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늘 가지고 싶어 했던 그것. 세상의 논리를 시선 하나로 간단히 유린하고, 경쟁의 뜀박질에서 슬쩍 비껴나 울울창창한 숲 속에서 자신의 열매를 가꾸는 사람들에겐 언제나 그런 성이 있다. 누군가는 그것을 지하실이라고 표현하고, 자크 뒤아멜(1970년대초 프랑스 문화부 장관)은 '자신만의 소우주'라고 표현한다.-38쪽
이 공간은 소비를 종용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언가를 생산하는 것도 아니었다. 경제적 가치에 이바지하거나 효율이나 화합 등 공동체를 위한 어떠한 미덕에도 기여하는 바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의 노동력을 요구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나는 분명 언어적 표현을 넘어서는 이 공간의 매력에 압도당했다.-46쪽
똘레랑스가 프랑스 사회를 유연하게 만드는 여러 개의 벽돌이라면, 연대는 그 벽돌 사이를 메우는 유연하게 메워주는 풀이다. 이 풀은 원한다면 언제고 떼어내고 다시 결합할 수 있어 아나키스트적 운동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68쪽
가장 급진적인 정치집단도 '시민'이나 '우리'라는 표현을 쓴다고 한다. 말하는 자와 듣는 자를 가르지 않는 '우리'는 운동을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든다....... '우리'는 전쟁을 원하지 않는 파리의 뉴요커까지도 포함할 수 있지만, '민중'은 마치 나를 그 단어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인 것처럼 낯선 존재로 만들어 문제에서 내쫓아버린다. 선동하는 자와 선동 당하는 대상을 가르고 이끄는 자와 이끌리는 대상을 나누는 사고는 운동을 수직적인 권력구조에 가두고 수평적 연대를 방해할 뿐이다.-72쪽
나와 희완은 아이가 어떤 사회적 억압이나 고정관념도 물려받지 않고, 당당하고 자유로운 정신으로 인생의즐거움을 누리길 바란다. 모든 사회에 존재하는 관습의 폭력과 인간 스스로 자신을 갉아먹도록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해 재생산되는 자본 중심의 가치관들... 부지불식간에 그 모든 것의 포로가 된 것을 자각하고, 거기에서 벗어나려 쏟아 부어야 했던 그 엄청난 에너지. 아이가 그 소모적인 시간들에 구속받지 않고 최대한 자유로운 자아를 지닐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133쪽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는 '죽음'을, 생태의 복원과 성과 인종에서의 평등, 문화다양성, 공정무역 등을 주장하는 좌파의 질서는 공존하는 '생명'을 향한다는 희완의 통찰은 완벽하게 옳다.-139쪽
세상의 모든 자장가는 평화로우면서도 구슬프다. 전쟁과 실업 그리고 기아라는 세계 공통의 비극이 인류를 뒤덮는 동안, 그녀들은 품에 꼭 끌어안은 아이의 달콤한 살 냄새를 맡으며 고달픈 삶을 위로 받았을 것이다. 애절할 수밖에 없는 곡조는 평화와 소박한 행복을 비는 그녀들의 주문 같았다.-157쪽
나의 색깔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가장 유의해야 할 것은 '한 우물' 이데올로기의 강박으로부터 탈출이다....... 집단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이 한 영역씩 맡아서 한 우물을 죽어라 파주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러나 각 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그건 어쩌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인생일 수도 있다. 난 이 거대한 사회의 나사가 아니다. 나 혼자서도 하나의 거대한 우주를 구성할 수 있다. 여러 우물을 파면서, 세상의 모든 재미를 두루 즐기면서.-162-163쪽
행복은 마음에만 있는 게 아니라 사회 속에서 쟁취하고 학습하는 것이며 또 전이되는 것이다. 우리는 어린아이 속옷에, 팬시용품에 값싸게 수놓아진 장식으로서 happy가 지천인 사회에 산다. 하지만 불합리한 문제들이 있을 때마다 "원래 그렇다'는 말밖에 들려주지 않는 이 사회는 얼마나 행복할까. 결코 납득할 수 없는 편협한 정상이 활개를 치는 한, 이 사회의 행복은 버석거리는 포장지로만 존재하는 공허한 사기일 뿐이다.-199쪽
일찍이 부르디외가 명쾌하게 일갈한 바 있듯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취향이란 많은 사람들이 흔히 착각하는 것처럼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출신계급과 교육수준, 집안 환경 등이 촘촘히 얽혀서 구조적으로 생산되고 또 확산된다. 개인의 의지로 쉽게 떨쳐낼 수 없는 유기적 습성이다.-209쪽
예술가들은 그들이 인식하건 하지 않건, 숙명적으로 기존 미학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미학의 전선을 구축해 가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진정한 예술가들이 모두 아방가르드일 수밖에 없고, 그들의 작업 내용이 사회 참여적인지 혹은 정치적인지와 무관하게 정치적인 목적에서 유리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같은 맥락에서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창작하는 행위는 최종적으로 자신의 소우주를 건설하기 위해 가장 구체적인 실천이 될 것임은 물론디다. -221쪽
최근 들어 깨달은 좌와 우에 대한 가장 명확한 정의는 전자는 생명을 지향하고 후자는 죽음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정신의 무한한 자유를 추구하고 모든 살아있는 것들과 조화로운 상생을 꿈꾸며 깨어있는 존재가 좌파라면, 텔레비전 앞에서 일생의 대부분을 보내면서 일찌감치 자신의 영혼을 무덤 속에 파묻고 보수언론의 선동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생태를 파괴하는 것이 발전이라고 믿는 쪽이 우파다. 우파가 가장 싫어하는 좌파의 부류가 생태주의자라는 사실이 어떻게 우연일까.-290쪽
좁디 좁은 잣대가 가두어 놓은 '정상'과 '합법'의 틀을 표면적으로나마 벗어나지 않으려 애쓰다 거기서 밀려나면 좌절하고 소외되는 어리석음이 이 격렬하게 요동치는 한국사회엔 지천으로 널려있다. 나는 두려운 것이 없다,고 말하고 나면 두려운 것이 없어진다. 우리가 갖는 두려움의 실체는 결국은 타인의 판단과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다. 모든 판단과 평가가 내 안에만 있다면, 두려움 따윈 정복하고 살 수 있다.-3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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