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박경리 시집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박경리 선생이 지난 5월 타계해 많은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남겼다. 평생의 역작인 <토지>라는 큰 선물을 우리에게 남겨 주었지만, 선생을 사랑했던 독자들에게 다시는 선생의 글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은 그 선물의 크기만큼이나 커다란 안타까움이다.

박경리의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 참 홀가분하다> 의 출간은 이러한 점에서 독자들에게 참 반갑고도 섭섭한 소식이다. 여력이 남아 있는 한 자신과 세상을 향한 펜대를 놓지 않은 선생의 마지막 목소리를 이렇게나마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반갑고, 그 목소리가 정말 마지막이라는 점에서 섭섭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집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됐지만 산문과 시의 중간 형태를 띠고 있어 쉽게 선생의 마지막 삶의 흔적을 좇을 수 있다는 점은 평소에 시를 어려워하는 독자들에게 반가운 일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여전히 자신과 타인에게 엄격한 모습의 선생을 만날 수 있다. <소문>이라는 시에서는 자본주의와 그 꽃이라는 광고에 대한 따끔한 한마디를 들을 수 있으며, <확신>이라는 시에서는 지나친 자기확신을 가진 이들이 가져오는 처참한 결과에 대한 촌철살인을 잊지 않는다. <천성>이라는 시에서 남이 싫어하는 짓도, 자신이 싫어하는 짓도 하지 않고, 자신을 반기지 않는 곳에는 가지 않는 본인의 꼬장꼬장한 성미에 대해 적으면서도 공개적으로 내지른 쓴 소리, 싫은 소리들에 대해서는 자신만의 일은 아니기에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을 잊지 않는 선생의 모습은 못내 귀엽기까지 하다. 여기에 자신의 어머니와 할머니에 대해 묘사하며 그들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낸 시를 읽으며 선생이 가진 성품의 연원을 되짚어보는 일 역시 흥미로운 작업이다.

선생은 자신이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남몰래 시를 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남겼다. 선생이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었던 희망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에 대한 희망이었을까, 세상에 대한 희망이었을까. 자연과 생명에 대한 희망이었을까. 아마도 이 모든 것들에 대한 희망이었으리라. 선생은 모든 걸 초탈한 듯 이야기하지만, 실은 어떤 것에 대한 열정도, 애착도 놓지 않고 있음을 우리는 이 시집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냥 버리고 갈 수도 있는 것을 이렇게 남겨주어서, 선생이 끝까지 붙들고 있던 희망의 흔적을 좇게 해 주니, 그리고 그로 인해 우리도 한줄기 희망의 자락을 놓치지 않게 하니 선생을 사랑하는 독자들은 그저 고맙고 또 고마울 뿐이다. 다음 생에는 선생의 바람처럼, 부디 일 잘하는 사내를 만나 깊고 깊은 산골에서 농사짓고 사시길, 그렇게 된다면 독자의 입장에서는 무척 아쉬운 일이겠지만, 그럼에도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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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8-18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생일선물로 받아놓고 아직도 못 보고 있어요.ㅜㅜ
박경리선생께도 책 선물하신 분께도 죄송~~~
감동적인 리뷰, 웬디양님 덕분에 필 받아서 봐야지!!

웽스북스 2008-08-18 12:33   좋아요 0 | URL
아흡, 감동적인 리뷰라고 말씀해주시니,
제가 더욱 감동이옵니다 (__)

순오기님도 얼른 읽고 리뷰 남겨주세요 ^_^

2008-08-18 2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8-18 2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8-19 0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