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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3 1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 내가 서재에 자주 뭔가를 올리는 이유는... 컴퓨터를 쓸 수 있다는 얘기고, 아이가 줌수업을 듣지 않고 '현실' 등교를 한다는 얘기고, 점심 급식은 피했으며 고로 기분이 좋아서 수다를 떨고 싶다는 이야기. 


하지만 이런 좋은 기분도 엉뚱한 책으로 잡치기도 ...




책과 서점을 소재로 한 sf단편집 <책에 갇히다>에서 염려하며 그려보았던 '책 없는 디스토피아'.


미래의 세상. 학교에선 가상 체험 기기와 개인용 컴퓨터 등을 사용해서 수업을 하지만 '종이책'은 없다. 종이책은 유해한 바이러스를 퍼트려 감염시키기 때문에 금지 되었고 책 소지자는 수용소에 갇히기 까지 한다. 그런데 한 어린이가 '마지막 책'을 줍고 그만 읽어 버린다. 


줄거리는 줄여 놓고 보면 더 이상 흥미진진할 수 없고 리뷰들도 좋아서 나도 낚였지만 ... 막상 책장을 열어 읽기 시작하니 더없이 엉성하고 지루했다. (어쩐지 리뷰가 다 별 다섯에 칭찬이 과했음) 


종이책을 읽어서, 재미있게 읽어서 주인공 시오는 없던 용기가 생겼다고 한다. 그 책은 (다행이다 호머나 성경이 아니었어) 우리의 전래동화집, 호랑이 이야기;;;; 에이...


다행히 어느 박사님 아저씨가 책과 '자연의 금지된 식물'을 되살릴 연구소를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책 금지 음모는 '로봇'으로 책을 대체해서 돈을 벌려는 배불뚝이 사장님 탓이었다. 얄미운 같은 반 여자 아이 주나는 알고보니 책 결사대의 일원이었고.... 그런데 주나는 가방에 인형만 셋이나 넣어 다니고, 멋 부리고, 수업 시간에는 졸기만 하는데 (알고 보니 책 복구 작업을 밤새 하느라? 피곤했어) 받아쓰기는 왜 빵점인가요. 주나가 중간 위기의 상황에서 주인공 시오를 구하는 상황은 빛났는데 평소의 주나는 그냥 멍청한 여자애, 화나면 얼굴 빨개지는 여자애인가요. 그러니 시오가 '여동생을 구하는' 오빠인 척 용기를 내는거죠. 책 바이러스 이름은 부카 바이러스인데 얘들은 약속이나 맹세는 '원주민에게서 사온 아프리카 전통 반지'에다 대고 하는 이유는 뭘까요. 어쩐지 불편한 기분이 드는 건 독자 아줌마의 편견 탓인가요. 


뻔하게도 부잣집 아이가 최신형 로봇을 갖고 다른 아이들은 그에 우루루 몰리고, 버릇 없는 로봇과 성질 나쁜 부잣집 아이는 닮았고, 책을 쫓는 북킬러들은 어째선지 공권력이 아니라 로봇 회사 소속 같이 굴고요. 주인공이 그토록 지키려는 책에선 오래된 냄새... 할머니의 된장국 냄새가 난다고...이미 다른 동화책들에서 너무나 흔하게 만났던 공식들이 재탕 삼탕 만탕이 되어서 이게 딱히 미래 같지도 않고요, 요즘 애들도 이런 엉성한 설정은 재미 없어 할 거란 말이죠. 


그리고 계속 주나가 계속 먹어대는 젤리 .... 그게 너무 맘에 걸리는 겁니다. (미래 소설에서 애들한테 알약이나 젤리 먹이지 말아요, 쫌) 정신을 깨우는, 낯빛을 바꾸는 용도 라는데 그 젤리의 성분이나 원래 목적은 끝까지 안 나오고요. 결국 책 복구 프로젝트를 하느라 어린이를 야간 노동에 투입 시키는데 임금은 제대로 줄 거 같지도 않고, 어린이의 보호자와 협의도 없고요. 차라리 종이책을 금지 하는 게 아니라 옛날 책이 엄청나게 귀하게 되어서 서로 차지하려고 겨루는 이야기를 ....아, 이미 <꿈꾸는 책들의 도시>가 있구나요. 어쨌거나 여기 엄마들은 공부 시키고 잔소리 하느라, 혹은 애들 방 청소하고 뒤지는 데는 부지런 한데, 정작 아이가 경찰들 어른들에게 부당하게 공격 당할 땐 애들 편에 서질 않고, 멀찍이서 '갠챤아'만 외치다가 어느새 사라져 버립디다? 엄마는 밥먹을 때만 나오는 밥순이 입니꺄?!!!! (울컥) 


책이 재미도 없는데 디테일 뭉게지게 엉성해 짜증이 나서 이렇게라도 풀어볼라고요. 초등 저학년 용이라는데 애들도 솔직하게 '시시해'라고 할겁니다. 근데 여러 독자님들, 왜이리 리뷰를 반짝이게 별 다섯 개씩 달아주셨어요? 속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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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03-23 0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책 좀 더 재미있는 거였으면 좋았겠네요 그런 책으로 할 만한 게 뭐가 있을지, 하면 바로 떠오르는 건 없네요 책이 없어진 세상이라니, 별로 안 좋을 듯합니다 나무를 생각하면 책을 많이 만들면 안 될 것 같기도 하지만... 오래전에는 부자만 책을 보기도 했는데, 다시 그런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희선

유부만두 2021-03-23 14:46   좋아요 1 | URL
책이 금지된 세상과 경찰/수용소 설정은 ‘화씨 451도‘가 생각났어요. 디스토피아 미래 세계의 한 버전으로 ‘책=자율성‘이 통제되는 세상이 나오는 것 같아요.

마지막 책, 으로 어떤 게 좋을까, 생각해봤어요. 책의 근원이나 시작에 의미를 둔다면 전래동화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여기선 너무 뻔한 전개를 해서 재미도 없고, 여러 불편한 부분이 많아서 실망스러웠어요. ... 지금은 부자들끼리만 알고 나누는 정보가 이미 옛날의 책의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싶어요. 열불 나는 뉴스가 넘치는 매일입니다. 전 그저 조용히 종이책을 즐기고 싶은데 말이에요. ㅜ ㅜ

psyche 2021-03-29 05: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부만두님의 빡침(?) 이 느껴집니다. ㅎㅎ

유부만두 2021-03-29 16:32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제 빡침을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뻔하고 거져 먹으려는 심뽀가 보이더란 말이죠.
 

내 목에 채워진 그의 결혼 선물. 목에 꼭 끼는 루비 목걸이로 너비가 5센티미터라서 내 목은 마치 굉장히 값나가는 잘린 목 같았다.

공포정치 이후, 혁명 집정부 초기에 단두대를 피한 귀족들이 목에 붉은 리본을 매는 아이러니한 유행이 있었다. 칼날이 베고 지나갔을 바로 그 위치에 매는 상처의 기억 같은 붉은 리본. 그리고 그의 할머니는 이 아이디어에 끌려 리본을 루비로 만들게 했다. 아주 화려한 저항의 제스처! 




금박 거울에 비친 나를 쳐다보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경주마를 감정하는 전문가의 감식안, 심지어 시장에서 잘라놓은 고깃덩어리를 자세히 바라보는 가정주부의 눈을 하고 있었다. 난 그전까지 그의 그런 시선을 한 번도 보지 못했거나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완전히 육체적인 탐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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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1-03-22 13: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앗!!! 저 책 찾으러 갑니다. 으스스한데 묘하게 끌리는 이 책 찾으러요!!

유부만두 2021-03-22 14:44   좋아요 1 | URL
으스스하고요, 묘하고요, 야해요!

Falstaff 2021-03-22 14: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앤젤라 Y. 카터.
저는 이 양반을, ‘앤젤라 엽기 카터‘라고 부릅니다. 으... 취향은 아니지만 눈에 보이면 사 읽게 되는 희한한 작가. 전 <써커스의 밤>이 더 좋았습니다만. ^^
<현명한 아이들>이란 책이 카터가 쓴 것 가운데 매우 재밌다던데 번역을 했는지 잘 모르겠군요.

유부만두 2021-03-22 14:45   좋아요 2 | URL
아, 그런가요?!!! 어쩐지 엽기스럽긴 했어요. 피해자인데 가해자의 자리에 서 있는 느낌도 들었고요. <써커스의 밤>... 장바구니에 넣습니다.

자꾸 새 책 추천하고 그러시는 거 .... 너무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 책들 언제 다 읽지요? ;;;;;

수이 2021-03-22 17: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야하다고 하시니........ 얼른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퍼뜩!

유부만두 2021-03-22 18:38   좋아요 0 | URL
단어와 문장이 도발적이에요. 독자를 막 째려보고 덤비는 듯합니다.

꼬마요정 2021-03-22 2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읽다가 중단한 뒤 아직도 다 못 읽었어요ㅠㅠㅠㅠ 힘들더라구요ㅠㅠㅠㅠ 유부만두님 리뷰 기다릴게용 ㅎㅎㅎ

유부만두 2021-03-22 22:37   좋아요 1 | URL
저도 표제작만 읽은 상태에요. 매우 강렬하더라고요?! 눈에 힘 주고 한 편씩 읽어보려고요.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전래동화‘들도 다 쎈 이야기들이네요. 죽고 굶고 베고 썰고 ;;;;

psyche 2021-03-29 05: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또 찜할 책이 있네!

유부만두 2021-03-29 16:31   좋아요 0 | URL
도전적인 책이에요.
 



우리나라 개봉 포스터에는 여자 주인공의 얼굴을 지워버렸다. 매우 중요한 인물인데. 

더이상 신참자가 아니라 베테랑, 그 동네 니혼바시의 유지가 되어버린 <신참자>의 형사 카가의 이야기 (의 어쩌면 종결판)다. 


두 명의 집나간 어머니들. 두 가지 이유와 두 명의 버려진 아이들. 두 명의 남겨진 아버지들의 사망 후, 성장해 어른이 된 그 아이들이 만난다. 어머니들의 가출에 얽힌 사연과 범죄, 그리고 비틀린 사랑(이라고 주장하는)의 이야기를 꾸역꾸역 무대에 올려 놓았고 쇼는 머스트 고온. 막이 내려간 다음 그 무대와 관객석, 혹은 무대 뒤의 연출석에서 뒷수습은 어찌 해야할까. 예전에 읽었던 일본 소설 <고백>에서도 느낀 찜찜함이 다시 올라왔다. 지금 여기의 범죄와 사연에 어찌했건 과거의 '엄마'를 불러오는 서사. 속죄거나 아니거나 '순수한 의도'를 위해서 공식처럼 깔린 사망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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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sf 영화들이 특수효과와 cg에 집착하게 만드는 후유증도 낳았다. 특히 장면의 중요성을 시간으로 치환하는 슬로모션 기법은 내가 글을 쓸 때에도 즐겨 활용하는 연출 방식이다. 중요한 장면일수록 문장을 두껍게 쌓아 읽는 이에게 슬로모션과 비슷한 효과를 주는 것이다. - P56

웰즈는 <공중전쟁>과 <다가올 세계의 모습>을 통해 1,2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경고해 왔다. 또 <해방된 세계>에서는 끝없이 책분열하는 폭탄으로 세계가 멸망하는 미래를 그리기도 했다.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소설이 계기가 되어 맨해튼 프로젝트가 시작되었고, 웰즈는 이를 한탄하며 <공중전쟁>의 재출간본 서문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내가 뭐랬어, 이 썩을 멍청이들아." - P82

스페이스 오페라는 왜 이렇게 제국을 좋아하는가? 결국 이 이야기들은 무대만 우주로 옮겨 놓은 판타지이거나, 제국주의 시대에 대한 (백인들의) 향수병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사람들은 여전히 궁정 로맨스를 사랑하고, 우주에서 이런 이야기를 풀어 놓기 위해서는 배경이 왕국이거나 제국일 필요가 생긴다. - P132

최근에는 여성형 휴머노이드에 대한 논쟁이 뜨거운데, 이를 이용해 <얼마나 닮았는가>와 같은 훌륭한 페미니즘 서사를 만들어 낼 수도 있지만, 폭력적 욕망을 해소하는 도구로 전락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녀>의 ‘사만다‘처럼 몸이 없는 편이 안심이 된다. - P142

미국의 코믹스 회사들은 영웅 민담과 신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일종의 아이돌 산업을 만들어 냈다. 이 서브 장르의 이름은 바로 ‘수퍼히어로‘다. - P186

가장 유명한 클리셰인 ‘아담과 이브 이야기‘는 이제는 좀 그만 보고 싶은 유형이다. 이 패턴의 이야기는 이렇다. 인류는 멸망하고 딱 두 사람만 남게 된다.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 과학자(혹은 부모)는 이들을 위해 새로운 세상을 준비해주고, 두 사람은 무너진 세상에서 새로운 인류를 잉태하기 시작한다. 이 패턴은 낡다 못해 썩어 문드러질 지경이라 진즉에 탈락되었어야 할 규칙인데도, 장르 규칙에 무지한 창작자가 새로 유입될 때마다 끊임없이 반복되며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가끔은 멋들어진 변주가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부은 뻔한 이야기로 흘러간다.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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