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명과학전공 교수님의 친절한 Q&A입니다.

이번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할지를 제시해주는 이성적인 글이라고 봅니다. 길지만 한번 시간내어 읽어보면 대충 가닥이 잡히리라 봅니다. 물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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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소장 생명과학자중 한명입니다.

제가 생명과학자를 대표하는 사람도 아니고, 여러 분들이 이야기하신 내용과 대부분 겹치는 것이지만,
혹시라도 도움이 될까해서 제 개인적 견해를 몇가지만 문답식으로 적어본 것입니다.



Q;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찬성하는가?

A; 절대 찬성합니다. 꼭,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Q; 황교수님은 사기꾼인가?

A; 그럴리 없고 인간적으로도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Q; 황교수님의 윤리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A; 여기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과학자들이 윤리문제에 소홀해 왔던게 사실이고, 그런관점에서 볼 때, 비난받으려면 전체 과학계가 한번에 비난받아야지 황교수님만 대표로 비난받는 건 부당합니다. 황교수님의 공직 사퇴는 지나치게 가혹한 면이 있고, 이번 사태를 통해 앞으로 윤리문제가 좀 더 중요하게 인식되는 계기가 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합니다. 황교수님께선 얼론 복귀하셔서 일을 계속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Q; 솔직히 황교수님이 연구비를 독식하고 유명해지는게 배아프지 않나?

A; 저도 인간인 이상, 황교수님 같은 명성과 지위가 부럽지 않을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배아프지는 않습니다.
우리 대학에 황교수님 강의 오셨을 때, 대학원생 다 이끌고 가서 들었고, 우리 학생들이 모두 감동해서 어쩔 줄 모르는 걸 보았습니다. 강의 끝나고 나서 질문이 있어서 남아 있었는데, 남아있던 청중 중 한명이 싸인을 요청했습니다. 황교수님께서 이름을 묻고는 정성껏 싸인을 해주시더군요. 그 이야기를 듣더니, 강의 끝나자 마자 자리를 떴던 우리 학생들이 너무나도 아쉬워하면서 싸인 받지 못할 걸 안타까워 했습니다. 그래서 (황교수님이 저를 잘 모르시지만) 혹시 학회에서라도 한번 뵈면 우리 학생들 위해서 싸인이라도 받아줘야되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황교수님 때문에, 과학자도 잘만하면 국민적 지지를 받는 스타가 될 수 있다고 인식되고, 많은 후학들이 과학계로 입문해서, 그 정도의 명성을 얻기위해 경쟁하는 계기가 이루어진다는 측면에서 한국 과학계에 대한 공헌이 지대하다고 생각됩니다. 솔직히 연구비를 놓고 경쟁한다거나, 학자적 명성에 대한 시기심이 생긴다는 면을 보면, 나이가 드신 원로 교수님에 가까울수록 (아주 일부에서) 그런 측면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 특히 대학원생 수준까지 내려가면, 절대적으로 존경받습니다. 조금 감정적인 내용이긴 하지만, 이해될 수 있지 않습니까? 나이나 지위가 높을 수록, 황교수는 저 정도 대접받는데 나는 뭔가? 하는 감정이 생기고, 어릴수록 경쟁심 보다는,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존경과 추종의 감정이 더 강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본능이라고 생각됩니다.

Q; 본론으로 들어가서, 사이언스같은 권위있는 잡지에 실린 내용에 오류가 있을 수 있나?

A; 이 문제는 너무 여러 곳에서 이야기된 주제라 길게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모든 과학 실험 논문에 대해서 데이타 검증을 다 거치고 논문을 실어준다면, 이 세상에 있는 과학자 만큼이나 많은 심사위원이 있어야 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모든 실험 데이터는 실험실 내부에서 검증하는 것만으로 논문 게재가 결정되는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이지요. 논문 심사위원들이 하는 일은 그 데이터 자체의 사실성 여부가 아니라, 그게 얼마나 그럴듯하고, 그 데이터에 대한 해석이 올바른가 하는 것 뿐입니다. 물론 그 데이터라는게 그냥 믿기에 너무 황당무계한 내용이라면 심사단계에서부터 검증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권위지에 실렸다가 수정되거나 취소된 예는 하도 많아서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습니다.

Q; 학자의 논문은 논문으로만 반박해야 한다던데?

A; 이 부분도 오해가 많은 부분입니다. 인문과학이나 이론에 대한 논문이라면, 당연합니다. 그 이론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반박한다라고 논문 내면 그 뿐입니다. 하지만 실험 데이터 쪽은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실험관련 논문의 대부분은 재현성 여부로 쉽게 검증됩니다. 무슨 논문에서 이러이러한 조건으로 이러이러하게 하면 이런 결과가 나온다고 되어 있는데, 실제로 다른 곳에서 아무리해도 그런 결과가 안나온다면 의혹이 생기게 됩니다. 그런 경우라 하더라도 바로 반박논문을 내기는 힘들지요. "누가 된다고 한 실험을 나는 아무리 해도 안되더라" 그렇게 논문낼 수는 거의 없습니다. 이런경우 우리는 대부분 그 실험실에 전화를 걸거나 이메일을 보내서, "당신 논문대로 해봤는데 잘 안된다. 혹시 우리가 무슨 실수를 한건지 알고싶다." 이렇게 문의합니다.

그러면, 혹시라도 자기 논문의 진위 여부에 대한 의혹이 생길까봐 적극적으로 협조해줍니다. "이렇게 해봐라, 아님 저렇게 해봐라, 그래도 안되면 연구원 한명을 우리 실험실로 보내라, 여기서 우리가 직접 보여줄께" 이런 반응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이런 반응 조차 안나온다면, 소문이 돌기 시작하거나, 아니면 학술지에 (논문이 아닌) 편지 형식의 의문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제 분야는 아니지만 상온핵융합 관련 논문이 이런식으로 진행되지 않았나요? (아시는 분 있으면 의견 바랍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논문의 경우, 재현성 여부로 판정하기 힘든게 있습니다. "복제양 돌리" 같은 경우가 대표적 예입니다.
좀 과장된 예를 말씀드리면, 실험동물에 10년간 꾸준히 약물을 투여해서 노화와 관련된 효과를 본 논문이 있는데, 의혹이 있으면 너도 똑같이 10년 실험해보고 안될때 그 때 이야기하라면 말이 안되지 않습니까? 복제양 돌리 데이터에 의문이 있다면, 돌리를 대상으로 테스트해봐야지, 너도 만들어봐라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불행히도 황교수님의 논문(특히 2005년)은 이 경우에 해당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분란도 없었겠지요. 의혹이 있으면 그 세포로 실험해봐야지, 따로 재현 실험해보고 논문으로 반박하라는 주장은 말이 안됩니다.

Q; 그렇다고해서, 아무 증거도 없이 "네 실험 가짜지? 다시 조사해보자, 가짜 아님 말구." 이렇게 주장하는 건 너무 무책임하지 않나? "너 빨갱이지? 아니라는 증거대봐"라는 것과 똑같은 고문 아닌가? 그리고, 대한민국 과학자 중에 자기 이름 걸고 황교수님 논문 가짜라고 증명한 사람 있나?

A; 대한민국 과학자 중에 자기 이름 걸고 황교수님 논문 오류를 주장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검증도 안해보고 오류를 주장한다면 과학자 아닌 것이 맞습니다. 문제는, "검증해 보기 전에는 오류를 증명할 수 없고, 오류를 증명하지 못하는 한 검증을 요구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검증 전에는 오류를 증명할 수 없으니, 검증을 통해 오류 유무를 확인하자"고 하는게 젊은 과학자들 주장입니다.

Q; 그렇다면, 재현해보는 것 만으로 증명이 안되는 논문은, "아무나", "아무런 증거도 없이", "너 가짜지? 아니란 걸 증명해봐!" 이렇게 요구할 수 있다는 건가? 말이 안되잖아.

A; 얼핏 생각하면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 이 분야에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 처럼, 논문 게재 과정에서 데이터 사실 유무 검증까지 이루어질 수는 없습니다. 실험하는 연구원이 교수 모르게 데이터 조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속이자고 마음만 먹으면 같은 실험실 교수까지 속이는 판에, 학술지나 심사위원이 완벽히 검증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데이터 검증 부분은 그냥 믿고 실어주되, 혹시라도 외부에서 그 논문 데이터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면, 그 연구자는 그 데이터의 진실성을 증명해야 할 의무를 가지는 방식으로 관례가 형성된 것입니다. 그 의혹이라는 것은 대개, 그 데이터를 믿고 후속 실험을 해보았는데 잘 안된다거나, 실험실 내부를 잘 아는 사람이 조작의 의혹을 제기하는 것 등이 다 포함됩니다.

과학자의 입장에서는 자기 실험의 데이터를 외부에서 검증한다고 하면, 기분 나빠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 의혹을 잠재워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개인이 일일이 다 나서서 증명하기도 힘들고, 그래봤자 또 안 믿어줄게 뻔하니까, 대부분의 경우에는 의혹이 제기되면, 대학 (또는 연구소) 차원의 위원회에서 검증이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검증이라고 하는 것은, 수년간에 걸쳐서 이루어진 그 복잡한 실험내용을 다 확실하게 재연하고 실험해 보는 수준까지 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연구자들의 실험 노트 (연구자들은 그래서 모든 실험에 대해서 노트와 함께 기록을 남길 의무가 있습니다.

혹시라도 나중에 누군가 그 실험을 진짜 한게 맞느냐라고 물으면 증명할 준비를 해 두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등을 확인해보고, 관련 사진, 검사 결과 원본 등 몇가지만 확인하면 대부분의 경우 진실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간단한 실험을 해 볼 수도 있습니다.

이번 같은 경우는 황교수님께서 200개 미만의 난자로 11개의 줄기세포주를 만드는 것을 다시 해보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기록해 놓은 증거가 있는가 살펴보고, 검사결과 원본을 보고, 그리고 만들어진 11개 세포주에 대한 DNA 검사 결과 (하루내지 이틀이면 충분히 나옵니다)만 살펴보면 해결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절차는, 연구자가 사기쳤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주기 위한 절차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Q; 하지만, 사이언스에서 재검증하면 안된다고 했다던데...

A; 사이언스에서 그렇게 이야기한 이메일이 있다면 한번 보고 싶습니다. 사이언스지에서도 "데이터에 접근 가능한 기관에서의 검증"을 긍정적으로 이야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자기 잡지 표지로 실린 논문에 하자가 발견될 경우, 기분이 좋지는 않겠지요. 사이언스지가 기분 나빠할까봐 다른 모든 과학계의 의혹에 침묵한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런 변명이야 말로 국제적 웃음거리입니다. 다시말해 연구자가 검증에 응하는게 이상한 일이 아니고, 그걸 거부하는게 이상한 일입니다.

Q; 연구자가 검증을 거부하는게 비난받을 일인가? 바빠서 그럴 수도 있고, 하다못해 옛날 기록이나 실험재료를 잃어버릴 수도 있잖아?

A; 그럴수도 있습니다. (저도 오래전 실험 결과 사진 같은 것 잃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최근 실험이나, 사이언스처럼 중요 잡지에 낸 논문이라면 대충 방치하다 잃어버릴 확률이 극히 희박하긴 하지만...) 그러나, 보통 형사재판의 경우 무죄 추정의 원칙에 의해서 혐의가 입증되기 전까지는 무죄로 간주됩니다만 (학술적인 내용에 무죄, 유죄의 용어가 들어가니까 좀 섬뜩하네요), 여긴 다릅니다 (왜 거기만 다르냐고 하면 위의 글 다시 읽어봐주시라고 밖에 못하겠습니다)

연구논문결과에 대해 의혹이 제기됐을 경우, 그에 대한 검증의무(burden of proof)는 논문저자가 지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아무리 그 실험을 성공했다는 심증이 많아도, 연구자가 연구노트, 원자료(raw data) 등으로 데이터 사실성에 대한 입증을 하지 못하면 논문 결과는 불신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한마디로, 성공했다는 증거가 없는 한 실패로 간주한다는 이야기 입니다.

Q; 만에 하나 논문에 하자가 있는 걸로 밝혀지면, 황교수님의 학자적 생명이 날아갈 수도 있는데,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최소한 무언가는 걸어야 공평하지 않나? 익명으로 이루어지는 제보는 증거능력이 없지 않나?

A; 과학자가 논문을 내는 행위는 자기 이름과 명예를 걸고 하는 것입니다. 영롱이에 대해서 어떤 소문이 돌든, 어떤 기업체에서 신기술을 개발했다고 하든 논문화 되기 전까지는 아무도 검증하라 마라 하지 않습니다.
황교수님은 사이언스지에 논문을 내시면서 공적인 영역으로 나서셨습니다. 논문이 사실이면 명예를 얻는 것이고, 거짓이 있으면 (거짓의 정도에 따라 작을 수도 있고 클 수도 있는) 타격을 입게됩니다. 즉 황교수님이 (학자의) 생명을 건 것은 사이언스지 게재에 대한 반대급부입니다. 거기에 대한 의혹에 왜 무언가를 걸어야 합니까?

"당신 논문에 쓴 이런 내용이나 데이터가 진짜요? 내가 직접 확인해보고 싶은데..."
"오케이, 그런 질문 하는 건 좋은데 만약 진짜로 확인되면 너 죽을 각오 되어 있어? 그런 각오 있으면 다시 물어봐, 그 정도 베팅할 자신 없으면 꺼지든지" 이게 더 공평한 것입니까? 과학 분야의 가장 기본 덕목 중 하나인 의심과 회의는, 완벽하다는 자신이 없으면 아예 꺼내지도 말아야 하는 것인가요?

Q; 아무리 그래도, 멀쩡한 논문 가지고 아무나 계속 검증해라 검증해라 그러면 어떻게 논문을 내겠나? 황교수님 논문이 검증대상이 된다는 근거가 무엇인가? 그리고, 처음 논문 나왔을 때 미리 이야기하지 왜 이제와서 하이에나 처럼 물어뜯나?

A; 돌리의 경우도 특별한 조작의 증거가 있어서 재검증하자고 한 것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재검증을 받아들여 통과한 바 있습니다.)

오마이뉴스에 보도된 대로 스탠포드 대학에서는 "과학적 부정이 일어났거나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반드시 해당 단과대학의 학장에 신고해야 하며, 학장은 즉각 예비조사를 시작하고 연구담당 학장에게 알려야 한다"라고 규정하면서 신고를 의무화까지하고 있습니다. 설마 과학적 부정에 대해 논문을 쓸 정도로 완벽하게 증명한 다음 의무적으로 나서라는 이야기일까요? 그 의무를 지키지 않으려면 [증명]만 안하고 있으면 되나요? 의혹의 제기에 증거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건 황교수님 논문 데이터가 가짜 같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증거는 아직 없습니다. 세포 사진이든, DNA fingerprint든 그것만으로 가짜라고 증명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의혹의 증거가 아니라 의혹의 정도입니다. 누가 직접 이메일로 항의를 하든, 익명으로 투서를 했든, 신문에 났든,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든 어느정도 의혹이 커지면, 그 의혹의 신빙성과 관계없이 검증에 응하시는 게 관례라는 것이지요. 그 의혹을 네가 먼저 발견못했으니 가만 있으라는 건 말이 안됩니다.

Bric의 한 게시판 글 일부를 그대로 인용해보겠습니다
"저는 황우석 교수님의 잘못인지 논문이 잘못인지 따지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황교수님의 침묵, 그 침묵이 여러 사람에게 상처를 줍니다."

Q; 그래도 학계에서 지금처럼 나서서 누구 검증하자고 한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결국 미운털 박힌 황교수 죽이기 아닌가?

A; 한때 K대 산부인과에서 세포 복제와 관한 논란이 일었을 때 (논문에 실린 내용도 아니고 언론에 발표한 내용 때문입니다)조사위원회가 결성된 적이 있고, 황교수님도 그 위원 중 한분이셨습니다. 그리고, 복제의 증거를 내어 놓지 못하는 K대 쪽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죠.

만약 대상이 황우석 교수님이 아니고, 다른 교수님이었다면 (황교수님 아니어도 셀, 사이언스, 네이처에 논문내신 분 꽤 있습니다)현재 수준의 의혹이 있을 때, 몇몇 학자들이 실명으로 (또는 익명으로) 의혹을 제기하고 조사 위원회가 만들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순서입니다. 하지만 이정도로 파문이 커진 의혹 사건이 그리 흔치 않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지금 서울대에서 이야기하는 건, 진작 외국처럼 과학진실성위원회가 상설기구로 자리잡고 있었으면, 이렇게 문제가 커지지 않았을거란 점에서 과학자들이 잘못한 것이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제대로 하자는 겁니다.

평상시에 황교수님에 대한 시기보다는 존경을 표시하던 젊은 과학자들이 더 주도적으로 나서는 이유가 뭘지 생각해보십시오. 현재 여기에 가장 적극적인 사람들은 대학원생입니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검증은 황교수님 죽이기가 아닙니다. 이정도 수준의 의혹에도 검증 안받으면 계속 이야기 나오고 신용 떨어지니, 제발 나서서 사실이라는 것 좀 입증하고, 만에 만에 하나 티끌만한 오류가 있다하더라도 정확히 그 만큼의 비판만 받으시면 되는 겁니다. 더이상 검증에 응하지 않는게 황교수님께서 국제 과학계에서 매장되는 계기가 됩니다.

Q; 결국 그렇게 알량한 진실을 밝혀서 뭐하겠다는 건가? 만에하나 검증결과 황교수 매장이라도 되면 살림살이 좋아지나? 결국 잘하면 연구비 부스러기 좀 더 떨어질지 모른다는 흑심아닌가? 아니면, 잘난척 하더니 꼴 좋다는 시기심이든지.

A; 만약 검증결과 황교수님 논문에 잘못된 점이 하나도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는 국가적 경사이고, 검증을 제기한 사람들에게도 그 공이 있지만, 사람들은 무고한 사람 모함했다고 검증 제기한 사람들 다 죽이려 할 겁니다. 책임지고 자폭하라고 하겠지요.

만약 논문에 잘못된 점이 발견되면? 우선 한국 과학계의 망신이고, 신뢰도가 추락하는 것도 큰일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검증하자고 한 사람들 칭찬해줄까요?


"그래, 결국 기어코 황박사님 흠집내서 기분좋냐? 만세라도 부르고 싶겠지? 하지만 황박사님께 갈 연구비가 네놈들 수중에 한푼이라도 갈거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내 세금이 생명과학 분야 연구비로 쓰여서 너희들에게 가는 건 죽어도 못본다. 황교수님 당한 만큼 너희도 당해봐라.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생명과학 연구비 줄이자고 할거고, 너희놈들 논문 나오면 다 검증하자고 투서할거다."

이런 반응 나오지 않을까요?

결국 검증결과가 어찌 나오든, 검증하자고 한 사람들은 죽일놈 될것이고, 서울대는 아마 지금 MBC 꼴 날 가능성이 큽니다. 서울대 보직 교수나 원로 교수님들이 과학진실성위원회 설치를 거부한다면, 아마 이런 논란을 겁내기 때문일 겁니다.

Q; 결국 손해볼 걸 알면서 왜 이러나? 그렇게 "진실"이 중요한가?


A; 검증을 하지 않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큰 손해이기 때문입니다.

어찌되었든, 지금은 어찌해도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는 lose-lose 게임 (윈-윈 게임의 반대말로 썼는데 이런말 있나요?)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최악이 아닌 차악을 찾을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지만, 최선의 결과는 검증을 하고, 그 결과 황교수님의 논문에 오류가 없거나, 있더라도 티끌만큼밖에 없었다고 밝혀지는 겁니다. 그렇게 되기를 두손모아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Q; 검증안하는게 무슨 큰 손해가 되는데?

A; 우리는 우리 선배들 보다 훨씬 좋은 여건에서 학문을 하고 있습니다.
과학계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주장이나 이론, 실험 결과가 얼마나 다른 사람에게 소통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소통되지 못하는 학문은 죽은 학문입니다.

논문의 신뢰성은 데이터가 다 결정한다고 하지만, 88올림픽, 삼성전자 반도체, 월드컵 4강 등을 배경으로 한국이라는 나라의 지명도와 신뢰성이 높아진 것은 (물론 황교수님의 업적도 큰 공헌을 했지요) 우리 학계의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소위 선진국에서는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 회의의 눈길을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똑같은 일이 중국에서 벌어졌다고 생각해보십시오.

1) 중국에서 네이처, 사이언스 급에 연달아 논문을 내는 과학자가 나와서 온 중국인이 영웅 취급을 한다.
2) 그런데 연구원 내부와 일부 학계에서 의혹이 제기되었다.
3) 외국에 있는 학자가 보기에도 일부는 의심할만한 일이고, 그 학자가 한번 검증에 응하기만 하면 다 해결될 일인데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핑계로 나서지 않는다.
4) 그리고 검증하자고 하는 학자나 언론은 중국인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여 죽여놓고, 관련대학이나 중국정부도 방관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볼 때, 의혹을 제기한 사람들을 보며 한심해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의혹을 뭉개는 사람들을 한심하게 보겠습니까?
의혹의 내용이 얼마나 신빙성 있나가 중요한게 아닙니다. 의혹에 대처하는 시스템이 얼마나 건강한가가 주된 관심입니다.

다소 무리가 되는 의혹에도 불구하고, 관련 대학과 학회에서 엄중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가혹하다 싶을 정도의 제재가 이루어진다면, 중국에서 웬만한 용기로는 어설픈 논문 못 쓰는구나 하는 인식이 심어지게 됩니다. 그 반대의 경우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설사 황교수님 논문에 일부의 하자가 있다 하더라도 황교수님이나 대한민국 과학이 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검증의 의무를 거부하는 사람이 과학자 대접을 받고 있고, 그 사회가 거기에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그건 그 사회가 과학을 할 능력이 없음을 만천하에 신고하는 것입니다.

황교수님의 논문에 잘못이 없는데 다른 이유 때문에 검증받지 않겠다면 그건 정말 어리석은 결정이고, 만약 일부라도 잘못이 있기 때문에 검증을 피하시는 것이라면, 황교수님 개인의 책임 회피를 위해서 후세 과학도들의 앞길을 막겠다는 행위입니다.

Q; 하지만 그 검증 과정도 만만치는 않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황박사님 팀 연구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혹시 조금만 더 두고 보다가 황교수님이 후속 논문으로 보란듯이 증명해서 검증받는 건 어떨까? 아님, 그냥 조금만 더 기다려주든지. 지금 아프신 분한테 너무하잖아?

A; "검증을 사이언스가 반대한다거나, 검증받는데 신경쓰느라 정작 중요한 일을 못하니, 검증 못받겠다. 후속 논문으로 증명하겠다"라는 주장이야 말로 황교수님에 대한 최대의 의혹입니다. 과학계에서는 이게 말이 안되는 걸 다 알거든요. 이게 말이 안되는 거라고 과학자들이 생각할거라는 것도 황박사님이 알고계실겁니다.

하지만, 좋습니다. 다 인정하더라도, 딱 하나만 제안하겠습니다. 11개든 3개든, 만들어진 배아줄기 세포주마다 일부분을 국가가 인정하는 공공기관에 위탁하고, 단 황교수님의 동의 없이는 아무도 그 세포주를 꺼내볼 수 없도록 안전장치를 만들어 놓은 다음, 실제 검증은 몇달쯤 지나서 하자고 하면 어떨까요? 실제 검증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의혹을 계속 받긴 하겠지만, 적어도 황교수님의 진실성만은 보여줄 수 있을 겁니다.

지금 일부에서는 몇개 줄기세포에 문제가 있다는게 나중에 발견되어서 그거 수습하려고 지금 새로 열심히 만들고 있고, 그 때까지 시간 벌기 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있습니다. (이건 정말 소문일 뿐이고 근거는 별로 없다고 생각됩니다만) 검증에 나서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의혹과 오해의 수준도 더 깊어질 것입니다.

제가 황교수님 입장에서 억울한 의혹을 받는다면, 과학계가 납득할만한 수준으로 그 의혹을 풀 방법은 무수히 많습니다. 그걸 하나도 하지 않고, 과학계에서 납득할 수 없는 변명만 계속하시는 것이 최대의 미스테리입니다.

Q; 마지막으로 추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솔직히 생물학계에서 황교수님의 몰락을 바라는 사람, (거의) 하나도 없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황교수님이 잘못이 밝혀지고 그게 좀 심각한 수준의 과오라면 저를 포함한 많은 생물학자들이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지금 몇분의 교수님들이 어찌되었든 수습해보려고 애쓰시는 것도 그런 생각때문입니다. (혹시라도 진짜 가짜면 어떡하나? 모르는게 약이지)

저 같은 경우도,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황교수님의 흠집이 밝혀지거나, 검증 후폭풍으로 생물학계가 여론 폭격을 받는 것은 당장 일어날 수 있는 손해이고, 검증을 피해서 생기는 한국과학계 신뢰도 추락은 지금 당장 실감이 안나는 일이니, 웬만하면 덮어두자고 주장하거나, 적어도 입다물고 가만히 있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습니다.

그런데 제 가슴을 후벼판 것은 Bric 게시판에서 본 이 글입니다.

"저희가 실명으로 나설수 없는 이유는 권위가 없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황교수님보다 잘났냐? 사이언스 내봤어? 연구 얼마나 했냐? 뭐 이런식입니다. 문제제기의 소리는 그냥 어영부영 묻히고 말겁니다. 저는 지금 미국에 있습니다, 여기서 보는 상황은 한국과 아주 다릅니다. 한국의 생물학계는 신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더 늦으면 회복불능이 될지 모릅니다.
권위를 가진, 일반인들도 인정해줄만한 과학인은 이제 교수님들밖에 없습니다. 교수님들의 침묵이 저희를 슬프게 합니다."

나중에 몇년 지난 다음 이 일이 어떻게 결말이 나든간에, 그때 너는 이 간절한 호소를 듣고 무슨 일을 했냐는 질문에, 그리고 나중에 분명히 나올 말 "가장 내용을 잘 알고 있는 선배 과학자들이 그때 뭐하고 있었나?"라는 질문에 너무 부끄러울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비겁하지만 익명으로라도 의견을 올려서 양심의 가책을 줄여보고자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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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5-12-10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분하게, 최대한 황우석 교수 입장도 봐줘 가면서 쓴 글로 보이네요.
지금 브릭이나 과갤 같은데 가보면 데이터 조작은 거의 기정사실인 듯.......
(그래도 거기 분들은 최대한 ~일 수도 있다 식으로 이야기 하시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