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서재 이달의 북튜브 챌린지가 '#나의상반기pick'이라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버,버,벌써 상반기를 정리할 때가 된 거야? 믿어지지 않아! 그런 심정. 해마다 상반기. 하반기로 나눠서 정리하고는 있는데, 올해는 상반기에 아주 강렬한 책은 없었기도 해서 그냥 넘어갈까 하다가 그래도 그냥 넘어가면 아쉬운 것 같아 상반기에 읽은 책들 가운데 좋았던 책을 정리해 보았다.....
소설
1. 디노 부차티, <타타르인의 사막>
웬만하면 2022년에 나온 신간 중에 상반기에 가장 좋았던 작품을 골라보고 싶었으나, 올해는 어쩐지 작년의 <나는 고백한다>처럼 강렬한 작품이 없다. 그런 가운데 <타타르인의 사막>이 묘하게도 계속 생각이 난다. 책, 특히 문학 작품은 어떤 시기에 읽느냐에 따라서도 영향을 크게 주는 것 같다. 이 책은 지난 2월 건강 상의 이유로 병원을 들락거리던 때 읽었는데 그래서 더 인상 깊었던 게 아닐까 싶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의 ‘요새’ 안에서 ‘사막’을 품고 오지 않을 그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희망하면서 그렇게 늙어가고 죽어가는 게 아닐지. 삶에 관한 거대한 은유를 한참동안 생각하게 하는 작품.
2. 압둘라자크 구르나, <낙원>
이 책을 읽고 생각했다. 달리 노벨문학상을 받는 게 아니구나! 이 작품은 일단 재미있다. 한 소년이 떠돌면서 성장하는 이야기인데, 재미있지 않을 수가 있을까? 게다가 문장도 아름답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프리카 대륙의 이야기를 아프리카 사람이 한다. 거기서 태어나고 자란 백인, 또는 그 땅에 몇 년쯤 머물면서 그곳을 관찰한 백인의 시선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낙원>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설 것이다.
3. 안나 제거스, <약자들의 힘>
지만지 책은 비싸서 독자들이 쉽게 선택하지 않는 것 같은데, 이 책은 그렇게 묻히기에 좀 많이 아깝다. 스페인 해방 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아들의 뒤를 이어 종군하는 어머니, 에티오피아를 침공한 이탈리아 정복자들을 산으로 유인해 함정에 빠뜨리는 소년, 프랑스 병사를 사랑하게 된 독일 아가씨 등등 역사의 소용돌이를 직접 온 몸으로 겪은, 그리고 아주 미미한 역할로 한 역할을 한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9편이 옴니버스처럼 펼쳐진다.
4. 모리츠 지그몬드, <모리츠 단편집>
힘없고 가난한 이들의 삶을 참으로 진솔하게 그리고 있다. 문장이 화려한 것도, 이야기가 말할 수 없이 흥미진진한 것도, 또 그렇다고 상상력이 놀라울 정도라거나 상징이 오묘하고 헤아릴 수 없이 깊어서 무릎을 칠 만큼 기막힌 것도 아닌, 그저 소박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인데도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들- 헝가리 사회의 병폐와 모순을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들과 주변 환경으로 인해 고통받는 가난한 이들의 모습을 담은 자연주의 작품들을 여럿 남겼다.
5. 하인리히 뵐, <아담, 너는 어디에 가 있었느냐>
전쟁의 참상을 꼭 처절하게 보여줘야지만 전쟁이 끔찍하게 다가오는 것은 아니다. 뵐의 문장은 늘 그렇듯이 이 작품에서도 담백하기 짝이 없다. 묘사 또한 과하지 않다. 거리를 두고 아주 객관적으로 서늘하게 바라보는 시선. 그런데 그렇기에 작품 속에서 그리고 있는 사람들, 전쟁으로 인해 삶이 파괴되는 사람들이 삶이 더 안타깝게 다가온다. 특히 파인할스와 그가 사랑했던 여인 일로너의 부서진 삶을 그 누가 보상할 수 있을까. 전쟁 중에도 당연히 아름다움이 존재할 수 있지만 전쟁 중이기에 그 아름다움이 끝끝내 무참히 짓밟히고 마는 장면들이 강렬하게 남는다.
6. 이렌 네미롭스키, <무도회>
책 부피는 얇고, 짧은 이야기들이 고작 몇 편 실려 있을 뿐인데 아주 강렬하다. 특히 표제작 <무도회>는 속물 부르주아 부모를 바라보는 10대 소녀의 신랄한 시선과 그 나이 때의 욕망 등이 아주 적나라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 밖에도 대부분의 작품들이 자기 욕망에 충실한 사람들을 그리고 있는데, 그 안에서 인간을 가엾은 존재로 보는 작가의 연민어린 시선이 와 닿는다. 이렌 네미롭스키 선집 모두를 기꺼이 기대하게 하는 작품집.
7. 엔도 슈사쿠, <침묵>
나는 종교인도 아니고 종교의 어떤 면을(특히 한국형 기독교) 아주 싫어한다. 그런 내가 우연히 <깊은 강>으로 처음 만난 작가가 엔도 슈사쿠- 그날 이후 해마다, 아니 몇 년에 한 권씩은 꼭 읽는 작가가 된 엔도. 그의 작품 중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를 끈 이 <침묵>을 아껴두었다가 드디어 읽었다. 종교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닌 작가. 인간에게 신념이란 무엇인가. 사랑과 믿음, 순교와 배교, 나약한 인간과 강한 인간, 그리고 신의 침묵… 엔도 슈사쿠는 언제나 나를 뒤흔든다. 나도 약간 종교적인 면이 있는 걸까 고민하게 될 정도로.
8. 토머스 새비지, <파워 오브 도그>
우리는 어쩌면 이 잊혔던 작품을 다시 되살리는 데 큰 역할을 한 ‘애니 프루’에게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 애니 프루는 이 작품을 일컬어 이렇게 말했다. “한 편의 심리 연구이자, 혐오라는 형태로 분출되는 억압된 동성애를 다룬 비범한 작품이다. 새비지는 거장의 솜씨로 미국 문학사에서 가장 강렬하고 사악한 인물을 창조했다.” 그이의 평가에 진심으로 동의한다. ‘필’- 이 남자의 뒤틀린 심리 묘사는 진짜 압권이다.
9. 찬 쉐, <마지막 연인>
중국의 카프카라고 불리고 있는 ‘찬쉐’-한 번만 읽어서는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 아닐까. 표면적으로는 권태기를 겪고 있는 세 커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그 전달 방식이 굉장히 색다르다. 꿈결을 거닐 듯, 독특하고 몽환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지독히 현실적인 작품. 이제까지 읽은 중국 작가들의 작품과 완전히 결이 다르다. 최근 <오향거리>가 또 출간되었다. 이 작품도 얼른 읽어봐야지.
10. 보리스 사빈코프, <창백한 말>
처음에는 테러리스트인 주인공이 중2병을 못 벗어난 허세남 같아서 약간 거슬렸는데 참 신기하게도 읽은 지 좀 지나면 다시 읽고 싶어지는 작품. 아마도 작품의 서정적인 면이 크게 한몫하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을 위해 죽는다는 거, 사람들에게 자기 죽음을 바친다는 건 쉬워. 삶을 바치는 쪽이 더 어렵지.”(45쪽) 이런 문장들이 문득문득 심금을 울린다. 사빈코프의 작품도 속속 번역되길 바라본다.
비소설
1.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
사실 이 책이 나의 상반기 ‘원 픽!’ 이다. 읽는 내내 찬탄&감탄했고 너무 재미있어서 책장이 술술 넘어갔다.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이 책을 피할 수 없지 않을까. 체호프,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고골 등 우리가 너무나도 사랑한 러시아 문학을 더 깊고 그윽하게 읽는 법이 이 책 안에 담겨 있다. 물론 나보코프의 견해에 모두 동의하지 않고, 또 그럴 수도 없(겠)지만 적어도 이 책을 보면 문학 작품을 읽을 때 훌륭한 독자로 재탄생하는 법을 조금 배울 수는 있을 것이다. 이 책으로 인해 나는 요즘 고골을 다시 읽어보고 있다.
2. 크리스티앙 보뱅, <환희의 인간>
나는 에세이를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감성 돋는 에세이일수록 오그라들어서 피하는 편인데, 와 이 책은 인정. 읽으면서 어쩜 이렇게 아름답지? 어쩌면 이런 문장을 쓸 수 있지 감탄했다. 크리스티앙 보뱅의 모든 책을 읽어보고 싶게 만든 문제작(?). 책 전체를 연필로 꾹꾹 필사해 보고 싶어지는 책으로 오랜만에 정말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산문을 만났다. 비 내리는 날, 읽고 또 읽으려고 간직하고 있는 책....
3. 김승섭,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트라우마 생존자의 이야기를 담은 책. 세월호 생존학생 연구와 천안함 생존장병 연구를 진행했던 김승섭 교수가 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정치적으로 가장 예민한 사건인 두 사건의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있노라면 나 또한 진영 논리에 빠져 그들의 목소리를(나의 경우에는 천안함 생존자의 목소리를....) 외면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김승섭 교수의 책을 읽으면 타인의 고통에 둔감한 이 사회가 나아갈 길은 무엇인지 곰곰 생각하게 된다.
4. 사울 레이터, <영원히 사울레이터>
레이터가 사진을 찍기 시작하던 1940년대 초기작부터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10여 년간의 미발표작까지, 레이터의 작품세계가 만들어지고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엄선한 사진들을 소개하고 있다. 세상을 단순하게 바라보고, 그 단순한 것이 지닌 아름다움을 믿은 사람. 세상은 무한한 기쁨의 근원이라 생각한 사람. 그래서 그의 이 일상을 담은 소소한 사진들을 바라보노라면 문득 내가 사는 세계에, 사람에 애정이 생긴다.
5. 모드릭스 엑스타인, <봄의 제전>
전쟁사를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감탄했던 책.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에서 1, 2차 세계대전의 폭발 징조를 읽어낸 이 탁월한 책은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처럼, ‘봄’을 그저 새로운 시작, 탄생으로만 보지 않는다. 모든 탄생에는 소멸이, 죽음이, 새로운 시작을 위한 희생이 있음을, 그리고 그 희생에는 분명 폭력이 따를 수밖에 없음을 주목한다. 현대의 탄생을 알린 발레 작품과 세계대전을 하나의 주제로 엮어서 풀어낸다는 것이 조금은 의아하기도 했지만 <봄의 제전>은 이런 의구심을 말끔하게 해소해준다.
6. 토니 모리슨, <타인의 기원>
얇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묵직한 책. 인종차별과 젠더 갈등 등 인간은 왜 나와 타인, 즉 타자를 만들고 혐오 또는 차별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일까? 이에 관한 토니 모리슨의 날카로운 분석이 담겨 있다. 그렇게 나와 다른 집단을 만들고 그들을 비인간화하면서 나의 권력이 강화된다고 착각하는 오류- 이런 착각에 빠진 사람들이 이 땅에도 너무나 많기에 토니 모리슨의 이 예리한 사유는 이곳에서도 유효하다.
7. 도나 해러웨이, <한 장의 잎사귀처럼>
<사이보그 선언문>을 읽기 전에 해러웨이에 관한 책을 찾아 읽던 중 발견한 책. 해러웨이의 성장 배경이나 개인사 등 그의 학문적 바탕이 된 환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도나 해러웨이에 관한 지형도(밑그림)를 그리기에 알맞은 책이랄까. 대담집이라 인터뷰하는 사람도 중요한데, 해러웨이의 제자인 사이어자 니콜스 구디브가 대화를 이끌어가고 있어 그의 사상을 잘 이해하고 질문한다는 느낌이 든다. 무엇보다 좀 놀라웠던 점은 종교적 환경이 오늘날의 도나 해러웨이를 있게 한 데 좀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랄까.
8. 양경인, <선창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제9회 제주4·3평화문학상 논픽션 부문 수상작으로 저자는 제주4·3 사건을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였던 1987년부터 5년 동안 끈질긴 채록과 집요한 취재를 거쳐 제주 여성운동가 ‘김진언’의 삶을 복원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내내 도대체 사람에게 신념이란 무엇인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 등장하는 모든 여성운동가들의 삶과 증언에 그저 먹먹해진다.
9. 추적단 불꽃,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책은 사놓은 지 한참 되었는데, 심적으로 힘들 거 같아서 계속 미루다가 올해 박지현 위원장이 민주당에(정확히는 이재명 대선 캠프에) 합류하게 된 것을 계기로 읽었다. 읽는 동안 내내 이 두 젊은 여성에게 대단하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간절함과 집요함, 고통받는 타인에 대한 연대의식이 N번방 사건 및 디지털 성폭력을 수면 위로 올리게 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세상은 여전히 바위처럼 단단하지만 불과 단 같은 여성들이 있기에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10.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책에는 굉장히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양가감정이 든다. 2022년 출판계 상반기를 거의 휩쓴 책이기도 하고 잘 쓴 책이기도 한데, 그리고 놀라운 책이기도 한데 나는 이상해... 이상해.... 이 책이 마음으로부터 좋아지지는 않는다. 뭐랄까, 공부 엄청 잘하는 전교 1등 학생을 바라보는, 그런데 그 학생을 마음으로 예뻐할 수는 없는 선생님의 눈이랄까.......... 대체 왜 그런 거쥬? 그래서 맨끝에 살포시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