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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하느님 - 권정생 산문집, 개정증보판
권정생 지음 / 녹색평론사 / 2008년 5월
평점 :
1
멋있는 말과 반성을 곁들인 리뷰를 쓰려면 충분히 쓸 수도 있겠는데, (멋있게 쓰지는 못한다 사실 -_-) 말뿐인 반성이 그간 내 안에서 얼마나 팽배했나 생각해보니 이내 부끄러워져 그럴 수가 없겠다. 그러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부끄러웠다는 말을 하기가 어느 새 부끄러워지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내가. 그러니까. 이 책의 내용들이. 막 새롭게 다가오고, 마음을 촉촉히 적시고, 반성의 물결이 메아리쳐온다기보다는, 내게는 이제 지극히 당연하게 들리는 이야기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적어도 머릿속에서는. 적어도 머릿속에서는. 그러니까, 머릿속에서'만' 말이다. 얼마나 슬픈 일인가. 나를 하나도 바꿔내지 못했으면서, 어느 것도 삶으로 살아내지 못하면서, 그저 머리만 커져서, 다 알고 있는 얘기지, 그렇지, 맞아, 맞아, 하고 있는 재수 없는 인간이 되어 버리다니. 예전에 고종석의 코드훔치기에서였던가. 프랑수아 라블레라는 프랑스 소설 개척자(?)가 했던 '자각 없는 앎은 정신의 폐허' 라는 말이 떠올랐다. 당시 나는 이 말이 우리 시대를 매우 정확히 표현해 주는 말이라 생각했는데, 어느 새, 나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이 시대의 대표선수가 되어버린 건 아닌가 하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저, 나를 향한 반성도 비난도, 그리고 시대를 향한 안타까움을 표하는 일조차도 참 어렵기 그지없다. 어쩌면 내 안에 앎에서 자각으로, 자각에서 삶으로 넘어가는 중간에 어느 회로 하나가 끊어진 건 아닐까. 아이팟을 들으며 스타벅스 커피를 손에 들고 이 책을 읽으려는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의 그 아이러니함이라니. 차마 그럴 수가 없었을 때, 내가 손에서 내려놓았던 것은 아이팟과 커피가 아닌, ‘일단은’ 이 책이었다는 사실은 어쩌면 내가 어떤 인간인지를 보여 주는 여실한 예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렇게 부끄러워하면서도, 내 안의 달콤하고 소소한 욕망과 만족들을, 내가 중독된 것들이 주는 기쁨을 여전히 포기할 의지가 없는 자이니. 이런 내가 이 책을 읽고 할 수 있는 말은 아마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내 삶을 바꿔내려는 시도에서 얼마간은 좌절했던 경험들, 당위와 욕심 사이에서 욕심이 승리하도록 스스로를 방치했던 일이 내게 가져다 주었던 역설적인 무력감, 그 이후, 한 사람의 삶이 바뀐다고 세상은 달라지지 않잖아, 라고 푸념하던 자조적 위안 등에서 기인한 것이겠지만, 여기, 오롯이 몸으로 살아낸 한 사람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는가, 정녕 그랬는가, 를 생각해 본다면, 결코 그렇지는 않은 것이다.
이번에 선생님 마지막 남긴 글 보면서도 우리가 그 동안 곶감 빼먹듯이 선생님 만나 위로 받고 우리한테 득 될 말씀만 듣고, 우리 떠나 보내고 선생님은 늘 혼자 아프시고, 그래서 초상집에서 며칠간 일하면서도 그것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서, 얼마나 아프셨을까 생각하니, 자꾸 눈물이 나고, 하느님이 너무 가혹하단 생각도 들고…
선생의 한 지인이 권말에 쓴 이 글 속의 그의 모습이 아마도 나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이런 책들을 간헐적으로 읽어오면서, 좋은 말들만 쏙쏙 골라, 변화 없이 비대해질 뿐인 삶의 자양분으로 꽉꽉 채워넣고, 그래도 난 좀 좋은 사람이라며, 난 좀 다른 사람이라며 스스로 위안하는 일들. 우리가 욕하는 그들과 다르게 살고 있지도 못하면서, 그래도 생각만은 좀 다르다고 비난을 보내는 일들을 너무나 익숙하게 해나가면서 스스로의 삶을 자위하는 동안, 혼자 외로이 아프게 삶으로 살아낸 분 앞에서 이런 반성 없는 반성문이 또 무슨 소용일까. 백장의 반성문보다 나 자신과, 당신, 우리의 변화를 위한 0.1발짝이 더욱 의미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 이제 삶으로 살아내 보자. 아. 도무지, 저 한마디가, 나에게는 얼마나 부담스럽고, 얼마나 무거운지 모르겠다.
2
최근 교회에서 찬양을 하다가 확 엎어버리고 싶었던 과격한 마음이 들었던 순간이 있었는데, ‘죄 많은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네, 나는 이 세상에 정들 수 없도다’ 라는 가사의 찬양을 부를 때였던 것 같다. 이것도 아마 선생의 영향이겠지. 죄 많은 이 세상, 내 집 맞다. 우리가 뚝딱뚝딱 고쳐 나가야 할, 그래서 나중에 살게 되는 사람들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야 하는 내 집인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천국 소망을 품고 사는 자들이라 할지라도, 이 세상을 이렇게도 나몰라라 할 수가 있다니. 아마 나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많은 문제들은 여기에서 기인하지 않았을까 싶다. 왜 그러면서, 우리의 기도는 여전히 이 모양인 것일까. 내 집 아니라며 -_- 죄 많고 더러운 세상을 볼 때는 여긴 내 집이 아니므로 정들 수 없으면서도, 나를 위한 기도를 할 때는 너무나 내 집인 상황. 이런 우리를 보고 선생은 성경을 들어 말씀하신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비난도 비판도 하기 어렵다, 라고 위에서 토로해놓고, 바로 이렇게 비난 본능 나와주시는 나 자신을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죄 많은 이 세상이 내 집이 아니라 나몰라라 하는 그 순간 욱했던 마음을 이렇게라도 좀 표현해 놓고 싶어서. 맥락 없는 말을, 굳이, 번호까지 구분해가면서 하는 나는 뭥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