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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클레스 넌 멋져!
엠마뉘엘 트레데즈 지음, 유혜광 그림, 최내경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엠마누엘 트레데즈는 프랑스에서 인기작가로 떠오르는 어린이책 작가라고 한다. <헤라클레스, 넌 멋져!>는 그리스 신화와 현실 속의 개구쟁이 친구들의 이야기를 절묘하게 배합한 독특한 동화다. 이야기의 줄기는 헤라클레스라는 이름을 가진 10살 남자아이의 일기형식의 고백이다. 특이한 이름 때문에 전학을 간 학교마다(아빠의 직업 때문에 전학을 자주 가게 된다) 놀림감이 되어 고민하는 이 아이는 어느 날 부모님에게 하소연을 한다. 아빠의 위로와 엄마가 주신 <헤라클레스의 모험>이라는 책으로, 자신의 이름을 좋아하게 되고 자신감을 가지게 된다.
이 동화는 우리네 동화처럼 교훈적이지 않다. 너무 어른스러운 아이들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아무렇지도 않게 친구를 괴롭히고 과일을 슬쩍 훔쳐 달아나고 선생님이나 다른 어른들에게도 무례하고 거짓말도 능청스럽게 한다. 이 나이 또래 남자 아이들의 짖궂은 장난과 호기심과 모험심이 일상에서 잘 드러나있어 보면 볼수록 웃음이 묻어난다. 작가는 어느 구석에서도, 아이들에게 친구를 따돌리지 말고 친구에게 다정하게 굴고 어른들에게도 예의바르게 행동하고 언제나 진지하여라, 라는 설교를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아이들의 천진하고 건강한 말과 행동을 통해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초등 3,4학년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면을 보란듯이 살려내고 있다.
수학을 잘 하는 헤라클레스는 결코 자신이 수학을 잘 한다는 것을 먼저 자랑하거나 내세우지 않는다. 이 아이는 자신의 고민을 혼자 꿍꿍 앓고 폐쇄적인 증상을 보이지도 않으며 부모님에게 근심을 토로할 수 있는 성격이다. 수학을 잘 하는 헤라클레스에게 먼저 반한 건 마크다. 마크는 악어파의 대장인데 악어파에 껴주겠다는 조건으로 재미난 조건을 내건다. 친구를 사귀는 데 어떤 조건을 내건다는 점에서 또 비판적인 시각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작가의 유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된다. 그리스 신화 속의 헤라클레스를 이름으로 가진 아이가 아닌가.
이 아이는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운명(주어진 이름, 친구사귀기의 어려움)을 자신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는 아이다. 신화 속 헤라클레스가 12가지의 모험을 겪은 것처럼 마크는 자신이 이미 반해버린 친구 '헤라클레스'에게 12가지의 과제를 수행할 것을 조건으로 내건다. 여기서 헤라클레스의 영리함이 엿보인다. 마크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수행할 과제를 도와줄 것이라는 뭔지 모를 믿음을 헤라클레스가 느낀다는 점이다. 우정은 이렇게 서로의 믿음으로 시작하는 것인가 보다.
여기서부터 '이야기 속 이야기' 를 보며 짜 맞추어 읽는 재미가 솔솔하다. 신화 속의 12가지 모험을 하나씩 들려주고 난 뒤 동화 속 헤라클레스의 일기가 다시 전개된다. 12가지의 과제를 하나씩 해결해가는 모습이 좌충우돌 흥미진진하다. 어찌보면 억지스러운 것 아닌가싶을 정도로 신화 속 모험과 현실의 과제가 짝을 맺는데 들여다보면 아이들의 톡톡 튀는 발상과 상상력이 엉뚱하면서도 그럴싸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모험은 헤라클레스가 네번째로 겪는 모험으로 황금뿔과 청동다리를 가진 케리네이아의 암사슴을 생포하는 과제인데, 동화에서는 헤라클레스가 속으로 좋아하는 아나벨에게 뽀뽀를 받는 것으로 해결된다. 아름다운 암사슴, 아나벨의 마음을 생포하기 위해 헤라클레스는 서투른 시를 써서 아나벨에게 준다. 이 방법은 물론 엄마의 마음을 사로잡은 아빠의 조언을 힌트로 하였다. 10살 소년이 쓴 연서와 아나벨이 분홍 편지지에 써서 준 답장이 얼마나 예쁜지... 귀여운 것들!
하지만 약간의 거부감이 드는 건, 이 대목에서 여자에 대한 편견이 보인다는 점이다. 여자들은 '떠받들어주고 예쁘다고 칭찬해주는 걸 좋아하고, 무엇보다도 자기를 위해 시를 지어 주는 걸 제일 좋아한'다고 힌트를 주는 아빠의 말이다. 게다가 헤라클레스의 독백에도 '내가 여자 애들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항상 수다를 떤다는 것, 축구 같은 건 할 줄 모른다는 것, 빨리 달리지 못한다는 것, 거울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는 것 정도다. 그러니 칭찬할 게 뭐가 있담!' 이라는 대목이 걸린다. 은연중에 남자아이들이 이런 마음을 가질까 우려되는 대목이다. 그래서 많은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상품 만족도 별 다섯 중 한 개를 빼기로 한다.
이 동화의 가장 큰 미덕은 우정을 가르치지 않으면서 다 읽고 나면 어느새 우정이 몸에 스며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예를 들자면 브뤼노의 더러운 방을 청소하는 과제(신화에선 아우게이아스 왕의 가축 우리를 청소하는 일)를 수행 중에 헤라클레스는 혼자서 방을 청소하며 램프의 먼지를 닦다가 잠깐 졸았는데 깨어보니 마법처럼 방이 대충이나마 깨끗해져 있다. 함께 읽은 3학년 아이들에게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하고 물으니 아이들은 대개 요정이 나와서 치워놓았다는 대답을 하였다. 내 생각은, 헤라클레스만 그 방에 두고 모두 밖으로 나간 악어파의 다른 친구들이 들어와 치운 것일 테다. 아이들은 어려운 과제를 척척 해내는 헤라클레스를 점점 좋아하고 있었고, 아예 처음부터 그리 대단한 악의를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또래 아이들 특유의 호기심 어린 장난기 속에 이렇게 순수한 마음이 숨겨져있었던 거라 믿는다. 아니, 악어파 친구 모두가 아니라 대장 마크만 살짝 무리에서 빠져나와 헤라클레스를 도운 것일지 모른다. 이야기의 초반에 이런 암시가 나오는 대목이 있으니 말이다.
1년 후, 다윗이라는 아이가 전학을 왔다. 헤라클레스는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지금은 악어파 친구들과 뭉쳐서 잘 지내고 있는 자신들의 그룹에 다윗을 넣고 싶어한다. 작은 몸집에 울보지만 구슬치기를 잘 하는 다윗은 어떻게 친구로 뭉쳐질까? 작가는 독자로 하여금 흥미로운 상상을 펼쳐볼 수 있게 골리앗이라는 이름을 던져주고 이야기를 맺는다. 뒷이야기를 독후활동으로 적어보았는데 다윗도 골리앗을 이긴 후 악어파에 들어오고 나서 이순신이라는 이름의 아이가 전학을 온 걸로 하여 3탄을 기대하라며 맺은 글이 재미있었다.
그리스 신화를 좋아하는 아이라면 초등 3학년 정도에게 더욱 권하고 싶다. 그리스 신화를 알지 못하는 아이들이라도 이 책을 기회로 하여 신화 속 헤라클레스의 이야기까지 조금 더 찾아보고 상상력을 발동하게 되면 일거양득이 될 것 같다. 자신의 이름에 불만을 갖는 대개의 아이들, 친구 사귀기를 어려워하는 아이들,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도 늘 질문이 많고 자신만의 재미난 상상을 즐기는 아이들이라면 모두 이 책을 좋아할 것이다. 지루할 틈이 없이 숨가쁘게 전개되는 일상 속의 작은 모험이 신난다. 밝고 유쾌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