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모리 후지노 《던전에서 만남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

(소미미디어, 일본에서는 11권까지 발행, 국내는 10권까지 발행)

 

 

 

 

아이소라 만타의 라이트노벨 《기어와라! 냐루코 양》(약칭 ‘냐루코 양’)은 제1회 GA문고 대상 전기 장려상을 받은 작품이다. GA문고는 라이트 노벨을 전문적으로 출판하는 브랜드이다. 이 회사는 매년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장려상 입상 작품을 선정한다. 그리고 장려상 수상작 중에 우수상과 대상 작품을 선정한다. 수상 선정 절차가 좀 까다로워서 그런지 대상 작품이 잘 나오지 않는다. 최초로 GA문고 ‘대상’을 받은 라이트노벨 작품이 오모리 후지노의 《던전에서 만남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약칭 ‘던만추’)이다. 이 작품은 제4회 GA문고 대상 후기 장려상을 수상했고, 그 해 GA문고 대상의 영광까지 안았다.

 

 

 

 

 

 

 

《던만추》가 정식 발매된 해는 2013년이다. 라이트노벨이 발매된 후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출판되었다. 《던만추》가 발매되고 있을 때, TV 애니메이션 《기어와라! 냐루코 양 W》이 방영되고 있었다. 두 작품이 ‘GA문고 수상작’이라서 애니메이션 중간에 《던만추》가 깨알같이 나오기도 한다. 그것도 두 번이나.

 

 

 

 

 

《던만추》의 TV 애니메이션도 유명한데, 인기몰이의 주역이 바로 《던만추》의 히로인 ‘헤스티아(Hestia)’다. 그녀의 복장은 남성 덕후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녀의 가슴 아래에 파란 리본 끈 장식이 있다. ‘가슴 끈 디자인’은 헤스티아의 특정 신체 부위를 부각해주는 효과가 있다. 인터넷 검색 창에 ‘헤스티아’를 검색하면 대부분 《던만추》의 헤스티아 사진이 나온다. 헤스티아의 복장이 궁금하면 직접 확인해보시길.

 

헤스티아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화로(火爐)의 여신이다. 로마 신화에서는 ‘베스타(Vesta)’로 알려져 있다. 그리스 신화에는 가장 유명한 여성들이 즐비하다. 올림포스(Olympos) 12신 중에는 헤라(Hera), 아프로디테(Aphrodite), 아테나(Athena), 아르테미스(Artemis), 데메테르(Demeter)가 있다. 신들과 연관된 여성들이 더 많다. 프시케(Psychē), 이오(Io), 메데이아(Medea), 아라크네(Arachne), 헬레네(Helene) 등이 있다.

 

그런데 헤스티아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필자도 모르고 있었다. 왜냐하면 헤스티아는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존재감이 없는 여신이다. 신들을 위한 무기를 잘 만드는 재능 빼곤 특별히 존재감 없는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Hephaistus)보다 비중이 없다.

 

 

 

 

 

 

 

 

 

 

 

 

 

 

 

 

 

* 아폴로도로스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도서출판 숲, 2004)

 

 

 

그리스 신화를 집대성한 아폴로도로스의 《비블리오테케(Bibliotheke)》에 보면 헤스티아는 딱 한 번 언급될 뿐이다. 그녀는 크노로스(Cronus)와 레아(Rhea)가 낳은 3남 3녀 중 가장 먼저 태어난 장녀이다. 그 다음으로 태어난 자식들이 데메테르, 헤라, 플루톤(Pluton), 포세이돈(Poseidon) 순이다.

 

크로노스는 데려온 형제들을 묶어 다시 타르타로스[1]에 가두고 누이인 레아와 결혼을 했다. 그리고 자식들이 태어나는 대로 모두 삼켜버렸다. 자식들에 의해 권좌에서 축출될 것이라고 게[2]와 우라노스[3]가 예언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맏이인 헤스티아를, 그 다음에는 데메테르와 헤라를, 이어서 플루톤과 포세이돈을 삼켰다.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20쪽)

 

[1] 지하에 있는 세계

[2] 대지의 여신 가이아(Gaia)

[3] 하늘의 신, 게의 남편이자 크로노스의 아버지

 

크로노스는 자식들이 자신의 생명을 위협할까 봐 두려워하여 자식들을 집어 삼킨다. 막내아들 제우스(Zeus)만 살아남게 되는데, 성인이 된 그가 크로노스의 뱃속에 있는 신들을 구해낸다. 크로노스가 자식들을 토해냈을 때 마지막에 나온 신이 헤스티아다. 그래서 그녀는 먼저 태어났음에도, 크로노스의 뱃속에서 마지막으로 부활하는 바람에 막내가 되었다.

 

 

 

 

 

 

 

 

 

 

 

 

 

 

 

 

 

* 낸시 헤더웨이 《세계 신화 사전》 (세종서적, 2004)

 

 

《세계 신화 사전》의 저자 낸시 헤서웨이가 헤스티아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는데, 헤스티아의 특징을 아주 잘 표현했다.

 

온화하고 수줍은 헤스티아는 별다른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올림포스 신이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헤스티아에 관한 이렇다 할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세계 신화 사전》 253~254쪽)

 

헤서웨이의 말이 사실이다! 그리스 신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게 되면, 헤스티아가 주연급으로 나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이름은 남아 있을 뿐, 등장 장면이 단 한 개도 없는 '아웃 오브 안중', ‘투명 여신’인 셈이다.

 

 

 

 

무엇보다도 안습한 건, 헤스티아가 원래 올림포스 12신에 속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는 점이다. 헤스티아도 크로노스의 장녀이기 때문에 올림포스 12신으로 대우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제우스는 자기 아들인 풍요의 신 디오니소스(Dionysos)를 올림포스 12신 자격을 부여해주고 싶었다. 마음씨 착하고, 다툼을 싫어하는 헤스티아는 스스로 12신 자격을 포기, 디오니소스에게 양보한다. 이렇게 되면서 헤스티아의 존재감은 확 줄어들게 된다.

 

헤스티아는 신들의 구애를 거부할 정도로 순결을 영원히 지킨다. 그녀를 숭상하는 무녀들도 평생 순결을 지키면서 살아야 한다. 만약 이를 어기면, 가혹한 형벌을 받는다. 그리스 신화의 헤스티아와 《던만추》의 헤스티아의 성격을 비교해보면, 약간 비슷하면서도 뚜렷한 차이점이 드러난다. 신화의 헤스티아는 조용한 성격이라서 올림포스에서 일어나는 신들의 분쟁에 나서지 않는다. ‘중립’이 아닌 무관심에 가까운 태도이다. 《던만추》의 헤스티아도 여신임에도 신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 없고, 늘 혼자 집에 틀어박혀 지낸다. 그러다가 우연히 벨 크라넬(Bell Cranell)이라는 인간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헤스티아는 초보 모험가인 벨을 자신의 파밀리아(familiar) 첫 일원으로 받아들인다. 헤스티아는 자신의 체면을 버리면서까지 벨에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던만추》의 헤스티아는 사랑하는 인간을 위해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평생 순결을 지켜야 하는 신화의 헤스티아와 정반대의 모습이다.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도서출판 숲, 2005)

*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2》 (민음사, 1998)

 

 

 

고대 그리스인들은 헤스티아에 관심 없었지만, 로마인들은 그녀를 ‘베스타’라고 부르면서 국가와 가정의 수호신으로 숭배했다. 로마에 그녀를 위한 축제도 열렸다. 그녀를 모시는 신전의 제단에는 화로가 놓여있고, 그 위에 불이 타올랐다. 화로 위의 불이 꺼지면 로마를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재앙이 온다는 신호로 여겼다. 그래서 베스타의 무녀(巫女)들은 화로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잘 살펴야 했다. 오비디우스《변신 이야기》율리우스 카이사르(Caesar)를 베스타로부터 보호받는 위대한 인물로 묘사했다. 그 정도로 로마에서의 헤스티아, 아니 베스타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그리스 신화는 남성 위주의, 남성의 시각으로 그려진 이야기다. 남성은 ‘사랑과 전쟁’이 있는 이야기를 선호한다. 오만방자한 신들 때문에 인간이나 영웅이 엄청 고생하는 이야기가 신화 중에 제일 기억이 남고, 가장 유명하다. 그래서 싸움을 싫어하는 헤스티아는 비중이 없는 여신으로 그려질 수밖에 없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헤스티아에게 특별한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는 헤라, 아프로디테, 아테나, 아르테미스에 비하면 훌륭한 덕성을 가진 여신이다. 그렇지만 남자들은 착한 여신보다는 ‘남자를 고생시키는 나쁜 여신’들을 좋아했다. 특히 아프로디테는 남자들이 욕하면서도 계속 보게 되는 ‘팜 파탈(femme fatale)’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남자들은 아프로디테의 바람기를 싫어해도 그녀의 뛰어난 아름다움을 칭송했다. 그녀의 벌거벗은 몸은 남성 예술가들이 선호하는 인기 주제였다. 이렇게 아프로디테에 관련된 신화는 오랫동안 널리 구전되었고, 오늘날까지 그녀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헤스티아보다 제일 불쌍한 존재가 베스타의 무녀들이다. 그녀들은 연애는 물론, 결혼을 할 수 없었다. 처녀성을 잃으면 채찍질 또는 생매장당하는 형벌을 받았다. 뭐든지 잘못 하면 무녀들의 책임으로 전가했다. 순결을 잃어버리면 ‘정결하지 못한 여성’으로 비난받았고, 가해자의 책임보다는 피해자의 책임을 더 따지는 불합리한 상황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시대가 바뀌어 아프로디테가 ‘사랑스럽지만, 음란한 비너스(Venus)’로, 헤스티아가 ‘순결을 지키는 위대한 베스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여자에게는 순결을 요구하면서 다른 여자에 흑심을 품는 남자의 이중성이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육체의 쾌락을 인정하면서도, 여성의 순결을 고귀하게 여기는 남자의 이중성은 교활하다. 겉으론 자기가 개방적인 척하면서 속으론 처녀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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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2 16: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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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3-02 16:51   좋아요 0 | URL
맞는 말씀입니다. 인간은 생존 번식의 본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식이 자신을 뛰어넘는 걸 두려워합니다. 세상에는 뜨는 존재가 등장하면, 지는 존재가 있는 법입니다. 그런데 권력을 오래 누리고 싶을수록 상승 하락의 원리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합니다. 문학 작품이나 역사에 보면 자식을 위협하거나 자식 간에 갈등을 빚는 아버지들이 나옵니다. ^^;;

2017-03-03 15: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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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3 15: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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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3 15: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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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3 16: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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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3 1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03 16: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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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입자 - 우주가 답이라면, 질문은 무엇인가
리언 레더먼 & 딕 테레시 지음, 박병철 옮김 / 휴머니스트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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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에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이 있었다. 물질의 질량 생성에 관여하는 입자로 알려진 힉스 입자(Higgs Boson) 발견에 성공했다. 대단한 연구업적으로 현대 과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이 뉴스는 전파를 타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일반인들에게 있어서는 단위조차 생소한 미시의 세계에서 원자보다도 더 작은 입자들을 충돌시키고 관측하는 입자물리학 연구는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 정도로 치부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신의 입자(God particle)》가 뒤늦게나마 다시 번역돼 나온 것은 여간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1993년에 나온 이 책은 일명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 입자에 한발씩 다가선 책이다. 책의 공동 저자 중 한 사람인 리언 레더먼(Leon Lederman)은 미국 국립 페르미 가속기 연구소 명예소장을 지냈고, 중성미자의 정체를 밝힌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고대의 원자론으로부터 돌턴(J. Dalton), 러더퍼드(E. Rutherford)의 원자모형을 거쳐 현대적 원자모형으로 발전해오는 과정을 설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 오랜 기간에 걸쳐 수많은 물리학자가 축적해 온 성과를 바탕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입자의 세계를 생생하게 펼쳐 보인다. 이 책이 나온 이듬해에, 페르미 가속기 연구소의 입자가속기를 이용해 ‘톱 쿼크(Top Quark)’의 존재가 확인됐다. 이로써 물질의 형태를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입자인 쿼크 6종 모두 발견되었다.

 

90년대에 힉스 입자의 실체를 규명하는 연구는 ‘물리학의 성배(聖杯)’를 찾는 일이었다. 물리학에서는 우주가 보이지 않고 신비스런 장(場, field)으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힉스장은 우주 공간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입자가 힉스장을 지나가면서 얼마나 힉스장과 상호작용을 많이 하는가에 따라 입자의 질량이 결정된다. 상호작용이 강할수록 질량이 무거워진다. 톱 쿼크가 무거운 것은 힉스장과 반응을 많이 하기 때문이고, 질량이 없는 광자는 아예 반응하지 않는다. 이처럼 힉스 입자는 입자들이 성질은 비슷하지만 질량이 크게 다른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다. 힉스장을 풀장에 비교하면 입자는 수영선수들이고, 수영선수들이 헤엄을 치면서 물과 부딪칠 때 비로소 질량이 생성된다고 보면 이해가 빠르다. 스코틀랜드 출신 과학자 피터 힉스(Peter Higgs)의 이름을 따 명명된 힉스 입자는 이러한 상호작용을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 단서로 고안된 개념이다. 힉스 입자를 찾는 유일한 방법은 거대한 가속기를 이용해 양성자를 빠른 속도로 충돌시켜 태초의 환경을 재연하는 것이다. 힉스 입자는 매우 높은 에너지 상태에서 존재하기 때문에 일상에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에 특별히 눈여겨볼 인물이 있다. 물리학의 기초이론에 변혁을 일으킬만한 연구업적을 남긴 과학자들이 정말 많다. 과학자들은 축적된 이론을 바탕으로 계속 진보했다. 고전물리학의 기틀을 완성한 뉴턴(I. Newton), 상대성이론을 정립하여 뉴턴의 시대를 넘어선 아인슈타인(A. Einstein), 불확정성 이론을 주창한 하이젠베르크(W. Heisenberg) 등이 있다. 아무튼, 더 열거하면 끝이 없다. 그런데 레더먼은 자신의 책에 과학과 아무 상관 없어 보이는 의외의 인물을 페르미 연구소에 소환한다. 그 인물이 바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Democritos)다.

 

 

 

 

 

 

 

고대로부터 여러 철학자는 “만물의 근원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을 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동안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연 현상이 신에 의해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데모크리토스는 자연 속의 물질이 극히 작은 기본 구성 요소들로 결합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는 물질을 계속해서 잘라 나가면 궁극적으로는 더 이상 자를 수 없는 작고 단단한 입자에 도달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이 가상의 입자에 그리스어로 ‘더 이상 쪼갤 수 없는’이라는 의미를 지닌 ‘원자(atom)’라는 이름을 붙였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은 과학적으로 접근한 실험적 연구라기보다는 사색과 직관에 의한 것이라서 오늘날의 과학이론과 무관하다. 그렇지만 그의 주장은 인간이 어디에서 왔느냐는 존재성을 놓고 철학적인 고뇌로부터 시작, 만물의 근원에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가 그 실체를 검증할 수 있는 것이다. 빛은 눈으로 볼 수 있기에 존재하는 것이고, 전자란 전류를 느끼기에 그 실체를 검증할 수 있다. 이렇게 검증이 가능할 때 이를 존재한다고 말한다. 어떠한 방법으로 그 실체가 검증되지 않으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뜻에서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한 끝에 힉스 입자를 알아낸 인류는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그 존재를 느끼지 못했다. 레더먼이 《신의 입자》를 출간하기 전에 원제를 ‘빌어먹을 입자(Goddamn Particle)’로 지으려 했다. 그 당시 힉스 입자의 존재를 증명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을 빗댄 것이다.

 

힉스 입자의 발견이 대단치 않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입자의 성질을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우주가 어떻게 작동하고 팽창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이 궁금증은 아주 오래전 데모크리토스가 먼저 시작했고, 아인슈타인은 더 나아가 ‘모든 것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에 도달하기 위해 시도했다. 힉스 입자는 바로 이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한 중요한 단서이다. 궁극의 이론에 아주 가까이 다가선 것은 틀림없지만 모든 것들의 의미는 여전히 희미할 뿐이다. 그래도 과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 세상의 모든 자연법칙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원리에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신은 우주를 구성하면서 얼마나 많은 선택을 했을까”라는 아인슈타인의 질문도 상식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우주가 어떻게 탄생했느냐를 밝히는 것은 우리 인간의 영역이다. '신의 입자'는 실생활에 쓸모 없고, 무척 어려워보이는 존재이지만, 그 존재의 비밀을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과정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한다. '신의 입자'는 우리가 알아야 할 좋은 입자(Good particl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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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8 17: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3-02 13:43   좋아요 0 | URL
국가의 전폭적이면서도 장기적인 지원 없이는 과학 성과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돈 되는 연구에만 지원하는 것은 기초과학 성장을 포기하는 거나 다름 없습니다.

oren 2017-02-28 20: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cyrus 님의 글 덕분에 데모크리토스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책을 좀 뒤져봤더니, 동시대 철학자였던 플라톤이 데모크리토스에 대해 굉장한 라이벌 의식을 느꼈다는 사실도 알게 되는군요. 그의 가르침이 나중에 에피쿠로스(BC342∼270)에게로 이어졌다가, 루크레티우스(BC99∼55)를 거쳐 그로부터 훨씬 뒤인 근세의 기계론적 유몰론에 와서야 크게 주목받는 철학적 주제가 되었다고도 하고요. 데모크리토스의 생각이 그토록 기나긴 연결을 거쳐 마침내 힉스 입자에까지 연결된 건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네요. 2,400년 전에 그가 남긴 말도 놀랍고요.
* * *
˝나는 페르시아의 왕국을 얻기보다 오히려 하나의 원인 설명(main aitiologian)을 찾아내길 원한다.˝ -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중에서

cyrus 2017-03-02 13:45   좋아요 1 | URL
《신의 입자》를 읽으면서 데모크리토스 같은 고대 철학자들의 생각을 다시 보게 됐습니다. ‘비록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 이 말이 생각났습니다.

AgalmA 2017-03-01 0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 힉스 입자 발견은 연역의 또다른 쾌거로군요~
지적 탐험이 펼쳐질 이 책 기다려지는데요^^

cyrus 2017-03-02 13:47   좋아요 0 | URL
부럽습니다. Agalma님! 《신의 입자》는 소장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1990년대의 과학 고전이라고 불릴 만한 이유가 있었어요. ^^
 
공터에서
김훈 지음 / 해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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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씨의 리뷰가 불량합니다. 저항기가 있군요. C급입니다.”[1]

    

 

 

인생 여정의 중간 혹은 종착점에 이르면 자기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달려온 길이 고통스러워도, 현재의 삶이 가치 있다고 느끼면 뒤돌아보고 싶은 충동은 더욱 강렬하다. 부모님 세대는 청년기에 경험한 전쟁의 참혹한 기억을 잊지 못한다. 그 지옥의 시간은 이미 소설이나 영화 속 과거가 되었다. 그리하여 이제 그런 시대를 얼마간 편안한 마음으로 보며 추억하고 있다. 50~70년대 시절 부모님 세대가 겪었던 분산된 기억들을 끄집어내 영화와 소설이라는 문화적 메커니즘을 통해 조직하고, 그리하여 개인들의 체험이 보편적인 경험으로 확대되고, 세대 차원의 공통된 기억으로 자리 잡게 하는 의미가 있다. 우리의 근대사는 감히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볼 수 없었던, 힘의 논리와 저항으로 일관됐던 부자(父子) 관계의 연속이었다. 그것을 용서하기 위해서는 향수(鄕愁)의 힘이 필요했다.

   

공터에서는 마씨 집안의 삶을 통해 우리 시대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마동수는 6 25전쟁 때 이도순을 만나 고생 끝에 가정을 이룬다. 그들이 낳은 자식 마장세와 마차세도 시대의 그림자에 벗어나지 않았다. 마장세는 복역 중에 월남전에 파병되었고, 제대한 후에 괌으로 건너가 사업을 한다. 그는 자신을 가족으로부터 격리된 삶을 산다. 장남의 빈자리는 자연스럽게 마차세가 이어받는다. 마차세는 아버지의 사망과 가난 때문에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다. 학업을 포기하고 신문기자로 취업했지만, 언론통폐합 조치로 펜을 내려놓게 되고 물류회사에 재취업하여 오토바이 배달을 한다. 고달픈 시련 속에서 마차세는 박상희의 내조에 힘입어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착실하게 살아간다.

     

작가는 현대사의 주요 계기들 속에서 무기력했지만, 묵묵히 시대를 감내하며 살아온 부모님 세대에 대한, 쓸쓸하면서도 애정 어린 연민을 보여준다. 소설에서 그려진 아버지상은 그런 역사의 질곡을 다시 바라보려는 과정에서 나온 타협의 산물이다. 이 소설이 불러일으키는 폭넓은 공감은 이 시대의 고통과 상처를 되돌아보는 계기를 제공해준다. 공동의 기억을 토대로 세워지는 상상의 공동체는 모든 세대를 하나로 묶는 데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인간은 미래에 대한 전망보다 과거에 대한 공동의 기억으로 더 잘, 더 쉽게 하나가 되게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진부한 징후들 속에서 음습하게 스며 있는 구시대의 늙은 유령의 그림자를 함께 본다. 김훈은 소설을 통해 아버지와 자신이 살아온 시대를 그리려 했다고 말한다.[2] 그 표면적 서사 밑에 독자들, 특히 중장년층 남자 독자들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또 하나의 흐름이 들어 있다.[3] 인내심과 책임감 그리고 힘으로 상징되는 가부장제에 대한 매혹이 그것이다. 부모님 세대들의 영혼 깊은 곳에 유령처럼 스며들어 있는 건 전쟁의 공포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부장제 사회에 대한 향수는 현대에 들어 힘과 권위를 상실해가고 있는 중장년층 아버지들의 어깨를 다독여주는 환상의 그림자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의아한 장면이 있다. 마차세가 일자리를 잃어 백수로 지내고 있을 때, 박상희가 그에게 집안일을 맡겼다. 마차세는 아내의 요구를 순순히 응한다.

 

박상희는 마차세가 실직한 동안에 집안일의 일부를 남편에게 맡겼다. 마차세는 가끔씩 빨래를 널고 유리창을 닦고 싱크대를 청소했다. 박상희는 그 사소한 노동으로 남편의 마음이 일상에 정착하기를 바랐다. 마차세는 아내의 마음을 짐작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195)

 

박상희가 미대 출신이라서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여성으로 보일 수 있다. 이에 대한 반론은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착시에 가깝다. 그러나 국가가 가부장적 권위를 강요하던 사회적 분위기를 생각해보시라. 1970년대의 여성은 보수적 분위기로 인해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흡수될 수밖에 없었다. 가부장적 가치관을 등에 지고서 억척같이 밖에서 일했던 아버지들은 이 장면을 어떻게 볼지 무척 궁금하다. 아버지들은 집안일은 '아내라면 당연히 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내를 존중하는 마차세의 배려심에서 비롯된 것처럼 그려지지만, 아무래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페미니스트에게 호되게 당한 적 있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여성성을 강조하고 싶은 걸까. 작가 입장에서는 이런 표현을 시도해볼 수 있지만, 조금은 생뚱맞게 느껴진다.

     

세대 갈등은 아버지와 아들의 불화(不和)’에 비유되곤 한다. 아버지 부정(否定)’은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진통이다. 마차세는 아버지의 자리에 서면서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하고 화해하게 된다. 박상희는 산파가 산모의 출산 과정을 돕듯, 마차세의 마음을 옥죄이는 아버지의 존재감을 떨쳐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런데 그녀의 역할은 마동수의 아내이자 마장세 · 마차세의 어머니 이도순의 존재감을 위축시킨다. 이도순은 숨 가쁘게 달려온 현대사의 그늘에서 인고와 희생으로 우리 가정과 사회를 지탱해온 우리네 어머니들의 원형이다. 70년대엔 인내 · 순종 · 희생의 어머니상이 지배적이었다. 이도순은 마장세에게 보낸 편지에 자신의 고통을 언어로 호소한다.

 

너의 아버지라는 사람은 무슨 헛것이 씌었는지 도통 밖으로만 싸지르고 두어 달에 한 번씩 집에 오는데, 왜 오는지 모르겠다. 내가 그 인간하고 살을 섞고 살아서 너희들을 내지른 세월을 생각하면 내 가슴에서 벌레가 끓고 들불이 인다. 너는 힘들고 쓸쓸하면 너보다 더 쓸쓸한 이 어미를 생각해라. 그게 내가 하려는 말의 전부다. (170)

 

가부장제의 큰 피해자는 아내어머니의 역할을 맡은 여성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개인이 되지 못했고, 자기 언어를 가질 수 없었다. 그러나 여성을 무겁게 짓누르는 가부장제 사회에 도전하고, 반항하는 소수의 목소리들도 있었다. ‘가족이라는 명목으로 자행되는 여성에 대한 가부장제의 압력 앞에서 개인의 존엄을 지켜내기 위한 목소리이다. 그런데 박상희는 힘들고 쓸쓸한이도순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소설 속 박상희는 마차세의 아내로서의 역할을 보여줄 뿐이다.

 

박상희 : “어머니는 어땠어?”

마차세 : “그저 그래. 잠든 거 보고 왔어.”

박상희 : “어머니보다 당신이 더 가엾어.”

 

(245)

 

박상희는 치매에 시달리는 어머니를 홀로 돌보는 남편의 정신적 부담감을 이해한다. 그녀는 마차세를 어머니보다 더 가엾은 남편(아들)’으로 바라본다. 그녀의 시선은 홀로 사는 어머니와 가족을 충실히 돌보는 가장의 고통을 부각할 뿐, 어머니의 고통을 외면한다. 이러한 박상희의 시선은 사회적 가부장제의 전형을 보여준다. 바로 남성 중심의 이데올로기가 그대로 반영됨을 의미한다. 박상희는 무의식적으로 가부장제 유지의 정당성에 가담하고 있다.

 

아버지, 아들로 이어지는 수직적인 가부장제 위계구조는 아들들을 또 다른 가부장으로 만든다. 마차세는 빈약한 물적 토대를 세워야하는 가부장이 된다. ‘머뭇거리고, 두리번거리고, 죄 없이 쫓겨 다니는[4] 마동수와 마차세는 지금 현실에서 강력한 권위를 가진 가부장을 갈망하는 중년 남성들의 무의식의 초상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40대 남성 독자들이 김훈의 소설에 찬사를 보내는 것이다. 그렇지만 공터에서는 모든 독자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실패한 소설이다. 김훈은 과거 가부장제의 환상에서 깨어날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는 이번 신작 소설을 통해 남루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고 밝혔지만, ‘여성도 슬퍼했고, 아팠다라고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1] 원문은 김훈 공터에서193쪽

 

[2] <소설가 김훈, 장편 공터에서출간 “70년간 갑질의 시대아버지와 내가 살아온 야만의 시대를 그렸다”> 경향신문, 201726일자

 

[3] <김훈 공터에서베스트셀러 종합 1“40대 남성 독자 지지”> 아시아경제, 2017224

 

[4] 나의 등장인물들은 늘 영웅적이지 못하다. 그들은 머뭇거리고, 두리번거리고, 죄 없이 쫓겨 다닌다. 나는 이 남루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작가 후기, 공터에서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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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7 1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2-28 13:05   좋아요 1 | URL
저는 이 소설처럼 과거를 이해하면서, 희망을 발견했음을 암시하는 전개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런 전개는 단순하고, 뻔합니다.

이 소설의 독자서평을 다 읽어봤는데요, ‘아버지‘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춘 평이 많았어요. ‘어머니‘ 이도순에 대해 짧게나마 언급한 독자서평은 알라딘에 1편뿐이었습니다. 이도순도 마동수 못지 않게 힘들게 살아왔고, 개인적 상처가 깊은 인물입니다. 박상희가 마차세에게 ‘어머니보다 당신이 더 가엾어‘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고, 황당했습니다. 박상희를 제외한 마씨 집안 사람들 모두 가엾은 인물입니다.

레삭매냐 2017-02-28 0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의 시작이자 끝이 왜 독재자가 죽은 기미년
으로 잡았을까 궁금해집니다.

그 뒤의 등장할 격동의 현대사를 다룰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작은 의구심이 듭니다.

cyrus 2017-02-28 13:06   좋아요 0 | URL
그렇게 볼 수 있군요. 저는 시대적 배경과 이야기 전개 구조에 대해서 생각한 적이 없었어요. ^^;;

스윗듀 2017-02-28 16: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 cyrus님 문학동네이벤트 당첨되셨던데.... 50권이라니요..! 이거야말로 책심은데 책나고 가진 자가 더 가지는 상황 아닙니까? 에잇 ㅋㅋㅋㅋㅋㅋ 축하드려요!!

cyrus 2017-02-28 16:30   좋아요 1 | URL
이벤트 당첨 사실을 알리지 않는 성격이라서 조용히 넘어가려고 했는데, 그걸 보셨군요.. ㅎㅎㅎ 축하 인사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

knulp 2017-03-01 0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리하게 분석하셨네요. 저 역시도 김훈의 글에 열광하는 1인. 뭐 가부장제에 딱히 동의하진 않지만 그의 문체가 좋습니다. 무겁고 무거운. ㅎㅎ 그래서 읽어요. 시대 의식도 강하고. 서평이 큰 공부가 되었습니다.

cyrus 2017-03-02 13:49   좋아요 0 | URL
저도 김훈 작가의 문체, 특히 그 문체의 매력이 많이 발산되는 산문을 좋아합니다. 이번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은 문체가 미장세가 초콜릿 한 입 베어 먹는 순간을 묘사한 내용이었습니다. ^^
 

 

 

 

 

 

 

 

어제 동원화랑에서 진행되는 박진형 시인의 신작시집 낭독회에 참석했습니다. 박진형 시인이 펴낸 시집 제목은 《고마 됐다》입니다. ‘고마’는 ‘그 정도까지만’의 방언입니다. ‘고마 됐다’는 ‘그 정도까지만 해라’ 또는 ‘그만 됐다’의 의미가 되겠습니다.

 

 

 

 

 

 

 

 

 

 

 

 

 

 

 

* 박진형 《고마 됐다》 (만인사, 2016년)

 

 

 

이 시집은 참말로 독특합니다. 시인은 자신의 고향인 경주에서 사용된 ‘신라 입말’을 발굴하여 시어로 만들어냈습니다. 신라 입말처럼 오래된 말일수록 ‘낮은 말’이 됩니다. ‘낮은 말’의 반대는 ‘높은 말’입니다. ‘높은 말’은 바른말, 고운 말 그리고 표준어인 거죠. 신라가 이 한반도를 지배했을 때까지만 해도 표준어는 신라 입말이었습니다. 나라와 정권이 바뀌면서 신라 입말의 존재는 점점 잊혔고, 연륜이 깊은 소수의 경주 토박이들만 아는 옛말이 되었습니다. 《고마 됐다》는 눈으로 읽는 시집이 아닙니다. ‘신라 입말’이 들어있는 시이기 때문에 입으로 소리를 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신라 입말의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고마 됐다》에 수록된 시를 인용하지 않았습니다. 입말로 이루어진 시를 여기에 인용하면, 눈으로 봐야 하는 ‘글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낭독회가 열렸던 장소는 동원화랑입니다. 동원화랑은 1982년에 문을 연,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화랑입니다. 이곳에 대구 출신 화가들의 작품이 걸려있습니다. 저는 어제 알았는데, 연예인 하정우, 구혜선, 조영남 씨의 그림 전시가 동원화랑에서 열리기도 했습니다.

 

시 낭독회가 시작하기 20분 전에 장소에 일찍 도착했습니다. 이곳에서 ‘yrureka01님(유레카)’을 만나려고 했습니다. 여태까지 화랑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혼자 들어가기가 뻘쭘했습니다. 건물 안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유레카님이 오기를 기다렸어요. 유레카님이 도착하고, 같이 화랑 안에 들어갔습니다. 시 낭독회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앉을 자리가 없어서 시 낭독회가 끝날 때까지 계속 서 있었습니다. 힘들진 않았습니다. 저는 아직 젊으니까요! (찡긋) 오히려 서 있는 게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서 있었던 곳 바로 앞에 다과상이 차려져 있었으니까요. (개이득) 저는 시를 읽는 척하면서 다과상으로 차려진 쿠키, 육포, 과일 등을 야금야금 먹었습니다. 오래 서 있는 건 참을 수 있었지만, 배고픔은 참지 못했거든요. 음료는 물과 주스 그리고 포도주였습니다. 이 셋 중에 여러분은 뭘 마실 겁니까? 당연히 포도주죠! 포도주 반 정도를 비우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한 컵만 마셨어요. 화랑에 일하는 직원으로 추정되는 분이 제 근처에 서 있어서 술을 홀짝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다과상에 눈독 들이고 있었을 때, 유레카님은 시 낭독회의 생생한 현장을 사진으로 담고 있었습니다.

 

원래 시 낭독회가 참석하기 전에 《고마 됐다》를 읽어보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대구에 세워진 모든 공공도서관 중에 이 시집을 소장한 곳이 딱 한 군데 밖에 없었어요. 제가 사는 동네에 가까운 도서관이 ‘대구서부도서관’입니다. 이곳에 대구 · 경북 출신의 문인들의 책들을 따로 보관하고, 문인들의 유품까지 전시한 ‘향토문학관’이라는 장소가 있습니다. 그런데 서부도서관에는 《고마 됐다》가 없었습니다. 시집이 잘 안 팔리는 것도 서러운데, 공공도서관마저 홀대합니다.

 

《고마 됐다》 한 부 챙겨왔습니다. 무료로 받은 셈이죠. 이래도 되나 싶었어요. 하긴 안 팔리는 시집을 창고에 썩혀둘 바에 정말 시와 문학을 사랑하는 시인의 지인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모든 이들을 위한 좋은 일입니다. 시인은 돈 몇푼 더 벌려고 《고마 됐다》를 쓴 것이 아닙니다. 시인은 신라 입말과 고향 사람들을 기억하고 보존하기 위해서 시의 형태로 기록했습니다. 역사가들도 하지 않는 일입니다. 《고마 됐다》는 신라 입말을 빌어 기록한 ‘민중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되돌아보면 우리는 말과 글을 통해 세상을 만났고,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기도 했어요, 태초의 입말이 단순히 과거를 알기 위한 증거이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나’와 ‘우리’를 이루는 기본적인 말이기 때문에 소중합니다. 입말은 글말의 씨앗입니다. 입말은 사람과 삶에서 떨어질 수 없습니다. 즉 입말이 곧 사람이고 말하고 듣는 것이 곧 사람의 삶입니다. 이런 까닭에 입말을 이해할 수 있을 때야 우리가 사용하는 글말의 세계도 튼튼히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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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7-02-25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레카님과 두분의 우정이 부럽네요.^^

cyrus 2017-02-25 14:20   좋아요 1 | URL
북프리쿠키님도 대구에 사시는 걸로 압니다. 다음에 유레카님을 뵙게 되면 그날 북프리쿠키님도 뵙으면 합니다. ^^

페크pek0501 2017-02-25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 낭독회, 예전에 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제가 간 곳은 주로 찻집이었는데...
다과상이 있는 시 낭독회의 분위기가 갑자기 그리워지네요.
좋은 소식 주셨습니다.

cyrus 2017-02-25 14:23   좋아요 0 | URL
예전에 제가 가본 시 낭독회는 테이블에 사람들 쭉 모여 앉아서 커피를 마시면서 시를 읽고, 자유롭게 수다를 떨었던 분위기였습니다. 저도 이런 분위기의 시 낭독회를 좋아해요. ^^

표맥(漂麥) 2017-02-25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 됐다... 고마해라~ 이 말 저도 많이 쓰는디... ^^

cyrus 2017-02-25 14:25   좋아요 0 | URL
영화 <친구>의 명대사 ‘고마 해라, 많이 묵었다 아니가’ 때문에 많이 알려졌을 겁니다. ^^

꼬마요정 2017-02-25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 해라... 많이 쓰는 말이지만 점점 안 쓰게 되는 말이기도 하네요... 시 낭독회.. 한 번도 안 가봤는데 꼭 가보고 싶습니다~^^

cyrus 2017-02-25 22:35   좋아요 0 | URL
생각해보니 진짜 ‘고마 해라‘ 쓰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영화 <친구>를 본 세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많이 쓸 겁니다. ^^

yureka01 2017-02-25 15: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즐겁고 재미난 시간이었어요.ㅎㅎㅎ

고마 됐다...이걸 더 줄이면
마,,됐다.,,^^.

cyrus 2017-02-25 22:36   좋아요 0 | URL
역시 수다를 떨면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제일 재미있습니다. ㅎㅎㅎ

서니데이 2017-02-25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레카님과 함께 다녀오셨군요.
cyrus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cyrus 2017-02-25 22:3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달걀부인 2017-02-25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이득!!! ㅋㅋㅋㅋ

cyrus 2017-02-25 22:37   좋아요 0 | URL
저녁 식사를 하지 않은 공복 상태라서 눈앞에 있는 다과상이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ㅎㅎㅎ

붕붕툐툐 2017-02-25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 서 있는 건 참을 수 있지만 배고픈 건 참지 못한다는 말에 완전 공감하며, ‘낭독회‘에 꼭 가보고 싶네요~ 이런 정보는 어디서 얻으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cyrus 2017-02-25 22:42   좋아요 0 | URL
yrureka01님이 시인님을 알고 지내셔서 시인들 모임 소식을 많이 접합니다. 유레카님이 서재에 모임 일정을 알려주십니다. 유레카님의 서재를 즐겨찾기 하면 됩니다. ^^

stella.K 2017-02-28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레카님을 뵈었구나. 어떻든? 캐리커처랑 똑같이 생기셨든?
난 왠지 유레카님 착하게 생긴 이웃집 아저씨일 것 같은데 말야.ㅋ

근데 포도주와 육포. 왠지 묘한 조합일 것 같은데...
괜히 먹고 싶네.ㅠ

cyrus 2017-03-02 13:50   좋아요 1 | URL
정말 ‘착하게 생긴 이웃집 아저씨‘입니다. 캐리커처와 비슷합니다. ㅎㅎㅎ
 

 

 

 

셀카를 찍는 사람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까’를 많이 의식한다. 자신이 타인이 되어 지금 내 모습에 대해 끊임없이 확인하고 이를 자랑한다. 즉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보여주고 싶은 자기 노출 욕구가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상대방이 남에게 잘 보이려고 의도적으로 셀카를 찍는 것을 싫어한다. 이를 ‘셀카 패러독스(The Selfie Paradox)’라고 한다. 자신의 셀카를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만, 상대방의 셀카에는 무관심한 이중적인 심리 현상을 의미한다.[참고]

 

의도성이 분명하게 느껴지는 셀카일수록 상대방의 거부감이 높아진다. 자신을 남들에게 솔직하게 보여주려고 셀카를 찍어도 상대방은 그 셀카를 자기 과시용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셀카에 ‘좋아요’를 많이 받도록 유도하는 방법이 있을까. ‘셀카 패러독스’를 입증한 연구진들은 명백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진을 올리는 것을 피하고, 누구에게나 웃음을 줄 수 있는 재미있는 사진을 올리라고 제안한다.

 

SNS나 블로그에 작성된 글도 ‘셀카 패러독스’의 영향을 피할 수 없다. 글의 주제와 의도에 상관없이 상대방은 자기 과시형 글에 거부감을 느낀다. 어쩌면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 역시 누군가는 부정적으로 보고 있거나 아예 안 볼 수도 있다. 내 글은 ‘자기 노출형’ 셀카와 비슷하다. 책을 읽거나 어떤 사회 현상을 바라보면서 느낀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내어 상대방의 공감을 얻길 원한다. 나는 ‘자기 노출형’ 글을 좋아한다. 며칠 전에 모 알라디너 서재에서도 이런 댓글을 남겼다. “저는 지식을 멋있게 알려주거나 자랑하는 건 나쁘게 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내가 싫어하는 글은 ‘자기 방어형’이다. 자기방어는 상대방의 의견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태도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진실 된 비판 의견을 전달하면, 이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피드백(feedback)해야 한다. 그런데 자기 방어 성향이 강한 사람은 상대방의 피드백을 부담스러워 한다. 자신의 결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도리어 상대방의 의견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 박진영 《눈치보는 나, 착각하는 너》 (시공사, 2013년)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싶은 사람들은 상대방이 자신에게 주목한다고 착각한다. 이를 ‘스포트라이트 효과(spotlight effect)’라고 한다. 셀카를 자주 찍는 사람도 ‘스포트라이트 효과’의 착각에 빠진다. “내가 찍은 셀카는 마음에 들어. 그런데 남이 찍은 셀카는 별로야, 보고 싶지 않아.” 자신이 만들어 낸 환상의 스포트라이트에 취하면 남이 뭘 하는지 관심이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여기 알라딘 서재/북플에도 자신만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서재 활동을 하는 분들이 있다. 물론, 내 입장이 선입견에 가까울 수 있고,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 그렇지만, SNS 환경상 누구나 상대방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 과정에 크고 작은 선입견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 선입견에 괴로워하지 않으려면 관계에 대한 완벽주의를 버려야 한다.

 

 

 

 

 

 

 

 

 

 

 

 

 

 

 

 

* 박진영 《심리학 일주일》 (시공사, 2014년)

 

 

나도 ‘완벽한 관계’를 지나치게 믿어왔던 사람이었다. 여기 알라딘 서재를 만든 지 얼마 안 됐을 때 관계는 늘 항상 친밀하게 유지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상대방이 잘못해도 눈 감아 주었고, 친하게 지내는 알라디너의 글들을 다 읽으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관계에 집착하는 일이 정신적으로 피곤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또 상대방에 엄청 기대했다가 실망한 적도 있었다. 좋은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내가 상대방에게 먼저 다가와서 물꼬를 트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제대로 이해하고 다가서야 한다. 나는 그동안 상대방이 누군지 살피지 않은 채 다가섰고, 상대방이 내 글을 볼 거로 착각했다. 그렇다 보니 진정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잊어버렸고, 그저 남이 좋아할 만한 내용의 글을 썼다.

 

 

 

 

 

 

 

 

 

 

 

 

 

 

 

 

 

* 톰 밴더빌트 《취향의 탄생》 (토네이도, 2016년)

 

 

예전에 《취향의 탄생》이라는 책의 리뷰 끝에 나는 자신의 취향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자신의 취향을 모르거나 뚜렷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취향에 맞춰 따라가게 된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건 상대방이 자신의 취향을 선호하는지조차 모른다. 이런 사람은 내가 상대방의 취향을 이해해줬으니 분명 상대방도 내 취향을 이해할 거로 생각하며 ‘혼자만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상대방의 스포트라이트에 멀찌감치 벗어난 상태에서 그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갈망한다.

 

나는 여러 심리학 책 몇 권을 읽어봤지만, 관계를 오랫동안 친밀하게 유지하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 차라리 모르는 게 낫다. 더 알려고 하면, 관계에 더 집착한다. 내가 서재 활동을 하면서 얻은 결론은 이렇다. ‘확실히 내 취향과 맞지 않는 사람은 관계를 끊어야 한다. 억지로 관계에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

 

요즘 들어 ‘친구 신청’하는 분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나보다 재미있고, 좋은 글을 많이 쓰는 알라디너가 많이 보인다. 새로운 알라디너의 등장은 반갑다. 혹시나 내게 ‘친구 신청’하는 분들께 다시 한번 알린다. 나는 로쟈님과 후애님처럼 신간 도서를 전문적으로 소개하거나 일상적인 이야기를 매일 공개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우왕님처럼 재미있는 사진만 올리는 사람도 아니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그에 대한 감상을 기록할 뿐이다. 이 행위 자체를 즐기고 있다. 내 글이 딱딱하고, ‘자기 과시’가 드러난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틀린 말은 아니니까. 나도 내 글이 남들에게 인정받는 걸 좋아하며, 글이 잘못되면 고친다. 글을 짧게 쓰는 법이 없다. 그래서 북플로 보기가 불편하다. 스마트폰으로 내 글을 본다는 건 시력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내 글을 보는 일이 부담스러우면 안 보면 되고, ‘친구 해제’를 해도 된다. 절대로 잘못된 일이 아니다.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다. 여러분들의 취향이 존중되길 원하는 필자의 간곡한 부탁이다.

 

 

 

 

[참고] <“내 셀카는 좋지만, 남의 셀카는 싫어”… 이 심리는 뭐지?> 동아일보, 2017년 2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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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4 1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2-24 14:19   좋아요 3 | URL
제 생각과 비슷합니다. 하루에 이웃님들 글을 다 보면 적어도 10분은 걸립니다. 정독은 못 해도 어떤 내용인지 이해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한 달동안 보면 이웃님이 무슨 책을 좋아하는지는 알 수 있어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자주 보는 분들 의 글을 보는 게 효율적입니다. 그래도 관계가 소원하거나 애매하다 싶으면 포기해야 합니다.

지금행복하자 2017-02-24 13: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주로 북플로 보는데. . 별로 불편함 없이 보고 있습니다~^^

cyrus 2017-02-24 14:21   좋아요 1 | URL
말씀이라도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서재 활동 초창기에 비하면 글의 분량이 줄어든 겁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7-02-24 13: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셀카가 취향이라서... -_- ;

cyrus 2017-02-24 14:23   좋아요 1 | URL
곰발님의 취향을 존중합니다. 솔직히 발님은 다른 셀카족에 비하면 양호합니다. 셀카 사진을 많이 올리는 편은 아니고, 과시하려는 느낌이 나지 않아요. 어제 올린 셀카는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

북프리쿠키 2017-02-24 14: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곰발님 볼에 풍선넣고 귀엽게 함 찍어주세요.^^;
웃는 표정으로다가 한번~

cyrus 2017-02-24 14:26   좋아요 1 | URL
곰발님의 셀카는 시크한 표정을 지을 때가 멋있습니다. ^^

2017-02-24 14: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2-24 17:04   좋아요 2 | URL
저처럼 글을 길게 쓰는 분들이 많이 없어서 비교적 짧은 글은 훑어 읽거나 그냥 넘깁니다. 특별히 관심 있는 글이라면 정독을 하는 편이고, 제가 생소하게 느끼는 주제의 글은 훑어 읽습니다.

사실 정독해도 글을 제대로 이해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저도 글의 주제와 상관없는 엉뚱한 내용의 댓글을 달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은 글을 작성한 분 입장에서는 기분 나쁠 수 있습니다. 이웃님의 글을 잘못 이해했으면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서로 얼굴 붉히는 일이 안 생겨요.

앤의다락방 2017-02-24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되는 글이네요^.^ 전 셀카 찍는 것을 즐기지않아요(사진빨이 안받는다 해두죠.ㅋ)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하루라도 젊을 때 모습을 담아두는게 좋겠단 생각을 하게 되네요.ㅋ 그렇지만 용기가 나질 않아요. ㅋㅋ

cyrus 2017-02-24 17:06   좋아요 0 | URL
저도 사진에 찍히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셀카를 찍으려고 해도 너무 어색하게 보여서 찍을 마음이 없습니다. 그래도 앤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젊은 모습을 담은 사진을 찍어두면 좋다고 생각해요. ^^

hellas 2017-02-24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되는 글이네요. :)

cyrus 2017-02-24 17:0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2017-02-26 0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2-28 17:09   좋아요 0 | URL
죄송합니다. ***님의 댓글을 이제야 확인했어요. ***님은 저보다 오래 서재 생활을 하셨고, 오랜 세월동안 서재 생활을 할 수 있는 비결이 새로운 분들과 잘 어울리는 포용력입니다. 이 알라딘 서재에 넓은 포용력을 지니는 분이 많지 않죠. 저도 그런 회원이 되는 게 꿈이었는데, 지금은 그냥 제 글을 보는 분이 적어도 열 분이 있는 것만으로 감사히 생각하면서 지내고 싶습니다. ^^

kim44820 2017-03-05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알라딘 메일타고 들어와보았습니다. 글이 찰(?)지네요^^

cyrus 2017-03-06 12:01   좋아요 0 | URL
그렇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

해피클라라 2017-03-15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감사해요 >_< 넘넘 공감가더라구요~
좋은 책들 소개도 감사해요 ^^
소개해주신 책들 챙겨봐야겠네요~

cyrus 2017-03-15 17:02   좋아요 0 | URL
제 글이 상대방을 자극하고, 지적하는, 그런 재수 없는 느낌이 들어서 이런 글을 쓰고 나면 마음이 편치 않아요. 비판을 받아들이려고 하지만, 솔직히 겁이 납니다. 그래도 제 글을 좋게 보는 분들이 계셔서 마음이 편합니다. 제 글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