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에서
이승우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 안의 외부인, 우리 안의 외부인


10년 전에 나온 “지상의 노래”와 약간은 겹쳐오는 이미지가 있다. 반복된 소재와 어느 정도의 클리쉐가 있지만 여운이 깊은, 오랜만에 소설다운 소설을 만났다. 교과서적이랄지 서사와 문장이 한구석도 치밀하지 않은 데가 없다. 당연한 것이지만, 첨자와 오탈자 없이 깔끔한 편집/교열도 마음에 든다.
2018년 5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잡지 연재 후 코로나 점령기 동안 고치는 시간이 오래 걸린 셈이라며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고 한다. 작가의 말에서 저자는 “의식의 표출이 절제되고 이야기가 조금 튀어 나온 것 같은 변화가 감지된다. 그 공정이 수월하지만은 않았으니 내용과 잘 어울렸으면 좋겠다”고 쓴다.
이야기에 일부 영감을 주었을, 지금도 세계 어딘가를 자전거로 떠돌고 있을 임송학 님도 어떤 분인지 궁금해 찾아보았다.

https://m.blog.naver.com/cafeoki/220799684093

어떤 진실은 말이 아니라 말을 안에 끌어안은채, 안에 끌어안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하는 행동을 통해 더 잘 드러난다. 그럴 때 드러나는 것은 드러내지 않은 말이다. - P279

사람이 이렇게 외롭게 내버려진 채 잊힐 수 있는가? 황선호는 무거운 질문 앞에 자기를 세웠다. 그가 살던 도시와 이 도시 상의 물리적인 거리를 변명으로 앞세우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그는 죽은 자의 외로움은 순전히 산 자에 의해 비롯되는 것, 그러므로 산 자의 죄라는 생각을 했다. 살아 있는 동안 사람은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디서든 살 수 있다. 낯선 곳에 있으면 낯설고 이상한 곳에 있으면 이상하지만, 살아 있는 동안은 낯설고 이상한 선택을 스스로 할 수 있다. 그러나 죽은 다음에 낯설고 이상한 곳에 있는 것은 이상하다. 그것은 그가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낯섦과 이상함이 아니라, 그것은 외로움이다. 말할 수 없이 무거운, 견딜 수 없는, 더할 수 없이 철저하고 처절한, 절대적인 외로움. 이 외로움을 이길 외로움은 없다. - P300

‘외부인‘은 그런 외지인들에게 이들이 새롭게 붙인 이름입니다.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을 뜻하는 외지인이나 외국인이라는 단어가 있는데도 굳이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바깥에 있는 사람, 소속이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으려는 의도입니다.
‘외부인’은, 그들에게 꼬리표를 붙여 자기들과 구별하기 원하는 이들에 의해 규정된 이름입니다.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은 손님이니까, 손님으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외부인, 소속이 없는, 바깥에 있는 사람은 존중과 배려의 대상에서 배제해도 되는 사람, 경계해야 하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출신과 성향과 목적과 관습, 즉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손님이 아니기 때문에 안에 있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고 누리는 것이 당연한 무언가를 빼앗아갈 것이고, 내부를 더럽힐 것이고 마침내 혼란에 빠뜨릴 거라는 식으로 근거 없는 불안을 퍼뜨리고 있습니다. - P311

《외부인들》은 류의 첫 소설이다. 그가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듯, 이 소설의 대부분은 실제 있었던 일에 근거하고 있다. 그는 이름이나 지명까지 그대로 사용했다. "나는 거의 가공하지 않았습니다. 내 어쭙잖은 상상력이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이들의 그 생생한 경험을 훼손하지 않을까 조심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책에 나오는 개들의 활약에 대한 삽화 역시 꾸며낸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꾸밈없이 쓰려고 해도 그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독자가 있을까. - P325

"나는 그 도시에 없는 사람이에요. 벌써부터 그랬지만 지금은 더욱 그래요. 여기 있기 때문이지요. 나는 앞으로도 여기 있는 사람이기를 원해요. 친구들의 친구가 되기를 원해요." 황선호는 보보체리나무 밑에서 그 말을 했다. 그 말을 할 때 나무는 불어오는 바람을 맞아 가볍게 흔들렸다. 황선호가 끝내 이름을 기억해내지 못한 그의 옛 동료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상한 기운에 압도당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P353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읽는나무 2022-10-27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읽으셨네요?
전 사두기만 하고~^^
저는 개인적으로 이승우 작가님은 한국을 대표하는 남성 작가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종종 하곤 하거든요.
하루키 작가도 늘 문학상 후보에 오르시던데 그렇다면 이승우 작가님도 만만치 않은 후보가 되실 수 있으실텐데? 그런 상상을 하곤 합니다^^

프레이야 2022-10-27 21:25   좋아요 1 | URL
흡입될거예요. 결말은 예상되는 이야기이고 어찌 보면 많이 해온 이야기이지만 빨려들어갑니다. 노벨상 수상 상상이 현실이 될 수도요. 교과서적이라 할 수 있는 소설가 같아요. 이국에서,도 정말 그렇습니다. 생각해 볼 점도 많고 사유를 전개하는 문장도 좋고요. 오랜만에 읽었네요. 그동안 작품들 많던데 찾아읽을 것 같아요. ^^

희선 2022-10-28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내용뿐 아니라 다른 것도 마음에 드셨군요 저는 책 볼 때 그런 거 별로 마음 안 쓰는군요 아니 오탈자는 없기를 바라기는 합니다 어떤 때 그런 거 많은 책을 다른 사람한테 줄 때면, 제가 미안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희선

프레이야 2022-10-28 08:50   좋아요 0 | URL
그렇죠. ^^ 그냥 읽다보면 눈이 들어오니까요. 이게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띄어쓰기도 정확하면 금상첨화다 싶어요. 대부분이 당연히 그렇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