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대제 2 - 얼웨허 역사소설, 전면 개정판 제왕삼부곡 1
얼웨허 지음, 홍순도 옮김 / 더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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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에서 강희파와 오배파의 인물들이 소개되었다면 2권에서는 강희를 살해하려는 오배의 음모가 본격적으로 가시화되고 

이에맞서 강희를 보호하려는 호걸들의 활약이 펼쳐진다.

 

위동표의 집에서 기거하게 된 사용표는 목자후, 노새, 넷째를 제자로 키운다. 반포이선은 탈명단이라는 독약을 만들어 오배에게 건넨다. 강희는 반포이선과 백운관 행차를 떠난다. 그런데 하필 오차우와 마주친다. 위동정의 재치로 오차우는 용공자가 강희임을 눈치 채지 못하고 강희는 반포이선이 자신의 사람이 아님을 확인한다.

 

위동정과 반포이선은 백년동안 문전성시를 이루었다는 서고루에서 우연히 호궁산과 만나 한담을 나눈다.

 

강희는 정번 (삼번을 비롯한 번의 평정), 하무 (강이나 운하의 관리), 조운 (운하로 식량등을 운반 하는 것)을 치세의 목표로 삼는다.

 

어느날 위동정의 집으로 사감매가 찾아온다. (6년 만에?) 사감매는 반포이선이 오배에게 준 독약을 빼와 위동정에게 건넬뿐더러 오배의 색액도 댁 기습, 강희와 위동정 살해 계획을 들려준다.

 

다음날 오배는 예정대로 색액도 집을 급습한다. 오배는 위동정과 마주치긴 했으나,

그가 찾던 강희 대신 호궁산과 마주친다.

 

오배가 오차우를 쫓는다는 이유로 색액도 집 대신 백운관 밖 하계주가 새로 연 주막 <산고점>에서 오차우는 강희를 사사한다.

 

소모자는 도박판에서 노모의 약값까지 날려버려 어주방(황궁의 주방)에서 눌모의 양자인 아삼에게 돈을 꾸러간다. 소모자는 돈을 빌리면서 동시에 어주방에서 귀한 찻잔을 훔친다. 눌모는 어차고(황궁의 차 창고)로 와 소모자의 절도 행각을 추궁한다. 소모자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어차고 문을 잠그고 나와 결백을 호소하고 소마라고는 소모자를 위기에서 구해준다.

 

위동정의 집에서 오배 휘하의 유화는 강희를 만나 강희에 대한 충성을 맹세한다.

 

반포이선의 명령을 받은 유금표는 하계주나 명주를 잡기 위해 노심초사 가흥루 주변을 탐색한다. 명주는 가흥루에 왔다가 취고와 함께 있는 호궁산과 마주친다. 호궁산이 떠나자 유금표가 명주를 잡기 위해 가흥루로 들이닥쳐 명주를 끌고 간다.

 

명주는 오배에게 끌려가 반포이선으로부터 고문을 당한다. 유화는 명주를 구하려다 오배에게 죽임을 당한다.

반청복명의 의지로 살아온 취고는 백운관으로 가는 강희에게 가는 길을 멈추라는 호궁산의 전갈을 건넨다.

 

한편 오배 일당은 도둑을 잡는다는 구실로 산고점을 급습한다. 사용표는 목리마를 생포하지만 오배의 병사들이 쏜 수십 발의 화살을 맞고 운명한다. 양편이 대치 중 호궁산은 목리마와 명주를 교환하도록 협상을 주도한다. 인질들이 교환되자 오배일당은 호궁산마저 공격하지만

위동정의 지원병이 가세한다.

 

한편 취고는 가문의 원수인 홍승주가 이미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삶의 의욕을 상실한다.

 

 

밑줄 그은 문장

 

p24. ‘선행과 담을 쌓았다라는 말은 소설 <수호지>에서 주인공 노지심이 전당강 변에서 남긴 말이었다.

 

p142. ‘산고교토삼굴이라는 고사성어의 삼굴과 발음이 같다. 말하자면 산고는 교활한 토끼가 사냥꾼에 당하지 않기 위해 마련한다는 세 개의 굴과 통하는 것이다.

 

p152. “ <다심경>에 이르기를, ‘깨달음을 좇는 사람은 반야바라밀다에 의존했다. 그러므로 마음에 번뇌가 사라진다. 번뇌가 사라지면 공포가 접근하지 못하고 잘못된 망상에서 멀리 벗어난다...’라고 했사옵니다.

 

p199. 오차우가 강희를 비롯한 좌중의 사람들에게 중국어 발음의 네 새 성조를 모두 가진 4자 성어 중에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말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위동정이 천회백전(끊임없이 돈다는 듯)하고 외쳤다. 그 다음에는 명주가 경쟁이라도 하듯 천자성철(중국어 네 개 성조를 의미. 황제를 칭송하는 의미도 있음)이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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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대제 1 - 얼웨허 역사소설, 전면 개정판 제왕삼부곡 1
얼웨허 지음, 홍순도 옮김 / 더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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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전체 3부작 13권으로 출간된 얼웨허의 제왕삼부곡’ <강희대제><옹정황제>, <건륭황제>까지 합쳐 1억 부가 팔렸다니 대륙의 스케일은 역시나 상상 초월이다. 이 책에 대해선 한기호 소장님 불로그를 통해 알게 되었다. 출판사 <더봄>의 김덕문 사장의 열정과 뚝심으로 15년 만에 새로운 번역으로 재출간되었다는 후일담도.

 

강희대제는 청 태조 누르하치, 청 태종 홍타이지, 청 세조 순치제를 이은 청나라 4대 황제다. 내가 읽은 3권까지가 1<탈궁초정>이다. 1부는 8세에 왕위에 이른 강희제와 고명대신인 오배와의 대립과 갈등이 주된 내용을 이룬다.

 

북경 서쪽, 영흥사 거리에 열붕점 여관 주인은 하계주였다. 하계주는 여관 앞에 얼어 죽은 청년을 내다버리려 했으나, 청년의 맥을 짚어보고 그를 살리려하는 이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오차우였다. 하계주는 명나라 당시, 양주의 명문가인 오차우 집안의 하인이었다. 오차우는 수재(명청대에 지방 과거 시험 2차 합격자)였다. 오차우는 청나라 과거시험 준비를 위해 북경으로 오게 되었고, 북경에서 예전의 하인이었던 하계주를 만났던 것. 오차우의 도움으로 살아난 이는 명주라는 선비였다. 명주는 황태자의 유모인 손씨를 만나기 위해 북경으로 왔다. 명주는 우연히 손씨의 아들이자 사촌 형인 위동정을 만난다.

 

순치황제는 죽은 동악씨를 잊지 못하고 궁밖에는 죽은 것으로 선포하고 출가를 단행한다. 순치황제는 어린 황제를 보필하기 위해 네 사람을 보정대신에 임명한다. 색니, 소극살합, 알필륭, 그리고 오배. 순치황제의 셋째인 강희가 8세의 나이에 황제로 등극한다. 유모 손씨와 궁녀 소마라고가 강희를 매사 보필한다.

 

시장에서 무술 시범을 하는 아버지와 의붓 딸이 있었으니 사용표와 사감매였다. 이 부녀를 희롱한 이는 목리마. 오배의 친동생이었다. 목리마 일행이 행패를 부리자 오차우가 막아섰다. 명주는 오차우를 데리고 위기를 모면하려 하나, 어느새 위동정이 가세한다. 위동정은 목리마 일행으로부터 사용표와 사감매를 구출한다. 위동정이 구한 사감매는 어린 시절 위동정의 이웃 사촌이었다. 오랜만에 해후의 기쁨도 잠시, 위동정이 수레를 가지러 간 사이, 사감매와 사용표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열붕점에선 오차우와 명주, 하계주가 노래하는 취고를 데려와 거나한 술판을 벌인다. 어머니 손씨의 소개로 위동정은 강희의 시위가 된다. 위동정은 동행한 강희를 일행들에게 용공자라 소개하고 열붕점에서 만남을 갖는다.

 

강희는 환궁하여 오배의 양아들 오양보가 충신인 왜혁을 잡아갔다는 소식을 소마라고로부터 전해 듣는다. 오양보는 곤장을 맞다 죽음에 이른다. 영웅호걸이자 공신인 보정대신 중 하나인 색니가 병으로 드러눕자 오배는 점점 더 안하무인이 되어간다. 나머지 보정대신인 소극살합과 알필륭은 애시당초 오배의 적수가 되지 않았다.

 

강희 6, 과거시험이 시행되었다. 오차우는 오배를 힐난하는 권지난국의 글을 올려 주변사람들이 그의 신변을 걱정 하게 만든다. 명주는 과거에 합격한다. 오배는 반포이선, 목리마, 세본득, 태필도, 눌모, 제세 등을 비롯한 측근들과 함께 탈궁을 모의한다. 오배는 마누라 앞에서 쩔쩔매는 공처가였다. 오배의 부인인 영씨는 목리마가 잡아온 사감매를 시녀로 삼는다.

 

강희는 의정왕 걸서를 통해 오배의 횡포에 맞서려 하나, 의정왕 걸서는 오배의 은근한 협박에 두려움을 느껴 감히 오배에 맞서려 하지 않는다. 강희는 신분을 용공자로 속여 오차우를 스승으로 맞아 색니의 아들인 색액도의 집에서 오차우의 가르침을 듣는다. 강희는 오배에 대항하기 위해 웅사리, 색액도, 위동정과 함께 한다. 강희는 위동정을 삼품어전 시위로 임명한다. 또한 강희는 구문제독 오육일을 그의 편으로 끌어들인다. 강희는 오육일의 마음을 얻기 위해 오육일의 평생 은인인 사이황을 사면해준다.

 

어느날 위동정은 순방아문(황궁 일대를 경비하는 관청) 일행과 우연히 마주친다. 위동정과 소동을 빚은 이는 예전에 의형제를 맺었던 목자후였다. 또한 그의 아우뻘인 넷째와 노새와도 해후의 기쁨을 나눈다.

 

1권에서 주요 등장인물들이 소개된다. 강희파와 오배파. 강희파엔 소마라고, 손부인, 위동정, 오차우, 명주, 하계주, 사용표, 사감매, 목자후, 넷째, 노새가 포진해 있다. 오배파엔 반포이선, 목리마, 태필도, 눌모 등이 포진해 있다. 마치 장기를 연상시키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오배파와 강희파의 탈궁과 수성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가독성이 좋은 소설이 아니다. , 몇 번을 잠들었던가.

읽어야 할 책 들, 리뷰 써야 할 책들이 수십 권, 수백 권이 있건만

강희대제 12권이 내 앞을 가로막을 줄이야.

 

 

메모한 문장

 

 

P189. 노을은 구름의 혼백이요

꿀벌은 꽃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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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달 2016-02-13 0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 올려 주신거 저녁에 잠깐 보고 정말 궁금했는데 이제야 1권에 대해 올려주신글 읽었어요. 책 주문해야 할듯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시이소오 2016-02-13 04:37   좋아요 1 | URL
나름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사는게 뭔지` ㅋ
 
헤세로 가는 길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arte(아르테)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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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 작가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음에 틀림없다.

부러운 삶이다. 좋아하는 작가를 찾아가는 여행이라니!

나 역시 헤세를 좋아했건만 왜 이러고 사는지.

(하긴 그녀처럼 헤세의 전 작품을 읽진 못했다.)

10대 때 가장 많이 읽은 작가는 단연 헤르만 헤세였다.

(<데미안>때문이었을까. 요즘 10대들도 그럴까?)

 

1부는 헤르만 헤세가 태어나고 자란 독일의 칼프로 향하는 여행기와 헤세의 삶, 그리고 그의 소설의 명문장들로 2부는 헤세의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데미안>, <싯다르타>에 대한 정여울의 감상들로. 3부는 말년의 헤세가 정착한 몬타뉼라에 대한 여행기 그리고 또 다시 헤세의 삶과 소설들의 명문장들로 채워져 있다.

 

헤세 작품에 대한 감상에 정여울은 융을 대동한다.

융 심리학을 통해 본 헤세라고 해야 할까.

 

어째서 우리는 청소년 시기에 헤세를 읽는 걸까?

한편으로 왜 또 다시 헤세인가?

 

우리 모두가 인생의 좌표를 상실한 채 떠도는 방랑자라는 자각 때문은 아닐까. 세상이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은 산산이 부서졌다. 신봉하던 가치들은 추락했다. 우리는 천민이고 사축이고 난민이며 벌거벗은 생명이다. 청년기를 보내고 장년기에 접어들었음에도 우리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 부유한다. 알은 터무니없이 견고하다. 금조차 가지 않았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보단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 것인가

고민하는 시대라니!

 

입시지옥이 지옥의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지옥으로 향하는 첫 발걸음일 줄이야!

과연 헤세를 읽으며 우리는 이 지옥을 헤쳐 나올 수 있을까.

혹은 헤세를 다시 읽는다면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는다.

태어나려는 자는 알을 깨뜨려야 한다.’

 

수 십 번이건, 수 백 번이건, 수 천 번이건!

 

밑줄 그은 문장.

 

 

p32. 헤세는 <홀로>라는 시에서 이렇게 속삭인다. 인생의 길은 말을 타고 갈 수도, 자동차로 갈 수도, 둘이서나 셋이서 갈 수도 있지만, 마지막 한 걸음만은 혼자서 걸어야 한다고.

 

p33. 살아 있다는 것은 고독하다는 것.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을 알지 못한다. 모두가 다 혼자다. <안개속에서>

 

p40 친구와 와인을 마시며 기묘한 인생에 대해 악의없는 잡담을 나누는 것이 우리가 인생에서 가질 수 있는 최선의 것이다.

 

p43. 한 순간을 위해 자신을 던질 수 있는 것, 한 여자의 미소를 위해 여러 해를 희생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이다. <가을의 도보 여행>

 

p48. 헤르만 헤세는 여행광이자 독서광이기도 했다. 그는 끊임없이 책 속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책 자체가 궁극의 해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책은 해답이 아니라 질문에 가깝다. 내 안에 무엇을 품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는 다정한 질문 기계, 그것이 책이다. 헤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 어떤 책도 당신에게 곧바로 행복르 가져다주지는 못한다고. 하지만 책은 살며시 당신을 자기 내면으로 되돌아가게 한다고.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우리 안에 있다. 책은 그런 우리 마음을 비추어보는 거울이다.

 

p63. 행복은 내일에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오늘 가져다준 것에 감사하며 받아들일 때만 존재합니다. 마법의 시간은 계속해서 다시 찾아옵니다. <서간집>

 

p70. 인간이 자신의 소명에 따르는 것, 그래서 그가 잘하고 즐겁게 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곳이면 세상은 어디서나 진보할 것이다. <살인하지 말라>

 

p73. 헤세는 <행복론>에서 작가의 언어란 화가의 팔레트 위 물감과 같다고 이야기했다. 언어는 지금 이 순간도 끊임없이 만들어지지만, 아름다운 말, 진정한 언어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림물감도 그 농도와 혼합색은 수없이 많지만 내 마음에 딱 맞는 바로 그 빛깔을 찾기는 어려운 것처럼.

 

p76. 헤세는 인도를 여행하며 <싯다르타>의 영감을 얻었다. 그가 그리고 싶은 인도는 깨달음의 공간, 용맹정진의 공간, 세속의 욕망을 해탈하는 공간이었다. <싯다르타>에서 헤세는 깨달음의 인간을 이렇게 표현한다. 대부분 인간은 바람에 이리저리 날려 춤추고 방황하고 비틀거리며 땅으로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살아간다고. 하지만 별을 닮은 인간도 있다고. 별을 닮은 인간은 확고하게 자신의 궤도를 걷는다고. 어떠한 강풍도 별을 닮은 인간을 날려버릴 수는 없다고. 자신의 내부에 작의 법칙과 자기의 궤도를 지니고 있는 사람, 그가 바로 별을 닮은 인간이다.

 

p84.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나를 진정으로 아프게 하지 못한다. 나의 갈망 때문에 가장 고통받는 것은 나 자신이다.

 

p117. 헤세는 우울증을 치료하는 최고의 약제는 바로 노래, 경건한 마음, , 악기 연주, 시 짓기, 방랑이라고 했다. 그는 위대한 소설가이기도 했지만 풍류를 아는 시인이기도 했다. 모든 예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이라고 믿었던 헤세. 행복은 다른 무엇도 아닌 내 존재를 둘러싸고 있는 사소한 것들과의 조화임을, 그는 알았다.

 

p126. 삶이 우리에게 주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 것, 그리고 삶이 허용하지 않는 것은 바라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삶의 기술이다. <메모>

 

p147. 남성의 내면에 존재하는 이상적 여성상, 아니마는 흔히 첫 사랑의 경험을 통해 최초로 드러나곤 한다. 융은 남성 안의 여성상, 아니마의 발전에는 4단계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1단계는 야생적이고 모성적인 여성상, 즉 이브의 이미지다. 2단계는 낭만적이고 탐미적인 여성상, 헬레네와 같은 여성상이다. 마릴린 먼로와 같은 유혹적인 여성상, 대중문화에서 가장 선호하는 팜므파탈적인 여성상이 바로 2단계의 전형이다. 3단계는 마리아의 여성상, 즉 에로스적인 사랑을 신성한 헌신으로까지 고양한 여성상이다. 육체적 사랑을 넘어 정신적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여성이 바로 이러한 단계를 뜻한다. 4단계는 가장 성스럽고 숭고한 여성상으로서 지혜의 여신 아테네와 같은 여성상이다. 예술가에게 창조성의 원천이 되어주는 뮤즈가 바로 이런 여성이다. (이브 먼로 마리아 뮤즈)

 

p168. 융은 가장 어두운 곳에서 오히려 가장 빛나는 영적 에너지를 발견해내는 현상을 에난치오드로미(Enantiodromie)라고 불렀다. 에난치오드로미. 그것은 반대 극으로의 역전을 뜻하는데, 융은 이렇듯 극과 극이 서로를 향해 끌리는 것이야말로 위대한 생명의 법칙이라 말한다.

 

p174. 래브란도 반도의 숲에 살고 있던 나스카피 인디언들은 자신의 내적 중심을 매우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형태로 깨닫고 있었다고 한다. 나스카피 사냥꾼들은 평생에 걸친 고독 속에서 자신의 내적인 목소리와 무의식적 계시에 의존해야 한다. 그들은 종교적 지도자도, 축제도, 정해진 관습도 없이 오직 내 안의 목소리를 듣는 법에만 기대 인생의 모든 통과의례를 견뎌내야 했다. 그들은 자기 안에 내면의 동반자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 영혼의 동반자를 미스타페오라 불렀다. 미스타페오는 저마다의 심장에 살며 불멸의 존재로서 마치 수호천사처럼 우리의 영혼을 이끌어준다.

 

233.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p320 모든 사랑이 깊은 비극을 품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더 이상 사랑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서간집>

 

p350. 어떤 두 사람이 매우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을지라도 그들 사이에는 언제나 심연이 놓여 있다. 그 심연에 다리를 놓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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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을 찾아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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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영면하시기 하루 전에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었다.

그래서 더 충격이 컸을까.

그래서 더 아팠을까.

그래서 일까. 생전에 선생님과 단 한 번의 일면식도 없었으면서도

그 분을 내 선생님이라고 여기는 까닭은.

 

<변방을 찾아서>는 선생님이 쓰신 글씨가 있는 곳을 찾아가는 기획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해남 송지초등학교 서정 분교, 강릉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 박달재. 벽초 홍명희 문학비와 생가. 오대산 상원사. 전주 이세종 열사 추모비, 김개남 장군 추모비. 서울특별시 시장실. 봉하마을 고 노무현 대통령 묘석.

 

언젠가는 선생님의 글씨를 찾아가는 여행을 해보고 싶다.

변방을 찾아서.

변방은 다름 아닌 자기 성찰이기에.

 

 

메모한 문장들.

 

 

그러나 벽초와 <임꺽정>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이다. ‘오래된 미래이다. 좌우를 아울렀던 벽초의 유연한 사고와 진정성이 그렇고, 임꺽정과 그의 동무들이 보여 준 노마디즘의 삶이 그렇다. 벽초 홍명희 문학비는 분명 변방의 작은 공간에서 잊혀져 가고 있지만 그것은 탈냉전과 탈근대의 장이다. 평화와 공존의 철학을 앞서서 보여 주고, 영토와 소유의 협소한 틀을 깨뜨리고 미련 없이 흘러가는 길 위의 삶을 앞당겨 보여 준다. 한마디로 미래 담론의 창조 공간이다.

 

이번의 변방 여행에서 느끼는 감동은 변방 개념의 일정한 발전이었다. 변방을 공간적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은 변방에 대한 오해이다. 누구도 변방이 아닌 사람이 없고, 어떤 곳도 변방이 아닌 곳이 없고 어떤 문명도 변방에서 시작되지 않은 문명이 없다. 어쩌면 인간의 삶 그 자체가 변방의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변방은 다름 아닌 자기 성찰이다.

 

용과 고래의 한판 승부라는 타종의 엄청난 굉음을 좇아가 이윽고 도달한 곳은 묵언이었다. 어느 시인의 고백처럼 소리의 뼈는 침묵이었다. 충격에서 시작하여 긴 여운을 거쳐 정적으로 끝나는 생성과 소멸의 여정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탈주와 접속의 장이었다. 그런 점에서 지혜는 자기와의 불화이고 시대와의 불화이다. 지혜가 고요와 깨달음의 초월 공간이라고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지혜에 대한 오해이다. 마찬가지로 무소유 역시 사회와의 불화이다.

 

추억이란 세월과 함께 멀어져 가는 강물이 아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숱한 사연을 계기로 다시 되살아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를 거듭할수록 우연이 인연으로 바뀐다고 하는 것이리라. 우연이라고 생각했던 사소한 일들도 결코 우연한 조우가 아니라 인연의 끈을 따라 어김없이 만나게 되는 필연임을 깨닫는다.

 

문명도 생물이어서 부단히 변화하지 않으면 존속하지 못한다.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은 부단히 변화한다. 변화하기 때문에 살아 있는 것이다. 중심부가 쇠락하는 가장 큰 이유는 변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변방이 새로운 중심이 되는 것은 그것이 변화의 공간이고, 창조의 공간이고, 생명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서정분교는 틀림없이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꿈을 담는 학교로 빛날 것이다. 스테판 에셀은 그의 작은 책 <분노하라>의 마지막 구절에서 저항이야말로 창조이며 창조야말로 저항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서정분교는 저항이었으며 창조였다.

 

꿈을 담는 도서관이라고 했는데 어디다 꿈을 담지?” 가방에다 담는다는 아이도 있었고 머리에 담는다는 아이도 있었다. 내내 배우기만 하던 내가 처음으로 가르쳤다. 꿈은 가슴에 담는 것이라고. 그러나 생각해보면 서정분교 자체가 꿈이었다. 서울 아이들의 꿈이 바로 서정분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p52. 허균의 <호민론>은 백성을 항민, 원민, 호민으로 나눈다. 항민은 순종하며 부림을 당하는 백성, 원민은 윗사람의 수탈을 원망하지만 행동으로 나서지 못하는 나약한 백성임에 비하여, 호민은 허균이 찾는 이른바 변혁 주체라 할 수 있다. 사회 부조리를 꿰뚫고 때를 기다렸다가 백성들을 조직 동원하여 사회 변혁을 영도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가 쓴 소설 <홍길동전>의 홍길동이 바로 호민으로 캐스팅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p57, 세상에는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유감스럽게도 세상에는 이 두 종류의 사람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에 자기를 잘 맞추는 사람이고,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다. 세상을 자기에게 맞춘다는 의미가 세상을 인간적으로 바꾸려고 하는 것이라면 글자 그대로 어리석기 짝이 없다. 그러나 역설적인 것은 이처럼 우직한 사람들에 의해서 세상은 조금씩 새롭게 바뀌어 왔다는 사실이다.

 

p100 종메는 고래요, 종은 용뉴에 틀고 앉아 있듯이 용이다. 용과 고래의 한판 승부가 바로 타종이라는 것이다. 나는 생전 처음 타종의 경험을 하게 된다. 종소리는 과연 정념스님의 설명처럼 용과 고래의 충돌이었다. 엄청난 충격이 전신을 강타했다. 단정하고 겸손한 모습과 달리 종소리는 높은 파도가 되어 온몸을 덮쳤다. 깨달음이란 우선 이처럼 자신이 깨드려지는 충격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옳다. 종소리는 나를 깨뜨리고 멀리 오대산 전체를 품에 안았다. 나는 나를 남겨두고 종소리를 따라가고 있었다. 오대산 1만 문수보살의 조용한 기립이 감은 눈에 보이는 듯하다. 종소리는 긴 여운을 이끌고 가다가 이윽고 정적이다. 소리가 없는 것을 정이라 하고 움직임이 없는 것을 적이라 한다. 1만 문수보살은 다시 산천으로 돌아가고 세상은 적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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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 2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3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들녘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2.

 

최근에 읽은 제임스 설터의 <가벼운 나날>만큼이나 문장에 빠져 읽은 책이었다. 좋은 문장을 만날 때의 기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반짝 반짝 빛나는 은 세공품 같은? 문장을 가질 순 없는 걸까? 안되겠지.

그것은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니까.

 

메모한 문장들.

 

p13. 지금도 저는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선생님의 편지 봉투를 볼 때마다 한 자락 질투의 감정을 느낍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그냥 떠나는 것. 이 얼마나 용기 있는 행동인가요!

 

p17. _우스꽝스러운 무대. 우리가 중요하고 슬프고 우습고 아무 의미도 없는 드라마를 상연하기를 기다리는 무대로서의 세계. 이런 생각은 얼마나 감동적이고 매혹적인가, 그리고 얼마나 불가피한가!

 

p29. 우리는 시간상으로만 광범위하게 사는 것이 아니다. 공간적으로도 눈에 보이는 것들을 훨씬 넘어서 살고 있다. 우리는 어떤 장소를 떠나면서 우리의 일부분을 남긴다. 떠나더라도 우리는 그곳에 남는 것이다. 우리 안에는, 우리가 그곳으로 돌아와야만 다시 찾을 수 있는 것들도 있다. 단조로운 바퀴 소리가 우리가 지나온 생의 특정한 그 여정이 아무리 짧더라도 장소로 우리를 데리고 가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가까이 가고 우리 자신을 향한 여행을 떠난다. 우리가 낯선 정거장의 플랫폼에 두 번째로 발을 디디면, 그래서 확성기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다른 곳과 확연히 구별되는 냄새를 맡으면 우리는 외형상으로만 먼 곳에 도착한 것이 아니라 마음속 먼 곳에도 이른 것이다. 어쩌면 우리 스스로에게서 아주 외딴 구석, 우리가 다른 곳에 있을 때면 무척 어두워 보이지 않았던 곳에...... 그렇지 않고서야 승무원이 지명을 크게 외치고 기차가 멈추느라고 내는 끼익 소리를 들으면, 역 건물의 그림자가 우리를 삼키기 시작하면, 왜 그렇게 가슴이 뛰고 숨이 차는가? 그렇지 않고서야 왜 우리는 기차가 마지막으로 덜컥이며 완전히 멈추는 순간을 마술적이고 소리 없는 드라마라고 생각하는가?

 

낯설면서도 낯설지 않은 플랫폼에 첫 발자국을 디딘 순간부터, 그 옛날 기차의 첫 덜컥임을 느꼈을 때 중단하고 떠났던 삶이 다시 시작되기 때문이다. 중단된 삶, 온갖 약속으로 가득한 그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것보다 더 흥분되는 일이 또 어디에 있으랴?

 

여행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연민을 느끼는 이유는 뭔가? 그들이 외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면서 내적으로도 뻗어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계발할 수 없고, 스스로를 향한 먼 여행을 떠나 지금의 자기가 아닌 누구 또는 무엇이 될 수 있었는지 발견할 가능성을 발탁당한 채 살아간다.

 

p51. ‘어떤 일을 표현한다 함은, 그 일이 지닌 힘은 보존하고 두려움은 제거하는 것이리라.’ 페소아가 쓴 글입니다.

 

p78. 아버지 제가 예레미야서를 읽었을 때의 분노를 상상하실 수 있나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뭘 원하는 게야?”

바르톨로메우 신부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신이야.”

그래서 제가 대답했습니다.

그래요. 그런 분이 신이라는 것, 그게 바로 신의 본질에 어긋나는 겁니다.”

 

p82. 그레고리우스는 프라두가 편지에서 언급한 예레미야서의 구절을 찾아 읽고, 아픙로 넘겨 이사야서로 갔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프라두는 신이 생각과 의지와 느낌을 지닌 존재라고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것들이 다른 모든 사람의 말과 마찬가지로 들렸고, 이런 거만한 성격을 지닌 인물과는 대면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신에게 성격이 있는가?

 

p119. 현재를 산다는 것, 이 말은 옳고 훌륭하게 들린다. 짧은 글에서 프라두는 이런 말을 했다. 그러나 내가 원하면 원할수록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p121. -수수께끼같은 시간. 한 달이 얼마나 긴 지 알아내는 데 1년이 걸렸다.

 

p124. 나는 가끔 아주 느리다. 11월 초순의 햇빛이 다시 부서지는 오늘에 와서야 내가 아나에게 던졌던 질문 돌이킬 수 없음, 허무함, 후회, 슬픔-은 그동안 내가 계속 생각해오던 물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 질문의 요지는 그게 아니었다. 우리 곁을 지나 흘러가거나 감수해야만 하거나 손가락 사이로 모두 빠져나가서 잃어버리고 놓쳤다고 생각되는 시간, 그 시간이 지나가서 슬픈 게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슬픈, 그런 시간에 관한 게 아니었다. 나는 한 달이란 시간을 충만한 것으로, 직접 경험한 것으로 말할 수 있는 근거에 대해 묻고 싶었다. 그러므로 내가 하려던 질문은 한 달의 길이가 아니라 한 달이라는 시간을 자기 자신을 위해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였다. 한 달이 완전히 내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 때는 과연 언제 인가?

 

p134. “난 가끔 오빠의 영혼이 다른 그 무엇보다도 언어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어요.”

 

p147. “말을 하지 못하는 것. 오빠는 감정 교육이 무엇보다도 느낌을 드러내는 기술, 말을 통해 느낌을 풍요롭게 하는 경험을 우리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말하곤 했어요.”

 

p150. “마지막 해에 오빠는, 우리 모두가 두려워하는 외로움의 본질이 도무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자주 했어요. ‘우리가 외로움이라고 말하는 그게 도대체 뭐지? 단순하게 다른 사람의 부재를 의미하지는 않아. 혼자 있으면서도 전혀 외롭지 않을 수도 있고,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외로울 때가 있으니까. 그러니 그게 뭘까?’

 

p162. 오빠는 멜랑콜리가 시간을 초월한 개념이며, 인간이 알고 있는 것들 가운데 가장 귀중한 그 무엇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깨지기 쉬운 인간의 모든 연약함이 거기에 들어 있어.”

 

p174. 아마데우에 따르면 사람의 마음이란, 틀에 박히고 무미건조한 논리가 그럴듯하게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했다. “모든 것이 훨씬 더 복잡해. 매 순간마다 아주 더 복잡하지. 서로 사랑해서 삶을 함께 하려고 결혼하지. 돈이 필요해서 훔치고, 상처주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해. 이 얼마나 우스운 이야기인지! 우린 천박함으로 가득 꾸며진 존재요, 쉬지 않고 움직이는 수은과 같은 영혼, 게다가 끝없이 흔들리는 요지경처럼 색과 형태가 변하는 감정을 지닌 존재들이 아닌가.”

 

p175. “그런데 틀린 점은 바로, 발견할 진리가 존재한다는 가정이야. 조르지, 영혼은 오로지 만들어낸 거야. 우리 인간의 가장 천재적인 발명품이지. 현실세계에서처럼 영혼에도 뭔가 발견할 게 있으리라는, 무척이나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질 만한 암시성 때문에 천재적이지. 하지만 조르지, 진실은 그렇지 않아. 우린 대화할 대상을 갖기 위해 영혼을 만들어낸 거야. 우리가 만나면 이야기할 만한 뭔가를 갖기 위해. 우리가 영혼에 대해 말하지 못한다고 한 번 생각해봐.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 그건 정말 끔찍할거야!”

 

사실 사유는 둘째야. 가장 아름다운 것은 시지. 시적인 사유와 사유하는 시가 존재하는 곳은 낙원일거야.’

 

P178. “한계가 없는 솔직함이란 불가능한 거요.”

두 사람이 거리로 나와 악수를 할 때 조르지가 말했다.

그건 우리의 능력 밖이오. 침묵해야 하기 때문에 고독한 경우도 있는 법이오.”

 

p181. 그녀는 넓은 초원에서 늘 깨어 살고 있는 생명체에게서 오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p186.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라고.” 하지만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게 무엇인가? 오랫동안 생각해온 소원을 실현하기 위해 움직이기. 나중에도 언제나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는 잘못을 고치기. 메멘토를 안락함과 자기기만과 꼭 필요한 변화에 대한 불안에 대항할 도구로 사용하기. 오래 꿈꾸어오던 여행하기. 이런 언어들을 배우고, 저런 책들을 읽기. 이 보석을 사고, 저 유명한 호텔에서 하룻밤 묵기. 스스로에게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여기에는 더 큰 일들도 속한다. 좋아하지 않던 직업을 그만두고, 싫어하던 환경을 떠나기. 더 진실해지고 자기 자신에게 가까워지는 일들을 하기.

 

p202. “아마데우는 기차를 좋아했어요. 기차는 그에게 삶의 상징이었어요. 난 같은 칸에 함께 타고 싶었지만, 그가 원치 않았아요. 아마데우는 내가 플랫폼에 있기를, 그래서 창문을 열면 내가 언제든지 자기가 묻는 말에 대답해주길 원했어요. 그리고 그는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플랫폼도 함께 떠나길 바랐어요. 난 기치와 완벽하게 똑같은 속도로 달리는 플랫폼에, 그 공중의 플랫폼에 천사처럼 서 있어야 하는 거였죠.”

 

p205. 마지막 구절 기억하시죠? 말씀의 신성함과 모든 잔혹함에 대항할 적대감이 필요하다고 한 구절. 그다음에 나오는 아무도 나에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지 말기를’, 그게 연설의 마지막 말이었어요. 하지만 원래는 한 구절이 더 있었어요.

그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니까.’

정말 아름다운 장면인데!’

내가 소리쳤지요.

그러자 그가 성서를 들고 솔로몬의 <전도서>를 읽어주었어요. ‘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p215. “문제는....” 전에 기차가 바야돌리드에 멈췄을 대 실우베이라가 말했다. “우리가 인생을 조망할 수 없다는 거지요. 앞으로든 뒤로든. 뭔가 일이 잘 풀렸다면 그건 그냥 운이 좋았던 겁니다.”

 

p221. 유사. 일의 성공이나 실패가 노력과는 상관없는 운의 문제임을 알았더라면, 우리의 모든 행동과 경험에서 우리 스스로에게 덧없고 방해가 되는 유사란 것을 알았더라면 자존심이나 회한이나 부끄러움과 같은 낯익고 훌륭한 미덕은 어떻게 되는 건가?

 

배신적인 언어. 자기 자신이 다른 누군가에 대해 또는 단순히 어떤 일에 대해 말을 할 때 우리는 말을 통해 스스로를 열어 보이려 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느끼는지 타인에게 알리고, 타인에게 우리의 영혼을 잠깐 엿보기를 허용하는 것이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우리 마음의 한 조각을 타인에게 준다는 뜻이다.)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여는 문제에 관한한 독자적인 감독이요 결정권을 지닌 극작가다.

 

하지만 어쩌면 이건 완벽하게 잘못된 생각, 자기기만이 아닐까? 우린 말을 통해 자기를 드러낼 뿐 아니라 스스로를 배신하기도 한다. 표현하려던 것보다 훨씬 더 심하게 속내를 드러내어 원래 의도했던 바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타인은 우리의 말을 우리 자신도 미처 알지 못하는 무엇인가에 대한 증상으로 해석한다. 우리라는 질병에 대한 증상. 타인을 이렇게 관찰하는 일은 흥미로우며 또한 우리를 매우 관대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우리의 손에 무기를 쥐어주기도 한다. 타인도 우리를 이런 방식으로 똑같이 본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면, 입을 열려던 순간 말이 목에 걸린다. 그 충격은 우리를 영원히 침묵하게 만들 수도 있다.

 

p231. “아마데우는 여행에 대해 아주 극단적인 태도를 보였어요. 언제나 멀리 떠나려고, 자신에게 상상을 열어주는 공간에 휩쓸려가고 싶은 열망에 몸을 떨었지요. 하지만 리스본을 떠나면 바로 향수병에 걸렸어요.”

 

그 사람들은 리스본이 아니라 그가, 바로 아마데우 자신이 문제라는 것을 알지 못했어요. 그의 향수병은 믿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그리움이 아니었어요. 훨씬 더 깊은 그 무엇, 그의 주심에 관한 문제였어요. 자기 영혼의 위험한 파도와 분노한 저류에서 자신을 지켜줄 내부의 견고한 댐 안으로 도망치는 것.....

 

p232. 움직이는 기차에서처럼, 내 안에 사는 나. 내가 원해서 탄 기차가 아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아직 목적지조차 모른다. 먼 옛날 언젠가 이 기차 칸에서 잠이 깼고, 바퀴 소리를 들었다. 난 흥분했다. 덜컥거리는 바퀴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머리를 내밀어 바람을 맞으며 사물들이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속도감을 즐겼다. 기차가 멎지 않기를 바랐다. 영원히 멈추어 버리지 말기를, 절대 그런 일이 없기를.

 

p235. 가끔 기차가 언제든지 탈선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그렇다, 나를 놀라게 하는 생각은 대부분 이것이다. 그러나 가끔 작렬하는 어떤 순간에는 이 생각이 마치 복을 내리는 번갯불처럼 나를 뚫고 지나간다.

 

p236. 한 번만, 단 한번만이라도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싶다. 나에서 금방 다시 멀어지지 않도록 진정으로 이해하기. 그러나 이 시도는 성공하지 못한다. 뒤의 인상이 앞의 것을 지워버린다. 나는 기억을 일깨우며, 숨을 헐떡이며, 흩어지는 빠른 인상들을 모아 뭔가 이해할 만한 모습을 만들기 위해 애를 쓴다. 하지만 주의력의 빛이 사물의 뒤를 아무리 빨리 쫓아가도, 난 언제나 늦게 도착한다. 모든 것은 이미 지나갔다. 늘 속수무책이다.

 

p248. 스스로를 파괴하는 분노 때문에 영혼을 낭비하지 않게 도와줄 나침반은 왜 주지 않은 걸까?

 

p253. 우리는 작은 암석 조각들로 덮인 망각의 비탈길이다.

 

p265. 아니었다. 쏴와 소리를 내는 드넓은 바다가 언어와 낱말의 기억이나 망각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게 아니었다. 그렇지 않았다. 전혀 그렇지 않았다. 여러 말 가운데, 여러 단어들 가운데 단 하나의 단어, 말과 단어는, 눈 먼 채 침묵하는 바다가 손댈 수 없는 먼 곳에 있었다. 우주 전체가 하루아침에 끊임없는 홍수에 휩싸인다 해도, 온 하늘에서 쉴새없이 물방울이 떨어진다 해도 말과 단어는 순수하게 머물러 있을 터였다. 온 우주에 단 하나의 단어, 오직 하나의 단어만 있다면 그 단어는 이 세상의 모든 수평선 저편에 있는 밀물보다도 더 강하고 더 투명하게 빛날 터였다.

 

p286.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실우베이라는 성서를 가지고 와서 요한복음의 첫 구절들을 읽었다.

그러니까 언어가 사람들의 빛이로군. 사물은 말로 표현되고서야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한 거군.”

실우베이락 말했다.

그리고 그 말에는 리듬이 있어야 하지. 여기 이 요한복음에서 볼 수 있듯이.”

그레고리우스가 덧붙였다.

말은 시가 되고 나서야 진정으로 사물에 빛을 비출수가 있어. 변화하는 말의 빛 속에서는 같은 사물도 아주 다르게 보이지.”

 

p292. 인생이 불완전한 상태로, 토르소로 머물 것이라는 공포, 원하던 모습이 되지 않으리라는 자각. 우리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결국 이렇게 정의했다. 그러나 나는, 언젠가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 될 삶의 불완전함과 부조화를 사람이 경험할 수 없는데, 어떻게 그것을 두려워하겠냐고 물었다.

 

p293. 우리 인생은 바람이 만들었다가 다음 바람이 쓸어갈 덧없는 모래알, 완전히 만들어지기도 전에 사라지는 헛된 형상.

 

p296. 고통이나 외로움, 죽음처럼 사람이 견디기에 너무 힘든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움과 장엄함, 행복도 우리에게는 너무 큰 개념입니다. 이런 모든 것을 위해 우리는 종교를 만들어냈습니다. 우리가 종교를 잃는다면 어떤 이이 벌어질까요? 그렇더라도 앞서 언급한 것들은 여전히 우리가 감당하기 힘들거나, 여전히 우리에 비해 너무나 위대합니다. 우리에게 남는 것은 개인적인 삶의 시입니다. 시가 우리를 지탱해줄 만큼 강할까요?

 

p312. 다르게 말하자면 저는 그가 정말 원했던 어떤 사람이 아니라, 그가 잡으려고 했던 삶의 무대였지요. 죽음에 이르기 전에 한 번 완벽한 삶을 살고 싶다는 듯, 지금까지 사람들이 마치 그를 속여 왔다는 듯이 온 힘을 다해 잡으려던 완벽한 삶의 무대. “

 

p320. 열린 시선이 이렇게 어려운 이유는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우리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게으른 존재다. 일상적인 대지에서 호기심이란 희귀한 사치일 뿐......힘차게 방르 딛고 서서 매 순간 솔직하게 연주할 수 있다면 그런 삶은 예술일 것이다. 우리는 모차르트여야 한다. 열린 미래의 모차르트.

 

p334. 어두워지는 길을 운전하여 병원으로 가는 동안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다. 프라두가 썼던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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