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닐 때는 그렇게 통학버스를 타고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웠었다. 회수권이라는 걸 가지고 다녀본 적도 없고 차비라는 걸 받아본 적도 없는 나는 (이렇게 말하니 무슨 기사 딸린 차타고 다녀서 '버스가 너무 타고 싶어요' 하는 부자집 외동딸 모드스럽지만 그건 절대 아니고) 두 발로 뚜벅 뚜벅 걸어 집에서 90도 방향으로 15분 거리에 있는 초등학교, 집에서 60도 방향으로 20분 거리에 있는 중학교, 집에서 30도 방향으로 20분 거리에 있는 고등학교를 나란히 졸업했다. 게다가 대학생 때는 기숙사에서 살게 되는 바람에, '통학'이라는 것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 때 나는 통학이라는 건 매우 낭만적이고 신나는 게 아닐까, 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어리석었다. 통학대신 통근이라는 것을 하게 된 나는 아침마다 지하철의 놀라운 인파에 몸을 맡기며, 왜 도무지 우리는 이런 짓들을 계속해서 해야만 하는 걸까. 나는 언제까지 이런 지하철을 타고 다녀야 되는 걸까. 꽉꽉 들어찬 인파 속에 쓰러질 것 같은 졸음이 가득한 아침, 피곤이 가득한 밤을 우리나라 최대의 곤란한 코스라는 '사당-강남 코스'와 함께해야 하는 내게 최근 가장 슬픈 뉴스는, 너무 답답해 사람들 내리는 길 비켜줄 겸 잠시 내려 공기 좀 마셔보겠다고 숨을 고르던 방배역사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됐다는 뉴스였다. 아. 슬픈 지하철 인생이여. 이런 처절한 출퇴근 길을 늘 다니다 보니 나는 저절로 '출퇴근길 빈자리'에 대한 집착을 갖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지하철에서 노약자석이 비어 있는 현상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수년 전에 있었던 ㅂ모 음료 광고의 영향이 컸으리라. 어떤 사람들은 텅 비어 있는 노약자석을 볼 때마다 우리 사회가 참 아름다운 곳이라는 것을 깨닫는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사실 이런 분위기에서 이 말을 한다는 것은 커밍아웃 수준으로 굉장히 어렵지만,
나, 가끔은 노약자석에 앉았던 적이 있다.
물론 몇가지 원칙이 있다. 그 원칙에 의해 스스로를 약자로 규정할 수 있는 날. (그러니까, 뭐 아픈 날 정도가 되겠다) 그럼에도 세 자리이상의 노약자석이 비어 있어 다른 노약자분이 (특히 노약자임이 티가 나지 않는) 나로 인해 힘들게 서서 갈 일이 없을 상황에서 가끔 노약자석에 앉는다. 물론 이런 상황이 자주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언제였던가. 쓰러질 정도로 피곤했던 날, 죽을 것 같은 얼굴로 문가 기둥에 기대어 허우적대는 나에게 노약자석에 계신 할머니가 자리를 양보하려고 하신 적도 있었다. 쓰러질 정도로 힘들었지만 아픈 건 아니었고, 노약자석이 비어 있지 않았으므로 그 자리에 앉을 수는 없었다. 가장 최근 노약자석에 앉았던 적은 얼마 전 식중독으로 며칠간 고생하던 때였다. 너무 힘들어 텅 비어 있는 노약자석에 앉으면서도 나는 어쩔 수 없이 최대한 자리에 앉아 '나 지금 아파요'의 포스를 폴폴 풍겨줄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나 지금 아파요'의 포스를 풍길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타인의 시선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아, 저런 새파랗게 젊은 녀석이 노약자석에 앉아 가다니. 라는 눈으로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지금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젊은이들이여. 눈치 보지 말고 당당하게 노약자석에 앉자, 뭐 이런 얘기를 하려는 건 당연히 아니다. 다만, 나와 그대가 노약자석에 앉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나 가끔은 노약자석에 앉았다고 당당히 얘기해놓고는 그럴 만한 상황이었다고 번지르르한 변명을 늘어놓을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좀 본질적으로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1. 진정한 노약자를 위한 배려인지
2. 자신의 고결한 도덕성을 유지하고 싶기 때문인지
3. 혹은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인지.
뭐 어느 하나가 단일한 이유로 작용한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사실 나를 두고 생각해보자면, 1번의 이유보다는 2번 혹은 3번의 이유가 더 컸던 것 같다. 노약자가 탈 리가 없을 것 같은 매우 늦은 시간에도 텅 비어 있는 노약자석에 앉지 못하는 이유는 언젠가 탈지 모르는 노약자를 배려하는 마음에서라기보다는 노약자석에 앉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노약자석에 앉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그걸 무심결에 느꼈던 건 아마도 버스를 탔을 때였을 것이다. 나는 한 번도 버스에서 노약자석을 비워둔 채 서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버스보다 지하철을 타는 빈도가 더 높기 때문에 확률적으로 맞닥뜨릴 일이 적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버스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노약자석에 앉아 있다. 나도 버스에서 노약자석에 앉을 때는 상대적으로 마음이 조금 더 편안하다. 그럼에도 노약자석을 피해서 앉는 이유는 노약자를 배려하는 마음이라기보다는 자리를 양보하는 일의 부담으로부터 조금 멀찍이 있고 싶기 때문이었으리라. 만약 그 ㅂ 음료수의 광고가 지하철이 아닌 버스를 배경으로 미디어에 등장했다면, 우리는 같은 현상을 지하철과 버스를 뒤바꾸어 보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내가 졸업한 학교는 'Honor code'라는 것이 존재했고, 그 일환으로 양심시험제도라는 것이 존재했었다. 우리는 그 문화를 우리의 아름다운 문화라고 자랑하고 다녔지만,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그것은 양심에서 기인하는 부분도 없지 않았겠지만, 서로가 서로에 대한 철저한 감시자로 존재했기에 가능한 제도였는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우리 주변의 많은 것들이 이와 비슷하지 않은가.
노약자석에 앉은 젊은이를 바라볼 때의 우리의 시선은 또 얼마나 험악한가. 현재 임신 중인 직장 동료 w대리님은 임신 3개월 정도 됐을 때, 출근길에 너무 힘들어서 배를 쓰다듬으며 ‘아가야, 여기 앉자, 조금만 참아’ 라고 이야기를 하며 노약자석에 앉았다고 한다. 사실 산모가 유산의 위험이 가장 높은 시기는 3개월 전후라고 한다. 그 때가 아기의 조직이 막 형성되는 시기라 가장 힘들다는데, 배가 나오지 않아 그냥 노약자석에 앉게 될 경우 굉장한 눈치를 견디면서 가야 한다고 한다. 그 마음이 편치 않아 차라리 서서 가는 게 더 나을 정도라고 한다. (그 정신적 스트레스가 아이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노약자석에 앉아 있는 젊은 여성에게 한 노인이 호통을 치자, 그 여성이 항변하듯, 저 임산부에요, 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본 적도 있다. 그래서 몇 년 전엔가, 희망제작소라는 곳에서 임산부 뱃지를 달고 다니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었다. 이런 뱃지를 만들고 달고 다니게 한 것은, 자리를 양보해 주세요, 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노약자석에 앉은 젊은이의 사정을 헤아리기보다는 먼저 험악한 눈초리를 보내고 보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단면이 아닐까. 그런데 또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런 눈초리에는 어떤 도덕적 우월감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노약자석에 앉지 않으니까, 노약자석에 앉는 너보다는 도덕적으로 나은 사람이야, 라는 우월감. 그리고 여기서 비어져나오는 비난 본능. (사실 비난은 타인에 대한 우월감을 확인하려는 본능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으니) 사실 일반적 상황에서 노약자석에 앉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작은 경우 하나를 가지고 본인을 짐짓 괜찮은 사람으로 여기며, 이런 것들을 타인의 인성 전체를 평가하는 잣대로 활용하려는 우를 우리는 꽤 자주 범한다. 이 역시 꼭 노약자석만의 이야기는 아닐 수도 있다. 어떤 작은 원칙들을 성실히 지켜나감으로써 스스로의 선함을 규정하면서도 정작 구조 속에서 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폭력에 대해서는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우리 안에는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여기서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종종 우리가 구석의 노약자석을 노약자들에게 양보하면서, 남은 수많은 자리들은 너무나 당연히 우리의 자리인 양 생각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모든 경우에 그렇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얼마쯤의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는 그런 마음을 갖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얼마 전 노약자석에서 할아버지 몇 분이 싸우는 것을 보았는데, 요는 누가 더 나이가 많은가,였다. 70쯤 된 할아버지가 60대 할아버지께 새파란 것이 노약자석에 앉아 있다고 호통을 치셨고, 60대 할아버지께서는 억울해하시며, 저도 매우 힘들고, 노인이고, 환갑도 지났습니다, 라며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그 자리에서 그 광경을 바라만 보고 있던 우리는 달랑 그 몇 자리 노인에게 내주고는 나머지 자리는 젊고 센 우리들의 것으로 당연히 여기고 있는 사람은 아닌지. 물론 그렇지 않은 순간도 많겠지만,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그런 순간도 있었다. 사실 내가 약자가 아닐 때에는 모든 자리를 노약자석이라 여기는 마음이 더욱 바람직하지 않은가. 지하철 양쪽 구석에 조그맣게 마련된 그 자리를 두고 노인들끼리 싸우는 것을 보고만 있다니. 그러면서 그래도 나는 노약자석은 비워두니까 좀 괜찮은 사람이라며 자위하다니, 이건 어째 좀 뭔가 아닌 것이지. 노약자석과 비노약자석을 가르고, 그만큼의 자리 정도는 양보해 놓은 뒤에 우리는 할 바를 다했다며 거기에 머무르는 자신의 도덕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래도 가끔은 꽤 따뜻한 광경을 만날 때가 있다. 얼마 전 출근길 4호선은 평소보다 사람이 조금 더 많았는데, 그 지하철에 키 작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타셨다. 이미 지하철은 만원이고, 노약자석도 꽉 찬 상황. 그런데 할머니는 몸이 불편하셨는지, 할아버지가 매우 안절부절하며 할머니의 자리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꽉 찬 지하철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할아버지를 볼 수도 없었고, 할아버지가 그 사람들의 앞으로 가기도 어려웠거니와, 출근길이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을 감은 채 잠들어 있었다. 나는 안절부절한 마음이 들었고, 주위를 둘러보니 나처럼 두리번 두리번 안절부절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이 안절부절한 사람들은 모두가 서 있는 사람들, 즉 양보할 자기 자리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 때 아저씨 한 분이 앞에 앉은 아가씨에게 상황을 설명했고, 아가씨가 기꺼이 일어나 할머니는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순간 지하철에는 안도의 기운이 흘렀다. 나는 분명히 느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많은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그 상황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우리는 한 마음이었던 거야’, 라는 생각을 하며 괜히 좀 든든해하다가 ‘응? 이런 마음 익숙한데?’ 하며 생각하다 보니 이 상황은 얼마 전 다시 봤던 미국의 촉망 받는 젊은 감독 미란다줄라이의 <미앤유앤에브리원>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과 닮아 있었다. 어떤 남자가 딸과 함께 금붕어 한 마리를 사들고 차에 오르는데 차 문을 열며 잠시 금붕어를 차 지붕에 올려둔 것을 깜빡한 채 그 상태로 출발해 버렸다. 이를 다른 운전자가 발견하고는 저 금붕어가 살 수 있는 길은 영원히 그 속도로 달리는 것 뿐이라면서 안타까워한다. 그러던 중 차 위의 금붕어가 기적적으로 다른 운전자의 차 위로 떨어지게 되고, 원래 금붕어 주인이 이 광경을 보게 된다. 그러자 처음에 그것을 발견했던 운전자가 원래의 금붕어 주인과 함께 뒤쪽에 금붕어가 올려져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 달리는 그 차 앞뒤로 붙어 그 차가 계속 그 속도를 유지하며 달릴 수 밖에 없게끔 돕는다. 그러면서 ‘적어도 이 순간 우리는 하나인 거야’ 라는 말을 하는데,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보이는 약한 존재를 지켜내기 위한 진정성이 느껴져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던 장면이었다.
이 장면을 떠올리며, 노약자석을 둘러싼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며, 내 안에, 우리 안에, 약한 것들을 향한 마음들이 얼마나 순수한가, 때로는 타인의 시선 때문에, 때로는 나 자신의 도덕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짐짓 타인을 배려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러면서 어쩌면 약자일지도 모를 그 누군가에게는 우월성이 가득한 잔혹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다. 물론 가끔은 이렇게 한 마음이 되어 함께 안절부절하고, 함께 안도의 숨을 내쉬기도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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