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받았습니다.

아침에 급하게 찍느라 책과 함께 찍는 다른 물건들(주로 인형)을 챙길 겨를이 없었습니다.

80년대 한때를 풍미했던 모 듀엣의 여자 멤버와 이름이 (성은 아니고) 같으시네요.

제가 지금까지 접한 여성 알라디너분들의 이름이 다들 정겹더군요. 흔히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이름이기도 하고요..

잘 읽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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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5-11-03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으로 하는 공부", 제 옆지기가 읽었는데요, 글을 참 잘 썼다고 그러더라구요. 지은이 약력도 참 군더더기 없이 명료하고 담백하지요. "동국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를 받았다. 몇 권의 책을 쓰거나 번역했다." 후후후. 흔히 광고를 위해 저자 약력을 되도록 길고 화려하는 게 쓰려는 것과 딴판이에요.

엔리꼬 2005-11-03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아이님... 님에 대한 답글을 쓰다가 길어지게 되어 페이퍼로 하나 쓰렵니다.. 호호 좋은 아이디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노부후사 2005-11-03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으로 하는 공부"의 밋밋한 표지는 화가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그림에서 이미지를 빌려왔다고 하더군요. 흐흐
http://www.fukuoka-art-museum.jp/jc/image/jc04/01/mark_rothko.jpg

클리오 2005-11-03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받으셨군요.... ^^ 저의 즐거움입니다...

엔리꼬 2005-11-03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피메테우스님... 오호 이런 것도 아시고.. 덕분에 잘 봤습니다.
클리오님.. 그런 즐거움을 매일 매일 경험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흐흐
 

<한겨레> 입사 평가위원의 “악역을 마치며”
[편지] 한겨레의 수습사원 선발 절차는 이렇게 진행되었습니다
권태호 기자
지난 10월26일치 <한겨레>에 16기 신입사원 합격자 발표가 실렸습니다. 취재·편집 6명, 한겨레21 1명, 사진 1명, 경영관리직 7명 등입니다.

<한겨레> 경제부 기자인 저는 지난 10월16~17일 이틀동안 16기 신입사원 선발 합숙평가 평가위원으로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이들과 함께 했습니다. 2003년에 이어 두번째입니다. 2년 전에 그러했던 것처럼, 선배들을 대신해 또한번 ‘합숙평가 후기’를 띄웁니다. 개인 프라이버시와 회사 보안과 관련된 사항은 밝히지 못함을 미리 양해바랍니다. 또 <한겨레> 합숙평가 포맷은 매년 조금씩 바뀝니다. 내년 합숙평가가 이와 똑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겨레>, 언론사 입사 희망자들 뿐 아니라 취업을 준비하는 모든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0. 1~2차 시험

<한겨레> 입사시험은 1차 필기(국어, 상식, 영어는 토익으로 대체), 2차 논문·작문, 3차 합숙평가와 임원 면접 등으로 진행됩니다. 이번 시험에는 기자직에만 1200여명이 지원했습니다. <한겨레>는 올해부터 지원서를 받을 때, 기획안을 제출하라고 했는데 이는 허수방지 목적이 컸습니다.

1차에선 합격자의 10배수를 뽑습니다. 모두 150명 정도 됩니다. 이들을 대상으로 2차 논문과 작문 시험을 치릅니다. 올해 논문 주제는 ‘헨리 조지의 토지공개념 사상을 중심으로 최근 부동산 정책에 대해 논하시오’, 작문 주제는 ‘침묵’이었습니다. 2차 시험에선 3배수를 뽑습니다. 그리고 3차는 1박2일 합숙면접입니다.

1차 합격자는 제로 베이스에서 2차 시험을, 2차 합격자 역시 제로 베이스에서 3차에 임하게 됩니다. 3차에 오른 수험생들은 모두 똑같은 출발선에 서 있었습니다.

합숙면접은 기자직과 경영관리직을 나눠 다른 프로그램으로 별도 진행됩니다. 저는 기자직 면접위원이었습니다. 저 말고도 다양한 직급의 면접위원들이 여러분입니다.

1. 자기소개(오전 9:30~11:00)

<한겨레> 합숙평가는 블라인드 테스트입니다. 출신지역·학교는 물론 본인 이름도 모른 채 진행됩니다. 수험생끼리도 ‘별명’으로 불립니다.

자기소개는 스스로 붙인 별명과 함께 자기를 PR하는 시간입니다. 이미 ‘한겨레 면접장에선 별명을 쓴다’는 게 많이 알려져 미리 준비해온 이들이 많더군요. 자기소개가 합격에 별 영향을 끼치진 않지만, 첫 출발을 순조롭게 하면, 자신감이 붙을 것 같습니다.

2. 피처 기사 취재 및 작성(11:30~오후 7:00)

우선 평가위원 중 한 명이 수험생들에게 ‘피처 기사’가 뭔지, 그리고 어떻게 써야 좋은 점수를 받는지 설명했습니다. 2년 전에 비춰볼 때, 훨씬 친절해졌습니다.

주제는 ‘청계천’이었습니다. 수험생들은 청계천에 나가 취재한 뒤, 수유리 아카데미로 돌아와 교실에 비치된 노트북에 기사를 쓰고, 이를 프린트해 제출했습니다. 취재일지와 나눠준 취재수첩도 함께 제출합니다. 오후 7시까지 제출하면 됩니다. 대부분 5시~5시30분께 복귀하더군요.

면접위원들은 수험생들을 내보낸 뒤, 직접 청계천으로 나가봤습니다. 수험생들이 겪을 현장감을 함께 느끼는 게 평가에 도움이 될 듯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첫번째 청계천 나들이였습니다. 면접위원들이 피처 기사에서 보려는 건 ‘매끄러운 글솜씨’가 아닙니다. 무엇을, 어떻게 보는가를 통해 그 사람의 시각, 기자로의 장래성 등을 알고자 하는 겁니다.

1)‘무엇을’ 쓸 것인가?

처음 청계천을 나간 저에게 다가온 청계천은 우선 마치 미로 또는 감옥처럼 느껴졌습니다. 좋기는 한데, 일단 들어서고 나니 도대체 출구가 어딘지 알 길이 없고, 한 번 바깥으로 나가려면 징검다리 개울을 건너야 하고, 게다가 계단은 왜 그리 좁게 만들어 놓았는지, 아이를 데리고 나오면 매우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징검다리 개울은 보기엔 좋은데 유모차를 옮기려면 땀을 삐질삐질 흘려야 하고. 화장실도, 식당도 없고.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습니다. 의문이 일었습니다. 왜 이렇게 불편하게 만들었을까, 하고 말입니다. 여기서부터 시작할 수 있겠죠?

처음 눈에 보인 것이 실제적 문제였다면, 두번째로 다가온 것은 다분히 정서적이고 한편으론 감상적인 부분이었습니다. 이미 여러차례 지적됐지만, 지금 만들어진 청계천은 사실상 거대한 인공수로입니다. 진짜 청계천은 우리 눈에 보이는 청계천 저 아래 어두컴컴한 곳에서 구정물을 머금은 채 끊어질듯 졸졸 흐르고 있겠죠. 문득 중학교 1학년 국어 시간에 배운 이은상씨의 편지글 ‘한눈없는 어머니’가 떠올랐습니다. 징검다리에 박아놓은 조명등도 왠지 인조인간처럼 섬뜩해 보였습니다. 자연미를 잃은 청계천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도 있겠죠?

세번째로 눈에 들어온 건 둘째번 이야기와 정반대로 ‘자연이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비록 청계천이 인공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는 하나, 오리떼들이 날아들고 드문드문 물고기들이 보이고, 물가로는 물풀들이 삐죽삐죽 고개를 내밀고, 무엇보다 청계천을 찾아간 그날, 중학교 1학년쯤 돼보이는 계집아이들이 종아리를 둥둥 걷고 흐르는 물 속에 들어가 장난치며 노는 모습 등을 보며, ‘이렇게들 좋아하는데, 그것이 굳이 자연천이 아니면 좀 어떤가’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태초의 자연 뿐 아니라, 사람이 일단 만들어 놓은 이 자연(청계천)이 앞으로 1년 뒤, 2년 뒤에는 또 어떻게 바뀔 것인지, 그속에서 사람들은 또 어떻게 이 자연을 누릴 것인가 하는 점이 궁금했습니다.

그 다음 네번째에야 청계천 바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과거 새까많게 찌든 매연 때와 베란다 바깥으로 속옷들이 나부꼈던 삼일 아파트 자리에 롯데캐슬이 올라서고 있더군요. 그러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종로5가 아래쪽으로는 온통 공구상들인데다 낮은 빌딩들 뿐인데, ‘사회적 다이니즘’이 작용하듯, 이곳도 새롭게 재편되지 않을까 하는 전망이었습니다. 청계천 주변 땅값이 올라가면, 임대료가 올라갈 것이고, 그만한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는 영세 상인들은 자연스럽게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 밖에 없을 것이고, 또 그 자리에는 그만한 임대료를 물고서도 수익모델을 찾는 업종들이 들어서겠죠. 1차로는 외식·오락업체들이 줄을 이을 것이고, 2차로는 주상복합 건물들이겠죠?

그 다음 문제는 고층화입니다. 땅값이 오르면, 세입자 뿐 아니라 4~5층짜리 빌딩 주인들도 바뀔 것입니다. 자본력을 지닌 새 주인들은 토지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 고층빌딩을 지을 것이고, 이때 고려대상이 되는 것은 정부 또는 지자체의 규제(고도제한 등)와 수익성이겠죠? 어쨌든 청계천 주변이 고층화가 되면, 훤히 뚫려 시원한 청계천 하늘이 조각조각 나는 건 아닌가하는 엉뚱한 우려도 같이 들었습니다.

자, 그럼 수험생 입장으로 돌아갑시다. 수험생들에게도 저와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상념들이 한꺼번에 밀어닥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걸 다 조금조금씩 쓸 순 없습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자기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주제 △남들이 덜 쓸 것 같은 주제를 잡으십시오. 조심해야 할 건 ‘다르게 쓰겠다’는 것에만 급급할 경우, 논리박약으로 글이 꼬일 수 있음을 염두에 두십시오.

첫번째 사안인 실제적 ‘불편’을 이야기해 봅시다. 이것은 현상이 널려 있습니다. 주변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면 됩니다. 상황을 세분화하면, 장애인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것의 문제점은 너무 흔해 식상하다는 겁니다. 그러니, 첫번째 사안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려면 시민들의 이야기보다 정책당국자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왜 이렇게 만들었느냐”를 꼬치꼬치 캐묻고, 관련 전문가 이야기도 함께 담아야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수험생들이 어차피 똑같은 이야기하기 마련인 시민 A, B, C의 이야기만 줄줄이 늘어놓고 “시민들이 이렇게 불편해 한다, 당국은 각성하라” 정도에서 그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정책당국자와 연결이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을 통해 최소한의 성과라도 끌어낸다면, 그 수험생은 높은 점수를 받을 것입니다. 이런 글을 쓸 때는 ‘내 글을 읽을 면접위원들’에게 초점을 맞추지 말고, ‘내일 신문에 이 기사가 실렸을 때의 독자 반응’을 염두에 두십시오. 장애인 이야기를 취재하면서 이런 생각을 할 지도 모릅니다. ‘약자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평가받지 않을까?’하고. 그러나 ‘장애인 불편하잖아’하고 일방적으로 윽박지르기보다 ‘계단을 좁게 만든 이유가 뭔가’라는 궁금증(호기심)을 스스로 가져야 합니다. 기자란 높은 곳에 앉은 판관이 아니라, 전달자로서의 역할이 더 큽니다. 그 궁금증을 풀어주면,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비판은 절로 됩니다. 예를 들어, 정책당국자와 관계자들을 취재해 ‘계단을 좁게 만든 이유는 청계천 경관을 더 장엄하고 수려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는 이야기를 끌어내면, 비판은 독자들이 하게 됩니다.

둘째 사안, ‘진짜 청계천’을 택했을 때를 한 번 봅시다. 첫번째 사안에 비해 조금 다른 시각이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사물의 현상이 아닌 이면을 본 것이니까요. 또 글쓰기 솜씨를 뽐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접근은 기사가 아닌 수필에 그칠 우려가 매우 큽니다. 수필은 자신의 감상만을 끄적일 뿐, 건설적 대안을 마련하기 힘듭니다. 그렇다고 현상황에서 ‘청계천을 걷어내고 자연하천을 제대로 복원하자’, 이런 주장을 할 순 없는 것 아닙니까? 결국 도입부에는 뭔가 있어 보이다, 결말이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감상적 접근을 하더라도 건설적 메시지가 담겨야 합니다.

셋째 사안, ‘자연이란’을 택할 경우를 봅시다. 개인적으론 둘째 사안보단 셋째 사안을 택하는 게 차라리 더 나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면에 접근하는 또다른 시각과 그를 뒷받침하는 현상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습니다. 시민들 반응, 당국 계획·입장, 그리고 향후 전망 등. 비판의 칼날은 첫번째 ‘불편’ 사안에 비해 조금 무뎌보일 진 모르나, 긍정적 글쓰기와 현장감을 두루 접목시킬 수 있습니다. <한겨레>는 ‘비판을 좋아하는 신문’이란 선입관에 빠져, 부족한 점·모자란 점·실수한 점만 보려고 눈을 부릅뜨면 종종 이런 부분을 빠뜨리게 됩니다.

넷째 ‘경제 또는 계급’ 사안을 택하는 것도 괜찮을 듯 합니다. 이는 공간에 대한 접근을 청계천이 아닌, 주변으로 확대하고, 청계천이 생태환경 뿐 아니라 경제환경 나아가 계급의 공간이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사회과학적으로도 재미있는 소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회’ 이야기가 아닌 ‘경제’ 이야기로 나아가려면 좀더 정교하고 구체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단순히 공구상 몇 명 취재하고, “청계천 복원돼 좋다고 하는데, 나는 여전히 살기 힘들고, 집세 올려달라고 해 걱정이다. 여기서 가면 어디로 가야하나”(한숨) 이런 식으로 쓰면, 최악입니다. 경제적으로 접근하려면 먼저 냉정해야 합니다. 그 다음, 구체적인 팩트, 수치 등을 챙겨야 합니다. 예를 들어, ‘현재 종로6가 공구상 임대료는 평당 얼마이고, 길가 쪽은 얼마, 길 안쪽은 얼마다. 그런데 청계천 복원으로 앞으로 종로 5~6가 임대료가 물길 주변 쪽은 종각~종로3가 수준으로 오른다는 것이 부동산업계 전망(업계 이야기를 뒷받침해)이다. 이 정도 임대료를 내고도 버틸려면 월수입이 얼마가 되어야 한다. 이런 월수입을 거둘 수 있는 곳은 이러이러한 업종 밖에 없다’ 이런 구체적인 수치들을 근거로 자신의 논거를 읽는 이에게 차분하게 하나씩하나씩 설득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메시지가 담겨야 합니다. ‘이 사람들 어려우니까 도와주자’는 식의 이야기는 정말 곤란합니다. 공구상이나 만물시장 등이 이곳을 떠나지 않아야 한다면, 왜 그러해야 하는 지 설명해줘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이대로 그냥 놔두면 청계천은 도심의 미사리가 되고 만다. 청계천 주변 문화를 다양화해야 한다. 그래서 필요하다면 서울시가 청계천의 문화·경제 지도라는 밑그림을 갖고 있어야 한다. 여기에 얼마간의 예산이 들더라도 그로 인해 시민들이 얻는 이점을 생각하면 이는 결코 낭비가 아닌, 투자 요소다’ 이렇게 논지를 풀어나가면 글을 전개하기가 훨씬 쉽겠죠? 그러나 어쨌든 ‘사회’ 문제가 아닌 ‘경제’ 문제를 짧은 시간에 다루는 것은 상당한 리스크를 안아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셋째나 넷째 식의 이야기를 쓴다면 더 높은 점수를 주었을 겁니다.

2) 어떻게 쓰나?

무엇을 쓰는가보다, 더 중요한 부분입니다.

- 저는 채점을 할 때, 먼저 ‘이 친구가 몇 명을 인터뷰했나, 그리고 인터뷰한 사람 중 몇 명의 이야기를 기사에 인용했나’를 가장 먼저 눈여겨 봤습니다. 기사를 잘 쓰고 안 쓰고는 그 다음입니다. 어차피 그 자리는 ‘기사를 잘 쓴 기자’를 뽑는 곳이 아니라, ‘좋은 기자가 될 자질을 지닌 사람’을 뽑는 곳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기사가 소설과 다른 점은 픽션이냐, 논픽션이냐 하는 점입니다. 그리고 수필과 다른 점은 객관과 주관의 차이입니다. 객관을 밑바탕에 깔기 위해선 사실(fact)에 대한 접근이 필수입니다. 그런데 사람과의 접촉은 없이, 그저 맨눈으로 휘휘 둘러보면서 자신이 느낀 감상이나 떠오른 생각들만으로 기사를 채우면 그 글이 아무리 유려하더라도 기사로서의 가치는 없습니다.

- 그 다음, 취재한 걸 다 쓰면 안 됩니다. 10을 취재하고 4~5를 쓰면 훌륭한 기사가 되지만, 10을 취재해서 10을 다 쓰면 중구난방, 중언부언이 되고, 5를 취재해서 5를 쓰면 헐거운 기사가 됩니다. 인터뷰한 사람을 다 적어넣으면 곤란하고, 멘트는 각각이 나름의 개별적 의미를 지닌 경우에 한해서만 기사에 실어야 합니다. 따라서 똑같은 인터뷰를 여기저기 계속 따는 것은 시간낭비입니다. 그래도 ‘내가 고생한 걸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면, 인터뷰 내역은 기사가 아닌, 함께 제출하는 취재일지에 적어넣으면 됩니다.

-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 마감시간입니다. 첫날 피처 기사에서 마감시간을 넘긴 수험생이 5명 정도 됐습니다. 아마도 ‘마감시간’을 두고 글쓰기를 해본 경험이 별로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약간의 감점을 하긴 했지만, 사실 합격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칠 정도까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이들은 모두 탈락했습니다. 이유는 마감을 넘길 정도로 쫓기면서 허겁지겁 쓴 기사였으니, 당연히 완결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고, 첫날 마감시간을 넘겼다는 것이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해 나머지 분야에서 ‘더 잘해야 한다’, ‘모험을 걸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신도 모르게 무리수를 두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상황이 더 꼬일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이날 마감시간을 넘긴 수험생 5명 중 3명이 다음날 인터뷰 기사에서 또 마감시간을 넘겼습니다. 아마도 그런 연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3) 수험생들의 피처기사

- 모두 23명이었습니다. 이중 7명이 ‘청계천의 불편’을 이야기했습니다. 장애인 이야기를 든 사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5명이 ‘청계천의 경제’를 이야기했습니다. 청계천의 양극화를 이야기하기도 했고, 어떤 이는 불쌍한(?) 공구상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명이 ‘청계천 복원하니, 시민들이 좋아한다’고 썼습니다. 이들 14명 중 2명 외에 다 탈락했습니다. 합격한 2명도 피처 기사가 아닌 다른 부분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 합격한 겁니다. 뻔한 이야기에 워낙 많이 나온 이야기였기에 임팩트가 약했습니다. 또 ‘경제’ 이야기는 촘촘하게 글을 엮지 못해 내용이 헐겁거나 논리적 허점이 단박에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경제’ 이야기를 당사자 말만 듣고, 수치적 논거없이 막연하게 “예전보다 못하다”, “무지하게 잘된다”는 식의 이야기만 나열하면 곤란합니다. 이들의 탈락 요인이 ‘주제 선정’ 때문은 아닙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불편’을 이야기하려면, ‘왜 이렇게 불편하게 만들었을까’하는 점에 주안점을 둬 그를 쫓아야 했고, ‘양극화’를 이야기하려면 더 촘촘하고 꼼꼼하게, 마치 핀셋으로 개구리를 해부하듯 접근해야 했습니다. ‘청계천 복원하니, 시민들이 좋아한다’고 쓰려면, ‘사람들이 좋아하더라’는 표피적 현상만 쓰면 곤란합니다. ‘왜 좋아하나, 앞으로도 좋아할 건가’ 등 늘 궁금증과 호기심을 갖고 접근해야 합니다.

- 심사위원들이 가장 주목했던 기사는 ‘삼일 고가도로와 교각 콘크리트 덩어리는 다 어디로 갔나’는 궁금증(호기심)에서 출발한 기사였습니다. 접근이 신선했습니다. 그러나 아쉬웠던 것은 이 기사는 마치 기사를 쓰다만 것 같았습니다. 이 수험생은 기본적으로 ‘그 폐기물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비판적 예단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취재를 하다보니, 92%가 재활용되고, 8%는 수도권 매립지로 보내져 제대로 잘 활용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러자 이 수험생은 그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그러다보니, 글은 ‘교각 어디로’에서 출발했다가 시 관계자 설명듣고 고개 끄덕인 뒤, 엉뚱하게 ‘청계천에 남겨진 교각같은 동대문운동장 노점상들’ 이야기처럼 샛길로 마구 빠집니다. 그래서 이 수험생은 결과적으론 피처 기사에서 그리 높은 점수를 받진 못했습니다. 꼭 잘못된 것만을 꼬집고 지적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데 말입니다. 92%가 재활용됐는데, 구체적으로 어디어디에 쓰여졌는 지 좀더 뒤쫓아가 독자들 궁금증을 풀어주고, 개발시대의 삼일고가도로가 재활용되는 데 의미부여를 하고, 다른 거대 교각이나 폐기물 등은 또 어떻게 재활용되고 있는지 등을 덧붙인다면 훌륭한 기사가 됐을텐데 많이 아쉬웠습니다.

- 주목을 끌었던 또다른 기사는 청계천에 온 도림천 주민들을 통해 ‘청계천 복원이 작은 동네 하천의 복원 등 지역하천 복원 운동으로 번지고 있다’는 사회변화를 포착한 기사였습니다. 이는 사례 1~2개만 더 찾아 잘만 포장하면 그대로 신문기사로 만들어도 훌륭한 기획기사가 될 것 같았습니다. 짧은 시간에 그렇게까지 하긴 힘들었을테고. 사회적 메시지가 도드라져 좋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 ‘노점상 불쌍하니, 서울시 대책 세워라’는 투의 기사는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거론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노점상 문제를 다루더라도 문화적 접근, 또는 노점상이 아닌 노점상을 이용하는 소비자의 관점에서 다룬 것들은 오히려 좋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즉 ‘노점상이 있으면 청계천 주변 문화가 더 풍부해질 수 있는 것 아닌가, 노점상이 있어야 청계천 데이트가 더 즐거울 수 있지 않은가’ 등입니다. 문제의식이 약하고, 주제가 가벼운 감은 있지만, 사물을 보는 다양성의 한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늘 눈에 핏발만 부릅뜨면 잘 보이지 않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 이밖에 내용적으로는 개성이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광고카피처럼 ‘청계천에는 3색3무1티가 있다’거나, ‘청계천의 사계’ 등 단어 하나에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다 담은, 일종의 형식미를 갖춘 기사들도 상대적으로 좋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젊은 부부, 어린이, 외국인노동자, 장애인 등을 각각 청계천의 봄·여름·가을·겨울에 비유해 하나의 이야기를 한 꼭지마다 담은 기사는 형식미가 지나쳐 좀 작의적인 냄새가 나기도 하고, 대학입시 논술 답안지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글에서 느껴지는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각과 진정성이 좋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3. 집단토론(오후 8:00~9:30)

- 이전에는 조별로 나눠 하나의 주제를 놓고 토론을 진행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겨레> 지원자들의 논점이 그리 극명하게 차이가 나지 않아 토론이 겉돌거나, 변별력이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 그래서 이번에는 주제별 토론이 아닌, 모의 편집회의를 벌였습니다. 조도 3개조로 나눠 참여인원을 7~8명으로 줄여 좀더 심도있는 토론이 되도록 했습니다. 당일날 아침 <한겨레신문> 편집국 회의자료를 주고, ‘1면 머리기사’, ‘정치·경제·사회면 머리기사’ 등에 대해 토론하도록 했습니다. 예상대로 각자의 생각을 이전의 주제별 토론에 비해 훨씬 다양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 이런 식의 토론에서 중요한 건 ‘내일 신문’이 모범답안이 아니라는 겁니다. 자신이 무엇을 주장하든(이것이 1면 머리가 되어야한다) 거기에 대한 뚜렷한 이유만 제대로 제시하고, 나아가 주변의 동료 수험생들을 설득시킬 수 있으면 됩니다.

- 힌트 하나만 드리자면, 연결·종합,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신경쓰라는 겁니다. 즉 단순히 나열된 항목 중 하나만 골라, ‘이걸 1면 머리로 올리자’는 것에 그치지 말고, ‘이것과 이것을 연결하고, 이렇게 꾸미면 어떨까’ 또는 ‘이것이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이런 건 왜 빠졌느냐’ 등을 지적할 줄 안다면 좋을 것입니다.

- 예를 들어, 이날 정치면에 단신처럼 ‘중부권 신당 창당’이 짤막하게 제목만 언급돼 있었는데, 한 수험생이 ‘이를 주요 기사로 올라있던 ‘10.26 재선거 점검’과 연결시켜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지역주의’라는 식으로 기사를 키우자고 제안했습니다.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또다른 수험생이 ‘그런 식의 신문만들기가 오히려 지역주의를 더 자극한다’며 반대했습니다. ‘더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 또 ‘천정배 법무장관 단독인터뷰’라는 부분에 대해 한 수험생은 “사표를 낸 김종빈 검찰총장 인터뷰는 왜 없느냐”고 지적했습니다. 면접위원이 일부러 제외시킨 부분인데, 잘 포착했습니다. 신문이란 늘 양쪽의 이야기를 다 듣고, 객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기본적인 균형감각을 갖췄다고 판단될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4. 친교의 시간(오후 9:30~새벽 1:00)

- 이미 널리 알려진 터인지, 예전보다 편하게 맞는 듯했습니다. 그저 선배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경쟁자로 만난 낯선 동료들과 우의도 다지는 기회로 삼으면 좋을 듯합니다. 그 사이 친해진 건지, 3명의 수험생이 농담처럼 “우리 다 뽑아주시고, 우린 월급 3분의 1만 받으면 안되나요?”라고 물어볼 때는 ‘쿡’하고 가슴이 메어왔습니다.

- 2차로 노래방에도 갔습니다. 면접위원들끼리 미리 약속을 했습니다. 일부 수험생들이 분위기에 젖어 ‘3차’를 가자고 하더라도, 응하지 말기로. 다음날에도 집중력이 요구되는 평가가 계속 되는데, 컨디션이 엉망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튿날>

5. 인터뷰와 사진 취재(오전 10시~낮 12:30)

- 이전에는 현장으로 내보내 스트레이트 기사를 써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역시 변별력이 떨어진다는 점이 지적돼, 이번에는 홍세화 선배를 내세워 모의 인터뷰를 했습니다. 수험생들에게 미리 알리지 않았기에 교실에 홍 선배가 들어서자 수험생들이 약간 놀라는 분위기였습니다. 홍 선배가 새책 출간기념 형태로 간단한 내용을 설명하고, 수험생들이 기자가 돼 질문을 하고, 홍 선배가 대답하는 형식이었습니다. 사진기자 수험생들은 기사 대신,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실제 기자회견과 거의 흡사하게 진행됐습니다.

- 평가를 제대로 하자면, 누가 어떤 질문을 하는가도 봐야겠지만, 이번 평가에선 질문내역보단 제출한 인터뷰 기사에만 초점을 맞췄습니다.

- 인터뷰 기사를 쓸 때, 가장 점수가 낮은 건 ‘진행순서대로 그대로 일문일답으로 쓰기’입니다. 일문일답으로 써도 괜찮으나, 그때도 흐름을 따라 써야 합니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먼저 쓰고, 조금씩 연관되는 것을 물 흐르듯 이어쓰면서(마치 둘만 앉아서 마주보고 이야기한 것처럼), 마지막에는 소감이나 전망 등을 이어쓰면 될 터입니다. 또 일문일답을 할 때는 질문과 답변을 모두 짧게 하는 게 좋습니다. 단순한 일문일답보다는 어차피 이 자리는 평가 자리니까, 인터뷰 내용을 새롭게 재편성해 자신의 글(기사)로 풀어쓰는 것입니다. 이게 일문일답보다 더 어렵기에 당연히 더 좋은 점수를 받는 건 당연합니다. 그리고 인터뷰 내용을 다 쓰려고 하면 안됩니다. 핵심 부분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사진기자직 수험생들에게는 홍세화 선배의 인터뷰가 시작 되기에 앞서 회사에서 미리 준비한 컬러슬라이드필름 2통씩을 나눠 주었습니다. 본인들이 합숙평가에 참가하며 미리 준비해 온 카메라에 필름을 넣고 난 뒤 홍세화선배 인터뷰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이것은 사진기의 여러 메커니즘 중 플래시를 사용해 실내 인물 촬영을 얼마나 잘 하는 지를 보려는 의도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사진기자가 되면 취재하는 사진 중 상당히 많은 부분을 플래시를 사용해 사진을 찍기 때문입니다.

-실내 인터뷰 사진 촬영을 마친 4명의 수험생들에게 다음 과제로 주어진 것은 수유리 4.19국립묘지 종합촬영이었습니다. 신문이 읽는 신문에서 보는 신문으로 전환되었고, 각 언론사마다 기획화보를 중요한 기사로 처리하는 시대적 분위기에 맞춘 것이었지요. "지금 여러분들에게 신문의 1개 면을 드릴 테니 수유리 국립 4.19묘지를 화보로 꾸밀 수 있도록 사진을 찍어 보시기 바랍니다." 라고 이야기 한 후 함께 동행한 평가위원이 화보 사진 취재시 유의할 점을 간단히 설명한 후 약 2시간 정도 자유롭게 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이렇게 촬영된 필름은 현상 후 사진부장과 사진부의 평가위원이 함께 면밀히 살펴보게 됩니다. 여기에서도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이 지금 현재 사진을 얼마나 잘 찍는 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진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지, 사진을 찍기 위해 대상에 어떻게 접근하는지 등이 더 중요한 평가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수험생들이 공통적으로 한 말은 4.19 묘역을 화보용으로 취재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주제였더라도 모두에게는 공평했다는 것입니다. 시위나 집회 현장에 가서 결정적인 한 장의 사진을 취재해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진기라는 네모 창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지 그 생각과 정체성이 보이는 사진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6. 평가위원 면접(오후 2시~6시)

- 마지막입니다. 면접에 들어가기 전, 면접위원들은 그때까지 수험생들이 쓴 피처·인터뷰 기사를 검토하고, 토론에 대한 점수도 각자 나름대로 매긴 상태입니다.

- 이때까진 면접위원들끼리 서로 의견교환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각자 머리 속에는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힌 상태입니다. 면접 전, 면접위원들끼리 약속했습니다. 블라인드 면접이긴 하나, 필요할 경우 나이와 전공 정도는 물어보도록 하자, 다만 선입관 배제를 위해 출신대학과 출신지역은 묻지 말자고.

- 2003년 면접에서 수험생의 약점을 쥐고 흔드는 악역을 맡았던 저는 처음 몇 명에 대해선 2003년과 비슷한 형태의 면접태도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무차별적 ‘압박’이 합격예상자나 탈락예상자의 색깔을 더 선명하게 드러냈던 측면은 있었던 데 반해 그 압박면접으로 인해 ‘안전권’ 합격자가 ‘탈락’되거나, ‘탈락 가능성이 높은 수험생’이 기사회생하는 역할은 적었던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래서 몇 명이 지난 뒤에는, 자연히 ‘탈락 예상자’에게는 질문을 잘 않게 되었습니다. 이는 다른 면접관들도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복기를 해본다면, 면접시간이 길면 길수록 합격가능성에 더욱 근접했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됐습니다. 면접위원들은 ‘이 친구가 지금까지는 성적이 좋은데, 내 판단이 제대로 된 것일까’라는 생각에 자꾸 질문을 내뱉고, 약점을 찌르기도 하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제가 참여한 평가와 면접 이후에도 또 다음단계에서의 면접과 평가도 진행되었고, 최종적으로 한겨레 새 식구가 될 후배이자 동료들이 정해졌습니다.

7. 불합격한 수험생들에게

2년 전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시험이라는 게 누구를 뽑아야 하고, 누구를 떨어뜨려야 하는 가혹한 제도입니다. 3차에까지 올라온 이들이라면, 누구를 뽑아도 무리가 없다는 게 평가위원 대부분의 공통된 의견이었습니다. 불합격한 몇 명에 대해선 평가위원들이 많이 아쉬워한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너무 상심치 마십시오. 어쩌면, 당신들은 치열했던 1박2일의 ‘한겨레 탈락’을 평생 울궈먹을 쓰린 추억거리로 얻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파야, 아름다운 법이니까요. <한겨레>와의 올해 ‘인연’은 여기까지였나 봅니다.

<한겨레>에도 실렸던 조선시대 화가 윤두서의 시조 한 수를 위로삼아 띄웁니다.

“옥에 흙이 묻어 길가에 바려시니/오는 이 가는 이 흙이라 하는고야/두어라 알 이 있을지니 흙인 듯이 있거라.”

8. 언론사 또는 취업준비생들에게

- 주제넘은 짓인 줄 알면서 감히 한 말씀만 드립니다.

- 취업난이 단군 이래 최악인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떡하겠습니까? 이 상황에서. 그 장벽을 스스로 넘던지, 아니면 아예 ‘블루오션’을 찾아 창업을 하던지. 나이들면 제 밥벌이는 해야하는 것 아닙니까?

- 합숙면접을 마치고, 우연히 언론사 준비생들의 다음카페에 들어가 본 적이 있습니다. 제가 준비를 할 때는 이런 카페가 없었기에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몇몇 글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카페지기에겐 미안하지만, ‘처음 준비할 때가 아니라면, (수험생이) 이곳에 들어와선 안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 힘들고 어려워서 그러겠지만, 자기연민 투의 글이 너무 많고, 또 그걸 보며 동병상련을 느끼며 의지하려는 이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연민’이란 구질구질한 감정은 속을 곪게 만듭니다. 기자나 PD직 지망생들은 감수성이 풍부한 이들이 많기에 쉽게 감정에 휘둘릴 수 있습니다. 그러지 마십시오. 우울할 시간에 책 한 자 더 보십시오.

- 언론사 시험과목인 국어, 영어(토익), 상식은 나중에 기자가 되었을 때 아무 도움 안 됩니다. 따라서 언론사 준비기간은 인생에서 그냥 버려지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겨우 10명도 안 뽑는 언론사 입장에서는 수많은 수험생들의 작문·논문을 일일이 체크할 시간도, 여유도 없습니다. 그러니 어떤 언론사는 서류전형을, 그리고 <한겨레>는 객관식 시험을 치르는 겁니다. 그러나 그런 평가가 전혀 무가치하다고는 생각지 않는 것이, 최소한 ‘성실성’에 대한 잣대는 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언론사 시험을 국어·영어·상식이 아니라 수학·과학으로 대체하더라도 합격자 결과는 비슷하게 나올 겁니다. 카페에서 몇몇 글을 읽어보고선, ‘아, 이 친구는 글도 잘 쓰고, 기자든 PD든 무엇을 하든 참 잘할텐데, 이렇게 하다간 아마 1차 시험 벽을 넘기 힘들 것 같다. 차라리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게 나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1차 시험’은 순전히 성실성으로 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실성’은 기자 또는 PD, 사회인의 기본조건입니다. ‘성실성’은 때론 ‘체제순응’과 혼동되긴 하나, 창의력, 비판의식 등도 성실성이 밑바탕되지 않는다면, 바람불면 날아갈 잘난척이나 하는 쭉정이나 마찬가지입니다.

- 대학입시나 국가고시도 마찬가지이지만, 장기간에 걸친 공부는 흔들리지 않는 ‘지속성’이 생명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주변환경(집안·연애·친구 등)이 깨끗해야 하고, 그 다음 생활이 단순해야 하고, 그리고 머릿속이 늘 맑아야 합니다. 최소한 수험기간 동안은 단순한 인간이 되십시오. 생활도, 생각도. 기계처럼 사십시오. 심지어 이성친구도 시간을 정해놓고 만나십시오. 1주일에 하루를 만나든, 매일 만나든. 그래야 수험기간을 단축시킵니다.

- 구체적으로 들어갑시다.

- 첫째, 일어나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 나아가 밥먹는 시간까지 일정하게 유지하십시오.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게 좋습니다.

- 둘째, 공부시간은 하루 10시간으로 일정하게 유지하십시오.(아침 9시부터 점심·저녁시간을 빼고 밤 9시 또는 10시까지 하면 됩니다)

- 셋째, 흐트러지면 안됩니다. 하루 10시간 공부를 한다고 할 때, 1주일을 그냥 놀면, 일요일을 빼고도 60시간의 공백이 생깁니다. 60시간의 공백을 메우려면 2달 이상을 하루에 1시간씩 더 공부해야 합니다. 한 달을 그냥 놀았다면, 그 해 시험은 포기하십시오.

- 넷째, 수험기간을 정하십시오. 가장 위험한 게 ‘될때까지 한다’는 겁니다. 무슨 결연한 의지를 보이는 것 같지만, 이는 반대로 긴장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입니다. <한겨레>를 포함해 일부 언론사들이 잇따라 ‘나이 철폐’를 표명했고, 그런 추세가 일반화될텐데, 명심할 것은 그런 구색 맞추기에 들러리가 되지 마십시오. 각 언론사들이 ‘나이 철폐’를 외치는 건 사회적 요구와 명분을 따른 것이긴 하나, 어차피 ‘나이 상한선’ 두지 않아도 나이 많은 사람이 들어오기 힘들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물론 1~2살 가량 더 많은 사람들을 구제하는 역할은 하겠지요. 너무 나이 들어 입사하면, 아직도 ‘나이 문화’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한국사회에서 신입사원으로 지내기도 그리 쉽진 않습니다. 그러니 ‘1년’ 또는 ‘2년’ 정도로 못박고, ‘최선을 다했는데도 언론사가 자신을 몰라주면 미련없이 떠난다’는 결의를 갖고 덤벼드십시오. 개인적으로 언론사 준비에 ‘2년’을 넘기는 건 인생낭비라 생각합니다.

- 다섯째, 신문은 종이신문으로 보십시오. PD 지망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제가 종이신문에 몸담고 있어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종이신문을 통해 그날의 여러 사건들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지를 익혀나가십시오. 사회를 보는 눈을 키우는 겁니다. 물론 고리타분한 기성 신문을 보면서 비판하십시오. ‘이렇게 중요한 뉴스를 구석에 처박다니, 늙은이들 같으니라구’ 하고 마음껏 조롱해도 좋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종이신문을 봐야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터넷으로 신문을 보면, 연예뉴스 등 선정적인 부문으로 빠져 1~2시간 ‘시간 도둑질’ 당하기 일쑤입니다. 말씀드렸죠? 하루 1시간 손해보면, 그를 벌충하기 위해 얼마를 애써야 하는지.

- 마지막으로, 반복되는 말입니다만, ‘자기연민’에 빠지지 마십시오. 기자든, PD든 ‘남을 사랑하는 연습’을 해야지, ‘자기 사랑’에 빠져 허우적대는 건 꼴불견입니다. 주제넘습니다만, 여러분들보다 몇 년 더 산 형으로서 감히 이야기하자면, ‘삶은 모 아니면 도’도 아니고, ‘아, 이젠 모든 게 끝났구나’ 하는 순간, 또다른 길이 한쪽 구석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억지로라도 조금만 ‘쿨’하십시오. 홍세화 선배가 경구로 삼는다는, 그람시의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라”는 말을 한 번 되뇌여 보십시오. 강하고 담대하십시오.

- 늘 건강하십시오. 꿈이 있을 때, 사람은 늙지 않는 것 같습니다.

2005. 11. 2(수) <한겨레> 권태호 올림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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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5-11-03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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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할 시간에 책 한 자 더 보십시오.
‘1차 시험’은 순전히 성실성으로 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실성’은 기자 또는 PD, 사회인의 기본조건입니다. ‘성실성’은 때론 ‘체제순응’과 혼동되긴 하나, 창의력, 비판의식 등도 성실성이 밑바탕되지 않는다면, 바람불면 날아갈 잘난척이나 하는 쭉정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최소한 수험기간 동안은 단순한 인간이 되십시오. 생활도, 생각도. 기계처럼 사십시오.
신문은 종이신문으로 보십시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그 아이를 진정으로 좋아했던 뚜렷한 이유는 모르겠다. 어렴풋이 생각나는 것은 '참 바르고 정이 많던 아이'라는 것. 그런 것 있지 않는가? 하나를 하더라도 이리저리 재고 또 재고, 이걸 하면 나에게 어떤 이익이 될까 머리부터 굴리고. 그 아이는 그렇지 않았다. 과감한 모습도 좋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친절히 대하는 것도 멋졌다.

남녀공학은 광역시 통틀어 2-3개 학교에 불과했던 암울했던 시절, 평범한 범생이라 여고생을 만나는 어떤 기회조차 없었던 고등학교 시절을 지나 대학에 입학한 나. 그렇지만 그 아이를 만나기 전까지 3년 동안 어느 누구에게 좋아한다는 고백조차 하지 못했다. 두 번 모두 짝사랑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지금도 친하게 만나는 내 동기와 후배에게 이미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나는 고백조차 하지 못한채 눈물을 머금고 뒤돌아서야 했다.

그 아이가 나타난 것은 그로부터 6개월은 지나서였다. 지금도 생각나는 92년 12월 겨울의 대천 엠티.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엠티 술파티 도중에 우리는 밖으로 몰래 나왔고, 그 추운 바다 앞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날 새벽, 일이 있어 일찍 가야 한다는 그 아이를 따라 서울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후 우리는 자연농원 눈썰매장에서 엉덩이도 다쳤고, 대한극장에서 엠마누엘 베아르의 '겨울의 심장'도 봤다. 그렇지만 사귀자는 나의 제안을 그 아이는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음 해 3월 나는 군대에 갈 예정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군대에 가야 할 사람이 어찌 그런 무모함으로 사귀자고 했는지는 모른다. 처음으로 온 기회를 놓치고 싶었지 않았겠지. 우리 사이는 어정쩡하게 이어졌고 3월이 다 되었다. 끊임없이 추파를 던졌지만 나의 제안에 쉽사리 입질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 형이 쓰러졌다. 무서운 병에 걸린 것이다. 서울에 입원을 해야 해서 나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 군대 입영을 6월 말로 연기했다. 형을 간호하고 잡일도 하면서 틈틈이 그 아이를 만났다. 어쩌면 형이 우리 둘 사이를 이어준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는 동안 점점 그 아이의 마음이 열리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지금도 생각나는 그 때 그 장소. 학교 안 연못 근처길을 함께 올라가면서 그는 사귀자는 내 제안을 받아들인다는 표현을 둘러 둘러했다. 5월 초였다. 

생생히 기억나는 날짜 5월 22일. 우리는 여느 때와 같이 사람들과 학교 앞에서 술을 마셨고, 나는 그날따라 과음을 한 모양이다. 꼴에 집까지 데려다준다면서 나와 중곡동 그 아이의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나는 쭈욱 잠을 잤다. 누가 누굴 데려다줘야 할지 모르는 상황.  게다가 나는 결국엔 사랑하는 사람을 옆에 두고 토악질을 시작했다. 어딘가 비닐이 있었을까? 그 악몽같은 시간이 지나고 차에서 내렸다. 골목길을 올라가면서 나는 찬 바람에 술기운이 어느정도 가셨나보다. 갑자기 키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나보다. 중곡동 어느 골목 안에서 토악질한지 30분도 안된 그 입으로 난 키스를 했고, 그 아이는 거부하지 않았다. 양치질은 커녕 물로 헹궈내지도 못한 그 입으로...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첫키스의 경험을 공유한 우리는 아니 나는 그 순간이 황홀했다. 그날 밤부터 나는 그 때의 어렴풋이 기억나는 상황을 마치 바둑에서 하는 것처럼 복기하고 또 복기했다. 그 때의 그 느낌을 최대한 간직하려고 애썼다.

한달 후 군대를 가기 위해 부산 집으로 떠나는 기차에 나란히 앉았다. 드디어 천안역. 그 아이는 서울로 다시 올라가기 위해 내렸고, 나는 잠시 따라 내렸다. 그리고 그 짧은 정차 시간동안 우리는 플랫폼 안내판 뒤에서 어느 멋진 흑백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포옹신과 키스신을 연출했다. 지금도 내 기억 속 카메라는 마치 드라마 질투 마지막 장면처럼 그날 서로를 껴안고 있는 우리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돌아간다. 우리가 떨어져 있을 그 오랜 시간동안 이 키스를 오래오래 맘 속에 간직할테야..  우리 둘은 그렇게 생각했었다.  두번째 키스였다.

그리고 나는 다시 부산으로 향했다.

 

 

 

방위였다.  아니 단기사병이었다.

4주 후부터는 맘만 먹으면 매일 매일 만날 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서울과 부산이란 물리적 거리와 차비라는 현실적 거리가 우리를 멀어지게 할 수도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끊임없이 주고 받은 편지, 그리고 편지.

2001년 기록적으로 눈이 많이 왔던 어느 겨울날. 우린 하얀 눈이 소복소복 쌓인 어느 성당에서 백년가약을 맺었다.  그리고, 지인들이 모인 성대한 피로연을 치뤘다. 난 또 쓰러졌다. 전문용어로 '장렬히 전사'했다. 서울의 모 호텔로 가는 도중 나는 또 토악질을 했고, 그 입으로 첫날 밤 첫 키스를 나눴다. 그게 끝이었다. 바로 꿈나라로 향했다. 우리의 첫날밤은 그리 허무하게 끝났다. 진짜다.

 

오늘도 그 아이에게 '실망이야' 란 소리를 들었다.  아직까지 나는 그 아이에게 좋은 남편이 되지 못하는 모양이다. 자고 있는 첫째 아이 촉촉한 기저귀를 갈아주는 순간 발사한다. 요가 다 젖었다. 젠장. 열심히 살아야겠다.

 

아참, 형은 힘든 투병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지금은 너무나 멀쩡하게 잘 산다. 결혼을 못해서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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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5-11-02 0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낭만적인 사랑얘기예요. 하지만 첫키스는 님만 황홀했을것 같은 느낌이.... ^^;;
두번째 키스가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다는...
2001년 그 눈많이 오던날 결혼하셨군요. 저는 그날 우리 예린이 임신해서 배가 엄청 불러가지고 주차장에서 우리집 서방이랑 차에 앉아 음악 틀어 놓고 눈구경했던 생각이 갑자기 나네요. 헤헤~~

검둥개 2005-11-02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의 댓글에 추천을 하고 싶어요. ㅋㅋㅋ

너무 감동적인 로맨스에요. ^ .^ 근데 왜 저는 이 장렬하게 전사했다는 문장에서 자지러지고 마는 것인가요!!! 아참, 겨울의 심장 그 영화 좋지 않던가요? 전 고등학교 때 친구랑 가서 봤는데. (재미 없다고 쿠사리 진짜 많이 먹었더라는 ㅎㅎㅎ)

줄리 2005-11-02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번째 키스 정말 영화같네요. 진짜가 더 영화같기도 한건가요. 남 첫키스 이야기들이 왜 이리 재밌는지 모르겠어요.^^

인터라겐 2005-11-02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남들은 다들 로맨스 소설 쓸 분량이 나오는데 .. 으 지는 너무 허무하게 결혼을 했구만요...

진주 2005-11-02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보기 드물게 순진한 총각이었고마난. 첫키스의 여인과 결혼했으니.
늘 행복하시길 바래요^^

엔리꼬 2005-11-02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맞아요.. 지금도 계속 투덜대요.. 내 첫 키스 돌리도~~ 를 외치고 있죠.. 그 눈많았던 나날들을 기억하시네요.. 반가워요.
검둥개님.. 뭐, 감동적일 것이야 없고요.. 겨울의 심장을 기억하시는 분이 또 계시니 반갑습니다. 한국에서 개봉된 이름은 다른 이름으로 알고 있는데. 아직도 포레의 시실리안느 바이올린 연주곡이 제 귓가에 들리는 듯 합니다. 다시 보고 싶은데 dvd가 안나오네요.
줄리님.. 음. 제 기억속에는 영화같을지 몰라도 실제로는 별로 안멋있었을 수도 있어요.. 원래 키스 이야기가 재밌지 않습니까? 하하
인터라겐님.. 님은 이제부터 추억을 켜켜이 쌓아 가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야 이제 애 낳고 로맨스와는 담을 쌓았으나 님은 아직 앞길이 창창하지 않습니껴?
진주누님.. 요즘 총각은 아니었죠. 이미 10년 전이니.. 이번에 삼성경제연구손가에서 발표한 자료 보니 저도 가까스로 X세대에 속하더군요. 그럼 신세대인가? 후후 행복 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urblue 2005-11-02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첫키스, 첫사랑과 결혼하신 분이 또 계시다니.
영화같은 얘기, 잘 읽었습니다. ^^

biseol 2005-11-02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주 서재 마실을 오지 않고,
기회가 되어도 플라시보님 서재에만 인사해오다
뒤늦게 서림님께도 인사드려요..(꾸벅)

서림님은 어찌하다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즐겨찾기를 한 것도 최근의 일.. ([펌] 한 초등교사의 일기를 보고 이전 글도 읽어 봐야겠다고 결정)

어느분의 댓글에 소리없이 즐겨찾기한 분이냐고 서림님이 물으셨을 때
혼자 움찔..ㅋ

바쁜 아침 시간인데 로맨스 소설 읽었을 때처럼
가슴이 간질간질해서 님께 첫 댓글을 남깁니다..

인사한답시고 말이 많아졌네요..
담에도 눈인사 찡긋! 하겠습니다.

조선인 2005-11-02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악질한 입으로.... -.-;;

가시장미 2005-11-02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곡동 어느 골목 안에서 토악질한지 30분도 안된 그 입으로 난 키스를 했고, 그 아이는 거부하지 않았다. -> 으하하하하. 역시. 로맨틱한 분위기는 절대 아니군요.
형. 약속대로 제대로 깨주셨네요. ^-^; 근데. 참....... 은근히..... 낭만적이네요.
그런데. 지금도 그분이랑 함께 하시다니. 너무 행복하시겠어요. 으흐흐흐. ^-^
첫키스의 추억을 되세기며 지금 함께 하는 사람을 새롭게 볼 수 있게 되었으니.
또 지금의 생활에 활력이 될 수 있었으니. 저에게 감사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ㅋㅋ
부탁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엔리꼬 2005-11-02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urblue님.. 이 것이 영화화된다면 흥행참패할 것입니다. 물론 얼마나 각색하느냐에 따라 누가 연출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저희 연애 그리 드라마틱하지 않아요..
스미레님.. 반갑습니다. 최근에 즐찾이 몇명 늘어 도대체 누구일까 어떻게 즐찾을 하게 되었을까 정말 궁금했었는데 커밍아웃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님의 서재는 너무 썰렁해요.. 많이 많이 채워주시길.. 가슴이 간질간질하다는 느낌이 어떤걸까요?
조선인님... 그게 사랑 아니겠습니까? 지금이라면 못해도 그때는...
가시장미님... 덕분에 저도 추억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첫사랑이랑 이어진다고 언제나 행복한 것은 아닐겁니다. 현재가 중요하니깐요.. 그리고 지금 첫사랑이 어디서 뭐하고 있을까? 추억에 잠기는 것도 나름 운치있지 않나요? ㅎㅎ

moonnight 2005-11-02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눈물이 글썽하게 만드는 이야기네요. 읽기 아까울 정도로 예뻐요. ^^ 마지막에 형님께서 지금 건강하시다는 멘트 남겨주셔서 반갑습니다. 다행이에요. ^^

oldhand 2005-11-02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열의 눈길도 두려워 하지 않고 자신있게 첫키스의 추억을 회고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셨군요. ^-^ 잘 읽었습니다. 흐흐.

icaru 2005-11-02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때 그 아이" 분이...지금의~ 우아!!
서림님의 글을 따라~ 92년 대천 엠티로 낭창낭창 걸어들어갔다가 나옵니다~ 우아~

울보 2005-11-02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너무 멋져요,정말 형님에게 잘해드려야 겠어요,,형님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운명이 빗기어갔을수도,,,,

엔리꼬 2005-11-02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oonnight님.. 눈물까지 글썽거리시다니.. 황송하옵니다.. 늦은 밤 잠깐동안 글 썼을 뿐인데... 읽기 아깝다는 말은 더더욱 황송하옵니다.
oldhand님.. 흐흐 특권은 가졌지요.. 그렇지만 그 아이 만나기 전에 흘려썼던 일기장은 집안 어느 곳 꼭꼭 숨겨진 곳에 있답니다.. 워낙 정리를 안하는 아이라 별로 들킬 염려가 없어요..
icaru님.. 요즘 대천은 너무 변했더구만요.. 예전만 해도 다들 민박집에 갔는데, 요즘은 콘도로 가는 경우도 많다죠? 얼마 전 둘이서 대천 다녀왔어요. 그 때를 회상하면서..
울보님.. 네. 그런데 연애질 하느라 사실 형님 많이 돌봐드린 것도 없어요.. 우리 엄니만 고생을 하셨지요. 형님 아니었으면 그때 헤어지고 더 멋진 여자 만났을 지 누가 압니까? (돌 날아오는 소리 슝슝~)

로드무비 2005-11-02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하십니다.
첫키스의 여인과 결혼, 어여쁜 아이 둘!^^

형님도 건강하시다니 정말 다행이고요.
(그런데 슬그머니... 형님 춘추가? 궁금.)

엔리꼬 2005-11-02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제가 생각해도 장합니다.. 형님의 춘추는 로드무비님보다 아래, 저보다 위 입니다. 대략 30대 중후반..

날개 2005-11-02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아이라고 부르시는 뉘앙스에서 애정이 폴폴 느껴지는군요..ㅎㅎ

마태우스 2005-11-02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버이트 후 키스...영화에만 있는 줄 알았어요^^ 서림님 멋져요!

엔리꼬 2005-11-02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폴폴 이란 단어가 한참 제 마음속에 머물다 갔어요.. 폴폴.. 그 아이라고 하기엔 덩치가 좀 큽니다. 쩝
마태우스님.. 많은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까? 과연 여자측에서도 이 키스를 멋졌다고 기억할까요? 과연?

sweetmagic 2005-11-04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햐~~~


뒷북 감동하고 있는 매직...

엔리꼬 2005-11-04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직님 반갑습니다. 누추한 제 서재에 다 방문해주시고.. 님도 연애 잘 하고 계시죠? 멀리 떨어져 있단 말 들었어요.. 이쁜 사랑 하세요~~
 

마종기 시인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아서 퍼왔어요. 저도 포함.
특히 마태우스님 참고하세요....
교수신문에서 퍼왔어요.. 교수신문 의외로 볼 것이 많아요.. 물론 중요한 데이터 담긴 기사는 정기구독회원만 볼 수 있게 한 점이 아쉽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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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생에게 시를 가르치는 마종기 연세대 교수
“환자와 대화할 줄 아는 의사가 나와야 한다”

2005년 10월 28일   이민선 기자 이메일 보내기


▲ © 이민선 기자

한국 사회에서 의사는 여전히 말 걸기 어려운 존재다. 날이 선 메스가 연상시키는 차가운 이미지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떠한 질문도 허락하지 않는 의사 자신의 태도 때문이다. 실력 있다고 소문난 의사일수록, 거대 병원 소속 의사일수록 더욱 그렇다.
2003년 연세대 의과대학은 본과 2학년 교과과정에 ‘문학과 의학’이라는 강좌를 개설했다. 의대생들에게 인문학적 감수성을 자극해 환자와 대화할 수 있는 의사를 길러내겠다는 의도에서였다. 당시 언론은 이러한 새로운 접근에 대해 호평을 쏟아냈다.
하지만 의학지식을 배우는 것만으로도 벅찬 의대생들에게 한가한(?) 문학을 이야기가 과연 통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던 게 사실. 게다가 단 한 번의 강좌, 그것도 선택과목인 이 수업이 어떤 효과가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연세대 의과대학 교수로 초빙돼, ‘문학과 의학’ 강좌를 담당하고 있는 마종기 교수를 만나 이러한 의문을 풀어봤다.

일시: 2005년 10월 26일
장소: 세종문화회관 
대담자: 이영수 교수신문 발행인

△2003년 연세대 의과대학에서 ‘문학과 의학’이란 수업이 개설되면서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3년째 진행된 강좌를 평가해 주십시오.
"‘문학과 의학’ 수업은 2003년 2학기에 개설돼 햇수로는 3년째 접어들었지만, 학기 수로는 3학기 째입니다. 매년 2학기에만 개설돼 14주 동안 1주일에 3시간씩 수업을 진행해왔죠. 올해부터는 학기제가 바뀌어서 10주 동안 1주일에 3시간 씩 하고 있습니다. 이번 학기는 벌써 종강돼서 지금은 시험 기간입니다. 8월부터 학기가 시작됐거든요.
‘문학과 의학’은 팀 티칭으로 진행됩니다. 저와 이병훈 박사, 정과리 교수 등 많은 교수들이 참여하고, 학생들의 흥미를 돋울 수 있도록 소설가 김훈 씨도 초빙해 강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호응도 굉장히 좋습니다. 병리학이나 생리학 공부를 해야 하는 와중에 시와 소설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손해 본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시를 썼다면서 저에게 보여주기도 합니다. 강의평가에서도 선택과목 중 2년 연속 1등을 차지했습니다."

△‘문학과 의학’ 수업이 의대생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지금 이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본과 2학년으로서 보통 대학이라면 4학년 졸업반 학생들입니다. 이 때에는 의대생들이 병리와 약리 공부로 밤을 지새우기 마련입니다.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이 학생들은 평생 숫자를 통해 사람을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피를 분석해 나온 수치를 갖고 병을 진단하고, 사람을 판단해야 합니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의학이 완전히 과학화되면서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만, 모든 것을 단순하게 과학적으로만 보게 되는 폐해가 생깁니다. 그런 점에서 ‘문학과 의학’이란 인문학 수업은 ‘과학적인 단어와 답안’에서 자유로워지는 기회일 뿐만 아니라, 사람을 보는 관점을 달리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또, 의대생들에게는 ‘인생의 배기가스’가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문학과 예술이 훌륭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의대생들은 의과대학을 졸업하기 위해 코피를 쏟으며 공부하면, 다시 4~8년의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이게 끝나면 매일 얼굴을 찡그리는 사람, 죽어가는 사람을 봐야 합니다. 사람이다 보니 신경질이 날 수밖에 없죠. 이러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술, 마약, 여자에 탐닉하는 경우가 생기고, 어떤 경우에는 헤어나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런 학생들이 약 30% 정도는 됩니다."

△개인적인 체험을 미루어봤을 때, 시는 선생님에게 어떤 의미였습니까.
"의과대학에 입학해서 인생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시체를 해부하면서 삶과 죽음, 인생의 목표 등을 고민하게 됐죠. 1966년 미국에 갔을 때는 외롭고 힘들어 모든 것을 집어 치우려고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시가 인생에 위로가 됐고, 시 없이는 살 수가 없는 것처럼 됐습니다. 이 때문에 당시 매년 여덟 편 정도의 시를 썼습니다."

△의대생들이 ‘과학’으로서의 의학 교육만을 받을 경우 어떤 폐해가 생겨납니까.
"1966년 미국에 갔을 때 굉장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의학이 발달했다는 미국에서 의사와 환자 간에 전혀 대화가 없었습니다. 종이 쪼가리를 들고 피검사 결과를 적고, 분석한 다음 환자에게 병명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환자가 배가 아프다고 해도 “너는 뇌가 잘못됐다”라고 말하고, 그래도 아프다고 하면 정신병자 취급을 하더군요. 그렇다보니 당시 미국 환자의 절반 이상이 정신병자일 정도였습니다.
최근 한국에 돌아와 보니 제가 미국에 갔을 때랑 똑같더군요. 소아과에 가면 환자 5명을 놓고 의사는 바퀴달린 의자에 앉아서 “3번 약, 5번 약”하며 지나가는 거예요. 환자들과 밀도 있는 대화 없이 말이죠. 또 인기 있는 어떤 의사는 하루에 3백 명의 환자를 본다고 목에 힘을 줍니다. 미국의 의사가 하루에 35명~40명 정도의 환자를 진찰하는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은 숫자죠.
물론 의료수가 등의 제도적인 원인도 있겠지만, 의과대학에서 너무 과학편중적인 의학교육을 함으로써 의대생들이 졸업해서 의학/돈 밖에 모르는 상황이 초래됐다고 봅니다. 또 의사 자신 역시 정신병원에 들어가고 마약에 탐닉하는 현상도 나타나는 것이고요."

▲ © 이민선 기자

△지금도 미국은 ‘과학’으로서의 의학교육 만이 강조되고 있습니까.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1980년대 중반부터 미국 의학계, 특히 존스홉킨스대, 하버드대에서부터 달라졌습니다. 사람을 대해야 하는 의대생들이 인간을 탐구하는 인문학을 배워야 한다는 반성이 일면서 커리큘럼이 바뀌었습니다. 1987년 존스홉킨스대에서 1년에 두 번 'Literature and Medicine'이 발간된 이후로 시카고대, 노스웨스턴대 등 웬만한 의과대학에서 비록 선택과목이지만 정식 문학 강의를 하게 됩니다. 지금은 미국 의과대학의 65~70%가 문학 강좌가 개설돼 있습니다.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시험인 MCAT(Medical College Admission Test)에서 영어와 작문 등 영문학의 비중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물리, 화학, 생물, 통계 등의 과목만을 테스트하던 분위기에서 80년대 중반 이후부터 영문학이 시험과목으로 들어가고 비중 역시 늘어가고 있습니다.
인터뷰에서도 의예과 나온 학생들보다는 영문학과와 미학과 출신을 더 선호합니다. MCAT 점수가 동일하면 이왕이면 문과계통 학생을 합격시킵니다. 4년 동안 강도 높은 의학교육을 받은 이후에는 이런 학생들이 환자와의 관계가 좋은 의사가 된다는 것입니다."

△연세대 의과대학에서 ‘문학과 의학’이 개설된 이후 다른 대학에서도 이와 같은 강좌를 만들겠다는 움직임은 없습니까.
"성균관대 등 각 대학에서 관심을 보입니다. 하지만 정작 특강 형식을 제외하고 정규 과목으로 들어가기가 힘든가 봐요. 예를 들어 서울대 의과대학도 최근 미국의 트렌드를 다 알고 있지만, 인문학 강좌를 정규 과목화하는 것이 제도적으로 조금 시간이 걸리는 것 같습니다."


※약력: 시인. 연세대 의과대학과 서울대 의과대학 대학원을 졸업한 후, 1966년 미국 오하이오 주 톨레도에서 방사선과 의사로 근무했다. 1959년 ‘현대문학’의 추천으로 등단했고, 시집으로는 ‘조용한 개선(凱旋)’, ‘두번째 겨울’, ‘변경(邊境)의 꽃’,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 ‘그 나라 하늘빛’, ‘이슬의 눈’,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 등이 있다. 한국문학작가상, 편운문학상, 이산문학상, 동서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연세대 의과대학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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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巖 2005-10-31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종기 시인을 보면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생각나죠. 이 글 퍼가도 되죠?

엔리꼬 2005-10-31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암님.. 수암님이 퍼가시겠다는데 대통령이라고 어찌 안될다 하겠습니까? 게다가 이건 퍼온 글이옵니다. 저야 영광이죠.

미미달 2005-10-31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앗 마종기교수님 ~
저도 퍼가도 될까요? +_+ 가져갈께요 ^^

노부후사 2005-10-31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과 의학" 강의록을 묶은 것이 이 책일 겁니다. 아마.


엔리꼬 2005-10-31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미달님.. 당연하죠.. 제가 펀 글이라 허락을 저한테 받을 필요는 없고, 다만 교수신문사에다가.. 전화번호는..
에피님... 아, 그렇군요. 역사 뿐만 아니라 의학과 문학까지 손길을.. ^^

진주 2005-11-01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안 퍼가고 다 읽고 가요~~
 

귀 옆 머리가 지저분해졌다. 난 옆머리, 뒷머리가 지저분해지면 빨리 미용실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 오늘은 어디서 깎지?

미용실에 가서 앉으면 항상 "괜찮게 적당히 깎아주세요"라는 표현을 쓴다. 누군가 내 삶을 평가한다면 적당주의라 할 수 있을만큼 무딘데다가, 취향에 있어서도 호오가 남들보다 그리 뚜렷하지는 않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머리를 자르는데도 좋게 말하자면 그다지 욕심이 없다. 미용실 가면 가끔 머리의 길이를 주문하기도 하지만 머리 스타일을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해본 경험은 내 일생에서 거의 없었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이 무디고 무딘 입맛(덕분에 옆지기는 편하다)은 최고의 맛집 요리조차 분간해낼 수 없을 정도이기에 웬만한 음식이면 다 맛있다고 평가한다. 그래서 사는게 편하다. 그렇지만 나도 나름대로 식당 고르는 기준이 있는데, 그것은 얼마나 음식에 성의가 보이는가다. 5천원짜리 음식에 달랑 단무지, 김치만 주는 그런 식당들을 보면 참을 수가 없다. 그래서 가격과 상관없이 그 가격에서 마련할 수 있는 최선의 식단을 제공해 주는 곳을 선호한다. 맛은 두 번째 기준이다.

내가 미용실 또는 미용사를 선호하는 기준은 얼마나 성의있게 나의 머리를 대하는가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남자의 머리를 정성껏 다듬는 것일까? 성의있는 머리손질의 기본은 바로 가위질의 횟수와 관련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성의없다고 생각하는 미용사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가위를 거의 혹은 단 한번도 사용하지 않고 기계로만 다듬는 사람들이다. 가위를 쓰는 방법이 서툴러서 그런지, 아니면 단 한번만 갖다 대도 지르르 잘도 자르는 기계의 효능을 과신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스타일의 미용사를 만난다면 돈의 액수와 상관없이 괜히 왔다는 생각이 절로 나게 마련이다. 또 한가지, 빗질 가위질 하면서 머리카락을 뜯는 사람을 만나면 무지하게 기분이 나빠진다. 어쩌다 한번 그러면 실수이거니 생각하지만 10여분 동안 몇 번씩 소리없는 작은 비명을 지르게 하는 미용사들에 좋은 감정이 생길 리 없다. 더군다나 이런 미용사들이 제공하는 이발 서비스의 시간은 대체로 무척이나 짧다.

그렇다면 정성껏 자르는 사람들은? 내 머리의 구석구석에 가위를 세밀하게 대는 사람들이다. 정성스런 손길에서 나오는 소리, 내 귓가에서 나지막히 들리는 그 사각거리는 가위소리는 마치 연인이 속삭이는 사랑스런 밀어를 듣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능숙한 빗질도 나를 만족시켜준다. 빗과 가위를 번갈아 사용하면서 내 뒷머리를 살며시 들어올리고 순식간에 잘라버리는 기술을 사용할 때 나는 약간의 스릴을 느낀다. 대부분 성의를 들여 정성껏 머리 자르는데 몰입하다보면 그 시간이 훌쩍 길어질 수도 있다. 이제 시작하는가 생각했는데 벌써 손에 쥐어져 있는 머리카락 터는 솔을 본다면 허망하기 그지없다.

머리 감은 후에도 끝까지 머리의 전체 모양을 보며 부분적으로 머리를 다듬어 주는 성의도 필요하다. 구레나룻과 같이 마무리가 필요한 부분에서마저 조그만 기계로 몇번 드르륵 해버리고 마는 미용사들과 피부가 벌겋게 다칠까봐 크림이나 분이라도 발라주며 아프지 않게 정확히 칼을 댈 줄 아는  미용사들의 정성의 차이는 실력 차이만큼이나 크다.

사실 가위를 잘 쓰는 것은 미용사들의 최소한의 기준 아닌가?  미용실이 여성 고객을 주로 상대하다보니 상대적으로 까다롭지 않은 남성들을 위한 기술을 연마하는데는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쓰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가위를 잘 쓴다는 점에서 남자 이발사들은 장인이라 불려도 될 것이다. 사각 사각 소리를 내면서 빠르게 움직이는 가위와 빗. 그렇지만 이발소가 요즘처럼 쇠퇴해 가는 것에는 이유가 있을 터.  젊은 감각에 떨어지는(떨어진다기보다 노력을 하지 않는) 이발소의 분위기, 끝난 뒤에도 내가 내 머리를 감아야 한다는 점(이것 때문에 이발소만 찾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또 잘못 찾아갔다가는 엉뚱한 서비스를 강요받을 것만 같은 시대적 불안감이 나의 발길을 떠나게 한다.

지금 실토하지만, 남자 미용사가 깎아주는 건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낀다. 특히나 머리를 감겨주는 것은 더더욱 그러하다. 간혹 여성들이 미용실에서 남자 미용사(혹은 시다바리)가 우악스런 손으로 머리를 감겨줄 때 스릴을 느낀다고 적은 글들을 보곤 하는데, 난 역시 남자라 힘세고 거친 손길보다는 부드럽고 세심한 여성의 손길이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좋아한다. 가위손 같은 멋진 미용사라면 또 모를까? 근육질의 남성이 무방비상태로 뒤로 누워 있는 나의 머리를 힘차게 세탁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이발소의 대안으로 최근 급성장한 "퍼런 구락부"와 같은 남성전용 미용실 브랜드는 사실 최악의 조합을 선택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만다. 쥐가 내 머리를 뜯어먹는 것처럼 고문당하는 듯한 '실력없는 미용사들의 처절한 손질'과 '머리도 안감겨주는 첨단 이발소 시스템'이 바로 최악의 만남인 것이다. 돈 아끼려 선택했다가 그 돈마저 아까워서 몇 번이나 슬퍼했다.

나에게 있어 머리 손질은 남들 보기에 좋고 깨끗해지기 위해서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한 달에 한 번 머리 손질을 받는 그 짧은 시간은 내 몸의 일부를 타인에게 맡기는 유일한 시간이고(옆지기가 안마도 안해준다. 흑흑), 그 시간만큼은 내 몸이 소중히 다뤄진다는 느낌을 받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부드러운 손길의 어루만짐에 대한 로망도 없다고는 말 못한다.

겉만 번지르르해진 요즘 미용실들. 겉옷을 걸 수 있는 옷장도 있고 언제나 뽑아 먹을 수 있는 각종 차들도 준비되어 있으며 비듬이나 탈모에 대한 과도한 조언을 해주기도 하지만, 당황스럴 정도로 짧은 시간동안 몇 번 드르륵 해버리고 끝내고 마는 그런 미용실들. 그러면서 최소 만원 이상을 받는다. 내 머리 손질 값을 멋지구리구리한 인테리어 보는 것으로 보상받을 생각은 없다. (그리고, 왜 미용실에 남자 컷트 비용은 안써놓는거야. 입구에 가격표를 떡하니 써놓아야 발길을 돌릴 것 아닌가?)

몇 년 전, 지금은 없어진 학교 앞의 한 미용실에서 무려 30분 가까이 내 머리 붙잡고 이리 살짝 저리 살짝 돌려가면서 정성껏 다듬어주던 미용실 언니의 손길이 아직도 느껴지는 듯하다. 아무렇게나 머리를 자르고 나면 가끔씩 그 미용실이 그리워진다. 그리고 난 아직까지 마음에 드는 단골 미용실을 만들지 못했다.

 

* 참고로, 경북 어느 지방에서는 머리를 자른다는 표현대신 '머리를 끊는다'는 표현을 쓴다고 한다. "얘! 진영아, 오늘 우리 머리 끊으러 가자."  타지인들이 들으면 등골이 오싹해질지도 모르겠다.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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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5-10-31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또 서재지붕 개량 공사인줄 알았습니다..^^;;

엔리꼬 2005-10-31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럼 제목을 손봐야겠군요..

날개 2005-10-31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 이건 진짜 로망이군요..^^*
(글구..제가 머리 끊는다는 표현을 쓰는 지방 출신입니다....ㅎㅎ)

야클 2005-10-31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저도 남정네가 제몸이나 머리에 손 대면 싫어요.
2. 머리를 오린다는 표현도 있어요. ^^

노부후사 2005-10-31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옆에서 성가시게 가위 돌리는 사람 매우 싫어합니다.

노부후사 2005-10-31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는 제가 남긴 댓글 보고 오신 줄 알았는뎁쇼.

깍두기 2005-10-31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저는 남자가 머리 잘라주어도 좋던데....(당연한 건가요?^^)

클리오 2005-10-31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세한 손길의 로망~~ ^^ 그리고 책, 오늘 주문 넣었습니다...

moonnight 2005-10-31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미용실에서 가위로 다듬어줄 때가 참 좋아요. 사각사각하는 섬세한 소리가 내 머리카락을 참 소중히 여긴다는 기분이 들게 만드는 듯 해요. 기계로 끝을 잘라낼 때는 기분이 나빠지지요. 따꼼따꼼 불안불안 ㅠㅠ

엔리꼬 2005-10-31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제 친구과 봉화 출신인데 그런 표현을 쓴다고 하더군요.. 친구 실명 등장.. 날개님 구수한 사투리도 듣고 싶어요.
야클님.. 님도 그렇군요.. 반갑습니다. 그렇다고 아무 여자나 슬쩍 만지는 것도 싫어하죠? 오리다니.. 머리카락으로 장난치면 오리는것이 되겠지요?
에피님.. 제가 예전에 봤을 때도 머리가 짧으셨던 기억이... 저와 비슷하게 별로 머리에 신경 안쓰시는 편?
깍두기님.. 이름 다시 돌아오셨네요.. 저는 남자가 머리 잘라주어야 좋던데, 가 아니라는 점에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극렬히 드러난답니다.. 여성은 여성이 잘라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데(대부분 여자 미용사라 그럴지도 모르지만, 꼭 그렇지는 않은듯) 남자는 남자가 머리를 만져주면 싫어하더라고요..
클리오님... 손도 섬세하고 이쁘면 더 좋지요.. 흐흐 책 감사합니다. 잘 보겠습니다. 2차 이벤트도 참여해야 하는데, 주제가 너무나 방대하죠? ㅎㅎ
moonnight님. 달빛 아래 나이트 간지도 오래되었어요.. 그 사각사각 가위소리는 저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는 것인가봐요.. 특히나 부분부분에 따라 다른 가위를 쓴다면 금상첨화겠죠... 아, 가위 바꿔쓰는 것은 글에 못넣었군.. 지금이라도 추가할까보다..


노부후사 2005-10-31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보셨어요. '전혀' 신경 안 써요. ㅋㅋ

icaru 2005-10-31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정말 맛이라는 것은 아주 탁월하지 않는 한 거기서 거기고...중요한 것은 성의랄까 서비스인 거 같아요...그나저나...머리같이 끊으러 가는 '진영'은 따님이신가요? ~

가시장미 2005-10-31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항상 개성있는 스타일을 추구하는지라. '적당히'라는 표현은 잘 안써요.
그래서 참 손님으로는 피곤한 타입이죠. ^-^; ㅋㅋ 근데. 남자들은 왜 미용실에 가요?
이발소가 요즘 너무 안보여서 그런가? 여자가 머리 감겨주면 기분이 어때요? -_-a 궁금

엔리꼬 2005-10-31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icaru님.. 그렇죠? 저도 성의를 중요시해요... 앗, 진영은 실제로 저 용어를 쓰는 제 동기여자애 이름입니다.
가시장미님... 대부분의 여자들이 스타일을 추구하지 않나요? 그리고, 이발소에 왜 안가는지는 본문에 3가지 이유로 자세히 써있으니 '일독'하시기 바래요.. ^^ 그리고 이발소는 머리 안감겨줘서 싫다, 그리고 특히나 남자가 머리감겨주면 싫다라고 썼으니 한마디로 여자가 감겨줘야 좋다..는 것이지요 뭐.. ㅎㅎ 너무 직설적인가?

진주 2005-11-02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할머니는 "머리 끊커라"라고 발음하셨답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