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델과 유령선장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까미유 주르디 지음, 노엘라 옮김 / 세미콜론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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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상은 지루하다. 나에게만 그런 것도 아니고 남들도 그렇다니 조금은 안심이 된다. 그래도 지루한 건 어쩔 수 없다. 힘든 일이 쌓였을 때, 자주 이렇게 생각한다. 누가 날 일주일만 바다 있는 데로 납치해 주었으면!

등장인물들은 모두 붙박힌 듯한 지루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한 비극의 종류 중에, 사실 이게 제일 공감 갔다.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것. 그건 비극이다. 그것도 언제나 드라마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슬픈 일이 일어났을 때는 울거나 복수하거나 콱 죽는 수도 있지만,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때는 그저 상상하는 것이 젤 안전하고, 경제적이고, 현명하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개성이 강하고 호기심이 왕성하다. 잔잔한 일상을 견디기에는 너무 매력적인 것이다. 어른들의 말에 휘둘리다(?) 주관을 갖게 된 호기심 왕성한 소녀 안나, 항상 주인공의 이름을 아델이라 설정하는 소설가-그렇지만 글을 못쓰는-와 아내, 그리고 소설의 주인공이자 밋밋한 역할에 불만을 품고 있는 아델, 죽은 후 오랜시간을 액자 속에 갇혀 있던 유령선장까지. 

책의 인물들은 모두 귀엽고 매력적이다. 특히, 유령선장과 아델이. 몇 십년을 액자에 잘 박혀계시다가(?) 후손들을 혼절시키고 모험을 선언하는 유령 선장과 일기장에 콩고에 사는 오카피(어떤 동물이라고 합니다)를 그리는 소설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가상의 인물 아델....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줄거리는 환상적이고 그림은 더 환상적이다.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한다면 마음에 쏙 들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가끔 꺼내서 읽어보면 행복감이 잔잔하게 오는 느낌을 받으니까. 

반면, 작가는 일상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인 것 같다. (너무 사랑해서 애증으로까지 발전해서 이런 책을 썼을까?)  

"날마다 제가 좋아하는 초콜릿 빵을 먹으며 이야기를 만들고 그림만 그리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전 좀 비관론자처럼 생각하는 습관이 있어요. 모든 것이 잘 되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하면 실망할 일도 없으니까요. 그러다 보면 전혀 예상치 못했던 행운이 미소짓기도 하더라구요." 

일상은 대체로 지루하고 질리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일상의 가치는 여전히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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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중위의 여자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32
존 파울즈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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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리뷰쓰기가 겁난다. 내가 뭘 읽었더라. 방대한 분량도 분량이지만 인용 또한 엄청나게 많아서 소설을 읽은 건지 논문을 읽었던 건지 헷갈린다. 분명 읽을 때는 즐거웠던 거 같은데.. 

요즘 도서 추천 서비스를 보며 알게 됐는데, 나는 영국 소설을 참 좋아한다. 오스틴도 영국 사람이고 포스터도 영국 사람이다. 근데 현대물이 아니라 좀 옛날(?) 이야기를 좋아한다. 큰 성 같은 집에서 승마도 하고 사냥도 하고 사람을 부리던 시대 때의 이야기를 즐겨 읽는다. 그렇다고 영국적이라고 하면 뭐든지 열광하고 왕실이 어쩌니 저쩌니 하는 것도 이해를 하는 사람은 아니다. 심지어 요즘 패션 아이콘으로 인기인 미들턴인가 하는 왕세자비에도 별 관심이 없다.  

아무튼 현대 영국에는 별로 맞는 코드가 없는 것 같은데 18, 19세기의 영국과는 코드가 맞는가보다. 특히, 상류층이나 중산층의 으스대는 꼴을 꼬집는 글을 좋아한다. (내 성격이랑 비슷한 걸까.) 

존 파울즈는 현대작가다. 근데 책을 무진장 많이 읽어서 엄청 해박한 사람이다. 그러지 않았으면 그 시대의 이야기를 이렇게 자세히 쓸 수 있었을까. 각 챕터마다 작가는 엄청난 인용문을 붙이고 있고 그 내용이 어려울 때도 있었다. 

소설의 큰 줄기는 약혼녀가 있던 귀족 찰스가 '프랑스 중위와 놀아난 여자'인 사라와 사랑에 빠져 약혼을 파기하는데, 막상 사라는 그가 약혼을 포기하고 오자 달아나 버리고, 나중에 다시 찾은 사라는 그 유명한 ........... 였다는 얘기.(나름 반전이다.)  

처음부터 파도가 치는 코브의 절벽에서 정신병자같지만 왠지 끌리는 팜므파탈의 여인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가진 찰스의 인생은 황폐해졌다. 그러니까 본능이 위험하다고 경고를 하면 남자든 여자든 무조건 빠져나왔어야 했는데.. 

그 많은 양을 이렇게 저렴하게 줄일 수밖에 없는 게 미안하고 화가나지만, 책을 읽을 동안 스토리를 따라가는데 신경이 씌여 정신이 없었다고 변명하고 싶다. 책은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고 숨 가쁘게 이야기하는 느낌이었다. 

그냥 읽어보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작가의 글솜씨에 혀를 내둘렀다. 작가들 간에도 [달인]이라는 프로가 있다면, 달인은 그의 차지다. 글을 잘 쓰는 작가들은 물론 많지만, 존 파울즈는 정말 노련하고 + 능청맞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달인은 쓸데없이 우울하고 심각하면 안 된다.) 

강추. 프랑스 중위의 여자를 묘사한 장면에서 어떤 그림이 떠올랐는데, 그게 맞아서 정말 놀랬다. 그러기에 내게는 왠지 더 특별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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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4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인환 옮김 / 민음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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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적인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생생하긴 하지만 곳곳에 묻어나는 자기연민의 감정이 도무지 편하게 생각되질 않아서다. 기억의 특성상, 좋은 기억보다는 나쁜 기억이 더 오래 남게 될 뿐더러 보통 사람들보다 예민한 감성을 지닌 작가들은 거기서 더 큰 영향을 받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자전적인 글은 자기연민일 가능성이 많다. 

요즘 다시 프랑스 여자들의 자유로운 삶이 대두되는 모양인데, 말년에 40살 연하의 남자를 만나 그의 품에 안겨 죽었다는 뒤라스도 평범해 보이지는 않는다. 국내에 번역이 다 되어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소설뿐만 아니라 영화 각본과 사회 참여활동까지 여러 분야에서 두루두루 활동했던 정력적인 이 여인은, 어떤 이에게는 동경과 흠모의 대상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어떤 이들 중 하나가 나였는데, 어디서 끓어 오르는 건지 에너지가 넘쳐서 주체할 수 없는 사람들이 무척 부럽다. 게다가 동명의 영화 [연인]에 나온 제인 마치의 청순한 차림을 90년대 완전 잘나갔던 희선이 언니와 우희진 언니가 벤치마킹 했다니, 관심이 안 갈 수 없었다. 

영화도 영화지만, 원작인 소설은.. 슬프다기 보다는 아프다는 느낌이 든다. 남들과 다른 삶을 지향하던 나에게도 읽는 이까지 고통스럽게 하는 삶은 살았던 작가에게 동정이 가기까지 했다. 프랑스 령의 베트남에 살던 꼬마 숙녀는 가난하고 불완전하고, 애착과 집착으로 뒤엉켜 있던 가족 탓에 너무 일찍 어른이 되고 만다. 너무 일찍 늙어 버린 소녀는 메콩강을 건너는 배에서 부자인 중국청년을 만난다. 사실 소녀가 그를 꾀어낸 것이 맞다. 

성인도 되지 않은 백인 소녀는 식민지에서 그녀의 유리한 위치를 이용해 매일 밤 기숙사에서 생활하지 않고 그의 아파트에서 밤을 보낸다. 큰 오빠만을 사랑하는 미치광이 어머니, 도저히 구제가 불가능한 큰 오빠, 그리고 그들에게 눌려 아무 말도 못하는 사랑하는 작은 오빠. 가족은 소녀에게 끊임없이 고통을 주고, 소녀의 중국 연인은 잠시 피난처가 되는 듯 하였다. 

어머니와 큰 오빠의 학대, 중국 연인과의 우울한 관계 속에서도, 소녀는 꿋꿋이 성장하였다. 어머니에게 경멸을 당하면서도 글쓰기를 갈망한 것을 보면, 그는 정말 글쓰는 것에 타고난 사람이었나보다. 

'누보로망'이라고 하여 어떤 실험을 했다고 하는데, 아무튼 여타의 소설과는 형식이 많이 달라서 낯선 느낌이 들기도 한다. 뭐 본인은 누보로망이다 뭐다 하는 형식의 구애에는 벗어나고 싶다고 했다는데, 고통스러운 텍스트가 아니었다면 신선한 느낌이 들기도 했을 것 같다. 

여기, 한국 땅에서 붙박혀 살아 어린 시절을 외국, 이름도 생소한 곳에서 보낸 아이들이 몹시 부러웠다. 뭔가 다른 경험을 갖고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들의 다소 삐뚤어진 성격이나 방황도 향수병인가 하여 그것마저 부러워 한 적이 있었다. 근데 요즘은 잘 모르겠다. 몇 개의 언어능력이나 특별한 경험이 부럽기는 하지만, 이렇게 힘든, 특히 가족들만 의지 할 수밖에 없는데 가족들까지 날 힘들게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래서 급한 거 집어먹는 심정으로 도피처를 찾는다면..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실로 오랜만에 무겁고 슬프고 아픈 글을 읽었다. 이래서 요즘은 가벼움이 미덕이라고 하나? 읽는 내내 왠지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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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와의 인터뷰 - 할인행사
워너브라더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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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겠다. 탐 크루즈 승!  

물론 이 영화 안에서만 말이다. 브레드 피트 추종자들은 엄청 반발하겠지만 아무튼 내게는 그랬다. 요즘은 나보다 비싼 신발을 신는 아이들의 아빠로 여겨지는, 왕년에 어마어마했던 아저씨 둘이 나오는 것만으로 이 영화는 이미 성공이다. 그것도 전성기 때! 

이들을 실제로 보면 오금이 저려할 게 분명한 너따위가 매긴 순위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면 할 말이 없지만, 혹시 기분이 나쁜 사람들을 위해 이유를 설명해야겠다. 크게 거창한 이유는 아니다. 그냥 탐 크루즈가 연기한 캐릭터에 더 공감이 갔고, 더 매력적이었고, 그게 또 엄청 잘 어울렸다. 탐 크루즈는 정의로운 역보다 악역에서 더 빛을 발하는 것 같다. 뭔가 더 섹시하다고 해야할까. 

뱀파이어니 드라큘라니 하는 차가운 이미지의 괴물(?)에 관심이 없어서 원작 소설을 읽지는 않았지만 영화가 속도도 빠르고 시나리오도 탄탄한 걸 보니 원작 소설은 더 재미있을 것 같다. 배우들도 하나같이 연기를 잘한다. 특히, 어린 시절의 커스틴 던스트도 표독스러운 표정을 잘 지어 신선한 충격이었다. 

잘생긴 외모에, 부자에, 좋은 인품을 가졌다면 영원히 사는 게 행복할까. 그것도 평생 젊은 모습으로. 대신 다른 생물의 피를 먹어야 한다고 해도.  

불행하다고 말해야 정답이겠지만 실은 그렇게 확답을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아니, 남들보다 멋있고 능력도 좋으면 살기도 얼마나 편하겠어. 게다가 날 열받게 하는 인간들의 피를 쪽쪽 빨아먹고 응징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탐 크루즈의 캐릭터에 공감이 더 갔다. 어차피 영생을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그걸 즐기고 죄책감을 없애는 게 현명하긴 하다고 본다.  

영화는 그저 재밌다. 전성기 때의 둘은 또 얼마나 멋진지. 뱀파이어류 영화가 그렇듯이 딱히 어떤 메세지를 전달하려는 것 같지는 않다. 아무튼 안구정화는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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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델마와 루이스
리들리 스콧 감독, 수잔 서랜든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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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와 거북이. 로미오와 줄리엣. 서울 쥐와 시골 쥐... 와 같은 제목이 참 좋다. 군더더기도 없고. 등장인물만 알려주고 내용은 알려주지 않아 기대도 없고, 대부분 실망도 없다. 

그리고 델마와 루이스도 정말 좋은 영화다. 오랜만에 눈물이 날 뻔 했다. 

(스포일러 있으니 아직 안 본 분은 읽지마세요.) 

 

델마와 루이스는 놀랍게도 둘 다 여자이고, 끈끈한 연대와 동지애로 가득 차 있다. 청춘과 젊음이 시들었다고 여겨지는 나이와 이제 현실과 타협한지도 오래되어 이미 일상이 되어 버린 그들은 여행을 떠난다. 그저 기분 전환을 하려고. 잠깐 지겨운 일상에서 벗어나 보려고. 

현실은 이들에게 잠깐의 기쁨도 용인하려 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가정주부로서 적당히 무시받으며 자유가 없는 삶은 살던 델마는 눈 감고 저질른 여행에 들떠서 자기도 모르게 유혹한다고 오해를 사고, 불미스런 일을 당할 뻔 했다. 루이스가 그를 쏘지 않았으면 꼼짝없이 당했을 일이다.  

그래서 그들은 쫓기는 신세가 된다. 생활력 강하고 이성적인 루이스는 대책없는 델마를 이끌고 미국 땅을 도망치려 한다. 문제는 사고뭉치 델마. 델마는 이제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그저 엄청 잘생겼지만 불량한 청년을 유혹한다.(그는 브레드 피드다! 요즘은 안젤리나 졸리와 세트로(?) 브란젤리나라고 불리지는 잘생기고 가정적인 중년아저씨가 됐지만, 어쨌든 그는 명실공히 세상에서 최고로 섹시한 남자였다.)  

잘생긴 남자는 인물값을 하듯이, 그들이 애써 마련한 돈을 훔쳐 달아나버렸다. 언제나 살 길을 찾는 루이스도 결국 주저앉아 운다. 그러나 델마가 루이스를 일으킨다. 무기력해진 루이스를 차에 두고 델마는 정중하게(?) 강도짓을 하여 돈을 마련한다. (여기가 영화에서 두번째로 멋있는 장면) 

그들은 죄목이 더 추가되면서 추격당한다. 넓은 미국땅을 달리고 또 달린다. 이국적인 풍경과 그들의 지친 표정이 이 영화의 백미이기도 하다.   

경찰의 추격을 요리조리 피하던 그들은 최후의 순간에 이런 선택을 한다. 우리.. 잡히지 말자. 밟아, 계속!!! 그리고 그들을 실은 차는 그랜드 캐니언의 벼랑 끝으로 달린다. 

멋있고 군더더기 없는 엔딩이라고 생각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이런 영화가 잘 없는데. 어떤 사람들은 페미니즘 영화라고도 말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그냥 멋있는 영화라고만 말하고 싶다.    

 

덧> 수잔 서랜든은 항상 느끼는거지만.. 정말 좋은 배우라고 생각한다. 얼굴이 예쁘고 느낌이 좋다, 이런 걸 떠나서 정말 좋은 배우라고 느껴진다.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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