휴지 쩜 보내 주세요.ㅋㅋ 홧팅!^^

stella님, 감사합니다. 오늘 긴장해서인지 신경이 날카로웠어요. 까잇~거 편하게 생각할래요. Go Go, 홧팅!^^

kleinsusun 2007-05-26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리오님, 네...좋은 일들이 가득했음 좋겠어요. 홧팅!^^

파란여우님, "당신의 빛과 그림자는 이제 온전히 당신만의 것입니다. "
아...넘넘 멋진 말이예요. 가슴이 벅차요!!!
이제 빛도, 그림자도 누구 핑계댈 수 없는, 기댈 수 없는, 어떤 모습이 되건 제 것이군요. 당분간 불편하고 힘들기도 하겠지만,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홧팅!^^

세실님, 네....벌써 친구 하나가 침을 흘리고 있어요. ㅋㅋ
근데...당분간 가족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개방하지 않으려 해요. 스스로에게 엄격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맞나요?^^

Jude님, 감사합니다. 홧팅!^^

글샘 2007-05-26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드뎌 장기전으로 돌입할 태세를 갖추시는군요. ^^
기생이라기 보담은, 독립에 드는 노력이 녹록치 않은 거라고 봐야죠.
한 사람이 사는 데 얼마나 많은 세상의 지원이 필요한지를 배우시는 기회가 될 것 같네요. 저도 자취 생활을 지긋지긋하다고 할 만큼 했는데요. 처음에만 뭐, 필요한 거 다 사들이지, 좀 있음 그냥 대~~충 살아 지더라구요. ㅋㅋ
좋은 화장지로 보내드려야 할 듯 싶은데... ^^ 배송료가 더 나올 듯 하니, 나중에 직접 들고 갈게요. ㅎㅎㅎ 행복하게 잘 사슈~~ 부디 행복하게.

kleinsusun 2007-05-26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부디 행복하게" 라고 하시니까 눈물이 핑~돌아요.이사 직전의 센티멘털이라고나 할까요? ㅋㅋ 네... 그동안 모르고 살았던 많은 것들을 알게 될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들어요. 감사합니다. 홧팅!^^
 

지난 월요일부터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 14일 째.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고 싶은 바람으로.

아직 운동은 시작을 못했고
(12월 끊임 없는 송년회로 운동을 쉬다가 다시 시작하지 못했다.)
2주간 식사량을 조정해서 2kg를 감량했다.

2주간 초콜릿, 아이스크림 등 열량 높은 기호식품을 한 번도 먹지 않았고,
저녁 6시 이후에는 먹지 않았다.
(14일 중 2일 실패했다. 술 마시는 바람에!)

몸이 슬슬 가벼워지고,
얼굴선도 갸름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자꾸 짜증이 난다.
욕구 불만인가?

다이어트의 의지를 다지는 차원에서
<나는 이렇게 113kg을 뺐다>를 읽고 있다.

212kg였던, 체중계의 최대치를 넘어서 체중 재기도 힘들었던 의사가
암 판정을 받고 이대로 살면 죽겠구나! 자각을 하고 다이어트를 결심한다.

8개월 동안 미국 야구장 전역을 돌아 다니며
단백질 보충제만을 마신다.

먹지 않는 고통을 잊기 위해 좋아하는 야구를 보며
단백질 보충제만으로 8개월을 버틴 끝에 113kg 감량!

다이어트 전과 다이어트 후의,
그러니까 Before & After 사진을 보면
같은 사람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이 책에서도 다이어트를 하는 동안, 특히 초기에,
음식을 먹지 못하는 고통과 박탈감으로 극도로 신경이 예민하고
툭하면 짜증을 내는 상황들이 나온다.

평소 결핍 없이, 아니 과도하게, 먹고 싶던대로 먹던 음식을 제한할 때,
어떤 박탈감, 불안감 같은 것이 느껴지나 보다.
자꾸 초조하고 신경이 예민하다. 겨우 2주했을 뿐인데도!

다이어트를 하고 나서
몸이 가벼워지고 얼굴선이 갸름해지기 시작한 것 외에 좋은점이 있다면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는 거다.
배가 고파서 일찍 깬다. ㅋㅋ

다이어트를 60일간 할 생각이다. 그러니까 46일 남았다.
술의 유혹을 피하기 위해 약속도 가급적 하지 않고
회식도 가지 않을 생각이다.

60일간을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는,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기간으로 삼고 싶다.
그리고 좀....조용히 있고 싶다.
여기저기 휩쓸리지 않고... 감정적 동요 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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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5-13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 고비 잘 넘기시고 꼭 성공하시기 바래요^^
after사진도 보여주시고요^^

마늘빵 2007-05-13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새 불어갑니다. -_- 알면서도 자꾸 맛난거 먹어요.

kleinsusun 2007-05-13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감사합니다. after 사진을 위하여, 불끈!^^

아프님, 제가 회사에서 스트레스 받거나 피곤할 때 마다 초콜릿을 먹었었거든요. 초콜릿만 안 먹어도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아프님도 동참을?^^

BRINY 2007-05-13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통에 든 초코볼을 피곤할 때마다 약처럼 몇알씩 먹어대서, 그리고 피곤하니까 또 몸 움직이지 않아서...겨울방학보다 2킬로 늘었네요. 에궁...늦게도 먹지 말아야하는데, 야자감독하고 집에 오면 간식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해요. 그냥 자버려야지.

kleinsusun 2007-05-13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riny님, 카카오 72% 통에 든거 드시는건가요?
저도 그걸 피곤할 때마다 약처럼 몇알씩 먹었어요. 근데 그 칼로리가 정말 엄청나요!!! Briny님도 다이어트에 동참을?^^

다락방 2007-05-13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수선님.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는건 좋지만, 도대체 왜 수선님이 다이어트를 하셔야 해요? 얼마전 신문에 난 사진을 보니 충분히 아름다우시던데 말입니다.
:)

마늘빵 2007-05-13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쪼꼬렛 앉은자리에서 다 먹어버립니다. -_- 자제해야겠습니다.

kleinsusun 2007-05-13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이제....여름이 다가오잖아요. ㅋㅋ
나름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기간이랍니다. 잠수 기간이기도 하구요. 홧팅!^^

아프님, 네...초코렛은 아예 뜯으면 안돼요. 불끈!^^

부리 2007-05-14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지금도 충분히 아름다우신데 더 이뻐짐 어쩌려구.....요!

kleinsusun 2007-05-14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 ..........쵝~오!^^

2007-05-14 1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Paola의 긴 머리는 섹시하고 에너지 넘치는 파도치는 웨이브.

언젠가 그런 웨이브를 하고 싶은 적이 있었는데
미장원에서는 어떤 파마를 해도 곱슬머리가 아니고서는
그런 자연스럽고도 강한 웨이브가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멋진 웨이브를 가진 Paola는 금요일 마다 미장원에 가서 드라이를 한다.
그 멋진 웨이브를 쭉쭉 편다. 매직 스트레이트!

날 볼 때 마다 머리가 넘 예쁘다고,
어쩌면 그렇게 찰랑거리냐고,
머리 감고 아무 것도 안 해도 그렇게 쫙쫙 펴져서 넘넘 좋겠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너처럼 멋진 웨이브를 갖고 싶어서
여자들이 거금을 들여 파마를 한다고 했더니
Paola는 운전하다 어깨를 들썩하며 말했다.

"하하, 여자들은 만족을 몰라."

사람들은 자신의 결핍,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갖기를 욕망한다.
또는....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을 사랑하기도 한다.

Milan에서 한 시간 넘게 걸리는 작은 마을 Biella.
5층 넘는 빌딩이 하나도 없는,
옛날 성을 개조해서 만든 고즈넉한 호텔이 3개 있는(그 중 하나는 얼마 전 문을 닫았다!),
엘리베이터를 탈 일도, 차가 막힐 일도 없는 작고 아름다운 마을이다.

난 Biella에 갈 때 마다 생각한다.
여기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공기 좋고 평화로운 마을에서
금요일 밤이면 친구들과 소박한 저녁을 먹고,
밤새 웃고 떠들며 와인을 마시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갈 때 마다 예쁜 집들을 가리키며 물어 본다.
"저긴 월세가 얼마나 해?"

Paola의 친구들은 금요일 밤마다 길가에 있는 작은 술집 "Cotton Club"에 모여 술을 마신다.
와인이나 맥주를 한잔씩 손에 들고 몇 시간씩 선 채로 웃고 떠든다.
금요일 밤 Cotton Club에 갔을 때,
Paola의 친구 중 한 명은 내게 말했다.

"왜 하필 주말을 Biella에서 보내? Milan으로 가지 않고?
여긴 너무 작고 따분하잖아."

난 붐벼 터지는 Milan 보다 여기가 훨씬 좋다고,
사람 많고 시끄러운 건 서울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하려다
그냥 씩~웃으며 잔을 들고 말했다. 칭칭!

Paola의 쫙쫙 편 스트레이트 머리를 보며,
왜 주말을 Biella에서 보내느냐는 Paola 친구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내가 미장원에 가지 않으면 펼 수도 없는 곱슬머리라면,
내가 이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줄곧 살았다면,
나도 그들처럼 자꾸만 가지지 못한 것에 눈길을 돌리겠지.

항상, 끊임 없이, 내가 가지지 못한 것, 내 결핍에 집착하며
손을 뻗어 그것들을 가지려 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힘을 내!

가지지 못하면 그 때마다 좌절했다.
울기도 했고, 취할 때 까지 술을 마시기도 했고,
술 취해서 엉엉 울기도 했다.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해서는 감사하지 않으면서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는 끊임 없이 집착했다.
내가 가진 것이 누군가의 욕망의 대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 채!

뜬금 없이, 또는 쌩뚱 맞게 이런 생각을 했다.
가진 것에 대해서는 감사하지 않으면서,
못 가진 것에 대해서 자꾸 집착하고 속상해 하면
슬~슬 웃고 떠들며 즐겁게 걸을 수 있는 길을
종아리에 모래 주머니를 달고 어금니를 꽉 물고 뛰는 것처럼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일수도 있겠구나!

아....이 무슨 섬광과 같은 깨달음? 하하하.

불후의 명곡 <꽃피는 봄이 오면>을 부른 BMK의 3집 앨범에는
제목이 기억 나진 않지만 이런 가사의 노래가 있다.
"내 것이 될 수 없다고 미워할 수는 없잖아~"

이 노래 들었을 때, 뜨.끔.했다.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해서는 당연하게 생각하고,
가지지 못한 건 어떻게든 가지려고 안간힘을 쓰고,
그래도 안 되는 게 있으면 미워했었다. 이솝 우화의 "신포도" 이야기처럼.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해서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만으로
매일매일 소풍 나온 어린애들처럼 즐겁게 지낼 수 있을 텐데....
Paola가 부러워하는 찰랑찰랑한 생머리도 가졌는데 말이다. 하하하

11박 12일 동안의 이번 출장은 나를 다독여주고 다잡아 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엇나갈 뻔 하거나,
잘못된 결정 또는 성급한 결정을 내릴 뻔 하거나,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별 거 아닌 일로 세상 다 산 것처럼 상심해 있을 때,
일상에서 물리적으로,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시간은
커피 필터처럼 머리 속에 헝클어져 있던 잡생각들을 걸러 준다.

11박 12일 동안의 소중한 시간에 감사를,
언제나 변함 없이 따뜻한 친구 Paola에게 감사를,
툭 하면 방황하고 힘들어 하면서도 결국은 씩씩하게 제 자리를 찾는 내 자신에게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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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04-24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면 욕구,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면 욕망....
삶은 욕구를 충족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하네요.
근데 출장을 멋진 곳으로 가시네요. 우리는 서해 건너 짱깨집으로만 보내는데...

2007-04-24 1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07-04-24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긴 출장이었네요. 수고많으셨어요. 늘 그렇지만, 수선님의 글은 읽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져요. ^^ 맞아요. 내가 가진 것에 행복을 느끼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하는 건데.. 왜 이렇게 내게 없는 것이 더 커 보이고 더 절실하게 생각되는 건지. 좋은 글 읽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요. ^^

2007-04-24 1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4-24 17: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기는 Hamburg의 멋대가리 없고 커다란 호텔.
시간은 오전 8시 10분.

봄여름가을겨울의 <외롭지만 혼자 걸을 수 있어>를 들으며
미팅을 준비하고 있다.

요즘 힘들었다.

언젠가 이렇게 자기소개를 하는 씩씩한 여자를 본 적이 있다.
"저는 아무리 힘들고 슬플 때에도 밥은 꼭 챙겨 먹어요.
실컷 울고 일어나서, 눈이 팅팅 부어서도,
라면 한그릇을 다 먹어요. 계란까지 넣어서!
그게 바로 저의 힘! 하하하"

그래, 힘들 때에도, 슬플 때에도,
자기자신을 돌보고 사랑해야 한다.
무슨 일이 있건!

화요일에는 음란서생의 윤서처럼
"나 슬퍼!"를 이마에 써 붙이고는 하루 종일 초컬릿 하나만 먹었다.
밤 늦게 집에 와서, 빈 속이 전해오는 쓰라림을 느끼며 짐을 싸다가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야? 구질구질하게..." 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수요일에는 새벽 같이 일어나
밥도 한 공기 다 먹고,
과감하게 마일리지를 3만 마일이나 공제해서
비즈니스를 타고 Frankfurt로 날아 왔다.
대한항공이 자랑하는 럭셔리한 스카이 침대에 누워서!
기내식도 맛있게 먹고, 후식으로 하겐다즈 딸기를 낼름 먹어치웠다.

슬퍼하는 건,
혼자서 질질 짜는 건 바보 같은 짓!
정치인들의 단식은 시대에 뒤떨어진 코미디!

씩씩하게 미팅을 하러 나가자.
Hamburg에서 즐거운 금요일 밤을 보내자.
그래, 외롭지만 혼자 걸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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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3 15: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4-13 16: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7-04-13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수선님.
씩씩하게 미팅 잘 마치셔요! 즐거운 금요일 밤 보내시라고, 제가 서울에서 빌어드릴게요. 자, 아자아자 화이팅!!!
물론이죠, 혼자 걸을수 있고말고요!!

2007-04-13 16: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7-04-13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밥을 먹어야 힘이나요! 수선님 홧팅~

비로그인 2007-04-13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나신다면, 모 전망대에 오르셔서 BIRDS EYE VIEW를 꼭 한 번 봐주세요. 바닷물이 얼마나 반짝거리는지 몰라요. 베니스보다 더 음침하고 가지런한 운하도 봐주셔야지요. 일 때문에 그저 지나치시지 마시기를. 함부르크는, 제가 두번째로 소중히 여겼던 도시이기도 합니다. 후훗.
그리고, 힘내세요, 라는 말이 필요없을 것 같아요. 보기 좋습니다.

마태우스 2007-04-13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부르크라... 같이 술마셔드릴 수가 없군요 하지만 울나라에서 님을 바라보는 팬들의 존재를 꼭 기억해 주세요 님은 혼자 있어도 혼자 있는 게 아녀요...^^

마늘빵 2007-04-13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에 만나면 카카오 쪼꼬렛 하나 선물할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