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똑똑하고 기발하고 예술적인
노아 스트리커 지음, 박미경 옮김, 윤무부 감수 / 니케북스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과거에는 화가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낼 때 ‘실물처럼 생생한’이라는 표현을 써 왔다. 신라의 화가 솔거(率居)가 황룡사(皇龍寺)의 벽에 소나무를 그리자 새들이 소나무에 앉으려다 벽에 부딪혀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지만 실상 그림은 존재하지 않는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간에 관객의 눈을 속일 만큼 사실적으로 재현해 내는 화가나 조각가의 놀라운 기술을 강조하는 이러한 일화들은 동 · 서양 미술사에서 자주 발견된다.

 

새들을 감쪽같이 속일 수 있는 인간의 그림 솜씨는 최고의 수준이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렇다 보니 우리는 새들이 실재(實在)와 감쪽같은 실재의 모방을 구분할 수 있는 인지 능력이 뒤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솔거의 일화만 보고서 새들이 똑똑하지 않는 동물이라고 단정 짓지 말자. 새를 자세히 관찰해보면 그들이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노아 스트리커(Noah Strycker)의 《새》에 소개된 동물 행동에 관한 놀라운 연구 결과들은 전체의 일부에 불과하다. 인간은 지금까지 만물의 영장임을 자부해왔으나 이 같은 연구 결과들은 인간이 정해놓은 조류 두뇌의 한계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한다.

 

오랫동안 사람만이 거울 표면에 비친 자기 이미지를 파악한다고 믿어왔다. 우리는 거울을 보고 자기 자신을 안다. ‘거울 이미지 인지 클럽’에 가입된 정회원은 오랑우탄과 침팬지, 돌고래, 코끼리 등이 있다. 오랫동안 특별한 동물 단체의 회원 명단에 조류는 없었다. 최근에 까치가 신규 정회원으로 가입됐다. 과학자들은 까치의 턱에 거울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색색의 점을 찍었다. 까치는 점을 긁어내 떼 냈다. 까치의 깃털과 구별되지 않는 검은 색 점을 붙였더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말하자면 까치는 인간처럼 거울을 보면서 몸단장을 했던 셈이다. 까치가 인간 수준의 자의식을 가졌다고 볼 수는 없더라도 자기 인식의 필요조건을 갖추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닭은 기억력이 모자라기로 유명한 새이다. 고작 몇십 초만 지나면 다 잊는단다. 그래서 기억력이 나쁜 사람들에게 ‘닭대가리’라는 별명을 부여하기도 한다. 그러나 각종 연구에 따르면 닭은 꽤 똑똑한 동물이다. 닭은 서열의식이 분명해 집단으로 좁은 공간에 사육하면 서로 주도권 싸움을 하게 된다. 우두머리 닭은 자신보다 서열이 낮은 닭이 누군지 잘 안다. 게다가 닭이 색채를 식별하는 감각이 있어서 붉은색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닭은 붉은 피가 나는 다른 닭의 상처 부위를 부리로 쪼아댄다.

 

 

 

 

 

조류의 생태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풀지 못한 수수께끼가 있다. 그것이 바로 조류의 귀소 본능이다. 과학자들은 새들이 어떤 원리로 집을 찾아 다시 날아오는 것인지 명확히 밝혀내지 못했다. 여러 가지 과학적 증거들만 나왔을 뿐이다. 흔히 비둘기를 우스갯소리로 ‘닭둘기’라고 말한다. 인간의 음식을 먹고 뒤룩뒤룩 살찐 비둘기는 뒤뚱거리며 날지도 못한다. 마치 날지 못하는 닭과 흡사하다는 이유로 ‘닭둘기’라는 오명을 얻었다. 과거 우편배달 임무를 맡았던 비둘기는 거리가 멀고 낯선 출발 지점에서 반드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만큼 길에 밝았다. 강한 귀소 본능과 빠른 비행 능력은 비둘기를 뛰어난 메신저(messenger)로 만들었다.

 

이처럼 사람만큼 유용한 능력을 지닌 동물들이 많지만 위축될 필요는 없다. 대부분의 생물학자가 여전히 인간은 자연계의 어떤 존재보다 발전된 비범한 지적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앨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의 고전 스릴러 영화 『새』에 나오는 장면들처럼 특별한 원인 없이 그저 새들이 갑자기 사람들을 공격하는 일은 없다. 흔히 볼 수 있는 새들을 공포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더욱 섬뜩한 느낌을 받는다. 그렇지만 이보다 더 섬뜩한 사실이 있다. 인간은 크고 작은 자연재해를 받아들이며 스스로 길을 찾아온 존재다. 문제는, 길 찾기를 할 수 없을 지경으로 자연을 망쳐버린 오만의 극점에 지금 우리가 서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다른 종들에 대해 얼마나 오만했는가를 깊게 반성할 줄 모르는 동물이다. 조류학자들의 새 탐구는 결국 ‘인간 탐구’였다. 새도 사람처럼 사랑하고, 분노한다. 그리고 기억력도 뛰어나다. 인간만이 만물의 영장 운운하며 동물을 그저 이용과 도구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오만을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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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4-04 12: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비둘기의 귀소본능만 해도 대단하지요... 낯선 곳에서 돌아오는 능력을 본능이라고만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것 같아요..처음 가는 곳에서 집에 가는 교통편을 찾아야하는 저에 비한다면 비둘기가 낫지요 ㅋㅋ

AgalmA 2017-04-04 14:56   좋아요 2 | URL
물고기들, 곤충들의 귀소본능도 정말 대단하죠. 바다를 횡단하는 나비나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곳인데도 산란 장소였던 곳으로 죽을 힘을 다해 돌아오는 물고기들 보면 찡하기도 하고... 사람이 인류의 처음을 알고 싶어하는 것도 그 비슷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일종의 귀소본능.
처음 간 곳에서 술까지 만취면 헬이겠어요ㅎㅋㅎ;;

겨울호랑이 2017-04-04 16:45   좋아요 1 | URL
^^; Agalma님 말씀을 들으니 제가 술취한 사람의 귀소본능을 고려하지 못했군요. ㅋㅋ 술을 마시면 어떻게든 집에 오는 그 미스터리란..

cyrus 2017-04-04 17:08   좋아요 2 | URL
이 책에 재미있는 연구 결과들이 많습니다. 비둘기도 박쥐처럼 사람이 들을 수 없는 초저주파를 감지해서 방향을 설정한다고 합니다. 산갈가마귀라는 새는 먹이를 이곳저곳 여러 장소에 저장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 새는 먹이를 저장한 장소의 위치를 기억합니다. 정말 똑똑한 새들이 많습니다. ^^

cyrus 2017-04-04 17:13   좋아요 2 | URL
술 취한 상태에서 알아서 귀가했던 1인입니다.. ㅎㅎㅎ
몸은 안 따라주는데도 마음은 벌써 집으로 향해 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4-04 17:17   좋아요 2 | URL
ㅋㅋ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도 한때인듯합니다 ㅋㅋ

cyrus 2017-04-04 17:26   좋아요 2 | URL
그... 그런가요? ㅎㅎㅎ 술 마실 때 방심하지 말아야겠어요. ^^;;

북프리쿠키 2017-04-04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까치..멋지네요.
거울을 인식하는 능력이라..평소에 늘 궁금했던 의문점이었는데
재미있네요^^;

cyrus 2017-04-04 17:14   좋아요 0 | URL
사람들이 싫어하는 새들은 생각보다 아주 똑똑합니다. ^^

yureka01 2017-04-04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나네요..히치콕 감독의 버드`~~~~

cyrus 2017-04-04 17:15   좋아요 0 | URL
그 유명한 영화를 아직 보지 못했어요. ^^;;

jeje 2017-04-04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ㅎㅎ

cyrus 2017-04-04 17:16   좋아요 0 | URL
책 속에 흥미로운 연구 결과들이 많이 있습니다. ^^
 

 

 

 

 

 

 

 

 

 

 

 

 

 

 

 

 

* 《드가 : 무희의 화가》 앙리 루아레트, 시공사, 1998

* 《에드가 드가》 베른트 그로베, 마로니에북스, 2005

 

 

흔히 에드가 드가(Edgar De Gas)를 인상파 화가로 분류하지만, 따지고 보면 사실주의에 가깝다. 춤추는 여인들, 리허설 등에서 발레리나의 순간 동작과 예기치 않은 움직임을 포착했다. 그의 작품들은 섬세하고도 치밀한 관찰과 묘사는 마치 현장을 보는 듯한 감동을 전해 준다. 그렇지만 드가의 그림을 비판하는 연구가들은 그의 여성 혐오와 인종 차별이 그림 속에 나타난다고 분석한다.

 

 

 

 

 

 

 

 

 

 

 

 

 

 

 

 

 

제임스 H. 루빈(James H. Rubin)은 드가의 그림을 비판적으로 보는 미술사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책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 (마로니에북스, 2017)에 드가의 작품 몇 점을 소개하면서 그림에서 드러난 드가의 여성 혐오와 인종 차별을 언급하고 있다.

 

 

 

 

 

 

드가의 『개의 노래』는 드가가 즐겨 찾았던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 엠마 발라동(Emma Valado)을 묘사한 작품이다. 드가는 그녀의 노래에 열광해 이 작품을 제작했다. 엠마가 취하고 있는 동작은 양쪽 앞다리를 내민 개를 흉내 낸 자세이다. 드가는 개를 흉내 내고 있는 엠마의 자세를 여러 번 스케치한 습작을 남겼다. 루빈은 이 습작을 근거로 드가가 인간의 몸짓과 표정을 동물의 속성과 흡사하게 그리려는 작업에 몰두했다고 주장한다.

 

 

 

 

 

 

 

 

 

 

 

 

 

 

* 《추의 역사》 움베르토 에코, 열린책들, 2008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을 중심으로 하는 고전적 진화론에서는 유사성의 관점에서 인간과 동물을 비교했다. 그 결과, 그들은 인간이 유인원에서 진화되었다고 믿게 되었다. 그런데 다윈을 추종하는 일부 사람들은 진화의 개념을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 기능적으로 점차 낮은 것에서 높은 것으로,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발전하는 것으로 봤다. ‘환경에 잘 적응한 개체만이 살아남는다.’는 다윈의 자연 선택설(natural selection)은 사회에 적용되어 사회진화론을 낳았다. 사회진화론자들은 인간 사회에서도 적자생존의 원칙이 적용된다고 믿기 때문에 사회의 불평등이나 계급 차이는 정당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골상학자들은 두개골의 형상에서 사람의 성격이나 심적 특성, 운명 등을 기준으로 분류하고, 구별 지었다.

 

 

 

 

 

 

불행하게도 사회진화론과 골상학은 예술에 영향을 주었다. 특히 과격한 반유대주의로 악명 높은 드가는 그림 속 유대인을 매부리코를 가진 인물로 묘사했다. 루빈은 드가를 ‘골상학자’라고 대놓고 말했다. 19세기 유럽인들은 유대인의 못생긴 매부리코가 그들의 사악함을 상징한다고 믿었다.

 

 

 

 

 

 

 

 

 

 

 

 

 

 

 

* 《무서운 그림》 나카노 교코, 세미콜론, 2008

 

 

 

드가의 여성 혐오를 생각한다면, 그는 엠마를 ‘개보다 못한 여자’로 그렸을 수 있다. 나는 『개의 노래』가 드가의 여성 혐오가 반영된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예전에 밝혔던 주장이 옳다고 확신하지 않는다. 루빈의 해석도 일리가 있다. 드가는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생각했기 때문에 발레리나와 매춘부를 사회적으로 낮은 하층 계급으로 이해했다.

 

 

 

 

 

 

19세기 파리의 발레리나와 매춘부 들은 대부분은 가난한 노동자 계층이다. 발레리나들은 생계를 위해서 화가의 모델이 되거나 부유층 남자들의 정부(情婦)가 되는 것은 물론, 매춘부로 몸을 팔아야 했다. 발레리나가 춤추는 모습을 묘사한 드가의 그림들을 잘 살펴보면 양복을 말끔히 차려입은 신사가 멀찌감치 서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신사가 바로 발레리나의 후원자이다. 발레리나가 등장하는 그림들은 화가의 수익을 높여주는 인기 소재였고, 드가는 발레리나를 그린 작품들을 장난스럽게 ‘상품’이라고 말했다. 그 당시 발레리나는 무용이라는 예술 관련 분야의 일에 종사하면서도 예술가로 인정받지 못한 직업이었다.

 

 

 

 

 

 

 

 

 

 

드가는 판화의 한 종류인 모노타이프(monotype) 기법으로 매춘부들의 모습을 시리즈로 제작했다. 그는 이 작품을 개인적으로 친분 있는 신사들에게 공개하기 위해 만들었다. 드가가 세상을 떠난 후, 드가 유족들은 모노타이프 일부를 파기했다. 이 작품들이 완전히 사라졌으면, 우린 드가가 매춘부를 그렸다는 사실을 영영 알지 못했을 것이다. 드가의 매춘부 그림은 ‘엿보기’에 가깝다. 생전의 드가는 자신의 속마음을 남에게 잘 드러내지 않는 인간이었다. 드가가 여성을 싫어한다고 해서 그를 무성애자(無性愛者)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당연히 매춘부 그림이 화가의 성적 취향과 관음증을 반영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는 드가의 엿 보는 행위를 상상한 작품들을 남겼다. 피카소의 그림에 묘사된 드가는 창문으로 벌거벗은 매춘부들을 몰래 엿보거나 그녀들을 관찰하는 신사로 등장한다. 드가는 그림 밖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관찰자였다. 그를 존경하는(?) 피카소는 대선배를 그림 안에서 여성을 엿보는 관찰자로 묘사했다. 그런데 피카소도 드가와 별반 다르지 않다. 따지고 보면 그림을 보는 행위는 관음증 환자의 행동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1]

 

 

 

 

 

 

 

 

 

 

 

 

 

 

 

 

* 《몸단장하는 여자와 훔쳐보는 남자》 파스칼 보나푸, 이봄, 2013

 

 

 

남성 화가들은 시각적 쾌락을 위해 여성을 그렸다. 다시 말해 그림 속 여성은 남성의 시선에 의해 수동적으로 드러나는 존재에 불과했다.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신비화는 수많은 다양한 여성들을 ‘매춘부’와 ‘동정녀 마리아(Virgin Mary)’의 두 부류로 분류했다.

 

 

 

 

 

 

 

 

드가는 말년에 신체 일부를 씻거나 목욕하는 여성을 주제로 한 그림을 여러 점 남겼다. 여성의 목욕하는 행위는 여성의 정결함을 유지해주는 행위인 반면, 에로틱한 엿보기의 대상이 된다. 드가가 ‘관찰한’ 목욕하는 여성은 에로틱한 ‘매춘부’와 정결한 ‘동정녀 마리아’의 이미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드가는 ‘관찰자’가 되어 남성이 보고 싶어 하는 여성의 모습을 그려냈다. 리듬에 온몸을 맡긴 발레리나를 지켜보는 후원자, 몸으로 유혹하는 매춘부를 바라보는 매음굴 손님은 드가의 분신이다. 드가의 그림에 그가 생전에 들키고 싶지 않았던 ‘고개 숙인 욕망’이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1] “당신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 따지고 보면 그림을 보는 행위는 관음증 환자의 행동과 다를 바가 없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그림은 언제나 욕망과 맞물려 있었다.” (파스칼 보나푸, 《몸단장하는 여자와 훔쳐보는 남자》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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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03 19: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4-04 10:25   좋아요 0 | URL
예술과 외설을 구분하는 기준이 애매해요. 이런 문제를 논하면 끝이 없습니다. ^^;;

AgalmA 2017-04-03 2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환자가 아니더라도 모든 인간은 관음증적 시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난과 지탄 받을 걸 알면서도 인간의 그런 욕망을 당당히 표현하는 예술가들을 저는 옹호도 비난도 하고 싶진 않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최강으로 적응하는 ˝물곰˝의 존재가 참 특이하더군요. 지구에 존재하지도 않는 절대온도 속에서도 살아남는 생명체죠. 외계에서 유입된 생명체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던데, 그렇다면 진화론도 상당히 달라질 지점이 생기죠.

cyrus 2017-04-04 10:29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비판은 할 수 있어도 비난은 하면 안 됩니다.

물곰 같은 동물이 신기해요. 정말로 지구가 멸망해도 살아남을 존재입니다. ^^

레삭매냐 2017-04-04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가의 그림을 단순하게 dancer on the stage
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에투알이라는 제목이 있었군요.

고호의 해바라기랑 더불어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입니다.

그전에 무서운 그림을 읽었는데, 사실은 이 멋진
그림 당대 스폰서십에 대한 비화가 숨겨 있는진
미처 몰랐네요. 씁쓸합니다.

cyrus 2017-04-04 12:19   좋아요 1 | URL
에투알이 가장 인기 있는 발레리나를 부를 때 쓰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가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해서 ‘춤추는 무희’로 알려졌어요.
 
인간 이후 - 인류의 대량 멸종과 그 이후의 세상
마이클 테너슨 지음, 이한음 옮김 / 쌤앤파커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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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개 생명의 역사는 곧 멸종의 역사이다. 6억 년 전부터 지금까지 다섯 차례의 대량 멸종이 있었다. 그 시기는 오르도비스기 말(4억4000만 년 전), 데본기 후기(3억7000만 년 전), 페름기 말(2억5000만 년 전), 트라이아스기 후기(2억 년 전), 백악기 말(6,500만 년 전)이다. 그중 백악기 멸종이 특히 유명한데, 이때 중생대를 지배했던 공룡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뿐 아니라 그 멸종 원인으로 지름 10km의 운석이 충돌했다는 가설이 제안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생대 지구의 지배자 공룡의 멸종은 극적이긴 하지만 페름기의 대멸종 사태에는 비길 바가 못 된다. 그나마 약 4분의 1의 생물 종이 살아남은 공룡 멸종 때와 달리 전멸이라고 할 수 있는 95%가 멸종했다. 페름기에 내려진 재앙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진짜 비극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구름이 걷히고 태양이 내리쬐면서 지옥과 같은 무더위가 시작됐다. 시베리아 화산들이 지각 속 깊은 곳에 있던 이산화탄소를 방출한 것이 온실효과를 일으킨 것이다. 게다가 기온이 올라가자 바다 밑바닥에 있던 엄청난 양의 메탄이 대기로 올라와 온실효과를 더욱 가중했다.

 

생태계는 기후 변화에 가장 민감하다. 현재 인간의 활동에 의한 서식 환경 악화로 많은 생물이 멸종의 위기에 처해 있다. 이미 멸종이 대규모로 진행되고 있다. UN의 한 보고서는 하루 150종이 멸종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금의 이러한 멸종 속도를 과거 다섯 번의 대멸종 사태와 견주어 ‘여섯 번째 멸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동식물들이 대규모로 사라지고 있다. 환경변화에 민감한 생물 종(種)의 위기 소식은 이제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하지만 최근의 생물 종 감소는 다윈이 말한 자연선택 과정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절멸에 가깝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과학 칼럼니스트 마이클 테너슨은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보고 느낀 멸종의 징후를 고발하고 있다. 올해로 도시 탄생 112주년인 라스베이거스는 ‘사막의 땅’에서 ‘도박의 도시’로 일궈냈다. 풀 한 포기 자라기 힘든 사막 한가운데 세워진 라스베이거스는 인류의 지칠 줄 모르는 도전 그 자체다. 그러나 화려한 네온사인과 우뚝 솟은 카지노 호텔 뒤로 가려진 사막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황폐해지고 있다. 사막화는 인류에게 위험을 알리는 신호다. 멕시코와 과테말라의 삼림 파괴는 심각하다. 매년 무분별한 벌목으로 과테말라의 숲 약 5만 4,000헥타르씩 파괴될수록 그 안에 서식했던 생물 다양성 중 3분의 2가 사라진다. 열대림이 파괴되면 토양층이 폭우에 노출되어 토양이 유실되고, 가뭄과 홍수 피해가 늘어난다. 지구 생물 4분의 3의 고향으로 추정되는 열대림의 소멸은 지구상 생물의 대량 멸종 전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문제는 현재 진행 중인 우리 시대 생물의 멸종이 다른 종으로 쉽게 복구될 수 있는 비교적 미온적인 과정인가, 아니면 지난 5번의 대멸종 사건에 견줄만한 대격변의 전조인가 하는 것이다. 종의 소멸이 자연적인 회복력보다 빠르다면 언젠가 모든 생물은 사라지게 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인다. 마이클 테너슨은 현재의 지구온난화와 인간 활동에 의한 토양 부족, 그리고 이에 따른 생물 다양성의 소멸 등을 지구 역사상 6번째 대멸종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멸종 이후 ‘지구의 빈자리’가 어떻게 될지 예상한다. 우리도 멸종 동물 목록에 오를 수 있다. 동식물이 멸종되는 상황에 그저 안타까워해야 할 입장이 아니다. 여섯 번째 멸종 이후 인간이 생존하려는 방안은 다양하다. 지구를 떠나 화성으로 이주할 수 있고, 인간 복제와 유전자 조작 기술 등을 동원하여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환경에 적응하는 방법도 있다. 이 중에 ‘정답’을 고르기가 어렵다. 우리는 미래가 아닌 현재의 ‘문제들’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 이 시각에도 누군가는 자연 훼손을 일으켜 생태계를 파괴하고, 지구 반대편에 사는 또 다른 누군가는 이 문젯거리들을 안고 살아간다. 멸종은 언젠가 우리 인류에게도 닥쳐올 것이다. 멸종위기를 무시하다가는 인간이 멸종의 마지막 당사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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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4-03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한 것은 언젠가 인간도 멸종할거라는 거...영원한곳도 영원한 것도 없으니까요.

cyrus 2017-04-03 18:05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는 진화의 개념이 잘못 알려졌어요. 경쟁 속에 살아남은 자가 ‘완벽한 강자’라고 생각해요. 진화를 그저 ‘적자생존’의 의미로 이해합니다. 예전에 저도 그렇게 잘못 알고 있었어요. ‘완벽한 강자’는 없습니다. 예상치 못한 변화가 찾아오면, 지금의 강자도 쉽게 대처하지 못하니까요.

yureka01 2017-04-03 18: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럼요..시간의 변화 앞에 강자는 없습니다.겸허라는 덕목이 그래서 요구 되죠....

꼬마요정 2017-04-03 2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화는 ‘살아남기‘죠.. 진보가 아니라요. 사실, 인류가 멸종하는 게 지구를 위해서 낫지 않을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어떻게든 다같이 살아가고 싶은데 그게 참 어렵습니다.

cyrus 2017-04-04 10:31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변화하는 것이 진화입니다. 요즘 같은 시기에 공생의 의미가 더욱 중요해졌어요.

책한엄마 2017-04-05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저 사진이 사일러스님일까 섣부르게 추측했습니다.^^;;흐흐
다 진실이었군요!!

cyrus 2017-04-05 10:53   좋아요 0 | URL
실제로 마그리트 그림처럼 똑같이 뒷모습을 찍은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올리고 싶다고 생각한 적 있었어요. ㅎㅎㅎ
 

 

 

 

 

 

 

10개의 내용 모두 사실일까요, 거짓일까요? 여러분들 알아서 판단하세요.

 

 

 

 

1.

제가 처음으로 알라딘 서재에 글을 공개한 날이 2010년 5월 8일입니다.

이틀 뒤인 5월 10일에 양철나무꾼님이 알라딘 서재에 첫 번째 글을 남겼습니다. 그다음 날에 저는 육군 만기 전역을 했습니다.

 

 

2.

아주 썰렁했던 제 서재에 처음으로 누군가의 댓글이 달린 날이 2010년 10월 5일입니다. 그다음 날에 양철나무꾼님이 제 서재에 댓글을 남겼습니다.

그때부터 양철나무꾼님을 알게 됐습니다.

 

 

3.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2010년 서재의 새얼굴’에 선정됐습니다.

2010년에 거의 처음으로 눈에 띄는 활동을 한 회원들을 ‘서재의 새얼굴’로 선정한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서재의 달인’이 ‘본상’이라면, ‘서재의 새얼굴’은 ‘신인상’입니다. ‘서재의 새얼굴’은 엠블럼이 없습니다.

 

 

4.

2010년 5월 8일부터 2017년 3월 31일까지 서재에 글을 남기면서 받은 ‘Thanks to 적립금’ 총액은 178,550원입니다.

 

 

5.

 

 

 

각종 리뷰 이벤트에 응모해서 받은 상금 및 적립금 총액 > 제가 받은 ‘Thanks to 적립금’ 총액. 제가 상금이나 적립금이 걸린 리뷰 이벤트 당첨을 위해 정말 혼을 담아서 리뷰를 씁니다. 글의 내용이 좋아도 문장에 혼이 실리지 않으면 이벤트에 당첨될 수 없습니다.

 

 

6.

2010년 5월 8일부터 2017년 3월 31일까지 제가 다른 서재에 남긴 댓글 개수는 총 8,119개입니다.

 

 

7.

지금까지 ‘이달의 당선작’으로 선정된 모든 글은 ‘전체 공개’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당선작 중 단 한 편도 삭제하지 않았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당선작으로 선정된 글을 3개월 이내에 비공개 또는 삭제하면 당선이 취소되어 적립금을 반납해야 합니다.

 

 

8.

2010년 7월부터 ‘이달의 당선작’으로 변경됐습니다. 그전까지는 ‘이주의 당선작’이었습니다. 저는 ‘이주의 당선작’에 한 번도 선정된 적이 없습니다. YES24 ‘이주의 우수 리뷰’에도 아직까지 선정되지 못했습니다.

 

 

9.

작년에 YES24가 주최하는 리뷰 이벤트에 당첨됐습니다. 알라딘이 아닌 타 온라인 서점 리뷰 이벤트에 처음으로 응모한 것이었고, 운 좋게 당첨됐습니다.

 

 

10.

2010년에 작성된 ‘2010년 이벤트의 달인’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어깨에 힘 주면서 ‘자랑 글’을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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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4-01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쏭달쏭 만우절에 어울리는 재미난 포스팅이네요. ㅎㅎ

cyrus 2017-04-01 21:14   좋아요 0 | URL
더 재미있게 만들고 싶었는데 쓸만한 내용을 많이 건져내지 못했어요. ^^;;

2017-04-01 1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4-01 21:15   좋아요 1 | URL
2년 전까지만 해도 삼성 팬이었어요. 작년은 정말 최악이었어요. 알고 보니 순실 라이온즈였습니다.. ^^;;

stella.K 2017-04-01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요즘 혼을 못 담고 있는 것 같아.ㅠ
예스24는 요즘 주간 우수 리뷰 안 하나 봐.
요근래 들어 본 적이 없어.

cyrus 2017-04-01 21:17   좋아요 1 | URL
혼 드립은 웃으라고 한거니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세요. ㅎㅎㅎ

예스24 주간 우수 리뷰 선정 계속 하고 있어요. ^^;;

오후즈음 2017-04-01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혼을 담아 글을 써야 하거늘. 그렇지 못해 근 일년 서재를 비워두고 있네요.
어쨌든, 모처럼 웃으며 읽었습니다. ~^^

cyrus 2017-04-01 21:19   좋아요 0 | URL
혼 드립은 개그입니다. 그냥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합니다. ^^;;

세실 2017-04-01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의 새얼굴도 있나요? ㅎㅎ

cyrus 2017-04-01 21:23   좋아요 0 | URL
2010년에 딱 한 번 공개됐다가 사라진 혜택이 있었습니다. 그게 왜 사라졌냐면, ‘서재의 새얼굴‘에 선정된 분이 알라딘 서재 활동을 오래 하신 분이었어요. 그분은 ‘서재의 달인‘에 선정될만한 분이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서재의 새얼굴‘로 선정된 거죠. 그 이유로 말이 많았어요.

yureka01 2017-04-01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매달 리뷰글 당선작에 등용되는 유저라는 사실도 진짜가 맞습니다~

cyrus 2017-04-01 21:23   좋아요 0 | URL
유레카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쑥스럽군요. ^^;;

서니데이 2017-04-01 1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우절 기념으로 전부 맞는 걸로 찍겠습니다.^^

cyrus 2017-04-01 21:25   좋아요 1 | URL
만우절을 위한 재미있는 거짓말 만들기가 정말 어려워요. 쓰다 보니 자랑 글이 되었어요. 주말 잘 보내세요. ^^

보슬비 2017-04-04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만우절은 특별한일 없이 그냥 지나가서 잊고 있었어요. 이번엔 알라딘에서 만우절 이벤트도 안한것 같은데, cyrus님의 글을 읽으니 반갑네요. 하지만 10개중 어떤것이 거짓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ㅎㅎ

cyrus 2017-04-04 20:29   좋아요 1 | URL
몇 년 전부터 알라딘이 만우절 이벤트를 하지 않더군요. 요즘 알라딘은 굿즈 판매 관련 이벤트를 참 많이 준비해요. 10개의 내용 모두 다 사실입니다. ^^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 나만의 질문을 찾는 책 읽기의 혁명
김대식 지음 / 민음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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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 책에 대해 물을 수 있을까

그걸 정말 내가 썼는지? [1]

 

- 파블로 네루다 -

 

 

 

인터넷의 바다에 떠도는 정보는 내 것이 되기 힘들지만, 내가 읽은 책에 있는 정보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2]가 된다. 꽁꽁 얼어버린 생각의 바다 한가운데 서서 책을 읽으며 도끼질을 해야 한다. 그 얼음을 깨고 나온 펄떡이는 글은 우리에게 삶의 자양분을 선사한다. 그런데 뚜렷한 목표 없이 섣부르게 도끼질을 해대면 허송세월할 수 있다.

 

 

 

 

 

 

생각의 바다를 깨기 전에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책 속에 나열된 얼어붙은 단어들을 살아 있는 모습 그대로 만들어야 한다. 무조건 읽는다고 해서 종이에 얼어붙은 단어들이 깨지지는 않을 것이다. 거기서 흘러나온 냉기는 우리의 생각마저 얼어붙게 한다. 냉기의 근원을 꿰뚫어 보는 독자의 ‘입김’이 더욱 세져야 한다. 우리는 입김을 뿜으면서 ‘질문’을 해야 한다. 잘 정리된 현자의 생각보다 단순한 질문이 진리에 한층 더 가까울 때가 있다.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원론적이면서도 도발적인 질문이다. 이에 대해 김대식은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를 통해 자신만의 답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입김을 불어대면서 읽었던 책들을 소개한다. 저자의 입김에 사르르 녹아내린 종이 속 단어들은 더욱 유용하고 의미 있는 해박한 통찰력이 되어 살아 숨 쉰다. 그는 책 읽기의 방향을 제시한다. 이를 위해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질문’을 강조한다. 저자가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중요한 말은 그가 읽은 배철현의 책 속에 있다.

 

‘질문’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문지방이며, 미지의 세계로 진입하게 해 주는 안내자다. 질문은 지금껏 매달려 온 신념이나 편견을 넘어 낯선 시간과 장소에서 마주하는 진실한 자신을 찾기 위해 통과해야만 하는 문이다. (배철현, 《신의 위대한 질문》에서, 38쪽)

 

질문으로 진실한 자신을 발견하는 일. 이것이 독서의 근본적인 목적이다. 질문은 한 걸음 멈추어 서서 나를 바라보게 한다. 딱딱하게 얼어붙은 종이만 보며 뛰었던 삶의 열기를 차분히 가라앉히고, 종이로 만든 공간에서 얽히고설킨 생각을 가다듬는다. 계속 행진해야 할 과제는 무엇이며, 잘라내야 할 낡은 지식은 어떤 것인지 간추리는 시간을 갖는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어쩌면 그만큼 버거운 짐도 없다. 태어나고, 공부하고, 그리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언젠가는 죽음에 이르는 그 순간까지 나 자신이라는 존재와의 전쟁은 계속된 질문으로 이루어진다. 살아가는 것, 존재하는 것, 호흡하는 일상적인 반복적 삶의 모습에서 나를 또다시 발견하는 질문은 우리 머리와 가슴 속으로 파고 들어간다. 인간이 무엇이냐는 건 뇌과학자에게도 만만치 않은 질문이다. 인간의 문제는 수많은 문제와 얽히는 복잡하고 미묘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 이 책의 구성에서도 알 수 있다. 저자는 다양한 분야의 책에서 인용한 내용에 자기 생각을 덧붙여 해답을 찾기보다는 본질적인 질문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를 종합해서 인생의 질문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 건 불가능한가? 나는 불가능하다고 보지 않는다.

 

질문하는 행위는 미래로 향하면서 통과해야 하는 분기점을 발견한 사람에게 중대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한다. 미래란 늘 장밋빛이거나 잿빛이다. 턱없는 낙관주의가 유토피아(Utopia)의 환상을 부풀린다면, 근거 없는 비관주의가 디스토피아(dystopia)의 절망을 퍼뜨린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우리 후손들의 ‘현재’가 될 ‘미래’는 낙관과 비관 사이,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리란 사실이다. 그 지점이 어디쯤 될 것인지를 질문으로 조망할 수 있다. 그러면 일방적인 낙관도, 편협한 비관을 뛰어넘는 균형 감각이 유지된다.

 

유발 하라리(Yuval Harari)는 인간과 신의 결합을 뜻하는 《호모 데우스(Homo Deus)》라는 책에서 인류의 미래를 제시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은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하는 신적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가 바로 생각의 분기점이다! 이 지점에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는 김대식은 갈 길 바쁜 독자들의 손을 잡으면서 질문하고 있다. 우리 인간은 왜 살아야 하고,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나보다 먼저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를 읽은 당신이 정말 중요한 질문을 지나치고 책을 덮었다면 321쪽을 다시 펼쳐보길 바란다. 당신이 무심코 읽은 321쪽의 단어들은 아직 깨지지 않은 검은 얼음이다. 그 얼음을 깨뜨려야 아직 오지 않은, 낯선 미래의 시간을 마주할 수 있다.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를 읽고, 거기에 인생의 지침을 찾는다는 건 낭패 보는 일이다. 남들이 다 발견한 것들을 눈으로 보기만 하는 독서는 ‘설거지’ 독서[3]이다.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꽤 많은 책들을 독파한 저자의 능력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가 읽었던 책들이 생소하다고 해서 불평할 이유도 없다. 그가 읽었던 책들을 따라 읽으려고 한다면, ‘설거지’ 독서를 할 가능성이 있다. 누가 읽든 간에 우리 손에 쥐어진 책은 차가운 냉동 상태다. 평범한 독자들이 ‘설거지’ 독서를 피하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대로 얼려진 책이 녹을 수 있도록 ‘입김’으로 불어야 한다. 책이 완전히 녹으면 매끄럽고 날이 선 도끼로 변신한다. 그것은 우리의 의식을 한 방 때려줄 수 있는 서늘한 사유가 된다. 그것이야말로 제대로 읽고, 제대로 질문하는 일이다. 매번 다 읽고 나서 책을 덮기만 하던 나는 이제 정색을 하고 스스로 묻는다. ‘내가 읽은 책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그걸 정말 내가 제대로 읽었는지?’ 새로운 유행의 새로운 책을 찾아 두리번거릴 것이 아니라 변함없는 책 속에서 새로운 인식을 끌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이 세상을 마감하는 날이 있다. 그때 어떤 모습으로 신 앞에 설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책 읽는 시간을 무의미하게 허비할 순 없다. 인간에게 가장 두려워하는 신의 질문이 무엇인지 아는가. “세상에 있을 때 넌 뭘 했느냐?”이다.

 

 

 

 

[1] 《질문의 책》 49쪽 (정현종 역, 문학동네, 2013)

[2] “책은 우리들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이어야만 한다.” (프란츠 카프카)

[3] ‘설거지’ 연구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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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7-04-01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늘 궁금 했거든요 ㅋ 책을 읽어야하는 이유도 알겠고 다양한 지식을 정리하는 방법도 알겠는데 그 질문 하는 방법에 대한 ‘어떻게‘란 무엇인지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한 1인 입니다. 그러니까 이 책에 ‘어떻게‘ 란 부름에 명료한 확답이 페이지 321에 있단 말씀이시죠 ㅋㅂㅋ ~당장 달려가서 펴보고 싶네요 ㅋ

cyrus 2017-04-01 10:24   좋아요 0 | URL
이 책에 ‘명료한 확답’이 없어요. 제가 321쪽을 다시 보라는 이유는 저자가 간접적으로 제제시한 ‘질문’을 확인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결론은 우리 독자가 찾아내야 합니다. ^^

stella.K 2017-04-01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도 읽었구나. 이 책 좀 평점 주기가 애매했어.
별 넷 주기엔 많은 것 같고, 3주기엔 적고.
반 개짜리 있으면 3개 반이 적당할 듯도 한데...
이 책 여백이 너무 많다고 까는 사람도 많던데
나도 좀 그점은 아쉽더군.

cyrus 2017-04-01 21:27   좋아요 1 | URL
사실 내용도 딱히 특별한 것이 없었어요. 처음 이 책을 직접 봤었을 때 분량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조금 당황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