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7월의 첫날이었다. 얼마전부터 장마는 예고되었고 아침부터 추적추적 내리는 빗줄기가 가슴을 훑어내리는 노래소리처럼 시원하게 들렸다. 엄마가 입원해 계셔서 마음이 불편했지만 수술경과도 아주 좋고, 표가 미리부터 예정되어 있던 것이라 옆지기와 함께 공연을 보러 갔다. 옆지기의 배려도 고맙고...

그런데, 안 갔더라면 후회했을,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부산 KNN에서 주관하여 방송국 카메라들이 몇 대 무대를 향해있고 좌석은 사람들로 꽉 찼다. 나는 아날로그 방식의 반주를 생각하고 갔는데 재즈풍의 반주가 무대를 사로잡고 조명도 생각보다 화려했다. 노래를찾는사람들,의 공연을 보러 간 건 처음이다. 이들은 87년 첫콘서트를 가졌고 잊지못할 87년 6월의 의미를 오늘날 되새김질하는 기획의도였다. 자막에 흐르는 뜨거운 싯구가 가슴을 달구었다. 그날의 영상들, 그날 이후의 영상들과 함께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말들, 노래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추억이여, 안녕한가? ... 당신은 안녕한가?

우리는 지금 20년이 지나, 이름만 있고 실체는 없는, 유령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노래들은 익히 귀에 익은 것들부터 처음 듣는 몇 곡까지 가슴이 울컥울컥하는 가사에 호소력있는 명징한 음색으로 감동을 전했다. 중간에 동물원의 멤버 김창기가 부른 '시청앞 지하철역'과  강승원(김광석에게 이 노래를 만들어주었다 함)이 직접 부른 '서른즈음에'도 훨씬 힘있는 느낌으로 좋았다. 87년 6월,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나는 대학4학년으로 취업걱정 반쯤하고 옆지기랑 만나 데이트 하면서 앞날도 좀 고민하고 그럭저럭 나쁘지 않게 보내고 있었다. 거리에 나가지는 않았고 텔레비전으로 그날의 함성과 감격을 듣고 보았다. 나는 중심에 있지 않았고 구경꾼에 불과했다. 이날 영상으로 보여주는 흑백필름들이 20년전을 말하고 있었다.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걸 그때는 알고도 속아넘어갈 수밖에 없었음이다. 난 그해 유월, 약혼의 의미로 지금의 옆지기에게 론진 시계를 받았다. 가난한 대학원생이 주머니 탈탈 털어 잡비를 써가며 거금을 모아 사주었던 귀한 마음이다. 그 시계는 지금 서랍속에서 잠자고 있고 나중에 큰딸의 손목에 채워지기를 우리는 바라고 있다. 구닥다리라고 좀 마뜩찮아해도 그렇게 해주고 싶은 것이다.

편안하게 살고 있음은 그만한 희생을 치루는 아픈 사람들이 있어서임을 잊지 않고, 느끼며 살아야겠다. 다 변해도 변하지 않아야하는 것 한 가지는 있어야한다. 추억이여, 안녕한가. 그러기 위해 지금 우리는?

<노찾사 첫 공연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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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찾사가 20년 후 부산에서 부른 노래

정원 / 행복의 나라로 / 사계 / 안녕하세요 / 동물의 왕국 / 겨울 나라 / 먼 길 / 동지를 위하여 / 여기에 / 잃어버린 말들 / 나무 / 나의 바램은 / 젊은 그대 / 먼 훗날 / 광야에서 / 그날이 오면

모두모두 좋았는데.. 특히 처음 듣는 곡 중에선 '안녕하세요'와 '나의 바램은', '젊은 그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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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노찾사 공연에 부쳐'라는 제목으로 김창남(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이 팜플렛에 쓴 발제문의 일부다.

노찾사가 부른 많은 노래들은 그 시절 우리가 뜨겁게 나누었던 그 인간의 희망을 우리의 기억 속에 끊임없이 새롭게 생환시켜 주었다....... 생환하지 않는 기억은 역사가 아니다. 지금 여기의 현실로 살아 돌아올 때 기억은 역사가 된다.과거에도 그랬듯이 노찾사의 이번 공연 역시 매끈한 해답보다는 어눌한 질문을, 명쾌한 결론보다는 수수께끼 같은 고민거리를 던져 줄 것이다. 지난 20년, 우리는 잘 살아왔는가, 세상은 더 좋아졌는가, 평화는 더 가까워졌는가, 민주주의는, 자유는, 인간해방은 이제 버려도 되는 구호인가. 과거에도 그랬듯이 그에 대한 답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부박한 일상에 떠밀리며 제 한 몸 챙기기에 바쁜 가운데 잊고 살던 질문들을 마치 뒤통수를 후려치듯 날카롭게 던져주는 노래들... 노찾사의 자리는 여전히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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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신문기사..


'노찾사 2' 앨범.

1987년 10월 13일. 한국교회 100주년기념관에서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첫 번째 공연이 있었다. '건강한 대중가요의 방향을 찾는 노래마당'이 표제어였다. 공연 몇 시간 전부터 몰려든 관객은 박수 치고 눈물을 쏟으며 '아침이슬'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그루터기', 그리고 '그날이 오면'을 함께했다. '노찾사'가 이끈 노래운동 대중화의 첫 발이었다.

2004년에 노찾사 20주년 기념음반을 재발매하고 이듬해 이화여대 대강당 공연으로 다시 기지개를 켠 노찾사가 '1987, 그 20년 후에'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선다. 1987년 6월에서 2007년 6월에로, 미래를 향한 과거로의 여행이다. 7월 1일 오후 2시, 6시. 부산문화회관 대극장.

이번 무대는 활동을 재개한 이후 노찾사가 계속해 온 모색의 결실을 정리하고 6월 민주항쟁 2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다.

1987년의 시대정신을 새기고 지금 현재 우리 삶의 현실을 되돌아보기 위해 그날의 노래들 위에 다큐멘터리 영상을 더하는 새로운 시도도 한다. 댄스그룹 거북이와 힙합 뮤지션 MC 스나이퍼가 다시 불러 사랑받았던 '사계', '솔아 푸르른 솔아'와 '그날이 오면' '광야에서' 같은 대표곡들 외에도 '젊은 그대' '나의 바램은' 등 창작 신곡과 노찾사의 공식 무대에서는 처음으로 공개되는 김민기 작곡의 '잃어버린 말', 하동헌 작곡의 '정원' 등도 만날 수 있다.

신지아, 조성태, 문진오 등 노찾사 멤버들이 마이크를 잡고, 노찾사 대표 하동헌씨가 제작 총괄을, 교육방송 '스페이스 공감'의 음악감독 하종욱씨가 연출을 맡았다. 피아노, 어쿠스틱 기타, 콘트라베이스, 퍼커션, 그리고 관현악 소편성 구성이 새로운 편곡으로 섬세하고 깊이있는 연주를 들려준다. 대한민국 모든 '서른 즈음'의 가슴을 치는 '서른 즈음에'의 작곡가 강승원과 그룹 동물원 출신의 사색적인 싱어송라이터 김창기가 함께한다. 1577-6700. 최혜규기자 iwill@ 부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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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나는 노찾사 멤버중 리더의 코멘트로 한 사람의 사진작가 이름을 알게 되었다. 이시우!

그는 지금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조사 중이라고 하며 그분이 감옥에서 했던 말을 들려주었다. 오래 기억해둘 말이다. "사람의 몸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은 어디일까요? 머리? 심장? 아니, 아픈 곳입니다. 아픈 곳을 중심으로 몸의 모든 감각이 쏠리고 집중하게 됩니다.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인공 없는 사진전이 6월 27일 부터 7월 14일까지 평화박물관 주최로 평화공간에서 열리고 있다고 한다. 찾아보니 빨간딱지가 붙어있는 작품들이 여럿 걸려있고 그것들은 모두 조사대상이 되는 작품이라고 한다. 예술의 자유,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만 있고 실체는 없는, 또하나의 유령과 우리는 여전히 살고 있다니...

전시장 한켠에는 이시우사건을 알리는 게시판 글모음과 슬라이드가 공개되어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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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07-07-02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군부독재시절의 애환을 노래해주고 달래주던 고운 선율, 심금을 울리는 선율, 호소력 있던 선율이 그립습니다.

프레이야 2007-07-02 21:28   좋아요 0 | URL
전호인님, 정말 뜨거운 자리였어요. 노랫말이 너무 좋구요.
전 이런 노래를 들으면 눈시울이 뜨끈해져요.

hnine 2007-07-02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들으면 떠오르는 것들이 너무 많은 노래들이지요. 위의 노찾사2 LP는 저도 가지고 있는 것인데~ ^ ^ 반갑네요.

프레이야 2007-07-02 21:28   좋아요 0 | URL
저 엘피를 갖고 계시군요. 와~
님과 노찾사의 정서적연대가 느껴지네요.

Mephistopheles 2007-07-03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도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와 그날이 오면 들으면 뭉클해져요..

프레이야 2007-07-03 08:45   좋아요 0 | URL
메피님도.. !!
이들의 노랫말을 들으면 요즘의 대중가요 가사들이 너무 경박하고 표피적인 것
같아 거북해요. 정말 좋은 시간이었어요.

소나무집 2007-07-03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정에서 체류탄 연기가 가실 날이 없던 그 시절.
교문 앞에서 등교 저지를 당해야 했고, 시험도 볼 수 없던 그 시절.
벌써 20년이 지났군요.
노찾사의 노래를 참 많이도 불렀는데.
그들 모두 안녕하시던가요?

프레이야 2007-07-03 14:49   좋아요 0 | URL
소나무집님, 딱 그시절에 대한 추억의 공유네요.
님은 적극적 동참을 하셨을 것 같아요. 전 부끄럽게도 소극적이었고
방관자적이었어요. 네, 그분들도 다 안녕해 보였어요.^^

세실 2007-07-03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광야에서 참 좋아했었는데....87년이면 전 대학2학년. 신나게 놀던 시절이었군요.
남친이랑 노찾사 노래 열심히 들었답니다. 아 저 LP판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졌어요.
그땐 그랬지~~~~

프레이야 2007-07-03 23:42   좋아요 0 | URL
꺄오~ 세실님, 남친이랑 불렀군요!! 광야에서...
독서치료 청강 도와주신다니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