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대제 11 - 얼웨허 역사소설, 전면 개정판 제왕삼부곡 1
얼웨허 지음, 홍순도 옮김 / 더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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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의 도통인 능보가 군사를 대동하고 나타난다. 능보는 열셋째 황자마마의 전갈을 받고 군대를 움직였다고 강희에게 고한다. 누가 과연 부대를 이동시킨 전갈을 보냈단 말인가. 태자들의 필적 결과 윤상의 것으로 판명난다. 사실 편지의 필적을 위조한 인물은 여덟째 황자였다.

 

이 일을 계기로 강희는 태자를 폐위시킨다. 군대가 움직였다는 사실에 신변에 위협을 느낀 강희는 무단을 불러들인다. 강희는 윤상에게 곤장 마흔 대를 내림과 동시에 양봉협도에 윤상을 가둬둔다.

 

태자가 폐위됨에 따라 태자에 오르기 위한 황자들끼리의 치열한 암투가 벌어진다. 장자인 장황자는 태자 윤잉을 복위시키려는 세력이 있다며 윤잉을 죽일 것을 강희에게 간한다. 장황자와 각을 세운 셋째 윤지는 장황자와 다툼을 벌인다. 윤지는 한술 더 떠 장황자가 태자인 윤잉의 이불호청 속에 <건곤십팔지옥도>를 넣어 두는 둥 태자 자리에 욕심을 내왔다고 고한다. 이에 강희는 장황자를 구금시킨다. 강희는 다음날 백관들의 투표 결과에 따라 새로운 태자를 임명할 것이라는 지의를 전한다.

 

윤상은 양봉협도에서 정신을 차린다. 그 옆으로 자고가 윤상을 간호하고 있었다. 황자들마다 시녀들을 보낸다. 명목상으로는 윤상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이었으나 실질적으론 윤상을 감시하기 위한 조치였다. 아홉째는 윤상이 좋아했던 아란을 시녀로 보낸다. 여덟째는 교 언니를 시녀로 보낸다. 넷째 황자인 윤진이 병문안을 온다.

 

윤진의 식객인 오사도, 문각 선사, 성음 스님 등은 넷째가 태자가 될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윤진을 부추긴다. 첫째, 둘째, 셋째가 곤혹을 치르고 조정에선 여덟째 황자를 새로운 태자로 옹립하려는 분위기가 날로 고조된다. 태감인 하주아는 여덟째가 황자가 될 거라는 기대심에 강희가 여덟째에게 보내주겠다고 하자 강희에게 감사를 표한다. 강희는 파당을 만드는 여덟째가 못마땅했다. 또한 여덟째를 감싸고도는 동국유와 마제도 꼴 보기 싫었다. 그러나 여러 신하들이 천거한 황자를 태자로 삼겠다는 명유를 거스를 수도 없었다. 강희는 윤잉을 다시 태자로 복위시키고 파당을 만든 여덟째의 왕위를 박탈한다. 넷째를 비롯한 황자들의 간청에 강희는 황자들을 풀어준다.

 

태자 윤잉은 열셋째에게 왕위에 오르는데 걸림돌이 될 것 같은 정춘화를 죽여 달라고 부탁한다. 윤상은 윤잉에 대해 크게 실망한다. 윤상은 완의국(조정의 빨래방)에서 일하는 정춘화를 찾아가지만 정춘화를 죽이지 않기로 결심한다.

 

강희는 남순을 떠난다. 처음 남순에 나섰을 때 만났던 도적떼 두목인 유철성은 이제 강희를 보좌하는 시위가 되었다. 강희는 남순 중 객점에서 구양굉이라는 노인을 만나 역관에 동행한다. 역관에 풍하독이 들어와 구양굉에게 횡포를 부리려하자 강희가 신분을 밝힌다. 풍하독은 놀라 심장마비로 즉사한다. 강희는 탐관오리인 풍승운을 개들이나 뜯어 먹게 내다 버리라고 명령한다. 이에 구양굉은 아무리 탐관오리라 하더라도 법의 공정한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강희에게 간언한다. 강희는 구양굉에게 벼슬을 내리려 하나 구양굉은 자신의 본명이 방포임을 고한다. 방포는 수배령이 내려진 이후 이름을 바꾸었고, 강희가 특별사면령을 내린 사실을 모른 채 도망다니는 중이었다. 강희는 그날로 방포를 상서방으로 불러들인다.

윤잉은 여덟째에 대한 복수심에 태자파’(윤잉, 넷째, 열셋째) 관리들을 제외한 팔황자당’(여덟째를 위시로 한 대부분의 황자들)의 관리들 위주로 탐관오리들을 색출한다.

 

윤진은 여러 황자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임백안의 비밀 문서를 손에 넣을 궁리를 한다. 윤진은 비밀문서가 여덟째 집 근처인 전당포 만영호에 있음을 온유진으로부터 듣는다.

 

윤진의 측근들은 윤진이 도둑을 맞았다며 전당포에 도둑맞은 장물들이 있는지 알고 싶다는 구실로 만영호를 찾아간다. 윤진은 오랜만에 황자들을 초청해 회식자리를 가진다. 한편 만영호로 장물들을 보낸다. 황자들을 임백안으로부터 장물들이 들어왔다는 보고를 받은 윤진은 열셋째를 보낸다. 윤진은 비밀문서와 함께 임백안을 체포한다. 여덟째가 임백안의 입을 막기 위해 죽이려 하자 윤진이 임백안을 감금시킨다.

 

강희가 남순에서 돌아오자 임백안은 이미 사형에 처해졌다. 방포는 비밀문서를 소각할 것을 강희에게 간언한다.

 

윤상을 음해하려던 자고의 본색이 밝혀진다. 윤상은 자고를 풀어주나 자고는 자결한다.

 

강희는 열넷째 윤제에게 병권을 맡긴다. 윤제는 백운관에서 팔황자당의 황자들을 만난다. 아홉째, 열째, 열넷째는 자고를 이용한 윤상을 암살하려던 음모가 무위로 그쳤음을 알게 된다.

 

태자 윤잉은 강희 몰래 병권을 키워간다. 강희는 병변을 준비하며 자신의 측근들의 부정부패를 감싸고도는 윤잉의 얼굴에 침을 뱉는다.

 

밑줄 그은 문장

 

p85. “폐하! 옛말에 이르기를 토끼 한 마리가 그물을 빠져나가면 온 동네가 텅 빈다라고 했사옵니다.” .....그러나 강희는 그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바로 간파했다. 만약 토끼가 그물을 빠져나가게 되면 사람들은 그걸 잡으려고 너 나 없이 우르르 쫓아다니느라 생업도 뒷전이 된다. 그러다 토끼는 우여곡절 끝에 누군가의 손에 잡힌다. 그런 후에야 사람들은 현실을 인정하고 토끼에 대한 환상을 버린다.

 

p107. 이 세상에 그대를 사랑하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남아 있는 한, 그대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권한이 없다.

 

p112. “넷째마마께서는 구오지수입니다!”

윤진은 눈이 휘둥그레지지 않을 수 없었다. 확실히 그가 앞에 쏟아놓은 것은 네 개의 바둑알이었다. 9에서 5를 빼면 4가 되니 알아 맞혔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놀란 것은 오사도가 알아 맞혀서가 아니었다. 자신의 운명이 구오지수에 해당한다는 말 자체가 간단치 않아서였다. 그는 <역경>괘에 구오는 용이 하늘을 나는숫자라는 해석을 모르지 않았다. 말하자면 구오는 귀하기가 이를 데 없는 제왕의 숫자인 것이다.

 

p134. 공자가 이르기를 인은 멀리 있는가? 아니다. 내가 인하고자 하면 곧 인에 이른다고 했어. 마음을 버선 뒤집듯 뒤집어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고 발상의 전환을 시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p152.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는 하나 그건 일반인들 사이에서나 가능한 것입니다. 세 번을 참으면 살인도 면한다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화기치상 (음과 양이 서로 화합하면 그 기운이 서로 어우러져 상서롭게 됨)이 최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p187. “ 문제는 물이 너무 깨끗하면 고기가 살 수 없다는 사실이야. 관가에서도 그 진리는 적용이 돼. 자네는 모든 선비 출신 관리들의 취약점을 결코 피해가지 못했어. 굽혀야 할 때는 굽힐 줄도 아는 것이 진짜 사내라고. 꼭 장사할 때만 수완이 필요한 것이 아니야. 때로는 포악한 사자가 돼 으르렁거리다가 때로은 온순하고 푸근한 어미 양이 돼 꼭 품어 안을 수 있는 여유를 길러야 해. 개구리가 뒤로 주저앉는 것은 더 멀리 뛰기 위한 것이지, 결코 후퇴는 아니네.”

 

굴원이 쓴 <초사>에 이런 말이 있지. ‘강물이 깨끗하면 머리를 감고, 강물이 더러우면 발을 씻는다라는 거야. 정말 일리가 있어. 현명한 신하라면 명철보신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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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가 X에게 - 편지로 씌어진 소설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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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기 힘든 이름이다. 존 버거. 정혜윤pd 책에서도 자주 등장했다. ‘이 사람이 그 사람인가?’하는 의문을 품고 있었는데, 저런! 그 사람 맞다. 어릴 적에 존 버거를 미술 비평가로만 알고 있었을 뿐 그 후 그가 소설도 쓰고 사회비평가로도 활동했음을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 책의 앞 표지 뒷면에는 아룬다티 로이의 추천사가 실려있다.

 

존 버거는 절묘한 작품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이 책은 부드러움과 정치적 비전을 향한 희구를 도구 삼아 다듬어낸 절제된 분노에 관한 작품이다. 그가 쓰는 것은 모두 심오하고, 정확하며, 대답을 요구한다. 그것은 자유와 그 결핍, 희망과 그 결핍, 권력과 그 결핍, 사랑과 사랑하는 이와 강제로 헤어졌을 때 그 자리를 대신하는 끔찍한 갈망이다.

 

책을 읽어보니 왜 아룬다티 로이가 부드러움과 정치적 비전을 향한 희구라고 말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존 버거에 대한 수전 손택의 말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양심의 명령에 따르는 책임감과 감각적인 세계에 대한 배려를 동시에 보여주는 데 있어 존 버거 만큼 성공한 작가는 없다.” 아마도 존 버거에 버금가는 이가 있다면 아룬다티 로이가 아닐까.

 

서간체의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감옥에 수감 중인 사비에르에게 보내는 아이다의 편지 내용이 주를 이루다보니, 딱히 중심 서사가 없어 가독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없지 않지만, 버거의 정치적 비젼의 문장들과 감각적인 세계의 문장들은 쉽사리 다음 문장으로 눈길을 돌리도록 허락지 않는다. 사비에르는 주로 정치적 비젼을 토로하는 문장을 쓴다.

 

지옥은 돈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고안한 것이고, 그 목적은 가난한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으로부터 관심을 돌리게 하기 위함이다. 우선 그들의 처지가 더욱 나빠질 수도 있다는 협박을 반복함으로써, 그리고 두 번째로는 약속을 통해, 말을 잘 듣고 충직하게 지내면, 다른 삶에서는, 하나님의 왕국에서는, 그들도 지금 이 세상에서 부를 통해 살 수 있는 것과 그 이상의 것까지 즐길 수 있다는 약속을 통해서 말이다.

 

지옥을 들먹이지 않았다면, 교회의 과시적인 부와 무자비한 권력에 대한 의문이 더욱 공개적으로 제기되었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복음의 가르침에 명백히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옥은 축적된 부를 일종의 성스러운 대상으로 만들어 주었다.

 

오늘날의 시련은 너무나 깊다. 이젠 사후의 지옥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제외된 사람들의 지옥이 지금 이곳에 세워지고 있으며, 똑같은 경고를 전한다. 오직 부만이 살아 있는 것을 의미있게 만들어 준다는 경고를.

 

아이다는 주로 우리에게 감각적인 세계를 맛보게 해준다.

 

매일 밤 당신을 조각조각 맞춰 봅니다 아주 작은 뼈마디 하나 하나까지

 

당신에게 말해 주고 싶은 것이 있어요. 덧없는 것은 영원한 것의 반대말이 아니에요. 영원한 것의 반대말은 잊히는 것이죠.”

 

그녀는 삶이란 하나의 사고일 뿐이라고,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라고 믿게 된 거예요. 그래서 아직 남아 있는 것들을 주워 들고 어떻게든 다시 붙여 보려고 애쓰기보다는, 그냥 조용히 지니며 나머지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거죠. 아무것도.”

 

부재가 무라고 믿는 것보다 더 큰 실수는 없을 거예요. 그 둘 사이의 차이는 시간에 관한 문제죠. 무는 처음부터 없던 것이고, 부재란 있다가 없어진 거예요. 가끔씩 그 둘을 혼동하기 쉽고, 거기서 슬픔이 생기는 거죠.”

 

미 소플레테, 야 누르, 혹은 미 구아포로 시작되는 사비에르에게 보내는 아이다의 편지를 읽고 있노라면 그녀가 얼마나 사비에르를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다.

 

내가 보낸 손 그림들을 창문 바로 아래 붙여 놓았다고 했죠. 그렇게 하면 바람이 불 때마다 그림들이 제 멋대로 흔들린다고요. 그 손들은 당신을 만지고 싶은 거예요.”

 

위정자들의 폭력으로도 그들의 사랑을 막을 순 없다.

그들의 손이 닿을 수 없다는 사실에 몇 번을 울컥했는지.

 

적어도 당신에게 이 작품이 닿기를.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관심의 쉼표를 찍어주었으면.

 

-2014. 11. 19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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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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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충격을 예상하고 덤볐지만 설마 이 정도일거라곤 상상조차 못했다. 시몬 비젠탈이 만난 SS (나치 친위대)군인들은 포로들에게 아무도 살아남아 증언하지 못할 거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치는 아우슈비츠 가스실과 화장터를 폭파하고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했지만 살아남은 생존자들도 있었다.

 

나치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불필요하게잔인했다. 이 책은 경악그 자체다. 그러나, 그건 가해자인 나치 때문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피해자인 포로들 때문이다. 포로들에게 가해지는 첫 모욕, 첫 구타는 SS로부터 온 게 아니다. 수용소안의 다른 포로들로부터 온다. 똑같은 줄무늬 유니폼을 입은 포로들로부터. 이곳은 그야말로 지옥이 아닌가.

 

라거(수용소)는 끔찍한 것이면서 동시에 해독 불가능한 것이었다. 나치와 포로라는 이분법은 적용되지 않았다. 하나의 경계선이 아니라 여러 개의 복잡한 경계선들이 있었다. 일반포로들이 있었고 특권층 포로들이 있었다. 새로 들어온 포로, ‘신입’Zugang은 포로들로부터 조롱받고 장난질 당했다. 관리자 포로들은 신입이 들어오면 바로 주먹을 날린다. 만약 신입이 추릭슐라근, 주먹에 주먹으로 답한다면 특권층 포로protekcja는 신입을 때려죽이거나 죽통에 빠뜨려 익사시킨다.

 

특권층 포로 중 일종의 간수인 카포’kopos, capo가 있다. 대부분 자발적으로 특권을 원한 카포는 자신의 권력을 잃지 않기 위해 처벌이라는 이유로 포로들을 때려 죽였다.

 

존더코만도스’Sonderkommandos라 불리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그저 다른 포로들보다 더 많이 먹을 수 있는 특권밖에 없었다. SS특수부대라고 불렀던 존더코만도스는 가스실에서 시체를 꺼내고, 턱에서 금니를 뽑고, 여자들 머리카락을 자르고, 시체들을 화장터로 운반하는 일들을 했다. 특수부대는 대부분 유대인으로만 구성되었다. 특수부대원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은 첫날 미쳐버리거나 아니면 익숙해지던가 둘 중 하나였다. 레비는 특수부대를 기획하고 조직한 것을 나치의 가장 악마적인 범죄였다고 말한다. 레비의 말처럼 나치는 육체를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인간 영혼마저 파괴했다.

 

생존자 존더코만도스인 니즐리는 축구시합 참관에 대해 증언했다. SS(나치 진위대)SK(존더코만도스)의 축구시합. 마치 어느 마을 운동장에서처럼. 마치 너희도 우리와 같다는 듯이

 

특수부대에 편입된 유대인 400명 전원이 존더코만토스를 거부한 채 곧장 독가스로 살해된 경우도 있었다. 특수부대가 주도한 반란도 있었지만 반란에 가담한 450명 전원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해방이후 포로들은 자유를 만끽하기 이전에 수치심을 느꼈다. 그들은 수 년 동안 인간이라기보다는 동물의 삶을 강요받았다. 포로들은 라거안에서 배고픔, 추위, 두려움을 느꼈지 생각하지 않았다. 수용소 안에서 자살은 극히 드물었지만 해방이후 포로들 중에 자살을 택한 이들이 많았다. (시간의 차이가 있을 지언정 장 아메리도, 그리고 레비도 결국 자살했다.) 라거 안에서 자살이 드물었던 원인에 대해 레비는 이렇게 말했다. “자살은 동물의 행위가 아니라 인간의 행위라고.

레비는 이 책을 통해서 라거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면서도 침묵한 독일인들을 원망 하고, 불필요하게 잔인했던 SS대원들에 대해 분노하기도 하지만 냉철하게도 라거가 시스템이었음을 간파한다.

 

여기서 잠깐, 몇몇 포로들을 라거 당국과 다양한 규모로 협력하도록 내몬 동기들을 하나하나 논하기에 앞서, 이러한 인간의 행태에 대해 섣불리 어떤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신중치 못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가장 큰 잘못은 시스템에, 곧 전체주의 국가의 구조 자체에 있음을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권력은 어느 정도 통제된 것이든, 찬탈한 것이든, 위로부터 수여받은 것이든, 아래로부터 인정받은 것이든, 정당한 자격이 있어서 부여받은 것이든, 공동의 연대로 부여받은 것이든, 아니면 피로써 또는 부로써 부여받은 것이건 간에 인간사회 조직의 모든 형태속에 존재한다.

 

이 책은 그 어떤 호러나 미스터리 소설보다 끔찍하다. 왜냐하면 아우슈비츠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한국사회가 시스템의 관점에서 보면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최고의 사람들은 죽임을 당했다. 특권층이었던 카포혹은 존더코만도스들과 같은 최악의 사람들인 친일파는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특권층일가를 이루고 있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포로들은 수치심을 느꼈다. 그런데 왜 한국사회 특권층들은 일말의 부끄러움이나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 걸까.

 

수치심은 고사하고 갈수록 비열해져만 간다. <주진우기자의 사법 활극>를 보면 한국의 판사, 검사들은 현대판 아우슈비츠의 SS, SK들이다. 육체를 파괴할 수 없기에 그들은 더욱 더 악랄하게 영혼을 파괴한다.

 

다른 사람 대신에, 다른 사람을 희생하여 내가 살아있는 것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자리를 빼앗은 것일 수도, 그러니까 사실상 죽인 것일 수도 있다.’ 라거의 구조된 자들은 최고의 사람들, 선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 메시지의 전달자들이 아니었다. 내가 본 것, 내가 겪은 것은 그와는 정반대임을 증명해주었다. 오히려 최악의 사람들, 이기주의자들, 폭력자들, 무감각한 자들, ‘회색지대의 협력자들, 스파이들이 살아남았다.

 

확실한 원칙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원칙이었다. 나는 물론 내가 무죄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구조된 사람들 무리에 어쩌다 섞여 들어간 것처럼 느꼈다. 그래서 내 눈앞에서, 남들의 눈앞에서 끝없이 스스로를 정당화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느꼈다. 최악의 사람들, 즉 적자들이 생존했다. 최고의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SS가 만든 수용소 안에서 우리들은 동료의식으로 서로를 맞이하기 보단 서로의 것을 빼앗고, 다투고, 죽인다. (층간소음 살인사건은 아우슈비츠 라거에 대한 은유다)

 

세월호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분노와 함께 수치심을 느꼈다.

세월호의 가라앉은 자들대신에 내가 살아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사실상 내가 죽인 것이다.

이곳은 게토다.

 

밑줄 그은 문장


95. 다른 사람 대신에 살아남았기 때문에 부끄러운가? 특히, 나보다 더 관대하고, 더 섬세하고, 더 현명하고, 더 쓸모 있고, 더 자격 있는 사람대신에? 그런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명백한 범법행위를 발견하지 못한다. 누구의 자리를 빼앗은 적도 없고, 누구를 구타한 적도 없으며, 어떤 임무를 받아 들인적도 없고, 그 누구의 빵도 훔친 적이 없다. 그럼에도 그런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각자가 자기 형제의 카인이라는 것, 우리 모두가 자기 옆 사람의 자리를 빼앗고 그 사람 대신에 산다는 것은 하나의 상상, 아니 의심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상상이 우리의 정신을 갉아먹는 것이다. 좀벌레처럼 우리 머릿속 깊숙이 자리 잡고 들어앉아 갉아먹으며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낸다.

 

97. ‘다른 사람 대신에, 다른 사람을 희생하여 내가 살아있는 것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자리를 빼앗은 것일 수도, 그러니까 사실상 죽인 것일 수도 있다.’ 라거의 구조된 자들은 최고의 사람들, 선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 메시지의 전달자들이 아니었다. 내가 본 것, 내가 겪은 것은 그와는 정반대임을 증명해주었다. 오히려 최악의 사람들, 이기주의자들, 폭력자들, 무감각한 자들, ‘회색지대의 협력자들, 스파이들이 살아남았다. 확실한 원칙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원칙이었다. 나는 물론 내가 무죄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구조된 사람들 무리에 어쩌다 섞여 들어간 것처럼 느꼈다. 그래서 내 눈앞에서, 남들의 눈앞에서 끝없이 스스로를 정당화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느꼈다. 최악의 사람들, 즉 적자들이 생존했다. 최고의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99. 또 다른 하늘 아래에서 비슷하면서도 다른 노예생활을 경험하고 돌아온 솔제니친도 그 점에 주목했다.

 

장기 복역자들, 생존자이기 때문에 당신들이 축하나는 그 사람들 거의 대부분은 두말할 나위 없이 프리두르키pridurki거나 수감생활 대부분의 시간동안 프리두르키였다. 왜냐하면 라거는 절멸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저 다른 수용소 세계의 언어에서 프리두르키는 어떤 식으로든 특권의 지위를 획득한 포로들로, 우리 쪽에서는 프로미넨테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80. 룸코프스키처럼, 우리 역시 권력과 위신에 현혹되어 우리의 본질적인 나약함을 잊어버린다. 우리 모두 게토 안에 있다는 것을, 게토 주위엔 담벼락이 둘려 있고 그 밖에는 죽음의 주인들이 있으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기차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그렇게 우리는 자발적이든 아니든 간에 권력과 타협하게 되는 것이다.

 

84. 그들은 인사도 하지도, 미소를 짓지도 않았다. 음울한 광경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하고 입을 봉해버리는, 감히 무어라 할 수 없는 혼란스런 감정이 동정심과 더불어 그들을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그 수치심이었다. 가스실로 보내질 인원 선발이 끝난 뒤, 그리고 매번 모욕을 당하거나 당하는 자리에 있어야 했을 때마다 우리를 가라앉게 만들던 그 수치심, 독일인들은 모르던 수치심, 타인들이 저지른 잘못 앞에서 의로운 자가 느끼는 수치심이었다. 그런 잘못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만물이 존재하는 세상 속으로 그것이 돌이킬 수 없이 들어와버렸다는 사실이, 그리고 자신의 선한 의지는 아니었거나 턱없이 부족했고 또 그것을 막는데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는 사실이 의로운 그를 가책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87. 어둠에서 나왔을 때, 사람들은 자기 존재의 일부를 박탈당했다는 의식을 되찾고 괴로워했다. 원해서도 무기력해도 아니었고 죄가 있어서도 아니었지만 우리는 수개월 또는 수년을 동물적인 수준에서 살았다. 우리의 나날들은 새벽부터 밤까지 배고픔과 피로와 추위, 두려움으로 채워져 있었고 사고하고 감정을 느끼기 위한 성찰의 자리는 없어졌다.

 

88. 해방 후 일어난 자살의 많은 경우들은 이와 같이 몸을 돌려 위험한 물을 바라보는 데서 기인했다고 나는 믿고 있다. 해방은 어쨌든, 반성과 우울함이라는 해일과 함께 찾아온 위기의 순간이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소비에트 수용소들을 포함해서 라거를 연구하는 많은 역사학자들은, 포로생활 도중에 자살이 일어난 경우는 드물다는 사실에 동일하게 주목했다.

 

특수부대의 존재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었고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지배 민족인 우리는 너희들의 파괴자이지만, 너희들은 우리보다 나은 것이 없다. 우리가 원하기만 한다면, 그리고 실제로 원하고 있지만, 우리에겐 너희의 육신뿐만 아니라 영혼을 파괴할 능력이 있다. 우리가 우리의 영혼을 파괴한 것처럼

 

46. 소수 또는 한 사람이 다수에 의해 권력을 행사하는 곳에서 특권은 태어나고, 권력 자체의 의지에 반하면서도 특권은 증식한다. 그러나 한편, 권력이 특권을 용인하거나 조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라거에 국한해서 논하고 있지만 라거는 하나의 실험실로서 족히 바라볼 수 있다. 관리자 포로라는 혼성 계층은 수용소의 골격을 형성하며, 동시에 극도의 불안감을 조성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것은 주인과 하인의 두 영역을 나누는 동시에 연결하는, 경계가 불분명한 회색지대이다.

 

프로텍치아와 협력의 회색지대는 다양한 뿌리로부터 탄생한다.

첫째, 권력층은 그 폭이 좁으면 좁을수록 그만큼 외부의 조력자가 더 필요해진다. ....노르웨이의 크비슬링, 프랑스의 비시 정부, 바르샤바의 유대인평의회, 살로 공화국, 존더코만도스 등등

 

그들을 묶어두는 가장 좋은 방법은 범죄의 짐을 지게 하는 것이고 그들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이며 가능한 한 그들을 연루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진짜 주범들과 공범관계로 묶일 것이고, 더 이상 되돌아갈 수 없게 된다. 이러한 방식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범죄조직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48. 두 번째는 억압이 거셀수록 억압받는 사람들 사이에 기꺼이 권력에 협력하려는 의향이 더욱 더 확산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의향은 미묘한 차이들과 다양한 동기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공포, 이데올로기적 유혹, 승자를 곧이곧대로 모방하는 것, 어떤 권력이건 간에 그것을 향한 근시안적인 욕망, 비겁, 명령이나 규율 자체를 교묘하게 피하려는 철저한 계산에 이르기까지 그 동기는 다양하다.

 

여기서 잠깐, 몇몇 포로들을 라거 당국과 다양한 규모로 협력하도록 내몬 동기들을 하나하나 논하기에 앞서, 이러한 인간의 행태에 대해 섣불리 어떤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신중치 못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가장 큰 잘못은 시스템에, 곧 전체주의 국가의 구조 자체에 있음을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51. 권력은 어느 정도 통제된 것이든, 찬탈한 것이든, 위로부터 수여받은 것이든, 아래로부터 인정받은 것이든, 정당한 자격이 있어서 부여받은 것이든, 공동의 연대로 부여받은 것이든, 아니면 피로써 또는 부로써 부여받은 것이건 간에 인간사회 조직의 모든 형태속에 존재한다.

 

52. 그러나 앞서 작업반 카포들에서 보듯,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관리자들이 가졌던 권력은 낮은 계급의 관리자의 권력이라 해도 실질적으로 무제한적인 것이었다. 그들이 충분히 냉혹하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 처벌받거나 자리에서 쫓겨났다는 의미에게 그들의 폭력에 지워진 하한선은 낮았지만 상한선은 업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도 처벌이라는 명목으로 극악무도한 잔혹행위를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1943년 말까지 포로가 카포에게 맞아 죽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모든 권력이 위로부터 내려오고 아래로부터의 통제는 거의 불가능한 전체주의 국가의 위계구조는 보다 작은 규모로, 그러나 확대된 특징들을 보이면서 라거들 내부에서 비슷하게 재현되었다.

 

25. 수십 년이 지나도록 희생자는 고통 속에 괴로워한다. 그리고 슬프게도 다시 한 번 그 상처는 치유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오스트리아 철학자 장 아메리는 벨기에 리지스탕스 운동을 하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어 게슈타포에게 고문당한 인물이다. 그가 남긴 글은 우리를 경악에 빠뜨린다.

 

고문당한 사람은 고문에 시달리는 채로 남는다. (...) 고문당한 사람은 더 이상 세상에 적응할 수 없을 것이다. 철저하게 그를 무로 만들어 버린 데서 오는 혐오감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에 대한 신뢰는 첫 따귀로 이미 금이 가고, 이어지는 고문으로 더 이상 회복되지 않는다.

 

그에게 고문은 끝나지 않는 죽음이었다. 아메리, 그는 1978년에 자살했다.

 

26. 슈페어처럼 야심차고 지적인 전문가든 아이히만처럼 광신적인 냉혈한이든, 아니면 트레블링카의 슈팅글이나 아우슈비츠의 회스처럼 근시안적인 관리든, 고문 발명가들인 보거와 카두크처럼 우둔하고 추악한 사람이든, 질문을 받는 사람의 개인적인 성격과는 상괸없이 말이다. 말하는 사람의 정신적, 문화적 수준에 따라 크고 작은 오만함을 보이면서 여려 형태로 표현되는 그 답변들은 본질적으로 모두 똑같은 내용을 말한다. ,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더 나쁜 일을 저질렀다. 내가 받아온 교육과 살아온 환경을 감안했을 때 나는 다르게 행동할 수 없었다, 내가 하지 않았다면 내 대신 다른 사람이 더욱 엄하게 했을 것이다, 등과 같은 답변이다.

 

30. “우리는 절대적 복종과 위계질서와 민족주의에 맞게 교육되었다. 우리는 슬로건에 흠뻑 젖어 있었고 의례와 시위에 도취되어 있었다. 우리 민족에 유익한 것이 유일한 정의이며 대장의 말이 유일한 진실이라고 배웠. 도대체 우리에게서 뭘 바라는가? 일어난 일들에 대하여, 우리와 같았던 모든 사람들의 것과는 다른 행동을 우리에게 어떻게 기대한단 말인가? 우리는 부지런한 집행자였고 그런 부지런함 덕분에 칭찬받고 진급했다. 결정은 우리가 내린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자라난 체제는 자율적인 결정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 대신 결정을 내렸고 다른 식으로는 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결정하는 능력을 거세당했기 때문이다. 결정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금지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그것에 무능력해져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책임이 없으며 처벌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가 순전히 그들의 후안무치함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근대적인 전체주의 국가가 개인에게 행사할 수 있는 압력은 무시무시하다. 그 무기는 본질적으로 세 가지이다. 교육, 지도, 대중문화로 위장한 프로파간다 또는 직접적인 프로파간다, 정보의 다원주의에 반하는 봉쇄, 그리고 테러가 바로 그것이다.

 

 

22. 이 책은 아직까지도 분명치 않아 보이는 라거 현상의 몇가지 양상들을 밝히는데 이바지하고자 한다. 보다 야심찬 목적도 있다. 좀 더 급박한 질문, 우리의 이야기를 읽을 기회가 있었던 모든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다. 노예 제도나 결투 의식이 그랬던 것처럼, 수용소 세계는 어디까지 사멸했으며 더 이상 돌아오지 않을 것인가, 어디까지 되돌아왔거나 되돌아오고 있는가, 위협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적어도 이러한 위협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우리들 각자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나는 역사가의 작업, 즉 근원을 철저하게 파헤치는 작업을 할 의도는 없었고 그럴 능력도 없다. 다만 거의 전적으로 나치의 라거들을 다루는 데 국한했다. 왜냐하면 그것들에 대해서만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읽은 책들과 들은 이야기, 그리고 내가 초기에 쓴 두 책의 독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는 라거들에 관하여 충분한 간접 경험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내가 지금 집필을 하는 이 순간까지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참사, 굴락의 수치, 불필요하고 피비린내 나는 베트남 전쟁, 캄보디아의 대학살, 아르헨티나의 실종자들, 그리고 그 후 우리가 목도한 잔인하고도 어리석은 수많은 전쟁들이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나치 수용소의 체계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유일무이한 것이다. 다른 그 어떤 시간과 장소에서도 그토록 예기치 못한, 그토록 복잡다단한 현상이 나타난 적은 없었다. 기술적 정교함과 광신, 잔인함이 그토록 짧은 시간내에 그토록 명석하게 조합되어 그렇게 수많은 인명이 절멸된 적은 없었다.

 

41. 그러나 입소한 수용소에서 목격한 놀라운 광경은 그들에게 뜻밖의 충격을 던져 주었다. 자신이 내던져진 세계는 물론 끔찍한 것이었지만 또한 해독 불가능한 것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 세계는 그 어떤 모델에도 부합하지 않는 것이었고, 적은 주변에도 있었지만 내부에도 있었다. “우리라는 말은 그 경계를 잃었고, 대립하는 자들이 두편으로 나뉜 게 아니었다. 하나의 경계선이 아니라 여러 개의 복잡한 경계선들, 곧 우리들 각자의 사이에 하나씩 놓인 수많은 경계선들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적어도 불행을 함께하는 동료들의 연대감을 기대하면서 수용소에 입소했지만 몇몇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바라던 동맹은 없었다. 반면에 수천 개의 봉인된 단자들만이 있을 뿐이었고 이 단자들 사이에는 필사적이고 은밀하고 지속적인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2015.7.15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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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0 0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2-10 08:47   좋아요 1 | URL
`긍정`보다 비판적 사유가 더 필요한거겠죠?
감사합니다^^
 
강희대제 10 - 얼웨허 역사소설, 전면 개정판 제왕삼부곡 1
얼웨허 지음, 홍순도 옮김 / 더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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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황자인 윤상은 넷째 황자 윤진과 함께 황하를 시찰하던 중 장오가를 만난다. 아역들이 장오가를 포함한 소금밀매꾼을 체포해 아문으로 데려간다. 청렴하기로 소문난 현령 시세륜은 소금밀매꾼들에게 소금을 들고 달려보라고 하고는 소금장수들을 전부 놓아준다. 사실 그들의 소금밀매라는 것은 호구지책으로 소꿉놀이에 불과할 뿐이고 소금 유통을 방해하는 큰 도둑은 돈과 권력으로 뭉친 염도(소금 정책 담당 관리)와 소금장수들이었다.

 

유명한 학자인 방포는 친구의 책에 서문을 써주었다, 책에 청나라를 비방하는 대목이 있다는 이유로 조정에서 보낸 연갱요에게 체포된다. 사실 방포는 소금장수들과 죽이 맞은 전 현령을 쫓아냈다. 소금장수들은 여덟째 황자인 윤사에게 줄을 대 방포를 체포한 것. 윤사는 대내외적으로 24명 중의 황자 중 학문이나 인품 면으로 단연 최고의 황자로 인정받았다.

 

윤진과 윤상은 북행길에 오르던 중 강하진에 숙식하기로 한다. 그런데 강하진은 그 흔한 주막없이 진 하나가 통째로 유팔녀라는 자의 소유였다. 두 황자는 유팔녀의 하인에게 부탁해 하룻밤 신세를 진다. 그곳에서 두 황자는 위기에 처한 아란이란 노래하는 여자를 구해준다.

 

 

강희는 장부와는 달리 국고에 천 냥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강희는 윤상을 호부로 보내 국고를 채우라 명한다. 신임 호부로 시세륜이 임명된다.

 

황태자 윤잉은 궁녀인 정춘화와 통정을 나눈다. 추석맞이 잔치에서 강희 앞에서 국고 환수 건으로 열째 황자인 윤아가 윤상과 치고 박고 싸운다. 대신들과 마찬가지로 황태자와 황자들도 국고에서 빌린 빚이 있었고 윤아는 윤상과 시세륜이 너무 가혹하게 빚을 환수한다며 강희에게 호소한다. 윤아는 빚을 못 갚겠다고 버티고 이에 여덟째 황자인 윤사가 윤아 대신 빚을 갚는다.

 

한편 윤상은 예전에 구해준 아란을 또 다시 만나 그녀를 정실부인으로 맞이하고 싶어 한다.

윤상은 윤진의 도움으로 만든 전적 문서를 아란에게 건네주나(만주족과 한족은 결혼할 수 없었다) 아란은 윤상의 구애를 거절한다. 윤상은 기둥서방격인 임백안과 아란의 몸값을 흥정하지만 아란은 한사코 거부한다.

 

시위와 대신들을 데리고 암행을 하던 중 강희는 채시구에 있는 사형장에 다다른다. 동국유와 마제가 사형집행을 중지시킨다. 사형당할 구운생의 나이는 예순이 넘었으나 구운생을 자처하며 사형을 기다리는 남자는 젊은이였던 것. 이 당시에는 재백압(돈과 권세가 있는 사람들을 대신해 죄를 뒤집어쓴다는 의미)이 비일비재했다. 구운생이라는 자는 소금장수 장오가였다. 장오가의 아버지가 구운생에게 볼모로 붙잡혀있어 장오가는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할 수 없이 구운생 대신 사형장에 끌려 나왔다. 강희는 장오가를 보군통령아문에 있는 선박영 휘하로 보낸다.

 

장오가 사건을 해결하라는 성지를 받고 윤사가 형부로 들어간다. 돈 받고 범인을 바꿔치기 한 주동자는 임백안이었다. 그러나, 임백안에게 약점이 잡힌 윤사는 함부로 임백안의 죄를 추궁할 입장이 아니었다. 임백안은 게다가 백관행술이라는 비밀 문서를 만들어 보관중이었다. ‘백관행술은 임백안이 보고 들은 관리들의 온갖 부정부패가 기록된 문서였다.

 

호부의 국고 환수 문제는 결국 흐지부지 돼버렸다. 시세륜이나 우명당은 강희의 배려로 안전지대로 옮겨 피해를 입지 않았으나 호부의 하급관리들은 이리저리 난타를 당하게 되었다. 그러자, 호부상서로 새로 부임한 아령아는 아예 국고를 활짝 열어 버린다.

 

장오가는 운좋게 호위에 선발된다. 수렵대회에서 강희를 호위하던 장호가는 악륜대의 부당한 처사에 참다 참다 분개한다. 악륜대는 장오가를 욕하면서 조봉춘이나 무단에 대한 폭언을 서슴치 않는다. 그걸 본 강희는 악륜대가 태자의 처지가 이전 같지 않다고 생각해 엉뚱한 생각을 한다고 짐작하고는 악륜대를 경질시킨다.

 

수렵대회에서 윤아는 아홉째의 도움으로 일등을 차지하나 윤상이 이의를 제기하고 두 황자는 또 다시 다툼을 벌인다.

 

강희는 냉향정의 장춘화를 찾아간다. 강희는 장춘화가 한 남자와 통정함을 알게 된다. 강희는 그 남자가 태자라는 사실애 경악을 금치 못한다.

 

밑줄 그은 문장

 


 

 

 

 

 

 

 

 

p 229. "나는 64괘 중에서 제일 길한 점괘가 태괘라고 알고 있어. 그런데 선생은 어째서 불길하다고 하는 거지?"
오사도가 즉각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반 사람에 한해서입니다. 이것은 태자전하의 운명을 점치는 점괘입니다. 때문에 나라와 백성들의 운명을 점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러니 큰 틀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태자전하는 화의 운명을 타고 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은 그 불길이 극성에 달하고 있습니다. 또 그것은 최상을 뜻하는 ‘태’를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상서로운 이 글자를 원합니다. 그러나 최고봉에 오르고 나면 허탈합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내려가는 일밖에는 남지 않기 때문입니다. 복 속에는 화가 숨어 있습니다. 또 화에는 복이 깃들어 있습니다. 흉이 극에 달하면 길한 일이 생깁니다. 더불이 길이 최고조에 오르면 나쁜 일이 생깁니다. 이는 <역경>에서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p319. "우주의 ‘우’는 상하사방을 의미하옵니다. 유한한 공간을 뜻하옵니다. 또 ‘주’는 왕고래금을 의미하옵니다. 무한한 시간을 말하는 것이옵니다. 이 손자는 육합지중에 몸을 두고 성도가 이뤄지는 때에 머무르고 있사옵니다. 위로는 황은을 우러르고, 아래로는 은총을 받고 있사옵니다. 손자의 모든 것은 군주에게서 왔사옵니다. 공의와 사정 역시 모두 그런 생각 속에 있지 않겠사옵니까!"
홍력의 말에 강희의 눈은 더욱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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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후, 한국은 없다 - 총체적 난국에 빠진 대한민국 민낯 보고서
공병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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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 소나 경제학자란다. 신자유주의 찬양론자가 이제 와 위기를 논하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역겹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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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9 08: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2-09 14:38   좋아요 1 | URL
저런 사람들이 학자랍시고 떠들고 다니는걸 보면 울화통이 터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