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한강 지음 / 비채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엄마가 집에 돌아오셨다. 일주일이 넘는 동안 병원에서 검사받고 수술날짜 조마조마 기다리고 8시간의 긴 수술을 받고, 이제 집에 계신다. 방금 통화를 해보니, 아직 배변이 순탄해지려면 적응기간이 필요한지 다소 불편함을 감수하고 계신 눈치다. 6월 27일 아침, 엄마가 병원환자복을 입고 병실에 누워있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그동안 그런 호강 한 번 누릴 틈도 없이 바쁘게만 살아오신 분이기에 더욱 낯설어보였다. 수술예정 한 시간 전, 간호사가 오더니 콧줄을 꽂기 시작했다. 위 속까지 내려가야 하는 초록색의 기다란 줄이 사정없이 엄마의 왼쪽 콧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평소에도 통증을 잘 못 견뎌하시는 엄마는 무척 고통스러워하시며 손을 내저었다. 조금만, 다 됐어요. 잘 참네, 엄마. 고통이 언제 예고하고 찾아오던가. 토할 것 같다고 계속 호소하는 엄마에게 그냥 기분이 그런 거니 삼켜야한다는 간호사의 말만 전하며 곁에서 바라볼 수밖에 내가 해드릴 게 없었다. 엄마의 짧지 않은,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엄마는 살아오면서 여행가방을 챙겨본 일이 거의 없다. 아니 내가 본 기억으로는 단한 번도 없다. 일주일간의 병원생활을 여행 삼아 엄마는 가방을 두 개나 싸셨다. 콧줄을 꽂은 엄마가 잠시 숨을 돌리고 있을 때 나는 옆에서 뭐라고 계속 중얼거리며 엄마의 가방속을 살폈다. 먼저 눈에 뜨인 건 하얀 바탕에 자잘한 꽃무늬가 나염된 팬티들. 곱게 개어 작은 비닐팩에 차곡차곡 넣어오셨다. 노랑꽃, 파랑꽃 두 가지의 색상으로 골고루 새로 산 듯했다. 분명 새것이었다. 수술 전 속옷도 모두 벗어야하고 나중에 수술을 하고 나서는 시큼한 분비물을 받기 위한 커다란 패드를 하고 계셔야 하니 아무런 필요가 없을 껍데기들. 그래도 퇴원하는 날엔 이걸로 갈아입고 얼마나 뿌듯하셨을까. 그날 내 눈에 처음 뜨인 그 보송보송한 팬티들이 엄마의 마음이다. 그속엔 엄마의 '봄날에 대한 그리움, 여자로서의 아름다움, 그 모든 것에 대한 생의 자부심' 같은 게 원색으로 프린트 되어있다. 그 외에도 나무젓가락, 빨대, 영양크림에 헤어롤까지, 그리고 보호자가 덮을 얇은 이불에 쿠션까지. 엄마의 여행가방 속엔 없는 게 없을 정도였다. 한 가지 깜박, 책을 못 넣어 왔다고...

 수술 후 4일쯤 지나고 거동이 좀 나아지자 병원 가톨릭원목에서 빌려주는 책을 한 권 얻어 읽고 계셨다. 그 많던 싱아는 어디로 갔을까. 어? 이 책 집에도 있는데. 책 읽게 될 것 같지 않아서 안 갖다드렸는데... 3일 정도 엄마는 밤마다 끙끙 앓는 소리를 하셨고 그 바로 아래 보호자침상에 모로 누운 나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하루는 병실 바로 앞에 의자를 내어놓고 복도천장의 밝은 형광등 불빛아래서 꼬박 밤을 새워 책을 읽었다. 엄마가 좋아하실 만한 시집이라도 갖다드릴 걸 그랬나 싶었는데 이럭저럭 퇴원날짜가 다가왔다. 담도암이 재발하여 들어오신, 옆 침대의 아주머니는, 공부 다 했소?, 이렇게 간간이 창밖을 내다보는 엄마에게 묻곤 하셨다.

 엄마의 수술 하루 전날, 아무 걱정 말고 오늘밤 푹 주무시라고 전화를 드린 뒤, 뒤숭숭한 마음으로 펼쳐든 책이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다. 알라딘의 아름다운 님이 선물로 주신 이 책을 그동안 고이 꽂아두고 손을 안 대고 있었는데 내 손이 자연스럽게 이 책에게 뻗어갔고 흡착된 듯 책장을 넘겨갔다. 부록으로 들어있는 음반은 이미 여러 번 들었고 책표지만 뚫어져라 보았던 책이다. 흑백 사진 한 컷. 반듯한 창이 하나 있고 창밖으론 물방울마냥 아롱대는 나뭇잎들이 가만가만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 위로 ‘가만가만’이라는 붉은 글자는 가볍게 어깻짓을 하는 듯 갸우뚱하니 서 있다. 창가에 놓여있는 낙서장 같은 노트와 가죽손목시계, 열쇠꾸러미, 물을 마시다 남겨둔 유리잔 그리고 여권. 소속이나 존재의 증명수첩 같은 것일까. 작가는 지금 이 창가에서 두어 발짝 물러서 한갓진 벽에 기대어 창밖을 보고 있다. 분명! 그녀의 음색은 속지처럼 고운 라벤더 색이었는데 그녀의 글은 조금 더 연하게 푼 라벤더 색이었다.

 작가, 한강을 이 책으로 처음 만났다. 차분하고 맑은 음색만큼 그녀의 글들이 내게 가져다준 위로감이란 말할 수 없이 포근하고 잔잔하였다. 무덤덤한 척 했지만 떨고 있을 엄마 그리고 나. 그리 오랜 세월을 살았다 말할 수 없는 젊고 어여쁜 작가의 글이 조근조근 들려주는 목소리가 이렇게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줄이야. 고통이 느닷없이 찾아오듯 위무도 그렇게 느닷없이 덮쳐오는 것이다. 잊을 수 없는 인연이란 적절한 '때'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숨소리 한 마디도 흘려듣지 않을 것 같은 한강의 섬세한 마음결을 따라 서서히 내 마음이 풀려갔다.

 

 마음의 파장이 몰고 오는 리드미컬한 손길,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글도 노래다. 세상의 모든 음파를 몸의 현으로 받아서 되돌려 풀어주는 그녀의 글은 충분히 소소하고 그래서 더욱 값진 공감대를 울려댔다. 유년의 기억과 성장기의 통과의례를 거치며 그녀가 놓치지 않고 몸으로 담아내는 체험과 정서, 성년이 되어서도 녹록하지만은 않을 생의 편린들이 그녀의 노래 같은 글 속에서 소박한 빛으로 재생되었다. 그리고 그걸 나누어 갖는 나는 뜻밖에 다가오는 위로의 말들에 눈시울이 젖어왔고 떨리던 가슴이 조금씩 진정되어 감을 느꼈다. 누군가의 흑백 사진첩을 넘겨가며 울고 웃던 사연들을 들은 듯, 누구에게나 있었음직한 추억의 영상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갔다.

 가장 마음에 든 장은 ‘2장 귀기울이다’이다. 그녀의 미려한 마음의 현을 울려댔던 노래들, 그 하나하나의 가사와 사연 그리고 누구와도 공유되지 않는 고유한 감정의 선율과 누구와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내가 좋아하고 노래방에서 부르기도 하는 'You Needed Me'를 비롯해 이십대 시절 언젠가 딱 한 번 주왕산을 오르며 직장후배와 불렀던 ‘보리밭’까지. 그리고.. Let it be, let it be, let it be ~~ let it be...

 내가 요즘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는 이적의 3집, 두번째 노래 ‘다행이다’이다. 엄마는 수술 후 이틀이 지나자 거울을 수시로 보며 머리를 빗고 기미가 늘었다느니 얼굴이 얄궂다느니 엄살을 부렸다. 수술을 마치고 난 직후 중환자실에서 본 엄마의 퉁퉁 부어오른 얼굴에 가슴이 아팠는데 이틀이 지나자 엄마는 환자 같지 않게 복사꽃 같은 혈색이셨다. 그렇게 엄살섞인 말을 하는 건 얼굴이 참 좋다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이다.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에 갈 때마다 거울을 보고 머리를 손빗으로 빗곤 했는데 한 번은 뒷머리를 내 손으로 빗어드렸다. 숱이 없고 모발이 약한 엄마의 머리카락이 손가락 끝에 닿았다. 너무 부드러워 부서질 것 같았다.

 그대를 만나고/그대의 머릿결을 만질 수가 있어서/그대를 만나고/그대와 마주 보며 숨을 쉴 수 있어서/그대를 안고서/힘이 들면 눈물 흘릴 수가 있어서/다행이다/그대라는 아름다운 세상이 여기 있어줘서...... 그대를 만나고/그대의 머릿결을 만질 수가 있어서 

 *꼬리말 : 이번 엄마일로 마음 써주시고 기도해 주신 그대, 아름다운 님들 모두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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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08 18: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07-08 20:38   좋아요 0 | URL
그러셨군요. 정말 힘드셨겠어요. 전 일주일간 매일 들락거리고 몇밤은 밤새고
그랬던걸로도 고단함이 쌓이더군요. 할머니 병간호까지 지극으로 하셨다니
토닥토닥.. 님, 살아갈수록 장담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싶어요. 그중에서
도 건강은 더욱 그렇구요. ^^

비로그인 2007-07-08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술 후에 여자환자분이 머리를 빗으면, 담당의사들이 그걸 보고
'오.. 많이 회복되셨구나.' 한답니다.
어머님의 회복 속도가 빠르시군요. 다행입니다. 혜경님.


프레이야 2007-07-08 20:39   좋아요 0 | URL
네, 한사님, 그런가봐요^^
드시고싶은게 많은가본데 조금씩 가려가며 적응하시면 좋겠어요.
아직 장기능이 정상이 아닐텐데 마음이 앞서가니 말에요. 고맙습니다.^^

다락방 2007-07-08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의 글을 읽으면 언제나 느끼는 바이지만 참 열심히 사시는것 같아요.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으셔도 그걸 그대로 넘기는 법 없이 이토록 긴 글로 감상을 얘기하시니 말여요. 그토록 열심히 사시는 분이시니, 삶도 내치지 않을거라 보여집니다. 어머님의 회복은 그래서 당연한 듯 보여집니다. 다행이예요 혜경님.

프레이야 2007-11-08 08:00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격려 고맙습니다.^^
여덟살 연상의, 당신보다 훨씬 늙은 남편을 애처로워하는 모습에서 보았어요,
부부의 정을요. 마음은 있으면서 다정하게는 못 대하시는 그 어쩔수없음도요^^
그래도 모든게 다행이지요...

로드무비 2007-07-09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의 꽃무늬 팬티, 성글고 부드러운 머리카락, 모두 눈물겹네요. 어머니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프레이야 2007-11-08 08:00   좋아요 0 | URL
로드무비님, 머리밑이 훤히 보이는 머리 보며 안쓰럽더이다.
기원의 말씀 정말 고맙습니다.^^

비로그인 2007-07-09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입니다. 좋은 소식 감사합니다. 마음고생 많으셨던 혜경님도 한 시름 덜으시길 바랄게요.
:)

프레이야 2007-07-09 12:41   좋아요 0 | URL
체셔님 기도 덕분이에요. 고맙습니다. 아직 마음 다 놓을 상태는 아니지만
얼마나 다행인지요..

2007-07-09 1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07-09 12:43   좋아요 0 | URL
님, 지금 그대로 얼마나 좋은 엄마이신데요.
고민하는 건 그만큼 나아지려는 것이지요. 아자아자, 힘내시고요..
고마워요^^

소나무집 2007-07-09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느껴지네요.
함께 밤도 새우셨군요.
한강은 대작가 한승원의 딸이 아닌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 작가지요.

프레이야 2007-07-09 12:49   좋아요 0 | URL
네, 차츰 한강을 만나볼 테에요.^^
밤이면 앓는소리를 하시곤 했어요. 수술부위 통증은 무통주사로 견디기
쉬었는데 가슴이 답답하다고 숨을 못 쉬겠다고 그러셨어요. 입술도 탄다고
계속 손수건에 물 적셔서 드렸어요. 물은 마실 수 없었으니..
제가 아이를 낳았을때 옆에 며칠씩 있어준 사람이 엄마인데...

2007-07-09 1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07-09 12:46   좋아요 0 | URL
어머니 일은 잘 되시리리 믿어요!! 제 동생도 무탈하니 잘 지내거든요.
너무 걱정 마시라 말씀 드리세요. 미리 걱정한다고 이로울 게 하등 없지요.
님도 마음 굳게 먹고 기다리시구요.

홍수맘 2007-07-09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얘기를 들으면서 제가 위로 받는 느낌이 들어요.
오늘도 좋은 책을 만나고 가네요.
어머님의 회복소식도 종종 들려주실 거죠?

프레이야 2007-07-09 15:41   좋아요 0 | URL
모든 것이 다 때가 있나봐요. 타이밍 같은..
다른 때 같으면 그저그랬을지도 모를 책인데 아주 적절한 때 위로가
되었어요. 엄마는 아직 다 회복된 건 아니지만 차츰 좋아질 거에요.
마음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 저녁 가뵈려구요. 같은 시내이지만
좀 멀어요. 그래도 어쩌고 계신지 마음 써여 안 되겠어요.

2007-07-09 1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07-09 15:42   좋아요 0 | URL
속삭인님, 네 같이 기억될 거에요^^
쾌차해서 저랑 연극 보러도 다니고 예쁜 옷도 입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시장표 꽃무늬 팬티 입으시고..^^

백년고독 2007-07-09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일이 있었군요.
이제 다시는 병원에 가시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

이 책 읽으면서 한강이라는 작가는 참으로 다재다능하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답니다.

프레이야 2007-07-09 15:43   좋아요 0 | URL
백년고독님, 고맙습니다.^^
정말 다재다능하다 싶어요. 소녀같은 인상에 강인함이 묻어나더군요.
글도 여린 듯 강했어요.

2007-07-11 0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7-11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okdagi 2007-08-05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강'의 글은 대부분 심각한 것만 접해서 쉽게 읽히지 않았는데 님의 평을 보니 읽고 싶어지네요. 어머님도 앞으론 병원에 가시지 않길 바랄게요. 님도 건강하세요.

프레이야 2007-08-06 00:00   좋아요 0 | URL
전 한강의 글이 이책으로 첫만남이에요. 편안하고 위안이 되는 글이었어요.
참 맑고 선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어머님 일, 감사드려요.^^
지금 잘 견디며 싸우고 있어요. 장기전이라 생각하라고 말씀드릴 수밖에요..
님도 건강 챙기며 일하시기 바래요.
 

어제는 7월의 첫날이었다. 얼마전부터 장마는 예고되었고 아침부터 추적추적 내리는 빗줄기가 가슴을 훑어내리는 노래소리처럼 시원하게 들렸다. 엄마가 입원해 계셔서 마음이 불편했지만 수술경과도 아주 좋고, 표가 미리부터 예정되어 있던 것이라 옆지기와 함께 공연을 보러 갔다. 옆지기의 배려도 고맙고...

그런데, 안 갔더라면 후회했을,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부산 KNN에서 주관하여 방송국 카메라들이 몇 대 무대를 향해있고 좌석은 사람들로 꽉 찼다. 나는 아날로그 방식의 반주를 생각하고 갔는데 재즈풍의 반주가 무대를 사로잡고 조명도 생각보다 화려했다. 노래를찾는사람들,의 공연을 보러 간 건 처음이다. 이들은 87년 첫콘서트를 가졌고 잊지못할 87년 6월의 의미를 오늘날 되새김질하는 기획의도였다. 자막에 흐르는 뜨거운 싯구가 가슴을 달구었다. 그날의 영상들, 그날 이후의 영상들과 함께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말들, 노래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추억이여, 안녕한가? ... 당신은 안녕한가?

우리는 지금 20년이 지나, 이름만 있고 실체는 없는, 유령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노래들은 익히 귀에 익은 것들부터 처음 듣는 몇 곡까지 가슴이 울컥울컥하는 가사에 호소력있는 명징한 음색으로 감동을 전했다. 중간에 동물원의 멤버 김창기가 부른 '시청앞 지하철역'과  강승원(김광석에게 이 노래를 만들어주었다 함)이 직접 부른 '서른즈음에'도 훨씬 힘있는 느낌으로 좋았다. 87년 6월,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나는 대학4학년으로 취업걱정 반쯤하고 옆지기랑 만나 데이트 하면서 앞날도 좀 고민하고 그럭저럭 나쁘지 않게 보내고 있었다. 거리에 나가지는 않았고 텔레비전으로 그날의 함성과 감격을 듣고 보았다. 나는 중심에 있지 않았고 구경꾼에 불과했다. 이날 영상으로 보여주는 흑백필름들이 20년전을 말하고 있었다.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걸 그때는 알고도 속아넘어갈 수밖에 없었음이다. 난 그해 유월, 약혼의 의미로 지금의 옆지기에게 론진 시계를 받았다. 가난한 대학원생이 주머니 탈탈 털어 잡비를 써가며 거금을 모아 사주었던 귀한 마음이다. 그 시계는 지금 서랍속에서 잠자고 있고 나중에 큰딸의 손목에 채워지기를 우리는 바라고 있다. 구닥다리라고 좀 마뜩찮아해도 그렇게 해주고 싶은 것이다.

편안하게 살고 있음은 그만한 희생을 치루는 아픈 사람들이 있어서임을 잊지 않고, 느끼며 살아야겠다. 다 변해도 변하지 않아야하는 것 한 가지는 있어야한다. 추억이여, 안녕한가. 그러기 위해 지금 우리는?

<노찾사 첫 공연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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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찾사가 20년 후 부산에서 부른 노래

정원 / 행복의 나라로 / 사계 / 안녕하세요 / 동물의 왕국 / 겨울 나라 / 먼 길 / 동지를 위하여 / 여기에 / 잃어버린 말들 / 나무 / 나의 바램은 / 젊은 그대 / 먼 훗날 / 광야에서 / 그날이 오면

모두모두 좋았는데.. 특히 처음 듣는 곡 중에선 '안녕하세요'와 '나의 바램은', '젊은 그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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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노찾사 공연에 부쳐'라는 제목으로 김창남(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이 팜플렛에 쓴 발제문의 일부다.

노찾사가 부른 많은 노래들은 그 시절 우리가 뜨겁게 나누었던 그 인간의 희망을 우리의 기억 속에 끊임없이 새롭게 생환시켜 주었다....... 생환하지 않는 기억은 역사가 아니다. 지금 여기의 현실로 살아 돌아올 때 기억은 역사가 된다.과거에도 그랬듯이 노찾사의 이번 공연 역시 매끈한 해답보다는 어눌한 질문을, 명쾌한 결론보다는 수수께끼 같은 고민거리를 던져 줄 것이다. 지난 20년, 우리는 잘 살아왔는가, 세상은 더 좋아졌는가, 평화는 더 가까워졌는가, 민주주의는, 자유는, 인간해방은 이제 버려도 되는 구호인가. 과거에도 그랬듯이 그에 대한 답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부박한 일상에 떠밀리며 제 한 몸 챙기기에 바쁜 가운데 잊고 살던 질문들을 마치 뒤통수를 후려치듯 날카롭게 던져주는 노래들... 노찾사의 자리는 여전히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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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신문기사..


'노찾사 2' 앨범.

1987년 10월 13일. 한국교회 100주년기념관에서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첫 번째 공연이 있었다. '건강한 대중가요의 방향을 찾는 노래마당'이 표제어였다. 공연 몇 시간 전부터 몰려든 관객은 박수 치고 눈물을 쏟으며 '아침이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그루터기', 그리고 '그날이 오면'을 함께했다. '노찾사'가 이끈 노래운동 대중화의 첫 발이었다.

2004년에 노찾사 20주년 기념음반을 재발매하고 이듬해 이화여대 대강당 공연으로 다시 기지개를 켠 노찾사가 '1987, 그 20년 후에'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선다. 1987년 6월에서 2007년 6월에로, 미래를 향한 과거로의 여행이다. 7월 1일 오후 2시, 6시. 부산문화회관 대극장.

이번 무대는 활동을 재개한 이후 노찾사가 계속해 온 모색의 결실을 정리하고 6월 민주항쟁 2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다.

1987년의 시대정신을 새기고 지금 현재 우리 삶의 현실을 되돌아보기 위해 그날의 노래들 위에 다큐멘터리 영상을 더하는 새로운 시도도 한다. 댄스그룹 거북이와 힙합 뮤지션 MC 스나이퍼가 다시 불러 사랑받았던 '사계', '솔아 푸르른 솔아'와 '그날이 오면' '광야에서' 같은 대표곡들 외에도 '젊은 그대' '나의 바램은' 등 창작 신곡과 노찾사의 공식 무대에서는 처음으로 공개되는 김민기 작곡의 '잃어버린 말', 하동헌 작곡의 '정원' 등도 만날 수 있다.

신지아, 조성태, 문진오 등 노찾사 멤버들이 마이크를 잡고, 노찾사 대표 하동헌씨가 제작 총괄을, 교육방송 '스페이스 공감'의 음악감독 하종욱씨가 연출을 맡았다. 피아노, 어쿠스틱 기타, 콘트라베이스, 퍼커션, 그리고 관현악 소편성 구성이 새로운 편곡으로 섬세하고 깊이있는 연주를 들려준다. 대한민국 모든 '서른 즈음'의 가슴을 치는 '서른 즈음에'의 작곡가 강승원과 그룹 동물원 출신의 사색적인 싱어송라이터 김창기가 함께한다. 1577-6700. 최혜규기자 iwill@ 부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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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나는 노찾사 멤버중 리더의 코멘트로 한 사람의 사진작가 이름을 알게 되었다. 이시우!

그는 지금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조사 중이라고 하며 그분이 감옥에서 했던 말을 들려주었다. 오래 기억해둘 말이다. "사람의 몸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은 어디일까요? 머리? 심장? 아니, 아픈 곳입니다. 아픈 곳을 중심으로 몸의 모든 감각이 쏠리고 집중하게 됩니다.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인공 없는 사진전이 6월 27일 부터 7월 14일까지 평화박물관 주최로 평화공간에서 열리고 있다고 한다. 찾아보니 빨간딱지가 붙어있는 작품들이 여럿 걸려있고 그것들은 모두 조사대상이 되는 작품이라고 한다. 예술의 자유,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만 있고 실체는 없는, 또하나의 유령과 우리는 여전히 살고 있다니...

전시장 한켠에는 이시우사건을 알리는 게시판 글모음과 슬라이드가 공개되어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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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07-07-02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군부독재시절의 애환을 노래해주고 달래주던 고운 선율, 심금을 울리는 선율, 호소력 있던 선율이 그립습니다.

프레이야 2007-07-02 21:28   좋아요 0 | URL
전호인님, 정말 뜨거운 자리였어요. 노랫말이 너무 좋구요.
전 이런 노래를 들으면 눈시울이 뜨끈해져요.

hnine 2007-07-02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들으면 떠오르는 것들이 너무 많은 노래들이지요. 위의 노찾사2 LP는 저도 가지고 있는 것인데~ ^ ^ 반갑네요.

프레이야 2007-07-02 21:28   좋아요 0 | URL
저 엘피를 갖고 계시군요. 와~
님과 노찾사의 정서적연대가 느껴지네요.

Mephistopheles 2007-07-03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도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와 그날이 오면 들으면 뭉클해져요..

프레이야 2007-07-03 08:45   좋아요 0 | URL
메피님도.. !!
이들의 노랫말을 들으면 요즘의 대중가요 가사들이 너무 경박하고 표피적인 것
같아 거북해요. 정말 좋은 시간이었어요.

소나무집 2007-07-03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정에서 체류탄 연기가 가실 날이 없던 그 시절.
교문 앞에서 등교 저지를 당해야 했고, 시험도 볼 수 없던 그 시절.
벌써 20년이 지났군요.
노찾사의 노래를 참 많이도 불렀는데.
그들 모두 안녕하시던가요?

프레이야 2007-07-03 14:49   좋아요 0 | URL
소나무집님, 딱 그시절에 대한 추억의 공유네요.
님은 적극적 동참을 하셨을 것 같아요. 전 부끄럽게도 소극적이었고
방관자적이었어요. 네, 그분들도 다 안녕해 보였어요.^^

세실 2007-07-03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광야에서 참 좋아했었는데....87년이면 전 대학2학년. 신나게 놀던 시절이었군요.
남친이랑 노찾사 노래 열심히 들었답니다. 아 저 LP판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졌어요.
그땐 그랬지~~~~

프레이야 2007-07-03 23:42   좋아요 0 | URL
꺄오~ 세실님, 남친이랑 불렀군요!! 광야에서...
독서치료 청강 도와주신다니 고맙습니다.^^
 
향수 (반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Mr. Know 세계문학 20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품절


마음만 먹으면 못 할 일이 없다. 그는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의 손에 그 힘이 들어 있다. 이것은 돈이나 테러, 혹은 죽음보다 더 큰 힘을 갖고 있다. 이것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이끌어 내는 힘이 있다. 아무도 그걸 거역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꼭 한 군데 있으니, 그곳이 바로 그루누이 자신이다. 그는 이 사랑의 향기를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이 향수를 느낄 수가 없으니 그걸 바르고도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면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일까? 그는 세상과 자신, 그리고 향수를 비웃었다.-374쪽

이 향수가 얼마나 큰 효과를 발휘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향수가 얼마나 잘 "만들어진" 것인지 아는 사람도 없다. 사람들은 단지 그 효과에 굴복할 뿐이니까. 그렇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자신들을 매혹시키는 것이 향수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이 향수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사람은 그것을 만들어 낸 나 자신뿐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 향수의 마법에 걸리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 아닌가. 이 향수는 내게는 아무 의미도 없다..... 자신들이 진짜로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그들은 영원히 모를 것이다.-375쪽

자신들의 음울했던 영혼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졌다. 그들의 얼굴에 수줍은 아가씨 같은 달콤한 행복의 빛이 떠올랐다. 아마도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감히 눈을 들어 서로의 눈을 들여다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처음에는 은밀히, 잠시 후에는 공공연하게 다른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상할 정도로 당당한 기분이었다. 그들이 사랑에서 비롯된 행동을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이다.-3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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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7-06-24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내일이 수술날이죠 아마. 수술 하는 것도 힘들지만, 하고 난 뒤에도 여러가지 힘든 일이 많을 거예요. 마음 굳게 먹고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힘내세요.

프레이야 2007-06-24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이리 격려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엄마에게도 전할게요. 수술 후 힘든일들이 많을 거란 말,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고 약해지지 않도록 말씀드려야겠어요. 수요일에 예정입니다.
 
 전출처 : 잉크냄새 > 개미

개미

- 강연호 -

절구통만한 먹이를 문 개미 한 마리
발 밑으로 위태롭게 지나간다 저 미물
잠시 충동적인 살의가 내 발꿈치에 머문다
하지만 일용할 양식 외에는 눈길 주지 않는
저 삶의 절실한 몰두
절구통이 내 눈에는 좁쌀 한 톨이듯
한 뼘의 거리가 그에게는 이미 천산북로이므로
그는 지금 없는 길을 새로 내는 게 아니다
누가 과연 미물인가 물음도 없이
그저 타박타박 화엄 세상을 건너갈 뿐이다
몸 자체가 경전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저렇게
노상 엎드려 기어다니겠는가
직립한다고 으스대는 인간만 빼고
곤충들 짐승들 물고기들
모두 오체투지의 생애를 살다 가는 것이다
그 경배를 짓밟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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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7-06-14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서재 구경 다니고 있어요~~. (미모로운 님이 모습을 날마다 볼 수 있도록 사진도 올려놓으시궁~~^^)

프레이야 2007-06-14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 대문에 사진 걸어주세요. 미모로운 모습 매일 뵙게요^^

2007-06-14 1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잘코군 2007-06-14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이랑 스킨이 잘 어울립니다. :)

프레이야 2007-06-14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정말,정말요?? 좋단 말씀이죠! 고맙습니다.

비로그인 2007-06-20 0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경배를 짓밟지 마라 라는 구문이 정말 .. ㅠㅠ

배운다는 일이 이렇게 살아가는 내내 지속됨을 생각할때
언제나 생은 보다 내려앉아 살아가야 함을 느끼게 됩니다..

더위에 건강조심하세요 .. 혜경님 .. ^ ^



프레이야 2007-06-20 08:41   좋아요 0 | URL
수경님, 옛선비들은 발밑의 개미 한 마리, 풀 한 포기도 함부로 밟지 않으려고
발걸음을 조심했다고 하지요. 저도 이 시의 그 구절에 멈칫 마음의 옷깃을 여미게
되더군요. 다시 살아야겠다는 님의 댓구 또한 저를 생각하게 하네요.
님, 장마가 다가온다죠. 전 비오면 좋아요. ^^
 

먼지를 털어주며


친구끼리 애인끼리
혹은 부모자식 간에 헤어지기 전
잠시 멈칫대며 옷깃이나 등의 먼지를 털어주는 척하는
일이 중요한 것은, 먼지가 정말 털려서가 아니라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손길에 온기나 부드러움,
사랑하는 이의 뒷모습까지 아름답기를 바라는
착한 마음을 실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런지요.


- 박완서의《호미》중에서 -  (오늘아침 고도원의 편지에서)

----------

학창시절 교복을 입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서면 엄마는 꼭 골목 어귀까지 나와서 옷주름을 잡아주고 치맛단을 털어주고 깃을 바로 잡아주곤 하셨다. 집에서 거울을 보고 충분히 매만지고 바로 입고 나와서 더이상 손 댈 곳이 없는데도 뭐가 그리 까탈스러우신지, 나는 귀찮아하고 짜증스럽게 반응하기도 했다. 돌아서 걸어가도 엄마는 한참 뒤에 서 계시다 저만치 가고 있는 나를 부르며 달려오신다. 치마가 비뚤하다느니, 엉덩이에 뭐가 묻었다느니, 다시 한번 매무새를 고쳐주시곤 했다. 그러고도 모자라 뒤에서 말로 계속 매무새를 다듬고 계셨다.

대학생이 되어서 교복은 벗었고 퍼머도 하고 화장도 살짝 하게 되었다. 엄마는 내가 미장원에 갔다 온 날이면 한번도 예쁘게 나왔다고 기분 좋게 말해 주신 적이 없다. 앞머리가 이상하게 잘렸다느니 뒷머리가 안 예쁘다느니 트집을 잡아서 그러지 않아도 마음에 흡족하지 못해 속상해 있는 내 속에 불을 지르곤 하셨다. 아침마다 내가 입고 나서는 옷을 매만지고 털고 불고 하시는 엄마의 행동은 계속되었다. 옷이 비뚤어졌다느니 그건 안 어울린다느니 색깔이 아래위로 안 맞다느니 하시며 여전히 즐기듯 그러셨다.

졸업 후 취업을 하고 울소재의 투피스를 하나 샀는데 감색의 허리가 잘록한 상하의에 칼라는 흰색 레이스가 달려 탈부착이 가능한 옷이었다. 내 몸에 잘 맞고 편해서 좋아했던 옷인데 그게 어느날 얼룩도 생겨있고 바짝 줄어있는 거다. 어떻게 된 일인가 했더니 엄마는 그걸 손세탁 하셨단다. 드라이클리닝 해야하는 걸 몰라서는 아니었던 것 같고 알뜰살뜰한 엄마는 그저 드라이클리닝 하는 돈을 아껴 볼 심산으로 집에서 빨았던 게다. 아,  엄마는 투덜거리는 내 볼멘소리를 뒤로 하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그리 될 줄 알았나 이러시며 못 들은 척 다른 일만 하셨던 기억이 난다. 웅크린 등과 어깨만 잔상이 되었다.

이제 엄마는 내 머리가 이상하다는 말씀도 하지 않고 옷매무새를 털고 불고 해 주시지도 않는다. 엄마의 손길이 필요없어진 나는 엄마가 입은 옷을 간섭하고 코치하고, 숱이 없어 머리 모양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고 불만스러워하시는 엄마의 머리카락을 안쓰러워한다.

털어주고 불어주고 매만져주시던 그 손길의 정체를 이제야 알겠다. 나는 똑같이 내 아이들에게 그 손길을 놀리고 있다. 아침마다 교복을 단정히 입고 나가는 큰딸의 뒷모습에서 난 눈을 떼지 못하고 치맛단을 털어주고 싶은 게다. 어깨에 맨 가방끈도 상의가 구겨지지 않게 바로 펴주고 싶은 게다. 편한 반바지에 헐렁한 티셔츠를 좋아하는 작은딸의 머리를 묶어주고 옷을 다 입고 나면 꼭 이곳저곳 살펴보고 손으로 쓸어주곤 한다. 양복을 입고 어울리는 넥타이를 골라 매고 나가는 옆지기의 뒷모습, 헐렁한 양복 뒷자락을 한 번 털고 만져서 펴주고 싶은 게다. 먼지가 있어서, 머리카락이 묻어서는 다 핑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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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6-13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의 글을 아침에 읽으며 마음이 서늘해집니다.
제가 한부 제 서재로 옮겨갑니다.
좋은 글. 추천!!!


비로그인 2007-06-13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2.0에서는 '퍼가기'기능이 없어지고 '찜하기'기능으로 대체될 거라하는데 그리되면
배혜경님의 상기 글이 알라딘 이웃서재의 마지막 '퍼가기'글이 될 듯 싶습니다.하하


무스탕 2007-06-13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그런 시절이 있었어요.. 엄마가 계속 매만져 주던 시절..
이젠 제 그러네요. 아침에 애들 학교 갈때 가방끈 잡아주고 티셔츠 잘 펴주고..
엄마가 돼서야 알아챈 엄마맘이에요..

프레이야 2007-06-13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님, 상쾌한 아침에 참 반가운 방문입니다. 새 서재에선 그리 되나요?
컴맹인 저는 적응하려면 한동안 걸리겠습니다.^^
마지막 퍼가기 라시니 더욱 감사합니다.

무스탕님, 참 피곤하게 사신다 싶었던 엄마의 습관들이 제가 그 나이가 되어보니
모두 이해된답니다. 참 늦게 깨닫는 것 같아요. 그죠?
오늘도 화창한 하루 보내시기 바래요.^^

비로그인 2007-06-13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사이에 글 일부를 다듬으셨군요.. 다시 스크랩해 갑니다.
"털어주고 불어주고 매만져주시던 그 손길의 정체를 이제야"
공감합니다. 배혜경님..


fallin 2007-06-13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누군가가 저의.. 또 제가 누군가의 어깨를 괜시리 툭툭 털어내는 때가 있죠. 의식하진 않았지만..이런 맘이였나 봅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이에요^^

비로그인 2007-06-13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뜻한 옥수수 스프를 마신 느낌입니다.

달팽이 2007-06-13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마치 오래된 시골집의 아랫목 같이 여겨집니다.
황폐한 마음의 겨울날, 조용히 손을 녹이고 갑니다.
혜경님. 글이 참 좋습니다.

2007-06-13 0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6-13 1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홍수맘 2007-06-13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너무 좋아요. 생각해보면 어깨의 먼지를 툭툭 터는 행위는 바로 사랑이었네요. ^ ^.

프레이야 2007-06-13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님, 조금 고치고 나서 다시 가져가십사 말씀드리려다 번거로우실 것 같아
그냥 있었는데... 잘 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fallin님, 저도 누군가에게 손길을 보내고 싶은 경우가 있죠. 유독 정을 주고
싶은 사람에게는 손이 먼저 나가는 것 같아요.

엘신님, 옥수수 스프도 다음에 포도맛 아이스크림에 추가 해두세요 ^^

달팽이님, 왜 그러세요. 늘 평정심을 잃지 않아 보이는데, 황폐하시다니
마음 쓰입니다.

속삭인ㅅ님, 에공 부끄.. 그래도 이쁘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동안
여러번 했는데 이제 보셨군요. 신비주의 할 것도 없다싶으니까요..

속삭인 ㅎ님, 엄마는 영원히 엄마에요. 어머니라고 굳이 부르고 싶지 않지요.
그죠.. 님도 엄마생각 나셨군요. 전 살아계시니 님보다 행복하다 싶네요.
엄마, 보고 싶다는 말씀에 짠해져요..

홍수맘님, 네 그런 거였어요. 애정의 표현이요^^

혜덕화 2007-06-13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나면 행복해 지는 글입니다. 마음이 얼굴에 나타나는 것, 정말 맞는 것 같앋요.

마노아 2007-06-13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이, 추억이, 사랑이 묻어있는 글입니다. 고스란히 제 가슴에도 옮겨 놓을게요. ^^

프레이야 2007-06-13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덕화님, 오늘 하루 평안하셨는지요. 지금 밖엔 빗방울이 가늘게 내리네요.

마노아님, 엄마와 어머닌 좀 다른 것 같아요. 제가 할머니가 되어도
엄마라고 부를거에요. 아버지에게도 아빠라고 부르구요.
사랑스런 댓글, 제 가슴에 남습니다.^^

비로그인 2007-06-14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새 서재 너무 이쁩니다. ^^ 따뜻한 깨끗함. 혜경님답습니다. (웃음)

프레이야 2007-06-14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엘신님, 헤헤 고맙습니다.^^
알아서 단장도 해주고 완벽한 포장이사도 해주고 알라딘도 고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