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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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사는 것 같았다. 적대적인 두 부류는 서로를 미워하면서 다른 편이 하는 말은 듣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젊은 로바트 부부는 본능적으로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신문도 읽고 텔레비번 뉴스도 보았다. 소중한 세 아이가 양육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안전과 평안과 친절 속에 그들을 담그기 위해 찾아오는 자신들의 왕국, 이 요새 밖에서 적어도 무슨 일이 진행되는지는 알아야 했다.-32쪽

잠시 동안 이질적인 삶의 두 가지 형태가 만나고 있었다. 애들은 어떤 오랜 원시의 일부가 되어 피가 아직도 그것으로 뛰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가족과 합류하면서 야성적 자아를 버려야했다. 해리엇과 데이비드는 자신들의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과 상상을 통해 이 일을 애들과 함께 공유했다. 그들은 분명히 볼 수 있었다. 길들여지고 가정적이며 야생과 자유로부터 멀어진 불쌍하기조차 한 모습으로 거기 앉아 있는 두 어른인 자신들을.-102-103쪽

의사의 얼굴에서 그녀는 자신이 기대했던 것을 보았다. 그 여인이 느끼고 있는 것이 투영된, 어둡고 고정된 시선이었다. 그것은 인간 한계를 넘어서는 것에 대한 정상인의 거부, 이질성에 대한 공포, 또한 벤을 낳은 해리엇에 대한 공포였다.-143쪽

그 애는 갈구했다. 온몸의 구석구석까지. 그런데 무엇을? 자기 어머니의 팔은 그 애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전쟁과 폭동, 살인과 비행기 납치, 살인과 강탈과 유괴...... 1980년대. 야만적인 80년대가 본 궤도에 올랐고 폴은 텔레비전 앞에 누워 기거나, 방안을 서성대다가 텔레비전을 보면서 밥을 먹었다. 그런 양분을 먹고 자라는 것 같아 보였다.-145쪽

그리고 데이비드는 이제까지 해왔던 식으로 일하느라 가정적인 남자로서의 자아를 잃어버렸다..... 이제 그는 자신이 한때 결코 되지 않겠다고 결심한 그런 종류의 사람이 되었다..... 자신에 대한 완고한 신뢰에서 오는 솔직함과 개방성이 데이비드에게서 사라지고 대신 새로운 자만심이 자리잡았다....... 그러나 그는 완고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에게서 그녀가 느끼는 딱딱함은 인내심이었다. 그는 만사를 버티어내는 방법을 알았다. 그 두사람은 여전히 비슷했다.-152쪽

'벤을 보면 생각하게 돼요. 이 지상에서 한때 살았던 모든 다른 사람들, 그들이 어딘가 우리 내부에도 틀림없이 있다고요.'
'폭 하고 솟아오르려고 항상 대기하고 있지! 하지만 그럴 때 우린 그저 그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거야.'
도로시가 말했다.
'우리가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죠.' 해리엇이 말했다.-154쪽

그녀는 그 애가 영위해 오던 이 생활 아래에 감추어져 있던 또 다른 벤을 보았다. 그녀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그 애는 한번에 훌쩍 뛰어서 처마끝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녀가 볼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끝이 없어 보이는 다락의 어둠뿐이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다. 그 애는 그곳에 웅크리고 앉아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는 머리카락이 서는 것을 느꼈고 차가운 전율을 느꼈다. - 본능적인. 이성으로는 그 애를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공포로 온몸이 뻣뻣해졌다.-157쪽

그러나 그녀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 살해당하는 것으로부터 그 애를 구했기 때문에 그녀는 자기의 가족을 파괴했다. 그녀 자신의 인생에 해를 끼쳤다....... 희생양. 그녀는 희생양이었다. - 해리엇, 가정의 파괴자.(중략)
'우린 벌 받는 거야. 그뿐이야.'
'잘난 척했기 때문이야. 우리가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해야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에 행복해서.'-158-159쪽

해리엇은 추종자들과 함께 있는 벤을 지켜보면서 자신과 같은 종족들과 함께, 동굴 입구에서 타오르는 불길을 둘러싸고 웅크리고 있는 그 애의 모습을 상상하려고 애썼다. 아니면 무성한 숲속의 오두막촌? 아니야, 벤의 무리는 지하에 있는 것이 더 편할 거야. 깊은 땅속, 횃불로 밝힌 검은 동굴 속이 더 그럴듯하다고 그녀는 확신했다. 아마도 그 애의 이상한 눈은 이 세상과는 아주 다른 빛의 상태에 적응하기 위한 것일 거야.-164쪽

사려깊은 눈? 사람들은 그가 생각하고 있다고, 그가 보는 것으로부터 데이타를 취해서 정리하고 있다고 믿을 수 있다. 그러나 그녀도 또는 어느 누구도 짐작할 수 없는 어떤 내적인 양식에 따라서였다. 미숙하고 덜 떨어진 청년들에 비하면 그는 원숙한 존재였다. 완성된, 완전한. 그녀는 그를 통하여 인간성(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든 간에)이 무대를 차지하기 수천만 년 전에 정점에 도달했던 종족을 바라보고 있다고 느꼈다.-175쪽

벤이 태어난 이후 권위를 가진 모든 사람들이 벤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어떻게 보는 것일까? 사람들은 항상 그를 제대로 보는 일을, 그의 본질을 인식하는 일을 거부할 것인가?-1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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