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서평단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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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ㅣ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5
이권우 지음 / 그린비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 서평단 책입니다.
왜 신청했을까. 아. 책읽기의 달인, 같은게 되고 싶었던 건 아닌데. 그냥 책에 대한 책은 재밌으니까. 라는 단순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의 기획 의도가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라는 걸 알았다면 아마 신청하거나 읽지 않았을 것 같다.
이건 잘 고쳐지지 않는 나쁜 기질 같은 건데, 첫인상을 믿는 것도 아니면서 왠만해서는 처음에 강하게 받았던 좋지 못한 느낌에 대한 편견은 잘 고치지 못한다. 인간이 삐딱해서 한번 삐딱선을 타면 아무리 만회의 기회가 많아도 그게 어떤 큰 계기가 생기지 않고서는 쉽사리 그 삐딱선에서 내려오지 않는 종류의 인간인데, 이 책 역시 그런 의미에서 나의 마음을 돌리는 데 실패해버렸다. 그렇다면, 나는 왜 삐딱선을 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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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책을 읽는 이유는 자신의 사회신분을 향상하기 위해서다. (중략) 공자의 시대에도 책읽기가 신분상승의 결정적 요인이었다면 지식기반사회라고 일컬어지는 오늘에야 그 중요성을 새삼 말할 필요가 없을 터다. 자본이 지식을 사서 더 큰 이익을 내던 시대는 지났다. 지금은 오히려 지식이 자본을 구해 더 큰 이익을 남기는 시대이다. (중략) 책읽기와 사회적 성공의 상관관게는 오랫동안 등한시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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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책을 읽다가 연필로 낙서를 하는데 난 정확히 '향상하기 위해서다' 근처에 '뭥미'라고 적었다. 남기는 시대이다 옆에는 -_- 라는 표정을 지었고... 등한시 되었다, 뒤쪽에는 결국 '공자님 들으면 기절하겠다'라는 말까지 적을 수 밖에 없었다. 미안하다. 우린 친해질 수가 없겠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작가는 뒤쪽에서 결정타를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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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단언할 수 있지 않은가. 책읽기는 선한 것이고, 책 읽지 않는 것은 악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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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나왔으면 일단 나랑은 게임 끝인 거다. 누가 감히 저런 무식한 명제를 들이밀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스스로가 '책벌레'라고 끊임없이 자처하는, 책을 읽는다는 이유로 사회적 존경을 받으신다는 사람께서, 어떻게 저런 성찰 없이 자기 확신에 가득찬 명제를 들이밀 수가 있을지. 행간을 들여다보면 그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으런지는 모르겠지만, 저자는 감히 '단언했지' 않는가.
내 책이었으면 아마 이쯤에서 우리 그만 헤어지자, 빠이빠이를 외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라면, 뒤에서 무슨 얘기를 해도 나는 더이상은 그를 신뢰할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속이라는 건 참 무서운 것이다. 나는 리뷰를 써야 하니까 이 책을 끝까지 읽었다. 아무리 저자가 이렇게 유혹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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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책을 읽다가 집어던질 줄도 알아야 한다. 지은이가 속된말로 '개소리'를 한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끝까지 읽어야 할 이유는 없다. 세상에 책은 넘쳐나고 그만큼 함량미달의 책도 많다. 반드시, 다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자신을 괴롭힐 필요는 없다. 그럴 짬이 있으면 잠이나 자는 게 낫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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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저자의 이런 무의식적 자기 비판에도. 꿋꿋이 이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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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본적으로 빨리 읽히는 책은 읽기를 꺼린다. 그런 책은 종이에 활자가 찍혀 있더라도 본래적 의미에서 책이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의도적으로 거부한다기보다 체질적으로 읽어내지 못한다. 내가 잘 팔린다기에 이를 악물며 도전하지만 끝내 대중소설이나 무협소설을 못 읽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책장을 축지법 쓰듯 읽을 수 있는 것은 책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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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책을 다 읽는 데는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_-
알고 있다. 이 책에 이런 얘기만 적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나는 저자의 일관성 없는 논지 때문에 그 어떤 목적도 만족시키지 못한 책이라 이야기할 수 밖에 없게 됐다. 넓게 여러 부류의 독자를 만족시키고 싶어했던 저자는 결국 모든 토끼를 놓쳐버린 건 아닌지. 아니다, 나처럼 성격 나쁜 독자들만 놓쳐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 이런 얘기들이 굳이 책으로 묶여져 나와야 하는 이유도 잘 모르겠다. '책 읽는 사람'이라는 게 자신을 정의하는 굉장히 중요한 명제인 양 으스대는, 니들도 조금만 해봐, 나처럼 될 수 있어, 라고 말하는 게 영 거슬렸다. 게다가 책읽고 '글쓰기'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저자의 글솜씨 역시 그리 유려하지 못하다. 아, 이제 그만해야지. 그러게, 처음부터 누가 나를 삐딱선으로 들이밀래요. ㅜㅜ 차라리 뒤쪽에 나온 책을 통한 교육에 대해 좀 더 연구를 해서 실용지침서로 냈으면 누군가에게는 더 효용이 있는 책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좀 씁쓸하기도 하다. 그저 '책을 읽으세요' 만으로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는 게 소위 '출판평론가'라는 사람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사살되니 말이다. 책읽고 성공하세요. 책읽고 영화나 연극과 같은 21세기 문화사업의 주역이 되세요. 책읽고 글 잘 쓰는 사람이 되세요. 책읽고 논술 만점 맞으세요. 라며, 책 자체가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하지만 적어도 내 주변에는 책을 책 자체로 묵묵히 즐기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리고 내가 내 앞에 있는 누군가가 진정 빛난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는 바로 그들과 함께하는 순간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