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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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사는 것 같았다. 적대적인 두 부류는 서로를 미워하면서 다른 편이 하는 말은 듣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젊은 로바트 부부는 본능적으로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신문도 읽고 텔레비번 뉴스도 보았다. 소중한 세 아이가 양육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안전과 평안과 친절 속에 그들을 담그기 위해 찾아오는 자신들의 왕국, 이 요새 밖에서 적어도 무슨 일이 진행되는지는 알아야 했다.-32쪽

잠시 동안 이질적인 삶의 두 가지 형태가 만나고 있었다. 애들은 어떤 오랜 원시의 일부가 되어 피가 아직도 그것으로 뛰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가족과 합류하면서 야성적 자아를 버려야했다. 해리엇과 데이비드는 자신들의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과 상상을 통해 이 일을 애들과 함께 공유했다. 그들은 분명히 볼 수 있었다. 길들여지고 가정적이며 야생과 자유로부터 멀어진 불쌍하기조차 한 모습으로 거기 앉아 있는 두 어른인 자신들을.-102-103쪽

의사의 얼굴에서 그녀는 자신이 기대했던 것을 보았다. 그 여인이 느끼고 있는 것이 투영된, 어둡고 고정된 시선이었다. 그것은 인간 한계를 넘어서는 것에 대한 정상인의 거부, 이질성에 대한 공포, 또한 벤을 낳은 해리엇에 대한 공포였다.-143쪽

그 애는 갈구했다. 온몸의 구석구석까지. 그런데 무엇을? 자기 어머니의 팔은 그 애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전쟁과 폭동, 살인과 비행기 납치, 살인과 강탈과 유괴...... 1980년대. 야만적인 80년대가 본 궤도에 올랐고 폴은 텔레비전 앞에 누워 기거나, 방안을 서성대다가 텔레비전을 보면서 밥을 먹었다. 그런 양분을 먹고 자라는 것 같아 보였다.-145쪽

그리고 데이비드는 이제까지 해왔던 식으로 일하느라 가정적인 남자로서의 자아를 잃어버렸다..... 이제 그는 자신이 한때 결코 되지 않겠다고 결심한 그런 종류의 사람이 되었다..... 자신에 대한 완고한 신뢰에서 오는 솔직함과 개방성이 데이비드에게서 사라지고 대신 새로운 자만심이 자리잡았다....... 그러나 그는 완고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에게서 그녀가 느끼는 딱딱함은 인내심이었다. 그는 만사를 버티어내는 방법을 알았다. 그 두사람은 여전히 비슷했다.-152쪽

'벤을 보면 생각하게 돼요. 이 지상에서 한때 살았던 모든 다른 사람들, 그들이 어딘가 우리 내부에도 틀림없이 있다고요.'
'폭 하고 솟아오르려고 항상 대기하고 있지! 하지만 그럴 때 우린 그저 그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거야.'
도로시가 말했다.
'우리가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죠.' 해리엇이 말했다.-154쪽

그녀는 그 애가 영위해 오던 이 생활 아래에 감추어져 있던 또 다른 벤을 보았다. 그녀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그 애는 한번에 훌쩍 뛰어서 처마끝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녀가 볼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끝이 없어 보이는 다락의 어둠뿐이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다. 그 애는 그곳에 웅크리고 앉아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는 머리카락이 서는 것을 느꼈고 차가운 전율을 느꼈다. - 본능적인. 이성으로는 그 애를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공포로 온몸이 뻣뻣해졌다.-157쪽

그러나 그녀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 살해당하는 것으로부터 그 애를 구했기 때문에 그녀는 자기의 가족을 파괴했다. 그녀 자신의 인생에 해를 끼쳤다....... 희생양. 그녀는 희생양이었다. - 해리엇, 가정의 파괴자.(중략)
'우린 벌 받는 거야. 그뿐이야.'
'잘난 척했기 때문이야. 우리가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해야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에 행복해서.'-158-159쪽

해리엇은 추종자들과 함께 있는 벤을 지켜보면서 자신과 같은 종족들과 함께, 동굴 입구에서 타오르는 불길을 둘러싸고 웅크리고 있는 그 애의 모습을 상상하려고 애썼다. 아니면 무성한 숲속의 오두막촌? 아니야, 벤의 무리는 지하에 있는 것이 더 편할 거야. 깊은 땅속, 횃불로 밝힌 검은 동굴 속이 더 그럴듯하다고 그녀는 확신했다. 아마도 그 애의 이상한 눈은 이 세상과는 아주 다른 빛의 상태에 적응하기 위한 것일 거야.-164쪽

사려깊은 눈? 사람들은 그가 생각하고 있다고, 그가 보는 것으로부터 데이타를 취해서 정리하고 있다고 믿을 수 있다. 그러나 그녀도 또는 어느 누구도 짐작할 수 없는 어떤 내적인 양식에 따라서였다. 미숙하고 덜 떨어진 청년들에 비하면 그는 원숙한 존재였다. 완성된, 완전한. 그녀는 그를 통하여 인간성(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든 간에)이 무대를 차지하기 수천만 년 전에 정점에 도달했던 종족을 바라보고 있다고 느꼈다.-175쪽

벤이 태어난 이후 권위를 가진 모든 사람들이 벤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어떻게 보는 것일까? 사람들은 항상 그를 제대로 보는 일을, 그의 본질을 인식하는 일을 거부할 것인가?-1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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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고등학생이 되는 큰딸은 12월30일이 생일이다. 작년(그래봐야 열흘 좀 넘는 날 전이지만^^) 생일에 케잌에 촛불잔치로 그냥 넘어가고 새해 첫날 점심을 밖에서 했다. 어차피 미역국 안 좋아하는데 뭐, 이렇게 쿨하게 말하는 아이.ㅎㅎ 레스토랑에서 아이 옆에 내가 앉아있었고 옆지기는 찍히고 싶지 않아하는 나를 뺐다. 저 때는 아마 할아버지 할머니께 새해인사 드리는 중.

아이는 배 안에서부터 거꾸로 앉아있더니 막달까지 돌아앉지 않았다. 내 바람대로(우습게도 난 분만의 고통에 대해 지나치게 두려워했다) 93년 연말, 수술 날짜와 시간을 잡아놓고 하루 전날 입원하여 병실에서 혼자 자던 밤까지는 아무런 실감을 할 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서서히 어떤 느낌들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수술실 앞에서 엄마와 눈으로 손으로 멀어지며 '혼자서' 수술실로 들어가고 내 등 뒤에서 육중한 문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아니 겁 안 나는 척 걸어들어가면서 실은 상당히 외로워지고 두려워졌다. 처음 느껴보는 모종의 공포였다. 준비실에 들어가서부터 심장이 두근거리고 왠지모를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 잠시 나 스스로를 다독일 필요가 있었다. 곧 간호사가 들어왔고 나는 수술실로 들어가 높고 차가운 침상(!)에 누웠다. 눈이 부셔서 똑바로 뜰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로운 빛들이 쏟아지고 아랫도리에는 이상하리만치 서늘한 바람이 불어드는 느낌이었다.  

빛에 의해 바람에 의해 나는 마취주사를 맞기 전부터 눈을 감지 않을 수 없었다. 바늘이 팔에 들어오고 지시에 따라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네엣, 다서~ㅅ.. 채 못 헤고 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마주한 건 심한 통증이었다. 아랫배가 찢어지는 것 같고 토할 것 같고 어지러웠다. 수고하셨어요,라는 간호사의 인사가 들려왔다. 병실로 옮겨지고 그때부터 일주일간의 입원생활이 시작되었다. 94년 새해 첫주는 병원에서 맞았다. 3일간은 그야말로 어떻게 살았나싶은데 하루 하루가 지나면서 살만해지는 게 또 신기했다. 

아이는 갓 태어나서부터도 피부가 뽀얗고 똘망똘망했다. 산도를 어렵게 나오는 과정이 없어서인지 얼굴이 붉지 않았고 머리모양도 일그러지지 않았다. 세상밖으로 나오는 일이 상대적으로 쉬웠지 않았나싶다. 머리숱은 적은 편이었고 머리카락이 몹시 부드러웠다. 잘 먹었고 잠은 잘 자지 않았다. 모자동실을 권하는 병원이라 내 침대옆에 같이 있었는데 사실 고역이었다. (유두의 모양탓으로) 모유가 잘 나오지않아 아플 정도로 세차게 빨아당기는 아이를 안고, 앉아있으면 더 찢어질 것 같은 아랫배의 통증에도 모유수유를 무조건 권하는 간호사에게 적개심이 일었다. 결국 그나마 3일간 초유를 조금 먹인 뒤 나는 나쁜 엄마가 되기로, 올바른 엄마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포기하기로 하고 젖 삭이는 약을 달라고 한밤중에 울며 소리쳤다. 퉁퉁 부은 젖을 매몰차게 짜는 친정엄마와 간호사의 손길이 그렇게 무자비할 수 없었다. 결국 친정엄마는 울부짖는 내게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선 간호사실로 뛰어갔다. 일주일분의 약을 처방해 받고 퇴원해 집에 돌아왔서도 한동안 압박붕대로 가슴을 친친 동여매고 지냈다.  

당시 파스퇴르 분유가 아이의 주식이 되었는데 무탈하니 잘 먹고 건강하게 자라주었다. 하루에 스무 시간을 자야한다는 육아책의 내용과는 달리 아이가 하루 자는 시간은 최대 열 시간이었다. 지쳐서 넉다운이 된 나는 병원 육아상담실에 전화해서 문의하기도 했다. 다른 이상이 없고 발육도 정상적이라면 수면시간은 개인차가 있으니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 초보엄마에게 요구하는 것도 많았고 하루종일 엄마를 가만 두지 않았던 아이였다. 밤에는 아이를 안고 앉아서 눈을 부쳤고 낮에는 하루종일 흔들침대나 그네에서 아니면 내 팔 안에서 흔들어줘야했다. 뭐든 같이 하자고 손을 끌어대서 혼자 쉴 수 있는 시간이 없었던 나는 잠이 모자라 틈만 나면 병든 닭처럼 깜박깜박 졸기 일쑤였다. 밖에 데리고 다니면서부터는 낯선 사람이 말을 걸면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패대기치고 제 머리를 벽에 박곤 해서 난처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2개월에 처음 예방접종을 하러 동네 소아과에 가려고 아기띠를 해서 앞으로 안고 (2월말이라 바람이 찼기 때문에) 아이 머리를 뒤집어씌우려 하는데 아이가 한사코 머리를 뻗대며 그걸 걷어치우는 거다. 아무리 씌우려해도 안 돼서 포기하고 모자 하나만 씌워 첫 나들이를 했다. 그때 첫 세상을 보겠다고 눈망울이 이리저리 어찌나 바쁘게 굴러다니던지 그 반짝반짝하던 포도알 같은 눈을 잊을 수 없다. 신난다고 다리도 어찌 버둥대던지. 아이는 신생아 때부터 옷을 얇게 입혀 버릇하고 차게 키워서인지 감기도 잘 걸리지 않는다. 첫돌 지나 이하선염으로 한쪽 볼이 부어오르고 열이 나서 일요일에 하던 유일한 병원을 찾아 혼자 택시를 타고 달려갔던 일을 빼고는. 그때 새파란 의사라는 작자 참 어이없었다. 아이의 고개를 그렇게 터프하게 재껴서 살펴볼 필요가 있었을까. 아무리 아이가 버둥대기로서니. 아이가 처음으로 갑자기 당하는 완력에 얼마나 놀라며 겁먹어하던지 지금 생각해도 화가 난다. 아이에 대한 애정이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사람이 무슨 소아과 의사를 하겠다고... 

4살 때였던가. 아이 코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더니 사라지지 않고 갈수록 심해지던 때가 있었다. 병원에 가서 사진을 찍어보았더니 코안에 이물질이! 요쿠르트 뚜껑으로 쓰이는 알루미늄호일같은 그것이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아이는) 유아원에서 친구들이 하는 걸 보고 호기심에 따라했나 본데 조금 집어넣자 그게 쑥 들어가버렸던 모양이다. 코안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엉뚱한 녀석. 요샌 좀 다른 쪽으로 엉뚱하지만. 참, 다섯살(만 네 살 채 안 되어서) 때 내게 준 짧은 편지는 지금 생각해도 가슴 뜨끔한 내용이었다. 동생이 태어나기 전이었고 하루종일 둘이서 온갖 종류의 싸움(!!)을 하며 지내야했던 '좋기도 나쁘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엄마, 내가 예쁘다면 사랑해주세요."  지금도 두 딸의 어떤 행동이 맘에 안 들어 한 판 하고 나면 이 말이 떠올라 사랑의 방법과 표현과 내 진정에 대해 생각하며 나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후회하면서. 하지만 엄마에 대한 환상을 갖지 않고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으로 봐준다면 그보다 고마울 데가 없을 성싶다.  

둘째아이 가지고 8개월 쯤에 정기검진 받고 돌아오며 사준 유일한 인형, 푸우을 책상머리에 아직 두고 있다. 인형을 좋아하지 않는 아인 줄 알고있는데 이걸 그렇게 오래도록 가까이 두는 걸 보면 내가 많이 사주지 않아서 그랬던 건지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변한 것도 많다. 지금은 몸치에 유연성 제로의 뻣뻣한 몸이지만 서너살 적 아이는 나랑 손 잡고 춤추길 좋아했다. 비디오 테잎이 늘어질 정도로 '백설공주'를 보다가 난장이들과 공주가 춤추는 장면에서는 어김없이 일어나 같이 신나게 추었다. 뱅글뱅글 돌고 뛰며... 10살까진 교회 성가대도 하고 찬송대회 나가 상도 받고 그랬는데 지금은 노래를 썩 잘하는 것 같진 않다. 글도 참 잘 썼는데 중학생 이후론 썩 즐기는 편이 아니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열번이고 반복해 보는 습관은 여전하다. 체육을 못하고 좋아하지 않는 것도 여전하다. 움직이는 것보다 가만히 있는 게 적성에 맞아 중학교 때 예쁜글씨 쓰기반과 십자수반을 특기적성으로 했다. 변칙을 용납하지 않고 고집 있고 결벽성 있으면서도 코 후빈 휴지를 책상에 그대로 두는 건 또 뭔지.ㅋㅋ

다이어리 적기를 좋아해서 신년에 세 개의 다른 다이어리를 구입했고 학습 플래너 수첩도 두 개 꼼꼼히 쓰고 있고, 밀크티와 호박고구마와 땅콩전병을 좋아하고 굴과 만두와 날음식은 싫어하는 아이. 서재에 있던 내게 다가와 좋은 영화들(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밀크 등등) 개봉 예정이라 기대된다면서 히죽 웃고 아빠의 하셀브라드 카메라에 눈독 들이는 아이. 한겨울에도 아무것도 안 발라도 피부가 매끈매끈하고 날씬해서 뭘 입어도 예쁜 딸.(완전 고슴도치 엄마^^) 친구처럼 옷도 같이 입고 포스터 속 에릭의 근사한 얼굴을 보고 역시 제일 잘 생겼어, 라고 하면 좋아라 헤벌쭉 동감의 미소를 짓는 아이. 동생을 야단치고 있으면 은근히 좋아하는 얼굴을 못 감추는 아이. 그리곤 다른 때 같으면 안 그러면서 슬쩍 다가가 이거 먹을래?, 이러며 동생 기분 좀 맞춰주려고 하는 언니. 군주론을 읽고 있고 조니뎁과 브래드 피트와 영국 락 그룹을 좋아하고 라디오헤드를 듣고 독일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아이. 그래도 우선 앞으로의 전공을 위해선 프랑스어를 제2외국어로 결정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아이. 아이결정에 맡길 예정이다.

무엇보다 엄마와 감정 전쟁에 휘말리지 않게 스스로 타협할 줄 아는 딸. 잘 자라고 있어줘서 고맙다. 나도 함께 자라고 있어야하는데 한 해 한 해 중간점검해 보자면 아직 멀은 듯. 그나저나 희원아, 네가 불던 플루트 이제 엄마 줘야겠다. 배워보려고 결심했으니...

 - 사실 미시적으로 들여다보면 심란하고 우울한 순간들도 많긴 하지만 육아는 여자들이 제도교육 속에서 차례로 잃어버린 직관과 감성, 신화학자 조셉 캠벨 식으로 말하자면 천복(Bliss)을 회복하는 절호의 기회다. - <뼛속, 치맛속> by 목수정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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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01-12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소회를 기록으로 남겨주는 엄마, 너무 고맙고 사랑스러워요. 사진 속에 이미 혜경님이 있네요. 당연한 얘기지요. ^^

프레이야 2009-01-12 20:57   좋아요 0 | URL
너무 밤새도록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얼른 생각나는 것만 간단히 한 게
저거에요.ㅎㅎ 어찌나 까탈스럽고 쉽지 않던 아이였던지요. 지금은
어찌나 달라졌는지 또 놀라구요. 그만큼 억압된 부분이 많았던 것이라
생각하면 한편 마음이 편치 않구요.

바람돌이 2009-01-12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닮았어요. 성격도 엄마 닮았을까요? 그럴것 같음... ^^
저도 예린이 고등학교 들어갈때쯤 이런 글을 쓸까봐요. 근데 제가 쓰면 뭐든 코미디가 되는 것 같던데...ㅠ.ㅠ

프레이야 2009-01-12 20:58   좋아요 0 | URL
작은딸보다는 닮았어요, 성격이.^^
예린이 코믹스토리 기대할게요. 아니 코믹은 해아쪽이 더 어울릴 것
같아요.ㅎㅎ

아영엄마 2009-01-12 0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처자 티가 나네요. 저는 두 아이 어렸을 때 어땠는지 기억도 잘 안다고, 이런 글도 못 쓸 것 같아요. ^^;

프레이야 2009-01-12 20:59   좋아요 0 | URL
아영엄마님 연우 잘 크고 있죠? 아영이 혜영이가 얼마나 좋아라 할까요.
쁜이네 집에 올해도 복 많이 깃들기를 바래요.

조선인 2009-01-12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언젠가 제게 올 그 때가 두렵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하고.

프레이야 2009-01-12 21:00   좋아요 0 | URL
뭐 후딱~ 옵니다요^^
그때가 되면 마로 얘기도 아마 끝이 없을 걸요.

다락방 2009-01-12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혜경님을 쏙 빼닮았는데요! 처음엔 혜경님인줄 알았어요. 잘 자라고 있어줘서 고맙다, 라는 문장이 쏙 박히네요. 좋은 페이퍼에요.

프레이야 2009-02-21 17:16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사실 생긴 건 아빠를 더 닮았어요. ㅎㅎ
네 정말 고맙죠.
새벽 네시, 저도 참 두근거리며 읽은 소설이에요.

진주 2009-01-12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윤이랑 동갑이라 대한민국의 열 여섯, 열 일곱 살짜리들이
그러하듯 비슷한 속도와 비슷한 행보로 자라가고 있군요..
혜경님, 고이 잘 키우셨습니다.고생 많으셨어요^^

프레이야 2009-01-12 21:04   좋아요 0 | URL
듬직한 윤이가 있는 진주님은 얼마나 좋아요!
쟤가쟤가 나중에 기억이나 할까요. 8개월 때 거실 바닥에 온통
제 똥으로 퍼포먼스 해놓은 걸요. 그 가운데 앉아서 두손에 다 묻히고
얼마나 좋아하고 있던지요. 거침없이 야생적이던 아이가 결벽할 정도로
길들여진 건 다 제 영향이 크겠죠. 아, 난 할 수 없이 나쁜 엄마에요.
우리는 본성을 죽이는 역할이 커요.

마늘빵 2009-01-12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쁘네요. ^^ 브래드 피트와 레디오헤드는 저도 사랑하는 이들입니다.

프레이야 2009-01-12 21:05   좋아요 0 | URL
드러머 아프님,^^ 저도 브랫 좋아해요.


가시장미 2009-01-12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혜경님이랑 꼭 닮았어요!! 크크 :)
저도 희망이 낳고, 저 닮은 딸 한명 더 낳을까봐요~~ 엄마한테는 딸이 꼭 필요하다던데!!!
(근데 저 닮으면 싸움질 많이 하고 다녀서 속좀 섞을텐데 ㅋㅋ)

프레이야 2009-01-12 21:06   좋아요 0 | URL
희망인 남자아인가 봐요. 벌써 알아보셨구나.
딸 아들 가려 낳을 수 있는 거 참 신기해요.
그렇게 되길 빌어요. 장미님은 싸우기도 하고 알콩달콩 좋은 친구가
될 거에요.

순오기 2009-01-12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엄마예요~ 저 속에 보이는 엄마는 어쩌라고요!^^
딸은 자라면 친구가 되지만 아들은 자라면 애인이 된답니다.ㅋㅋ
우리 애인은 과묵한 열일곱 살예요.^^

프레이야 2009-01-12 21:07   좋아요 0 | URL
앗, 보였어요? ㅎㅎ
과묵한 애인 있는 오기 언니가 부럽다구용^^

세실 2009-01-12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일곱이 되는군요. 보림인 열네살. 사춘기가 시작되겠지요.
님의 글 읽으면서 저도 보림이를 떠올렸답니다.
아직은 어리게만 생각되는데...하루 하루 다를듯.
참 예뻐요. 큰따님도 님도...

프레이야 2009-01-12 21:09   좋아요 0 | URL
보림인 완전 아가씨 같더군요. 키도 크고 성숙해 보여요.
사춘기는 우리집 작은딸도 시작한 것 같더라구요, 벌써.
중학생이 되면 하루하루 정말 다를 거에요. 많이 자라죠.
힘 주시는 말 고마워요.

라로 2009-01-12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볼 땐 혜경님보다 쬐끔 더 이쁜듯~.헤헤헤
94년 전 결혼을 했는데 그대는 아기를 낳으셨군요~,ㅎㅎ
열입곱,,,참 특별한 나이에요~.^^
친구같은 딸이 있어 좋겠다 혜경님은~.^^

프레이야 2009-01-13 09:00   좋아요 0 | URL
헤헤 맞아요.ㅎㅎㅎ
님은 딸에 아들 둘까지 정말 부럽다구용~

춤추는인생. 2009-01-12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원이 오랜만에 봐요 혜경님. 언젠가 사진을 볼때 옆지기님을 많이 닮은 큰딸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적어주신 예쁜글들안에 혜경님의 모습도 많이 있는것같아요.
분신.. 엄마와 딸사이 늘 애뜻하고 찡해요

프레이야 2009-01-13 09:02   좋아요 0 | URL
그래요^^
요즘 희령인 사춘기 시작하는지 많이 어려워보이는데
마음이 쓰여요. 잘 해주진 못하고.. 희원인 그 시기 잘 넘긴 것 같구요.
오늘 하루도 잘 보내요, 우리.

소나무집 2009-01-13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잘 키우셨어요.
바라만 보고 있어도 뿌듯한 딸일 것 같아요.
이렇게 아이들의 역사를 기록하는 엄마도 엄청 멋지구요.
저도 딸이 있는 게 참 다행이다 싶네요.

프레이야 2009-01-13 17:56   좋아요 0 | URL
딸 아들 골고루.. 소나무집님은 대빵 복덩이에요^^
저기 기록 못한 얘기가 참 많아요. 어찌나 독특했던지요..
이젠 저보다 훨씬 커버린 아이, 잘 안 먹어서 걱정이에요^^

미설 2009-01-13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님이 12월생이군요. 반가워라^^ 알도가 12월생이라 사실 학교 보내려니 좀 걱정되요.. 여자애들은 좀 낫다고 하긴 하던데, 특히 요즘은 1,2월생들도 같이 다니고... 암튼 늦었지만 따님 생일 축하드리고 새해 복도 많이 받으세요^^

프레이야 2009-01-14 00:08   좋아요 0 | URL
미설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에요.^^
알도는 분명 잘 해낼거에요. 고맙습니다.
아이들 자라는 것 보면서 우린 나이들어가지요. 나쁘지 않아요.^^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
목수정 글, 희완 트호뫼흐 사진 / 레디앙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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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늘 가지고 싶어 했던 그것. 세상의 논리를 시선 하나로 간단히 유린하고, 경쟁의 뜀박질에서 슬쩍 비껴나 울울창창한 숲 속에서 자신의 열매를 가꾸는 사람들에겐 언제나 그런 성이 있다. 누군가는 그것을 지하실이라고 표현하고, 자크 뒤아멜(1970년대초 프랑스 문화부 장관)은 '자신만의 소우주'라고 표현한다.-38쪽

이 공간은 소비를 종용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언가를 생산하는 것도 아니었다. 경제적 가치에 이바지하거나 효율이나 화합 등 공동체를 위한 어떠한 미덕에도 기여하는 바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의 노동력을 요구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나는 분명 언어적 표현을 넘어서는 이 공간의 매력에 압도당했다.-46쪽

똘레랑스가 프랑스 사회를 유연하게 만드는 여러 개의 벽돌이라면, 연대는 그 벽돌 사이를 메우는 유연하게 메워주는 풀이다. 이 풀은 원한다면 언제고 떼어내고 다시 결합할 수 있어 아나키스트적 운동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68쪽

가장 급진적인 정치집단도 '시민'이나 '우리'라는 표현을 쓴다고 한다. 말하는 자와 듣는 자를 가르지 않는 '우리'는 운동을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든다....... '우리'는 전쟁을 원하지 않는 파리의 뉴요커까지도 포함할 수 있지만, '민중'은 마치 나를 그 단어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인 것처럼 낯선 존재로 만들어 문제에서 내쫓아버린다. 선동하는 자와 선동 당하는 대상을 가르고 이끄는 자와 이끌리는 대상을 나누는 사고는 운동을 수직적인 권력구조에 가두고 수평적 연대를 방해할 뿐이다.-72쪽

나와 희완은 아이가 어떤 사회적 억압이나 고정관념도 물려받지 않고, 당당하고 자유로운 정신으로 인생의즐거움을 누리길 바란다. 모든 사회에 존재하는 관습의 폭력과 인간 스스로 자신을 갉아먹도록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해 재생산되는 자본 중심의 가치관들... 부지불식간에 그 모든 것의 포로가 된 것을 자각하고, 거기에서 벗어나려 쏟아 부어야 했던 그 엄청난 에너지. 아이가 그 소모적인 시간들에 구속받지 않고 최대한 자유로운 자아를 지닐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133쪽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는 '죽음'을, 생태의 복원과 성과 인종에서의 평등, 문화다양성, 공정무역 등을 주장하는 좌파의 질서는 공존하는 '생명'을 향한다는 희완의 통찰은 완벽하게 옳다.-139쪽

세상의 모든 자장가는 평화로우면서도 구슬프다. 전쟁과 실업 그리고 기아라는 세계 공통의 비극이 인류를 뒤덮는 동안, 그녀들은 품에 꼭 끌어안은 아이의 달콤한 살 냄새를 맡으며 고달픈 삶을 위로 받았을 것이다. 애절할 수밖에 없는 곡조는 평화와 소박한 행복을 비는 그녀들의 주문 같았다.-157쪽

나의 색깔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가장 유의해야 할 것은 '한 우물' 이데올로기의 강박으로부터 탈출이다....... 집단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이 한 영역씩 맡아서 한 우물을 죽어라 파주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러나 각 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그건 어쩌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인생일 수도 있다. 난 이 거대한 사회의 나사가 아니다. 나 혼자서도 하나의 거대한 우주를 구성할 수 있다. 여러 우물을 파면서, 세상의 모든 재미를 두루 즐기면서.-162-163쪽

행복은 마음에만 있는 게 아니라 사회 속에서 쟁취하고 학습하는 것이며 또 전이되는 것이다. 우리는 어린아이 속옷에, 팬시용품에 값싸게 수놓아진 장식으로서 happy가 지천인 사회에 산다. 하지만 불합리한 문제들이 있을 때마다 "원래 그렇다'는 말밖에 들려주지 않는 이 사회는 얼마나 행복할까. 결코 납득할 수 없는 편협한 정상이 활개를 치는 한, 이 사회의 행복은 버석거리는 포장지로만 존재하는 공허한 사기일 뿐이다.-199쪽

일찍이 부르디외가 명쾌하게 일갈한 바 있듯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취향이란 많은 사람들이 흔히 착각하는 것처럼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출신계급과 교육수준, 집안 환경 등이 촘촘히 얽혀서 구조적으로 생산되고 또 확산된다. 개인의 의지로 쉽게 떨쳐낼 수 없는 유기적 습성이다.-209쪽

예술가들은 그들이 인식하건 하지 않건, 숙명적으로 기존 미학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미학의 전선을 구축해 가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진정한 예술가들이 모두 아방가르드일 수밖에 없고, 그들의 작업 내용이 사회 참여적인지 혹은 정치적인지와 무관하게 정치적인 목적에서 유리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같은 맥락에서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창작하는 행위는 최종적으로 자신의 소우주를 건설하기 위해 가장 구체적인 실천이 될 것임은 물론디다. -221쪽

최근 들어 깨달은 좌와 우에 대한 가장 명확한 정의는 전자는 생명을 지향하고 후자는 죽음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정신의 무한한 자유를 추구하고 모든 살아있는 것들과 조화로운 상생을 꿈꾸며 깨어있는 존재가 좌파라면, 텔레비전 앞에서 일생의 대부분을 보내면서 일찌감치 자신의 영혼을 무덤 속에 파묻고 보수언론의 선동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생태를 파괴하는 것이 발전이라고 믿는 쪽이 우파다. 우파가 가장 싫어하는 좌파의 부류가 생태주의자라는 사실이 어떻게 우연일까.-290쪽

좁디 좁은 잣대가 가두어 놓은 '정상'과 '합법'의 틀을 표면적으로나마 벗어나지 않으려 애쓰다 거기서 밀려나면 좌절하고 소외되는 어리석음이 이 격렬하게 요동치는 한국사회엔 지천으로 널려있다. 나는 두려운 것이 없다,고 말하고 나면 두려운 것이 없어진다. 우리가 갖는 두려움의 실체는 결국은 타인의 판단과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다. 모든 판단과 평가가 내 안에만 있다면, 두려움 따윈 정복하고 살 수 있다.-3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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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6년 8월
구판절판


호퍼의 작품은 잠시 지나치는 곳과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마치 우리 자신 내부의 어떤 중요한 곳, 고요하고 슬픈 곳, 진지하고 진정한 곳으로 돌아온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의 작품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기억하는 것을 돕는다. '우리자신'을 잊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문제는 실제적인 자료를 말 그대로 잊는 것이 아니다. 우리 자신의 완결성이나 행복의 느낌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우리 내부의 어떤 특정한 부분을 잊는 것이다.-15쪽

비행기는 넓은 세상의 상징으로, 그 안에 자신이 건너온 모든 땅의 흔적을 담고 있다. 그 영원한 이동성은 정체와 속박으로 답답해진 마음에 상상의 평형추를 제공한다.-30쪽

어쩌면 침묵과 어줍음은 욕망의 애처로운 증거로서 용서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상대에게 무관심한 사람은 능란한 유혹 솜씨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어줍게 유혹하는 사람이야말로 상대를 향한 진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관대하게 봐줄 수도 있다. 정확한 말을 찾지 못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정확한 말을 의도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다.(말로 표현하지 못할 뿐)-48쪽

고용자와 피고용자 사이에 어떤 동지애가 이룩된다 해도, 노동자가 아무리 선의를 보여주고 아무리 오랜 세월 일에 헌신한다 해도, 노동자들은 자신의 성과와 자신이 속한 조직의 경제적 성공에 의존한다는 것, 자신은 이윤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 감정적인 수준에서 늘 갈망하는 바와는 달리 결코 그 자체로 목적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결국 노동자는 늘 불안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것은 매우 슬픈 일이지만, 사실 우리가 현실에 눈을 감고 일에 대한 기대를 극단적인 수준으로 올려버릴 때와 비교하면 반도 슬프지 않다. 인생은 고통일 수밖에 없다는 확고한 믿음은 수백 년 동안 인류의 가장 중요한 자산의 하나였다. 이것은 마음이 독에 물드는 것을 막아주는 보루가 되기도 했고, 좌절밖에 기다리는 것이 없는 희망의 길로 가는 발걸음을 막아주는 보호벽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근대적 세계관이 배양한 기대가 이 보루와 보호벽을 잔인하게 제거해버리고 말았다. 이제 휴가를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오면, 일이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 쪽이 일을 견디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두는 것이 좋겠다.-82-83쪽

호흐의 예술은 우리가 매우 모호한 관계를 맺고 있을 수도 있는 부르주아라는 단어에서 긍정적인 연상들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 부르주아라는 말은 부정적인 함의가 가득해 보인다. 이 말은 순응, 상상력부족, 경직, 현학, 속물근성을 암시하는 것 같다. 그러나 호흐의 세계에서 부르주아는 소박하지만 매력적인 옷을 입고, 너무 천박하지도 않고 또 너무 허세를 부리지도 않고, 자식들과 자연스러운 관계를 맺고, 방탕한 상태로 빠지지 않으면서도 감각적 기쁨들을 인정한다. 꼭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중용의 화신 같다. 호흐의 작품들은 소박한 생활, 예컨대 저녁 식사, 집안일, 친구들과 한잔 기울이는 것의 재미와 가치를 일깨워주는 귀중한 임무를 수행하여, 평범한 일상에서 속물적으로 탈출하고자 하는 헛된 야망과 유혹을 진정시켜준다.-116쪽

위대한 책의 가치는 우리 자신의 삶에서 경험하는 것과 비슷한 감정이나 사람들의 묘사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보다 이들을 훨씬 더 잘 묘사하는 능력 또한 중요하다. 독자가 읽다가 이것이 바로 내가 느꼈지만 말로 표현을 못하던 것이라고 무릎을 쳐야하는 것이다.-126쪽

이런 희미한, 그럼에도 치명적인 떨림을 포착하는 데 모든 관심을 쏟는 책을 읽다 보면, 그 책을 내려놓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뒤에도 작가가 우리와 함께 있다면 반응을 보였을 만한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우리의 정신을 새로 조율된 레이더처럼 의식을 떠다니는 대상들을 포착한다....... 이제 우리는 전에는 지나쳤던 것들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하늘의 음영에, 한 사람의 얼굴의 변화무쌍함에, 친구의 위선에, 이전에는 우리가 슬픔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상황으로부터 밀려오는 축축하게 가라앉은 슬픔에.-128쪽

농담이 비판에 특별히 효과적인 것은, 겉으로는 즐거움만 주는 것처럼 보이면서 은근히 교훈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만화는 권력 남용을 비판하는 설교를 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만화를 보면서 낄낄거리다가 어느새 만화의 권위 비판이 적절하다고 인정하게 된다.-135쪽

마음이 상냥한 만화가들은 지위로 인한 우리의 근심을 보고 우리를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놀린다. 그들은 우리가 기본적으로 괜찮은 사람이라는 전제하에 우리를 비판한다. 그들의 교묘한 솜씨 덕분에 우리는 마음을 열고 웃음을 터뜨리며 우리 자신에 관한 씁쓸한 진실을 받아들인다. 만일 그들이 다른 사람들처럼 우리를 비난했다면, 우리는 분노하거나 상처를 입고 움츠러들었을지도 모른다.-1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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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9-01-08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통 책 중에 제가 아직 안 읽은 책이네요. :) 혜경님이 리뷰 올려주시면 읽어보고 지를까 결정해야 겠어요. 크크 리뷰 안 써주신다구요? 그럼 어쩔 수 없구요. ㅋㅋ

프레이야 2009-01-08 22:57   좋아요 0 | URL
보통 산문의 결정들만 골라있다고 해도 좋아요.
놓치고 싶은 문장이 없을 정도에요. 얇고 가볍고 이쁜 표지에요.
지르셔도 좋을듯, 어여쁜 장미님^^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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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엄마가 된 건 스물여덟 살 때였을까. 아니면 그 이전 소꿉놀이 시절의 엄마역할 때부터였을까. 그때부터였다면 난 그때 엄마역할에 만족했었나? 분명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아했던 기억이 난다. 어리광을 부리는 아이 역할이나 굵은 목소리를 내는 아빠 역할을 더 하고 싶어했다. 몇 명이 어울려 놀 땐 역할을 바꾸기도 했지만, 혼자 소꿉놀이를 할 때면 자연스레 나는 엄마가 되어있었다. 그리 바라지도 않았던 역할인데도.

 <엄마를 부탁해>는 엄마이기를 강요당한, 엄마가 필요했던, 영원히 딸이고 싶었던, 딸의 이야기다. 작품 속에는 박소녀를 비롯해 두 딸이 나온다. 그들 세 딸 안에 ‘엄마’는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숨거나 드러난다. ‘엄마’들은 복합적으로 내 안에 살고 있는 세 가지 얼굴이기도 하다. 거부하고도 싶고 애틋한 연민이 일기도 하고 굳세게 강한 힘을 발휘하기도 하는. 책장을 다 덮고 나니 모순으로 상충하는 내안의 엄마, 를 부탁하고 싶다는 자조의 말이 슬몃 나오기도 했다.

 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데서부터 이야기는 시작한다. 진짜 이야기는 오래전 엄마가 어린 아이였을 적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스토리는 도시적인 생활을 해온 독자가 보기에는 현실감이 없을 정도다.(그럼에도 어디서나 본 듯한 소눈을 가진 여인으로 누구나에게 기억됨으로 보편성을 얻는다)그만큼 박소녀가 넘어온 생의 굴곡이 험난하고 그녀 삶은 가시울타리 안의 것처럼 보인다. 빠져나가려면 가시에 찔려 피투성이가 될 수밖에 없어서 차라리 돌아서 앉아 울음을 삼키는 게 나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엄마로서 살아야하는 가시울타리 안의 삶을 슬픔과 절망만으로 덧칠하지 않았다. 독특하게도 화자를 달리하며 육성으로 들려주는 듯한 박소녀의 징글징글한 삶 속에 언뜻언뜻 보이는 환희와 자부심이 읽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엄마'에게서 희망을 읽으라면 그런 곳에서 찾고 싶다.

 그녀의 삶은 두터운 한 권의 점자책이다. 점자도서관에서 점자책을 앞에 두고 느꼈던 일로 소설가 큰딸이 엄마를 알아가는, 잃어버린 엄마를 찾아가는 긴 이야기가 시작된다. '우리는 엄마를 얼마만큼 알고 있을까.' 우리가 바라는 대로 보고 역할을 강요하지는 않았는지. 엄마라는 이름표를 달아주고 발목을 붙잡고 있진 않았는지. 엄마의 눈을 보고 이야기 한 지는 얼마나 되었는지. 보고 만진다 해도 해독이 되지 않는 점자책 앞에서 까막눈으로 살아온 딸의 회한이 낡은 필름처럼 이어진다. 글을 못 배운 인간 박소녀가 큰딸이 쓴 소설이 자랑스러워 그걸 누군가의 목소리를 빌어서라도 읽은 것, 매달 적지 않은 돈을 불우아동에게 나눈 것, 생의 고비마다 정신적인 힘이 되어준 비밀 같은 사람에 대한 소중한 추억. 그런 것들을 다 열거하지 않더라도 이름처럼 ‘소녀’의 꿈을 안고 살았던 엄마도 외국의 낯선 풍광에 빠져보고 싶고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의 장미묵주를 그래서 상징적으로 갖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밝은 면을 보는 쪽은 딸보다 오히려 아들이었다. 엄마의 삶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엄마의 삶을 그렇게 슬프게만 생각하는 건 우리의 죄의식이 갈구하는 하나의 자위일지도 모른다는 말이었다.

 딸은 좀 다르다. 특히 작은딸은 아이를 셋이나 두고 전문직까지 있으면서 안팎으로 힘든 생활을 꾸려가면서 생각한다. ‘과연 엄마가 부엌에 들어가는 걸 진짜 좋아했을까.’ ‘아무리 그래도 나는 엄마처럼 할 수 없어.’ 사회적 역할은 물론이고 아들과 딸이 당면한 소소한 문제들이 다르니 딸이 보는 엄마는 좀 더 구체적으로 애잔하다. 엄마라는 자리가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덕목이 희생이나 인내, 자비 같은 것이라면 박소녀는 아주 적격의 엄마이지만, 그녀도 딸에게 소리치고 투정할 때는 엄마가 아닌 딸이 되고 싶은 것이다. 그럴 때면 성인이 된 딸은 엄마 역할을 한다. 이 역할은 큰딸에게서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큰딸은 아직 진짜 엄마이진 않지만 늘 엄마가 안타까운 그래서 어쩌면 엄마 되기를 미루고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머나먼 땅, 피에타상 앞에서 엄마를 부탁해, 라고 말하며 속죄라도 하려는 것일까. 이제는 자신의 시야에서 멀어진 엄마에 대한, 동시에 내재된 자신의 '엄마'에 대한 좀 더 홀가분한 주문 같기도 하다. 여동생은 엄마를 포기하지 말고 찾아달라고 언니에게 부탁했지만 언니는 오히려 엄마를 놓아주고 싶어한다. 엄마에게 무기한의 자유여행의 시간을 부여하고 싶었던 것으로 읽힌다.

 두 딸들과 아들에게 엄마 박소녀는 실종자로 남았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몸을 숨긴 건 아닌지, 상상해보면 슬근슬근 웃음바람이 난다. 투명인간처럼 혹은 전지자처럼 보고 듣고 서술하며 자신의 모든 걸 토로하는 마지막 장에서 그녀는 오래전 사라진 것들에 대한 그리움, 온정에 대한 갈망,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을 하염없이 풀어낸다. 사랑과 욕망을 이야기하는 그 어조가 아련한 슬픔 위에 너울너울 춤을 추는 듯하다. 그녀에게도 그녀처럼 품 넓은 ‘엄마’가 필요했음을, 뒤늦은 후회를 하는 남편과 아들은 딸보다 더디 아는 것 같다. 수많은 엄마와 그 속의 '엄마'는 오늘 하루도 잘 지내셨는지, '엄마'를 잃어버린 우리들 가슴에 '엄마'를 회복하는 일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하는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단 하루만이라도 엄마와 같이 있을 수 있는 날이 우리들에게 올까? 엄마를 이해하며 엄마의 얘기를 들으며 세월의 갈피 어딘가에 파묻혀버렸을 엄마의 꿈을 위로하며 엄마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올까? 하루가 아니라 단 몇 시간만이라도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엄마에게 말할 테야. 엄마가 한 모든 일들을, 그걸 해낼 수 있었던 엄마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엄마의 일생을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p262)

 작은딸이 큰딸인 언니에게 눈물로 쓴 편지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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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집 2008-12-30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아요.
저도 이 책을 눈물 찔끔거리며 읽었답니다.
친정 부모님이 농사를 짓는지라
작가 엄마의 이야기에 공감이 많이 되었어요.

프레이야 2009-01-03 19:23   좋아요 0 | URL
신파조라는 말도 있지만 공통분모 같은 슬픔의 정서가 묻어나요.
그렇군요, 소나무집님.^^

순오기 2008-12-31 0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참 전에 읽었지만 리뷰를 쓸 수 없었던 책.
올해가 가기 전에 해야 할 또 하나의 숙제~~~
그댁의 엄마는 안녕하시겠죠.

프레이야 2009-01-03 19:24   좋아요 0 | URL
엄마는 안녕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하고 그래요.
엄마로서 강건하기를..

BRINY 2008-12-31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이 왜 이 책 리뷰를 안쓰실까 궁금했더랬습니다.

프레이야 2009-01-03 19:24   좋아요 0 | URL
브리니님, 그랬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