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망스 세계문학의 숲 52
스탕달 지음, 임미경 옮김 / 시공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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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마련한 양조위 특별전을 보고 왔다. 영화 <무간도> 상영 뒤 양조위 배우가 직접 무대에 올라온 것이다. 내 살아 생전에 양조위 배우님을 직접 보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니... 감격했고, 감격해서인지 GV 진행 내내 영상을 찍는 내 손이 떨리는 걸 멈출 수 없었다. 어제 처음 알았다. 내게 수전증이 있다는 사실을.


내게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설레고 떨리고 보고 싶고. 그래서 알라딘에 자랑해야 하는데 아이클라우드로 사진이랑 동영상이랑 못 빼서 얼마나 화딱지가 나던지!! 어쨌든 <의천도룡기> 86년 버전을 보고 양조위 배우의 눈빛에 빠졌는데, 이번 부국제에 그가 온다니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할만큼 최선을 다해 티켓팅을 했고, 무간도를 봤고, 오픈 토크를 봤다. 만세!!! 그리고 사람들한테 자랑했다. 양조위 봤다고. 물론 어린 친구들은 샹치의 아버지로만 알고, 무간도가 뭐예요? 하면서 무'관'도를 찾기도 했지만.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아르망스와 옥타브는 다르다. 사랑을 숨기고, 사랑한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아르망스의 경우 가난하기 때문에 옥타브와 결혼하면 주변의 질투와 뒷담화로 옥타브가 자신에 대한 사랑이 식을까봐 겁낸다고 하고, 옥타브는 치명적인 비밀을 안고 있다. 물론 다 읽을 때까지 그의 비밀을 알 수 없어 매우 답답하긴 했지만.(이 비밀은 스탕달이 친구인 메리메에게 보낸 편지에 드러난다.)


내가 만약 사랑을 숨겨야 한다면, 너무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숨겨야 한다면 어떻게 했을까. 감기와 사랑은 숨길 수 없다는데, 어떻게 숨길 수 있을까. <좁은문>의 알리사처럼 매일 신에게 기도할까. "그를 사랑하지 않을 용기를 주소서." 아니면 <클레브 공작부인>의 샤르트르 양처럼 계속 도망쳐야 할까. 하지만 그들의 결말은 어떠했는가. 사람이 터질 것처럼 강렬한 감정을, 그것이 사랑이든 분노이든 어떤 것이든 계속 억누르고 숨기려고 하면 결말은 뻔하다. 미쳐버리거나 죽어버리거나. 그렇지 않겠는가. 심지어 그들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갓 넘긴 20대가 아니던가.


'1827년 파리의 어느 살롱에서'라는 부제가 붙은 만큼, 이 책에는 파리의 귀족 사회의 오만함과 속물 근성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도망 갔다 파리로 돌아 온 드 말리베르 후작과 후작 부인, 아들인 옥타브는 재산도 많이 잃어 가난했으나 갑자기 배상법이 통과 되면서 2백만 프랑이라는 배상금을 받게 된다. 그러면서 사교계에서 외부인, 특이한 사람 취급을 받던 옥타브는 일약 스타가 되고, 옥타브의 사촌누이인 아르망스는 속물이 된 것 같은 그를 경멸하게 된다. 돈과 권력에 일절 관심이 없던 옥타브는 그런 아르망스에게 인정받고 싶어하고, 그러기 위해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며 그녀에게 접근한다. 하지만 둘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이룰 수 없는 상태다. 사랑하지만 사랑을 이룰 수 없기에 그들은 서로를 더욱 간절하게 사랑하고 절망적으로 이별을 만들려고 하는데... 


언제나 죽음을 갈망하는 옥타브는 찬란한 행복 가운데에서도 그 행복을 뒤엎을 무언가를 계속해서 찾는다. 아르망스가 세간의 이목을 피할 수 있는 공간으로 둘이 떠나는 것으로 자신에게 걸었던 속박을 풀 수 있다고 믿었다면, 옥타브는 보다 더 근본적인 자신만의 이유로 사랑을 거부한다. 


말을 할 수 없어서 말하지 않는 것이겠지. 처음부터 끝까지 둘은 자신안에 갇혀서 서로를 자신의 생각대로 바라본다. 어쩌면 둘은 환상을 사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도대체 무슨 고귀한 신념을 이룰 거라고 그렇게 숨기고 삼키고 끝내 뱉어내지 못하는지. 삶은 살아야지, 죽은 채로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배상법이 통과되고 사교계에서 옥타브를 떠받들던 초반에, 아르망스의 눈길을 느낀 옥타브가 하원의원에게 경멸을 내보이는 장면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젊음이란 그런 것이구나, 2백만 프랑이든 무엇이든 그걸 보고 나에게 접근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냥 웃고 말텐데. 사람이란 원래 그런 것이고, 나 또한 어느 면에서는 모자란 구석이 있을 테니까 말이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돈이 좋은 건 사실이니까. 그냥 적당히 하면 될텐데 말이다. 이런 나는 둥글어진 것일까, 속물이 된 것일까.


드 보니베 기사와 드 수비란 씨의 음모가 왜 그냥 사라졌을까. <위험한 관계>를 들먹였으면 왠지 드 보니베 기사의 추악함이나 드 수비란 씨의 비열함이 드러났어야 할 것 같은데 말이다. 하긴 나는 알고 있으니까, 우리 독자들은 알고 있으니까 둘이 결국 좋게 끝나지는 않았을 거라 믿는다. 사람 성격이 어디 가나 말이지.

안녕, 영원히 안녕, 사랑하는 아르망스! 내가 너를 사랑했다는 것은 아무도 모르리라! -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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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라 2022-10-10 00: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의천도룡기는 양조위님 한국 팬분들의 다수가 빠져들고만 드라마가 아니었나 싶어요. 소설을 읽으면서도 양조위님의 장무기를 떠올리게 되더라구요.^^

꼬마요정 2022-10-10 01:30   좋아요 2 | URL
그쵸 이하라님!! 정말 반할 수 밖에 없는 배우인 것 같아요 ㅎㅎㅎ 저도 무얼 보든 늘 양조위 배우님의 장무기가 떠오른답니다^^

미미 2022-10-10 1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르망스 읽으셨군요~♡ 답답한 면이 없지 않았지만 읽는내내 심리묘사에 감탄했던것 같아요!

양조위 이야기 넘 재밌습니다. 하...저라면 청심환이 필요했을거예요^^*

꼬마요정 2022-10-10 23:38   좋아요 2 | URL
답답하다못해 사리가 나올 지경이었어요. 세상에, 스탕달이 편지에 밝히지 않았다면 전 정말 옥타브를 이해할 수 없었을 거에요. 근데 그 심리묘사가 묘하게 저를 설득하긴 했어요. 그래, 그럴 수 있어. 에구 안타깝다 어쩌지. 답답해 으악 뭐 이렇게요 ㅎㅎㅎ

청심환… 생각도 안 나더라구요. 아무것도… ㅎㅎㅎ

프레이야 2022-10-10 11: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와 오픈토크까지!!
ㅋㅋ 수전증에 심장 벌렁거리는 소리 다 들리는 것 같아요.
많이 늙어 보였어요 티비에서 보니.
양조위도 늙는구나! ㅠㅠ
사진이랑 동영상 공유해 주세요 ^^

꼬마요정 2022-10-10 23:42   좋아요 3 | URL
무간도 끝나고 밥 먹고 잠시 방황하니까 어느새 오픈 토크 시간이더라구요. 그 날 센텀을 벗어나고 싶지 않았어요 ㅎㅎㅎ 옆 사람들은 들었을지도 몰라요 심장 소리, 손 떠는 소리… ㅎㅎㅎ 양조위는 나이 들어도 그 눈빛과 미소는 여전하더라구요. 너무 좋아요 ㅎㅎㅎ

사유원도 그렇고 gv도 그렇고 사진 빼다가 시간 다 갔어요ㅠㅠ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후기 써야 하는데ㅠㅠㅠㅠㅠ

scott 2022-10-10 10: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정님 양조위 실물 보고 수전증이 ㅎㅎㅎ 저도 수년 전에 보고 화면 보다 훠얼씬 멋지고 목소리도 훠얼쒼 멋져서 깜놀했었습니다!^^

꼬마요정 2022-10-10 23:43   좋아요 2 | URL
gv 동영상 찍다가 손이 떨려서 화면이 계속 흔들…. 무슨 지진난 줄 알았네요 ㅎㅎㅎ 정말 화면보다 더 멋지고 목소리도 멋지고 그냥 다 멋집니다^^

바람돌이 2022-10-10 14: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양조위 직관한 눈 삽니다. ㅎㅎ
나이들수록 더 멋있어지는 배우잖아요. 악 저는 양조위 눈빛만 떠오리면 소름이 쫙 돋아요. 너무 좋아서.... ㅎㅎ

꼬마요정 2022-10-10 23:45   좋아요 3 | URL
제 눈은 팔 수 없어요. 이제 영원히 제 눈입니다 ㅎㅎㅎ 살아서 양조위 배우님을 직접 보다니요!! 이건 기적이에요 ㅎㅎㅎ

새파랑 2022-10-10 15: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아르망스ㅋ 읽은분들은 모두 답답함을 느낄거 같습니다 ㅎㅎ 그래도 정말 애정이 가는 작품이라는~!! 그리고 이렇게 양조위랑 연결되는군요 ^^

꼬마요정 2022-10-10 23:51   좋아요 3 | URL
아르망스는 답답한데 뭔가 마음이 가요. 둘이 상황도 안 좋은데다 그 마음이 안타까워서일까요. 스탕달이 마음의 작용이나 상태를 잘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급하게 양조위 배우님 보고 온 거 자랑하고 싶은데 가장 잘 어울리는 책 같지 않나요 ㅎㅎㅎ

페넬로페 2022-10-10 22: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양조위 배우를 직접 보고 오시다뇨!
상치에서조차 멋짐과 우아함이 뻗어 나오더라고요~~

꼬마요정 2022-10-10 23:54   좋아요 2 | URL
샹치 안 보고 싶었는데 양조위 배우님 때문에 봤거든요. 춤추는 것 같은 무예 겨루기나 그 눈빛은 잊을 수 없을 거에요. 다시 본 무간도는 또 너무 재미있더라구요. 아, 너무 좋습니다^^

scott 2022-10-11 00: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댓글들이 넘 재밌어요 ㅎㅎ 양조위 눈빛 실물 영접한 요정님! 오래도록 기억을 ^^

꼬마요정 2022-10-11 23:18   좋아요 2 | URL
이렇게 다들 양조위 배우님을 좋아할 줄 몰랐어요 ㅎㅎ 아니, 사실 다들 좋아하지 않을까 싶어서 살포시 자랑을.. 흠흠. 정말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어요^^
 
레슨 인 케미스트리 2
보니 가머스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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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세익스피어의 희극 <한여름 밤의 꿈>은 네 남녀의 꿈 같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고 도망친 허미아와 라이샌더, 그런 그들을 쫓는 드리트리오스와 헬레나의 엇갈린 사랑은 자칫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비극으로 치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요정의 왕 오베론과 여왕 타티아나 사이의 다툼과 퍽의 실수가 어우러져 모든 일들이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바뀐다. 이 이야기나 페로의 <신데렐라>에서 대모 요정이 개입해서 신데렐라를 왕자와 짝지어 준다든지,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에서 제우스와 아테네의 개입으로 오레스테스에게 걸린 질투의 여신들의 저주를 풀어준다든지 하는 일들은 어쩌면 '우연한 행운'에 의한 개연성 없는 이야기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책 역시 그렇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엘리자베스 조트가 얼마나 노력하고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상관없이 성별로, 미혼모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삶을 살다가 갑자기 두둥 요정 할머니가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니까 말이다. 


우리 뇌는 특이하게도 좌뇌와 우뇌가 위험을 반대로 평가한다고 한다. 일련의 실험을 통해, 신경학자들은 우뇌가 (투쟁-도피 반응을 촉발시키는)교감신경계와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좌뇌가 (우리를 진정시키는)부교감신경계와 더 밀접하게 연결되었음을 알아냈다. 달리 말하면 우뇌는 잘못될 수 있는 것에 더 집중하기 쉽고, 좌뇌는 잘될 수 있는 것에 더 집중하기 쉽다. 우리가 지금 당장 비관적으로 느낀다 해도, 우리 뇌는 전체적으로 비관론의 반은 비어 있고 낙관론의 반은 가득 차 있는 셈이다. 그러니 반이나 차 있는 낙관론에 접근하려면 뇌의 관점을 바꾸면 된다. 그냥 행운을 떠올리면 된다. (엥거스 플레처,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 p.201)


그렇기에 우리는 문학을 읽는다고 엥거스 플레처는 말한다. 신데렐라를 읽으면서, 어느 책이든 임의로 행운이 개입된 상황을 읽으면서 우리는 아무리 힘들어도 일시적인 고통일 뿐이라 여기면서 고난을 헤쳐나갈 힘을 얻게 된다. 운에 대한 좌뇌의 강조는 회복력을 높여준다고 말이다. 여러 권선징악 이야기들을 보면 나의 고통은 왠지 내 잘못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이 어디 쉬운 곳이던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노력한만큼의 결실을 얻지 못하는 곳이 아니던가. 내가 잘못하지 않았음에도, 노력했음에도 고통받는 것은 나의 탓이 아니다. 그냥 그런 것이다. 그러다 정말 운이 좋다면 내가 노력한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겠지. 그리고 어쩌면 신이 개입해서 나에게도 행운이 올지도 모른다. 세상은 고통만을 주지는 않으니까. 또한 그것이 세상이겠지. 그렇기에 다가온 행운 역시 당연하지 않게 여겨 감사하게 된다. 희망하는 대로 풀리지 않아도 가끔씩 찾아오는 행운은 삶의 만족도를 높여준다. 


우리 엘리자베스 조트는 여자가 과학자가 될 수 없다 여겨지는 시대에 태어나 그래도 치열하게 살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화학자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재능이 있었고 끊임없이 공부했다. 그리고 자신을 알아봐 준 캘빈 에번스를 만났고 사랑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싶었던 엘리자베스 조트는 캘빈과 결혼을 하지 않은 채 매들린을 낳아 가족을 이루었다. 나 역시 결혼식을 하고 혼인신고서를 작성하는데 상당히 기분이 나빴다. 그래서 아직 혼인 신고를 하지 않았는데, 엘리자베스는 어떠했겠는가.


그리고 남자도 하기 힘들다는 '조정'을 한다. 얼마나 멋있던지. 조정을 할 때 물리학이 도움이 되는 것을 보고 나도 물리학을 공부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힘의 방향을 잘 몰라서 지렛대 원리를 이용하지 못하는 나니까, 오른쪽 왼쪽 헷갈리는 나니까, 바깥쪽 발이 어딘지 헷갈리는 나니까. 하지만 엘리자베스 조트는 나와 달리 힘의 방향도 알고 힘의 원리도 알았기에 조정도 제법 잘했다. 결국 나중에는 메이슨에게 인정받게 된다. 


캘빈 에번스가 유명하고 뛰어난 과학자였기에 엘리자베스 조트의 능력은 그의 이름 아래 가리게 된다. 캘빈의 여자친구이기에 예산을 배정 받고,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당시에 엘리자베스가 하는 연구에 받는 예산은 캘빈의 도움이 컸다. 하지만 그것은 엘리자베스가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불행히도 세상은 그렇게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그리고 비극적인 사건이 터지고, 캘빈은 죽고 엘리자베스는 연구실을 떠난다. 


매들린과 한 반인 어맨다는 매들인의 도시락을 먹었고 매들린의 영양 상태를 걱정한 엘리자베스는 어맨다의 아버지인 월터를 찾아가게 된다. 그러면서 엘리자베스는 TV쇼의 진행자가 된다. 화학자인 그녀가 요리연구가가 된 것이다. 요리는 화학작용의 산물이니까 그녀가 잘 해내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나는 이 책을 덮을 때까지 그녀가 내려주는 커피가 정말로 궁금했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었고, 수많은 슬픔과 좌절이 있었다. 그런 가운데 엘리자베스가 살 수 있었던 것은 의무감, 책임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보살펴주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매들린과 '여섯시-삼십분'과 해리엇이 있었기에, 월터가, 메이슨이, 웨이클리가 있었기에 엘리자베스는 살아갈 수 있었다. 세상은 이렇게 생각이 달라도, 너무 혁신적이라 해도 지지해주는 이들이 있다. 어쩌면 그것이 진짜 '행운의 반전'일지도 모른다. 어느 날 뚝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돈 많은 누군가의 생모가 아니라 말이다.   


엘리자베스 조트가 살아가던 시대에는 그녀가 자신의 연구 분야인 '화학진화'를 계속 주도적으로 연구할 방법이 저런 조력자가 나타나는 수밖에 없는 건지도 모른다. 실력을 실력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시대이니까, 그녀는 '그'가 아니니까. 그렇기에 이런 행운이라도 반갑다. 에이버리가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서 대리인을 내세워야 했기에 이렇게 늦어졌지만 말이다. 아버지가 아니었기에 엘리자베스를 이해할 수 있었고, 이 행운 덕에 이렇게라도 엘리자베스가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지만 좋다. 엘리자베스 조트가 노벨화학상이라도 받으면 좋겠다. 그래서 수많은 여자 아이들의 우상이 되면 좋겠다.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평균적 욕구는 남성이 여성보다 더 크지만(능력과는 상관없다),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진 여성은 여성 지도자를 보면 리더십을 추구하는 경향이 높아진다고 하니까 말이다. 

"조상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네가 중요하거나 똑똑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란다. 너를 너답게 만드는 건 조상이 아니야."
"그럼 나를 나답게 만드는 건 뭐예요?"
"네가 선택하는 것들이지. 네가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이 너를 너답게 만든단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해요. 노예처럼요."
"뭐, 그것도 사실이구나."
아이의 말에 담긴 단순한 진리에 목사는 어쩐지 분해졌다. - P60

"적응하지 못한다는 느낌은 끔찍합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 하는 게 자연스러우니까요. 그건 생물학적 현상입니다. 그러나 사회는 우리가 소속감을 느끼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죠.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압니까, 필? 우리가 자신을 쓸모없는 잣대에 맞추려 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성별과 인종, 종교와 정치, 학연 등등, 심지어 신장과 체중도-" - P104

"반면 <6시 저녁 식사>는 인간의 공통점이 화학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 시청자들이 이제껏 배워온 사회 규범, 즉 ‘남자는 이렇고 여자는 저렇다‘식의 케케묵은 관념에 저도 모르게 얽매여 있더라도, 우리 방송은 문화적 단일성을 넘어서 생각하도록 격려해주는 겁니다. 분별력을 갖추고 과학자처럼 생각하라고 말입니다." - P105

"마저리도 이 점엔 분명히 동감하겠지요. 제일 어려운 일은 학업을 다시 시작하는 게 아니라 그럴 용기를 갖는 거란 사실을요."
그녀는 종이를 얹은 이젤로 성큼성큼 걸어가서 마커를 쥐고 "화학은 변화다"라는 문장을 쓰고서 방청객을 돌아보았다.
"자신에 대한 의심이 들 때마다, 두려움을 느낄 때마다 이것만 깅거하십시오. 용기는 변화의 뿌리라는 말을요. 화학적으로 우리는 변화할 수 있게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그러니 내일 아침 일어나면 다짐하십시오. 무엇도 나 자신을 막을 수 없다고. 내가 뭘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더는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라 규정하지 말자고. 누구도 더는 성별이나 인종, 경제적 수준이나 종교 같은 쓸모없는 범주로 나를 분류하게 두지 말자고. 여러분의 재능을 잠재우지 마십시오, 숙녀분들. 여러분의 미래를 직접 그려보십시오. 오늘 집에 가시면 본인이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시작하십시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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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0-03 22: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문학이 우리의 뇌에 하는 역할이 흥미롭네요. 문학이 우리가 뇌를 낙관적으로 만들어주고 고난을 헤쳐나갈 힘을 준다는데 동의합니다. 저는 그걸 심리적으로만 생각했는데 뇌 역시 그걸 돕는다니 더 문학이 좋아질듯합니다. 어쨌든 저도 이 책 읽고 싶어요. 뭔가 좀 우울할때 행운과 해피엔딩이 있는 소설은 기분전환이 확 되지 않을까 싶은데 왠지 이 소설이 그럴거 같거든요. ^^

꼬마요정 2022-10-04 22:48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 읽으면서 실제로 문학이 뇌에 작용하기 때문에 우리가 감동 받는건가 싶더라구요. 읽는 중인데 재미있고 신기합니다. 이 책이랑 로버트 차알디니의 사회심리학이 책 읽는데 도움이 많이 되네요. 이 소설도 어찌보면 너무 잘 풀리는건가 싶지만 또 그런 행운이 우리에게 희망을 줄 수 있으니까요. 저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바람돌이님께도 행복한 기운 전해지면 좋겠어요^^

책읽는나무 2022-10-04 08: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이 자주 올라오던데 흥미로운 책이군요?
좌뇌, 우뇌...그리고 비관론의 반은 비어 있고, 낙관론의 반은 가득 차 있는 셈이다.
그리고 뇌의 영향을 위해 문학을 읽는 이유!
모두가 흥미롭습니다^^
비가 오는 화요일입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요정님~^^

꼬마요정 2022-10-04 22:50   좋아요 1 | URL
그쵸 그쵸. 너무 신기하고 흥미로워요. 제가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들이 뇌의 작용이라니… 사실 뇌가 작용하니까 느끼는 건데 괜히 마음이 움직이는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ㅎㅎㅎ 우울할 땐 우뇌를 살짝 때려도 좋대요. 그보다는 문학을 읽는 게 더 좋다고 하구요.
즐거운 밤 시간 보내세요. 기분 좋은 꿈 꾸시구요^^
 
[eBook] 무서운 이야기 - 지상에서 들려온 마지막 공포
비명소리 가득한 방 엮음 / 북오션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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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떠돌거나 어디서든 들어봤음직한 이야기들을 묶어놨다. 잘 정리된 이야기도 있고 건성으로 만든 듯한 이야기도 있다. 어쨌거나 사람 조심, 저승사자 조심. 그리고 충동적으로 나쁜 짓 하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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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2-10-01 1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꼬마요정 2022-10-02 17:16   좋아요 0 | URL
넵!! 차조심 사람조심 나쁜 짓 조심이네요^^
 
왓섭! 공포 라디오
왓섭! 엮음 / 북오션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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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 문구 그대로 ‘뻔하지 않은 기묘한 이야기’들이다. 특히 저승 버스 이야기나 상어 인간 이야기 같은 것들은 늘 듣던 것 같지만 다르다. 어머니의 레인 코트와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는 안타깝고도 슬펐고, 친구가 생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섬뜩했다. 자살을 유도하는 건 정말 ‘악마’일지도 모른다.

여기 이야기들은 그저 착각이거나 꿈 또는 환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세상이라는 게 내가 생각하고 계획한대로 흘러가는 곳이 아니지 않은가.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말이다. 그러니 가능하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말고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도록 해야겠다. 그러면 적어도 내가 지은 죄 때문에 죄책감에 사로잡혀 공포스러운 환상은 보지 않겠지. 맥베스나 오레스테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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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9-27 00: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정님 말씀이 맞습니다
세상 생각하고 계획한 대로 를러 가는 곳이 저얼대 아니죠! ㅎㅎ

그래도 저승,,,,자살 ,,,,이야기는
여전히 무섭습니돠 ^ㅅ^

꼬마요정 2022-09-28 23:17   좋아요 1 | URL
그쵸 ㅎㅎ 세상이 생각대로 안 흘러간다는 생각만 맞는 것 같아요 ㅎㅎ

저승, 자살 이야기 무섭지만 읽어보시면 그 상상력이 참 재미있습니다^^
 
회색 여인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2
엘리자베스 개스켈 지음, 이리나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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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내가 열심히 보던 드라마 하나가 끝이 났다. 가상의 도시에서 그 곳을 기반으로 권력과 부를 축적한 기득권(NR포럼)과 그 기득권에서 배제된 무리들이 형성한 또 하나의 기득권(빅마우스)의 대결을 그린 드라마였다. 다른 건 아니고 요즘 들어 이런 형식의 결말이 많은 것 같아서 아쉽다고나 할까. 몇 년 전부터 드라마에서 악이 법으로 심판 받는 경우가 드물어졌다. 악은 돈으로 권력을 사거나 둘 다 갖고 있거나 해서 사법까지 장악했다. 혈연, 학연, 지연 등 온갖 인연이 다 악을 보호하니 이제 약자들은 정당한 방법으로 악을 심판하기 어렵게 된 거다. 오히려 법원이 악에게 면죄부를 주기도 한다. 그래서 더 큰 악이 나타나 악을 징벌한다거나 법인 아닌 사적 복수로 악을 처벌한다. 아니면 힘겹게 증거를 모아 밝혀도 법원에서 무시당하는 꼴을 보면서 씁쓸해 하거나. 이젠 드라마나 영화에서 재판 중에 약자가 증거를 들이밀며 의기양양해하는 모습이 반전이나 카타르시스로 다가오지 않는다. 분명 저래도 빠져나갈걸 하는 마음이 드는 거다.


이 책이 그러했다. 어쩌면 위대한 여신들이 왜곡되기 시작한 때부터 그러했는지 모른다. 남신, 가부장, 가족공동체 등등의 이름 아래에서 끊임없이 착취 당하고 억압 당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게 만들면서 말이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입 밖으로 내 보내면 나쁜 여자가 되고,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면 이기적인 여자가 되고, 불의를 보고 조금이라도 말을 꺼내면 악마가 되어 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법은 여성의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 타의로 '회색 여인'이 되어버린 아나가 법에 기댈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아나는 아망테와 자신의 힘으로 투렐을 법정에 세울 수 없었다. 증거를 모으지도 못했고, 증인을 찾지도 못했다. 철저히 통제되어 자신의 편이라고는 아망테 뿐인 아나는 증거를 수집할 수 없었고, 투렐이 무서운 사람들은 아무도 그에 반하는 증언을 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투렐은 무고한 희생자들을 만들었고, 아나는 아망테와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 옛날 이야기 <푸른 수염>을 떠올렸고 그 이야기만큼이나 참혹했다. 아나는 아망테와 함께 자신의 친정으로 가려고 했으나, 당연히 투렐이 친정에 먼저 손을 뻗었기에 갈 수 없었다. 사실 투렐이 아니더라도 아나의 친정은 이미 아나의 편이 될 수 없었을 것 같았다. 아나의 아버지는 결혼한 이상 아나를 남편인 투렐의 소유라고 여겼고, 오빠의 아내인 바베테는 아나를 싫어했으니까. 


아나와 아망테의 도망 생활은 힘들었다. 아망테는 남장을 하고 아나와 부부 행세를 하며 살아간다. 정말 뭐라도 실용적인 걸 배워야 먹고 살 수가 있다. 그러니 하녀인 아망테가 아나와 함께 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아나 역시 바느질을 할 줄 알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리고 그 당시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 한정되어 있어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른다. 그들은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했다. 아이까지 있는 채로 두려움에 떨며 도망치는 삶은 결코 쉽지 않았으나 그들은 최선을 다했다. 아나와 아망테를 보며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아망테는 소위 말하는 가장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고 둘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삶을 이어갔다. 서로를 잘 알고 서로를 위하고 서로에게 의지하는 이 둘이 가족이 아니라고 말 할 수 있을까. 알렉상드르 뒤마의 <몬테크리스토>에 나온 당글라르의 딸 외제니가 떠올랐다. 외제니도 아나와 아망테처럼 자신의 가정교사와 함께 꿈꾸던 삶을, 자유로운 삶을 살았을까. 


투렐의 추적을 피하려 머리를 염색하고 얼굴에 흙칠을 하던 아나는 더 이상 그렇게 변장을 하지 않아도 반짝이던 금발은 색이 바랬고, 생기 넘치던 얼굴은 잿빛이 되었다. 그렇게 그녀는 '회색 여인'이 되었다. 아나의 딸 우르줄라가 사랑하는 남자와의 결혼을 막기 위해 아나가 써 내려간 자신의 이야기는 마지막 반전까지 안타까웠다.


<회색 여인>에 이어 나온 이야기는 <마녀 로이스>로 제목만 딱 봐도, 로이스의 삼촌이 사는 지역만 봐도 느낌이 오지 않는가. 마녀, 세일럼. 1692년 매사추세츠의 보스턴 근교 세일럼이라는 곳에서 마녀 사냥 및 마녀 재판이 열렸다. 우리나라에서는 마녀라고 하면 여자만 뜻하긴 하는데, 마녀 사냥의 광풍이 불 당시 유럽에서는 남자 마녀(?)도 상당수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많이 희생당했기 때문에 '마녀'라는 단어를 쓰지만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여성형 단어 대신 마인(魔人)이라는 중성형 단어를 쓰자는 제안도 있었다고 한다.(주경철, 마녀, 생각의 힘, p.14) 그도 그럴것이 마녀 재판이란 것이 참회니 죄의 단죄니 하며 성스러운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인간의 질투와 욕심 같은 추악한 감정과 두려움이 불러 온 것이니까. 실제로 남녀 모두 마녀로 몰려 자백을 하게 되면 그들의 재산은 모두 몰수됐다. 아서 밀러의 <시련>에서 시작은 질투에서 비롯되었으나 결국 토지 소유권 문제로까지 확장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마녀 재판이라는 이 형식 자체가 교회와 세속 당국의 지위를 공고히 해 주는 수단이 되기 때문에 죄가 없더라도 고문을 통해 무고한 다른 이들까지 줄줄이 엮여도 풀어줄 수가 없었다. 1628년 밤베르크 시장인 유니우스 역시 무고한 이들의 증언으로 마녀로 몰려 화형 당했다. 중세 말 근대 초에 일어난 이 엄청난 광기는 1692년 세일럼에서도 불타올랐다.


로이스는 영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자신만을 사랑하는 부모님 때문에 고아가 되어 한 때 의절했던 어머니의 남동생인 랠프 힉슨에게 보내진다. 도착하고 보니 외삼촌은 아프고 외숙모인 그레이스는 로이스와는 다른 신앙으로 똘똘 뭉쳐 있고, 사촌인 머내시는 어딘가 이상하고, 페이스는 조용하며, 푸르던스는 경우가 없다. 현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조현병을 앓는 것으로 보이는 머내시와 ADHD일 것 같은 푸르던스와 우울증을 앓는 것 같은 페이스가 있고, 인디언 하녀 네이티가 있다. 마녀 사냥은 성직자도 피해가지 않는다. 생각이 조금이라도 다르면 마녀가 될 수 있고, 탐나는 재산이 있으면 마녀가 될 수 있고, 예쁜데 혼자라면 마녀가 될 수 있고, 국적이 다르면, 피부색이 다르면 나이가 많은 여자라면, 고양이를 키운다면 마녀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영국인이면서 카톨릭 신자에 찰스 2세를 옹호하고 아름다운 로이스와 인디언이자 늙은 하녀인 네이티의 운명이 뚜렷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 과정이 너무 인간적이어서 무서웠다. 질투, 시기심, 두려움, 이기심, 욕심... 이런 것들과 성적 욕망, 내 것이 아니라면 파괴하고 싶은 감정이 어우러져 마을은 난장판이 되었다. 종교와 신념이라는 이름으로 세일럼 사람들은 피해자들을 목 매달았다. 실제로 그들의 논리에 따른다면 머내시가 마법사일 것이다. 머내시가 보는 환영이 신이 보여준 것이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하지만 머내시를 구하기 위해 그레이스는 로이스를 마녀로 몰아갔다. 머내시의 병이 로이스에게서 온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말이다. 페이스는 자신의 사랑을 전한 적도 없으면서 놀런 목사의 눈이 로이스에게 머무는 것을 참지 못하고, 푸르던스는 그저 '인싸'가 되고 싶어 마법에 걸린 척 연기 한다. 


광기가 지나간 후 가해자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그 참회라는 것이 과연 피해자에게 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지은 죄로 천국에 가지 못하기 때문에 하는 것일까.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에서 콤프라치코스 및 죄 많은 자들을 태운 채 그윈플레인을 버리고 간 그 배에서 그들이 한 참회나 세일럼의 사람들이 한 참회가 피해자에게 진정으로 가 닿을지는 모르겠다. 루이스를 데리러 온 연인 휴 루시가 말한 것처럼 -"그들이 아무리 회개한들 로이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고 로이스를 살려낼 수도 없습니다."(p.232)- 부질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숙히 반성하고 추모하는 기념일을 4월 29일로 정했다는 말을 전해듣고 휴 루시는 로이스가 바라기 때문에 죄가 사해지길 기도한다고 말한다. 로이스는 자신을 탐탁치 않아 하던 네이티가 마녀로 몰려 자신의 감방에 들어오자 그녀를 위로하고 두려움으로부터 지켜줬다. 마치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에서 시드니 카턴이 단두대에 오르기 전 소녀를 위로했던 것처럼 말이다. 부모에게서 보살핌 받지 못하고, 사법이 짓지 않은 죄를 강제하는 억울한 상황에서도 인간성을 버리지 않은 로이스의 모습에서 경이로움을 느꼈다. 또한 영원히 숙제 같은 존재인 '엄마'를 부르는 모습에서 눈물이 났다. 엄마는 없어, 로이스....


마지막 <늙은 보모 이야기>는 안타깝다. 그 이름도 안 나오는 음악가 쓰레기는 어디에 처박혀서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 놈이 제일 먼저 교수대에 매달려야 하는데... 불쌍한 아기는 무슨 죄이며, 딸의 일탈을 집안의 체면과 연관 시키는 부정(父情)이라니. 그 집안 쫄딱 망해버려라. 


유령이 되어서도 전해지지 않고, 유령이 되어서야 말할 수 있다는 건 너무 참혹하고 끔찍하다. 아버지가 부당해도 딸은 호소할 곳이 없다. 응당 아버지라면 그 음악가를 잡아야지 딸과 손주를 잡을 게 아니라. 두 자매를 농락한 그 음악가가 나쁜 데 퍼니벌 부인은 모드 양을 질투했고 평생 죄책감에 사로잡혀 살아야 했다. 그렇다. 어릴 때 한 그 나쁜 짓은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없어지지 않고 되돌릴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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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18 22: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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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18 23: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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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5 22: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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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5 23: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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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5 22: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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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5 22: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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