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하느님 - 권정생 산문집, 개정증보판
권정생 지음 / 녹색평론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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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멋있는 말과 반성을 곁들인 리뷰를 쓰려면 충분히 쓸 수도 있겠는데, (멋있게 쓰지는 못한다 사실 -_-) 말뿐인 반성이 그간 내 안에서 얼마나 팽배했나 생각해보니 이내 부끄러워져 그럴 수가 없겠다. 그러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부끄러웠다는 말을 하기가 어느 새 부끄러워지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내가. 그러니까. 이 책의 내용들이. 막 새롭게 다가오고, 마음을 촉촉히 적시고, 반성의 물결이 메아리쳐온다기보다는, 내게는 이제 지극히 당연하게 들리는 이야기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적어도 머릿속에서는. 적어도 머릿속에서는. 그러니까, 머릿속에서'' 말이다. 얼마나 슬픈 일인가. 나를 하나도 바꿔내지 못했으면서, 어느 것도 삶으로 살아내지 못하면서, 그저 머리만 커져서, 다 알고 있는 얘기지, 그렇지, 맞아, 맞아, 하고 있는 재수 없는 인간이 되어 버리다니. 예전에 고종석의 코드훔치기에서였던가. 프랑수아 라블레라는 프랑스 소설 개척자(?)가 했던 '자각 없는 앎은 정신의 폐허' 라는 말이 떠올랐다. 당시 나는 이 말이 우리 시대를 매우 정확히 표현해 주는 말이라 생각했는데, 어느 새, 나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이 시대의 대표선수가 되어버린 건 아닌가 하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저, 나를 향한 반성도 비난도, 그리고 시대를 향한 안타까움을 표하는 일조차도 참 어렵기 그지없다. 어쩌면 내 안에 앎에서 자각으로, 자각에서 삶으로 넘어가는 중간에 어느 회로 하나가 끊어진 건 아닐까. 아이팟을 들으며 스타벅스 커피를 손에 들고 이 책을 읽으려는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의 그 아이러니함이라니. 차마 그럴 수가 없었을 때, 내가 손에서 내려놓았던 것은 아이팟과 커피가 아닌, ‘일단은이 책이었다는 사실은 어쩌면 내가 어떤 인간인지를 보여 주는 여실한 예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렇게 부끄러워하면서도, 내 안의 달콤하고 소소한 욕망과 만족들을, 내가 중독된 것들이 주는 기쁨을 여전히 포기할 의지가 없는 자이니. 이런 내가 이 책을 읽고 할 수 있는 말은 아마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내 삶을 바꿔내려는 시도에서 얼마간은 좌절했던 경험들, 당위와 욕심 사이에서 욕심이 승리하도록 스스로를 방치했던 일이 내게 가져다 주었던 역설적인 무력감, 그 이후, 한 사람의 삶이 바뀐다고 세상은 달라지지 않잖아, 라고 푸념하던 자조적 위안 등에서 기인한 것이겠지만, 여기, 오롯이 몸으로 살아낸 한 사람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는가, 정녕 그랬는가, 를 생각해 본다면, 결코 그렇지는 않은 것이다.

이번에 선생님 마지막 남긴 글 보면서도 우리가 그 동안 곶감 빼먹듯이 선생님 만나 위로 받고 우리한테 득 될 말씀만 듣고, 우리 떠나 보내고 선생님은 늘 혼자 아프시고, 그래서 초상집에서 며칠간 일하면서도 그것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서, 얼마나 아프셨을까 생각하니, 자꾸 눈물이 나고, 하느님이 너무 가혹하단 생각도 들고

선생의 한 지인이 권말에 쓴 이 글 속의 그의 모습이 아마도 나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이런 책들을 간헐적으로 읽어오면서, 좋은 말들만 쏙쏙 골라, 변화 없이 비대해질 뿐인 삶의 자양분으로 꽉꽉 채워넣고, 그래도 난 좀 좋은 사람이라며, 난 좀 다른 사람이라며 스스로 위안하는 일들. 우리가 욕하는 그들과 다르게 살고 있지도 못하면서, 그래도 생각만은 좀 다르다고 비난을 보내는 일들을 너무나 익숙하게 해나가면서 스스로의 삶을 자위하는 동안, 혼자 외로이 아프게 삶으로 살아낸 분 앞에서 이런 반성 없는 반성문이 또 무슨 소용일까. 백장의 반성문보다 나 자신과, 당신, 우리의 변화를 위한 0.1발짝이 더욱 의미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 이제 삶으로 살아내 보자. . 도무지, 저 한마디가, 나에게는 얼마나 부담스럽고, 얼마나 무거운지 모르겠다

2

최근 교회에서 찬양을 하다가 확 엎어버리고 싶었던 과격한 마음이 들었던 순간이 있었는데, ‘죄 많은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네, 나는 이 세상에 정들 수 없도다라는 가사의 찬양을 부를 때였던 것 같다. 이것도 아마 선생의 영향이겠지. 죄 많은 이 세상, 내 집 맞다. 우리가 뚝딱뚝딱 고쳐 나가야 할, 그래서 나중에 살게 되는 사람들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야 하는 내 집인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천국 소망을 품고 사는 자들이라 할지라도, 이 세상을 이렇게도 나몰라라 할 수가 있다니. 아마 나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많은 문제들은 여기에서 기인하지 않았을까 싶다. 왜 그러면서, 우리의 기도는 여전히 이 모양인 것일까. 내 집 아니라며 -_- 죄 많고 더러운 세상을 볼 때는 여긴 내 집이 아니므로 정들 수 없으면서도, 나를 위한 기도를 할 때는 너무나 내 집인 상황. 이런 우리를 보고 선생은 성경을 들어 말씀하신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비난도 비판도 하기 어렵다, 라고 위에서 토로해놓고, 바로 이렇게 비난 본능 나와주시는 나 자신을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죄 많은 이 세상이 내 집이 아니라 나몰라라 하는 그 순간 욱했던 마음을 이렇게라도 좀 표현해 놓고 싶어서. 맥락 없는 말을, 굳이, 번호까지 구분해가면서 하는 나는 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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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3 0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23 1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23 1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24 0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9-02-23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번이 오늘아침에 본 순오기님 페이퍼와 같이 생각을 던져주네요.
이기적인 기도에 우린 익숙해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불성실한, 세례만 받은 신자랍니다.^^

웽스북스 2009-02-24 01:43   좋아요 0 | URL
아. 순오기님도 비슷한 페이퍼를 쓰셨군요. ^-^
혜경님께 생각거리를 던져드렸다니 다행이에요
물론 제가 아니구, 권정생 선생님이 던지셨겠지만요

최선엄마 2009-02-23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그러니까, 나도. 목사님들도 제발 직업을 좀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래야 진정한 평신도를 위한 사역이 가능한거 아님?
주일은 진정으로 쉼을 얻어야 한다는 것은, 나가서 평일에 돈을 벌어봐야 알 수 있는 일.
차는, 모닝 이상은 자기 돈으로 사서 유지하기, 뭐 이런 것좀.
예수님도 당나귀 이상은 안타셨다구.
목사님들께 선물 바치지 말고 그 돈으로 없는 사람좀 도와주시기를, 부자님들은.
21세기 한국교회 구출을 위한 20계명 이런거 만들어서 누가 좀 뿌려주었으면. ㅋ

웽스북스 2009-02-24 01:43   좋아요 0 | URL
ㅋㅋ 이거 나름 특집 대박 아이템 ㅋㅋ

무해한모리군 2009-02-23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스로 힘겨울때 겸손을 잊었다는 생각이 들 때 즐겨드는 책입니다.

웽스북스 2009-02-24 01:44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저도 가끔 집어들게 될 것 같아요.

전호인 2009-02-24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파를 떠나 스님, 목사 들 모두 현실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훌륭하신 분들이 너무 많기도 하지만 사이비적 색채로 치장된 분들의 비현실적임이 개탄스러울 때가 많답니다. 오랫만이죠 웬디양!

웽스북스 2009-03-02 13:10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에요. 전호인님 ^-^ 봄이에요 봄봄!
 
[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서평단 알림
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5
이권우 지음 / 그린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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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단 책입니다.

왜 신청했을까. 아. 책읽기의 달인, 같은게 되고 싶었던 건 아닌데. 그냥 책에 대한 책은 재밌으니까. 라는 단순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의 기획 의도가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라는 걸 알았다면 아마 신청하거나 읽지 않았을 것 같다.

이건 잘 고쳐지지 않는 나쁜 기질 같은 건데, 첫인상을 믿는 것도 아니면서 왠만해서는 처음에 강하게 받았던 좋지 못한 느낌에 대한 편견은 잘 고치지 못한다. 인간이 삐딱해서 한번 삐딱선을 타면 아무리 만회의 기회가 많아도 그게 어떤 큰 계기가 생기지 않고서는 쉽사리 그 삐딱선에서 내려오지 않는 종류의 인간인데, 이 책 역시 그런 의미에서 나의 마음을 돌리는 데 실패해버렸다. 그렇다면, 나는 왜 삐딱선을 탔을까.

   
  그렇다. 책을 읽는 이유는 자신의 사회신분을 향상하기 위해서다. (중략) 공자의 시대에도 책읽기가 신분상승의 결정적 요인이었다면 지식기반사회라고 일컬어지는 오늘에야 그 중요성을 새삼 말할 필요가 없을 터다. 자본이 지식을 사서 더 큰 이익을 내던 시대는 지났다. 지금은 오히려 지식이 자본을 구해 더 큰 이익을 남기는 시대이다. (중략) 책읽기와 사회적 성공의 상관관게는 오랫동안 등한시되었다.  
   

 
가끔 책을 읽다가 연필로 낙서를 하는데 난 정확히 '향상하기 위해서다' 근처에 '뭥미'라고 적었다. 남기는 시대이다 옆에는 -_- 라는 표정을 지었고... 등한시 되었다, 뒤쪽에는 결국 '공자님 들으면 기절하겠다'라는 말까지 적을 수 밖에 없었다. 미안하다. 우린 친해질 수가 없겠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작가는 뒤쪽에서 결정타를 날린다.

   
  그렇다면 단언할 수 있지 않은가. 책읽기는 선한 것이고, 책 읽지 않는 것은 악한 것이다.  
   


여기까지 나왔으면 일단 나랑은 게임 끝인 거다. 누가 감히 저런 무식한 명제를 들이밀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스스로가 '책벌레'라고 끊임없이 자처하는, 책을 읽는다는 이유로 사회적 존경을 받으신다는 사람께서, 어떻게 저런 성찰 없이 자기 확신에 가득찬 명제를 들이밀 수가 있을지. 행간을 들여다보면 그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으런지는 모르겠지만, 저자는 감히 '단언했지' 않는가.

내 책이었으면 아마 이쯤에서 우리 그만 헤어지자, 빠이빠이를 외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라면, 뒤에서 무슨 얘기를 해도 나는 더이상은 그를 신뢰할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속이라는 건 참 무서운 것이다. 나는 리뷰를 써야 하니까 이 책을 끝까지 읽었다. 아무리 저자가 이렇게 유혹해도.

   
  물론 책을 읽다가 집어던질 줄도 알아야 한다. 지은이가 속된말로 '개소리'를 한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끝까지 읽어야 할 이유는 없다. 세상에 책은 넘쳐나고 그만큼 함량미달의 책도 많다. 반드시, 다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자신을 괴롭힐 필요는 없다. 그럴 짬이 있으면 잠이나 자는 게 낫다.  
   


그리고 저자의 이런 무의식적 자기 비판에도. 꿋꿋이 이 책을 읽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빨리 읽히는 책은 읽기를 꺼린다. 그런 책은 종이에 활자가 찍혀 있더라도 본래적 의미에서 책이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의도적으로 거부한다기보다 체질적으로 읽어내지 못한다. 내가 잘 팔린다기에 이를 악물며 도전하지만 끝내 대중소설이나 무협소설을 못 읽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책장을 축지법 쓰듯 읽을 수 있는 것은 책이 아니다.  
   


물론 이 책을 다 읽는 데는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_-

알고 있다. 이 책에 이런 얘기만 적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나는 저자의 일관성 없는 논지 때문에 그 어떤 목적도 만족시키지 못한 책이라 이야기할 수 밖에 없게 됐다. 넓게 여러 부류의 독자를 만족시키고 싶어했던 저자는 결국 모든 토끼를 놓쳐버린 건 아닌지. 아니다, 나처럼 성격 나쁜 독자들만 놓쳐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 이런 얘기들이 굳이 책으로 묶여져 나와야 하는 이유도 잘 모르겠다. '책 읽는 사람'이라는 게 자신을 정의하는 굉장히 중요한 명제인 양 으스대는, 니들도 조금만 해봐, 나처럼 될 수 있어, 라고 말하는 게 영 거슬렸다. 게다가 책읽고 '글쓰기'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저자의 글솜씨 역시 그리 유려하지 못하다. 아, 이제 그만해야지. 그러게, 처음부터 누가 나를 삐딱선으로 들이밀래요. ㅜㅜ 차라리 뒤쪽에 나온 책을 통한 교육에 대해 좀 더 연구를 해서 실용지침서로 냈으면 누군가에게는 더 효용이 있는 책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좀 씁쓸하기도 하다. 그저 '책을 읽으세요' 만으로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는 게 소위 '출판평론가'라는 사람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사살되니 말이다. 책읽고 성공하세요. 책읽고 영화나 연극과 같은 21세기 문화사업의 주역이 되세요. 책읽고 글 잘 쓰는 사람이 되세요. 책읽고 논술 만점 맞으세요. 라며, 책 자체가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하지만 적어도 내 주변에는 책을 책 자체로 묵묵히 즐기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리고 내가 내 앞에 있는 누군가가 진정 빛난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는 바로 그들과 함께하는 순간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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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9-30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서평단 책이 아니면 혹평 쓸 일이 없긴 하다. 내가 산 책 리뷰는 원래 잘 쓰지도 않거니와, 혹평을 굳이 시간들여가며 쓸 필요는 없으니. ㅎㅎㅎ.

치니 2008-09-30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까칠한 웬디양, 추천 날렸습니다. :)

웽스북스 2008-10-01 00:53   좋아요 0 | URL
아이쿠, 치니님. ^_^

라주미힌 2008-09-30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가 책 읽어서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있나보네요 ;;;;;
(리뷰를 보니 둘 다 아닌 것 같은뎅 ㅎㅎㅎ)
책이 꼭 내용만 좋아야 좋은 책인가... 인격도 담겨 있어야지...
심각한게 빠져 있군용..

하여간 읽느라 수고 많으셨네요.. "잠이나 자는 게 나"았을 텐데요...

웽스북스 2008-10-01 00:54   좋아요 0 | URL
그런 내용이 빠져있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뭐 들어가기는 이 내용 저 내용 다 들어가 있으니까요. ㅎㅎㅎ. 제 입장에서는, 새벽까지 리뷰도 쓰고 다음날 힘들었으니, 확실히 자는 쪽이 나았겠지요 ㅎㅎㅎ

2008-09-30 1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웽스북스 2008-10-01 00:55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네네. 돈아껴줘서 고마워, 땡스투도 있으면 좋을텐데 ㅎㅎㅎ
(안사시길 잘하셨어요)

누구엄마 2008-09-30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오
저도 요거 서평단으로 써야하는데
참...... 난감.
제목이 안타까운.

웽스북스 2008-10-01 00:56   좋아요 0 | URL
어후, 너도 써야하는구나.
읽긴 다 읽은 거야?

왠만하면 또 까칠은 지양해왔던 그대의 리뷰도 기대해볼게. ㅎㅎ

행복한글읽기 2009-07-03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전 재미있게 읽었는데. ^^;;;;;;
 
생각하는 기독교인이라야 산다
존 캅 지음, 이경호 옮김 / 한국기독교연구소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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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텔레비전을 사고 나면 다음은 세탁기를 살 작정이야. 이싱은 내 몸이 약하니까 되도록이면 가사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해. (중략) 아이는 점점 커가고 필요한 것이 점점 늘어가. 세탁기 다음은 아이의 외국어 공부를 위해서 테이프 레코더야.
생활이 필요를 낳고, 물질의 필요가 조금씩 내 정신을 빼앗아, 마지막에는 정신을 대신해버렸어. 욕망에는 제한이 없어. 그 하나하나가 분발의 목표가 되어 다른 것 따위는 생각할 틈도 없지. 철학은 철학자에게 맡기고, 정치는 정치가에게 맡겨버렸어. 나는 생활의 전문가가 되어 살림을 꾸리는 연구를 하고 있는 거야. 나는 만족을 느끼고 행복을 느끼고 있어, 생활이라는 것은 본래 그런 것이야. <다이호우잉 – 사람아 아 사람아 中>
 
   


어쩌면 나 역시 이와 같은 이유로, 신학은 신학자에게 맡겨버리는, '전문가와 상의하세요'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사람에게 지나치게 많은 필요를 낳도록 만들었고, 이로 인해 나는, '전문화'라는 허울 좋은 이름의 그 무엇을 통해 눈 앞의 필요를 해결하도록 하는 일, 즉 당장 눈에 보이는 필요에만 집중하고 그 이상의 것은 타인의 몫으로 돌려버리며 자신은 손쉽게 그것을 취하기만 하는 세상의 논리에 스스로의 신앙 역시 맡겨버려 오지 않았나 싶다. 

<생각하는 기독교인이라야 산다>의 저자인 신학자 존 캅은 이런 현상에 대한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그는 '전문화로 인해 많은 일들이 잘 처리될 수는 있겠지만 어떤 의미에서 인간은 작아진다'고 이야기하며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누군지, 무얼 하는 사람인지에 대해 그만큼 책임을 덜 지게 된다고 말한다. 현재 전문화되는 양상을 띠고 있는 신학은 비전문가들의 위축을 야기할 수 밖에 없기에, 신자들이 자신의 몫이라 여기고 관심을 갖는 영성처럼, 신학에 있어서도 이러한 움직임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개인적인 문제로만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저자는 이는 교회 지도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이라 보며 '교회 지도자들은 활발한 토론을 통해 교회가 사는 길을 택하지 않고, 표면적인 조화로 인해 죽는 길을 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의 지적은 틀리지 않다. 현대 교회에서는 나의 이성을 버리는 것이 아름다운 포기로 여겨지고 있으며, 생각하지 않고 받아들임이 미덕이라 불리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는 평신도들의 자세로, ‘전문가들에게서 신학을 되찾아올 것’을 제안한다. 즉 성도들 개개인이 신학자가 되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들의 믿음이 개선되고 더욱 기독교적인 믿음이 되는 것은 새로운 통찰력과 설득력 있는 논증과 깊은 깨달음을 주는 경험에 의해 우리의 실제 확신들이 변화될 때뿐이며, 이것은 한 평생 걸리는 작업이지, 우리가 어떤 기관이나 전문가에게 우리의 정신을 내맡길 때 되는 일은 아니라 말한다. 여기서 저자는 우리의 믿음의 원천들을 확인하는 작업들을 굉장히 중요하다 여기고 있는데 실제로 자신이 기독교적인 믿음이라고 믿는 것들의 많은 것들이 문화적으로 조건지어진 것이 아닌지를 되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현재 우리의 믿음을 다듬어내고, 자신의 신학을 하기 위해 저자는 먼저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정확히 분간해 내고, 거기에서부터 정직한 자신의 신학을 시작하는 일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나 자신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또한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 저자가 던진 몇가지 물음들에 대해 고민하는 작업을 통해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디로부터 비롯한 것인지를 진지하게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간 스스로 생각하는 기독교인이라는 자의식을 갖고 살면서도, 실은 그 근원을 돌보는 일에 내가 얼마나 소홀했는지를 돌아볼 수 있었고, 사실 내가 그닥 생각하는 기독교인이 아니었구나, 라는 (나로서는) 다소 충격인 결론에도 도달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이 책을 읽는 작업이 내게 의미 있었던 이유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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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8-09-02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기독교인들이 웬디님처럼 고민해주시면, 제 이해와 관용의 수준도 한층 올라갈텐데...우리 MB께서도 제발 이런 생각 해주시길.

웽스북스 2008-09-02 12:38   좋아요 0 | URL
우리 MB께 보내고 싶은 책들 목록 쌓으면 천장까지 닿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돈도 아깝고, 읽을리도 없고,
읽는다 하더라도, 제좋을대로만 해석하시는 대단한 분이심을 모르는 바 아니니... 그저 요즘은 기독교인이라는 게 부끄러운 마음이 예전보다 더 커진 것 같아요, 어휴, 어휴, 어휴....

그런데 치니님 '다수'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굉장히 고민을 하고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기독교인들도 정말 많답니다. 저는 그저 말뿐이지만요....

니나 2008-09-02 13:31   좋아요 0 | URL
저는 그저 소(극적)일뿐이지만요...

toon_er 2008-12-24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이쿠 웬디양.^^
좋은 리뷰 감사해요. 호호.

웽스북스 2008-12-24 13:16   좋아요 0 | URL
흐흐흐 익상아 반가워 ^_^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박경리 시집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박경리 선생이 지난 5월 타계해 많은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남겼다. 평생의 역작인 <토지>라는 큰 선물을 우리에게 남겨 주었지만, 선생을 사랑했던 독자들에게 다시는 선생의 글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은 그 선물의 크기만큼이나 커다란 안타까움이다.

박경리의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 참 홀가분하다> 의 출간은 이러한 점에서 독자들에게 참 반갑고도 섭섭한 소식이다. 여력이 남아 있는 한 자신과 세상을 향한 펜대를 놓지 않은 선생의 마지막 목소리를 이렇게나마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반갑고, 그 목소리가 정말 마지막이라는 점에서 섭섭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집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됐지만 산문과 시의 중간 형태를 띠고 있어 쉽게 선생의 마지막 삶의 흔적을 좇을 수 있다는 점은 평소에 시를 어려워하는 독자들에게 반가운 일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여전히 자신과 타인에게 엄격한 모습의 선생을 만날 수 있다. <소문>이라는 시에서는 자본주의와 그 꽃이라는 광고에 대한 따끔한 한마디를 들을 수 있으며, <확신>이라는 시에서는 지나친 자기확신을 가진 이들이 가져오는 처참한 결과에 대한 촌철살인을 잊지 않는다. <천성>이라는 시에서 남이 싫어하는 짓도, 자신이 싫어하는 짓도 하지 않고, 자신을 반기지 않는 곳에는 가지 않는 본인의 꼬장꼬장한 성미에 대해 적으면서도 공개적으로 내지른 쓴 소리, 싫은 소리들에 대해서는 자신만의 일은 아니기에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을 잊지 않는 선생의 모습은 못내 귀엽기까지 하다. 여기에 자신의 어머니와 할머니에 대해 묘사하며 그들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낸 시를 읽으며 선생이 가진 성품의 연원을 되짚어보는 일 역시 흥미로운 작업이다.

선생은 자신이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남몰래 시를 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남겼다. 선생이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었던 희망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에 대한 희망이었을까, 세상에 대한 희망이었을까. 자연과 생명에 대한 희망이었을까. 아마도 이 모든 것들에 대한 희망이었으리라. 선생은 모든 걸 초탈한 듯 이야기하지만, 실은 어떤 것에 대한 열정도, 애착도 놓지 않고 있음을 우리는 이 시집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냥 버리고 갈 수도 있는 것을 이렇게 남겨주어서, 선생이 끝까지 붙들고 있던 희망의 흔적을 좇게 해 주니, 그리고 그로 인해 우리도 한줄기 희망의 자락을 놓치지 않게 하니 선생을 사랑하는 독자들은 그저 고맙고 또 고마울 뿐이다. 다음 생에는 선생의 바람처럼, 부디 일 잘하는 사내를 만나 깊고 깊은 산골에서 농사짓고 사시길, 그렇게 된다면 독자의 입장에서는 무척 아쉬운 일이겠지만, 그럼에도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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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8-18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생일선물로 받아놓고 아직도 못 보고 있어요.ㅜㅜ
박경리선생께도 책 선물하신 분께도 죄송~~~
감동적인 리뷰, 웬디양님 덕분에 필 받아서 봐야지!!

웽스북스 2008-08-18 12:33   좋아요 0 | URL
아흡, 감동적인 리뷰라고 말씀해주시니,
제가 더욱 감동이옵니다 (__)

순오기님도 얼른 읽고 리뷰 남겨주세요 ^_^

2008-08-18 2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8-18 2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8-19 0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르탱 파주 지음, 이상해 옮김, 발레리 해밀 그림 / 열림원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가끔 책을 읽기도 전에 첫마디에서 그 책을 대하는 내 마음이 '헤에...^____________^' 하고 무장될 때가 있다. 동동주 한잔을 마신 알딸딸한 지하철에서 K에게 받아온 이 책의 첫머리를 읽는 오늘 내 마음이 딱 그랬던 것 같다.

   
  비는 세상이 잠시 정지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패스워드다. 비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 그것은 다름을 긍정하는 것이다.  
   


비가 좋은지, 눈이 좋은지, 뭐 이런 질문을 받게 되면 나는 고민 끝에 비를 좋아한다고 답해왔던 것 같다. 눈은 소리없이 내리지만 비는 소리와 함께 내리는, 시각적 예술성과 청각적 예술성을 겸비한 자연현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나는 소리없이 내리는 비보다 조금은 굵고 시원하게 내리는 비를 좋아한다. 눈은 통유리 안에서 볼 때 아름답다고 우스개처럼 말하곤 하는데, 비는 방음이 잘되는 통유리 안에서 보는 것은 매력이 없다. 무엇보다 비듣는 소리와 함께 보아야 제격이다.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나 역시 비로 인해 잠시 정지하는 그 세상의 풍경이 좋았나보다. 그리고 어쩌면 그와 함께 나도 잠시 정지하고 싶었나보다.

저자는 '눈을 내리깔도록 요구하는 일종의 복종의 상징'인 태양보다는 우리로 하여금, 독서를 하고, 영화관에 가고,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또한 예술가는 작업을 하고, 병사들을 막사에 머물도록 하는 비의 힘을 믿는다. 중요한 행사를 망치게도 하고, 우리의 삶의 균형을 잃게도 만드는 비이지만, 그런 '질서정연함'에 대항하는 '시적 무정부상태'에 도래하게 하는 비를 보며 기쁨을 누릴 줄 아는 사람이다. 사람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무언가를 해결하려 애쓰는 것은 바로 이렇게 머리에 무언가를 맞은 순간(물, 비극, 사랑의 슬픔 등)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비 때문에 수없이 많은 전쟁들이 무위로 끝날 수 밖에 없었다며, 비는 '노벨 평화상'을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 나는 잠시, 노벨 평화상 수상자에 비가 호명되는 순간을 상상해 본다. 얼마나 즐겁고 낭만적인 일인가. 이쯤 되면 자격은 정말 그 누구보다 넘치지 않는가.

   
  비는 어린 시절의 유전자들을 품고 있다. 우리는 호스로 물을 뿌리며 장난을 쳤고, 물웅덩이에서 폴짝폴짝 뛰었고, 신이 나 물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물론 이젠 어른이 된 듯하기 때문에 우리는 실수를 가장해 도랑에 발을 빠뜨리고는 짜증이 난 것처럼 연기한다. 하지만 실제로 튀는 물에 젖는 것은 우릴 즐겁게 한다. 바지, 양말이야 젖건 말건, 어린 시절이 하늘에서 떨어진다. 우리는 남몰래 지저분한 개구쟁이로 되돌아가는 것을 자신에게 허락한다.
 
   



그러고 보니, 비가 오는 날이면 스커트를 입거나, 발목 아래로 내려오지 않는 짧은 바지를 입고, 가급적 젖지 않는 신발을 신고는 길을 걸으며 횡단보도 앞 물웅덩이가 파인 쪽으로 일부러 퐁당 하고 발을 담그곤 했던 것 같다. 바지가 젖는 게 싫다며 온갖 무장은 하지만, 나도 모르게 발등에 찰랑 하고 와닿는 차가운 감촉이 주는 나름의 쾌감이 있었나보다.

우산이 없다는 핑계로 작은 바다의 양과 흡사할 정도로 쏟아진다는 비를 맞으며, 흠뻑 젖어 집까지 뛰어간 그 생생하던 순간도 기억난다. 나는 그 때의 느낌을 잊지 못한다. 온 몸에서 뚝뚝 물이 떨어지는데, 몸은 덜덜 추운데, 오히려 온몸이 흠뻑 젖으니, 그렇게 몸과 마음이 시원하고 좋을 수가 없다. (그리고 따뜻한 물로 샤워하는 느낌은 더욱 브라보!) 더 이상 분수대 같은 곳에서 아이처럼 나를 흠뻑 적시며 놀 수는 없다는 걸 알기에, 무의식중에 그런 흠뻑 젖는 시원함에서 오는 즐거움을 허락한 건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타인의 눈에 (우산이 없어서) 불쌍해는 보일지언정, 미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을테니. 어쩌면 내가 굳이 우산을 잘 들고 다니지 않는 데는 이런 무의식적 이유가 숨어있었던 건 아닐까?

집에 오는 길에 다 읽을 정도로 짧은 분량이지만, 이 책은 아무래도 빗소리를 좀 들으며 한 번 더 봐야겠다. 비오는 날 창문 열어놓고 전기장판 뜨끈하게 데워놓고 뒹구르르 하며 맘껏 무장해제한 마음으로. 그리고 잠시 비를 맞으러 나가도 좋겠다. 저자의 말처럼, 그 비가 딱딱한 바닥이 아닌, 따뜻하고 포근한 우리 위에 떨어질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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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4-20 0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쁜 맘으로 추천하는 책이군요. 잠시 어린시절로 돌려놓는 마법의 '비' ^^

웽스북스 2008-04-20 08:36   좋아요 0 | URL
네네
짧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니
순오기님도 비를 좋아하시면 한번 읽어보세요 ^_^

L.SHIN 2008-04-20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좋군요.^^

웽스북스 2008-04-21 01:27   좋아요 0 | URL
우홋 고마워요 에스님 ^^

해적오리 2008-04-20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 웬디양님~
댓글에 답글이 넘 늦어 님 서재로 왔어요. ^^
주말 잘 보내셨는지요... 비오는 거리를 걷는 건 시러라 하는데, 비오는 날 따뜻한 방에서 약간 찬듯한 바람 맞으며 책 읽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에요. 게다가 뜨끈한 고구마나 감자에 커피까지 있다면 금상첨화겠죠. ^^

웽스북스 2008-04-21 01:27   좋아요 0 | URL
흐흐흐 비오는 거리를 걸을 땐 아무래도 맨발인 편이 좀더 행복하죠
뜨끈한 고구마 감자와 함께 창문 열어놓고 빗소리 들으며 책읽는거 으흣 정말 좋아요 ^_^

니나 2008-04-21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 록인했다!

웽스북스 2008-04-21 18:01   좋아요 0 | URL
웰컴웰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