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대로 고백하자면, 나는 동물들에 대해 그리 애잔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이다. 동물을 키워보거나 마음을 줘본 일이 없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가끔 동물을 대하는 인간들의 태도가 굉장히 인간중심적일 때 심히 분노를 하게 된다. 어느 날 그 길에서, 라는 로드킬(길에서 죽임당하는 동물들) 관련 다큐영화가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동물 관련 작품이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동물관련 영화들을 그렇게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그 영화들이 불편했던 것은 동물들이 인간의 삶의 어떤 성취를 위해 수단화된 모습을 보며, 사람들이 인간과 동물의 아름다운 우정, 공존, 이런 이야기들을 할 때였던 것 같다. 경주마와의 우정, 서커스코끼리와의 우정, 뭐 이런 이야기들.
인간은, 인간이니까, 결국 인간 중심적인 시선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건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동물은 인간을 위해 충성해야 하는 존재로 너무나 당연한 듯 상정하고,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때 '아름답다'는 찬사를 보내는 건 어쩐지 지극히도 인간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인간이 동물에게 얼마나 잔인한지를 보여주는 편이 더 친동물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만난 이 영화는, 아, 이런 것이 공존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영화였다. 물론 이 영화에서의 소 역시 인간에게 매우 충직하다.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그 소의 주인인 할아버지 역시 그 소에게 매우 신실하다. 할아버지에게 소는 어떤 성취를 위한 수단이 아닌, 삶 그 자체였다.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농사를 지으면서도, 할머니의 그 귀여운 투덜거림을 감수하면서도, 농약을 치지 않는 이유는 소 때문이다. 가장 좋은 것을 먹이고 싶은 맘. 그래서 오래도록 곁에 있어 주었으면 하는 맘. 할머니가 걸핏하면 이 소들을 어떻게 다 먹이느냐고 투덜거리는 이유 역시, 할아버지가 그 소를 결코 쉽게 먹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고, 내가 시집을 잘못 왔지. 그냥 사료 먹이지' 라는 할머니의 투덜거림이 계속되는 것도 참 그럴법하다. 사실 소의 장수 비결은 할아버지의 그 유난한, 고집스런 지극정성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실, 사람은 소에게 얼마나 잔인한가. 아버지, 이 소가 제가 세살이었을 때였나? 그 때부터 있었던 것 같은데. 그래, 이 소가 우리 9남매 공부시켰지. 고맙고, 참 불쌍해. 아버지도 참 고생 많으셨어요. 이젠 파세요. 라고 말하는 그 냉정함. 500만원 밑으로는 절대 팔지 않겠다는 할아버지에게 코웃음을 치며 거저 준대도 갖지 않을 소,라고 이야기하는 그 잔인함. 그러고보면 자연사할 수 있는 운명을 가진 소는 얼마나 될까. 아마도 거의 없지 않을까. 때가 되면 가죽이 되고, 고기가 되어야 하니, 그 몸뚱이 그대로 온전히 땅에 묻힐 수 있는 소 역시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 우시장에서의 할아버지 마음은 얼마나 다행스러웠을까. 유일하게 할아버지가 웃으며 말을 제일 많이하던 부분이 소가 팔리지 않은 뒤 우시장을 나와 사람들과 수다를 떨던 부분. 그 소, 비록 고기와 가죽은 형편없을지 모르겠지만, 차도 피할 줄 알고, 집도 찾아올 줄 아는 소인데. 그런 능력 같은 건 시장에서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것. 이거 생각해보면 우리 사는 삶의 축소판이기도 하지.
눈을 깜빡거릴 힘이 없을 때까지 소를 타고 다니셨던 할아버지. 할아버지를 힘겹게 끌고 다니는 소를 볼 때마다 안타까웠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쉽게 받아들이거나 인정하기 어려웠을, 그래서 그 소가 그대로, 그 자리에 계속 있어주길 바라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보지 않을 도리가 없으니, 어찌 할아버지를 비정하다 할 수 있을까. 사람 몸에 좋은 약초 민들레를 뜯어 소 앞에 툭 던져주고 가는 할아버지의 손짓이 냉정하다고 해서 그 안의 따스함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무엇보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내게 아름다웠던 장면은 할아버지와 소가 나무짐을 나눠지고 나란히 걸어오던 장면이다. 이들은 이렇게 살아왔구나. 소는 할아버지를 위해서. 할아버지는 소를 위해서. 서로의 삶에 최선을 다하며 나란히 걸어왔구나. 라는 생각. 물론 이것도 인간다운 생각일지도 모르겠다는 우려가 들긴 하지만, 적어도 한 생물을 동등한 생명체로 대하고, 존중하며, 때론 자기 삶의 많은 불편까지도 감수하며 사랑해온 모습, 생의 마지막 부분까지 함께 보내며 삶과 죽음의 순간을 함께 살아내는 모습은 우리에게 참 많은 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