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들어서 좀 더 열심히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몇권의 책을 읽었고(사실 기억이 가물거린다)
송경동 시인의 산문집 <꿈꾸는 자 잡혀간다>를 집어든 건 벌써 두어달 전의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락날락거렸다.
머리가 아팠다. 그러면 잠시 책을 놓아두었다. 그러고는 한참만에야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전혀 어려운 책이 아니다.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 아니다.
하지만 읽어내는 일이 쉽지가 않았다.
전혀 재미를 느낄 수 없었다.
읽을수록 아파서 읽기가 힘들었다고 해야겠다.
처음엔 머리가 아픈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내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또 알지 못하고 지나갔을 동시대 사람들의 상처가 나를 자꾸만 후벼대고 있었다.
외면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모른 척 지나쳐버리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전혀 나답지 못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난 나다운 것보다 편안하고 안락하게 내 가족이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1년전부터 남편은 건설폐기물을 운반하고 있다. 이곳에서 일한지 어느새 2년이 조금 넘었다.
이곳은 전에 일하던 곳보다 일은 많지만 결제 조건이 좋지 않다.
전에 일하던 곳은 한달후 결제라고 해서 일한 다음 달의 말일에 결제를 해주었는데, 지금 일하는 곳은 두달후 결제라 다음 다음 달의 말일에 결제를 해준다. 처음 계약할때부터의 조건이라 우리는 늘 두달 전에 일한 것을 그 달 말일에 돈을 받게 된다. 일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비용은 늘 빚을 지게 되는 상황이다. 두달 후 결제는 말이 두달이지 실제는 세달만에 결제를 받게 된다. 이런 지경이라 결제일을 제때 지키지 않으면 전전긍긍하게 된다.
작년 6월부터 꾸준히 결제일을 지키지 않는 사업장때문에 늘 전전긍긍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어떤 달엔 제때에 지급하기도 했지만 밀리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이번달에도 3월말에 결제되어야 할 돈이 아직 들어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까 3개월을 꼬박 일한 댓가를 지급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난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늘 투덜거리기 일쑤다. 그러면 남편은 원래 건설쪽 관행이야. 하고 말한다.
원래 그렇다는 게 난 사실 납득이 가지 않는다.
남편 회사의 남편처럼 돈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20여명 이상인 걸로 안다. 20여명의 결제금은 몇억대가 된다. 그 돈이 개인에겐 얼마 안되지만 모두 합하면 큰 돈이 된다.
유류비도 계속해서 오르고 있는 형편이라 모두들 순수익은 많지 않다. 게다가 빚내서 생활하는 경우가 허다해서 결제가 늦어지면 늦어지는대로 금융권에 불필요한 이자가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 화가나고 분통이 터지는 몇몇 사람들은 파업하자고 한다. 남편도 가끔은 파업해야한다고 한다. 예전의 나였다면 아마도 파업에 동참해야한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절대 파업을 지지하지 않는다. 파업은 결국 나중에 더 큰 타격을 줄 것이 틀림없다. 늦게 결제되긴 하지만 이미 일한 댓가는 언젠가는 받게 된다. 파업한다고해도 또다른 일자리가 필요한 사람들로 채워질 것이라 파업의 의미는 없다고 본다.
몇달 전 운반비 단가 조정을 위해 사업장과 협의를 본 적이 있다. 그때 남편과 머리 맞대고 운반비 단가가 필요한 경우와 단가율을 세부적으로 계산해서 표를 만들었던 적이 있다. 터무니없는 단가인상이 아니었기에 사업장에서 제시한 조건보다 낮은 인상율로 타결을 본 적이 있다. 그러다보니 같이 일하시는 분들은 남편이 적극적인 방법으로 결제 문제도 해결하길 바라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답안은 없다. 극단적인 방법으로 파업을 선택한다는 것도 온몸을 불사르고 사업장을 휘저어 놓을 수도 없다. 그 어떤 극한의 방법을 동원한다는 것이 우린 사실 두렵다.
우리집의 경우에는 어찌어찌 살림을 꾸려나가고 있는데, 형편이 좋지 못한 분들의 경우에는 파업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름을 넣을 수 없어서 차를 세우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는 것 같다. 일을 하기 위해서는 차에 기름을 넣어야하는데 카드한도가 이미 꽉 찼고, 카드결제가 되지 않아 리볼빙으로 돌렸는데도 어렵게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그분의 경우를 보면 갑자기 오른 전세금도 마련 못해서 월세로 전환까지 하게 되었다고 들었다. 정말 사람 살기가 싶지가 않다. 아들 녀석은 휴대폰 이용요금 내달라고 독촉하고, 부인은 월세금 내야한다고 독촉하는 상황이란다.
정말 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는지 헛갈린다. 매일 열심히 새벽에 나가서 일을 하는데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고 점점 더 곤두박질 치고 있다면 사는 게 재미없을 것 같다.
좀 더 생활비를 줄인다고 해도 입으로 들어가야 살고, 어딘가에 누워 잠을 자야 살 수 있지 않는가. 게다가 혼자가 아니라 가족을 건사해야한다면 더 한 일일 것이다.
두렵다. 어느날 갑자기 살기 싫어졌다고 말할까봐.
난 늘 세상의 밝은 것들을 쫓고 싶어한다. 평화롭고 안락한 것, 편안하고 즐거운 것, 행복하고 기쁜 것......하지만 그것들은 어느 것 하나 공짜로 주어지는 것은 없는 것 같다.
나는 여전히 잘 사는 사람들을 동경한다. 어떻게해서 그들이 부를 이루었고, 성공하였고, 지금의 그 자리에 올라서게 되었는지......하지만 지금은 그들의 성공만을 그들의 부만을 부러워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책을 읽으며 키웠던 생각들은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책에서 제시한 해결책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슬프다. 현실이.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다. 지금까지의 관행을 해결하기 위해 누군가처럼 온몸에 불을 붙여야하는 것인가.
그렇게 두달여를 책을 읽지 못했다. 어느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음이 붕붕 떠다니는 것 같았다.
큰 아이 학교 도서관에 잠깐 들렀다가 황석영의 <낯익은 세상>과 김형경의 <사람풍경>을 빌려왔다.
<낯익은 세상>을 읽기 시작하면서 다시 책을 읽게 되었다.
노련한 작가의 작품은 역시, 라는 생각을 하며 읽었던 것 같다. 전번주에 읽고 반납해버렸더니 세세한 기억은 별로 없다. 꽃섬에 살았던 사람들, 사람들이 쓰다버린 물건을 주워다 팔고 생활하는 그들의 곁에 김서방네가 사는 예전의 평화로운 풍경의 마을이 현실에도 있다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나도 그런 세상으로 가고 싶다. 죽음의 이면에 담긴 또다른 삶의 공간은 평화로운 마을의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사람풍경>을 읽으며 마음의 위안을 받고 있다. 외국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찾은 심리분석, 나의 유아기는 지금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사람 사는 일이 또 그렇지, 그러고 있다.
아주 만화스럽게 스마트폰이 변기 속에 퐁당했다. 바로 전원을 끄고 말렸어야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2~3시간 뒤에 센터에 다녀왔는데 메인보드가 약간 부식되었지만 사용엔 문제가 없단다. 다행히 돈은 안 들었다. 메인보드가 15만원정도 한다는데......
비가 시원하게 내렸다. "엄마, 봄비가 오면 꽃이 피겠지?" 하고 딸아이가 내옆에서 말했다. 봄비가 내리고 꽃이 피는 일이 기다려진다. 꽃이 피고나면 우울했던 마음들이 조금 더 밝아질 거라고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