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침묵>을 읽고 있다. 어쩌다 보니 다락방 님과 함께 읽는 책이 되었는데, 다락방 님은 출근길에 읽는 것에 비해 나는 퇴근 후 방 안에 틀어박혀 조금 읽다가 잠들.....(기 일쑤이다). 이 책이 지루하다거나 해서는 아니고 요즘 내 상황이 여의치(?) 않아 책을 많이 읽지 못하고 읽어도 금방 잠이 들고 있다. 이사 때문에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퇴근 후 이 집 저 집 보러 다니고, 그러고 나서 집에 오면 냥이들 챙겨주고 뭐 이런 다음 책 읽고 누우려면 10시가 넘는데 정신적으로 엄청 피곤해서 그런지 요즘 책이 잘 안 읽히기는 한다. 아무튼, 서울에서 책 많은 사람이, 거기다 고양이까지 여러 마리 있는 사람이 자가 아닌 전세로 집구하러 다니는 일은.... 오마이갓...... 주여, 제가 어찌 이 많은 책을 샀나이까? 주여, 저에게 딱 맞는 집을 내려주소서. 주여 어찌 계속 침묵하고 계시나이까?! 그렇다. 나의 주는 아직 침묵 중이다.... -_-;
요즘 같은 때 <침묵>을 읽고 있으려니 농담처럼 나의 하느님은 언제쯤 침묵을 깨고 응답해주시려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 그렇다고 내가 하느님을 믿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을 믿기는커녕 신의 존재를 나는 믿지 않는다. 불가지론자도 아니고 거의 무신론자에 가깝다. 그러면서도 아주 어렵고 힘든 일이 닥치면(예를 들어 우리 둘째 고양이가 생사를 넘나들던 시기에) 나도 모르게 ‘하느님, 우리 땡땡이 좀 살려주세요.’ 빌고 있으니 나란 사람도 참 모순이다. 그러다가 그 일이 이루어지면 그래도 “하느님 감사합니다!” 정도까지의 인사는 하지만 혹시라도 그 간절히 바란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역시 신은 없어, 라고 냉소적으로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침묵>의 페레이라 신부의 제자들, 그러니까 로드리고 등등이 생각하듯이 어찌하여 신은 침묵하고 계실까 생각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거기서 더 나아가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참 편리하게도 생각하고 마는 것이다.
이 책은 현재 절반쯤 읽었기에 그 끝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나 또한 다락방 님처럼 신념과 믿음, 신의 침묵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다. 특히 나는 종교가 없고, 신의 존재를 믿지 않기 때문에 한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그토록 깊이, 그토록 단단히 보이지 않는 존재를 믿을 수 있는지, 그리고 따를 수 있는지 거의 경이로움에 가까운 감정으로 로드리고 및 일본의 숨은 가톨릭 신자들을 지켜보고 있다. 인간에게 신념이란 정말 무엇일까, 인간이 어떤 경지에 다다르면 저토록 모진 고문을 당해도 신념을, 믿음을 버리지 못할까? 나로서는 도저히 아직도 여전히, 풀 수 없는 문제이다. 현재의 삶이 너무나 고달파 천국을 약속한 가톨릭을 믿게 되었고, 그렇기에 그 천국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해 박해받는 와중에도 신을 저버리지 못하는 일본의 신자들의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현재의 삶이 이토록 고달프고 더 가혹해지는데 확인조차 할 수 없는 천국에 대한 믿음 때문에 배교하지 못하는 신념이란 무엇일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나처럼 나약한 사람에게는 이 작품에서 (아직까지는) 굉장히 기회주의적이고 비열하게 그려지는 ‘기치지로’ 같은 인물이 더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박해를 받았기에, 눈앞에서 형과 누나가 하느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가혹한 처벌을 받고 죽임당하는 것을 지켜봤기에 하느님을 저버리고 배교 행위를 한 그가, 도리어 로드리고처럼 굳세게 하느님을 믿는 이들보다 더 이해가 간다. 이럴 때 나라면 어땠을까(나보코프 교수님은 이런 식으로 등장인물에 감정이입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나는 하찮은 독자라 그렇게 하련다) 생각해 보게 되는데 발 아래로 바닷물이 밀려오면 바로 그 순간 자진해서 성화를 짓밟으며 지나가지 않았을까.... 아니 그 전에 이미 다 불어버렸을지도 모른다.....저기 가톨릭을 믿는 신자들이 뭉쳐 있다고.
아니, 성화를 짓밟는 정도는 나 한 사람의 믿음을 저버리는, 내 양심을 버리는 일이므로 수치스러움 정도에서 끝날 테지만 누군가를 밀고하는 일은 그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갈 일이라 꽤 망설여질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내 앞에 죽음이 닥쳤다면 내가 그러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나는 기치지로처럼 나약하고 고통에 약한 사람이므로 아마도 기치지로의 길을 갈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걸까. 나는 로드리고보다 이 기치지로라는 인물에게 자꾸만 눈길이 간다. 그가 인간에, 아주 평범한 인간에 더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만일 정말로 하느님이 존재한다면, 그리고 예수가 정말로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인물이라면 어쩐지 이런 나약하기 짝이 없는 기치지로 같은 인물도 저버리지 않을 것만 같다. 신의 침묵은, 하느님의 침묵은 그런 가련한 너희들조차 쉽게 정죄하지 않는다는 포용을 드러냄은 아닐까.
아무튼, 이 책을 다 읽은 것은 아니고 <침묵>에 관한 어떤 리뷰도 읽지 않았기에 이 책의 끝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다만 기치지로 못지않게 로드리고도 신념으로 똘똘 뭉친, 그래서 어떤 고통 속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강한 인간은 아닐 것 같다는 예감은 든다. 엔도 슈사쿠의 그간의 작품들 속 인물들이 대부분 그러했기 때문이다. 나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 그렇기에 신을 붙들 수밖에 없는 사람들, 하느님에, 종교에 의지해 삶을 부여잡고 이 힘겨운 세상을 버티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너무나 삶이 너무 버거워져 믿음을 잃고 신을 저버리려 해도, 결국 그 인간을 끝내 버리지 않는 신, 존재이기보다는 손길로 그 나약한 인간을 어우르는 양파와도 같은 신, 그런 신의 모습을 <침묵>은 보여주지 않을까.
그러니 양파와도 같은 주여, 저에게 제 마음에 쏙 드는 집을 어서 하사해 주시옵소서....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