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행 야간열차 2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3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들녘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2.

 

최근에 읽은 제임스 설터의 <가벼운 나날>만큼이나 문장에 빠져 읽은 책이었다. 좋은 문장을 만날 때의 기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반짝 반짝 빛나는 은 세공품 같은? 문장을 가질 순 없는 걸까? 안되겠지.

그것은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니까.

 

메모한 문장들.

 

p13. 지금도 저는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선생님의 편지 봉투를 볼 때마다 한 자락 질투의 감정을 느낍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그냥 떠나는 것. 이 얼마나 용기 있는 행동인가요!

 

p17. _우스꽝스러운 무대. 우리가 중요하고 슬프고 우습고 아무 의미도 없는 드라마를 상연하기를 기다리는 무대로서의 세계. 이런 생각은 얼마나 감동적이고 매혹적인가, 그리고 얼마나 불가피한가!

 

p29. 우리는 시간상으로만 광범위하게 사는 것이 아니다. 공간적으로도 눈에 보이는 것들을 훨씬 넘어서 살고 있다. 우리는 어떤 장소를 떠나면서 우리의 일부분을 남긴다. 떠나더라도 우리는 그곳에 남는 것이다. 우리 안에는, 우리가 그곳으로 돌아와야만 다시 찾을 수 있는 것들도 있다. 단조로운 바퀴 소리가 우리가 지나온 생의 특정한 그 여정이 아무리 짧더라도 장소로 우리를 데리고 가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가까이 가고 우리 자신을 향한 여행을 떠난다. 우리가 낯선 정거장의 플랫폼에 두 번째로 발을 디디면, 그래서 확성기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다른 곳과 확연히 구별되는 냄새를 맡으면 우리는 외형상으로만 먼 곳에 도착한 것이 아니라 마음속 먼 곳에도 이른 것이다. 어쩌면 우리 스스로에게서 아주 외딴 구석, 우리가 다른 곳에 있을 때면 무척 어두워 보이지 않았던 곳에...... 그렇지 않고서야 승무원이 지명을 크게 외치고 기차가 멈추느라고 내는 끼익 소리를 들으면, 역 건물의 그림자가 우리를 삼키기 시작하면, 왜 그렇게 가슴이 뛰고 숨이 차는가? 그렇지 않고서야 왜 우리는 기차가 마지막으로 덜컥이며 완전히 멈추는 순간을 마술적이고 소리 없는 드라마라고 생각하는가?

 

낯설면서도 낯설지 않은 플랫폼에 첫 발자국을 디딘 순간부터, 그 옛날 기차의 첫 덜컥임을 느꼈을 때 중단하고 떠났던 삶이 다시 시작되기 때문이다. 중단된 삶, 온갖 약속으로 가득한 그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것보다 더 흥분되는 일이 또 어디에 있으랴?

 

여행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연민을 느끼는 이유는 뭔가? 그들이 외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면서 내적으로도 뻗어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계발할 수 없고, 스스로를 향한 먼 여행을 떠나 지금의 자기가 아닌 누구 또는 무엇이 될 수 있었는지 발견할 가능성을 발탁당한 채 살아간다.

 

p51. ‘어떤 일을 표현한다 함은, 그 일이 지닌 힘은 보존하고 두려움은 제거하는 것이리라.’ 페소아가 쓴 글입니다.

 

p78. 아버지 제가 예레미야서를 읽었을 때의 분노를 상상하실 수 있나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뭘 원하는 게야?”

바르톨로메우 신부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신이야.”

그래서 제가 대답했습니다.

그래요. 그런 분이 신이라는 것, 그게 바로 신의 본질에 어긋나는 겁니다.”

 

p82. 그레고리우스는 프라두가 편지에서 언급한 예레미야서의 구절을 찾아 읽고, 아픙로 넘겨 이사야서로 갔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프라두는 신이 생각과 의지와 느낌을 지닌 존재라고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것들이 다른 모든 사람의 말과 마찬가지로 들렸고, 이런 거만한 성격을 지닌 인물과는 대면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신에게 성격이 있는가?

 

p119. 현재를 산다는 것, 이 말은 옳고 훌륭하게 들린다. 짧은 글에서 프라두는 이런 말을 했다. 그러나 내가 원하면 원할수록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p121. -수수께끼같은 시간. 한 달이 얼마나 긴 지 알아내는 데 1년이 걸렸다.

 

p124. 나는 가끔 아주 느리다. 11월 초순의 햇빛이 다시 부서지는 오늘에 와서야 내가 아나에게 던졌던 질문 돌이킬 수 없음, 허무함, 후회, 슬픔-은 그동안 내가 계속 생각해오던 물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 질문의 요지는 그게 아니었다. 우리 곁을 지나 흘러가거나 감수해야만 하거나 손가락 사이로 모두 빠져나가서 잃어버리고 놓쳤다고 생각되는 시간, 그 시간이 지나가서 슬픈 게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슬픈, 그런 시간에 관한 게 아니었다. 나는 한 달이란 시간을 충만한 것으로, 직접 경험한 것으로 말할 수 있는 근거에 대해 묻고 싶었다. 그러므로 내가 하려던 질문은 한 달의 길이가 아니라 한 달이라는 시간을 자기 자신을 위해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였다. 한 달이 완전히 내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 때는 과연 언제 인가?

 

p134. “난 가끔 오빠의 영혼이 다른 그 무엇보다도 언어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어요.”

 

p147. “말을 하지 못하는 것. 오빠는 감정 교육이 무엇보다도 느낌을 드러내는 기술, 말을 통해 느낌을 풍요롭게 하는 경험을 우리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말하곤 했어요.”

 

p150. “마지막 해에 오빠는, 우리 모두가 두려워하는 외로움의 본질이 도무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자주 했어요. ‘우리가 외로움이라고 말하는 그게 도대체 뭐지? 단순하게 다른 사람의 부재를 의미하지는 않아. 혼자 있으면서도 전혀 외롭지 않을 수도 있고,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외로울 때가 있으니까. 그러니 그게 뭘까?’

 

p162. 오빠는 멜랑콜리가 시간을 초월한 개념이며, 인간이 알고 있는 것들 가운데 가장 귀중한 그 무엇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깨지기 쉬운 인간의 모든 연약함이 거기에 들어 있어.”

 

p174. 아마데우에 따르면 사람의 마음이란, 틀에 박히고 무미건조한 논리가 그럴듯하게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했다. “모든 것이 훨씬 더 복잡해. 매 순간마다 아주 더 복잡하지. 서로 사랑해서 삶을 함께 하려고 결혼하지. 돈이 필요해서 훔치고, 상처주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해. 이 얼마나 우스운 이야기인지! 우린 천박함으로 가득 꾸며진 존재요, 쉬지 않고 움직이는 수은과 같은 영혼, 게다가 끝없이 흔들리는 요지경처럼 색과 형태가 변하는 감정을 지닌 존재들이 아닌가.”

 

p175. “그런데 틀린 점은 바로, 발견할 진리가 존재한다는 가정이야. 조르지, 영혼은 오로지 만들어낸 거야. 우리 인간의 가장 천재적인 발명품이지. 현실세계에서처럼 영혼에도 뭔가 발견할 게 있으리라는, 무척이나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질 만한 암시성 때문에 천재적이지. 하지만 조르지, 진실은 그렇지 않아. 우린 대화할 대상을 갖기 위해 영혼을 만들어낸 거야. 우리가 만나면 이야기할 만한 뭔가를 갖기 위해. 우리가 영혼에 대해 말하지 못한다고 한 번 생각해봐.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 그건 정말 끔찍할거야!”

 

사실 사유는 둘째야. 가장 아름다운 것은 시지. 시적인 사유와 사유하는 시가 존재하는 곳은 낙원일거야.’

 

P178. “한계가 없는 솔직함이란 불가능한 거요.”

두 사람이 거리로 나와 악수를 할 때 조르지가 말했다.

그건 우리의 능력 밖이오. 침묵해야 하기 때문에 고독한 경우도 있는 법이오.”

 

p181. 그녀는 넓은 초원에서 늘 깨어 살고 있는 생명체에게서 오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p186.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라고.” 하지만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게 무엇인가? 오랫동안 생각해온 소원을 실현하기 위해 움직이기. 나중에도 언제나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는 잘못을 고치기. 메멘토를 안락함과 자기기만과 꼭 필요한 변화에 대한 불안에 대항할 도구로 사용하기. 오래 꿈꾸어오던 여행하기. 이런 언어들을 배우고, 저런 책들을 읽기. 이 보석을 사고, 저 유명한 호텔에서 하룻밤 묵기. 스스로에게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여기에는 더 큰 일들도 속한다. 좋아하지 않던 직업을 그만두고, 싫어하던 환경을 떠나기. 더 진실해지고 자기 자신에게 가까워지는 일들을 하기.

 

p202. “아마데우는 기차를 좋아했어요. 기차는 그에게 삶의 상징이었어요. 난 같은 칸에 함께 타고 싶었지만, 그가 원치 않았아요. 아마데우는 내가 플랫폼에 있기를, 그래서 창문을 열면 내가 언제든지 자기가 묻는 말에 대답해주길 원했어요. 그리고 그는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플랫폼도 함께 떠나길 바랐어요. 난 기치와 완벽하게 똑같은 속도로 달리는 플랫폼에, 그 공중의 플랫폼에 천사처럼 서 있어야 하는 거였죠.”

 

p205. 마지막 구절 기억하시죠? 말씀의 신성함과 모든 잔혹함에 대항할 적대감이 필요하다고 한 구절. 그다음에 나오는 아무도 나에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지 말기를’, 그게 연설의 마지막 말이었어요. 하지만 원래는 한 구절이 더 있었어요.

그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니까.’

정말 아름다운 장면인데!’

내가 소리쳤지요.

그러자 그가 성서를 들고 솔로몬의 <전도서>를 읽어주었어요. ‘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p215. “문제는....” 전에 기차가 바야돌리드에 멈췄을 대 실우베이라가 말했다. “우리가 인생을 조망할 수 없다는 거지요. 앞으로든 뒤로든. 뭔가 일이 잘 풀렸다면 그건 그냥 운이 좋았던 겁니다.”

 

p221. 유사. 일의 성공이나 실패가 노력과는 상관없는 운의 문제임을 알았더라면, 우리의 모든 행동과 경험에서 우리 스스로에게 덧없고 방해가 되는 유사란 것을 알았더라면 자존심이나 회한이나 부끄러움과 같은 낯익고 훌륭한 미덕은 어떻게 되는 건가?

 

배신적인 언어. 자기 자신이 다른 누군가에 대해 또는 단순히 어떤 일에 대해 말을 할 때 우리는 말을 통해 스스로를 열어 보이려 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느끼는지 타인에게 알리고, 타인에게 우리의 영혼을 잠깐 엿보기를 허용하는 것이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우리 마음의 한 조각을 타인에게 준다는 뜻이다.)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여는 문제에 관한한 독자적인 감독이요 결정권을 지닌 극작가다.

 

하지만 어쩌면 이건 완벽하게 잘못된 생각, 자기기만이 아닐까? 우린 말을 통해 자기를 드러낼 뿐 아니라 스스로를 배신하기도 한다. 표현하려던 것보다 훨씬 더 심하게 속내를 드러내어 원래 의도했던 바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타인은 우리의 말을 우리 자신도 미처 알지 못하는 무엇인가에 대한 증상으로 해석한다. 우리라는 질병에 대한 증상. 타인을 이렇게 관찰하는 일은 흥미로우며 또한 우리를 매우 관대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우리의 손에 무기를 쥐어주기도 한다. 타인도 우리를 이런 방식으로 똑같이 본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면, 입을 열려던 순간 말이 목에 걸린다. 그 충격은 우리를 영원히 침묵하게 만들 수도 있다.

 

p231. “아마데우는 여행에 대해 아주 극단적인 태도를 보였어요. 언제나 멀리 떠나려고, 자신에게 상상을 열어주는 공간에 휩쓸려가고 싶은 열망에 몸을 떨었지요. 하지만 리스본을 떠나면 바로 향수병에 걸렸어요.”

 

그 사람들은 리스본이 아니라 그가, 바로 아마데우 자신이 문제라는 것을 알지 못했어요. 그의 향수병은 믿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그리움이 아니었어요. 훨씬 더 깊은 그 무엇, 그의 주심에 관한 문제였어요. 자기 영혼의 위험한 파도와 분노한 저류에서 자신을 지켜줄 내부의 견고한 댐 안으로 도망치는 것.....

 

p232. 움직이는 기차에서처럼, 내 안에 사는 나. 내가 원해서 탄 기차가 아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아직 목적지조차 모른다. 먼 옛날 언젠가 이 기차 칸에서 잠이 깼고, 바퀴 소리를 들었다. 난 흥분했다. 덜컥거리는 바퀴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머리를 내밀어 바람을 맞으며 사물들이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속도감을 즐겼다. 기차가 멎지 않기를 바랐다. 영원히 멈추어 버리지 말기를, 절대 그런 일이 없기를.

 

p235. 가끔 기차가 언제든지 탈선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그렇다, 나를 놀라게 하는 생각은 대부분 이것이다. 그러나 가끔 작렬하는 어떤 순간에는 이 생각이 마치 복을 내리는 번갯불처럼 나를 뚫고 지나간다.

 

p236. 한 번만, 단 한번만이라도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싶다. 나에서 금방 다시 멀어지지 않도록 진정으로 이해하기. 그러나 이 시도는 성공하지 못한다. 뒤의 인상이 앞의 것을 지워버린다. 나는 기억을 일깨우며, 숨을 헐떡이며, 흩어지는 빠른 인상들을 모아 뭔가 이해할 만한 모습을 만들기 위해 애를 쓴다. 하지만 주의력의 빛이 사물의 뒤를 아무리 빨리 쫓아가도, 난 언제나 늦게 도착한다. 모든 것은 이미 지나갔다. 늘 속수무책이다.

 

p248. 스스로를 파괴하는 분노 때문에 영혼을 낭비하지 않게 도와줄 나침반은 왜 주지 않은 걸까?

 

p253. 우리는 작은 암석 조각들로 덮인 망각의 비탈길이다.

 

p265. 아니었다. 쏴와 소리를 내는 드넓은 바다가 언어와 낱말의 기억이나 망각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게 아니었다. 그렇지 않았다. 전혀 그렇지 않았다. 여러 말 가운데, 여러 단어들 가운데 단 하나의 단어, 말과 단어는, 눈 먼 채 침묵하는 바다가 손댈 수 없는 먼 곳에 있었다. 우주 전체가 하루아침에 끊임없는 홍수에 휩싸인다 해도, 온 하늘에서 쉴새없이 물방울이 떨어진다 해도 말과 단어는 순수하게 머물러 있을 터였다. 온 우주에 단 하나의 단어, 오직 하나의 단어만 있다면 그 단어는 이 세상의 모든 수평선 저편에 있는 밀물보다도 더 강하고 더 투명하게 빛날 터였다.

 

p286.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실우베이라는 성서를 가지고 와서 요한복음의 첫 구절들을 읽었다.

그러니까 언어가 사람들의 빛이로군. 사물은 말로 표현되고서야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한 거군.”

실우베이락 말했다.

그리고 그 말에는 리듬이 있어야 하지. 여기 이 요한복음에서 볼 수 있듯이.”

그레고리우스가 덧붙였다.

말은 시가 되고 나서야 진정으로 사물에 빛을 비출수가 있어. 변화하는 말의 빛 속에서는 같은 사물도 아주 다르게 보이지.”

 

p292. 인생이 불완전한 상태로, 토르소로 머물 것이라는 공포, 원하던 모습이 되지 않으리라는 자각. 우리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결국 이렇게 정의했다. 그러나 나는, 언젠가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 될 삶의 불완전함과 부조화를 사람이 경험할 수 없는데, 어떻게 그것을 두려워하겠냐고 물었다.

 

p293. 우리 인생은 바람이 만들었다가 다음 바람이 쓸어갈 덧없는 모래알, 완전히 만들어지기도 전에 사라지는 헛된 형상.

 

p296. 고통이나 외로움, 죽음처럼 사람이 견디기에 너무 힘든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움과 장엄함, 행복도 우리에게는 너무 큰 개념입니다. 이런 모든 것을 위해 우리는 종교를 만들어냈습니다. 우리가 종교를 잃는다면 어떤 이이 벌어질까요? 그렇더라도 앞서 언급한 것들은 여전히 우리가 감당하기 힘들거나, 여전히 우리에 비해 너무나 위대합니다. 우리에게 남는 것은 개인적인 삶의 시입니다. 시가 우리를 지탱해줄 만큼 강할까요?

 

p312. 다르게 말하자면 저는 그가 정말 원했던 어떤 사람이 아니라, 그가 잡으려고 했던 삶의 무대였지요. 죽음에 이르기 전에 한 번 완벽한 삶을 살고 싶다는 듯, 지금까지 사람들이 마치 그를 속여 왔다는 듯이 온 힘을 다해 잡으려던 완벽한 삶의 무대. “

 

p320. 열린 시선이 이렇게 어려운 이유는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우리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게으른 존재다. 일상적인 대지에서 호기심이란 희귀한 사치일 뿐......힘차게 방르 딛고 서서 매 순간 솔직하게 연주할 수 있다면 그런 삶은 예술일 것이다. 우리는 모차르트여야 한다. 열린 미래의 모차르트.

 

p334. 어두워지는 길을 운전하여 병원으로 가는 동안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다. 프라두가 썼던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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