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기억한 건 잘 안까먹는다는 말이 있지. 나는 오늘 요가에 새로 등록하고 첫수업을 들으며 그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아. 그러니까.

내가 좀 심각하게 몸치다. 그러니까, 뭐, 트위스트 동작 같은 '꼬기' 류의 동작은 그래도 좀 되는 편인데, 천성이 뻣뻣바디라 통나무처럼, 그러니까, 다리 앞으로 펴고 푹 숙이고, 뭐 이런 게 그렇게도 안될 수가 없다. 게다가 복근은 거의 제로에 가까운지라, 복근 활용 동작은 또 잼병인지라, 복근을 활용하는 다리 스트레칭 동작에서는 날 죽여주시오 모드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회사의 누군가와 함께 다닐 수도 있는 요가를 일부러, 혼자, 저 멀리 있는 요가학원까지 가서 한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라고는 없는 곳에서. 그렇다. 나는. 부끄러운 것이다.

그래서, 오늘 다시 가서 요가 동작을 하는데, 나는 좀 걱정했다. 아. 오랜만에 몸이 더 뻣뻣해져 부끄러울텐데. 큰일이다. 오늘도 영락없이 죽었구나. 하고 있는데, 아. 생각보다는 괜찮은 거다. (의 수준이 절대 탁월할 것이라 여기지 말 것 - 그냥 남들보다 '조금' 못하는 정도랄까. -_-) 그래도, 나는 그동안 드문드문 요가에 들였던 돈이 허황된 것은 아니었다며, 조금 감격하기까지 했다. 오른쪽과 왼쪽의 느낌 차이도 알겠고, 복식호흡의 들숨과 날숨도 이제 '제법' 제대로 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제법일 뿐이다) 내 몸의 느낌에 집중한다는 것도 알겠고, 땀흘리면서 잡생각 없이 운동에 집중하는 기쁨도 생긴다. 여전히 유연성은 떨어지지만, 뭐, 이것도 언젠가 좋아지지 않겠어?  


수련이 끝나면 10분 정도 그냥 누워서 쉬며 명상하는 시간이 있는데, 사람들은 이 시간이 아까워 슬금슬금 나가기도 한다. 나도 점심시간에 가서 할 때는 급하게 뛰어나갔지만, 사실 나는 이 시간이 제일 좋다. (운동 예찬할 때는 언제고 ㅋ) 50분쯤 힘들게 운동했으면, 10분쯤은 푹 쉬어주어야 한다는 것.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나를 내버려둠으로써 오히려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정리하는 시간. 돌아오는 길, 또 혼자 신나서 그냥 주3회 반으로 바꿔버릴까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지만, 이건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고, 주2회라도 빠지지 말고 해봐야지, 생각. 정말이지, 운동 끝나고, 나름 '웰빙' 하자면서 사 마신 2000원짜리 얼그레이, 그러니까, 도무지 1/20도 다 마실 수 없던 그 비릿한 얼그레이만 제외하면 나름 완벽했다고. ^-^



* 나름 운동했다고, 일기도 끝까지 못쓰고, 쓰다가 잠들어버렸다. 흐흐. 그러니까 이건 어제 일기. 일찍자는 새나라의 아가씨 프로젝트도 덕분에 성공. (일찍 자도 일어나는 시간은 똑같더라. 그러니까, 반쪽짜리 새나라의 아가씨인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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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09-04-07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바 아사나를 너무 열심히 하다보면
어느새 코를 골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몰라요. 웬디님~ ㅋㅋ


웽스북스 2009-04-09 01:14   좋아요 0 | URL
레와님. 멀리도 못가고. 오늘 발견했습니다. 코는 안골았지만 어느새 잠이 들어버렸어요. ㅎㅎ

프레이야 2009-04-07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른바 송장자세, 전 그 자세로 잠들어버리잖아요.ㅎㅎ
꾸준히 하시기를요.

웽스북스 2009-04-09 01:14   좋아요 0 | URL
그니까요. 아무리 어제 새벽 4시에 잤다지만. 오늘 그럴줄이야. ㄷㄷㄷ

hnine 2009-04-07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을 잘 잘수 있는 운동이라면 무엇이라도 하고 싶어요.
꾸준히 하시면 참 좋을 것 같네요.

웽스북스 2009-04-09 01:16   좋아요 0 | URL
네네 흐흐. 오늘도 일찍 자는 새나라의 아가씨가 되겠어요. 흐흐.

차좋아 2009-04-08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얼그레이가 필요하십니까? ^^ 참! 저 커피 드립 풀셋트 완전 구비 했습니다 ㅎㅎㅎ
좀 전에 애들이랑 핸드밀에 쌀 갈고~ (핸드밀의 수난)
여튼..쇼핑은 참 즐거워요^^
(다시 본론)얼그레이가 요가에 도움이되신다면 제가 좀(드릴게요)...ㅋㅋㅋ

웽스북스 2009-04-09 01:21   좋아요 0 | URL
불쌍한 핸드밀.
얼그레이는 요가에는 도움이 안되지만
제가 커피를 끊는데는 도움이 될지도 ㅎㅎㅎㅎ

아 그런데 제가 어제 이가원에게
이게 다 향편님때문이라고 투덜투덜거린걸 혹시 텔레파시로 들으신건 아니죠? ㅋ

L.SHIN 2009-04-08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가 혹은 스트레칭!
하고 나면 기분이 좋죠. 안 쓰던 근육 사이사이로 혈액이 공급되서 피로도 풀리고.^^
열심히 하세요~

웽스북스 2009-04-09 01:2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좋아요. 흐흐. 비록 몸치이건만 ㅋㅋ
엘신님 잘 지내요? 헤헷 ^-^

2009-04-09 0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10 2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혼자 꽃놀이를 가신 팀장님이 드문드문 사진을 보내줬다. 빠른 벚꽃 소식 때문에 이번주가 마지막이었다는 진해 군항제는 만개한 벚꽃들이 한창이었다. 

그리고, 서울의 곳곳은 이제 막 꽃소식이 시작되고 있었다. 함께 모여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꽃도 좋지만 (정말, 아름답지만) 내가 정말 어쩔 줄 모르게 좋아하는 장면은 의외의 곳에 피어있는 꽃들이다. 아. 너가 꽃나무였구나, 싶은. 평소에는 있는 줄도 몰랐던 강남역 8번출구 가는 길 주차장 경비실 앞의 벚꽃 한그루. 매일 출근길에 보는 여관 앞 목련나무와 그 아래 개나리들. 그리고, 아무 생각없이 영화를 보기 위해 들른 건조한 동네 압구정동에서 CGV 건물을 나선 순간 눈에 들어온 꽃나무들. 한달전쯤, 이대 캠퍼스에서 만났던 때이른 진달래, 홍대 카페 골목에서 무심결에 고개를 돌렸을 때 홀로 빛나고 있던 밤목련. 뭐 그런 골목골목들이, 사실 자기도 꽤 괜찮은 존재였다고 자신을 드러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그런 꽃들.

여전히 벚꽃과 매화가 좀 헛갈리지만, 그럼 어때. 예쁘면 그만이지. 게다가 실은 나는 목련을 좋아하는데. 하하. (혹시 목련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목련이 아닌, 그런 꽃이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런데 올해는 개나리가 왜이리도 좋은지. (그렇다고 벚꽃이 싫다는 건 아니다. 나는 공대앞 비전광장 외로운 바위 앞 벚꽃을 벌써 6년째 그리워하고 있다. 학교에 다른 벚꽃도 많아졌다고 하여, 나는 조금 기대가 되면서도 아쉽다.) 

2

도무지 취업에 대한 개념이 없어보이는 동생에게 내가 답답한 마음에 권한 것은 멘사시험이라도 좀 보는게 어떨까? 였다. 아무리 봐도, 뭐 토익이나 이런 건 변별력을 주기도 어려울 것 같고. 이 어려운 시기에, 뭐 그런 거라도 있으면 어떤 눈먼 기업이 혹하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생각이었고, 예상했던대로 녀석은 별 어려움 없이 붙었다. 

어떻게 목사님이 아셨는지 -_- 교회에 소문이 났고 당연히 압박의 대상은 내가 된다. 선아. 너도 봐야되는 거 아냐? 같은 핏줄을 타고 났는데, 머리가 달라? (ㅜ_ㅜ) 어머. 그러게요. 저랑 H는 머리가 전혀 반대 방향으로 발달이 되서, 저는 딱 문과잖아요. 아. 그런데, 천재적임을 입증해줄 만한 시험이 없네. 아쉬워라. 

그리고 속으로는 생각한다. 휴. 없기에 망정이지. ㅎㅎ 있었음 어쩔뻔했어. -_- 

3

사실, 오늘은, 좀, 뻔뻔하게, 쉬기로 한 거였다.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들었던 노래들을 멜론이 들려주고 있었고, 전람회의 노래를 들으며 잠들기 시작해, 잠깐 깨어났을 때는 Swell Season의 노래가. 그리고 다시 완전 일어났을 때는 이소라의 노래가 들려왔다. 시계는 보지 않아 몇분이나 잤는지는 모르겠고, 그냥 딱 앨범 세개만큼의 시간을 자고 일어나니 좀 살 것 같다고 꼬물꼬물 일어나 이것저것 공부하고 정리하고. 어휴. 그러고나니 이제 월요일이다. 

그러니까, 내일이, 월요일이지만,
최금숙과 점심시간에 산책하기로 한 날이니까,
회사에 가는 게 좀 좋기도 하달까. 하하. 

아. 그리고 내일부터는 요가를 시작해볼까. 한다. 주 2회.
뭐, 이거라도 제대로 좀 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랄까. 

 

그리고, 아치님이, 식목일이라고, 민의 사진을 보내줬다.  
이제 휴대폰 속에서 웃고 있는 깜찍한 옥찌민도 만날 수 있다

미소만으로도 선물이 될 수 있는 옥찌민은 참 행복한 아이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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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6 04: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06 1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9-04-06 0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옥찌민을 핸폰에서 볼 수 있는 웬디님이 더 행복할 듯...
하지만 옥찌민만 보고 있음 안돼요, 안돼~~ㅋㅋㅋ

웽스북스 2009-04-06 19:33   좋아요 0 | URL
흐흐흐. 순오기님.
제가 서른 줄에 들어서니 더욱 걱정되시는거죠?

2009-04-06 08: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06 1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07 15: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스탕 2009-04-06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팀장님은 비록(?) 혼자 꽃구경 가셨지만, 웬디양께선 꼭 남친님이랑 구경가세요 :)

웽스북스 2009-04-06 19:35   좋아요 0 | URL
하하하. 그, 그러게욥 ㅜㅜ (내년엔....? 으음...?)

다락방 2009-04-06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멘사시험 볼려고 했었어요.
그게 합격할 수 있어서 보고 그런게 아니라 나중에 사람들한테 "내가 멘사시험을 봤었어." 라고 말할라구요. 하하하하하하하하

회사동료들이나 식구들, 친구들한테 그러니 나랑 한번 봐보지 않겠어? 했더니 모두들 돈아깝게 그걸 뭐하러 보냐고 하더라구요. 전 역시 제가 생각해도 좀.....또라이같아요. 하하하하

네꼬 2009-04-06 14:34   좋아요 0 | URL
하하 다락님 진짜 웃겨. 하하하하하하하. "내가 멘사시험을 봤었어" 하하하하.

웽스북스 2009-04-06 19:35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 저 쓰러져요. 나 멘사시험 봤었어 ㅋㅋ 근데 이거 붙어도 또 돈이 들어가더라고요. (저는 절대 불가능한 걸 알기 때문에 안봐요 ㅎ)
네꼬님 / 역시 우리가 다락방님을 괜히 좋아하는 게 아니었어요

마늘빵 2009-04-06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한창 벚꽃 축제 기간인거 같더라고요. 버스앞에도 펄럭이는 광고문구를 달아놨던데. 주말에 별 일 없음 나들이 한번 할까봐요. ^^

웽스북스 2009-04-06 19:36   좋아요 0 | URL
이번주 지나면 거의 없을 것 같아요. 주말에 꼭 다녀오세요 ^_^

Jeanne 2009-04-06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멘사시험이 모에요? 흑. (물으려니 왠지 부끄)
나 최금숙 아는데.
서울 있나보네요

Jeanne 2009-04-06 10:22   좋아요 0 | URL
검색하니 나왔어요 ㅋ

웽스북스 2009-04-06 19:36   좋아요 0 | URL
흐흐. 선배님.
최금숙 이름을 이니셜로 바꾼다는 걸 깜빡. 흐흐.

검색했더니 최금숙이 서울에 있다는 게 나왔다는 얘기는 아닌거죠? ㅋ

누구엄마 2009-04-06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로운 바위 앞 벚꽃은 지난 주 버전으로는 안폈더라고요.
다른 벚꽃들은 만발했던데.
주인공은 역시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

웽스북스 2009-04-06 19:37   좋아요 0 | URL
흐흐. 그나저나 오늘 당신의 팔락팔락거리는 청첩장을 받았다오 ^-^

Alicia 2009-04-06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번 주말에 벚꽃보러 경주에 1박2일 엠티가요 흐흐. 부럽죵?
(월욜 아침부터 자랑질 헤헤)

웽스북스 2009-04-06 19:37   좋아요 0 | URL
오홋. 주말에 경주 벚꽃 남아 있대요?

진해 다녀오신 팀장님 왈,
그래도 벚꽃은 경주라며. ㅎ 잘 다녀와요 ^-^

네꼬 2009-04-06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양님. 진짜 꼭 지금 해야 되는데 하기 진짜 진짜 싫은 일 있을 때 어떻게 해요? (페이퍼와 상관 없는 불쑥 질문)

웽스북스 2009-04-06 19:38   좋아요 0 | URL
음? 네꼬님.
전, 빈둥빈둥거리다가 막판에 죽어라 하면서 울어요 ㅜㅜ
(그래도 매번 울어도 그편이 나아요 ㅋㅋ)

마늘빵 2009-04-06 23:10   좋아요 0 | URL
진짜 꼭 지금 해야 하는 일도 내일 할 수 있어요. 나라면 배째요. 이히.
 


도쿄소나타

단 한 가지 소원하는 것이 있다면,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것. 이라고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처절하게 외친다. 그렇다면, 어느 때의, 어떤 모습으로, 돌아간다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돌이켜져야 하는 것은, 돌이킨다 한들, 돌이킬 수 있는 것이 될까.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돌이킬 필요가 없는 것이 되기 위해서, 지금, 우리는,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째깍째깍 시계소리와 달그락 달그락 수저 소리만 나던 밥상머리와, 제 할 일, 제 갈 길에 바쁜, 그러나 정작 서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가족 구성원들의 모습. 물질적 공급이라는 역할을 충족시킬 수 있을 때에야 세워질 수 있는 권위, 그리고 그 가능성이 사라졌을 때도, 그 한자락을 놓지 못해 폭력으로 변해버리는 권위의 모습, 이런 것들이 결국 이 영화의 중-후반의 비현실적이리만치 처절한 파국의 모습을 불러오는 것은 아닌지.



그러니까,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을 돌이킬 필요가 없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먼저, 더 많이 소통하고, 더 많이 사랑하고, 좀 더 솔직해져야 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불가항력적으로, 정말 돌이키고 싶은 현실이 우리 앞에 찾아왔을 때, 그 때를 위해 어쩌면 우리는 '잘 올라서는 법'이 중시되는 세상에서,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한 걸음 내려서는 법'을 배워야 할 지도 모르겠다. 물리적인 파국이 정신적 파국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하기엔, 너무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이지 않은가. 
 


그랜토리노

누군가는 그를 클간지라 불렀다. 아. 정말. 적절한 표현이다. 클간지라니. 일단 클간지님에게 감탄 한 번. 그러니까, 클간지에게 오직 간지만 존재했다면, 나는 일단 그에게 감탄부터 보내고 보는 방식으로 리뷰를 시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의 간지는 그저 간지를 위한 간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어떤 나이가 되기 전에는 절대 할 수 없는 생각, 혹은 이를 수 없는 경지가 있다는 통념에 나는 대체로 동의하는 편이다. (물론 가끔 몇몇 튀는 난놈들이 우리를 슬프게 하지만) 그러니까, 클간지의 유언과도 같은 영화라는 이 영화에서 그가 보여주는 이 '복수'는 그 나이의 그가 아니었다면 생각해내기도, 그리고 해내기도 힘들었을 그 무엇. 똑똑하지만 절대 약삭빠르지 않은, 유일한 해법이지만, 안다고 누구나 할 수는 없는, 나는 감히, 이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보기도 한다. 
 

 
영화 속 월터의 모습은 사실 굉장히 보수적인 미국중심적 인종차별주의자. 세상에 마음에 드는 건 하나도 없고, 자식들과도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그저, 이모습 저 모습을 보며 크르렁 크르렁거리기 일쑤인. 세상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 투성이인. 노인네일 뿐이다. 하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일생 마음에 남는 죄라고는 결혼 이후 다른 여자와 키스한 것 (1회) 요트를 팔고 세금을 내지 않은 것 (1회) 그리고 두 아들을 마음으로 사랑할 줄 몰랐던 것. 뿐인. 그러니 어쩌면 그 삶은 매우 건강한, 참전자가 당연히 갖게 되는 '어쩔 수 없음의 논리'를 갖지 않고, 실은 '어쩔 수 없지 않았던' 상황에 대한 가책을 평생 지니고 살아온 여린, 보수였던 것이다. 나는 우리 사회에 보수가 존재해야 한다면, 적어도 자기 자신의 삶의 영역에 있어서는 이런 건강성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담 좀 크르렁크르렁 거리더라도, 꽤 괜찮을텐데. (사실 세상에 따지고 보면 크르렁거릴 일이 한둘인가) 
 


게다가 사실 이 할아버지, 어찌나 귀여우신지. 게다가 유머의 센스도 놀라워주시는지. 내가 할아버지의 작품들을 많이 챙겨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최근작이었던 밀리언달러베이비나 체인질링에서는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매력. 평생 닫고 살았을, 그 마음의 문이 결국은 자신이 가장 싫어하던 이민족들에 의해 서서히 열릴 때, 어색하면서도 즐거워보이던 그 모습이 어찌나 절로 미소와 폭소를 자아내던지.

 

비장한 의미에 위트를 담아낼 수 있을 정도로 삶의 여유와 내공이 쌓여갈 때쯤 삶의 소멸을 맞이해야 한다는 건 참 슬픈 일이지만, 내가 보기엔 이 할배, 앞으로 세편쯤은 더 찍을 수 있을만큼 정정하시더만. 오래오래 명복을 빌어드려야 할 분이 한 명 또 늘어났구나. (3개월째 점포정리중인 강남역 지하상가 모 옷가게처럼 10작품째 유작이 될지도 모르는 작품이라고 하셔도 눈 질끈 감고 속아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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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9-04-05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보셨으니까 이제 말하는데요, 저 타오를 첨 봤을 때 제 눈에는 13 ~ 15세 정도로 보였는데 나중에 직업까지 엄연히 가질 수 있는 나이란 게 좀 어리둥절 했었어요.
웬디양님도 로드무비님도 도쿄 소나타를 인상 깊게 보신 듯 하니 저도 꼭 보고 싶어지네요.

웽스북스 2009-04-05 23:3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좀 어려보였어요. 한 17-18세인 것 같죠 영화에서는? 아닌가? 더되나? 흐.

도쿄소나타도 그랜토리노도 다 니나랑 함께 봤거든요. 둘다 두 영화 모두를 너무너무 좋아했었어요. 그랜토리노는 보고 나오면서 우리는 치니님의 리뷰를 읽었으면서도 내용을 몰랐다며 한탄했는데, 생각해보니 그건 치니님의 고도의 '스포일러 하지 않음' 마인드로부터 비롯된 거였나봐요. ㅎㅎ 도쿄소나타도 한 번 보세요. ^-^

마노아 2009-04-05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눈 질끈 감고 속아줄 수 있어요. ㅎㅎㅎ 앞으로 10작품 더 출연하고, 10작품 더 연출하면 그때 유작이라는 걸 생각해 보자구요.^^

웽스북스 2009-04-05 23:40   좋아요 0 | URL
크흐. 마노아님도 클 할배에게 반해버리셨군요. 흐흐. 근데 또 너무 빡세게 기력을 소진하시면 안될텐데 하는 아쉬움도 들어요. 흐흐. 암튼, 할아버지 정말 정정하시죠? ㅋ 몸도 마음도 매우 건강한. ^-^ (그렇게 늙어야할텐데)

Alicia 2009-04-05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뎌 보셨네요 영화 좋았죠-
^^
멋진 보수주의, 근데 전 이런 사람을 만나본적이 없고 믿겨지지가 않아요.

웽스북스 2009-04-06 00:22   좋아요 0 | URL
사실 저도 만나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식코에서 봤던 그 보수당을 지지하지만 복지나 의료제도에 대해서는 건전하게 사고하고 계시던 할아버지 생각이 났어요. 사실 이게 어찌 보면 더 당연한 것 같기도 한데 말이죠. 영화는 뭐. ^-^b ㅎㅎㅎㅎ

Mephistopheles 2009-04-06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랜 토리노의 백미는 마지막 그가 소멸한 후 유언장을 읽는 장면에서 바로 다시 나타나요. 희생 후 그의 부재로 좀 먹먹하다가 막판 욕이 한사발 들어간 유언장으로 자식들과 손자들에게 뻐큐를 날리는 모습에서 아주 뒤집어 졌었다죠..^^

웽스북스 2009-04-06 19:38   좋아요 0 | URL
흐흐흐. 그래도 저는 이발소에서의 할아버지 모습에 더욱 뒤집어졌어요. 니가 죽어야 내가 다른 이발소를 갈텐데 ㅋㅋㅋ 암튼 참 센스넘치시는 할배에요.

무스탕 2009-04-06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랜 토리노 보고싶은데 울 동네서 안해요 -_-
영화보신 압구정 CGV가 신랑 회사 옆건물인데 거기가서 영화보고 신랑한테 점심을 사 내라!! 할까요? ㅎㅎ

웽스북스 2009-04-06 19:39   좋아요 0 | URL
아. 무스탕님. 안양에서 했던 걸로 알고 있는데. (무스탕님 댁이 ㅅㅂ 아니었던가요? ㅎ)

압구정 CGV 신관에서 하는지라, 매우 영화보기도 좋고, 좋던데요.
한번 데이트 하세요 데이트! 데이트!

Jade 2009-04-06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클린트 할배는 평상시에도 저런 모습일거 같아요! ㅋㅋ

웽스북스 2009-04-06 19:39   좋아요 0 | URL
긍까긍까요. 삶과 연기가 전혀 분리되지 않는 바람직한 모습이랄까요. ㅎ

프레이야 2009-04-06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쿄소나타,는 보지 못했구요,
그랜토리노는 아직 리뷰를 쓰지 못하고 있어요.
마지막 장면에서 아주 놀라웠어요. 먹먹하니 한참 앉아있었지요.

웽스북스 2009-04-10 23:30   좋아요 0 | URL
그렇죠 혜경님. 저도 그랬답니다.
정말 좋은 영화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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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나는 올해도 알라딘 이벤트에 혹! 빠져버렸던 것이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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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상품에 저런 폰트를 쓰기도 하는구나.
너무 쉬워서 이상하다 하면서 넣었더니
진짜 상품이었다 ㄷㄷ

(물론 이런 상품이 있다는 걸 알긴 했다. 그래서 좀 시시하다고 생각하면서 넣었달까 ㅋ)




















뉴요커식 발레 스트레칭 & 다이어트 1+2 세트 

발레면 발레지, 뉴요커식 발레는 뭘까, 하면서 넣었던 상품
(하지만 진짜라는 걸 알고, 흠, 살까? 잠시 고민했던)

















중년예찬

죄송해요. 중년여러분. 혹시나 하고 ㅜㅜ












젠틀케어 초정밀 코털정리기

아. 코털 정리도 기계로 하는구나.
초정밀 코털 정리기라는 어감이 너무 재밌어서
가짜가 아닌가 했지


 

 

 

 

 

 


1시간 안에 금연 성공하기

1시간 안에 금연 성공하기, 라는 발상이 말이 안되지 않나, 싶어
담아보았건만


하지만 하이라이트는 이것 



  

 





DVD - 공포의 만우절

이 상품을 찾았을 때 DVD를 찾느라 혈안이 돼있던 나는
심지어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가짜 책 찾기 이벤트는 나의 성격의 고약한 집착성을
정말 제대로 드러내주는 이벤트이고,
정말, 예전에 누군가 말씀하셨던 것처럼
내년에는 나의 이런 성격을 인정하고
만우절날 휴가라도 내야되는 게 아닌가 싶다


참고로, 이번 만우절 상품들 역시 '정말' 재밌다
읽다가 너무너무 웃어버린 것들도 있다는. ㅎㅎ


아직 못찾으신 분들은 얼른 찾아보세요.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음!

게다가 이 이벤트가 정말 똑똑한 이유는
DVD와 기프트를 뒤지다가, 몰랐던 괜찮은 상품들을 종종 발견하고
장바구니에 마구 넣어놓게 되었다는 것.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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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09-04-02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지르신거?
태그에도 안 낚입니다. 저는 뭐 찾아라류의 것들에 두드러기 증상이 나타나요.
웬디양님은 찾으면서 재미를 느끼지만, 저는 분노와 공포감, 서스펜스 기타 등등 호러용 감상만 남아서 아예 시도도 못하겠어요.

어쨌거나 저쨌거나
화이팅!
다 찾은거예요?

웽스북스 2009-04-02 00:59   좋아요 0 | URL
그럼요 그럼요 ㅎㅎ
지금 막 장바구니에 가서 거르고 걸러서 남긴 게 5만원도 넘는데
회사에서 짤리면 나도몰라. 흑.

Arch 2009-04-02 01:06   좋아요 0 | URL
다행이다. 다 못찾을까봐 저도 조마조마했는데.
다음 년도부터는 만우절 이벤트에 웬디양 전담반 운영되고 있음. 뭐 이런 부제라도 달아야겠어요.
회사에서 만우절이라 평소에 성실하던(정말?) 웬디양님이 근무태만 거짓말을 하고 있는거라고 생각하고 넘어가줄거예요.

웽스북스 2009-04-05 21:03   좋아요 0 | URL
흐흐흐. 맞아. 맞아. 라고 하기엔 평소에 너무 안성실하긴 해요. ㅎ

2009-04-02 0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05 2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L.SHIN 2009-04-02 0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 정말 '가짜 상품'으로 착각할만한 녀석들이네요.^^

웽스북스 2009-04-05 21:04   좋아요 0 | URL
그죠그죠 ㅋㅋㅋ 엘신님도 같이 이벤트 참여했음 좋았을텐데. 흐흐.

다락방 2009-04-02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뜬금없이)

나 블라 갔다왔어요. 지난 금요일에. 움화화화화화화홧.
거기서 와인 한잔 마시고 병맥주도 마셨다요. 움화화화화화화화핫.

웽스북스 2009-04-05 21:04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제가 설마 모를 거라고 생각하신 건 아니시죠.
움화화화화화화홧.

정말.. 2009-04-02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저 정말 꽃보다 남자 노트랑 졸지마. 장바구니에 넣었더랬죠.ㅋ

웽스북스 2009-04-05 21:05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반가워요!!!!!! 동지 1

무스탕 2009-04-02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발레 스트레칭이랑 공포의 만우절을 의심했더랬죠 -_-

웽스북스 2009-04-05 21:05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 공포의 만우절은 정말이지. 흑.
반가워요 동지 2

무스탕님도 꽤 뎁쓰있게 DVD를 뒤지셨군요. 흑.

마노아 2009-04-02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녀석들 저도 전부 찾았다!하고 장바구니에 담아놓고는 얼라, 정말 팔아? 하고 놀랐던 녀석들이에요. 어찌나 당황스럽던지요..;;;;;

웽스북스 2009-04-05 21:06   좋아요 0 | URL
하하하 반가워요 동지3
마노아님 중간에 많이 난감해하시는 덧글 봤는데,
결국 다 찾으셧는지 궁금해요.

무해한모리군 2009-04-02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뉴요커식 발레 스트레칭 & 다이어트 1+2 세트 저 가지고 있어요..
저같은 몸치는 죽었다 깨도 못하고 20분하면 벌써 지쳐요..
선물로 드릴까요?
생일이 언제시오?

웽스북스 2009-04-05 21:07   좋아요 0 | URL
휘이 휘이. 제 생일은 9월인데요. 저는 더한 몸치라서.
일단 제가 곧 요가를 시작할 생각인데요,
그때까지 내공이 좀 쌓이면 ㅋㅋㅋ

무해한모리군 2009-04-06 15:55   좋아요 0 | URL
쿠페파세쿠페파세 무슨 듣도 보도 못한 발레용어를 남발하면서 --;;
어찌나 또 빠른지 말도 못해요 ㅠ.ㅠ
9월에 드리도록 예약 ㅎㅎㅎ

바람돌이 2009-04-03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우절을 국경일로.... 아 제가 원하는거라구요. 찾고 싶으나 낮에는 바빴고 밤에는 해아가 아팠고...ㅠ.ㅠ

웽스북스 2009-04-05 21:07   좋아요 0 | URL
어어어어 우리 해야가요? 아팠어요? 흙 흙

강군 2009-09-10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약..제가 웬디님께서 쓰신 이 글을 보고 이 중에 두개를 구매해서 오늘 막 물품을 풀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어쨌거나 유용한 물건들입니다.
감사합니다~!

웽스북스 2009-09-11 00:26   좋아요 0 | URL
뭘 사셨을까, 급 궁금해지는데요 ㅋㅋㅋㅋㅋㅋ
 





영화가 끝나니 꽤 늦은 시간. 지하철을 탔다. 오르기 전 지하철 안에 누군가 고개를 확 숙이고 있었고 주변에 아이들이 둘러 있었다. 누가 술에 취해서 토해내나보다 생각하며 지하철에 올랐다. 그 아이들은, 침묵의 공공칠빵을 하고있었다. 맞으려고 엎드린 아이를 둘러서 때리고 있었던 상황인 거지.  

하필, 아이팟을 안들고 온 날이었다. 주말에 집에서 음악좀 더 넣겠다고 회사에 있던 씨디들을 들고 집으로 왔는데 연결잭을 두고온 거다. 그래서 오늘 연결잭을 챙기며 뿌듯해했는데 버스에서 가방을 뒤져보니 아이팟이 없었다. 아이팟을 가지고 다닌 후로 나는 소음을 무시하는 법을 잊었는지 음악이 없으면 안절부절이 되버린 것 같다. 다다다다다 등을 때리는 소리. 웃음을 참으며 큭큭대는 소리가 극도로 거슬리기 시작한다. 아. 지하철에서 공공칠빵이라니.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도 젊음이란 이름으로, 뭔가 낭만이란 이름으로, 몇번 민폐를 끼쳤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지하철은 아니다. 기차였다 -_- 음. 별로 다르지 않은가? ㅋ) 자기가 무리에서 웃고 있을 땐 그게 민폐라는 사실을 인지하기 어렵고, 설령 인지한다 하더라도 즐거움이 그 경계심을 넘어서, 결국 무시하게 되버린다. 저 아이들도, 뭔가 계속 눈치는 보지만 (나중에는 '우리 시끄러우니까 주먹으로 때리자' 라고 말하더라 -_-) 멈추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았다. 결국은 내가 참는 수밖에.  

그러니까, 실수가 많아진 이후부터,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이 탁월해진 나는, 내게 DMB가 있다는 사실을 께달았다. DMB에 음악 채널이 있을 거야. 그러니까, 나는, DMB가 된 휴대폰을 산 지 5개월만에, 세번째로 DMB를 사용해봤다. (첫번째는 베토벤바이러스 볼 때 ㅋ 두번째는 언제였던가,지하철에서 너무 심심해서 미수다를 봤었다.) 아이들은 내가 탄 명동역에서 범계역까지 40분의 시간을 쉬지 않고 계속 게임을 했고, 나는 DMB 덕분에 조금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2

그리고 내 옆에 아저씨. 스프링노트에 십자가를 그려놓고 그 안에 무언가를 글자로 막 채우고 계셨다. 그러니까, 우리 학생 때 애들이 하던, 빨간 볼펜으로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을 가득 채워 하트를 만들던 뭐 그런 것처럼, 한칸 한칸에 뭐라뭐라 집어넣으며 십자가를 완성하고 있었다. 가운데 붉은 십자가, 바깥쪽 중 안쪽에는 초록색 네모영역, 완전 바깥쪽은 검정색 네모영역. 고등학교 때 친구 양양이 K오빠에게 커다란 이니셜글자를 채워 선물하듯, 예수님께 십자가 깜지라도 선물할 작정인가,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잠시 후, 아저씨가 책을 덮는다. 할렐루야 기도원이라는 이름과 함께, 책의 표지에는 뭔가 정신수양을 위한 문구가 적혀져 있는 것 같았는데 거기에는 '성공할 수 있다'를 계속 외치라는 말도 함께 써있었다. 집에 와 홈페이지를 들여다보니 이단 논쟁이 있는 곳 같은데, 긁는안수, 생수안수, 코안수, 쑥안수, 특별안수, 이런 것들을 통해 병을 치유하는 곳인 것 같고, 홈페이지에는 피부염부터 각종 암까지 간증이 실려 있는... 그러니까, 그것도 병을 고치는 하나의 과정인가. 아저씨 피부 조직이 좀 독특해보이긴 했는데, 피부염을 치료하시려 그곳에 다니시는 분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냥, 아저씨의 그 어긋난 간절함에 괜히 속상해졌달까..

3

가끔 지하철 안에서 나는 어떤 풍경으로 어우러져있을까가 궁금하다. 내가 지하철에서 만나는 가장 재밌는 풍경은 굉장히 무뚝뚝해보이는 남자가

웅 *^^* 울 자갸~ 그랫쪄용~

와 같은 문자를 아무 표정 없이 보내는 풍경이다. 그런 풍경을 마주할 때, 아 저 사람도 출근자, 통학자가 아닌,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얼굴에는 표정이 없으니  손가락으로 짓는 표정. 실은 그 둘의 경계가 명확할 수 있는 것도 신기한 일이지. 사실 난 요즘 그게 안되서, 웃긴 문자를 보내면 나도 같이 막 웃는 표정으로 바뀌는 것 같은데, 메신저에서도, 나름 유머라고 시도하면서, 가끔 나 스스로가 너무 웃겨서 웃는데, 참, 이것도 못할 짓이긴 하다. 얼마나 얼빵해보이는지. ㅋㅋ

암튼, 내가 가장 많이 맡는 역할은, 쩔어있는 직장인 역할이지 뭐. 오늘은 까칠한 승객 역할, 호기심 많은 아가씨 역할도 함께했으니 1인 3역을 한 셈이군.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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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9-03-31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이거 시리즈로 써주세요 ~ 재미있어요 ~

웽스북스 2009-04-05 21:08   좋아요 0 | URL
헤헤헷. 제가 요즘 다시 이어폰을 끼긴 하지만.
치니님 때문에라도 좀 더 주위집중을 해봐야겠어요. ㅎㅎ

무해한모리군 2009-03-31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번 생각만 해도 웃겨요..

웽스북스 2009-04-05 21:08   좋아요 0 | URL
그죠그죠그죠 ㅋㅋㅋㅋ

2009-03-31 0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05 2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꼬 2009-04-01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의 3역 중에선 까칠한 승객 역할이 제일 맘에 들어요. 내가 그랬더라면 참 못돼 보였을 텐데 웬디님은 새침하니 '아가씨' 느낌이 물씬. ㅎㅎ

웽스북스 2009-04-05 21:09   좋아요 0 | URL
말도안돼. 내가 네꼬님보다 새침하다고요? 허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