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

그는 잡지에서 자기에 관한 기사들을 읽어 보았다. 그 기사들에 묘사된 제 모습을 살펴보아도 자신의 정체성과는 도저히 연결시킬수 없었다. 그는 살고, 전율하고, 사랑한 사람이었다. 느긋한 동시에 생명의 나약함에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뱃머리에 서서 낯선 섬들을 돌아다녔으며, 싸움박질하던 시절에는 제 패거리를 이끈 사람이었다. 그는 도서관에 가득 찬 수천 권의 책을 처음 보고 기절초풍했고, 그 후로 제 방식을 찾아내어 그 책들을 섭렵한 사람이었다. 밤늦도록 불을 밝히고 잠을 쫓아가면서 제 자신의 책들을 써낸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사람, 모든 군중이 식사 대접을 하려 드는 엄청난 식욕의 소유자는 그가 아니었다. - P219

그는 자신의 특등실로 도망쳐, 증기선이 갑문을 확실히 빠져나갈때까지 거기 숨어 있었다.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그는 제 자리가 귀빈석, 선장의 오른쪽 옆자리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않아 자신이 선상의 위대한 인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선상의 위대한 인물로서 그보다 부적격한 사람은 없었다. 그는 오후내내 갑판에서 접이식 의자에 앉아 졸다 깨다 했고, 저녁에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틀이 지나 뱃멀미가 가라앉자 승객 전원의 명단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명단을 보면 볼수록 그는 승객들이 싫어졌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그들을 온당하게 평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선량하고 친절한 사람들임을 그는 가까스로 인정했으나, 인정하는 순간에 단서를 달았다. 그들이 그 계급의 왜곡된 심리와 하찮은 지성을 가진 모든 부르주아들과 마찬가지로 선량하고 친절하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알량한 정신은 겉만 그럴듯하고 속이 텅 비어 있어 함께 대화하기가 지루했다. 한편으로 젊은이들의 떠들썩한 패기와 과도한 활동력은 그를 놀래켰다. - P245

저게 뭐지? 등대 같았다. 그런데 그것은 그의 뇌 속에 있었다. 밝게 깜박이는, 하얀 빛이었다. 그것은 점점 더 빠르게 깜박거렸다. 덜걱대는 소리가 길게 났는데, 자신이 넓고도 끝없이 긴 계단을 굴러떨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고 계단 밑 어딘가에 다다라 그는 암흑 속으로 떨어졌다. 거기까지만 알았다. 그는 암흑 속에 빠져 있었다. 그걸 아는 순간, 그는 알기를 멈추었다.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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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10-10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읽어야 하는데...

1권 읽다 말았네요.
영화 리뷰를 보고 나니 독서
욕이 급격하게 상실되더라구요 ㅠㅠ

프레이야 2022-10-10 11:28   좋아요 0 | URL
영화 보고 나면 책을 더 읽고 싶어지는 작품이 있고 그걸로 됐다 싶은 작품이 있더군요. 마틴 에덴도 영화가 좀 더 활발한 느낌이긴 합니다. 잭 런던의 다른 글보다 문장이 아름다운 느낌이에요.^^
 

10장 문학과 철학의 경계에서

그래서 보부아르는 ‘소설과 형이상학’ 강연에서 문학과 철학을 조화시키려는 시도를 개인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언어로 옹호하면서 비판에 답했다. 보부아르는 먼저
"나는 열여덟 살 때"라는 말로 입을 열었다.
.....
·· 굉장히 많이 읽었다. 오직 그 나이대에만 가능한 순진함과 열정으로 엄청나게 읽어댔다. 소설을 펼치면 정말로 새로운 세계, 독특한 성격의 인물과 사건이 넘쳐나는 구체적이고 현세적인 세계로 들어갔다. 철학 책은 나를 지상의 가시적인 것들 너머, 시간을 초월한 천국의 평온으로 데려갔다. 진리를 어디서 찾아야 했을까? 지상에서, 아니면 영원에서? 나는 갈등했다.
......
보부아르는 문학이 "실제 경험만큼 온전하고도 혼란스러운 상상의 경험"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소설을 선택했다. 철학 책은 독자가 특정 상황에서 전개되는 다양한 시각을 보게 만들기보다는 대체로 저자의 관점을 따라오게끔 종용하거나 설득하는 추상적 어조를 띤다. 그런데 보부아르의 말마따나 형이상학적 소설은 독자의 자유에 ‘호소‘ 한다. - P272

보부아르는 1940년대 초부터 역사의 문제에 천착해 왔다. 전쟁이끝난 이후로 보부아르는 자신이 어떤 입장에서야 하는지 고민했다. 제3차 세계대전이 이미 시작됐다고 외치는 "거짓 예언자들의 허무주의"와 함께 갈 것인가? 아니면 "방탕한 자들의 경솔함"과 함께 갈 것인가? 보부아르는 (정치적으로는) 현대 공산주의자들과 (철학적으로는) 헤겔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으므로 "인류의 미래를 통합과 진보로 말할 수 없었다. 그녀는 역사를 그리 낙관적으로 보지 않았다. 포스카의 이야기를 쓴 것은 결국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리석은전쟁, 혼돈의 경제, 쓸모없는 반항, 부질없는 학살, 생활 수준 면에서 개선이 없는 인구, 이 시대의 모든 것이 내게는 혼란과 제자리걸음처럼 보인다. 바로 이 점이 내가 이 시대를 택한 이유다."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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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2-10-08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넘 좋았어요!! 읽은지 한 참 된 거 같은 느낌.
요즘 여성주의 책 읽으시나요??
암튼 저 이책 너무 좋았구요,,,,,
프야님도 잘 읽으시니 좋아요,,
물론 저보다 훨 잘 읽으시지만!!!

프레이야 2022-10-08 16:48   좋아요 0 | URL
딱히 여성주의로 규정하고 읽진 않지만 그런 내용에 초점이 가네요.
사놓은 책들 읽어야겠어요. 보부아르는 멋진 여성. ^^
제대로 읽어야 하는데 눈이 넘ㅠ
안구건조증에 좋은 방법 있을까요?응?
아렌트, 손택, 보부아르, 똑똑한 인간!
 

10장 문학과 철학의 경계에서(1945-1946)


1945년은 보부아르의 공적 이미지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해다. 보부아르는 점령된 고국에서 전쟁을 보고 정치적으로도 눈을 뜨게 되고 비시 정부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하면서도 파텔정부에 동조하지 않는 나름의 역할을 독창적으로 했다고 보인다. 당시 라디오 방송국은 단 두 개뿐. 1945년 4월 29일에 프랑스에서 여성이 투표권을 행사하는 첫 선거가 있었다. 5월 7일에 독일은 랭스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했다. 8일에는 베를린에서 설명했다. 유럽에서 전쟁이 끝났다.

이해 삼월에 사르트르는 뉴욕에 체류하면서 보부아르와는 서로 떨어져 있는 시간을 보낸다. 이런 시간은 결과적으로 봐도 필요한 시간으로 보인다. 미국에서 돌로레스와 관계에 빠진 사르트르와 별개로 이 기간에 보부아르는 맹렬히 글을 썼다. 파리 신문 가판대에서 보부아르와 사르트르가 공동 창간한 “레 탕 모데른 Les Temps Modernes “이 팔려나갔다. 하지만 창간호 편집장으로는 사르트르의 이름만 올라갔다. 이 잡지를 통해 두 사람은 시대의 당면과제에 집중하는 참여 지식인이 될 수 있었다. “잡지는 굶주린 대중을 먹였다.(264)”

비시 정부 때 발행된 신문들을 정간하는 법이 통과되었다.
보부아르는 “레 탕 모데른” 편집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잡지에 기고한 윤리학과 정치학 에세이들을 1945년에 처음 출간했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적 논지와 반대되거나 확장한 생각들을 주장하고 펼쳐나갔다. 이는 오래전부터 보부아르가 생각했던 것, 사르트르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던 부분이거나 이미 있어온 인간 운명의 어두운 부분을 내밀하게 통찰하여 발전시킨 생각이다. 변명으로 드러내는 체념적 염세주의로 치부되는 것, 즉 인간의 타락과 죽음을 불건전하게 과장하는 염세적 철학이라는 비판에 보부아르는 인간의 비참함은 실존주의만의 새로운 면모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인가, 대신 보부아르는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를 썼다. 자신의 생각을 에세이와 소설, 희곡으로 펼쳐냈다.

#
보부아르의 철학은 거짓과 체념의 위안을 거부한다. 지배 혹은 복종이 그저 인간의 본성이라는 생각은 변명일 뿐이다.
- 사람들은 덕(virtue)을 쉽게 생각하고 싶어 한다. 또한 덕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별로 심란해 하지 않고 체념하듯 받아들인다. 덕이 가능하지만 어려울 수 있다고 보려 하지는 않고 말이다. (276)


# 소설 “타인의 피”
점령기에 쓰고 1945 발표.

_ “우리 각자는 모든 사람에게 그리고 모든 것에 책임이 있다.”
타인의 피,에 제사된 문장이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발췌한 문장. “타자에 대한 책임과 개인의 행복을 조화시키려는 실존주의자의 노력을 무척 인상적으로 극화한 작품이다”라는 평을 받았다. 엘렌과 장이 주인공이나 펭귄북스 뒷표에는 남자 주인공만이 한 사람의 주인공으로 소개된다. 이 작품은 사르트르의 철학이 아니라 보부아르의 철학을 적용해 극화했고 “제2의 성”(1949)에서 다뤄질 주제들을 예고했다. 여성의 행동방식, 남성과 여성이 개인으로서 사랑을 경험하는 방식의 차이 등…


#
보부아르는 작가의 사명은 “개인이 자신의 자유를 걸고 살아가는 세계와 맺는 관계를 극의 형식으로 기술하는 것”이라고 썼다. 그러나 세상은 여성에게 남성을 대할 때와는 다른 이상과 제약을 내세운다. 보부아르는 엘렌의 각성과 장의 각성을 나란히 보여 줌으로써 여성은 남성처럼 존중을 받지 못하고 존중을 요구하지도 않는 불공평성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267)


# 유일한 희곡 “쓸모없는 입들”
1945년 10월 29일 파리 공연

# 1946. 12. 소설 “모든 사람은 죽는다”
이 소설 속 불멸의 화자와 역사적 구조 역시 보부아르가 장차 제2의 성,에서 전개할 “남성은 언제나 구체적인 힘들을 장악해 왔다”는 주제를 드러냈다. 포스카를 통해 현대와 가까운 시대에 만나는 여성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묻는다. 사랑을 한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뭔가를 할 수는 있는가?”다. (289)

# 보부아르가 보았던 진실은 사람들이 변명으로 자유에서 도피한다는 것이다.(275)

# “상황의 힘”에서 “자신과 사르트르의 유대감에 관해서는 형용할 수 없는 앎” 이 있다고 했다. 여기서 보부아르는 “처음에는 자기가 여성이라는 사실이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고 여성성은 어떤 식으로든 귀찮았던 적이 없다라고 했다. 사르트르는 좀 더 생각해 봐야 한다고 했고 그녀가 남자 아이처럼 양육 받고 자란 건 아니었다. 그래서 보부아르는 그 문제를 파고 들었고 그제야 비로소 세상이 얼마나 남성적인지 깨달았다. 자신의 유년기를 형성한 수많은 신화는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를 다르게 형성했다. 자서전 집필에 대한 생각을 뒤로하고 여성성의 신화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느라 공립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 작업에서는 자신의 여성으로서 경험이 아니라 여성의 조건에 초점을 맞출 생각이었다. (284 발췌)

이 내용 읽어보니, 서로 인정했듯, 사르트르는 어찌됐든 보부아르에게 좋은 영향을 준 관계였다는 생각이 다시 든다. 끊임없이 자극을 주고받고 한마디만 던지면 촉발하는 영리한 인간 보부아르. 여성성의 신화와 여성에게 주어진 조건에 대한 자각. 대화를 나누며 눈을 뜨고, 사유의 근원이라기보다 견줄 데 없는 대화의 촉매로서 사르트르.

#
보부아르는 나중에 ‘상황’ 개념이 제2의 성,을 독창적인 책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여성성을 본질이나 본성이 아니라 “문명이 특정한 생리학적 여건으로 빚어낸 상황”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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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2-10-09 17: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도 책을 참 빨리 읽으십니다.
마지막 사진 참 단아하고 이뻐요^^

프레이야 2022-10-09 19:14   좋아요 2 | URL
울유 벽돌 제2의 성 표지죠~
저 사진이 제일 마음에 들어요. 성숙해 보이고 가장 아름다운 때 같아요.
 

나는 내 온몸으로 남들과는 다르게 시간을 헤아리며 살았다. 나는 한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 얼마만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숭고하고 치명적이기까지 한 욕망, 위엄 따위는 없는 부재, 다른 사람들이 그랬다면 무분별하다고 생각했을 신념과 행동,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스스럼없이 행했다.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세상과 더욱 굳게 맺어주었다.

그 사람은 "당신, 나에 대해 책을 쓰진 않겠지‘하고 말했었다. 나는 그 사람에 대한 책도, 나에 대한 책도 쓰지 않았다. 단지 그 사람의 존재 그 자체로 인해 내게로 온 단어들을 글로 표현했을 뿐이다. 그 사람은 이것을 읽지 않을 것이며, 또 그 사람이 읽으라고 이 글을 쓴 것도 아니다. 이 글은 그 사람이 내게준 무엇을 드러내 보인 것일 뿐이다. - P66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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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 드 사르트르라니…

* 문자 그대로는 ‘사르트르의 성모‘라는 뜻으로, ‘노트르담 드 샤르트르(샤르트르 대성당)‘를 빗대어 보부아르를 조롱한 말.

1943년 8월에 보부아르의 “초대받은 여자”가 나왔고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는 같은 해 6월에 비버(보부아르)에게 헌정한다며 나왔다.

#
1940년대 초는 보부아르의 사유에서 중대한 전환점이다. 전쟁 전의 보부아르는 스스로 인정했듯이 유아론적이었다. 보부아르는 자신이 이미 1941년에 《초대받은 여자>의 ˝철학적 태도˝에서 벗어났음을 깨달았다. 1943~1946년에 쓴 소설과 희곡은 보부아르의 도덕적 · 정치적 참여를 보여준다. 많은 이들이 <제2의 성》이 나올 때까지는 그러한 참여를 믿지 않았지만 말이다. 1943년에 보부아르는 이미 이렇게 물었다.
사회에 쓸모 있는 사람, 쓸모 없는 사람은 누구인가?
누가 결정권을 쥐고 있는가? (240)

《초대받은 여자》에 대한 반응은 복합적이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충격적이었다. 또 어떤 이들은 비시 정부의 "노동, 가정, 조국" 강령에 용감하게 저항했다고 보았다. 그렇지만 철학적인 면에서 보부아르의 소설은 타자와 연결되는 두 가지 가능한 방식을 제시한다. 첫 번째 방식은 타자를 자기와 마찬가지로 풍부하고 상처 입기 쉬운 내적 경험을 지닌 의식적 존재로 보는 것이다. 두 번째 방식은 타자를 그렇게 보고 호혜적 관계를 맺기보다는 타자가 내게 유용하거나 방해가 되는 사물처럼 ‘있음‘을 당연시하는 것이다.

이 두 번째 접근은 사르트르가 《존재와 무》에 쓴 내용과 매우 흡사하기 때문에 특히 중요하다. 그 후 보부아르의 삶은 사르트르와의 불일치에서 비롯된 예술 분야에서 나타난 열렬한 철학적 생산성보다 전후(戰後)의 명성, 재즈와 파티의 시절로 더 많이 소개되었다. 왜 보부아르가 그토록 오해받았는지, 왜 ‘노트르담 드 사르트르‘로 치부당하면서 좌절감을 느꼈는지, 왜 자신의 페미니즘 저작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당하는‘ 배제를 피하려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애썼는지 이해하려면 그녀가 사르트르의 철학에서 어떤 부분을 비판했는지 좀 더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 - P243

하지만 1943년에 사르트르는 지루하고 멍청한 남자보다 더 최악이었다. 그는 극단적인 염세주의 철학자들을 기준으로 놓고 봐도 인류에게 기대가 거의 없는, 지독히 염세적인 철학자였다. 사르트르는 모든 인간이 타자를 지배하고 싶어 하고, 모든 인간관계는 갈등이며 그 갈등이 너무 심해서 사랑은 불가능하다고(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실현 불가능한 이상") 보았다. 보부아르는 결코 "낙오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사르트르와 생각이 달랐던 철학자다. 그리고 자기가 살아온 삶이 자신을 겨누는 무기가 되어 돌아온 여성이다. 아직은 그 부메랑이 멀리 있었다. - P244

사르트르는 우리가 사실성으로 인하여 우리 자신을 결정된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되며 실존의 조건이 어떻든 간에 우리 자신을 거의 대부분 자유로이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보부아르는 이미 1930년대에 사르트르의 주장이 틀렸다고 확신했다. 사르트르는 상황이 어떻든 인간은 다양한 반응 양식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자유롭다고 보았다. 보부아르는 이렇게 반문한다. "하렘에 갇혀 사는 여성에게 어떤 유의 초월이 가능할까?" 자유로운 것(원칙적으로 선택이 가능하다는 것)과 실제로 선택을 해야하는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은 다르다. 보부아르는 이러한 철학적 비판을 《피로스와 키네아스》와 《애매성의 윤리를 위하여》라는 두 편의 에세이로 남긴다. 하지만 그전에 《초대받은 여자》때문에 사생활에 튄 불똥을 처리해야 했다. - P247

"실존주의는 어떤 윤리학도 암시하지 않습니다. 나는 실존주의에서 윤리학을 끄집어내려고 했지요. 그 윤리학을 《피로스와 키네아스》라는 에세이에서 자세히 썼고, 소설과 희곡으로도, 다시 말해 훨씬 구체적인 동시에 모호한 형식으로도 내가 찾은 답을 표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보부아르는 왜 이 중대한 철학적 공헌을 회고록에서 누락했을까? 이 질문의 답을 이해하려면 보부아르가 대외적으로는 사뭇 다른 자기가 되기로 선택한 과정을 좀 더 이해할 필요가 있다. -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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