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쓴지가 1주일이 넘었군요. 그동안 매일 서재는 들어왔지만 이상하게 여유가 없어서 글을 쓰지 못했어요. 글쓰는 것이 왜 이리 부담이 되는지 원..

기관에서 출장을 다녀왔어요.. 제 고향이 부산이기도 해서, 어찌 어찌 여러 시도 중 부산으로 골랐습니다. 부산에 1박 2일 출장을 잡아놓고, 모든 일정은 첫날에 끝내고 첫째날 밤부터 회도 먹고 구경도 다녔어요.



부시 일행이 통째로 빌려서 묵었다는(미군부대에서 잤다는 말도 있음) 웨스틴 조선호텔과 해운대 전경입니다. 부시가 묵기엔 천혜의 요새였겠지만, 너무 해운대 라인을 가리지 않습니까? 아마 저거 지을 때 특혜를 줬을 것 같아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APEC에서 회의장으로 활용되었던 누리마루 입니다. 꽃피는 동백섬 뒷편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멀리 보이는 광안대교, 그 위에 그림처럼 어울어진 저녁놀과 더불어 세속적 표현으로 환상적인 장관을 만들어 냅니다. 그래도 누리마루, 광안대교보다 더 멋진 것은 역시 저녁놀이군요..




역시 동백섬에서 찍은 광경입니다. 해운대 달맞이언덕 위로 보이는 보름달과 바다에 비치는 달빛.

멋지구리구리한 이 광경은 사진으로도 담았지만, 1억 화소짜리 제 눈으로도 담았고 지금 제 마음속 한 폴더에 저장시켜 놓았습니다. 1억 화소짜리와 기껏해야 500만 화소짜리는 차이가 나도 엄청 크게 나겠죠?

 



부산 옆 기장이란 곳에 있는 이 곳은 용궁사 라는 절입니다. 바닷가 옆에 위치한 3곳의 사찰 중 하나입니다. 그 3곳 중 하나인 강릉의 절은 지금쯤 화마의 피해에서 어느정도 복구가 되었을까요?



솔직히 말해서 조금은 돈냄새가 났습니다. 아주 오래된 절이 아니라서 그런지 새로 짓고 있는 부분도 많았고요, 무엇보다도 여기 이 절에 오면 무엇인가 한가지는 꼭 이룰 수 있다고 한 점이 그렇습니다.

한 곳에는 교통사고를 방지하는 조형물이 있고, 어디서는 합격기원 조형물이 있고 이런 식이죠. 기복신앙이 무조건 나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만, 절에서 너무 신도들의 세속적인 바람들을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더군요..



저도 찬조출연했습니다. 처음 보시죠? 물론 카메라 들고 있는 사람입죠.. 쿨럭..



여기는 해운대에서 북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나오는 송정 해수욕장입니다. 여긴 갈매기들이 장관을 이룹니다.  노래로만 듣던 부산갈매기를 직접 보시려면 여기로 찾아오세요..  생각보다 귀엽게 생겼어요..

새우깡을 옆 가게에서 사오면 귀신같이 알고 달려듭니다. 학습의 효과겠죠?



이렇게 손 위에 놔둬도 전혀 거리끼는 기색이 없습니다. 바로 낚아채 갑니다. 공중에 던져도 마치 서커스하듯이 낚아 챕니다.

 

나, 이쁘게 생겼죠? 갈매기떼 옆에 마치 갈매기인듯 숨어있는 비둘기와 비교했더니 갈매기는 너무나 이쁩니다.  내년엔 부산 갈매기가 힘을 내야 하는데 말이죠..



저 덕분에 부산의 겨울 바다 구경 잘 하셨죠?  헤헤  추천으로 보답해주세요.. ^^ (넘 속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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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5-12-21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갈매기 정말 예쁘군요. 저도 바닷가에서 자랐지만 저렇게 가까이서 본 적은 없어요. 추천,합니다. ^^

조선인 2005-12-21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비둘기를 저리 근접촬영하셨다니,대단하세요.

물만두 2005-12-21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멋있어요~

아영엄마 2005-12-21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근사한 사진 많이 올리셨네요. 서림님도 보고.. ^^

진주 2005-12-21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사진이 예술입니다. 사진 잘 찍으셨네요.
그리고 서림님이 멋쟁이이실줄을 미리 짐작했지만 제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시네요^^ 당근 추천이죠!

하이드 2005-12-21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림님 오랜만에 보니 좋네요. ^^
갈매기 발에 물갈퀴 달려있군요. -_-a
부산갈매기. 흑흑. 이번에 호세 영입했더군요. 불끈
광안대교 뒤로하고 제작년 부산영화제 봤던 기억이 새록새록. 오돌오돌 떨면서요.
어제 조선호텔 프렌치레스토랑에 갔는데, APEC 때 메뉴인 '누리' 와 '마루'세트가 있더군요. 자그마치 200,000만원. 한식 위주라 우리는 다른 세트를 시켰지만서도요.
용궁사랑 제주도에서 갔던 바닷가 절이랑 헷갈리지만, 그, 금불상 젤루 많은 절 아닌가요?

하이드 2005-12-21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조선호텔에서 해운대 바라볼때는 몰랐는데, 조선호텔 뒤에서 바라보니, 그림이 별로군요. -_-a

BRINY 2005-12-21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롤 모델이기도 하신 5촌 숙부님의 20년전 모습을 떠올리게 하시네요.

사진들이 시원시원합니다. 서림님 덕분에 부산 구경 잘하고 갑니다.

엔리꼬 2005-12-21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urblue님.. 저도 저렇게 가까운 곳에서 저리 쉽게 볼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어찌 보면 갈매기가 너무 사람한테 길들여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더군요.
조선인님... 저 이쁜 갈매기를 뚱땡이 비둘기와 착각하시다니욧~ 갈매기라고요.. 그리고 근접촬영, 저기 가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줌을 안해도 사람한테 덤비니깐요.
물만두님.. 무엇이 멋있다는건지요? 1) 사진 찍힌 풍경들 2) 사진 실력 3) 제 모습 4) 모두 다!! 물론 4번이죠?
아영엄마님.. 생활의 활력이 조금이나마 되시라고 사진 올렸습니다. 저도 뭐 아영엄마님 옛날 사진 봤으니 쌤쌤인가? 아니다, 내가 좀 밑지는군요.
진주누님.. 사진은 별로 잘 찍은 것이 없어요.. 그냥 셔터만 눌렀을 뿐인데... 멋쟁이는 솔직히 아니고요, 그냥 오래간만에 바바리나 입은 것 뿐이죠.. ㅎㅎ
하이드님.. ㅎㅎ 스노드랍님은 얼굴도 생각 안난다던데, ㅋㅋ 팬서비스 차원에서 올려드렸어요.. 앗, 누리와 마루 세트가 자그마치 200,000만원? 그럼 얼마야 20억원이네? 헤헤 뭐 그리 비싼가요.. 조선호텔 리모델링을 쫙 해서 새 호텔 같았어요.. 별로 낡아 보이지도 않고.. 그런데 조선일보랑 무슨 관계가 있는건가? 용궁사 금불상은 제가 잘 모르겠어요. 사실 같이 간 사람들 사진 찍어주느라, 구경도 제대로...
BRINY님.. 롤 모델이라면 역할 모델이란 뜻? 모습이 비슷하다는 것인가요? 아니면 행동이? 아무튼 고맙습니다. 숙부님의 좋은 모습을 제가 닮았으면 좋겠어요.

줄리 2005-12-21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부산구경 너무 잘했습니다. 사진들이 주는 느낌이 참 좋네요. 몇번이고 다시 보고 싶어지는 그런 사진들이네요. 추천할게요.

세실 2005-12-21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500만화소가 아니라 제 눈으로 직접 보는것 같은 설레임~~~~~
사진 넘 잘 찍으셨어요~~~ 이기회에 작가라고 하셔도 될듯~~~
예전에 가본 해운대가 눈에 선합니다. 마음은 추천 10번 입니다~

울보 2005-12-21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산구경잘하고 갑니다,
서림님도 보았고요,,
갈매기 사진 너무 멋져요,,모두모두 멋진 사진입니다,

엔리꼬 2005-12-21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쥴리님.. 사진을 보고 좋으셨다니 기쁩니다. 추천도 고맙습니다.
세실님.. 오호, 직접 보시면 정말 좋아요.. 작가는 당치도 않습니다. 이상하게 나온 사진 삭제하느라 얼마나 애썼는데요.. 호호. 그럴 땐 마음 추천 10번 하지 마시고, 다른 페이퍼가 맘에 안들더라도 거기 추천하시면 됩니다. 헤헤
울보님.. 다들 바다와 노을과 달빛에 대한 로망이 있지 않겠습니까? 셔터만 눌러도 다 멋지게 나오더군요..

꼬마요정 2005-12-22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대단하세요~~ 사진들이 하나같이 멋집니다. 특히 부산 갈매기~^^
저는 이번에 친구들과 송년회 겸 용궁사에 다녀오려고 계획 중입니다. 기복신앙이나, 불교신자여서가 아니라...그저 바닷가에 있다는 이유 하나이죠.. 같이 가는 친구는 모태신앙임에도 불구하고 불교신자인 저보다도 더 절을 좋아하지요... 저도 친구따라 교회도 곧잘 가구요... 크리스마스 때 가려고 했는데, 넘 멀어 못가 아쉽습니다. 친구의 재롱을 보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근데 어쩌다가 삼천포로 갔는지..) 1박 2일 짧은 기간동안 어찌 이리 알맹이를 쏙 뽑아 보고 가셨답니까... 추운 날 감기는 안 걸리셨는지... ^^

조선인 2005-12-22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거거걱 죄송해요. ㅠ.ㅠ

엔리꼬 2005-12-22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님.. 아, 용궁사에 대한 칭찬이 많이 부족했군요.. 용궁사 그 모습만으로도 너무 멋졌습니다.. 사진찍느라 세세하게 못둘러봐서 그렇지.. 그런데, 저도 부산출신이지만 해운대, 광안리 등의 해수욕장, 용궁사, 태종대, 자갈치를 빼면 별로 갈 곳이 없어요... (삼천포 사람들이 싫어해요.. 꼬마요정님~) 누리마루 갔다가 추워 죽을 뻔 했어요... 흐흑
조선인님.. 그렇다고 죄송할 것까지야 ~~
 

1. Tivoli Model One Mono Radio

얼마 전 내 생일 기념으로 무려 14명의 돈을 모아서 산 라디오.

직장에서 생일 맞은 동료가 원하는 선물을 만원 정도 갹출하여 사주는 전통이 있다. 그동안 사람들(대부분 여자들)이 골랐던 품목은 다양한데, 가방, 아기용품, 옷 등의 고개 끄덕이게 하는 제품이 있는 반면 쿠쿠 밥솥(자취녀), 휴대용 하드디스크 등의 운치없는 선물을 고른 사람도 있다.

내가 고른 이 상품에는 대부분이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한마디로 '이쁘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말을 따오자면 '침대 머리맡에 장식해 두면 딱 좋겠다'라는데...  이후에 소리를 들려주자 열광적인 반응은 좀 줄어들었다.

진행자 목소리는 정말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또렷하고 정감있게 들렸으나, 흔히 듣는 스테레오도 아닌 모노로 어려운 클래식 음악이 계속 흘러나오니 뭐 그리 좋은 음은 아니네 싶은가보다.

라디오에 대한 반응은 대부분 비슷하다. 물론 이쁘고 좋다는 의견을 전제로 한 것이지만, "이런 모노 라디오가 왜 이리 비싼거죠?"  "이 스트레오의 시대에 모노를 듣는 특별한 이유라도?"  라는 선물선택의 의외성을 묻는다.

"남자들은 왜 이리 음악듣느라 비싼 기계들을 많이 사는거죠?"라고 오디오광 남편과 종종 불화를 일으키는 한 선생이 투덜거린다.

그래서 나는 "여자들이 감성이 풍부하고 섬세하다고들 하는데, 음악을 듣는데 있어서는 왜 그리 좋은 음을 들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받아쳤다.  "물론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하고, 음악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알지만, 같은 음악을 듣더라도 대충 듣는 것이랑 그 음악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서 듣는 것은 차이가 있지 않는가? 오히려 남자들이 이런 면에서는 훨씬 섬세하다고 본다."라고 말하긴 했지만,

여자들이 기계와 별로 친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은 한다.


 

아무튼 당분간은 회사 책상 머리맡에 두고, 아침 시간, 점심 시간, 6시 이후의 시간에 짬짬이 들을 에정이다.




 

 

2. MaMiSon  자수정 함유 기능성 고무장갑 (L)

김치 색깔이 물드는 것 때문에 붉은 색이 채택되었다는 우리의 고무장갑.

이 고무장갑의 자태를 보라. 기존의 빨간 색을 단숨에 뛰어넘는 자수정의 고혹스러운 빛깔. 내 오른쪽 네번째 손가락끝의 고통스러운 주부습진의 상처를 불쌍히 여긴 마나님의 특별 하사품이다. 서른이 훌쩍 넘고서야 겨우 찾은 나를 위한 고무장갑. 내 손에 맞지 않아 설거지 후 억지로 뒤집어 빼내야 했던 그간의 고통은 이제 기억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기존의 1천원대를 훌쩍 뛰어넘는 2천원대의 당혹스런 가격. 그것은 단지 L 사이즈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니라.


30년 마미손의 자존심을 걸고 야심차게 내놓은 남성용 센스 고무장갑. 이제 회사 이름도 패런츠손, 마마파파손으로 교체하고 상품 구매 타겟을 아빠들로 넓히는 도발적인 행보를 준비해야 하는건 아닐까?




남자 어린이들의 조기 집안일 교육을 위해 아동용을 내놓는 블루오션전략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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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5-12-10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마미손 홈피 게시판에 올리세요. 아동용 고무 장갑 필요해요.

blowup 2005-12-10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물건 갖게 되신 거 축하드려요. 제가 아는 사람은 티볼리 라디오에 mixer(정확한 명칭인지는 잘 모르겠지만)라는 물건을 연결해서 엘피를 듣고 있던데요.

진주 2005-12-10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생일 축하드립니다^^(생일선물로 가방 고르려고 갔다는 이야기 듣고도 왜 까먹었을까요....ㅡ.ㅡ) 라디오가 너무 예쁘네요. 저도 모노로 바꿔서 한 번 들어봐야 겠네요.

아영엄마 2005-12-10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림님~ 생일 축하드립니다. -다른 것은 짜게(?) 사시는 분이 음향기기만큼은 큰 돈을 들이시던 이모부님 생각나네요. ^^

stella.K 2005-12-10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일이셨습니까? 알라딘 마을에도 알리시지 그러셨습니다. 암튼 늦어지만 저도 축하해요. 더욱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빌겠습니다.
그런데 고무장갑 색깔 좋군요.^^

엔리꼬 2005-12-10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RINY님... 네.. 문득 떠오른 생각을 그냥 말한 것 뿐인데, 아동용 고무장갑은 별 필요 없는 것 같습니다.. ㅎㅎ
namu님.. 감사합니다.. 이 라디오도 mp3 플레이어나 다른 기기와 연결되서 스피커로도 작동합니다. 아직은 못들어봤는데, 이제 해봐야지요.
진주누님.. 축하 감사드립니다. 네, 생일 축하선물은 잘 고른 것 같아요. 좀 비싸서 그렇지요.. 음악의 향기에 빠져 보아요.
아영엄마님.. 저는 음향기기도 큰 돈 안들입니다. 일단 기계에 대해 잘 모르거든요? 다만, 라디오 기능이 없어서 깊은 밤 심심할 때 듣고 싶어 라디오를 하나 장만했습니다.
스텔라님... 알라딘 마을에 알릴 강심장을 갖고 있지 않아서 말입죠.. 축하 감사드립니다. 색깔은 좋은데 사실은 안에 면처리는 안되어 있어요. ㅎ

하이드 2005-12-11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곱니다!
생일 축하드리고요,
저;;저도 티볼리 사고 파요! 흑.
저 고무장갑, 거 참. 훌륭하내요. 아이디-어도!

하이드 2005-12-11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 멋진 페이퍼에 추천이 하나도없었다니, 꾹

엔리꼬 2005-12-11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감사합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이 멋진 페이퍼에 하이드님만 추천을 해주시다니.. ㅋㅋ 감사해요..
 

한 생명과학전공 교수님의 친절한 Q&A입니다.

이번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할지를 제시해주는 이성적인 글이라고 봅니다. 길지만 한번 시간내어 읽어보면 대충 가닥이 잡히리라 봅니다. 물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

저도 소장 생명과학자중 한명입니다.

제가 생명과학자를 대표하는 사람도 아니고, 여러 분들이 이야기하신 내용과 대부분 겹치는 것이지만,
혹시라도 도움이 될까해서 제 개인적 견해를 몇가지만 문답식으로 적어본 것입니다.



Q;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찬성하는가?

A; 절대 찬성합니다. 꼭,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Q; 황교수님은 사기꾼인가?

A; 그럴리 없고 인간적으로도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Q; 황교수님의 윤리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A; 여기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과학자들이 윤리문제에 소홀해 왔던게 사실이고, 그런관점에서 볼 때, 비난받으려면 전체 과학계가 한번에 비난받아야지 황교수님만 대표로 비난받는 건 부당합니다. 황교수님의 공직 사퇴는 지나치게 가혹한 면이 있고, 이번 사태를 통해 앞으로 윤리문제가 좀 더 중요하게 인식되는 계기가 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합니다. 황교수님께선 얼론 복귀하셔서 일을 계속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Q; 솔직히 황교수님이 연구비를 독식하고 유명해지는게 배아프지 않나?

A; 저도 인간인 이상, 황교수님 같은 명성과 지위가 부럽지 않을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배아프지는 않습니다.
우리 대학에 황교수님 강의 오셨을 때, 대학원생 다 이끌고 가서 들었고, 우리 학생들이 모두 감동해서 어쩔 줄 모르는 걸 보았습니다. 강의 끝나고 나서 질문이 있어서 남아 있었는데, 남아있던 청중 중 한명이 싸인을 요청했습니다. 황교수님께서 이름을 묻고는 정성껏 싸인을 해주시더군요. 그 이야기를 듣더니, 강의 끝나자 마자 자리를 떴던 우리 학생들이 너무나도 아쉬워하면서 싸인 받지 못할 걸 안타까워 했습니다. 그래서 (황교수님이 저를 잘 모르시지만) 혹시 학회에서라도 한번 뵈면 우리 학생들 위해서 싸인이라도 받아줘야되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황교수님 때문에, 과학자도 잘만하면 국민적 지지를 받는 스타가 될 수 있다고 인식되고, 많은 후학들이 과학계로 입문해서, 그 정도의 명성을 얻기위해 경쟁하는 계기가 이루어진다는 측면에서 한국 과학계에 대한 공헌이 지대하다고 생각됩니다. 솔직히 연구비를 놓고 경쟁한다거나, 학자적 명성에 대한 시기심이 생긴다는 면을 보면, 나이가 드신 원로 교수님에 가까울수록 (아주 일부에서) 그런 측면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 특히 대학원생 수준까지 내려가면, 절대적으로 존경받습니다. 조금 감정적인 내용이긴 하지만, 이해될 수 있지 않습니까? 나이나 지위가 높을 수록, 황교수는 저 정도 대접받는데 나는 뭔가? 하는 감정이 생기고, 어릴수록 경쟁심 보다는,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존경과 추종의 감정이 더 강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본능이라고 생각됩니다.

Q; 본론으로 들어가서, 사이언스같은 권위있는 잡지에 실린 내용에 오류가 있을 수 있나?

A; 이 문제는 너무 여러 곳에서 이야기된 주제라 길게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모든 과학 실험 논문에 대해서 데이타 검증을 다 거치고 논문을 실어준다면, 이 세상에 있는 과학자 만큼이나 많은 심사위원이 있어야 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모든 실험 데이터는 실험실 내부에서 검증하는 것만으로 논문 게재가 결정되는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이지요. 논문 심사위원들이 하는 일은 그 데이터 자체의 사실성 여부가 아니라, 그게 얼마나 그럴듯하고, 그 데이터에 대한 해석이 올바른가 하는 것 뿐입니다. 물론 그 데이터라는게 그냥 믿기에 너무 황당무계한 내용이라면 심사단계에서부터 검증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권위지에 실렸다가 수정되거나 취소된 예는 하도 많아서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습니다.

Q; 학자의 논문은 논문으로만 반박해야 한다던데?

A; 이 부분도 오해가 많은 부분입니다. 인문과학이나 이론에 대한 논문이라면, 당연합니다. 그 이론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반박한다라고 논문 내면 그 뿐입니다. 하지만 실험 데이터 쪽은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실험관련 논문의 대부분은 재현성 여부로 쉽게 검증됩니다. 무슨 논문에서 이러이러한 조건으로 이러이러하게 하면 이런 결과가 나온다고 되어 있는데, 실제로 다른 곳에서 아무리해도 그런 결과가 안나온다면 의혹이 생기게 됩니다. 그런 경우라 하더라도 바로 반박논문을 내기는 힘들지요. "누가 된다고 한 실험을 나는 아무리 해도 안되더라" 그렇게 논문낼 수는 거의 없습니다. 이런경우 우리는 대부분 그 실험실에 전화를 걸거나 이메일을 보내서, "당신 논문대로 해봤는데 잘 안된다. 혹시 우리가 무슨 실수를 한건지 알고싶다." 이렇게 문의합니다.

그러면, 혹시라도 자기 논문의 진위 여부에 대한 의혹이 생길까봐 적극적으로 협조해줍니다. "이렇게 해봐라, 아님 저렇게 해봐라, 그래도 안되면 연구원 한명을 우리 실험실로 보내라, 여기서 우리가 직접 보여줄께" 이런 반응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이런 반응 조차 안나온다면, 소문이 돌기 시작하거나, 아니면 학술지에 (논문이 아닌) 편지 형식의 의문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제 분야는 아니지만 상온핵융합 관련 논문이 이런식으로 진행되지 않았나요? (아시는 분 있으면 의견 바랍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논문의 경우, 재현성 여부로 판정하기 힘든게 있습니다. "복제양 돌리" 같은 경우가 대표적 예입니다.
좀 과장된 예를 말씀드리면, 실험동물에 10년간 꾸준히 약물을 투여해서 노화와 관련된 효과를 본 논문이 있는데, 의혹이 있으면 너도 똑같이 10년 실험해보고 안될때 그 때 이야기하라면 말이 안되지 않습니까? 복제양 돌리 데이터에 의문이 있다면, 돌리를 대상으로 테스트해봐야지, 너도 만들어봐라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불행히도 황교수님의 논문(특히 2005년)은 이 경우에 해당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분란도 없었겠지요. 의혹이 있으면 그 세포로 실험해봐야지, 따로 재현 실험해보고 논문으로 반박하라는 주장은 말이 안됩니다.

Q; 그렇다고해서, 아무 증거도 없이 "네 실험 가짜지? 다시 조사해보자, 가짜 아님 말구." 이렇게 주장하는 건 너무 무책임하지 않나? "너 빨갱이지? 아니라는 증거대봐"라는 것과 똑같은 고문 아닌가? 그리고, 대한민국 과학자 중에 자기 이름 걸고 황교수님 논문 가짜라고 증명한 사람 있나?

A; 대한민국 과학자 중에 자기 이름 걸고 황교수님 논문 오류를 주장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검증도 안해보고 오류를 주장한다면 과학자 아닌 것이 맞습니다. 문제는, "검증해 보기 전에는 오류를 증명할 수 없고, 오류를 증명하지 못하는 한 검증을 요구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검증 전에는 오류를 증명할 수 없으니, 검증을 통해 오류 유무를 확인하자"고 하는게 젊은 과학자들 주장입니다.

Q; 그렇다면, 재현해보는 것 만으로 증명이 안되는 논문은, "아무나", "아무런 증거도 없이", "너 가짜지? 아니란 걸 증명해봐!" 이렇게 요구할 수 있다는 건가? 말이 안되잖아.

A; 얼핏 생각하면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 이 분야에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 처럼, 논문 게재 과정에서 데이터 사실 유무 검증까지 이루어질 수는 없습니다. 실험하는 연구원이 교수 모르게 데이터 조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속이자고 마음만 먹으면 같은 실험실 교수까지 속이는 판에, 학술지나 심사위원이 완벽히 검증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데이터 검증 부분은 그냥 믿고 실어주되, 혹시라도 외부에서 그 논문 데이터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면, 그 연구자는 그 데이터의 진실성을 증명해야 할 의무를 가지는 방식으로 관례가 형성된 것입니다. 그 의혹이라는 것은 대개, 그 데이터를 믿고 후속 실험을 해보았는데 잘 안된다거나, 실험실 내부를 잘 아는 사람이 조작의 의혹을 제기하는 것 등이 다 포함됩니다.

과학자의 입장에서는 자기 실험의 데이터를 외부에서 검증한다고 하면, 기분 나빠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 의혹을 잠재워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개인이 일일이 다 나서서 증명하기도 힘들고, 그래봤자 또 안 믿어줄게 뻔하니까, 대부분의 경우에는 의혹이 제기되면, 대학 (또는 연구소) 차원의 위원회에서 검증이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검증이라고 하는 것은, 수년간에 걸쳐서 이루어진 그 복잡한 실험내용을 다 확실하게 재연하고 실험해 보는 수준까지 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연구자들의 실험 노트 (연구자들은 그래서 모든 실험에 대해서 노트와 함께 기록을 남길 의무가 있습니다.

혹시라도 나중에 누군가 그 실험을 진짜 한게 맞느냐라고 물으면 증명할 준비를 해 두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등을 확인해보고, 관련 사진, 검사 결과 원본 등 몇가지만 확인하면 대부분의 경우 진실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간단한 실험을 해 볼 수도 있습니다.

이번 같은 경우는 황교수님께서 200개 미만의 난자로 11개의 줄기세포주를 만드는 것을 다시 해보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기록해 놓은 증거가 있는가 살펴보고, 검사결과 원본을 보고, 그리고 만들어진 11개 세포주에 대한 DNA 검사 결과 (하루내지 이틀이면 충분히 나옵니다)만 살펴보면 해결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절차는, 연구자가 사기쳤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주기 위한 절차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Q; 하지만, 사이언스에서 재검증하면 안된다고 했다던데...

A; 사이언스에서 그렇게 이야기한 이메일이 있다면 한번 보고 싶습니다. 사이언스지에서도 "데이터에 접근 가능한 기관에서의 검증"을 긍정적으로 이야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자기 잡지 표지로 실린 논문에 하자가 발견될 경우, 기분이 좋지는 않겠지요. 사이언스지가 기분 나빠할까봐 다른 모든 과학계의 의혹에 침묵한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런 변명이야 말로 국제적 웃음거리입니다. 다시말해 연구자가 검증에 응하는게 이상한 일이 아니고, 그걸 거부하는게 이상한 일입니다.

Q; 연구자가 검증을 거부하는게 비난받을 일인가? 바빠서 그럴 수도 있고, 하다못해 옛날 기록이나 실험재료를 잃어버릴 수도 있잖아?

A; 그럴수도 있습니다. (저도 오래전 실험 결과 사진 같은 것 잃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최근 실험이나, 사이언스처럼 중요 잡지에 낸 논문이라면 대충 방치하다 잃어버릴 확률이 극히 희박하긴 하지만...) 그러나, 보통 형사재판의 경우 무죄 추정의 원칙에 의해서 혐의가 입증되기 전까지는 무죄로 간주됩니다만 (학술적인 내용에 무죄, 유죄의 용어가 들어가니까 좀 섬뜩하네요), 여긴 다릅니다 (왜 거기만 다르냐고 하면 위의 글 다시 읽어봐주시라고 밖에 못하겠습니다)

연구논문결과에 대해 의혹이 제기됐을 경우, 그에 대한 검증의무(burden of proof)는 논문저자가 지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아무리 그 실험을 성공했다는 심증이 많아도, 연구자가 연구노트, 원자료(raw data) 등으로 데이터 사실성에 대한 입증을 하지 못하면 논문 결과는 불신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한마디로, 성공했다는 증거가 없는 한 실패로 간주한다는 이야기 입니다.

Q; 만에 하나 논문에 하자가 있는 걸로 밝혀지면, 황교수님의 학자적 생명이 날아갈 수도 있는데,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최소한 무언가는 걸어야 공평하지 않나? 익명으로 이루어지는 제보는 증거능력이 없지 않나?

A; 과학자가 논문을 내는 행위는 자기 이름과 명예를 걸고 하는 것입니다. 영롱이에 대해서 어떤 소문이 돌든, 어떤 기업체에서 신기술을 개발했다고 하든 논문화 되기 전까지는 아무도 검증하라 마라 하지 않습니다.
황교수님은 사이언스지에 논문을 내시면서 공적인 영역으로 나서셨습니다. 논문이 사실이면 명예를 얻는 것이고, 거짓이 있으면 (거짓의 정도에 따라 작을 수도 있고 클 수도 있는) 타격을 입게됩니다. 즉 황교수님이 (학자의) 생명을 건 것은 사이언스지 게재에 대한 반대급부입니다. 거기에 대한 의혹에 왜 무언가를 걸어야 합니까?

"당신 논문에 쓴 이런 내용이나 데이터가 진짜요? 내가 직접 확인해보고 싶은데..."
"오케이, 그런 질문 하는 건 좋은데 만약 진짜로 확인되면 너 죽을 각오 되어 있어? 그런 각오 있으면 다시 물어봐, 그 정도 베팅할 자신 없으면 꺼지든지" 이게 더 공평한 것입니까? 과학 분야의 가장 기본 덕목 중 하나인 의심과 회의는, 완벽하다는 자신이 없으면 아예 꺼내지도 말아야 하는 것인가요?

Q; 아무리 그래도, 멀쩡한 논문 가지고 아무나 계속 검증해라 검증해라 그러면 어떻게 논문을 내겠나? 황교수님 논문이 검증대상이 된다는 근거가 무엇인가? 그리고, 처음 논문 나왔을 때 미리 이야기하지 왜 이제와서 하이에나 처럼 물어뜯나?

A; 돌리의 경우도 특별한 조작의 증거가 있어서 재검증하자고 한 것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재검증을 받아들여 통과한 바 있습니다.)

오마이뉴스에 보도된 대로 스탠포드 대학에서는 "과학적 부정이 일어났거나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반드시 해당 단과대학의 학장에 신고해야 하며, 학장은 즉각 예비조사를 시작하고 연구담당 학장에게 알려야 한다"라고 규정하면서 신고를 의무화까지하고 있습니다. 설마 과학적 부정에 대해 논문을 쓸 정도로 완벽하게 증명한 다음 의무적으로 나서라는 이야기일까요? 그 의무를 지키지 않으려면 [증명]만 안하고 있으면 되나요? 의혹의 제기에 증거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건 황교수님 논문 데이터가 가짜 같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증거는 아직 없습니다. 세포 사진이든, DNA fingerprint든 그것만으로 가짜라고 증명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의혹의 증거가 아니라 의혹의 정도입니다. 누가 직접 이메일로 항의를 하든, 익명으로 투서를 했든, 신문에 났든,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든 어느정도 의혹이 커지면, 그 의혹의 신빙성과 관계없이 검증에 응하시는 게 관례라는 것이지요. 그 의혹을 네가 먼저 발견못했으니 가만 있으라는 건 말이 안됩니다.

Bric의 한 게시판 글 일부를 그대로 인용해보겠습니다
"저는 황우석 교수님의 잘못인지 논문이 잘못인지 따지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황교수님의 침묵, 그 침묵이 여러 사람에게 상처를 줍니다."

Q; 그래도 학계에서 지금처럼 나서서 누구 검증하자고 한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결국 미운털 박힌 황교수 죽이기 아닌가?

A; 한때 K대 산부인과에서 세포 복제와 관한 논란이 일었을 때 (논문에 실린 내용도 아니고 언론에 발표한 내용 때문입니다)조사위원회가 결성된 적이 있고, 황교수님도 그 위원 중 한분이셨습니다. 그리고, 복제의 증거를 내어 놓지 못하는 K대 쪽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죠.

만약 대상이 황우석 교수님이 아니고, 다른 교수님이었다면 (황교수님 아니어도 셀, 사이언스, 네이처에 논문내신 분 꽤 있습니다)현재 수준의 의혹이 있을 때, 몇몇 학자들이 실명으로 (또는 익명으로) 의혹을 제기하고 조사 위원회가 만들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순서입니다. 하지만 이정도로 파문이 커진 의혹 사건이 그리 흔치 않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지금 서울대에서 이야기하는 건, 진작 외국처럼 과학진실성위원회가 상설기구로 자리잡고 있었으면, 이렇게 문제가 커지지 않았을거란 점에서 과학자들이 잘못한 것이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제대로 하자는 겁니다.

평상시에 황교수님에 대한 시기보다는 존경을 표시하던 젊은 과학자들이 더 주도적으로 나서는 이유가 뭘지 생각해보십시오. 현재 여기에 가장 적극적인 사람들은 대학원생입니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검증은 황교수님 죽이기가 아닙니다. 이정도 수준의 의혹에도 검증 안받으면 계속 이야기 나오고 신용 떨어지니, 제발 나서서 사실이라는 것 좀 입증하고, 만에 만에 하나 티끌만한 오류가 있다하더라도 정확히 그 만큼의 비판만 받으시면 되는 겁니다. 더이상 검증에 응하지 않는게 황교수님께서 국제 과학계에서 매장되는 계기가 됩니다.

Q; 결국 그렇게 알량한 진실을 밝혀서 뭐하겠다는 건가? 만에하나 검증결과 황교수 매장이라도 되면 살림살이 좋아지나? 결국 잘하면 연구비 부스러기 좀 더 떨어질지 모른다는 흑심아닌가? 아니면, 잘난척 하더니 꼴 좋다는 시기심이든지.

A; 만약 검증결과 황교수님 논문에 잘못된 점이 하나도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는 국가적 경사이고, 검증을 제기한 사람들에게도 그 공이 있지만, 사람들은 무고한 사람 모함했다고 검증 제기한 사람들 다 죽이려 할 겁니다. 책임지고 자폭하라고 하겠지요.

만약 논문에 잘못된 점이 발견되면? 우선 한국 과학계의 망신이고, 신뢰도가 추락하는 것도 큰일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검증하자고 한 사람들 칭찬해줄까요?


"그래, 결국 기어코 황박사님 흠집내서 기분좋냐? 만세라도 부르고 싶겠지? 하지만 황박사님께 갈 연구비가 네놈들 수중에 한푼이라도 갈거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내 세금이 생명과학 분야 연구비로 쓰여서 너희들에게 가는 건 죽어도 못본다. 황교수님 당한 만큼 너희도 당해봐라.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생명과학 연구비 줄이자고 할거고, 너희놈들 논문 나오면 다 검증하자고 투서할거다."

이런 반응 나오지 않을까요?

결국 검증결과가 어찌 나오든, 검증하자고 한 사람들은 죽일놈 될것이고, 서울대는 아마 지금 MBC 꼴 날 가능성이 큽니다. 서울대 보직 교수나 원로 교수님들이 과학진실성위원회 설치를 거부한다면, 아마 이런 논란을 겁내기 때문일 겁니다.

Q; 결국 손해볼 걸 알면서 왜 이러나? 그렇게 "진실"이 중요한가?


A; 검증을 하지 않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큰 손해이기 때문입니다.

어찌되었든, 지금은 어찌해도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는 lose-lose 게임 (윈-윈 게임의 반대말로 썼는데 이런말 있나요?)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최악이 아닌 차악을 찾을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지만, 최선의 결과는 검증을 하고, 그 결과 황교수님의 논문에 오류가 없거나, 있더라도 티끌만큼밖에 없었다고 밝혀지는 겁니다. 그렇게 되기를 두손모아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Q; 검증안하는게 무슨 큰 손해가 되는데?

A; 우리는 우리 선배들 보다 훨씬 좋은 여건에서 학문을 하고 있습니다.
과학계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주장이나 이론, 실험 결과가 얼마나 다른 사람에게 소통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소통되지 못하는 학문은 죽은 학문입니다.

논문의 신뢰성은 데이터가 다 결정한다고 하지만, 88올림픽, 삼성전자 반도체, 월드컵 4강 등을 배경으로 한국이라는 나라의 지명도와 신뢰성이 높아진 것은 (물론 황교수님의 업적도 큰 공헌을 했지요) 우리 학계의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소위 선진국에서는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 회의의 눈길을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똑같은 일이 중국에서 벌어졌다고 생각해보십시오.

1) 중국에서 네이처, 사이언스 급에 연달아 논문을 내는 과학자가 나와서 온 중국인이 영웅 취급을 한다.
2) 그런데 연구원 내부와 일부 학계에서 의혹이 제기되었다.
3) 외국에 있는 학자가 보기에도 일부는 의심할만한 일이고, 그 학자가 한번 검증에 응하기만 하면 다 해결될 일인데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핑계로 나서지 않는다.
4) 그리고 검증하자고 하는 학자나 언론은 중국인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여 죽여놓고, 관련대학이나 중국정부도 방관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볼 때, 의혹을 제기한 사람들을 보며 한심해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의혹을 뭉개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보겠습니까?
의혹의 내용이 얼마나 신빙성 있나가 중요한게 아닙니다. 의혹에 대처하는 시스템이 얼마나 건강한가가 주된 관심입니다.

다소 무리가 되는 의혹에도 불구하고, 관련 대학과 학회에서 엄중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가혹하다 싶을 정도의 제재가 이루어진다면, 중국에서 웬만한 용기로는 어설픈 논문 못 쓰는구나 하는 인식이 심어지게 됩니다. 그 반대의 경우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설사 황교수님 논문에 일부의 하자가 있다 하더라도 황교수님이나 대한민국 과학이 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검증의 의무를 거부하는 사람이 과학자 대접을 받고 있고, 그 사회가 거기에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그건 그 사회가 과학을 할 능력이 없음을 만천하에 신고하는 것입니다.

황교수님의 논문에 잘못이 없는데 다른 이유 때문에 검증받지 않겠다면 그건 정말 어리석은 결정이고, 만약 일부라도 잘못이 있기 때문에 검증을 피하시는 것이라면, 황교수님 개인의 책임 회피를 위해서 후세 과학도들의 앞길을 막겠다는 행위입니다.

Q; 하지만 그 검증 과정도 만만치는 않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황박사님 팀 연구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혹시 조금만 더 두고 보다가 황교수님이 후속 논문으로 보란듯이 증명해서 검증받는 건 어떨까? 아님, 그냥 조금만 더 기다려주든지. 지금 아프신 분한테 너무하잖아?

A; "검증을 사이언스가 반대한다거나, 검증받는데 신경쓰느라 정작 중요한 일을 못하니, 검증 못받겠다. 후속 논문으로 증명하겠다"라는 주장이야 말로 황교수님에 대한 최대의 의혹입니다. 과학계에서는 이게 말이 안되는 걸 다 알거든요. 이게 말이 안되는 거라고 과학자들이 생각할거라는 것도 황박사님이 알고계실겁니다.

하지만, 좋습니다. 다 인정하더라도, 딱 하나만 제안하겠습니다. 11개든 3개든, 만들어진 배아줄기 세포주마다 일부분을 국가가 인정하는 공공기관에 위탁하고, 단 황교수님의 동의 없이는 아무도 그 세포주를 꺼내볼 수 없도록 안전장치를 만들어 놓은 다음, 실제 검증은 몇달쯤 지나서 하자고 하면 어떨까요? 실제 검증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의혹을 계속 받긴 하겠지만, 적어도 황교수님의 진실성만은 보여줄 수 있을 겁니다.

지금 일부에서는 몇개 줄기세포에 문제가 있다는게 나중에 발견되어서 그거 수습하려고 지금 새로 열심히 만들고 있고, 그 때까지 시간 벌기 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있습니다. (이건 정말 소문일 뿐이고 근거는 별로 없다고 생각됩니다만) 검증에 나서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의혹과 오해의 수준도 더 깊어질 것입니다.

제가 황교수님 입장에서 억울한 의혹을 받는다면, 과학계가 납득할만한 수준으로 그 의혹을 풀 방법은 무수히 많습니다. 그걸 하나도 하지 않고, 과학계에서 납득할 수 없는 변명만 계속하시는 것이 최대의 미스테리입니다.

Q; 마지막으로 추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솔직히 생물학계에서 황교수님의 몰락을 바라는 사람, (거의) 하나도 없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황교수님이 잘못이 밝혀지고 그게 좀 심각한 수준의 과오라면 저를 포함한 많은 생물학자들이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지금 몇분의 교수님들이 어찌되었든 수습해보려고 애쓰시는 것도 그런 생각때문입니다. (혹시라도 진짜 가짜면 어떡하나? 모르는게 약이지)

저 같은 경우도,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황교수님의 흠집이 밝혀지거나, 검증 후폭풍으로 생물학계가 여론 폭격을 받는 것은 당장 일어날 수 있는 손해이고, 검증을 피해서 생기는 한국과학계 신뢰도 추락은 지금 당장 실감이 안나는 일이니, 웬만하면 덮어두자고 주장하거나, 적어도 입다물고 가만히 있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습니다.

그런데 제 가슴을 후벼판 것은 Bric 게시판에서 본 이 글입니다.

"저희가 실명으로 나설수 없는 이유는 권위가 없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황교수님보다 잘났냐? 사이언스 내봤어? 연구 얼마나 했냐? 뭐 이런식입니다. 문제제기의 소리는 그냥 어영부영 묻히고 말겁니다. 저는 지금 미국에 있습니다, 여기서 보는 상황은 한국과 아주 다릅니다. 한국의 생물학계는 신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더 늦으면 회복불능이 될지 모릅니다.
권위를 가진, 일반인들도 인정해줄만한 과학인은 이제 교수님들밖에 없습니다. 교수님들의 침묵이 저희를 슬프게 합니다."

나중에 몇년 지난 다음 이 일이 어떻게 결말이 나든간에, 그때 너는 이 간절한 호소를 듣고 무슨 일을 했냐는 질문에, 그리고 나중에 분명히 나올 말 "가장 내용을 잘 알고 있는 선배 과학자들이 그때 뭐하고 있었나?"라는 질문에 너무 부끄러울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비겁하지만 익명으로라도 의견을 올려서 양심의 가책을 줄여보고자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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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5-12-10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분하게, 최대한 황우석 교수 입장도 봐줘 가면서 쓴 글로 보이네요.
지금 브릭이나 과갤 같은데 가보면 데이터 조작은 거의 기정사실인 듯.......
(그래도 거기 분들은 최대한 ~일 수도 있다 식으로 이야기 하시지만)

 

앗, 제목부터 오타입니다. 마태우스가 아니라 마테우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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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우스가 한국 조 추첨

한국축구의 운명은 독일 축구영웅 로타어 마테우스(44)의 손에 결정된다.

10일 새벽 4시15분(이하 한국시간)부터 라이프치히 노이에메세 컨벤션센터에서 열릴 2006 독일월드컵 축구대회 조 추첨에서 마테우스가 한국이 포함된 4그룹 7개팀(아시아 4, 북중미 3)의 조를 뽑는다고 AFP통신이 9일 보도했다.

마테우스는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 독일대표팀을 이끌고 우승해 최우수선수로 뽑혔고 1991년 국제축구연맹(FIFA) '올해의 선수'에 선정됐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역대 최고령(42세39일) 득점 기록을 세운 카메룬의 로저 밀러(53)가 1그룹 8개팀 중 이미 조가 결정된 독일(A조), 브라질(F조) 외에 톱 시드 6개팀의 조를 뽑는다.

또 네덜란드의 전설적인 스타 요한 크루이프(58)는 아프리카, 남미, 호주가 속한 2그룹을, 브라질 축구황제 펠레(65)는 유럽팀들이 속한 3그룹 추첨을 맡는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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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마테우스는 독일의 유명한 축구선수입니다. 저는 그런데 이전부터 마테우스란 말을 들으면 '말태우리'란 노래가 떠오르는 것일까요? 이 노래 아시는 분 계세요?

말테우리는 말떼를 방목시키는 말 목동입니다. 오름마다 말테우리가 앉아 휘파람으로 말떼를 몰았습니다. 말테우리의 손짓과 휘파람을 따라 내달리는 말떼의 모습은 장관이었다고 했습니다. 지금 제주도에는 고태오(77) 할아버지가 최후의 말테우리로 남아 있습니다.(세계일보 2005. 12. 1일자) 

 

말테우리 한번 불러보고 이 페이퍼 닫겠습니다.

말테우리

작사 조동산   작곡 박춘석   노래 김지애

바다건너 떠나버린  첫사랑이 그리워

말테우리는 깊은계곡을 추억찾아 헤맨다

예전의 갈대꽃은 그대로 피어있는데

정만주고 떠나버린 말테우리 첫사랑

바다건너 떠나버린 첫사랑을 못잊어

갈대꽃피는 깊은계곡을 추억찾아 헤맨다

예전의 갈대꽃은 그대로 피어있는데

정만주고 떠나버린 말테우리 첫사랑

예전의 갈대꽃은 그대로 피어있는데

말테우리 첫사랑은 바다건너 떠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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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5-12-09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 말테우리란 말을 가르쳐주셨기 때문에 추천합니다.

아영엄마 2005-12-09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큭~ 저 속아버리고 말았어요~~ ^^;;

깍두기 2005-12-09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추첨 잘하세요^^

조선인 2005-12-09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하 클릭수를 높이기 위해 일부러 오타내신 거죠? 그죠?

물만두 2005-12-09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께 기를~^^ㅋㅋㅋ

마늘빵 2005-12-09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

paviana 2005-12-09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제목보고 마태님이 한겨레에 몬가 큰기사를 올리셨나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뉴스부터 봐야겠군요..그 분이 기를 받으셨나...

엔리꼬 2005-12-09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아이님.. 역시 님의 한글사랑은 독보적이군요.
아영엄마님... 속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깍두기님.. 내일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걱정입니다.. 공부하느라 그 시간에 일어날 생각은 안하고 말야.. 쩝
조선인님.. 두말하면 잔소리죠..
물만두님... 마테우스님입니다...
아프락사스팀... 오래간만에 오셔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만 남기시다니..
paviana님.. 이런 것을 '낚시'라고 하죠. 낚이셨어요. 님.

2005-12-09 1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12-09 17: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엔리꼬 2005-12-09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아, 그렇군요... B 회사 이름도 들었는데, 까먹었네요... 거기 초절정 미녀피디도 오늘 만났는데... 아무튼 반가워요..
속삭이신님.. 왜 서재주인에게만 하셨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믿겠습니다. 화이팅~

stella.K 2005-12-09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모르게 추워지기 시작했어요. ㅋㅋ.
 

조금 전에 mbc 작가(정확히는 프로덕션)와 통화를 했다.

작가 -  "내일 저희가 집에서 출근준비하시는 것 찍고 싶거든요? 괜찮으시죠?"

나 -  "아, 웬만하면 집밖에서 찍는 것으로 했으면 좋겠는데요.."

작가 - "그래도 아내되시는 분이 옆에서 출근 도와주시는 것을 찍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나 - "아, 제 아내는 아침에 출근 안도와줍니다. 그냥 잡니다. 그래서 찍을 수도 없어요.."

작가 - "아, 다른 일 하시나보죠?"

나 - "아니 뭐 그런건 아닌데, 아침에 못일어나요.."

작가 - "그래도 단란한 가정의 모습을 찍으려면 아내분이 나오시는 것이.."

나 - "우리집 별로 안단란하거든요?(사실 좀 오버했음) 그러니 만약 집안을 찍더라도 아내는 출연 절대 불가입니다. 본인도 싫어해서요.."

작가 - "(당황하며) 그래도.. "

 

아내가 옆에서 출근을 도와주느냐 마느냐가 단란한 가정의 척도가 될 수 있는가?

나는 드라마, 특히 일일연속극과 같은 단란가족 드라마를 보면서 참 의아한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은 내가 눈여겨보기 시작한 이후로 한번도 빠짐없다. 일상적인 가정일 경우, 남편이 퇴근을 하고 코트나 양복 윗도리를 벗으면 그 옆에서 아내가 장롱 문을 열고 옷을 반드시 받아서 옷걸이에 걸고 장롱문을 닫는다. 물론 그러는 동안에 쉴새없이 대화를 주고 받는다. 갈등이 있는 날에도 (아내가 큰 잘못을 한 경우에라도) 서로 말은 주고받지 않아도 옷을 받아 옷걸이에 걸어주는 행동은 빠짐없이 등장한다.

내 경우를 말하자면, 단 한번도 내 아내가 퇴근하는 나의 옷을 받아준 적이 없다. 집에서 쉬고 있을 때라도 말이다. 물론 대부분의 장면에서 여자는 맞벌이 아닌 일반 주부로 나온다. (단란한 일일드라마에서 맞벌이가 퇴근하는 장면은 거의 못봤다.) 맞벌이가 아니기에 이런 장면이 현실적인 것이라고? 물론 현실적일 수 있다. 나를 뺀 모든 부부가 이런 장면을 매일 밤 연출할 수도 있겠지.(그렇진 않겠지만)

영화에만 클리셰가 있나? 드라마에도 당근 있다. 대부분 여자들일 작가들은 어찌하여 맨날 이런 대본만 쓰는가? 피디의 연출이지 작가의 의도는 아닐 수도 있다고? 그렇다면 어찌 저항하지도 못하나.

일하느라 아이 보느라 피곤해서 아침에 제대로 못일어나는, 그래서 '출근을 도와주지도 못하는' 내 아내와 나는 그래도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오손도손 살아간다.  작가들이여, 주위의 꽉 막힌 틀에서 벗어나라. 당신들이 먼저 그 틀을 깨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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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5-12-08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꿀꺽! (출연 축하해요,와~ 멋있어요,잘생긴 얼굴 드디어 보겠네 )

깍두기 2005-12-08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옳으신 말씀! 저도 한번도 그래본 적 없어요!
테레비 연속극 보고 남자들이 환상을 가지면 안될 노릇이어요!

물만두 2005-12-08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쉐이~ 울 오마니는 예전에도 안하신 일입니다.

blowup 2005-12-08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근을 도와주지도 못하는 내 아내'라는 표현에서 더 나아가 '출근을 도와 줄 필요가 전혀 없는 내 아내'라고 해주세요.^....^

엔리꼬 2005-12-08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누님.. 제가 맨 아래 글을 지워버려.. 누님 댓글이 남들이 보기에 오해하겠네요.. 말그대로 뻘쭘해졌네요.. 죄송합니다.
깍두기님.. 그렇죠? 저희만 그런거 아니죠?
물만두님.. 개척자이시군요.. 존경하옵니다.
namu님.. 댓글 감사합니다. 따옴표가 빠졌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따옴표가 참 오묘한 것이 일단 따옴표를 넣으면 똑같은 말이라도 저의 생각이라기보다는 남의 생각이라 비꼰다는 의미가 되버리죠..
작가한테도 안도와준다고, 단란하지 않다고 이야기한 것도 진심이라기보다는 그냥 나름대로 반항한거죠.. ㅎㅎ

BRINY 2005-12-08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3학년 애가 저한테 왜 결혼 안하냐면서 '아침 출근하는 남편에게 넥타이도 매주고 그러고 싶지 않으세요?'라고 묻더라구요. 그래서 '넥타이는 지가 스스로 매야지, 나도 바빠 죽겠는데.'라고 했더니, '지요?'하면서 쇼크 먹은 표정을 짓더라구요. ㅎㅎ, 제가 '단란한 가정'에 대한 소년의 환상을 깼나요?

blowup 2005-12-08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림 님. 넵. 그러고 보니, 어떤 의도로 거기에 따옴표 치신 건지 알겠어요. 독자가 아둔하다 보니.--;;

moonnight 2005-12-08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낫. 제가 놓친 페이퍼가 있었나요? +_+;; 어떤 프로그램에 나오시는 건지 궁금하군요. 저도 핸섬한 얼른 모습을 뵙고 싶어요. ^^;;;

조선인 2005-12-08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이띠. 무슨 프로그램에 출연하시는지 모르지만 작가가 마음에 안 드네요 -.-;;

urblue 2005-12-08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내가 출근 준비 도와주는 단란한 가정, 대한민국 남자들의 판타지도 아닐 터이고, 작가나 피디들의 판타지인가 봅니다.

엔리꼬 2005-12-08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리니님.. 아이들의 환상을 차근차근 깨어줄 필요는 있는 것 같습니다. 너무 충격은 주지 마세요.. ㅎㅎ
나무님.. 아까는 따옴표 안쳤고요,, 지금 쳤어요... 독자가 아둔해서가 아니라 제가 표현을 잘 못해서...
moonnight님.. 자전거 예찬 카테고리 보시면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조선인님... 요즘 비난받고 있는 mbc 시사교양 프로그램입니다. 작가가 초보라 그런가? 아니 능구렁이 작가로도 그럴만 하다고 봅니다.
urblue님.. 작가나 피디가 생각하길 그건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판타지라고 자기 맘대로 생각하는거 아닐까요?

날개 2005-12-08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림님 생각을 울 옆지기가 봐야 하는데....
아직까지 그런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거든요.. 그런다고 꿈쩍할 나도 아니지만..ㅎㅎ

LAYLA 2005-12-09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림님 같은 남자를 만나고 싶어요 으흐흐흐흐 =3333

마태우스 2005-12-09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림님이 멋진 분이란 건 예전에 알았지만, 설마 이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엔리꼬 2005-12-09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LAYLA님... 저는 안됩니다.. 애가 둘이나 있어요... 그리고 저같은 남자도 흔치 않아서 만나기 힘들텐데.. 걱정이네요.. ^^
마태우스님.. 과찬의 말씀. 저도 글쓸 땐 이상하게 의협심이 강하게 쓰게 되네요.. 이 글을 아내가 본다면 아마 비웃을지도 몰라요.. 흥~ 하면서요.. 쩝
날개님.. 저는 좀 더 젊잖아요. ㅎㅎ 세대 내려갈수록 더 나아지겠지요..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