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 쓰지 마라, 공부만 해." 어머니의 말이 모든 것을 정리해준다. 강압적이지만 안심이 되는 말. 하지만 내가 12년 동안 선생님에게서 듣고 또 들었던, 헌신과 희생을 자극하는 그 말들은 분명 내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몸은 불결한 것이고 재능은 죄악이다. 기도는 근엄하지 않지만, 성녀들의 이야기, 고초를 당하고 사자들에게 먹잇감으로 던져지고, 채찍질당한, 흰 어린 양이라는 뜻의 아녜스, 비슷한 시나리오의 블랑딘*, 심장 한가운데 칼이 박힌 마리아 고레티**, 그리고 잔 다르크, 잔 다르크 이야기에 나는 교실에서 울기까지 했다. - P76

노력을 하고 희생을 해도 예견된 행복은 채워지지 않는다. 나는 나의 파렴치한 행동, 예를 들면 좋은 점수를 받으며 느끼는 기쁨, 보지 말아야할 것을 보는 즐거움, 어머니에게서 사탕을 훔치는 즐거움 같은 것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조심한다. 하지만 내 타고난 장난기, 나의 조심성 부족은 어떻게 해도 숨길 수 없다. 공책에 얼룩을 묻혀놓고, 식탁에서 공부했다는 말을 어찌 감히 할 수 있겠는가. 바느질 천에 묻은 얼룩진 손가락 자국들 "청결은 영혼을 비춰주는 거울입니다, 여러분!" 내 본모습이 드러난다. 흠집, 골치 아픈 단어. 흠잡을 데 없는 무결점 마리아. 어떻게 난폭함과 욕망 같은,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은폐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 P78

나는, 나를 숨기는 편이 나를 위해서 더 낫다고 느낀다. 이런 태도가 나를 구해주리라고 믿었고, 그래서 나는 욕망과 짓궂음, 견고한 어두운 측면을 내 안 깊숙이 숨기며 나를 보호했다. 마찬가지 방어 반응이었겠지만, 나는 성모마리아가 나에게 출현할지 모른다는 어리석은 두려움에 가득 차 있었다. 성모가 출현하면 내가 성녀가 돼야만 할 텐데, 나는 전혀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나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파파야를 먹고 젓가락으로 밥을 먹고, 내 ‘그것’을 사용해보고 싶었고, 의사나 교사가 되고 싶었다. 그들의 설교에서, 나는 몇몇 부분은 기억하고 나머지는 잊어버린다.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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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에서
이승우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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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외부인, 우리 안의 외부인


10년 전에 나온 “지상의 노래”와 약간은 겹쳐오는 이미지가 있다. 반복된 소재와 어느 정도의 클리쉐가 있지만 여운이 깊은, 오랜만에 소설다운 소설을 만났다. 교과서적이랄지 서사와 문장이 한구석도 치밀하지 않은 데가 없다. 당연한 것이지만, 첨자와 오탈자 없이 깔끔한 편집/교열도 마음에 든다.
2018년 5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잡지 연재 후 코로나 점령기 동안 고치는 시간이 오래 걸린 셈이라며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고 한다. 작가의 말에서 저자는 “의식의 표출이 절제되고 이야기가 조금 튀어 나온 것 같은 변화가 감지된다. 그 공정이 수월하지만은 않았으니 내용과 잘 어울렸으면 좋겠다”고 쓴다.
이야기에 일부 영감을 주었을, 지금도 세계 어딘가를 자전거로 떠돌고 있을 임송학 님도 어떤 분인지 궁금해 찾아보았다.

https://m.blog.naver.com/cafeoki/220799684093

어떤 진실은 말이 아니라 말을 안에 끌어안은채, 안에 끌어안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하는 행동을 통해 더 잘 드러난다. 그럴 때 드러나는 것은 드러내지 않은 말이다. - P279

사람이 이렇게 외롭게 내버려진 채 잊힐 수 있는가? 황선호는 무거운 질문 앞에 자기를 세웠다. 그가 살던 도시와 이 도시 상의 물리적인 거리를 변명으로 앞세우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그는 죽은 자의 외로움은 순전히 산 자에 의해 비롯되는 것, 그러므로 산 자의 죄라는 생각을 했다. 살아 있는 동안 사람은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디서든 살 수 있다. 낯선 곳에 있으면 낯설고 이상한 곳에 있으면 이상하지만, 살아 있는 동안은 낯설고 이상한 선택을 스스로 할 수 있다. 그러나 죽은 다음에 낯설고 이상한 곳에 있는 것은 이상하다. 그것은 그가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낯섦과 이상함이 아니라, 그것은 외로움이다. 말할 수 없이 무거운, 견딜 수 없는, 더할 수 없이 철저하고 처절한, 절대적인 외로움. 이 외로움을 이길 외로움은 없다. - P300

‘외부인‘은 그런 외지인들에게 이들이 새롭게 붙인 이름입니다.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을 뜻하는 외지인이나 외국인이라는 단어가 있는데도 굳이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바깥에 있는 사람, 소속이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으려는 의도입니다.
‘외부인’은, 그들에게 꼬리표를 붙여 자기들과 구별하기 원하는 이들에 의해 규정된 이름입니다.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은 손님이니까, 손님으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외부인, 소속이 없는, 바깥에 있는 사람은 존중과 배려의 대상에서 배제해도 되는 사람, 경계해야 하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출신과 성향과 목적과 관습, 즉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손님이 아니기 때문에 안에 있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고 누리는 것이 당연한 무언가를 빼앗아갈 것이고, 내부를 더럽힐 것이고 마침내 혼란에 빠뜨릴 거라는 식으로 근거 없는 불안을 퍼뜨리고 있습니다. - P311

《외부인들》은 류의 첫 소설이다. 그가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듯, 이 소설의 대부분은 실제 있었던 일에 근거하고 있다. 그는 이름이나 지명까지 그대로 사용했다. "나는 거의 가공하지 않았습니다. 내 어쭙잖은 상상력이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이들의 그 생생한 경험을 훼손하지 않을까 조심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책에 나오는 개들의 활약에 대한 삽화 역시 꾸며낸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꾸밈없이 쓰려고 해도 그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독자가 있을까. - P325

"나는 그 도시에 없는 사람이에요. 벌써부터 그랬지만 지금은 더욱 그래요. 여기 있기 때문이지요. 나는 앞으로도 여기 있는 사람이기를 원해요. 친구들의 친구가 되기를 원해요." 황선호는 보보체리나무 밑에서 그 말을 했다. 그 말을 할 때 나무는 불어오는 바람을 맞아 가볍게 흔들렸다. 황선호가 끝내 이름을 기억해내지 못한 그의 옛 동료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상한 기운에 압도당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P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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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2-10-27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읽으셨네요?
전 사두기만 하고~^^
저는 개인적으로 이승우 작가님은 한국을 대표하는 남성 작가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종종 하곤 하거든요.
하루키 작가도 늘 문학상 후보에 오르시던데 그렇다면 이승우 작가님도 만만치 않은 후보가 되실 수 있으실텐데? 그런 상상을 하곤 합니다^^

프레이야 2022-10-27 21:25   좋아요 1 | URL
흡입될거예요. 결말은 예상되는 이야기이고 어찌 보면 많이 해온 이야기이지만 빨려들어갑니다. 노벨상 수상 상상이 현실이 될 수도요. 교과서적이라 할 수 있는 소설가 같아요. 이국에서,도 정말 그렇습니다. 생각해 볼 점도 많고 사유를 전개하는 문장도 좋고요. 오랜만에 읽었네요. 그동안 작품들 많던데 찾아읽을 것 같아요. ^^

희선 2022-10-28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내용뿐 아니라 다른 것도 마음에 드셨군요 저는 책 볼 때 그런 거 별로 마음 안 쓰는군요 아니 오탈자는 없기를 바라기는 합니다 어떤 때 그런 거 많은 책을 다른 사람한테 줄 때면, 제가 미안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희선

프레이야 2022-10-28 08:50   좋아요 0 | URL
그렇죠. ^^ 그냥 읽다보면 눈이 들어오니까요. 이게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띄어쓰기도 정확하면 금상첨화다 싶어요. 대부분이 당연히 그렇지만요.
 

광야. 만나. 자연주의자들의 개더링.
완전한 자유와 평화. 친구들의 집.

거주지가 아니고 통과해 가야 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보보는 광야와 같다고 할 수 있었다. 환경이 열악하다고 불평하지 않는 까닭이 그 때문일 것이다. 더 좋은환경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어차피 거주지가 아니니까 견딜 수 있다. 이곳에서는 어떻게든 연명하면서 통과하기만 하면 되니까. 열악한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의 이상한 평안함도 그런 인식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아마도 현실의 비참함을 이기기 위해 그런 인식을 만들고 부추기고 키웠는지 모른다. 그런 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P200

촛불이 일렁이며 기묘한 그림을 벽에 그렸다. 노래가 합창이 되고 좁은 실내가 공연장이 되는 데에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누구인가 그때까지 의자에 앉아 있던 황선호의 손을 붙잡고 일으켜 세웠다. 그도 엉겁결에 일어나 사람들 속에 섞여 춤을 추었다. 알 수 없는 감정의 격랑이 마음속에서 일어났다. 이건 무얼까, 가슴속을 뜨겁게 만드는 이것은 무엇일까.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태평한 걸까. 이 사람들이 왜 이렇게 친근하게 여겨지는 것일까. 음악은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다. 밤이 깊었는데도 노래와 춤은 멈추지 않았다. - P205

형제라는 호칭은 외부 사람들에게 배타적이고, 내부적으로도 형과 아우에게 주어진 태생적인 힘의 불균형으로 인해 시기와 다툼과 분쟁이 발생할 소지를 품고 있지만 친구는 그렇지 않다고 교수는 말했다. 그는 온 인류가 친구가 되는 완전한 세상에 대한 포부를 자주 피력했다.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 위에 있지 않고 다른 사람 아래 있지 않다. 친구는 옆에, 같이, 더불어 있는 사람에게 옆에, 같이, 더불어 있는 사람이 부르는 이름이다. 인간이 가진 어떤 조건도, 예컨대 피부색이든 생김새든 몸무게든 성이든 종교든 재산이든 지능이든 나이든 취향이든 차별의 구실이 되지 않는다. 그는 모두가 친구가 되는 세상을 지향했다. 그는 모든 사람을 친구로 불렀고 자기도 친구로 불리기를 원했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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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로 쓰기 - 김훈 산문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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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6. 연필로 쓰기 / 김훈 / 문학동네(2019)
381-467쪽 17,18,19,20파일 낭독녹음
전체완료



오늘 점자도서관 가는 길에는 라디오에서 박주원의 슬픔의 파에스타,가 흘러 나왔다. 오래전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에서 박주원 공연 본 거 생각나 좋았다 그냥. 도서관냥이들 갖다줄 습식캔을 까먹을까 봐 어제 한 박스 미리 현관에 내놓았다. 주차하고 보니 저쪽에 한 녀석 앉아서 나를 빤히 보고 있다. 갈색 치즈냥이다. 어쩐지 추워보인다. 가까이 가면 달아날까봐 조금 거리를 두고 폰카메라로 줌인.

습식캔을 상자째 남자직원에게 드렸더니 사료칸에 쟁여두며 한 마리가 얼마전 새끼냥이들을 낳아 좀 예민하다며 씨익 웃는다. 보고 싶지만 참고, 커피 한 잔 들고 녹음실에 들어가 네 시간 연속 달렸다. 오늘은 이 책을 마치고 다음주에 다른 책 하고 싶어서 중간에 화장실 갈 시간도 넘겨버렸다.


오늘 낭독 부분에서 유독 만난 반가운 것들

1. 좋아하는 시, 백석 “국수”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스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평양냉면 먹으러 가야겠다.


2. 113년 전 오늘(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한 거사


# 열차는 이토가 대련에서 하얼빈으로 온 철도를 거꾸로 달려서 하얼빈에서 대련으로 향했다. 안중근은 이틀째 자지 못했다. 몸이 열차의 리듬에 감겨서 졸음이 쏟아졌으나 잠은 오지 않았다. 가 본 적 없는 대련이 안중근의 마음에 떠올랐다.
…… 이토의 나라는 대련을 쳐부수어서 차지했고 대련을 발판으로 하얼빈으로 진출했다. 하얼빈역 플랫폼은 내가 이토를 쏘기에 알맞은 자리고 이토가 죽기에 알맞은 자리다.
…… 나는 이토가 온 철도를 거슬러 가고 있다. 대련은 이토의 세상이다. 대련은 내가 말하기에 편안한 자리이고 내가 죽기에도 알맞은 자리다.
- 김훈, 하얼빈(2022), 194쪽



3. 송년회
열심히 일하고 총알도 피해 살아왔지만 꼰대라떼라는 소리나 듣기 십상인 대한민국 일흔살 남자들의 시시껄렁한 송년회 이야기가 마지막 장이다. 왠지 웃픈 장면을 상상하며 김훈 식의 썰렁한 유머에 피식 웃었다. 또 한 해가 간다.

하얼빈역은 동청철도와 만주철도 여순지선의 교차점이다. 하얼빈역은 안중근이 이토를 쏘아 죽이기에 가장 걸맞은 시대적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고, 이토 또한 총 맞아 죽기에 나쁘지 않은 장소였다. 나는 이토가 잠자다가 침실에서 당하거나, 기생집에서 놀다가 당하거나, 자신을 배반한 부하에게 당한 쪽보다는 동청철도 하얼빈역에서 실탄 7발만을 지닌 조선 청년에게 당한 죽음이 그의 명예에 다소 기여한 바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안중근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기차를 타고 서쪽으로 왔고, 이토는 여순에서 기차를 타고 북쪽으로 왔다. 둘은 하얼빈에서 부딪쳤는데, 동서와 남북이 만나는 이 교차로의 개방성은 안중근의 거사를 암살이 아니라 공개처형으로 격상시켰고, 이 철도의 침략성은 이토의 제국주의적 야망과 안중근 거사의 당위를 그 철도의 노선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교차점이 안중근의 사격 위치였고 이토의 죽음의 자리였다. 1909년 10월 26일 아침의 하얼빈역 사진 속에서 검은 객차와 레일은 지금도 쇠비린내를 풍긴다. 길들은 싱싱하다. - P415

종합상사 주재원 하던 친구가 어디서 구했는지 달력을 한 개씩 나누어주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잔을 들어서 또 한잔씩 마셨다. 총무가 회비를 걷었다. 다들 3만 원씩 냈다.
저녁 6시에 시작했는데, 오래 버티지 못했다. 8시가 넘으니까 다들 마누라한테서 전화받고, 9시에 흩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어둠 속에서 가슴이 뻥 뚫린 듯이 허전했다.
당신들은 이 송년회가 후지고 허접하다고 생각하겠지. 나 역시 그러하다. 그러나 덧없는 것으로 덧없는 것을 위로하면서, 나는 견딜 만했다. 후져서 편안했다. 내년의 송년회도 오늘과 같을 것이다. 해마다 해가 간다. - P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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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0-26 2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의 애증하는 김훈작가 ㅠ.ㅠ 근데 정말 문장은 너무 좋아요. ㅎㅎ
드디어 낭독 완료하셨군요. 4시간씩 낭독 녹음이 가능한가요? 계속 낭랑한 목소리를 유지해야 하잖아요. 이게 또 그냥 말하는거랑 다르더라구요.
다음 책은 또 어떤 책을 녹음하실지도 궁금해지네요.

프레이야 2022-10-26 22:31   좋아요 1 | URL
애증 ㅠ 뭔가 낭독하기에 문장이 쉽지 않은데 하고는 싶은 문장이라 입술 버벅거려 되돌아가서 다시 자주 그랬네요. 파주 저쪽에 대한 글도 좋은데 기행 에세이 “풍경과 상처”를 다시 보고 싶어지더라고요. 목보다 꼼짝 않고 있었더니 어깨가 뜨아 굳어져서ㅎㅎ 다음 도서는 두구두구 ~ 찜! 신간입니다.

희선 2022-10-27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월 26일은 10, 26으로만 알았는데, 지금 생각하니 자세히 몰랐나 봅니다 찾아보니 나오는군요 해는 달라도 10월 26일에 여러 일이 있었네요 113년 전에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쏜 날이군요 명량대첩도 일어난 날이에요 1920년 청산리 전투도 있네요

네 시간이나 녹음하시다니, 쉬지 않고 해도 목 괜찮으신지... 많이 추워지면 고양이는 어디에서 지낼지, 어딘가 따듯한 곳에서 지내겠지요 먹을 게 아주 없지 않아 다행이네요


희선

프레이야 2022-10-27 11:00   좋아요 1 | URL
따끈한 차 마셔가면서 해요^^
그날이 명량에 청산리에 그렇군요.
잊지 못할 날입니다 ^^

기억의집 2022-10-27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하얼빈 시작 했습니다~ 저도 어제 검색하다가 10,26이 안중근과 관련된 날이라 이 날을 안중근의 날로 저장하려고요. 저도 길고양이 밥주는데.. 날이 추워져서 그런지 사료가 줄지 않네요… 요 맘때 고양이들이 가장 힘든 시기 같아요!!

프레이야 2022-10-27 14:06   좋아요 0 | URL
에구 추워 보였어요. ㅠ 하얼빈 조만간 기억님의 시원한 리뷰 기대됩니다. ^^
저는 아직 하얼빈 리뷰를 못 쓰겠어요.

그레이스 2022-10-27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백석 시 좋죠!
그분들의 송년회^^ ... 재미있네요!

프레이야 2022-10-27 10:58   좋아요 0 | URL
김훈은 구질구질한 걸 잘 쓰는 것 같아요^^

책읽는나무 2022-10-27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시면 흩어지는 송년회!!!
엄마들의 모임과 좀 비슷해 보입니다??ㅋㅋㅋ
재밌네요. 김훈 작가님 의외로 유머스럽지 않아 보이지만, 유머러스한 듯 합니다.
지난 번 김중혁 작가님이 김훈 작가님 집에 놀러갔는데 지우개로 열심히 연필로 쓴 글을 지우고 계시더래요.
김중혁 작가님이 ˝에이. 그러게 첨부터 잘 쓰시지?˝ 했다는 거에요.ㅋㅋㅋ
저는 까마득한 후배가 그런 농담을 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김훈 작가님 진정한 아재이신 듯 합니다.^^

프레이야 2022-10-27 15:11   좋아요 1 | URL
여섯시 만나 여덟시부터 마누라들 전화가 오더라는 대목에서 넘 웃겨가지고요 ㅎㅎ 그 나이에 뭘 그래 남표니한테 전화로 들어오라고 그러는지. 일흔 넘은 남표니가 어디서 주접떨고 길 잃을까봐 구러는지 ㅋㅋ 아무튼 넘 웃기는 송년회였어요. 노래 부르러도 안 가고 말이죠. 김중혁 작가도 좋아요. 여전히 연필로 꾹꾹 눌러쓰고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쓰는 김훈 작가 ^^ 인터뷰 보면 은근 유머러스한 면이 있어요. 예전에 춤****님 생각나요. 김훈 작가 완전 애정하셔서 ^^

서니데이 2022-10-27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뉴스에서 안중근 의사 관련 소식이 있었어요.
올해 하얼빈이 나왔고 이 책이 수년 전 출간된 것을 생각하면 장편소설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 같아요.
잘읽었습니다. 프레이야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프레이야 2022-10-27 17:24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어제 저녁 뉴스에서도 봤어요. 113년전 그날^^ 안중근을 오래오래 마음에 두고 있었다고 해요 소설로 쓰고자. 고심했을 것 같아요. 쉽게 쓸 수 없는 사람이고 그런 일이라.

2022-10-31 0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0-27 2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반부터 흡입력과 사유의 깊이에 다시 놀란다.
이승우! “신성과 순수에 대한 두려움과 떨림”

나는 그런 존재와 같다. 저 세계를 빠져나왔고, 그러니까 저 세계의 존재자가 아니고 그렇지만 이 세계에는 등기되지 않고 떠돈다.
그러니까 이 세계의 존재자 역시 아니다. 나는 헤카테,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연결하는 문을 지키는 신에게 임시로 소속된 자이다. 헤카테는 교차로, 문턱, 건널목을 지배한다고 알려져 있다. 나는 교차로와 문턱과 건널목에서 서성이는 자이다. 교차로와 문턱과 건널목은 거주지가 아니다. 그러니까 나는 거주자가 아니다. 교차로와 문턱과 건널목은 이곳도 아니고 저곳도 아니다. 그러니까 나는 없는 사람으로 있고, 살지 않는 사람으로 산다. - P55

그것은 그 도시에서의 정착의 여로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삶이 불안정할 때 삶의 뿔안정함을 토로하는 글은 길고 글쓰기는 잦다. 삶이 안정할 때 삶의 안정함을 토로하는 글은 짧고 글쓰기는 드문드문하다. 첫날 쓴 그의 글에는 비장한 기운이 흐르는데, 보보라는낯선 도시에 대한 기대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도 그럴것이 그는 이곳에 살기 위해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이곳에 나타난 사람이 아니라 (그곳에서) 사라진 사람이었다.
어떤 글은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기 운명에 대해 하는 예언이 되기도 한다. 무언가를 쓰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그는 아마 그것을 몰랐을 것이다. - P56

진동하는 악취의 중요한 원인 제공자인 이 배설물들은 자동차나 자전거의 바퀴, 그리고 사람의 신발에 붙어서 형체를 바꿔가며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 개들은 거리를 어슬렁거리고, 사람들은 개들과 함께 어슬렁거린다. 개들은 왜 이렇게 많은 걸까. 사람보다 많고 사람보다 의젓하다. 개들은 사람을 힐끗거리며 어슬렁거리고 사람들은 개들을 힐끗거리지 않고 어슬렁거린다. 개들은 배설을 가려서 하지 않고(가려서한다면 개가 아니지!), 사람은 개들의 배설물을 괘념치 않는다. 도시는 악취로 정복된다. 쏘고 베고 찌르는 것만 무기가 아니다. - P72

발밑의 현실이 하늘의 추상을 이긴다. 중요한 것보다 시급한 것을 먼저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치이다. 가스레인지에 올려놓은 냄비 속의 음식이 타고 있을 때는 가스불부터 꺼야 하고 화장실이 급할 때는 화장실부터 가야 한다. 시급한 일이 있으면 중요한 일은 미뤄진다. 시급한 일이 끊이지 않으면 중요한 일은 영원히 미뤄지고 끝내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 P90

순수는 보임으로써 더러워진다. 눈에 보임으로써 순수는 더러워지지만, 순수를 봄으로써, 즉 순수를 오염시킴으로써 눈은 화를 입는다. 그런데 순수를 보는 순간 눈은 화를 입어 보는 기능을 상실하므로 순수는 결코 더러워지는 법이 없다. 순수를 오염시킬 수 있는 것은 시선이지만, 시선이 가닿기 전에 눈이 먼저 상하기 때문에 순수는 오염되지 않는다. 순수는 오염되지 않지만 눈은 순수를 본(보려고 한) 대가로 오염된다. 순수를 보는 시선은 덫과 같다. 이 덫에 걸리는 자는 덫을 놓은 자이다. 말하자면 눈은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소유하려 탐욕의 시선을 구사한 데 대한 화, 일종의 형벌이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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