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둘이 나온다. 신라 공주와 백제 공주. 때는 통일 신라 시절이라 '구'신라나 백제에겐 합법적 땅이 없어 이 둘은 배 위에서 해적이 되어 통일 신라의 관선들을 턴다. 그렇게 명성을 쌓아간다. 


신라 출신 '공주'도 실은 왕실 출신이 아니라 장보고의 크루 출신이고 백제 공주도 알고보니 어느 시골에 숨어살던 왕실의 건너 건너 건너 끄나풀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자연스레 주위의 섬김과 존대로 기품을 갖고 공주 답게 남편도 여럿 두었는데 그 용도는 업어주기?와 안마하기? 그리고 머리를 조아리고 시중들다가 전투에 나서 목숨을 바치는 것이다. 


백제 공주의 새남편에 어느 샌님이 나오는데 끝까지 착하기만 하고 (예쁘기도한) 여느 드라마 여주를 뒤집은 사람이며 이 짧은 소설에서 그닥 필요 없고 거추장 스러운 '양심'을 맡고 있다. 말만 번지르르한 신라 공주 장희의 활약에 (되도 않는 어거지 논리에 주저리 쏟아지는 썰들이 ... 재미있어야 하는 건 알겠는데요.... 머.... ) 기개를 드높여 소리 지르는 백제 공주, 그 옆에 빌런들. 그러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혹은 진짜 역사. 


두 공주들이 삼각연애로 질투하지 않아서 좋았지만 왜 이 둘을 사랑하게 하지 않았는지 아쉬웠다. 공주들의 쌍칼 활약이 더 나을뻔 했다. 빌런들도 착한 남주도 다 밍밍했다. 재치로운 역사 흔들기도 약했.... 해적전에 진짜 불 뿜는 용 두엇 정도는 나와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요즘 전.독.시를 읽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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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 섣부르게 말을 더하기가 조심스럽다. (바보 소리 들을까 겁남)  다만 나보코프가 권말에 한 말을 인용.


이 강의에서 나는 문학적 걸작이라는 놀라운 장난감들의 메커니즘을 드러내려고 애썼습니다. 여러분이 자신과 등장인물을 동일시한다는 유아적인 목적이나 삶의 지혜를 배운다는 청소년 같은 목적이나 일반화에 푹 빠지고 싶다는 학문적인 목적을 위해 책을 읽지 않는 훌륭한 독자가 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순전히 책의 형식, 비전, 예술만을 위해서 책을 읽는 법을 가르치려고 애썼습니다.  [...] 중요한 것은 어느 방면에서든 생각이나 감정의 설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설렘을 느끼는 법을 알지 못한다면, 인간의 정신이 내어놓은 예술이라는 귀하고 잘 익은 과일의 맛을 보기 위해 자신을 평소보다 조금 더 높은 곳으로 감아올리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인생의 가장 좋은 것을 놓쳐버리기 십상입니다. (663-664)



이 책은 강의록이니 만큼 언급되는 각 문학작품 들을 '미리' 읽고 자신의 생각을 (어차피 나보코프 선생님께서 다 깨부셔주시겠지만) 어느정도 정리한 다음에 읽는 것을 권한다. 나는 이 도서 목록 중 중요한 세 권은 읽지 않고 책을 만났고, 어버버버 하면서 따라 갔지만, 그래도 소설 읽기와 내 인생의 아직은 '가독성' 있는 시간에 감사했다. 2020년 이 *같은 시간에 이 책을 만나서 다행이다. 난 롤리타를 읽고 (그것도 영문, 번역본 두 편이나) 나보코프를 저주하고 있었지만 이런 두뇌의 인간이라면 조금은 살려두기로 (내 마음 속에서) 했다. 그리고 .. 내가 뭘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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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9-01 16: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부분만 읽었거든요. 저도 그 책들을 읽고 나서 나보코프의 감상을 읽는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더랬습니다. 문제는 그 책들을 다 읽을 수 있겠느냐에 있겠습니다.
율리시스랑 맥주, 넘 근사하네요.... 뭐랄까요, 도전을 부르는 책두께라고 할까요? ㅎㅎ

유부만두 2020-09-01 17:01   좋아요 1 | URL
도전을 부르죠?!!!! 제가 저 책을 12년 전에 샀더라고요?!!!
충분히 숙성됐으니 이제 읽어볼까, 어쩔까, 생각하고 있어요.

나보코프의 문학 이해(향유) 방식이 유일한 길이라고는 생각 안하지만 중요한 점을 짚어주고 있어요. 역시 똑똑한 사람이에요. 수록작품들 읽고 다시 나보코프 읽고 싶어요. 결국 인생을 멋지게 즐기는 거!!!! 이런 느낌이 들어요.
 

3년 전 안아키 카페로 시끄러웠을 때 막내가 이미 초등 고학년이었던 나는 조금 '느긋한' 마음으로 뉴스를 봤다. 왜 과학을 불신하고 엉뚱하게 휘둘리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과학과 이성의 시대에.


이 책은 면역, 백신 주사에 대한 그러한 '일부' 사람들의 불신과 행동의 현상과 그 역사를 짚어보는 책이다. 저자가 자신의 아이를 출산하고 키우면서 숱한 불면의 밤, 숱한 고열과 병치례, 알러지 반응과 응급실 행을 함께 이야기한다. 내 경험도 소환되었다. 아이가 둘이면 곱하기 2. 


그래서 이 책은 무엇이냐. 


백신거부는 단순히 물질적인 문제만도 아니고, 인간의 면역계라는 개념은 언어적 철학적 비유로 고찰할 때 끝없이 심오해지며 백신의 역사는 문명과 학식 혹은 종교에서 무와 유 사이를 오갔고, '자연'이라는 것과 '화학', 혹은 '오염'이라는 개념은 전혀 반대의 이미지로 소비될 수 있으며, 의학 돌봄의 손은 여자에서 남자로 옮아 왔는데 그 속에서 세균과 바이러스 존재가 서서히 드러났으며, 침묵의 봄이 몰고온 후폭풍과 경제 불평등 속에서 질병 지도의 문제와 백신 음모론과 마녀와 어머니, 여성의 역사도 짚어보고, 드라큘라와 아킬레스, 캉디드 까지 우리가 아는 문학 예술이 실은 면역 이야기로 이해될 수 있는데 그래서 백신 주사를 맞히는 게 얼마나 중요하냐면...!!!! 


이런 책이다. 


나 자신은 내 몸에 대한 결정권을 가질 수 있지만 나의 경계를 신중하게 고려해야한다고. 나는 언제나 '우리' 안에 있으며 그 나, 우리, 그리고 타인에 대한 선을 긋는 것에는 더욱 그러하다고. 배웠다고, 읽었다고, 안다고, 합리적이며 이성적이라고, 아니면 낙관적이라고 '자만'하지 말라고 말한다. 과학자라고, 의사라고 그 학위를 전적으로 믿을 수도 없다고 한다. 


이 책은 매우 재미있고 유려하며 설득적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읽다보면, 특히 아이 키우며 가슴을 천만 번 쥐어짰던 기억들이 되살아나고 아는 책과 역사 이야기에 반가워 하다보면, 잠깐, 나 지금 이렇게 어버버버 따라 읽어도 되는걸까? 나 이렇게 쉬운 독자였나? 하는 자기 의심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놓을 수가 없다.


저자의 유려한 말솜씨에 끌려다니다보면 아버지가 의사고 본인은 공부 많이한 작가인 환자, 그가 보호자로 아이를 안고 (그것도 난산을 했던 첫 아이) 마주했던 소아과 의사는 얼마나 당혹스럽고 긴장될까 상상할 수 있다. 


지금 코로나 시대에 이 책을 읽으니 (책 안에도 이 바이러스 이름이 나온다) 나는 어디에 서있나, 생각하게 된다. 이 바이러스의 전염성과 위험을 알고 숙주나 전파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집 안에 머문다. 양심과 선의, 신념이 무엇이라 할지라도 몸이 하는 물질의 세계에서 세균과 바이러스는 다른 원칙에 따라 움직인다. 내가 어디까지 내 의지로 결정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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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8-28 09: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의 경계에 대한 고민이 두드러지네요. 방역을 거부하고 동선을 거짓으로 말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건 오직 자신만의 ‘자유‘ 같아서요. 그 자유는 물론 나만의 자유겠죠.
예전부터 눈독 들였던 책인데 유부만두님이 유려한 글솜씨라 칭찬하시니 더 미루지 말아야겠다, 생각을 해봅니다. 밀려있는 책들이 많긴 하지만요 ㅎㅎㅎ

유부만두 2020-08-28 16:51   좋아요 0 | URL
밀려있는, 숙성된 책들이 한가득입니다. 그런데도 계속 책을 주문하는 건, 제 헛헛한 마음 때문이겠지요. 이 세상이 붙잡을 수 밖에 없는데, 어이 없게도 제겐 그 이유가 글쎄, 책이더라고요? 뎬당. 무슨 금요일이 팔월말이 나의 이어 트웬티 트웬티가 이래요. 엉엉엉.
 

제목이 은은하게 마음을 끌었다. 큰 아이 학교 숙제인데다 고전을 풀어쓴 책이라 읽고 싶지 않았는데, 달아놓은 책 제목이 내 마음을 끌었다. 손가락에 잘못 떨어진 먹물 한 방울로, 사랑이 싹트고, 갈등이 시작되고, 안타까운 목숨이 사그라 들었다는 얘기다.


임란이 끝나고 황폐해진 왕가의 사택 정원,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던 선비 하나가 그 버려진 정원을 몰래 거닐다가 두 연인의 혼령을 만나 그들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듣는다. 금지된 사랑은 이룰 수 없어 애닲고, 막다른 지경에서 죽음으로 연을 이어갈 수 밖에 없는데, 알고보니 둘은 이미 천상에서도 소문난 커플이었단다.

여러 편 궁서체로 표기되어 나오는 시들이 주인공 운영과 그 벗들, 그리고 로미오 김진사의 성정을 드려냈을 법한테, 그 아름다움이 차마 다 표현되지 못한 느낌이라 안타깝다. 그리고, 이 연인들의 소위 아름답다는 사랑이 그닥 와닿지도 않고, 월담에 동침이 스스럼 없이 진행되는 것이 조금은 당황스럽다. 이 사랑의 걸림돌이 주인 안평대군이었다가 어느새 하인 특이로 바뀌는 것도 불편하고, 그 사랑의 정당성은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사랑에 무슨 이유나 정당성이 있을까. 그저 잘못 떨어진 먹물 한 방울에, 스치는 옷자락에 시작하는 것이 사랑인 것을.

2011년 6월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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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0-08-23 1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큰아이 중학교 때 내가 남긴 리뷰다. 지금은 제대해서 복학생.

초딩 2020-08-23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애들을 북플 시킬까 고민 이에요 ㅎㅎㅎ

유부만두 2020-08-23 12:10   좋아요 1 | URL
아... 혹시 .... 오해하신 것 같아서 추가 설명 드리자면요,
큰애 중학교 때 제가 남긴 리뷰입니다;;;

복학생 큰 애는 책을 멀리하는 보통 청년이에요. ㅜ ㅜ

초딩 2020-08-23 12:19   좋아요 1 | URL
아 제가 잘 못 이해한 것을 딱 이야기 해주셨네요 ㅎㅎㅎ

파이버 2020-08-23 1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이 책 저도 어릴때 읽었었어요 오랜만에 다시 보니 반갑네요~ 유부만두님 감상을 읽으니 어렴풋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유부만두 2020-08-23 20:01   좋아요 1 | URL
파이버님께도 추억 소환이 되었군요! ^^
 


작년에 읽을 수 있었는데, 이제사 읽고, 아아아아 


재미있다. 


합이 아주 잘 맞는 중국 무술을, 

아니 세계 종말 재난 영화를 (현실 말고) 본 기분이다. 


두 편이 있다. 늘 이쪽과 저쪽. 내가 선 곳은 어디인지 빨리 알아야한다. 하지만 내 편을 숨길지, 밝힐지는 상황마다 다르지. 목숨이 걸린 일이거든. 그런데 저쪽에 자꾸 마음이 간다면 어쩌지?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고 뚝심있게 약간은 촌스럽게 이야기한다. 믿고싶다. 


표지가 너무 널널하고 힐링 분위기라 안 읽을 뻔 했는데 다행이야. 정말. 이런 소설이 있었기에 지난 주말 광복절 그 현실 뉴스를 끄고 집안에 있을 수 있었지. 하지만 어쩐지 또다른 눈을 뜬 기분이 든다. 내가 어디 서 있는가. 


스포를 할 수가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여러분 한 번 읽어봐요. 그리고 저랑 비댓으로 책얘기 해요. 절 믿고 읽어보세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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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8-22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 님도 평이 좋던데, 유부만두 님도 이렇게 극찬을 하시니 한 번 믿어보겠습니다!

유부만두 2020-08-22 12:29   좋아요 1 | URL
어깨에 힘 빼시고요, 한 호흡에 달리시면 됩니다.

주말에 읽기 좋은 블럭버스터 에스에푸 디재스터 스토리 되겠습니다.

어떠한 사전 정보 없이 책 첫장을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준비 되셨으면, 출발!

다락방 2020-08-22 12: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작년의 발견으로 문목하를 꼽습니다.

유부만두 2020-08-22 13:42   좋아요 0 | URL
제겐 올해의 발견이에요!

다락방 2020-08-22 13:53   좋아요 2 | URL
누가 물어본 건 아니지만 저는 김초엽 보다 문목하! 라고 생각합니다 ㅎㅎ

잠자냥 2020-08-22 14:11   좋아요 0 | URL
네 두 분 믿어보겠습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