꼿 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 - 신문광고로 본 근대의 풍경
김태수 지음 / 황소자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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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한테 참 좋은데... 남자한테 참 좋은데... 표현할 방뻡이 없네! 라는 광고로 제기에 성공한 ㅊㅎ식품은 광고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무진장 많은 사례 중의 하나다. 요즘같은 세련된 광고 속에서 사장의 육성으로 직접 녹음한 라디오 광고는 들을 때마다 비식비식 웃음이 나오곤 했다.  

요즘 나한테 제일 재미있는 광고는 씨리얼 광고다. 엄마의 사랑을 강조하는 이 광고는, 딸을 찬 남자아이에게 경고를 하면서 끝난다. 상황은 많이 다르지만, 한때 내가 유치원에서 좋아했던 S군이 전원(?)가자 그날 밤 엄마한테 슬픔을 토로했는데, 다음날 날 데리러 와서는 나의 담당선생님께 바로 일러바친(?) 우리 엄마와 비교되어 더 재밌다. 평소 씨리얼을 즐겨먹는 사람은 아니지만, 혹시 씨리얼 살 일이 있으면 나는 신애라가 출연하는 이 회사의 씨리얼을 구매할 의사가 있다. 이처럼 광고의 영향이란 무시할 것이 못된다. 

각설하고, 소비사회인 오늘처럼 광고의 홍수, 아니 광고 폭력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광고의 영향이 무척이나 크다. 그래서 폭격을 맞고 있지만서도. 광고가 제대로 되지 않은 제품을 사기가 꺼려질 때도 많다. 광고는 이 제품을 사달라고 호소하기도 하고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며, 그 자체로 어떤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옛날, 우리가 가난하던 시절에도 광고는 있었을까. 당연히 Yes!다. 못살던 시절에도 제품은 꾸준히 나왔으며, 특히 격동이 많던 30년대는 새로운 상품이 많았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광고를 해야했다. 판매자는 항상 물건을 많이 팔고 싶으므로! 요즘은 신문뿐만 아니라 텔레비전, 인터넷, 길거리 전광판 등 신문보다 더 효과적인 광고 매체가 많지만 그 당시는 아마 신문이 가장 신뢰성있는 매체였을 듯 하다.  

오랫동안 일간지 기자생활을 하는 저자는 광고, 특히 30년대의 광고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저자의 이력이 이렇다는 것은 글빨에 대한 걱정은 안해도 된다는 것이다. 또 자료조사도 한땀한땀 섬세하게 잘 되어있다. 무언가를 연구할 성격은 못 되지만, 만약 기회가 있으면 나도 30년대를 선택할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광고를 봐도 무척 재밌으니까. 게다가 몇몇은 아주 노골적이고 지금 수준에서는 너무 심한 뻥이 많아서 깔깔 웃게된다.(그럼 지금도 과장광고로 속고 있는 것이 많겠지?) 

지금과 너무 달라서 재밌는 것도 있고, 지금과 별로 다를 게 없어서 웃게 되는 광고도 있다. 기생집(?), 성병약, 고무신, 전당포, 창씨개명 작명소, 포르노그라피 책 등은 요즘을 전혀 볼 수 없는 것들이라 더 흥미로웠다. 30년대는 신분제가 철폐된 때라 이제 돈만 있으면, 소위 개쌍놈(30년대식 적나라한 표현으로)도 데리고 노는 민중화의 세상이라고 혀를 끌끌차는 이도 있었다. 물론 그들은 신분이 높았던 이들이었겠지만. 그래서 기생들은 자신들을 광고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심지어 사진까지 실어놓았다! 광고의 효과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무척 흥미롭다.   

백화점 광고나 박가분 광고, 영어 교재 광고, 주류 광고 등은 지금도 여전히 명맥을 이어오고 있지만, 30년대 사람들과는 의미가 다를 것 같다. 조금 씁쓸한 점은, 우리도 알다시피 30년대는 모두에게 풍족한 시대는 아니어서 광고에 나오는 것들을 누릴 만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미시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라 더 와닿고 재밌는 부분이 많다. 그리고 재화에 대한 사람의 욕망이란 변하지 않는다는 걸 느끼게 된다. 

 

30년대 약간의 속물적인 모던걸은 비누와 치약을 사용하면서 자신이 문명인이란 걸 느낀다. 자신의 미모를 시험해 볼 요량으로 화신백화점의 직원직에 지원을 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방인 끽연점에서 자유연애를 즐길지도 모르고. 그럼 2000년대 약간 속물적인 현대여성을 어떨까. 아마 유명 연예인이 쓴다는 고가의 수분크림을 바르면서 문명인이라고 느낀다. 외모가 좀 된다면 쇼핑몰 모델이나 스튜디어스같은 직업을 한번쯤 생각해 봄직하다. 뭐 연애는 까페가 어딜가나 널렸으니까 거기서 할 수도 있겠지만 거의 여자뿐이네.. (데이트 할만한 장소는 잘 모르겠다.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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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8
제인 오스틴 지음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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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을 읽고도 오스틴이 왜 좋은지 모른겠다는 사람들도 있어서 놀란 적이 있다. 모두 내 생각같지 않다는 거야 당연한 것이지만, 어떻게 오스틴을 안 좋아할 수 있지?????(물음표 백만개)  

뭐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들은 계몽(?)할 생각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많이 의아한 것 뿐이다. 오스틴의 책은 이렇게 사랑스럽기만한데!!!  

사실 제인 오스틴은 인물들을 차별한다. 그것도 엄청 분명하게. 오스틴은 주인공을 정해놓고 주변인물들은 평가하고 단죄한다. 분명한 차별임에도 그게 싫지 않다. 그게 바로 이 작가의 능력이고 매력이랄까. 아마 다른 작가가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심하게 하고 주인공과 주변인물들을 공정하게 다루지 못한다면 분명히 화를 내겠지만 말이다.

특히, 오만과 편견은 정말 재밌고 사랑스럽다. 캐릭터의 생생함과 재기발란한 어투까지. 

우리에게도 친근한 이름은 영국 배우 콜린 퍼스는 영국BBC 방송국에서 방영한 드라마 [오만과 편견]으로 다아시 이미지로 굳게 남겨져 있는 듯 했다. 다아시의 이미지라고 하면 일단 무조건 좋은 이미지라는 뜻이다. 다아시는 책에서 '오만'역을 맡고 있는데, 우선 그는 일년에 1000파운드나(그냥 잘번다는 뜻이다) 버는 능력있는 남자이지만 아무하고나 어울리지 않는 독단적인 남자다. 사람을 한 번 평가하면 왠만해서는 생각이 바뀌지 않는 무서운 사람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아무 여자에게나 마음을 주지 않고 의외로 순정적인 면이 많은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반면, 그의 상대역이자 소설의 주인공인 엘리자베스는 '편견'역을 맡고 있다. 엘리자베스는 제법 똑똑하고 예쁜 아가씨이지만, 가끔-그것도 아주 중요한 순간에- 편견으로 인해 판단력이 흐려지고 만다. 그 편견으로 다아시에 대한 판단을 잘못하게되고, 그래서 그 둘의 대화는 자꾸 엇나가기만 한다.  

줄거리를 쓰려니 막막하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다. 오스틴의 책은 무수히 많이 영화화, 드라마화 되었으니 그냥 그걸 찾아보기를 권한다. 원작이 훌륭하니 영화나 드라마도 대부분 무척 훌륭하다. 아마 감독은 그녀의 팬이어서 깊고 큰 애정을 갖고 작업했을 것임에 분명하다. 나도 항상 무표정에 조금 어색한 느낌이 드는 배우인 콜린 퍼스를 다아시 이후로 몹시 사랑하게 되었으니, BBC에서 나온 드라마를 보기를 권한다.  

로맨스를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단연코 권할 만한 책이다. 할리퀸 로맨스는 로맨틱해보이지만 은근히 야하고 막장같은 이야기가 많은데, 오스틴의 로맨스는 그저 사랑스럽고 경쾌하다. 그리고 예리하다.  

[오만과 편견]을 읽은 독자라면, 어느 순간 오스틴의 소설과 영화, 또 수많은 후속작을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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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의 재발견 - 문화와 예술로 읽는 엉덩이의 역사
장 뤽 엔니그 지음, 이세진 옮김 / 예담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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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엉덩이'라는 말이 그렇게도 웃겼다. 원래 내가 웃음이 헤픈 여자이긴 하지만.. 엉덩이의 변형적인 말은 궁뎅이, 방뎅이... 등등이 있는데 아무튼 그 모든 것이 내게는 다 웃겼다. 왜 엉덩이라는 부위는 웃음을 자아냈던 것일까. 그건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가끔 외국의 뮤지션이 관객모독(?)으로 하얀 엉덩이를 드러내곤 하는데, 사실 아직도 뭐가 웃긴지 웃기다. 푸하하 

엉덩이는 사실 불필요한 부분이다. 이 살이 없어진다고 뭐 어떻게 되기야 하겠나. 그치만 많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엉덩이에 집착한다. 엉덩이가 예쁘면 또 의외로 삶이 풍요로워 질 수도 있다. 구체적인 예를 열거하진 못하지만 분명히 그런 점이 있다.  

어디선가 이 책의 리뷰에, '엉덩이 마니아'라면 꼭 읽어봐야 한다고 했다. 꼭 그래서 산 건 아니지마는.... 아무튼 흥미로운 얘기도 많다. 도판이 그리 훌륭하지 않다는 것이 단점이긴 하지만. 문제는 의외로 진지하다. 자칫 천박해질 수 있는 이야기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별로 천박하지 않다. 그럼에도 책은 유쾌하다.  

책에 대해서 두 가지 모순된 감정이 생긴다. 아니, 엉덩이를 다루려면 좀 더 세게 나와야 하는 거 아니유? 라는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하면서, 또 양장본인데 말 그대로 dirty한 내용이 나왔다면 출판사를 욕하면서도 끝까지 봤을거다. 막장드라마를 끊지 못하는 의지 약한 시청자처럼.  

저자는 여러 종류의 엉덩이에 대해 탐구했다. 그리고 엉덩이가 의미한 것, 엉덩이에서 파생되는 문화나 물건들... 예술 작품은 물론이고 수많은 작가와 저자들의 말은 인용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런 의외의 진지함에 가볍고 재밌는 것을 기대한 나는 숙연해졌다. 엉덩이도 인문적 탐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니! 정말 엉덩이의 재발견이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어떤 여성지에서 사실 남자들은 가슴보다 엉덩이가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는 골지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원래 가슴 큰 걸 좋아하는 이유가 그것이 엉덩이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라나... 그래서 아유미도 '큐티허니'에서 "엉덩이가 작고 예쁜 나같은 여자..." 라고 노래를 시작했을까. (근데 이런 사실이 머가 크게 달라지는지 모르겠다.)  

예전에 가끔 봤던 무한도전에서 정준하가 엉덩이가 질펀하다고 계속 자막으로 나오는 바람에 왠지 정준하가 싫어졌다. 부정하고 싶지만 나도 엉덩이 마니안가 보다.   

이 책의 효용성은, 몸에서 엉덩이의 존재가 그렇듯이, 별로 없다. 그렇지만 엉덩이의 기원과 기상천외한 별명, 게다가 역사상의 방종한 엉덩이도 볼 수 있다.

그리하여, 나도 '엉덩이 마니아'인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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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0 15: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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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의 존재에 대해 크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항상 입 속에 있어서 잘 안 보이기도 하고 혀에 뭐가 났거나 뜨거운 것에 데였을 때 말고는 얘(?)가 있다는 생각을 별로 안 해보고 살게 된다. 오죽 편하고 귀엽게 굴었으면 '입안의 혀처럼 군다'는 말이 있을 정도일까. 나도 이 표현을 참 좋아한다.  

혀라는 건 당연한 말이지만 꼭 필요하다. 그리고 이율배반적으로 참 까다로운 녀석이다. 적어도 내 것은 그렇다. 내 혀는 입 안의 혀처럼 굴어주지 않을 때가 많다. 본인이 뭘 원하는지도 모르고 이래도 싫다 저래도 싫다하는 찡찡이 어린아이 같은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내가 아무거나 입에 집어넣고 본다... (그냥 식욕이 좋은 것 뿐일까?) 

혀는 입 밖으로 나오면 이상하게 불경(?)스러워진다. 많은 화보에서는 곧 달랑달랑 떨어질 것 같은 체리를 혀에 대거나, 새빨간 립스틱이 발린 입술을 훑고 있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이유가 바로 이것일거다. 게다가 메롱하면서 혀를 내밀면  

소설을 읽는 내내,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입을 다시며 혀를 날름날름 거렸다. 미각을 자극하는 책이다. 다이어트 중에 읽는다면 몹시 힘든 책이다. 주인공은 능력있는 요리사로 그가 남기고 간 큰 개와 살고 있다. 남자는 그녀가 운영하는 요리 교실에 다니던 모델 출신의 미모의 여인이었다. 큰 개와 우정같은 것을 나누고 있기는 하지만 그 둘 서로는, 서로에게 1순위는 아니다. 그래서 둘은 함께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그렇지만 사실상, 그 둘은 그에게 버림받았다. 주인공은 그를 못 잊어하고 그래서.....(반전인데 어느정도 예상이 되기는 한다. 그치만 스포일러는 남기지 않습니다.)

큰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그렇지만 이것은 혀에 관한, 미각에 관한, 식욕에 관한 소설이다. 아니면 어떤 욕망에 관한 소설이거나.  

제인구달의 저서를 읽고 나도 채식을 하리라! 라고 마음 먹었다가 오랜만에 집안에 퍼진 고기 냄새에 이성을 읽고 고기를 다시 입에 댄 나로서는, 채식주의자들이 존경스럽게 느껴진다. 채식주의자들 중에 완벽주의자가 많고 의외로 악마가 많다는 말이 있는 걸 보면, 그들은 분명 의지가 약한 사람들은 못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식가들이 꼭 인간성 좋고 탐미주의자라는 얘기는 아니다. 사실 그들의 입맛을 충족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폭력이 이뤄지고 있는지. 다만 그들은 왠지 더 인간적이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해못할 바도 아니다. 그게 만약에 건강한 욕구라면 그냥 하나의 좋은 취미로 봐줘야 하지 않을까. 실제로 그들과 같은 기질을 지닌 선조덕분에 음식은 화려하게 발전되어왔으니까. 

아, 이런... 소설 리뷰에서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니!! 

하나만 봐도 열을 알 수 있는 사람의 행위는 소비습관, 그리고 식습관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음식에 유난히 까탈을 부리거나 지나치게 조금먹거나 지나치게 많이 먹는 사람들의 성격은 그렇게 유들유들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 아니 내가 관찰해 본 바로는 100%이다. 삶의 의욕이 떨어지면 식욕부터 떨어진다고 하는데...(아직 크게 식욕이 떨어져 본 적이 없어서 나는 잘 모른다.) 먹는 것을 대하는 방식이 그가 삶을 대하는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혀는 무서운 놈이다. 혀가 맛을 대하고 느끼니까. 다행히 내 혀는 사회적으로는 그렇게 까다롭지 않다. 그렇지만 입 안의 혀처럼 굴지 않으려고 하는 이 놈이 나는 좀 두려워졌다. 

  

덧붙이는 말) 씁쓸하게도 표절시비가 붙은 책이다. 원작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베테랑 작가인 조경란이 더 자연스럽게 썼을 확률이 크다. 이런 경우에는 표절이라고 욕부터 하고 나와야 하나.. 아님 태양아래 새로운 건 하나도 없다는 말을 믿으며, 좋은 작품이라고 해야하나.. 작가의 대응이 없으니 전후사정은 잘 모르지만 어쨌든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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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걸스의 서양미술사 - 편견을 뒤집는 색다른 미술사
게릴라걸스 지음, 우효경 옮김, 박영택 감수 / 마음산책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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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유 클로델은 영원한 로댕의 연인으로 남아있다. 실제로 영원한 연인은 아니었지마는. 그녀의 이름을 들었을 때, 그가 조각한 작품을 떠올리는 이는 얼마나 있을까. 몇 달전 성황리(?)의 막을 내렸던 시립미술관의 로댕전에도 그녀의 작품은 그저 한 섹션을 장식하고 있을 뿐이었다. 로댕전에 기대서 작품을 전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중에 신경쇠약증으로 뛰어난 작품들을 그녀 자신의 손으로 마구 부순 까닭에 자신의 이름으로 전시하기에는 작품 수가 모자라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도 까미유 클로델은 어쨌든 유명하기나 하지. 살아있을 당시에는 꽤 인정받고 부유했던 여성 화가들도 많지만 실제 미술사를 듣다 보면 여성 화가들은 한 손에 꼽을 만큼 적다. 난 그게 단순히 여성이 경제적으로 활동할 수 없기 때문인 줄로만 알았지.(참 일차원적인 생각밖에 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시대에도 여성들은 그림을 그리고 조각하고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아버지의 이름이나 남편의 이름으로. 가끔 독립적인 지위를 얻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선택받은 여성 작가도 있었으나, 한참동안 묻혀져 있다가 게릴라걸스의 노력으로 알게 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것은 평론가들이 남성들이기 때문이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더 교육을 잘 받고,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민주적이라는 요즘 남성 평론가들이 백년전 평론가들 보다도 여성 작가들에 대한 억압이 더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물론 게릴라걸스도 남성 화가들의 뛰어난 작품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여성의 몸을 대상화 하면 예술적이라는 평가를 듣는 반면(그리고 여성의 벗은 몸은 오지게도 많이 그린다), 여성 예술가들은 남성의 몸을 대상으로 그림을 그릴 수도 없었고, 성性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면 색골로 평가받는 현실을 비판하는 것이다.    

그리고 백인 남성예술가, 백인 여성예술가, 유색인종 남성 예술가, 유색인종 여성예술가에 대한 차별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진실을 이야기 한다. 당연히 유색인종 여성예술가는 최하위의 위치이다. 예술계만큼 자유가 필요한 곳도 없는데 줄긋기에 가장 열심히 곳이 예술계라는 아이러니란 참...

게릴라걸스는 미술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현재에도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 2/3정도의 월급을 받는 현실, 헐리우드에 여성 감독이 4%정도 밖에 되지 않는 현실, 오스카상의 영광이 거의 백인 남자에게만 돌아가는 현실 등등. 게릴라걸스는 사회 전반에 깔려있는 불평등한 현실에 대해서도 참지않고 출동한다. 고릴라 가면을 쓰고!   

많은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결국은 세상을 조금씩 바꿨던 그녀들에게 나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다른 이야기)  로댕전 팜플릿에 까미유 클로델에 대한 설명이 있었는데, 매우 잘 써진 글이라고 생각했다. 알고보니 이 책의 옮긴이가 쓴 글이었다. 원전이 어떻든, 글이 매우 생생하고 신뢰가 갔다. 우리 나라의 여성 예술가도 다뤄줬다는 점에서 소득도 많았다. 

사실, 이 책은 목차가 나오기도 전에 실린 짤막한 글에(이걸 뭐라고 하더라..) 모든 내용이 다 나와있다. 그래도 읽어보시라. 우선 무척이나 재미있다. 사회비판을 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것이 그녀들의 사명같은 것이므로.

"왜 서양미술사에 위대한 여성 예술가는 없는가?"     

 게릴라걸스는 이렇게 바꿔 질문하고 싶다.   

 "왜 서양미술사에서 여성은 위대한 예술가로 여겨지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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