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보면 참 재밌는 일이다. 봄방학은 왜 봄방학일까. 아이들의 봄방학이 끝나는 순간 봄이 시작된다. 아니다. 꼭 그렇게 볼 수도 없다. 3월이 온다고 바로 꽃이 피는 것도 아니고 따뜻해지는 것도 아니니까. 왜 방학을 왜 계절과 꼭 연관시키는 건지. 뭐 나의 작은 불만이 그렇거나 말거나 어쨌거나, 아이들은 봄을 맞이하기 전 짧고 아쉬운 방학을 맞고, 이 기간에 많은 교회들은 청소년부(혹은 중고등부라고 부르나?) 수련회를 가곤 한다. 우리 교회도 예외는 아니어서, 2월 마지막 주에 9명의 아이들과 함께 태안으로 청소년부 수련회를 갔고, 청소년부 교사인 나는 금요일 퇴근 후 여행하는 기분으로 혼자 버스를 타고 태안으로 향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가는 시간에 기도회가 끝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가지기도 했다. '성령기도회'라는 이름으로 준비된 청소년부 기도 시간이 나에게 매우 힘들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시간표상으로는 기도회가 끝날 시간 즈음 내가 들어가게 돼 있었는데, 이게 왠일. 일정에 착오가 생겨 내가 가고도 1시간 이상의 시간이 흐른 후에 기도회가 시작됐다.

꿈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꿈이 이루어지기 원한다면 더 큰 목소리로 기도하십시오. 계속 이렇게 살 건가요? 변화되고 싶다면 지금 이 순간 성령님을 더 큰 목소리로 부르세요. 성령님, 지금 나에게 와 주세요.

결국 그 강압적이고도 간절한 분위기에 뜨겁지 못한 웬디 선생님은 10분도 안돼 지쳐버렸다. 콘택트렌즈가 빡빡하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핑계삼아 잠시 자리를 빠져나와 생각했다.

꿈이 이루어지려면 더 큰 소리로 기도해야 한다고? 휴. 그러니까, 하나님은, 그러니까, 꿈을 이루어주기 위해 존재하는 분인건가? 그런건가? 우리가 하나님께 최고로 구해야 할 것은 바로 그것인건가. 혹시 청소년들은 꿈을 볼모로 잡혀있는 존재는 아닐까. 모 목사님 말처럼, 성령님은 어디 계시다가 우리가 기도회 시간에 뜨겁게 불러야만 오시는 분이신건가.

하지만 나는 선생님이니, 오래 자리를 비울 수는 없는터. 혼란스러운 마음을 안고 다시 그곳으로 들어간다. 이번에는 각 선생님이 아이들 그룹 안으로 들어가 손을 붙잡고 서로를 위해 간절하게 기도하라고 하신다. 나는 저 뒤쪽에 뻘쭘하고도 뻘쭘하여 도무지 이 분위기에 어찌 적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들의 곁으로 웃으며 다가간다.

얘들아, 힘들지.
아, 아니에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죽겠다는 얼굴을 해놓고는.
아, 사실, 전 저렇게는 못하겠어요.

괜찮아. 사실 선생님도 저렇게 하는 기도보다는 조용히 하는 기도가 더 좋은걸. 너희가 같이 뜨겁게, 소리내어 기도하는 게 어려워도 괜찮아. 기도 소리의 크기가 신앙의 척도는 아니니까, 그런 것들로 너희들의 신앙에 회의를 품을 필요는 없어.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그런 것들로 인해서 실족하여 하나님과의 관계의 중심보다 다른 것들에 더 집착하게 되고, 그런 것들로 네 신앙을 스스로 재고, 제한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거야. 지금 너는 하나님을 잘 모르겠지만 하나님을 알고 싶은 만큼, 아직은 하나님이 네 마음 속 작은 방에 있는 것으로 느껴지지만 존재하신다고 여기는 것만큼, 그만큼의 너의 신앙을 존중하고, 앞으로 그 품을 더 넓혀가는 것, 그런 것들이 지금 이순간 여기에서 너의 신앙의 크기라 여겨지는 것을 한 순간에 확장시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거야.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10년쯤 전, 어떤 수련회 현장에서의 내가 떠올랐다. 사람들마다 모습과 성격이 다르듯, 하나님을 대하는 모습과 성격도 다를 수 있다는 걸 알지 못하던 그 때, 다른 아이들처럼 뜨겁지 못함이 한탄스러웠고, 나의 믿음은 왜 저 아이만큼 좋지, 아니 좋아보이지 않는 걸까,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그러면서 나도 괜히 같이 목이 쉬어라, 터져라, 기도도 해봤던 것 같다. 그 때 내게 필요했던 건, 조금만 더 해봐. 그럼 너도 쟤들처럼 될 수 있을 거야, 라는 격려 섞인 강요를 하는 선생님이 아니라, 지금 네 모습 그대로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선생님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무도 나에게 그렇게 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뜨겁던 수련회의 한 구석에서, 매우, 괴롭고 또 외로웠다. 되지 않는 것들을 갈망하며, 되지 않음에 절망하며.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으시는 걸까. 나의 믿음은 그저 허상인 걸까.

그런 나였기에, 아니 아마 그렇지 않았다 해도, 아무튼 나는 아이들의 기도소리의 크기로 수련회의 은혜정도를 측정하려 하고, 몇몇 아이들이 눈물을 흘리면 오늘 은혜 좀 받았구나, 라고 생각하는 그 때의 분위기에, 그리고 교회 안에서의 전반적인 분위기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 순간 아이의 진정성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의 척도가 되는 외식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어른들의 마음을 만족시키는 정답들이 몇 가지 있다. 수련회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은 어른들 마음에 매우 흡족한 정답일테지만, 나는 우리 아이들이 진심은 저 너머에 둔 채 정답을 말할 때 좀 속상하다. 아동부 교사를 5년 이상 하면서 느꼈던 건, 아이들에게 정답만을 가르쳐야 한다는 (그만큼 또 아이들이 어리기도 하다는) 답답함이었고, 나는 그렇게 머리로 배웠으나 마음으로 실감하지 못한 정답들을 계속 가지고 자라날 아이들이 안타까웠다. 내가 그러했듯. 그리하여 나는 아이들이 진심을 말하는 법을 좀 배우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청소년부에 지원했다. 나는 진심으로 아이들이 정답을 말하는 일보다 진심을 말하는 일에 익숙해졌으면 좋겠다. 그게 어른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때로는 좀 되바라지고 거세다는 평가를 들을지는 몰라도. 그 진심을 어른들의 정답이 아닌 나의 정답에 가까운 것으로 만들어나가는 일. 그렇게 끊임 없이 자기 자신을 성숙하게 만들어나가는 일. 이건 아마 내가 올 한 해 내가 맡은 우리반 아이(1명이다)와 함께 해나가고 싶은 작업이다. (하지만 내공이 부족하다. 휴)

기도회 시간이지만, 기도 대신 저 뒷편에서아이들과 두런두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며 올해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해가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자라는 한 해를 보내겠다고, 다시 한 번 작정했다. 쑥쑥 멋있게.

거기 뒤쪽. 아이들과 기도를 하세요. 대화를 하지 말고.

앗. 눈초리가 따갑다. 그렇지만 죄송. 지금은 저도 다른 어른 선생님들의, 목사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고, 아이들과 좀 더 대화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되바라진 선생님이라는 평가를 듣게 된다면, 되바라진 선생님 하죠 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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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09-03-28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혀~ 되바라지지 않았어요. 내공 부족보다는 좀 다른게 원체 삐걱거리는거란 생각이 들어요.
나도 비슷한 고민을 했었는데... 그때의 나도 웬디양님처럼 목이 쉬어라, 탈진할 정도로 나를 압박했었어요. 그래서 얻어진건 내가 이만큼 노력했다는거지, 진심으로 닿았구나라던가, 내 안이나 어느 곳에서든 현현하는 그분의 모습은 아니었어요.
그때 만약에 웬디양님같은 선생님이 있어서 '아치, 어깨에 힘 빼고 네가 원하고 간절하게 바라는 모습대로 기도해보자'란 말을 했다면, 제 신앙이 크고 막강하진 않았겠지만 쭉 이어가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웬디양님!
가끔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요새는 자주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말야. 히... (음흉한 웃음)

Arch 2009-03-28 14:26   좋아요 0 | URL
아아, 마지막 그림이요. 옥찌들 영향인지 모르겠는데(옥찌들이 제가 사진찍을 때 이마를 반 정도 자르면 항의하고 이마 살려내라고 하거든요. 얼굴 예쁘게 나오게 하려는 컨셉인데. 칫) 얼굴이 잘리니까 다른 내용보다, 얼굴이, 얼굴이, 이런 생각이 자꾸 들어요.

웽스북스 2009-03-30 01:22   좋아요 0 | URL
아. 아치님도 그랬던 적이 있군요. 그 때의 그 답답함.

사진은 저거요, 사실요, 파워포인트 클립아트에서 '선물' 검색하면 나와요. 소심해서 저작권 때문에 아무거나 못쓰고 가끔 애용하는 프리웨어 무더기 클립아트. 흐흐.

2009-03-28 2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30 0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라나타 2009-03-29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가름과 다름 사이'를 통해서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가름과 다름 사이에 이 글에 대한 댓글을 달았는데, 이 곳에서 웬디양님을 보니 더 친근하게 다가오네요. 가끔 놀러와서 글도 읽어봐야겠네요^^

웽스북스 2009-03-30 01:23   좋아요 0 | URL
하하. 마라나타님. 반갑습니다. 주신 덧글은 이미 확인해 답글 달아놓았고요. ㅎㅎ 여기는 어쩐지 좀 부끄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