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문학과 철학의 경계에서(1945-1946)


1945년은 보부아르의 공적 이미지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해다. 보부아르는 점령된 고국에서 전쟁을 보고 정치적으로도 눈을 뜨게 되고 비시 정부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하면서도 파텔정부에 동조하지 않는 나름의 역할을 독창적으로 했다고 보인다. 당시 라디오 방송국은 단 두 개뿐. 1945년 4월 29일에 프랑스에서 여성이 투표권을 행사하는 첫 선거가 있었다. 5월 7일에 독일은 랭스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했다. 8일에는 베를린에서 설명했다. 유럽에서 전쟁이 끝났다.

이해 삼월에 사르트르는 뉴욕에 체류하면서 보부아르와는 서로 떨어져 있는 시간을 보낸다. 이런 시간은 결과적으로 봐도 필요한 시간으로 보인다. 미국에서 돌로레스와 관계에 빠진 사르트르와 별개로 이 기간에 보부아르는 맹렬히 글을 썼다. 파리 신문 가판대에서 보부아르와 사르트르가 공동 창간한 “레 탕 모데른 Les Temps Modernes “이 팔려나갔다. 하지만 창간호 편집장으로는 사르트르의 이름만 올라갔다. 이 잡지를 통해 두 사람은 시대의 당면과제에 집중하는 참여 지식인이 될 수 있었다. “잡지는 굶주린 대중을 먹였다.(264)”

비시 정부 때 발행된 신문들을 정간하는 법이 통과되었다.
보부아르는 “레 탕 모데른” 편집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잡지에 기고한 윤리학과 정치학 에세이들을 1945년에 처음 출간했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적 논지와 반대되거나 확장한 생각들을 주장하고 펼쳐나갔다. 이는 오래전부터 보부아르가 생각했던 것, 사르트르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던 부분이거나 이미 있어온 인간 운명의 어두운 부분을 내밀하게 통찰하여 발전시킨 생각이다. 변명으로 드러내는 체념적 염세주의로 치부되는 것, 즉 인간의 타락과 죽음을 불건전하게 과장하는 염세적 철학이라는 비판에 보부아르는 인간의 비참함은 실존주의만의 새로운 면모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인가, 대신 보부아르는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를 썼다. 자신의 생각을 에세이와 소설, 희곡으로 펼쳐냈다.

#
보부아르의 철학은 거짓과 체념의 위안을 거부한다. 지배 혹은 복종이 그저 인간의 본성이라는 생각은 변명일 뿐이다.
- 사람들은 덕(virtue)을 쉽게 생각하고 싶어 한다. 또한 덕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별로 심란해 하지 않고 체념하듯 받아들인다. 덕이 가능하지만 어려울 수 있다고 보려 하지는 않고 말이다. (276)


# 소설 “타인의 피”
점령기에 쓰고 1945 발표.

_ “우리 각자는 모든 사람에게 그리고 모든 것에 책임이 있다.”
타인의 피,에 제사된 문장이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발췌한 문장. “타자에 대한 책임과 개인의 행복을 조화시키려는 실존주의자의 노력을 무척 인상적으로 극화한 작품이다”라는 평을 받았다. 엘렌과 장이 주인공이나 펭귄북스 뒷표에는 남자 주인공만이 한 사람의 주인공으로 소개된다. 이 작품은 사르트르의 철학이 아니라 보부아르의 철학을 적용해 극화했고 “제2의 성”(1949)에서 다뤄질 주제들을 예고했다. 여성의 행동방식, 남성과 여성이 개인으로서 사랑을 경험하는 방식의 차이 등…


#
보부아르는 작가의 사명은 “개인이 자신의 자유를 걸고 살아가는 세계와 맺는 관계를 극의 형식으로 기술하는 것”이라고 썼다. 그러나 세상은 여성에게 남성을 대할 때와는 다른 이상과 제약을 내세운다. 보부아르는 엘렌의 각성과 장의 각성을 나란히 보여 줌으로써 여성은 남성처럼 존중을 받지 못하고 존중을 요구하지도 않는 불공평성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267)


# 유일한 희곡 “쓸모없는 입들”
1945년 10월 29일 파리 공연

# 1946. 12. 소설 “모든 사람은 죽는다”
이 소설 속 불멸의 화자와 역사적 구조 역시 보부아르가 장차 제2의 성,에서 전개할 “남성은 언제나 구체적인 힘들을 장악해 왔다”는 주제를 드러냈다. 포스카를 통해 현대와 가까운 시대에 만나는 여성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묻는다. 사랑을 한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뭔가를 할 수는 있는가?”다. (289)

# 보부아르가 보았던 진실은 사람들이 변명으로 자유에서 도피한다는 것이다.(275)

# “상황의 힘”에서 “자신과 사르트르의 유대감에 관해서는 형용할 수 없는 앎” 이 있다고 했다. 여기서 보부아르는 “처음에는 자기가 여성이라는 사실이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고 여성성은 어떤 식으로든 귀찮았던 적이 없다라고 했다. 사르트르는 좀 더 생각해 봐야 한다고 했고 그녀가 남자 아이처럼 양육 받고 자란 건 아니었다. 그래서 보부아르는 그 문제를 파고 들었고 그제야 비로소 세상이 얼마나 남성적인지 깨달았다. 자신의 유년기를 형성한 수많은 신화는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를 다르게 형성했다. 자서전 집필에 대한 생각을 뒤로하고 여성성의 신화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느라 공립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 작업에서는 자신의 여성으로서 경험이 아니라 여성의 조건에 초점을 맞출 생각이었다. (284 발췌)

이 내용 읽어보니, 서로 인정했듯, 사르트르는 어찌됐든 보부아르에게 좋은 영향을 준 관계였다는 생각이 다시 든다. 끊임없이 자극을 주고받고 한마디만 던지면 촉발하는 영리한 인간 보부아르. 여성성의 신화와 여성에게 주어진 조건에 대한 자각. 대화를 나누며 눈을 뜨고, 사유의 근원이라기보다 견줄 데 없는 대화의 촉매로서 사르트르.

#
보부아르는 나중에 ‘상황’ 개념이 제2의 성,을 독창적인 책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여성성을 본질이나 본성이 아니라 “문명이 특정한 생리학적 여건으로 빚어낸 상황”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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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2-10-09 17: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도 책을 참 빨리 읽으십니다.
마지막 사진 참 단아하고 이뻐요^^

프레이야 2022-10-09 19:14   좋아요 2 | URL
울유 벽돌 제2의 성 표지죠~
저 사진이 제일 마음에 들어요. 성숙해 보이고 가장 아름다운 때 같아요.
 

나는 내 온몸으로 남들과는 다르게 시간을 헤아리며 살았다. 나는 한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 얼마만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숭고하고 치명적이기까지 한 욕망, 위엄 따위는 없는 부재, 다른 사람들이 그랬다면 무분별하다고 생각했을 신념과 행동,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스스럼없이 행했다.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세상과 더욱 굳게 맺어주었다.

그 사람은 "당신, 나에 대해 책을 쓰진 않겠지‘하고 말했었다. 나는 그 사람에 대한 책도, 나에 대한 책도 쓰지 않았다. 단지 그 사람의 존재 그 자체로 인해 내게로 온 단어들을 글로 표현했을 뿐이다. 그 사람은 이것을 읽지 않을 것이며, 또 그 사람이 읽으라고 이 글을 쓴 것도 아니다. 이 글은 그 사람이 내게준 무엇을 드러내 보인 것일 뿐이다. - P66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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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 드 사르트르라니…

* 문자 그대로는 ‘사르트르의 성모‘라는 뜻으로, ‘노트르담 드 샤르트르(샤르트르 대성당)‘를 빗대어 보부아르를 조롱한 말.

1943년 8월에 보부아르의 “초대받은 여자”가 나왔고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는 같은 해 6월에 비버(보부아르)에게 헌정한다며 나왔다.

#
1940년대 초는 보부아르의 사유에서 중대한 전환점이다. 전쟁 전의 보부아르는 스스로 인정했듯이 유아론적이었다. 보부아르는 자신이 이미 1941년에 《초대받은 여자>의 ˝철학적 태도˝에서 벗어났음을 깨달았다. 1943~1946년에 쓴 소설과 희곡은 보부아르의 도덕적 · 정치적 참여를 보여준다. 많은 이들이 <제2의 성》이 나올 때까지는 그러한 참여를 믿지 않았지만 말이다. 1943년에 보부아르는 이미 이렇게 물었다.
사회에 쓸모 있는 사람, 쓸모 없는 사람은 누구인가?
누가 결정권을 쥐고 있는가? (240)

《초대받은 여자》에 대한 반응은 복합적이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충격적이었다. 또 어떤 이들은 비시 정부의 "노동, 가정, 조국" 강령에 용감하게 저항했다고 보았다. 그렇지만 철학적인 면에서 보부아르의 소설은 타자와 연결되는 두 가지 가능한 방식을 제시한다. 첫 번째 방식은 타자를 자기와 마찬가지로 풍부하고 상처 입기 쉬운 내적 경험을 지닌 의식적 존재로 보는 것이다. 두 번째 방식은 타자를 그렇게 보고 호혜적 관계를 맺기보다는 타자가 내게 유용하거나 방해가 되는 사물처럼 ‘있음‘을 당연시하는 것이다.

이 두 번째 접근은 사르트르가 《존재와 무》에 쓴 내용과 매우 흡사하기 때문에 특히 중요하다. 그 후 보부아르의 삶은 사르트르와의 불일치에서 비롯된 예술 분야에서 나타난 열렬한 철학적 생산성보다 전후(戰後)의 명성, 재즈와 파티의 시절로 더 많이 소개되었다. 왜 보부아르가 그토록 오해받았는지, 왜 ‘노트르담 드 사르트르‘로 치부당하면서 좌절감을 느꼈는지, 왜 자신의 페미니즘 저작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당하는‘ 배제를 피하려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애썼는지 이해하려면 그녀가 사르트르의 철학에서 어떤 부분을 비판했는지 좀 더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 - P243

하지만 1943년에 사르트르는 지루하고 멍청한 남자보다 더 최악이었다. 그는 극단적인 염세주의 철학자들을 기준으로 놓고 봐도 인류에게 기대가 거의 없는, 지독히 염세적인 철학자였다. 사르트르는 모든 인간이 타자를 지배하고 싶어 하고, 모든 인간관계는 갈등이며 그 갈등이 너무 심해서 사랑은 불가능하다고(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실현 불가능한 이상") 보았다. 보부아르는 결코 "낙오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사르트르와 생각이 달랐던 철학자다. 그리고 자기가 살아온 삶이 자신을 겨누는 무기가 되어 돌아온 여성이다. 아직은 그 부메랑이 멀리 있었다. - P244

사르트르는 우리가 사실성으로 인하여 우리 자신을 결정된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되며 실존의 조건이 어떻든 간에 우리 자신을 거의 대부분 자유로이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보부아르는 이미 1930년대에 사르트르의 주장이 틀렸다고 확신했다. 사르트르는 상황이 어떻든 인간은 다양한 반응 양식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자유롭다고 보았다. 보부아르는 이렇게 반문한다. "하렘에 갇혀 사는 여성에게 어떤 유의 초월이 가능할까?" 자유로운 것(원칙적으로 선택이 가능하다는 것)과 실제로 선택을 해야하는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은 다르다. 보부아르는 이러한 철학적 비판을 《피로스와 키네아스》와 《애매성의 윤리를 위하여》라는 두 편의 에세이로 남긴다. 하지만 그전에 《초대받은 여자》때문에 사생활에 튄 불똥을 처리해야 했다. - P247

"실존주의는 어떤 윤리학도 암시하지 않습니다. 나는 실존주의에서 윤리학을 끄집어내려고 했지요. 그 윤리학을 《피로스와 키네아스》라는 에세이에서 자세히 썼고, 소설과 희곡으로도, 다시 말해 훨씬 구체적인 동시에 모호한 형식으로도 내가 찾은 답을 표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보부아르는 왜 이 중대한 철학적 공헌을 회고록에서 누락했을까? 이 질문의 답을 이해하려면 보부아르가 대외적으로는 사뭇 다른 자기가 되기로 선택한 과정을 좀 더 이해할 필요가 있다. -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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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용도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마크 마리 지음 / 1984Books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사진 속에 우리의 육체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나눈 사랑도 없다. 그 장면은 보이지 않는다. 그 장면의 고통은 보이지 않는다. 사진의 고통. 그것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닌 다른 것을 원하는 데서 비롯된다. 사진의 ‘필사적인 의미. 우리는 구멍을 통해 시간의, 무(無)의 불변의 빛을 엿본다. 모든 사진은 형이상학적이다. - P124

우리들의 사진을 볼 때면, 나는 내 육체의 소멸을 본다.
그러나 그곳에 더는 내 손이나 얼굴이 없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걸을 수 없다는 것, 먹을 수 없다는 것, 성교를 할 수 없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사고의 소멸이다.
나는 몇 번이고 내 사고가 다른 곳에서 계속될 수 있다면 죽음도 상관없으리라 생각했다.

"당신은 곧 죽을 것처럼 글을 쓰고 싶다고 했잖아. 이제 정말로 그렇게 됐네, 자기야."
작년에 M이 한 말이다. 그는 2년 전, 내가 책에 쓴 문장을 언급했다. 내가 쓴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 문장을 썼을 때는 내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 P125

‘나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시체라는 물리적인 형태, 얼음처럼 차갑고 침묵하며, 후에 부패되는 것, 그런 것들은 내게 의미도, 소용도 없다. 확실한 것은 결국 그렇게 될 거라는 것이다. 나는 나의 죽음을 보았다. 그러나 나의 부재를 생각하는 것은 다르다. 냉혹하게 말해 나는 시간 안에 있는 육체다. 나 자신이 시간 밖으로 나가는 것을 생각할 재간이 없다. 우리를 기다리는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다.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기다림은 없다. 기억도 없다.
(2년 전에 지하철에 이런 광고가 있었다. ‘우리가 자신의 노화를 기억하는 일은 드물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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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한림원은 6일 에르노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하고, “개인적인 기억의 뿌리와 소외, 집단적인 구속을 드러낸 그의 용기와 꾸밈없는 날카로움”을 보여줬다고 이유를 밝혔다.

한림원은 “꾸준하지만 여러 다른 각도에서 젠더, 언어, 계급과 관련해 커다란 차이들이 드러나는 삶을 탐구했다”며, “작가로 이르는 그의 길은 길고도 험했다”고 평가했다.

- 기사 중 발췌

전문 https://v.daum.net/v/20221006203512963

https://v.daum.net/v/20221007060603333


반갑고 기쁘다!
안 읽었던 책은 이번 기회에…

읽은 책은 달랑 다섯 권.
빈 옷장, 단순한 열정, 사진의 용도, 부끄러움, 사건
<부끄러움>은 어디 갔는지 안 보인다.
분명 같이 꽂아 둔 것 같은데 …

#
나는 다섯 살, 여섯 살이었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행복했던 드니즈 르쉬르……. 가게, 카페, 아버지 어머니, 모두가 나를 중심으로 돈다. 클로파르 길의 여자애들과 비교하며 이 모든 것들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사실에 놀라고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에 그것에 대한 이유를 찾는다는 것에 놀란다. 나는 혼자 빙글빙글 돈다. 땅이 흔들리고 나는 회색 원 안으로 다가간다. 벽이 쓰러진다. 원피스! 어머니가 내 엉덩이를 때린다 이제 몇 달치 외상값이 밀린 촌뜨기들을 보러 가야 할 시간이다. 그들은 아프거나 발 혹은 다리가 하나씩 부족한 사람들이다. (43)

나는 나 자신만을 생각한다. 발가락부터 포니테일로 묶은 머리끝까지 나는 진정한 쾌락 덩어리였다. 갑자기 두려워졌다. 부모님이 아신다면, 이런 것들 없이는 살 수 없게 된다면, 가장 두려운 것은 내가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마침내 조금 더 명확하게 보고 만다. 나는 빨간 머리를, 그의 크로스컨트리, 두더지 안경을 지루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조금 덜 바보스러워졌고, 우등생들을 보면 모두 꾸며진 모습이란 것을 알게 됐고, 그보다 내가 더 우월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 P167

내 옆에서 교수님이 칸트와 헤겔과 생미셸학교 마지막 학년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 의사나 기술자의 딸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한 끗 차이로, 서둘러 내린 결정으로 내가 그곳에 없을 수도 있었다. ≪너는 새장이나 돌보러 가!≫, 그랬다면 공부는 끝이다! 나는 살아남았다. 그러나 조심해야 한다. 출신이 다르다. 지금 그들은 빈 술병을 담는 상자를 나르면서 싸운다. 너희들은 이런 것을 절대 알 수 없겠지. 모든 면에서 내가 더 우수하다, 쾌락을 느끼는 것조차도 두렵지 않다. 계속 처녀로 남기만 한다면.……… 나는 흥분한다, 나는 자신에게 말한다. 나는 생각으로 철학 반을 점령한다. -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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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10-06 21:2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수상이유,한림원의 평가도 더없이 적절해보입니다.
10월되고 오늘까지 책 구매 안하고 잘 버티다가
아니 에르노 비롯해 몇권 주문했어요.^^

프레이야 2022-10-06 21:38   좋아요 4 | URL
저도 이참에 에르노 몇 권 구매하려구요^^
책 안 사긴 하늘에 별따기보다 어려운 듯요.

기억의집 2022-10-06 21: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북플친구들에게서 아니 에르노 작품 많이 본 것 같은데.. 아니 에르노 작품 읽은 적이 없지만 작가 소개 보니 저의 엄마보다 나이가 더 많더군요!!!

프레이야 2022-10-06 21:32   좋아요 1 | URL
40년생 울엄마랑 동갑내기입니다 ㅎㅎ 대단해요 에르노.

서곡 2022-10-06 21: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당장 전자도서관 가서 대출했습니다 ㅎㅎㅎ

프레이야 2022-10-06 21:34   좋아요 2 | URL
우왕 발빠른 아니 손빠른 서곡 님.
이곳저곳 잔치 분위기네요 ㅎㅎ 우리가 왜 그런진 모르겠지만요.

mini74 2022-10-06 21: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달랑 두 권 ㅎㅎ 기사내용도 좋네요. 아니에르노상이 있었군요 ~

프레이야 2022-10-06 22:22   좋아요 2 | URL
네. 2003년에 제정되었다고 해요.
빈 옷장이랑 사진의 용도 등 1984북스에서 나온 책 마음에 들어요. 저 기사에 에르노 사진도 멋지군요^^

책읽는나무 2022-10-06 2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아니 에르노가 받았네요!!ㅋㅋ
안그래도 제 북플친님들 몇 분들 상당히 좋아하시겠어요.
저도 여름에 서점에서 에르노 책 구입하고 싶더군요. 뭔가 끌리는 이유가 있었네요ㅋㅋ

2022-10-06 2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0-06 2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22-10-06 22:47   좋아요 3 | URL
아니… 그러게 말입니다.
세 권 새로 나온 책 이뻐서 갈등하다 안구매 선택했는데 말이죠. 다시 유혹이 ㅎㅎ

2022-10-06 2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0-07 0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행복한책읽기 2022-10-06 22: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우!! 에르노가 되었어요? 기쁜 소식이에요. 저 이 작가 팬^^ 프레이야님 잘 지내시죠?? 좋은 소식 품에 안고, 에르노 만나러 가야겠어요. 어쩌다 또 올게요.^^

프레이야 2022-10-06 22:49   좋아요 1 | URL
와우! 아니! 행복한책읽기 님도 팬이시군요. 칼 같은 글쓰기,도 이참에 볼까 싶고요. 에르노 잘 만나시고요 페이퍼 써주세요 ~^^

scott 2022-10-06 2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책 커버 사진 바꿔주세요
아니 에르노 책 옆에 놓고 싶습니다 😍

프레이야 2022-10-07 00:24   좋아요 2 | URL
사진의용도, 사진 참 마음에 들어 더 좋아해요. 고르고 배치까지 신 대표가 했을까요 ^^

scott 2022-10-07 00:28   좋아요 2 | URL
혼자 전 부 다 하신다고 합니다

이분 천재 ^^

희선 2022-10-07 02: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노벨문학상 어제 발표가 났을 텐데, 벌써 아니 에르노 노벨문학상 받은 게 쓰여 있어요 알라딘에... 이 상은 발표가 나면 바로 그걸 쓰는가 봅니다


희선

프레이야 2022-10-07 14:53   좋아요 2 | URL
도서 출판계 모두 대기하고 있다가 짜잔~ 하는 거 아닐까요 ㅎㅎ

페넬로페 2022-10-07 13: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달랑 다섯 권이라뇨?
저는 0권입니다.
그래도 좋아요.
저에게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신세계이니까요~~

프레이야 2022-10-07 14:52   좋아요 2 | URL
우리에게 신세계가 많아 얼마나 좋은지요 페넬로페 님^^

그레이스 2022-10-07 14: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진의 용도 오고 있습니다.
굉장히 느리게 ㅋㅋ

프레이야 2022-10-07 14:53   좋아요 1 | URL
아니! 걸음이 좀 느리군요 ㅎㅎ
맞이하시면 반할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