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용도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마크 마리 지음 / 1984Books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사진 속에 우리의 육체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나눈 사랑도 없다. 그 장면은 보이지 않는다. 그 장면의 고통은 보이지 않는다. 사진의 고통. 그것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닌 다른 것을 원하는 데서 비롯된다. 사진의 ‘필사적인 의미. 우리는 구멍을 통해 시간의, 무(無)의 불변의 빛을 엿본다. 모든 사진은 형이상학적이다. - P124

우리들의 사진을 볼 때면, 나는 내 육체의 소멸을 본다.
그러나 그곳에 더는 내 손이나 얼굴이 없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걸을 수 없다는 것, 먹을 수 없다는 것, 성교를 할 수 없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사고의 소멸이다.
나는 몇 번이고 내 사고가 다른 곳에서 계속될 수 있다면 죽음도 상관없으리라 생각했다.

"당신은 곧 죽을 것처럼 글을 쓰고 싶다고 했잖아. 이제 정말로 그렇게 됐네, 자기야."
작년에 M이 한 말이다. 그는 2년 전, 내가 책에 쓴 문장을 언급했다. 내가 쓴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 문장을 썼을 때는 내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 P125

‘나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시체라는 물리적인 형태, 얼음처럼 차갑고 침묵하며, 후에 부패되는 것, 그런 것들은 내게 의미도, 소용도 없다. 확실한 것은 결국 그렇게 될 거라는 것이다. 나는 나의 죽음을 보았다. 그러나 나의 부재를 생각하는 것은 다르다. 냉혹하게 말해 나는 시간 안에 있는 육체다. 나 자신이 시간 밖으로 나가는 것을 생각할 재간이 없다. 우리를 기다리는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다.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기다림은 없다. 기억도 없다.
(2년 전에 지하철에 이런 광고가 있었다. ‘우리가 자신의 노화를 기억하는 일은 드물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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