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비구비 사투리 옛이야기 - 사투리로 들려주는 팔도 옛이야기
노제운 글, 이승현 그림 / 해와나무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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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리 옛이야기의 마력은 뭐니뭐니해도 구수한 입담에 있다. 내가 처음 마음에 들었던 옛이야기는 서정오님이 쓴 옛이야기 시리즈 열 권인데 모두 간결하고 걸죽한 입말로 쓰여있어 읽는 재미가 더했던 기억이 난다. 옛이야기는 구전되어 온 이야기이니만큼 들려주는 재미와 듣는 재미를 배가하면 이야기 전달 방식에 호감이 더 생길 것이다.

 어떻게 하면 많고 많은 옛이야기책들 중에서도 흥미를 더 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저자는 각 지방의 사투리로 이야기를 들려주자는 생각을 했다. 우리 사투리는 각 지방의 특색과 사람들의 성격을 어느 정도 담고 있어 듣고 있자면 그들의 정서가 푸근하게 느껴진다. 표준말이라면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해져있지만 표준말이 아닌 사투리가 표준말이 될 수도 있다고 가정해 보면 재미있는 상황이 연출된다.

 

 

 사투리, 하면 우스운 기억이 하나 있다. 초등 4학년 방학 때, 큰이모가 살고계셨던 서울에 간 적이 있는데 며칠동안 그 동네 아이들과 놀면서 서울촌놈들에게 경상도 사투리를 가르쳐주었다.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그 아이들이 신기하다는 듯 내게 물어왔고 나는 답하는 식이었다. 예를 들어, 고양이를 거기선 뭐라 그래? - 응, 괭이... 이런 식이다. 난 서울태생이다. 다섯 살 때 부산으로 이사오지 않았더라면 서울말을 쓰고 살고 있을 터이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올씨다. 아이들은 어울려 놀다보면 그곳의 말을 금세 배운다. 서울 아이가 부산 아이와 놀면서 금세 이곳 사투리를 배우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부산에 이사 온 후 엄마가 놀랐던 일을 말씀하신 적이 있다. 어느 날, 밖에서 놀다 뛰어들어오며 어린 내가 완전히 부산말을 쓰더라는 거다. 아침까지만 해도 깜찍하게 서울말을 쓰던 애가 그랬으니 얼마나 우스웠겠나. 사투리에는 그만큼 낯설면서도 동화하기 쉬운 정감과 유대감이 있나 보다.

 이 책에는 제주도를 비롯해 아홉 개 도의 대표적인 옛이야기를 꼽아, 모두 9개의 옛이야기를 추려 실었다. 모두 ‘한국구비문학대계’와 북한 지역의 설화가 가장 많이 실려 있다는 ‘한국구전설화-임석재 전집’에 실려 있는 이야기에서 뽑았고 각 도별 이야기 뒤에는 참고한 지역의 출처를 밝혀두었다. 아이들이 이것까지 읽지는 않겠지만, 전해오는 옛이야기들을 두루 꼼꼼히 뒤져서 선별한 공이 느껴졌다.

 저자는 각 지역에 오래 살아온 사람들의 도움으로(예를 들어 충청도는 강정규 선생) 사투리를 구사하여 썼지만, 모두를 사투리로 옮기는 건 무리이고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정도로 사투리를 골라 썼다. 그리고 특징적인 사투리의 표준어를 괄호 속에 바로 넣어 이해를 돕고 있다. 각 이야기마다 해학과 기지가 넘치고 힘없는 백성의 통쾌한 승리감을 함께 맛볼 수 있는 우리 옛이야기의 장점이 사투리로 인해 반감되는 일은 없다. 눈으로 읽지 말고 소리내어 읽어보면 훨씬 재미있다.

 

 

 3학년 아이들과 읽었는데 아이들 모두 무척 흥미로워했고 전체적으로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단지 북한 사투리와 제주도 사투리 같은 경우는 아주 생소한 단어들이 많아 낯설어했지만 사투리를 알 필요가 있겠다는 데에 모두 동의했다. 사투리 옛이야기 경연대회도 열어 보았는데 각자 가장 재미있었던 이야기를 골라 사투리로 읽어보았다. 경상도 이야기는 비교적 쉽게 읽었고  제주도를 고른 아이는 좀 힘들게 읽었지만 재미있어 했다. 강원도 이야기를 읽은 아이는 마치 자기가 강원도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고 익살을 부렸다. 모두 사투리 옛이야기에 좋은 점수를 주었다.

 이 책은 삽화도 내용 못지않게 장난기 가득하다. 한지 느낌이 나는 누런 색을 입힌 종이에 거칠고 굵은 검정 윤곽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슥삭슥삭 그린 것 같은 붓의 느낌이 생동감을 준다. 하나같이 인물의 생김새를 단순하면서도 과장되게 그려 웃음이 절로 난다.

 내가 제일 재미있었던 이야기는 경상도 것인데 제목은 ‘똥 싼 바지 잃고 눈물 흘린 사돈’이다. 시집간 딸의 눈물겨운 지혜가 돋보이는 대목도 그렇거니와 주접을 떠는 난장판 사돈의 행색이 우스꽝스러워 배꼽을 잡았다. 아래 대사와 함께 그려진 삽화가 제일 생동감 난다.

“이노무 똥개 셰끼, 내 바지 도(줘)! 내 바지 도!” (p60)

 이 책에 조금 더 바란다면, 아직 우리나라 지도에 익숙하지 않고 행정구역에도 낯선 아이들을 위해 우리나라 지도를 넣고 각 도별로 색으로 표시하던지 하여 각 도의 이야기와 연결해 주었더라면 하는 것이다. 지형적인 특징과 함께 사투리의 특색에 대해서도 공감하기가 더 쉽지 않을까.

 한 가지, 생각하게 된 점은 옛이야기의 무차별 패러디에 대해서다. 우리 옛이야기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옛이야기도 패러디가 나오고 있는데 그것이 옛이야기가 갖는 원래의 미덕을 고스란히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저자의 머리말이다. - “옛이야기는 마음 속 깊은 곳의 슬픔과 분노, 기쁨과 희망을 비추는 마법의 수정구슬입니다. 그 곳에는 어린 시절의 추억과 미래의 내 모습이 펼쳐져 있지요. 또한 그곳에는 나약한 어린이를 멋진 어른으로 키워 주는 신비한 보물이 숨겨져 있답니다. 그런데 만약, 옛이야기의 내용을 함부로 고치거나 지워 버린다면, 마법의 수정 구슬은 금이 가고 깨져서 더 이상 아무것도 비출 수 없게 되지요. 이 모든 것은 옛이야기 본래의 모습으로서만 맛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적 해석이 가미된 패러디가 주는 효과도 분명 있겠지만, 옛이야기 고유의 미덕을 그대로 안는 순수한 즐거움이 더 클 것으로 생각된다. 닳고닳아 반질반질해진 수정구슬이 아니라 먼지가 묻어있는 채로, 손때도 묻어있는 채로, 별로 반짝이지 않아도 은은한 빛을 발하는 그런 수정구슬이면 더 좋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본래의 모습을 갖춘 옛이야기를 소개해 주고 싶었다는 저자의 의도가 사투리로 인해 더 잘 전달된 것 같다.


책의 뒤에는 9개 이야기를 수록한 CD 두 장이 첨부되어 있다. 성우가 들려주는 사투리 옛이야기인데 조금 어색한 부분도 있지만 그런대로 흥미롭게 들을 수 있다. 각 지역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원색적인 목소리면 더 좋았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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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09-28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사투리버전의 우리 옛이야기 관심집중, 강추!

프레이야 2007-09-29 00:01   좋아요 0 | URL
소리내어 사투리 구사하며 읽으면 무지 재미나요~~
전라도 사투리로 부엌이 '부샄'으로 나오던데 맞나요?

바람결 2007-09-30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교회에서 '농부 하나님'이란 찬양을 부르다가,
이 흥겨운 노래를 사투리로 부르면 참 재밌겠다 하는 생각을 해보았어요.^^

'수정구슬'같은 옛이야기들, 사투리들, 낡고 먼지낀 아름다움을 생각해봅니다.
그리고는, 멋진 어른으로 키워준다던 그 옛이야기에 막걸리 한 사발과 함께 흠뻑 취해보고 싶군요.ㅎㅎ

프레이야 2007-09-30 20:12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농부하나님요? 가사가 궁금해지네요.
경상도버전으로 부르면 투박하려나요? 정감 있으려나요? ^^
낡고 퇴색한 것들의 아름다움에 자꾸 눈이 가는 건 세월의 흐름을 탄다는
것일까요? 막걸리 한 사발, 들이키고 싶네요, 저도.
주일 평안히 보내셨지요?

바람결 2007-09-30 23:4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세월의 흐름을 타는 것 같아요.;;
정말 막걸리 한 사발 해야겠어요.

그나저나 무탈하고 평안한 주말을 보내셨다니 참 좋네요.
게다가 말그대로 '앙큼한' 따님의 마음이
막 전해지는 것 같아 더 좋네요.
달란트 잔치에서 주방장갑을 사오다니,
정말 여간내기가 아닌가 보군요.ㅎㅎ

따님도 예쁘고, 혜경님도 참 행복하시겠어요~^^

그리고 농부하나님이라는 노래는 조만간 올려놓아볼께요.
참 좋은 노래에요.^^

프레이야 2007-10-01 00:00   좋아요 0 | URL
네, 농부하나님 가사 기대하고 있을게요.^^
열살인데 그 앙큼함 때문에 제가 아주 몸살이 납니다.ㅎㅎ

한숲 2007-10-15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방언과 표준말 수업들어 갔는데 딱이 겠네요. 하나 사서 아이들과 읽어야 겠어요. 감사

프레이야 2007-10-15 17:07   좋아요 0 | URL
초등 2,3학년 정도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거에요^^
 
한 눈 팔기 대장, 지우 돌개바람 12
백승연 지음, 양경희 그림 / 바람의아이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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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침없는 상상력의 발동은 인간 중심의 가치체계와 일상으로 굳어진 상식의 관념들에 균열을 내면서 ‘저 너머의 푸른 세계’로 우리를 손짓한다. - <아동문학과 비평정신 p24>, 원종찬/창작과비평사 중

 '저 너머의 푸른 세계'로 향하는, 판타지는 특히 아동문학의 근간을 이루는 내용이자 형식이다. 판타지는 열림의 형식을 취하고 회생의 내용을 담는다. 더구나 판타지의 묘미는 철학적 메시지에 있는데, 위에 언급한 책에서도 ‘판타지가 자유분방한 상상력의 소산이라 하더라도, 그 핵심은 역시 상상력을 뒷받침하는 철학에 달려 있다’고 재삼 확인하고 있다. 판타지가 현실의 불안정함을 극복하고 성장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통과의례로 작동하려면 그 안에 건강한 철학이 깔려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황당무계하기만 한 이야기가 감동을 전하지 못하는 건 그런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리 건강한 철학이라 해도 이야기 속에 잘 녹아들지 못하고 웃도는 기존의 교훈주의 동화들에 식상해진 지는 오래다. 아이들이 갖는 현실에서의 압박감은 나날이 경쟁적으로 치닫는 사회에서 더욱 복잡해지고 다양해져간다. 요즘 아이들의 일상을 보면 '놀기'는 사치품목 같이 여겨질 정도다. 이 책은 아이들을 가르치기보다 함께 놀아주라고 말한다. 물리적인 자연의 시간을 벗어나 마음의 시간이 작동하는 판타지의 세계는 꿈이고 소망이다. 그 세계에서 아이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 마음껏 즐기고 모험을 하며, 위기를 넘기고 구원을 얻는다. 그러고 나서 돌아온 현실의 세계는 어느새 아이의 마음속에서 달라져있다. 세상은 같으나, 결코 이전의 세상이 아닌 것이다.

<한 눈 팔기 대장, 지우>는 장점이 많은, 판타지 희곡이다. ‘바람의아이들’에서 나온 저학년 도서로 참신한 기획이 돋보인다. (일상에 널려있는)환상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여행을 통해 유쾌하게 읽으면서 진지한 생각을 얻게 되는 장점도 있지만, 동화의 서술방식을 과감히 뛰어넘은 극본 형식이 우선 마음을 잡아끌기에 충분하다. 아이들은 연극을 하나의 놀이마당으로서 좋아한다. 무대가 여의치 않으면 작은 가면이라도 만들어 쓰고 일인다역을 하는 역할극에도 흥분하는데, 제대로 된 극본을 들고 무대를 꾸미고 각자의 역할을 맡아 연극을 하면 얼마나 좋아할까. 이 책은 아이들의 그런 심리를 잘 알아서 나온 책이다. 역동적이고 입체적인 아이들의 마음을 제대로 살려줄 수 있는 독서활동이 될 것이다. 소리내어 읽는 것만으로도 한 판 질펀하게 논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읽기에 그치지 않고 여럿이 함께 역할극 또는 연극이라도 하는 기회를 가지면 좋겠다.

 이 책은 장르의 경계를 넘은 점 이외에도 소재면에서도 과거와 현대의 것이 조화롭다. 특히 우리 것을 소재로 우리 정서를 담았다는 점이 또한 매력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어수룩하지만 뻔뻔한 도깨비가 등장하고 아이들의 정신적 스승 격으로 92세 할아버지가 등장한다. 달맞이꽃에서 달토끼로 이어지는 '달'의 은근한 정서도 그렇지만, '달'은 판타지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신호가 되기도 한다. 모리스 샌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서 달의 역할을 떠올려보면. 이 책에서는 달까지 정말 모험여행을 가게 된다는 점이 다른데, 그곳까지 가는 교통수단으로 아주 현대적인 것이 등장한다. 희곡이니만큼 대사의 맛이라면, 우리의 전래동요 같은 노랫말을 대사에 담고 그 가사도 반복적인 짧은 글귀를 리듬감 있게 배치하여 부르는 맛이 흥겹다. 역할극을 할 때면 아이가 마음대로 곡을 붙여 불러보도록 하면 재미있을 것이다. 또한 인물들의 대사도 간결한 언어로 마치 노래를 부르듯 운율감이 있다. 노랫말도 대사도 정겹고 소박하며 군더더기가 없다.

 모두 7막으로 나아가는데 장은 따로 없고 대신 무대장치를 할 수 있는 해설이 비교적 자세한 편이다. 간단하면서도 재치 있게 배치한 장치가 깜찍한데 책에선 삽화로 보여 주어 연극무대를 꾸민다면 참고가 될 것이다. 지문은 의도적으로 생략했는지 어느 대사에도 없는데, 오히려 역할을 맡은 아이가 나름대로 해석하여 독창적으로 대사를 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보인다. 마치 뮤지컬의 양식처럼 중간중간에 함께 부르는 노래들이 연극 전체를 신나게 끌어줄 것이다. 책 전체를 어른과 아이가 번갈아 가며 역할극을 하듯 소리 내어 읽으면 독자가 연극에 참여하는 기분이 들어 색다른 읽기경험이 될 것이다.

 지우는 한 눈 팔기 대장이다. ‘정신없고 말 많고 놀기 좋아하는’ 아이가 진짜 지우다. ‘똑똑하고 착하고 얌전한’ 지우는 어른들의 환상일 뿐. ‘한 눈 팔기’는 거침없는 상상의 세계로 나아가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동심을 믿을까, 변덕을 믿을까. 우리 아동문학이 동심주의의 환상에서 완전히 벗어났는지?  아이들은 끝없이 한 눈 팔고, 돌아서면 방금 들은 말은 잊어버리고, 이랬다저랬다 변덕도 죽 끓듯 한다.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잔인한 일면도 있다. 열 살이면 다 컸지, 라고 생각한 나도 근래 연이어 아이 때문에 낭패를 당했다. 내 잣대로 기대치를 만들고 아이를 너무 믿었던 건 아니었나 싶다. 내가 내 발등을 찍었지 뭔가. 하지만 그런 성향은 따지고 보면 어른들도 매한 가지로 갖고 있으면서 잘 눌러서 포장하여 보이지 않을 뿐이다.

 아이들은 자기가 누구인지 잘 모른다. 어떨 땐 인형 엄마가 되기도 하고 피아노 선생님이 되기도 하고 어떨 땐 어엿한 형이나 누나가 되기도 한다. 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아이들은 변신의 귀재다. 어제와 오늘, 가만히 보면 아이는 또 달라져있다. 지우는 어느 날 빗자루 도깨비가 된다. 빗자루 도깨비는 지우가 되고. 지우는 남몰래 자기가 도깨비가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거나, 빗자루를 보며 도깨비를 상상했던 건지도 모른다. 지우의 모험은 예상을 불허하며 이리 튀고 저리 날고 하는데, 그 모험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들이 갖는 아련한 이야기의 추억 한 자락, 물질의 가치에 묻혀 잊혀져가는 것들에 그리움을 보내는 시선을 만날 수 있다. 그렇다고 감상적으로 적어놓진 않았고 아이들의 시선으로 공감될 정도로 군소리 없이 적혀있다.

- 달토끼 : 아, 정말 너희 그 절굿공이 도깨비를 아는구나. 옛날엔 내가 절구질 할 때마다 잘도 나타나더니 로켓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부터는 통 만날 수가 없어. 사람들이  도깨비 생각을 잘 안 해 주나 봐. 사람들 기억이 있어야 여기도 자주 오고 그럴  텐데. 하긴 후유-사람들이 생각 안 해 주긴 나도 마찬가지지만. (p108)

지우는 갖가지 모험을 겪고 한 가지 중요한 생각을 얻었다. 그게 얼마나 오래 갈지는 장담할 수 없다. 지우는 또다시 한 눈을 팔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가 누군지 잘 생각하기만 하면 어려움이 풀린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 네가 나인 줄 알고, 내가 너인 줄 알고 사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달토끼와 할아버지가 지우에게 말한 아래 대사도 새겨볼 만하다.

- 달토끼 : 그런 사람 많지. 뭐가 뭔지 잘 생각하지 않는 사람, 자신이 누군지 몰라 헤매는  사람, 로켓이 뭘까 잘 따져 보지 않고 고생만 하는 사람. (p110)

할아버지 : 그렇단다. 내가 말이다. 한 백 년쯤 살아 보니 그런 일이 있더라. 내가 나인 줄도 모르고 남인 줄 알고 사는 일, 남이 남인 줄 모르고 난 줄 알고 사는 일, 도깨비에 홀린 것 같은 그런 일 말이다.(p123)

 지우는 학교 가는 길에 한 눈을 팔았지만 이제는 돌아와 '학교로' 간다. 그런데 어제까지 가던 학교가 아니다. 여전히 받아쓰기를 하고 셈공부를 하고 이상한 노래를 배우겠지만 더이상 어제까지 배우던 시시한 것들이 아닐 테다. 더구나 학교 가는 길에 만나는 꽃 한송이, 가로등, 빗자루 몽댕이 하나도 다르게 보일 것이다. 문득, 등교할 때마다 지각을 자주 한다는 친구 딸이 생각난다. 하루는 꽃도 보고 나무도 보고 벌레도 보고 그러며 오느라 늦었다고 선생님께 말했더란다. 친구는 그런 딸에게 '그래도 꽃을 꺾지는 마라'고 말해주었다는데...  한 눈 팔기 대장을 남자아이만으로 내세운 것이 좀 걸린다. 한 눈 팔기 대장에 버금가는 여자친구와 동반하여 똑같이 모험을 즐겼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자아이가 주인공이어도 나쁘지 않았겠다.

 아래 내용을 보면, <한 눈 팔기 대장, 지우>는 ‘마당극’으로 연출하면 더욱 좋겠다.

빗자루 도깨비, 관객석에 내려가 어린이 관객에게 묻는다.

빗자루 도깨비 : 얘, 너도 도깨비 맞지? 괜찮아. 나만 알고 있을게. 도깨비 맞지? 아니라고? 이상한데......

빗자루 도깨비가 자리를 옮겨 가며 다른 관객들에게도 계속 묻는다. (p37)

 

이렇게 독자를 이야기 속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읽기 경험과 역할바꿈의 신명나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뜻깊은 시도이고, 거기에 가볍지 않은 생각거리를 무겁지 않게 안겨주어 마음에 드는 책이다. 초등 1-3학년이면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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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07-09-28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말에 읽으려고 챙겨 놨는데! 원종찬 선생님 글 인용하신 것까지만 읽고 얼렁 스크롤 내렸어요. 혜경님은 위험인물이야!!

프레이야 2007-09-28 16:45   좋아요 0 | URL
ㅋㅋ 위험인물이라우~ 님 혹시 어린이책 관련일 하시는 거에요?

하늘바람 2007-09-28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간인가봐요 궁금하네요

가시장미 2007-09-28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카가 있으면 사주고 싶은 책이네요. 저도 읽고싶은데.. 으흐 서점가서 읽어야겠어효! :)

프레이야 2007-09-28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네, 아주 재미있어요.^^

가시장미님, 서점 가서 슬쩍 서서 보셔도 될 거에요. 좋더군요^^

뽀송이 2007-09-28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바람의 아이들' 책이군요.^^
언제나 개성있는 책을 내는 '바람의 아이들' 신간이니 관심이 갑니다.^^

프레이야 2007-09-29 00:00   좋아요 0 | URL
뽀송이님, 추석 연휴 후유증은 끝났어요? ^^
이 책 무지 신나요^^
 
진딧물을 길들이는 붉은개미 - 길들이기 공생 공생과 기생 2
아만다 하먼 지음, 박시룡 옮김 / 다섯수레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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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들이기’라면 ‘어린왕자’가 길들인 장미와 ‘장미’가 길들인 어린왕자가 떠오른다. 생떽쥐베리의 문학적 상상력은 '관계맺기'이자 '진심으로 사랑하기'로서의 길들이기를 이야기한다. <진딧물을 길들이는 붉은개미>에서는 생물학적 길들이기가 나오는데 이 책은 ‘공생과 기생’ 시리즈의 두 번째 편이다.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물들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책이기도 하다. 그 관계에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상리공생과 한쪽만 이익을 얻고 다른쪽은 아무런 득도 실도 없는 편리공생이 있다. 물론 한쪽만 이득을 얻는 기생도 여기에 포함된다.

 

 

 시리즈의 첫 번째 편, ‘딱새를 속여 번식하는 뻐꾸기’는 번식공생을 보여주는데 그것에 이어 이 책은 '길들이기 공생'을 보여준다. 주요 등장 동물은 제목에서 보이듯 진딧물을 길들이는 붉은개미이지만 목차를 보면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차근차근 공생의 원리를 설명한다.


 공생은 생태계에서 서로 함께 살아가기 위한 ‘길들이기’로 해석된다. 동물과 식물 간에, 그리고 동식물과 인간 간에 길들이기의 역사는 오래 되었다. 제1장은 공생이란 어떤 관계인가부터 시작하여 길들이기의 역사를 설명한다. 사람은 동물에게서 노동력과 고기, 가죽, 털을 얻고 식물에게서는 곡식과 원료들을 얻는다. 동식물을 길들이면서부터 사람들은 차츰 정착생활을 시작했고 한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게 되었다. 이 부분은 어른이 함께 읽으며 원시역사와 관련하여 부가 설명을 해주어도 좋겠다. 초등 3학년 아이들과 함께 읽었는데 글자의 크기가 좀 작고 글자수도 많은 듯해서 처음엔 보기에 좀 어려워하던 아이들도 생생한 사진과 요모조모 재미있는 설명들이 나뉘어 배치되어있는 글들에 흥미를 느꼈다.

 제2장은 ‘서로를 길들이는 곤충과 곰팡이’라는 소제목으로 사람이 동식물을 길들이기 시작한 1만5000년 전의 시기보다 훨씬 오래된, 개미의 길들이기 역사와 그 능력을 보여준다. 흰개미의 일개미들이 곰팡이농장에서 곰팡이를 기르고 그 하얀 덩어리를 먹이로 먹는 모습은 놀라운 지경이다. 곰팡이를 먹이기 위해 자신의 몸집보다 몇 배는 커다란 나뭇잎을 들고 나르는 개미들의 행렬은 더욱 놀랍다. 그 외에도 푸른나비 애벌레를 기르는 개미와 정원을 가꾸는 우림개미 등, 보금자리를 꾸며 생계를 유지하며 살려고 애쓰는 다양한 종류의 개미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화학전은 인간의 전쟁을 방불하게 한다. 자세한 개미사진이 잘 나와 있어 보는 재미가 생생하다.

 제3장은 ‘노예를 부리는 개미’ 편이다. 아마존개미가 등장하는데 붉은 몸통의 아마존개미들에 근접카메라를 대어 아이들은 징그럽다고 야단이었지만 “왜? 귀엽지 않니?”라며 안 놀라는 척 해주었다. 아마존개미의 여왕개미가 활약하는 일과 그들의 노예 길들이기 방법을 보면 개미들의 사회가 무서워진다. 베르베르의 ‘개미’에서처럼 그들은 인간사회의 축소판이거나 그보다 더한 잔혹한 세계를 사는데 그게 또 생태계의 원리이니 오싹하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은 다른 생물이 없이는 살 수 없고 서로 길들여가며 주고받고 사는 것인데 환경파괴로 인해 사라지고 있는 생물들이 있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회색늑대의 후손인 개와 멸종동물인 오록스의 후손인 소는 우리생활과도 밀접한 관계로 지낸 동물이지 않은가. 가마우지를 이용하여 낚시 중 낮잠을 즐기는 낚시꾼의 모습은 한가로워 보인다. 서로 도움을 주고 받고 공생하는 동물들의 세계 속에 우리도 있다. 환경조건에 따라 생물의 습성은 물론 성격도 좌우되는 건 사람이나 동물이나 비슷한 것 같아 흥미롭다. 예를 들어, 열대지방에 사는 개미들이 추운 지방에 사는 개미들보다 자신을 노예로 부리는 개미에 맞서 저항하는 일이 많다는 사실은 ‘신기한 생물 이야기’ 상자에 들어있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꿀단지개미들의 노예 길들이기 방법이었다. 사람들의 세계와 어찌 비슷하던지 소름이 돋았다. 꿀단지개미들이 노예를 길들이는 방법은 아마존개미와 확연히 다르다. 갖가지 속임수로 원주민개미를 노예로 만들고 저항하는 노예개미들은 폭력과 마취로 진압하는 아마존개미들과는 달리 꿀단지개미들은 '단물'을 먹여 노예를 길들인다. 그들의 빵빵한 엉덩이는 단물로 가득한데 그것을 더듬이로 톡톡 두드리는 개미들에게 단물을 떨구어주고 노예로 만든다는 것이다. 섬뜩하지 않은가. 부드러운 폭력, 달콤한 억압, 그 안에 숨은 음흉한 미소를 모른채 탐닉하고 안주하고 길들여지는 목숨. 이보다 끔찍한 실상은 없는 것이다. 길들여진다는 게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 뒤에 나오는 ‘고양이의 야생성 관찰’은 본문과 좀 관련이 없어 보이는데 ‘직접해봐요’라는 꼭지이니, 생물을 가까이서 관찰해 보라는 권유로 읽으면 재미나다. 낱말풀이에서는 본문의 알아두어야 할 낱말을 정의해두었다. 여기 낱말풀이에서 ‘뚱보'의 정의가 재미있는데 본문과 관련하여 보면 ‘몸에 먹이를 저장해서 다른 꿀단지개미를 먹이는 꿀단지개미의 하나’로 나와있다. 이런 뚱보라면 우리사회에도 좀 많이 있으면 좋겠다. 길들이기 목적으로 단물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면.. 이 책의 원제는 ‘parasites & partners, Farmers and Slavers' 이고 번역은 이해하기 쉽게 해 놓은 것 같다. 이것저것 사진과 정보가 다양하여 3,4학년 어린이가 읽기에 권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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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1 2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나무집 2007-09-12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곤충에 관한 책이라면 아주 끔찍해하는 우리 딸에게도 한 번 권해봐야 할 책인 것 같네요.
생생한 사진 때문에 기겁을 할지도 모르지만요.

프레이야 2007-09-12 07:52   좋아요 0 | URL
네, 여자아이들은 처음에 보더니 기겁을 하더군요 ㅎㅎ
그런데 제가 자꾸 귀엽잖아, 이러며 세뇌(!) 시켰어요.
그런데 자꾸 보니 정말 귀엽다고 그러더군요^^
내용은 공생의 의미와 생리에 초점을 맞춰 충실한 편입니다.

다가섬 2007-09-12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은아이,벌레라면 ~답지 않게 과잉반응을 보이곤 하는데
아무래도 친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한가지라도 알고 바라보면 ...달라지겠지요?
3~4용이라니...읽혀볼 만 하겠어요.

프레이야 2007-09-12 10:38   좋아요 0 | URL
다가섬님, 우리집 애들도 날파리만 봐도 호들갑이죠. 걔들도 다 먹고 살아야
하는 거라고 웃겨주면 잠시뿐이에요.^^ 아는 것이 사랑하는 것의
첫걸음이겠지요^^

비로그인 2007-09-12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에~ 리뷰를 보다가 선물해주고픈 사람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담아요 ^^
그 분은 이런 자연과 동물,곤충의 세계를 무척 좋아하는 분이지요~

프레이야 2007-09-12 17:04   좋아요 0 | URL
엘신님, 어른이신가요? 제가 보기에도 재미난 책이었으니
곤충을 좋아하시면 재미있어 할 것 같아요.

비로그인 2007-09-13 11:32   좋아요 0 | URL
네,어른입니다. 늘~ 내셔널 지오그래픽같은 다큐 프로를 즐겨보죠^^
 
어린이 이슬람 바로 알기
이희수 지음 / 청솔 / 200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릴 적, '아라비안 나이트'의 모험적인 이야기에 빠져 환상의 공간으로 양탄자를 타고 날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은 우선 그때의 호기심으로부터 시작된 이슬람의 세계로 어린이 독자를 끌어들인다. 그러나 환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린이들에게 다양한 문화의 간접경험을 제공하는 목적으로, ‘이슬람’이라는 낯선 종교를 종교가 아닌 하나의 문화와 생활로 소개하는 책이다. 이 책의 초판 1쇄는 2001년 11월 1일이다. 미국 9.11 폭파사건이 일어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때라 당시 무척 관심이 가는 책이었다. 그리고 어린이들을 위한 이슬람 관련 책으로는 처음이라는 점에서 돋보였다. 이 책은 올해 30쇄를 넘었고 5년만에 다시 6학년 아이들과 함께 읽게 되었다. 그동안 내용이 보강되거나 크게 변화된 부분이 없어 다소 의아했지만 어린이들에게 이슬람에 대한 기본적인 사항들을 알게 한다는 점에서 그리 나물랄 데 없다.

 

 이희수 교수는 첫장에서 사무엘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을 잠시 언급하며 이슬람을 종교를 넘어 하나의 문명으로 이해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 사무엘 헌팅턴이라는 학자는 "21세기에는 문명간의 충돌이 커지고 특히 유교 문화권과 이슬람 문화권이 새롭게 등장할 것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p10)  문화의 다양성, 다양한 문화의 공존은 오늘날 세계화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다문화가족'이라는 말을 어제 티비에서 우연히 듣기도 했는데 이런 세상에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문화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일이 우선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아프가니스탄과 탈레반 피랍사건 등의 뉴스로 아이들도 탈레반에 대하여 궁금증이 많았는데, 이 책에는 탈레반에 대한 것도 한 꼭지 나온다. 모두 40가지의 질문에 이해하기 쉽게 대답하는 형식으로 짜여있다. 약간의 불만이 있다면, 목차가 다소 난삽하다는 점이다. 목차의 기준을 전혀 찾을 수 없다. 그저 생각나는 대로 묻고 대답하는 것 같은 느낌인데, 그보다는 질문이나 대답의 내용에 따라 묶어서 목차를 순차적으로 짰으면 더 좋을 것 같다. 내용은 이슬람 문화권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 문학, 건축물, 이슬람의 역사와 꾸란의 이해와 함께 종교로서의 이슬람, 경제, 국제관계와 국제사회에서의 위치, 중동문제, 이슬람 지도자들, 정도로 나뉠 수 있다.

 이슬람은 인류 문명의 4대 발상지 중 황허문명을 제외한 세 곳이 속해 있는 문화권이다. 오랫동안 찬란한 문명의 꽃을 피워 왔지만 유라시아의 경계에 위치하는 이유로 전쟁으로 인한 쟁탈과 약탈이 끊이지 않았고 십자군 전쟁 이후 유럽과 기독교와의 관계에서도 평화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그동안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던 점도 미국이나 서구유럽의 시각으로 배워온 세계, 역사, 종교에 기인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그들의 관점이 아닌, 우리의 시각으로 ‘이슬람 바로알기’를 권하고 있다. 우선 호기심에서 출발하게 하는데 중간중간에(모두 네 곳이지만 양이 많은 편) 사진을 많이 넣어두어 화보를 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우리 역사 속에서도 ‘꾸란’이 나온다는 점은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끌어내기에 충분하다. 그런 자료가 ‘조선왕조실록’에도 여러 차례 나온다며 하나의 기록을 보여준다.
“세종대왕께서 정초 경복궁의 경회루 앞뜰에서 좌우로 문부백관이 도열한 가운데 지긋이 눈을 감고 한 이슬람 원로가 낭송하는 <꾸란> 소리에 빠져 계시더라.”

고려 말기부터 조선 초기까지 한반도에 정착해 살고 있던 이슬람 지도자들은 궁중 하례 의식에 초청을 받아 정기적으로 참석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이슬람의 대표는 <꾸란>을 낭송하는 것으로 송축을 한 것인데, 그것으로 왕의 만수무강과 국가의 안녕을 빌었다. 고려 때는 개성 한복판에 이슬람 성원이 있었다. 우리나라 음력의 원리는 세종 때 편찬된 <칠정산외편>이라는 역법인데, 그 책은 역법의 기원과 성격, 계산법에서 이슬람 역법인 회회 역법의 원리에 따라 들여온 역법이라고 하는 점도 눈여겨 보인다. 또한 조선 초 집중적으로 개발된 과학기기들도 당시 중국에 들어와 있던 세계 최고 수준의 이슬람 과학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이다. 아이들은 세종대왕과 장영실의 과학적 업적이 우리민족 고유의 창의성이 아닐지 모른다는 데서 무조건 우리것이 최고야,라는 과잉자부심을 조금 버릴 수 있겠다.


 이슬람을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은, 이슬람이 생활과 문화로 배어있는 종교라는 점이다. 이슬람이라는 말 자체가 ‘평화’를 뜻한다. 이들 종교에는 성직자가 없고 하루 다섯 번의 예배를 충실히 지킨다.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을 최고의 덕으로 여긴다. '인샬라'는 '신의 뜻이라면', '신이 원한다면'으로 이슬람 정신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단어다. 이는 소극적이라기보다 적극적인 의사표현이고 어떤 일에 대한 긍정적 대응방식을 보여주는 말로 들린다. 이 말을 잘못 해석하여 오해를 낳지 않기를 바란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어있다.

 

 이슬람에서는 이자를 인정하지 않아 고리대금업을 악덕으로 여긴다는 점은 흥미롭다. 이슬람 은행이 이익을 분산하는 방식은 이자가 아니라 투자배당금이라고 한다. 지금은 국제무역을 위해 서구은행과 이슬람은행이 공존한다고 하는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이들은 전통을 지키면서도 국제사회와의 조화를 지향하며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지나치게 엄격하거나 얼핏 이해되지 않는 규율들도 그들의 환경과 입장을 알고 해석하면 충분히 납득되는, 합리적인 규율로 보인다. 일부일처제, 히잡이나 꾸란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 대해서도 잘 설명해 두었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이슬람 문화권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에서 비롯하기 때문에 그들의 것이면 다 좋다는 식으로 들릴 수 있다. 저자의 표현은 기울어지지 않은 시각을 고수하고 있지만,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어느 쪽이든 몰이해에서 벗어나 균형잡힌 시각을 갖도록 해야한다.

 

 문화와 종교에 우열이란 없다. 현재 21억의 기독교 인구에 이어 세계 2위의, 인구 13억도 훨씬 넘는 무슬림들은 앞으로 더욱 그 수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에만도 이슬람 사원이 300개도 넘고 인도네시아는 인구의 90% 이상이 무슬림이다. 서울 한남동에 있는 중앙성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이슬람 사원인데 다음에 가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내가 유일하게 본 모스크는 브루나이공화국에서, 흰구름 둥둥 떠있는 새파란 하늘 아래 금빛 찬란한 돔으로 서있던 것이다. 그곳에 들어갈 때는 누구든 맨발로 들어가야했다. 양말을 벗고 대리석바닥에 맨발이 닿는 촉감, 작열하는 태양 아래 뜨거웠던 나는 시원해서 좋았는데 발이 차서 여름에도 양말을 신고 자야한다는 어느 지인은 발이 시려 아주 힘들어하던 얼굴이 기억난다. 여자들은 검고 긴 가운을 걸치고 들어갔는데 마치 히잡을 쓰는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 친구 중에 아버지가 이슬람 신도였던 아이가 있었다. 모스크에서는 맨땅에 엎드려 기도를 하면 누구든 앞사람의 엉덩이와 발끝 쪽으로 머리가 닿아야하는, 평등한 관계가 마련되는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이슬람 문화권의 향방은 이들을 바라보는 조금 더 열린, 편견 없는 시선에서 좌우될 것 같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끊이지 않을 것만 같은 분쟁도 강대국의 비열한 패권다툼에서 시작했다. 그 나라의 죄없는 국민들은 지금도 집을 잃고 총성을 귓전에서 듣고 산다. 그들의 불행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열쇠 중 몇 개는 소위 강대국의 손에 있지 않은가. 또한 서구 문물의 홍수에 밀려 이슬람의 전통도 많이 희석되어가고 있다지만 나처럼 그들 고유의 전통이 지켜지는 모습을 보고 싶은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가장 뒤의 꼭지는 ‘이슬람 국가를 움직이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어 어린이들에게 이슬람 국가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과거, 현재, 미래를 두루 생각해 볼 수 있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초판1쇄 후 6년이 흘렀으니 <어린이 이슬람 바로알기 2>도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중학생을 위한 '다영이의 이슬람여행'과 '가로세로 세계사 3'도 나아가 더 읽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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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31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 정서에 맞는 다양한 책들이 자꾸 나왔으면해요...잘 읽고갑니다^^;;

프레이야 2007-08-31 09:39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turnleft 2007-08-31 0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슬람 관련해서는 정수일 교수의 책이 참 좋았는데, 확실히 애들 읽기에는 좀 지루할지도 모르겠네요.

프레이야 2007-08-31 09:41   좋아요 0 | URL
그분책은 어린이들용은 아니구요^^ 이희수교수의 책도 좋은데 이 책은 어린이
이슬람 안내서라는 점에서 좋은책입니다. 고학년용으로 문화적 충격이 될 것입니다.

2007-08-31 09: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31 0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7-08-31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꾸란도 불경처럼 낭송하는 소리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책이라던데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이슬람입니다...
기독교는 널리 퍼졌어도, 그 탓인지 이슬람을 몰라도 너무 몰라요...

프레이야 2007-08-31 13:22   좋아요 0 | URL
네, 그렇다고 하더군요. 아랍어나 이슬람이나 낯설고 멀게 느껴지는 건
많이 접할 기회가 없어서였겠지만 왠지 끌리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형벌에 대한 것도 이책에 잠시 나오는데 잔인한 형벌로 보이는 게
많지만, 말레이시만 해도 이슬람국이라 범죄율이 낮다고 들었어요.
어떤 것이 나은지는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일 같아요.^^

씩씩하니 2007-08-31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슬림들이 정말 많다는 생각이 들었요, 요즘은.....저도 직원이 주변에 있다는 말 듣고서 깜짝 놀랐었거든요...
열린 사고로 종교와 문화의 차이를 인정할 수 있다면..정말 좋겠어요...

프레이야 2007-08-31 20:26   좋아요 0 | URL
하니님, 이 책 고학년 보기에 좋아요. 이슬람을 소개하기에 요즘이 적합한
시기 같기도 하구요.^^ 세계인구의 5분의1이 믿는 종교인데 우리에겐 생소하여 낯선 느낌이지요. 이슬람 관련책들이 많이 나와있지만 어린이에게 정확하고 균형잡힌 내용을 전달할 수 있는 책이 되어야할텐데요.. 이책은 그런대로
권할만 하답니다.^^

2007-08-31 2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31 2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7-08-31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현재 제게 꼭 필요한 책이군요. 홈스테이 하는 친구가 이슬람이라 더 많은 이해가 필요하거든요. 좋은 책 감사합니다~~~꾹 누르고 담습니다!!

프레이야 2007-09-01 09:16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그친구가 어느나라 사람인지 문득 궁금하네요. 피부가 검다고
하셨던 기억이 나네요. 참 좋으시겠어요. 다문화가정을 지금 체험하고
있는 셈이네요. ^^ 고맙습니다.
 
토끼섬 세상을 배우는 작은 책 15
이원구 지음, 권문희 그림 / 다섯수레 / 2002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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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동화가 처음 세상에 나온 해는 1998년이다.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이지만 이 책에 담긴 동화 두 편을 읽으면 마치 1950년대의 세상으로 돌아가 있는 듯하다. 요즘 아이들에겐 낯선 시대배경이지만 그럼에도 요즘 아이들의 정서에도 공감되는 주제를 갖고 있어 친근하게 읽힌다. 작가 이원구는 어쩌면 대개의 여성작가보다 더 부드럽고 아름다운 표현을 살렸다. 그러면서도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삶은 감자처럼 꾸밈없고 소박한 심성을 다루고 있다. 특히 자연을 묘사하는 순화된 문장이 자극적인 글을 접하기 쉬운 요즘 아이들에게 수수한 정서를 느끼게 해 주는 장점이 있다.

 이 책에는 <토끼섬>과 <검둥아, 검둥아>, 두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하드커버지만 책의 두께가 얇고 크기도 좀 작아 손에 쥐기에 맞춤이다. 두 이야기는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모두 소년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남자아이들은 좀 덜 예민할 거라는 편견을 뒤엎는다. 어쩌면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소재로 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소년의 마음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또다른 공통점은 두 이야기 모두 동물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전자는 동물이 준 기쁨으로 성장을, 후자는 동물이 준 슬픔으로 성장을 하는 일종의 통과의례 같은 것이다. 두 소년의 타고난 선한 심성-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가꾸고 싶어 하는-이 잔잔한 감동을 전한다.

 누구든 수많은 이별을 하며 하루하루를 나아간다. 화자로 나오는 초등 6학년 두 소년의 하루하루는 그런 걸 느끼기엔 너무 젊고 걸음도 빠르다. <토끼섬>의 기영이는 해주할아버지와 모종의 일을 꾸민다. 생명이 없는 섬에 그 아이가 풀어놓은 생명은 목화꽃처럼, 메밀꽃밭처럼 희고 눈부시다. 소년, 나아가 한 사람이 갖는 무목적의 무모한 소망이 얼마나 소중한 결실로 맺히는지, 나아가 좀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어떤 꽃을 피우는지! 베아트릭스 포터의 실화가 떠오른다. 꿈을 갖고 무언가를 하고 두려움에 악몽으로 가위눌리던 소년은 어느덧 중학생이 되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그 소년은 또 다른 이별을 하고 또 다른 만남을 얻을 것이다.

 <검둥아, 검둥아>의 영수는 키우던 개 점박이를 불의의 사고로 잃고 아픈 마음이 아직 덜 아문 아이다. 닫혀있던 마음을 서서히 풀게 한 건 아버지의 애정보다 소년의 타고난 측은지심이다. 가엾은 생명, 엄마 잃은 생명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끌림이었다. 한국전쟁이 시대적 배경인 점으로 미루어, 영수집에 오게 된 검둥이는 전쟁고아를 연상하게 한다. 불쌍하기 그지없는 그 생명을 무뚝뚝하게 대하면서도 챙겨주는 마음 씀씀이가 영수의 뒤통수를 예뻐 보이게 한다. 슬픈 운명의 검둥이와 역시 슬픈 시대에 살았던 영수의 우정이 시대의 아픔과 함께 가슴 아프다.

 삽화는 거친 스케치에 퇴색한 사진처럼 채도를 낮춘 색감이 순박한 멋과 향토적인 느낌을 준다. 가만가만 읽어보면 멋 부리지 않은 글맛과 함께 두 소년의 깨끗한 마음이 순한 맛을 전해준다. 소금 살짝 넣어 삶은 감자 맛이다. 

초등 4학년 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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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24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뚱맞은 질문하나 해도 되나요?
삶은 감자와 찐 감자의 차이는 뭘까요?


프레이야 2007-08-24 14:12   좋아요 0 | URL
ㅎㅎ 민서님 삶는 요리는 찌는 요리보다 물의 양이 훨씬 많지 않나요?
저도 불량주부라 잘은 모르겠지만 고구마나 옥수수나 감자나 찐 게
훨씬 쫀득하고 맛나긴 한데 전 그냥 집에서 할 땐 삶게 되더군요.
찌려면 찜용 발이 있어야하니까요..^^ 이거 사면 되는뎅..ㅜㅜ
그나저나 삶거나 찌거나 살짝 짭짤한 감자 먹고 싶네요.^^
앗, 승연님 이제 발견했어요. 윗글의오류를요..
재치있게 찝어주신 민서님..^~*

뽀송이 2007-08-24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요즘 자극적인 동화가 끌려요.ㅡ,.ㅡ
섬세하고, 소박하고, 구수한 동화가 갑자기 먹먹해지는 바람에...ㅡㅜ
님~~~~ 너무 더워요.^^ 냉커피 한 잔 주세요!!

프레이야 2007-08-24 16:46   좋아요 0 | URL
요즘 나오는 동화는 소재부터 진기한 걸 잘 찾아들어가는 것 같아요.
아이들도 그러다보니 자극적인 것에 더 흥미로워하구요.
이 책은 소박한 주제이지만 짧은 글에 압축되어 있는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고 읽는 맛도 개운하답니다. 뽀송이님, 시원한 냉커피 대령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