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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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충격을 예상하고 덤볐지만 설마 이 정도일거라곤 상상조차 못했다. 시몬 비젠탈이 만난 SS (나치 친위대)군인들은 포로들에게 아무도 살아남아 증언하지 못할 거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치는 아우슈비츠 가스실과 화장터를 폭파하고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했지만 살아남은 생존자들도 있었다.

 

나치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불필요하게잔인했다. 이 책은 경악그 자체다. 그러나, 그건 가해자인 나치 때문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피해자인 포로들 때문이다. 포로들에게 가해지는 첫 모욕, 첫 구타는 SS로부터 온 게 아니다. 수용소안의 다른 포로들로부터 온다. 똑같은 줄무늬 유니폼을 입은 포로들로부터. 이곳은 그야말로 지옥이 아닌가.

 

라거(수용소)는 끔찍한 것이면서 동시에 해독 불가능한 것이었다. 나치와 포로라는 이분법은 적용되지 않았다. 하나의 경계선이 아니라 여러 개의 복잡한 경계선들이 있었다. 일반포로들이 있었고 특권층 포로들이 있었다. 새로 들어온 포로, ‘신입’Zugang은 포로들로부터 조롱받고 장난질 당했다. 관리자 포로들은 신입이 들어오면 바로 주먹을 날린다. 만약 신입이 추릭슐라근, 주먹에 주먹으로 답한다면 특권층 포로protekcja는 신입을 때려죽이거나 죽통에 빠뜨려 익사시킨다.

 

특권층 포로 중 일종의 간수인 카포’kopos, capo가 있다. 대부분 자발적으로 특권을 원한 카포는 자신의 권력을 잃지 않기 위해 처벌이라는 이유로 포로들을 때려 죽였다.

 

존더코만도스’Sonderkommandos라 불리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그저 다른 포로들보다 더 많이 먹을 수 있는 특권밖에 없었다. SS특수부대라고 불렀던 존더코만도스는 가스실에서 시체를 꺼내고, 턱에서 금니를 뽑고, 여자들 머리카락을 자르고, 시체들을 화장터로 운반하는 일들을 했다. 특수부대는 대부분 유대인으로만 구성되었다. 특수부대원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은 첫날 미쳐버리거나 아니면 익숙해지던가 둘 중 하나였다. 레비는 특수부대를 기획하고 조직한 것을 나치의 가장 악마적인 범죄였다고 말한다. 레비의 말처럼 나치는 육체를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인간 영혼마저 파괴했다.

 

생존자 존더코만도스인 니즐리는 축구시합 참관에 대해 증언했다. SS(나치 진위대)SK(존더코만도스)의 축구시합. 마치 어느 마을 운동장에서처럼. 마치 너희도 우리와 같다는 듯이

 

특수부대에 편입된 유대인 400명 전원이 존더코만토스를 거부한 채 곧장 독가스로 살해된 경우도 있었다. 특수부대가 주도한 반란도 있었지만 반란에 가담한 450명 전원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해방이후 포로들은 자유를 만끽하기 이전에 수치심을 느꼈다. 그들은 수 년 동안 인간이라기보다는 동물의 삶을 강요받았다. 포로들은 라거안에서 배고픔, 추위, 두려움을 느꼈지 생각하지 않았다. 수용소 안에서 자살은 극히 드물었지만 해방이후 포로들 중에 자살을 택한 이들이 많았다. (시간의 차이가 있을 지언정 장 아메리도, 그리고 레비도 결국 자살했다.) 라거 안에서 자살이 드물었던 원인에 대해 레비는 이렇게 말했다. “자살은 동물의 행위가 아니라 인간의 행위라고.

레비는 이 책을 통해서 라거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면서도 침묵한 독일인들을 원망 하고, 불필요하게 잔인했던 SS대원들에 대해 분노하기도 하지만 냉철하게도 라거가 시스템이었음을 간파한다.

 

여기서 잠깐, 몇몇 포로들을 라거 당국과 다양한 규모로 협력하도록 내몬 동기들을 하나하나 논하기에 앞서, 이러한 인간의 행태에 대해 섣불리 어떤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신중치 못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가장 큰 잘못은 시스템에, 곧 전체주의 국가의 구조 자체에 있음을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권력은 어느 정도 통제된 것이든, 찬탈한 것이든, 위로부터 수여받은 것이든, 아래로부터 인정받은 것이든, 정당한 자격이 있어서 부여받은 것이든, 공동의 연대로 부여받은 것이든, 아니면 피로써 또는 부로써 부여받은 것이건 간에 인간사회 조직의 모든 형태속에 존재한다.

 

이 책은 그 어떤 호러나 미스터리 소설보다 끔찍하다. 왜냐하면 아우슈비츠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한국사회가 시스템의 관점에서 보면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최고의 사람들은 죽임을 당했다. 특권층이었던 카포혹은 존더코만도스들과 같은 최악의 사람들인 친일파는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특권층일가를 이루고 있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포로들은 수치심을 느꼈다. 그런데 왜 한국사회 특권층들은 일말의 부끄러움이나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 걸까.

 

수치심은 고사하고 갈수록 비열해져만 간다. <주진우기자의 사법 활극>를 보면 한국의 판사, 검사들은 현대판 아우슈비츠의 SS, SK들이다. 육체를 파괴할 수 없기에 그들은 더욱 더 악랄하게 영혼을 파괴한다.

 

다른 사람 대신에, 다른 사람을 희생하여 내가 살아있는 것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자리를 빼앗은 것일 수도, 그러니까 사실상 죽인 것일 수도 있다.’ 라거의 구조된 자들은 최고의 사람들, 선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 메시지의 전달자들이 아니었다. 내가 본 것, 내가 겪은 것은 그와는 정반대임을 증명해주었다. 오히려 최악의 사람들, 이기주의자들, 폭력자들, 무감각한 자들, ‘회색지대의 협력자들, 스파이들이 살아남았다.

 

확실한 원칙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원칙이었다. 나는 물론 내가 무죄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구조된 사람들 무리에 어쩌다 섞여 들어간 것처럼 느꼈다. 그래서 내 눈앞에서, 남들의 눈앞에서 끝없이 스스로를 정당화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느꼈다. 최악의 사람들, 즉 적자들이 생존했다. 최고의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SS가 만든 수용소 안에서 우리들은 동료의식으로 서로를 맞이하기 보단 서로의 것을 빼앗고, 다투고, 죽인다. (층간소음 살인사건은 아우슈비츠 라거에 대한 은유다)

 

세월호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분노와 함께 수치심을 느꼈다.

세월호의 가라앉은 자들대신에 내가 살아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사실상 내가 죽인 것이다.

이곳은 게토다.

 

밑줄 그은 문장


95. 다른 사람 대신에 살아남았기 때문에 부끄러운가? 특히, 나보다 더 관대하고, 더 섬세하고, 더 현명하고, 더 쓸모 있고, 더 자격 있는 사람대신에? 그런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명백한 범법행위를 발견하지 못한다. 누구의 자리를 빼앗은 적도 없고, 누구를 구타한 적도 없으며, 어떤 임무를 받아 들인적도 없고, 그 누구의 빵도 훔친 적이 없다. 그럼에도 그런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각자가 자기 형제의 카인이라는 것, 우리 모두가 자기 옆 사람의 자리를 빼앗고 그 사람 대신에 산다는 것은 하나의 상상, 아니 의심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상상이 우리의 정신을 갉아먹는 것이다. 좀벌레처럼 우리 머릿속 깊숙이 자리 잡고 들어앉아 갉아먹으며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낸다.

 

97. ‘다른 사람 대신에, 다른 사람을 희생하여 내가 살아있는 것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자리를 빼앗은 것일 수도, 그러니까 사실상 죽인 것일 수도 있다.’ 라거의 구조된 자들은 최고의 사람들, 선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 메시지의 전달자들이 아니었다. 내가 본 것, 내가 겪은 것은 그와는 정반대임을 증명해주었다. 오히려 최악의 사람들, 이기주의자들, 폭력자들, 무감각한 자들, ‘회색지대의 협력자들, 스파이들이 살아남았다. 확실한 원칙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원칙이었다. 나는 물론 내가 무죄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구조된 사람들 무리에 어쩌다 섞여 들어간 것처럼 느꼈다. 그래서 내 눈앞에서, 남들의 눈앞에서 끝없이 스스로를 정당화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느꼈다. 최악의 사람들, 즉 적자들이 생존했다. 최고의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99. 또 다른 하늘 아래에서 비슷하면서도 다른 노예생활을 경험하고 돌아온 솔제니친도 그 점에 주목했다.

 

장기 복역자들, 생존자이기 때문에 당신들이 축하나는 그 사람들 거의 대부분은 두말할 나위 없이 프리두르키pridurki거나 수감생활 대부분의 시간동안 프리두르키였다. 왜냐하면 라거는 절멸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저 다른 수용소 세계의 언어에서 프리두르키는 어떤 식으로든 특권의 지위를 획득한 포로들로, 우리 쪽에서는 프로미넨테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80. 룸코프스키처럼, 우리 역시 권력과 위신에 현혹되어 우리의 본질적인 나약함을 잊어버린다. 우리 모두 게토 안에 있다는 것을, 게토 주위엔 담벼락이 둘려 있고 그 밖에는 죽음의 주인들이 있으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기차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그렇게 우리는 자발적이든 아니든 간에 권력과 타협하게 되는 것이다.

 

84. 그들은 인사도 하지도, 미소를 짓지도 않았다. 음울한 광경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게 하고 입을 봉해버리는, 감히 무어라 할 수 없는 혼란스런 감정이 동정심과 더불어 그들을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그 수치심이었다. 가스실로 보내질 인원 선발이 끝난 뒤, 그리고 매번 모욕을 당하거나 당하는 자리에 있어야 했을 때마다 우리를 가라앉게 만들던 그 수치심, 독일인들은 모르던 수치심, 타인들이 저지른 잘못 앞에서 의로운 자가 느끼는 수치심이었다. 그런 잘못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만물이 존재하는 세상 속으로 그것이 돌이킬 수 없이 들어와버렸다는 사실이, 그리고 자신의 선한 의지는 아니었거나 턱없이 부족했고 또 그것을 막는데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는 사실이 의로운 그를 가책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87. 어둠에서 나왔을 때, 사람들은 자기 존재의 일부를 박탈당했다는 의식을 되찾고 괴로워했다. 원해서도 무기력해도 아니었고 죄가 있어서도 아니었지만 우리는 수개월 또는 수년을 동물적인 수준에서 살았다. 우리의 나날들은 새벽부터 밤까지 배고픔과 피로와 추위, 두려움으로 채워져 있었고 사고하고 감정을 느끼기 위한 성찰의 자리는 없어졌다.

 

88. 해방 후 일어난 자살의 많은 경우들은 이와 같이 몸을 돌려 위험한 물을 바라보는 데서 기인했다고 나는 믿고 있다. 해방은 어쨌든, 반성과 우울함이라는 해일과 함께 찾아온 위기의 순간이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소비에트 수용소들을 포함해서 라거를 연구하는 많은 역사학자들은, 포로생활 도중에 자살이 일어난 경우는 드물다는 사실에 동일하게 주목했다.

 

특수부대의 존재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었고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지배 민족인 우리는 너희들의 파괴자이지만, 너희들은 우리보다 나은 것이 없다. 우리가 원하기만 한다면, 그리고 실제로 원하고 있지만, 우리에겐 너희의 육신뿐만 아니라 영혼을 파괴할 능력이 있다. 우리가 우리의 영혼을 파괴한 것처럼

 

46. 소수 또는 한 사람이 다수에 의해 권력을 행사하는 곳에서 특권은 태어나고, 권력 자체의 의지에 반하면서도 특권은 증식한다. 그러나 한편, 권력이 특권을 용인하거나 조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라거에 국한해서 논하고 있지만 라거는 하나의 실험실로서 족히 바라볼 수 있다. 관리자 포로라는 혼성 계층은 수용소의 골격을 형성하며, 동시에 극도의 불안감을 조성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것은 주인과 하인의 두 영역을 나누는 동시에 연결하는, 경계가 불분명한 회색지대이다.

 

프로텍치아와 협력의 회색지대는 다양한 뿌리로부터 탄생한다.

첫째, 권력층은 그 폭이 좁으면 좁을수록 그만큼 외부의 조력자가 더 필요해진다. ....노르웨이의 크비슬링, 프랑스의 비시 정부, 바르샤바의 유대인평의회, 살로 공화국, 존더코만도스 등등

 

그들을 묶어두는 가장 좋은 방법은 범죄의 짐을 지게 하는 것이고 그들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이며 가능한 한 그들을 연루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진짜 주범들과 공범관계로 묶일 것이고, 더 이상 되돌아갈 수 없게 된다. 이러한 방식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범죄조직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48. 두 번째는 억압이 거셀수록 억압받는 사람들 사이에 기꺼이 권력에 협력하려는 의향이 더욱 더 확산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의향은 미묘한 차이들과 다양한 동기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공포, 이데올로기적 유혹, 승자를 곧이곧대로 모방하는 것, 어떤 권력이건 간에 그것을 향한 근시안적인 욕망, 비겁, 명령이나 규율 자체를 교묘하게 피하려는 철저한 계산에 이르기까지 그 동기는 다양하다.

 

여기서 잠깐, 몇몇 포로들을 라거 당국과 다양한 규모로 협력하도록 내몬 동기들을 하나하나 논하기에 앞서, 이러한 인간의 행태에 대해 섣불리 어떤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신중치 못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가장 큰 잘못은 시스템에, 곧 전체주의 국가의 구조 자체에 있음을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51. 권력은 어느 정도 통제된 것이든, 찬탈한 것이든, 위로부터 수여받은 것이든, 아래로부터 인정받은 것이든, 정당한 자격이 있어서 부여받은 것이든, 공동의 연대로 부여받은 것이든, 아니면 피로써 또는 부로써 부여받은 것이건 간에 인간사회 조직의 모든 형태속에 존재한다.

 

52. 그러나 앞서 작업반 카포들에서 보듯,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관리자들이 가졌던 권력은 낮은 계급의 관리자의 권력이라 해도 실질적으로 무제한적인 것이었다. 그들이 충분히 냉혹하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 처벌받거나 자리에서 쫓겨났다는 의미에게 그들의 폭력에 지워진 하한선은 낮았지만 상한선은 업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도 처벌이라는 명목으로 극악무도한 잔혹행위를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1943년 말까지 포로가 카포에게 맞아 죽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모든 권력이 위로부터 내려오고 아래로부터의 통제는 거의 불가능한 전체주의 국가의 위계구조는 보다 작은 규모로, 그러나 확대된 특징들을 보이면서 라거들 내부에서 비슷하게 재현되었다.

 

25. 수십 년이 지나도록 희생자는 고통 속에 괴로워한다. 그리고 슬프게도 다시 한 번 그 상처는 치유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오스트리아 철학자 장 아메리는 벨기에 리지스탕스 운동을 하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어 게슈타포에게 고문당한 인물이다. 그가 남긴 글은 우리를 경악에 빠뜨린다.

 

고문당한 사람은 고문에 시달리는 채로 남는다. (...) 고문당한 사람은 더 이상 세상에 적응할 수 없을 것이다. 철저하게 그를 무로 만들어 버린 데서 오는 혐오감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에 대한 신뢰는 첫 따귀로 이미 금이 가고, 이어지는 고문으로 더 이상 회복되지 않는다.

 

그에게 고문은 끝나지 않는 죽음이었다. 아메리, 그는 1978년에 자살했다.

 

26. 슈페어처럼 야심차고 지적인 전문가든 아이히만처럼 광신적인 냉혈한이든, 아니면 트레블링카의 슈팅글이나 아우슈비츠의 회스처럼 근시안적인 관리든, 고문 발명가들인 보거와 카두크처럼 우둔하고 추악한 사람이든, 질문을 받는 사람의 개인적인 성격과는 상괸없이 말이다. 말하는 사람의 정신적, 문화적 수준에 따라 크고 작은 오만함을 보이면서 여려 형태로 표현되는 그 답변들은 본질적으로 모두 똑같은 내용을 말한다. ,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더 나쁜 일을 저질렀다. 내가 받아온 교육과 살아온 환경을 감안했을 때 나는 다르게 행동할 수 없었다, 내가 하지 않았다면 내 대신 다른 사람이 더욱 엄하게 했을 것이다, 등과 같은 답변이다.

 

30. “우리는 절대적 복종과 위계질서와 민족주의에 맞게 교육되었다. 우리는 슬로건에 흠뻑 젖어 있었고 의례와 시위에 도취되어 있었다. 우리 민족에 유익한 것이 유일한 정의이며 대장의 말이 유일한 진실이라고 배웠. 도대체 우리에게서 뭘 바라는가? 일어난 일들에 대하여, 우리와 같았던 모든 사람들의 것과는 다른 행동을 우리에게 어떻게 기대한단 말인가? 우리는 부지런한 집행자였고 그런 부지런함 덕분에 칭찬받고 진급했다. 결정은 우리가 내린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자라난 체제는 자율적인 결정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 대신 결정을 내렸고 다른 식으로는 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결정하는 능력을 거세당했기 때문이다. 결정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금지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그것에 무능력해져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책임이 없으며 처벌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가 순전히 그들의 후안무치함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근대적인 전체주의 국가가 개인에게 행사할 수 있는 압력은 무시무시하다. 그 무기는 본질적으로 세 가지이다. 교육, 지도, 대중문화로 위장한 프로파간다 또는 직접적인 프로파간다, 정보의 다원주의에 반하는 봉쇄, 그리고 테러가 바로 그것이다.

 

 

22. 이 책은 아직까지도 분명치 않아 보이는 라거 현상의 몇가지 양상들을 밝히는데 이바지하고자 한다. 보다 야심찬 목적도 있다. 좀 더 급박한 질문, 우리의 이야기를 읽을 기회가 있었던 모든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다. 노예 제도나 결투 의식이 그랬던 것처럼, 수용소 세계는 어디까지 사멸했으며 더 이상 돌아오지 않을 것인가, 어디까지 되돌아왔거나 되돌아오고 있는가, 위협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적어도 이러한 위협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우리들 각자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나는 역사가의 작업, 즉 근원을 철저하게 파헤치는 작업을 할 의도는 없었고 그럴 능력도 없다. 다만 거의 전적으로 나치의 라거들을 다루는 데 국한했다. 왜냐하면 그것들에 대해서만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읽은 책들과 들은 이야기, 그리고 내가 초기에 쓴 두 책의 독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는 라거들에 관하여 충분한 간접 경험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내가 지금 집필을 하는 이 순간까지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참사, 굴락의 수치, 불필요하고 피비린내 나는 베트남 전쟁, 캄보디아의 대학살, 아르헨티나의 실종자들, 그리고 그 후 우리가 목도한 잔인하고도 어리석은 수많은 전쟁들이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나치 수용소의 체계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유일무이한 것이다. 다른 그 어떤 시간과 장소에서도 그토록 예기치 못한, 그토록 복잡다단한 현상이 나타난 적은 없었다. 기술적 정교함과 광신, 잔인함이 그토록 짧은 시간내에 그토록 명석하게 조합되어 그렇게 수많은 인명이 절멸된 적은 없었다.

 

41. 그러나 입소한 수용소에서 목격한 놀라운 광경은 그들에게 뜻밖의 충격을 던져 주었다. 자신이 내던져진 세계는 물론 끔찍한 것이었지만 또한 해독 불가능한 것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 세계는 그 어떤 모델에도 부합하지 않는 것이었고, 적은 주변에도 있었지만 내부에도 있었다. “우리라는 말은 그 경계를 잃었고, 대립하는 자들이 두편으로 나뉜 게 아니었다. 하나의 경계선이 아니라 여러 개의 복잡한 경계선들, 곧 우리들 각자의 사이에 하나씩 놓인 수많은 경계선들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적어도 불행을 함께하는 동료들의 연대감을 기대하면서 수용소에 입소했지만 몇몇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바라던 동맹은 없었다. 반면에 수천 개의 봉인된 단자들만이 있을 뿐이었고 이 단자들 사이에는 필사적이고 은밀하고 지속적인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2015.7.15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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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0 0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2-10 08:47   좋아요 1 | URL
`긍정`보다 비판적 사유가 더 필요한거겠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