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기독교인이라야 산다
존 캅 지음, 이경호 옮김 / 한국기독교연구소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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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텔레비전을 사고 나면 다음은 세탁기를 살 작정이야. 이싱은 내 몸이 약하니까 되도록이면 가사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해. (중략) 아이는 점점 커가고 필요한 것이 점점 늘어가. 세탁기 다음은 아이의 외국어 공부를 위해서 테이프 레코더야.
생활이 필요를 낳고, 물질의 필요가 조금씩 내 정신을 빼앗아, 마지막에는 정신을 대신해버렸어. 욕망에는 제한이 없어. 그 하나하나가 분발의 목표가 되어 다른 것 따위는 생각할 틈도 없지. 철학은 철학자에게 맡기고, 정치는 정치가에게 맡겨버렸어. 나는 생활의 전문가가 되어 살림을 꾸리는 연구를 하고 있는 거야. 나는 만족을 느끼고 행복을 느끼고 있어, 생활이라는 것은 본래 그런 것이야. <다이호우잉 – 사람아 아 사람아 中>
 
   


어쩌면 나 역시 이와 같은 이유로, 신학은 신학자에게 맡겨버리는, '전문가와 상의하세요'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사람에게 지나치게 많은 필요를 낳도록 만들었고, 이로 인해 나는, '전문화'라는 허울 좋은 이름의 그 무엇을 통해 눈 앞의 필요를 해결하도록 하는 일, 즉 당장 눈에 보이는 필요에만 집중하고 그 이상의 것은 타인의 몫으로 돌려버리며 자신은 손쉽게 그것을 취하기만 하는 세상의 논리에 스스로의 신앙 역시 맡겨버려 오지 않았나 싶다. 

<생각하는 기독교인이라야 산다>의 저자인 신학자 존 캅은 이런 현상에 대한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그는 '전문화로 인해 많은 일들이 잘 처리될 수는 있겠지만 어떤 의미에서 인간은 작아진다'고 이야기하며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누군지, 무얼 하는 사람인지에 대해 그만큼 책임을 덜 지게 된다고 말한다. 현재 전문화되는 양상을 띠고 있는 신학은 비전문가들의 위축을 야기할 수 밖에 없기에, 신자들이 자신의 몫이라 여기고 관심을 갖는 영성처럼, 신학에 있어서도 이러한 움직임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개인적인 문제로만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저자는 이는 교회 지도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이라 보며 '교회 지도자들은 활발한 토론을 통해 교회가 사는 길을 택하지 않고, 표면적인 조화로 인해 죽는 길을 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의 지적은 틀리지 않다. 현대 교회에서는 나의 이성을 버리는 것이 아름다운 포기로 여겨지고 있으며, 생각하지 않고 받아들임이 미덕이라 불리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는 평신도들의 자세로, ‘전문가들에게서 신학을 되찾아올 것’을 제안한다. 즉 성도들 개개인이 신학자가 되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들의 믿음이 개선되고 더욱 기독교적인 믿음이 되는 것은 새로운 통찰력과 설득력 있는 논증과 깊은 깨달음을 주는 경험에 의해 우리의 실제 확신들이 변화될 때뿐이며, 이것은 한 평생 걸리는 작업이지, 우리가 어떤 기관이나 전문가에게 우리의 정신을 내맡길 때 되는 일은 아니라 말한다. 여기서 저자는 우리의 믿음의 원천들을 확인하는 작업들을 굉장히 중요하다 여기고 있는데 실제로 자신이 기독교적인 믿음이라고 믿는 것들의 많은 것들이 문화적으로 조건지어진 것이 아닌지를 되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현재 우리의 믿음을 다듬어내고, 자신의 신학을 하기 위해 저자는 먼저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정확히 분간해 내고, 거기에서부터 정직한 자신의 신학을 시작하는 일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나 자신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또한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 저자가 던진 몇가지 물음들에 대해 고민하는 작업을 통해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디로부터 비롯한 것인지를 진지하게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간 스스로 생각하는 기독교인이라는 자의식을 갖고 살면서도, 실은 그 근원을 돌보는 일에 내가 얼마나 소홀했는지를 돌아볼 수 있었고, 사실 내가 그닥 생각하는 기독교인이 아니었구나, 라는 (나로서는) 다소 충격인 결론에도 도달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이 책을 읽는 작업이 내게 의미 있었던 이유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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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8-09-02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기독교인들이 웬디님처럼 고민해주시면, 제 이해와 관용의 수준도 한층 올라갈텐데...우리 MB께서도 제발 이런 생각 해주시길.

웽스북스 2008-09-02 12:38   좋아요 0 | URL
우리 MB께 보내고 싶은 책들 목록 쌓으면 천장까지 닿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돈도 아깝고, 읽을리도 없고,
읽는다 하더라도, 제좋을대로만 해석하시는 대단한 분이심을 모르는 바 아니니... 그저 요즘은 기독교인이라는 게 부끄러운 마음이 예전보다 더 커진 것 같아요, 어휴, 어휴, 어휴....

그런데 치니님 '다수'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굉장히 고민을 하고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기독교인들도 정말 많답니다. 저는 그저 말뿐이지만요....

니나 2008-09-02 13:31   좋아요 0 | URL
저는 그저 소(극적)일뿐이지만요...

toon_er 2008-12-24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이쿠 웬디양.^^
좋은 리뷰 감사해요. 호호.

웽스북스 2008-12-24 13:16   좋아요 0 | URL
흐흐흐 익상아 반가워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