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로 가는 길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arte(아르테)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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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 작가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음에 틀림없다.

부러운 삶이다. 좋아하는 작가를 찾아가는 여행이라니!

나 역시 헤세를 좋아했건만 왜 이러고 사는지.

(하긴 그녀처럼 헤세의 전 작품을 읽진 못했다.)

10대 때 가장 많이 읽은 작가는 단연 헤르만 헤세였다.

(<데미안>때문이었을까. 요즘 10대들도 그럴까?)

 

1부는 헤르만 헤세가 태어나고 자란 독일의 칼프로 향하는 여행기와 헤세의 삶, 그리고 그의 소설의 명문장들로 2부는 헤세의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데미안>, <싯다르타>에 대한 정여울의 감상들로. 3부는 말년의 헤세가 정착한 몬타뉼라에 대한 여행기 그리고 또 다시 헤세의 삶과 소설들의 명문장들로 채워져 있다.

 

헤세 작품에 대한 감상에 정여울은 융을 대동한다.

융 심리학을 통해 본 헤세라고 해야 할까.

 

어째서 우리는 청소년 시기에 헤세를 읽는 걸까?

한편으로 왜 또 다시 헤세인가?

 

우리 모두가 인생의 좌표를 상실한 채 떠도는 방랑자라는 자각 때문은 아닐까. 세상이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은 산산이 부서졌다. 신봉하던 가치들은 추락했다. 우리는 천민이고 사축이고 난민이며 벌거벗은 생명이다. 청년기를 보내고 장년기에 접어들었음에도 우리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 부유한다. 알은 터무니없이 견고하다. 금조차 가지 않았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보단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 것인가

고민하는 시대라니!

 

입시지옥이 지옥의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지옥으로 향하는 첫 발걸음일 줄이야!

과연 헤세를 읽으며 우리는 이 지옥을 헤쳐 나올 수 있을까.

혹은 헤세를 다시 읽는다면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는다.

태어나려는 자는 알을 깨뜨려야 한다.’

 

수 십 번이건, 수 백 번이건, 수 천 번이건!

 

밑줄 그은 문장.

 

 

p32. 헤세는 <홀로>라는 시에서 이렇게 속삭인다. 인생의 길은 말을 타고 갈 수도, 자동차로 갈 수도, 둘이서나 셋이서 갈 수도 있지만, 마지막 한 걸음만은 혼자서 걸어야 한다고.

 

p33. 살아 있다는 것은 고독하다는 것.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을 알지 못한다. 모두가 다 혼자다. <안개속에서>

 

p40 친구와 와인을 마시며 기묘한 인생에 대해 악의없는 잡담을 나누는 것이 우리가 인생에서 가질 수 있는 최선의 것이다.

 

p43. 한 순간을 위해 자신을 던질 수 있는 것, 한 여자의 미소를 위해 여러 해를 희생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이다. <가을의 도보 여행>

 

p48. 헤르만 헤세는 여행광이자 독서광이기도 했다. 그는 끊임없이 책 속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책 자체가 궁극의 해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책은 해답이 아니라 질문에 가깝다. 내 안에 무엇을 품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는 다정한 질문 기계, 그것이 책이다. 헤세는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 어떤 책도 당신에게 곧바로 행복르 가져다주지는 못한다고. 하지만 책은 살며시 당신을 자기 내면으로 되돌아가게 한다고.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우리 안에 있다. 책은 그런 우리 마음을 비추어보는 거울이다.

 

p63. 행복은 내일에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오늘 가져다준 것에 감사하며 받아들일 때만 존재합니다. 마법의 시간은 계속해서 다시 찾아옵니다. <서간집>

 

p70. 인간이 자신의 소명에 따르는 것, 그래서 그가 잘하고 즐겁게 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곳이면 세상은 어디서나 진보할 것이다. <살인하지 말라>

 

p73. 헤세는 <행복론>에서 작가의 언어란 화가의 팔레트 위 물감과 같다고 이야기했다. 언어는 지금 이 순간도 끊임없이 만들어지지만, 아름다운 말, 진정한 언어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림물감도 그 농도와 혼합색은 수없이 많지만 내 마음에 딱 맞는 바로 그 빛깔을 찾기는 어려운 것처럼.

 

p76. 헤세는 인도를 여행하며 <싯다르타>의 영감을 얻었다. 그가 그리고 싶은 인도는 깨달음의 공간, 용맹정진의 공간, 세속의 욕망을 해탈하는 공간이었다. <싯다르타>에서 헤세는 깨달음의 인간을 이렇게 표현한다. 대부분 인간은 바람에 이리저리 날려 춤추고 방황하고 비틀거리며 땅으로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살아간다고. 하지만 별을 닮은 인간도 있다고. 별을 닮은 인간은 확고하게 자신의 궤도를 걷는다고. 어떠한 강풍도 별을 닮은 인간을 날려버릴 수는 없다고. 자신의 내부에 작의 법칙과 자기의 궤도를 지니고 있는 사람, 그가 바로 별을 닮은 인간이다.

 

p84.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나를 진정으로 아프게 하지 못한다. 나의 갈망 때문에 가장 고통받는 것은 나 자신이다.

 

p117. 헤세는 우울증을 치료하는 최고의 약제는 바로 노래, 경건한 마음, , 악기 연주, 시 짓기, 방랑이라고 했다. 그는 위대한 소설가이기도 했지만 풍류를 아는 시인이기도 했다. 모든 예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이라고 믿었던 헤세. 행복은 다른 무엇도 아닌 내 존재를 둘러싸고 있는 사소한 것들과의 조화임을, 그는 알았다.

 

p126. 삶이 우리에게 주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 것, 그리고 삶이 허용하지 않는 것은 바라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삶의 기술이다. <메모>

 

p147. 남성의 내면에 존재하는 이상적 여성상, 아니마는 흔히 첫 사랑의 경험을 통해 최초로 드러나곤 한다. 융은 남성 안의 여성상, 아니마의 발전에는 4단계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1단계는 야생적이고 모성적인 여성상, 즉 이브의 이미지다. 2단계는 낭만적이고 탐미적인 여성상, 헬레네와 같은 여성상이다. 마릴린 먼로와 같은 유혹적인 여성상, 대중문화에서 가장 선호하는 팜므파탈적인 여성상이 바로 2단계의 전형이다. 3단계는 마리아의 여성상, 즉 에로스적인 사랑을 신성한 헌신으로까지 고양한 여성상이다. 육체적 사랑을 넘어 정신적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여성이 바로 이러한 단계를 뜻한다. 4단계는 가장 성스럽고 숭고한 여성상으로서 지혜의 여신 아테네와 같은 여성상이다. 예술가에게 창조성의 원천이 되어주는 뮤즈가 바로 이런 여성이다. (이브 먼로 마리아 뮤즈)

 

p168. 융은 가장 어두운 곳에서 오히려 가장 빛나는 영적 에너지를 발견해내는 현상을 에난치오드로미(Enantiodromie)라고 불렀다. 에난치오드로미. 그것은 반대 극으로의 역전을 뜻하는데, 융은 이렇듯 극과 극이 서로를 향해 끌리는 것이야말로 위대한 생명의 법칙이라 말한다.

 

p174. 래브란도 반도의 숲에 살고 있던 나스카피 인디언들은 자신의 내적 중심을 매우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형태로 깨닫고 있었다고 한다. 나스카피 사냥꾼들은 평생에 걸친 고독 속에서 자신의 내적인 목소리와 무의식적 계시에 의존해야 한다. 그들은 종교적 지도자도, 축제도, 정해진 관습도 없이 오직 내 안의 목소리를 듣는 법에만 기대 인생의 모든 통과의례를 견뎌내야 했다. 그들은 자기 안에 내면의 동반자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 영혼의 동반자를 미스타페오라 불렀다. 미스타페오는 저마다의 심장에 살며 불멸의 존재로서 마치 수호천사처럼 우리의 영혼을 이끌어준다.

 

233.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p320 모든 사랑이 깊은 비극을 품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더 이상 사랑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서간집>

 

p350. 어떤 두 사람이 매우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을지라도 그들 사이에는 언제나 심연이 놓여 있다. 그 심연에 다리를 놓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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