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긋는 남자 - 양장본
카롤린 봉그랑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깔끔 떠는 성격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남들과 공유하는 책은 이상하게 재미가 반감되는 느낌이다. 다 핑계인 줄은 알지만 그래서 공공도서관에는 잘 안가는 편이다. 새로 구입한 도서가 있으면 다른 책은 살펴보지도 않고 빌리고, 남에게 빌린 책은 침대에는 절대 올리지 않는 것을 보면 나는 책을 육체적으로(!) 사랑하고 있는 사람임에 분명하다. 

학교 도서관은 품절된 도서나 비싼 책.. 아님 왠지 사기 아까운 분야의 책을 사는 데에만 이용하고 책이 쌓인 곳에서 나는 약간 곰팡이낀 달짝지근한 종이냄새를 맡는 것에만 이용하던 나는, [밑줄 긋는 남자]를 보고 도서관을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을 잠깐했다. 

요즘은 시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은 자주 이용하긴 하는데, 동네가 작아서 그런지 공부하는 인구도 별로 없어 한산한데다가 책도 그렇게 많이 없다. 갈 때마다 보는 머리를 내려묶은 허름한 차림의 아저씨는 책을 베고 자고 있다. 그리고 내가 빌린 대부분의 책에는 밑줄이 없다. (사실, 밑줄이 있으면 짜증부터 난다.) 

권태로운 일상에 지친 콩스탕스란 아가씨는 공공도서관에서 빌린 책에서 밑줄을 발견한다. 교양있는 시민은 화를 내고 신고를 해야 마땅하지만, 지루하고 젊은 여인은 그것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마지막에는 다음에 어떤 책을 읽으라고 지시하기까지 한다. 어머... 내 인생에 이렇게 로맨틱한 이야기가! 

책은 계속해서 말을 건넨다. 도프또예프스키와 로맹 가리 등의 작가의 입을 빌려서. 권태롭고 호기심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콩스탕스는 밑줄 긋는 남자를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해피엔딩. 문체는 처음부터 끝까지 발랄하고 상큼하다. 도프또예프스키, 로맹 가리 혹은 에밀 아자르, 키르케고르를 사랑하는 독자라면 무조건 봐야할 책이다. 

소설처럼, 현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재미는 있겠지만 그 무시무시한 에너지 소모와 걸렸을 때 법적인 책임이라든가 하는 것이 무서워 나는 그냥 조용히 책만 빌리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문의 역사
브라이언 이니스 지음, 김윤성 옮김 / 들녘 / 2004년 8월
평점 :
품절


지금이 잔인함이 난무하는 시대라고 생각했는데, 꼭 이 시대만 그런 건 아니다. 인간은 어느 시대 때나 잔인했고, 잔인하고, 잔인 할 것이다. 오히려 예전 형벌 등을 보면 인간은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한 것은 맞다. 

중세시대의 종교재판, 유럽이나 미국의 마녀사냥, 신대륙이 발견된 후 인디언에 의한, 혹은 인디언에 대한 응징...(식민지에서의 고문) 역사는 항상 동적이고 혼란스럽다. (사회 분위기의 혼란, 내가 이루려고 하는 일을 가로막는 것에 대한 혼란 등...)혼란스러움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희생양이 필요하다. 

고문을 행하는 이유는, 잘못한 자의 응징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남을 괴롭히는 희열일 것이다. 언제나 희열은 클수록 좋은 것이고, 희열을 크게 하려면 결국은 고문을 다양한 방법으로 강도를 세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련되지 못한 시대에는 고문 방법이 실로 다양했고, 하나같이 잔인했다. 

문제는 진짜 범죄자만 고문을 당했던 것이 아니라, 무고한 사람들이 그런 일을 당했다는 것에 있다. 고문은 위정자가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킬 때 쓰였다. 저자는 어떠한 경우에도 고문은 비열한 짓이며, 용납할 수 없다고 얘기한다. 

고문은 하는 사람이나 당하는 사람이나 인간성을 잃게 되며, 결국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행위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내가 다른 사람을 고문해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면, 인간은 존엄하기에 나는 정말 안 한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거기에 대한 실험이 있다.(유명한 실험이라 방송 여기저기에서도 많이 나왔다.)  

출처 :위키백과 http://ko.wikipedia.org/wiki/%EB%B0%80%EA%B7%B8%EB%9E%A8_%EC%8B%A4%ED%97%98  

이래도 정말? 책을 읽을 때만 해도 나는 그렇지 않다고 확신하였으나, 요즘 흉악범 처벌에 대한 기사를 읽고 있자니 그들에게 고통을 줘야만 할 것 같다. 사형의 실효성을 믿는 사람은 아닌데도! 

세계 곳곳의 온갖 끔찍한 형벌, 고문의 방법이 거의 300페이지에 걸쳐 나와 있다. 너무 끔찍해서 텍스트를 다 못 읽었다. 사극에 나오는 사지를 묶어 놓고 소나 말을 달리게 하는 것은 댈 것도 아닌 고문이 많다. 상상력을 이런데 쓰다니. 

책을 덮으면서 내가 얼마나 세련되어진 곳에 살고 있는지 절감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화가 사랑한 미술 - 미술과 만화의 유쾌한 만남, 마이 러브 아트 5
박창석 지음 / 아트북스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미술이 인기가 좋아지면서 이제 만화와 연결한 책도 나왔다. 만화도 그림 그리는 건데 미술과 관련이 없을 수가 없지. 이들은 우연이 아닌 필연적인 만남인 것이다. 

오브리 비어즐리나 알퐁스 무하, 뭉크는 왠지 만화가에게 영감을 주었을 법하지만 의외로 인상파 화가들도 이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한다는 흥미로운 사실. 그림을 비교하면서 보면 무척 재미있다. 

예술 사조에 따라 변하는 건축양식을 배우고 어떤 일본 순정만화를 봤는데, 배경이 아르헨티난가 하는 남미의 어느나라였다. 그래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여러 시대의 건축 양식이 혼재되어 있어 당황스럽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에도 시대마다 서양의 건축 양식이 이상하게 들여온 걸 보면 거기도 그랬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 만화가가 엄청나게 철저하게 자료조사를 했을 때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만화나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은 한 번 볼만한 책이다. 특히 만화에서 어떤 미술을 패러디하는 게 무척 재밌다. 역시 만화는 유머를 갖춰야 제맛이긴 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선정한 만화들이 너무 '예술 돋는' 느낌이 강하다는 것이다. 만화가 꼭 가벼워야 하고 웃겨야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책에 나오는 만화들은 독자와 친근하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대체로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만화들이라.. 만화가들도 생계형(?) 만화라기 보다는 자신의 감수성을 한껏 발휘한 작품이라고나 할까.  

한 때 만화를 깨나 보는 사람이었는데 몇몇 만화가나 작품을 빼면 너무 생소한 작품들이라 조금 아쉬웠다. (유명한 작품이라면 죄송합니다...ㅠㅠ) 그리고 '예술 돋는' 만화를 보고 놀라고 기쁘기도 했다.특히 패러디 부분이 재미있었는데, 훌륭한 작품이 시대를 지나서 재해석 되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글 읽기를 지독히 싫어하는 만화형 인간(?)이라면 그림만 봐도 재미있다. 글을 성의있게 쓴 저자의 입장에서는 화가날 법한 일이지만... 만화를 보고 미술을 떠올리는 것도 이렇게 모은 것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만화든 미술이든 그림을 좋아하시는 분은 한 번쯤 읽어보시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빠트리스 르꽁트 감독, 장 로슈포르 출연 / 키노필름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혹자는 이 영화가 제목의 승리라고도 한다. 원제를 직역하면 '미용사의 남편'. 그렇게 나왔을 때는 망했는데, 다시 이름을 바꿔서 나왔더니 흥행했다고 한다.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분명 호기심이 동하는 타이틀이긴 하다. 그들이 어떻게 사랑하기에? 하면서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니까. 그런데 나는 [미용사의 남편]이라고 하는 것이 더 독특한 느낌을 주는 것 같아 더 멋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영화 업계야 흥행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니까 좋은 영화가 흥행이 되서 다행인 일이다. 

남자 꼬맹이는 유난히 뽀얀 살결에 살집있는, 빨간 머리의 동네 미용사 아주머니를 사모한다. 결혼하지는 않았지만 묘하게 도는 무언가(?)가 동네 남자들 뿐만 아니라 꼬마의 심장도 콩닥이게 했고, 꼬마는 머리를 자르는 내내 긴장해 있었다. 머리를 자른 후, 샴푸를 해줄 때 나던 미용사의 체취란... 결국 미용사는 (아마도 애정문제로) 약물 과다복용으로 죽고 만다. 

꼬맹이는 자라서 여전히 미용사를 사랑하는 남자 어른으로 성장한다. 그리고 뜬금없이 미용사에게 결혼하자고 다짜고짜 얘기한다. (머리를 다 자르고 나서도 아니고 자르기 시작할 때.. 어색하기 그지없다.) 고아로 자라서 뛰어난 미용기술과 친절함,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던 미용사는 마침내 승낙한다. 

이제 그는 아내가 하는 미용실에 계속 붙어 잡지를 읽고, 우는 아이에게 요상한 음악을 들려주며 그에맞는 요상한 춤을 추며 달래주기도 한다. 그들은 그렇게 행복하다.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아름다운 부부는 어느 날은 미용실에 진열되어 있는 향수를 술에 타 마셔보기도 한다. 그렇게 그들은 술에 취하고, 향기에 취하고, 서로에게 취하는 것이다.(의외로 맛은 괜찮다고 해서 시도해 보고 싶긴 했다.)  

장마가 너무나 심한 어느 날, 손님이 없는 미용실에는 두 부부만 있다. 어쩐지 아내의 표정은 왠지모를 불안감에 흔들린다. 아내는 창문에 기대 내리는 비만 보고 있다가 갑자기 뛰쳐나간다. 그리고 돌아올 수 없는 강으로 풍덩, 몸을 던지고 만다. 고아로 자라 사랑받지 못한 그녀는 갑자기 맛 본, 행복함이 계속 유지되지 못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결국 그가 사랑에 빠졌던 미용사들은 모두 죽음으로써 그에게 큰 상처를 준다. 그녀들은 그에게 그렇게 잠깐 동안의 달콤하고 진한 향기를 뿜었다 그렇게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본 후에는 어떤 상실감이 몰려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염소의 맛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바스티앙 비베스 지음, 그레고리 림펜스.이혜정 옮김 / 미메시스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수영장은 왠지 모르게 슬픈 장소이다. 시끌벅적한 꼬마들이 빠져나간 오후의 수영장은 더더욱. 가둬 놓은 물이 이상하게 파랗기도 하고 비슷비슷한 수영복을 입고 말없이 수영을 하는 조용한 수영장이라면 더 슬프다. 수영장 물에서 나는 화학적인 냄새가 묘하게 슬픈 느낌을 불러 일으키는 것 같다.  

수영장 물에 타는 화학성분이 바로 '염소'란다. 순수한 염소의 맛이란 정확히 어떤 걸까.(여러 사람들이 몸을 담그고 있으니 순수한 맛을 본 적은 없다.)

배경이 수영장이라 책의 모든 페이지는 파랗고 푸르다. 그림은 깔끔한 선으로 이루어져있는 것 같지만 의외로 디테일하다. 내용도 사소한 것 같지만 디테일 하고..  

주인공은 남자와 소년의 사이에, 여자와 소녀의 사이에 있는 뭐라고 불러야 좋을지 모르겠는 풋풋한 때에 서 있다. 물리치료를 위해 간 수영장에서 그는 그녀를 만나고, 한때 챔피언이었던 그녀는 그에게 수영을 가르쳐준다. 수영장이 그들을 감상적이게 만드는 건지 곧 진지한 얘기도 나누게 된다. 

시합에 쥐약인 남자애는 있는 힘껏 노력해야 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최선을 다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고백한다. 이 대사가 뭔가를 찡하고 울렸다. 나도 대결을 하는 순간에는 그냥 무기력해지고 말기 때문이다. 또 남자애는 이렇게 묻는다. 나도 언젠간 잠영으로 한 번도 쉬지않고 완수할 수 있을까? 여자애는 망설이지 않고, 응, 이라고 답해준다. 

그리고 어느 날, 그는 그녀(의 환영같은 것)을 따라가다가 잠영을 완성한다.  

정적인 장면들이지만 로맨틱하고 긴장감이 느껴진다. 특히 남자가 여자를 찾아 두리번 거리는 모습이 왠지 두근두근하다. 작가의 내공이 보통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발견' 되었을까? 그리고 풋풋하면서 마음을 콕콕 찌르는 대사라니. 

정말 그녀는 물 속에서 뭐라고 했을까. 불어를 모르니 따라서 발음해 봐도 감이 안 잡힌다. 확실한 건 (다소 유치한) 쥬땜므는 아니란 거다. 

딱 스무살이나 그 정도의 주인공들의 때묻지 않은 풋풋함을 느끼고 싶고 그런 감성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강추하는 만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